달력

3

« 2024/3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35

晉 康侯 用錫馬蕃庶 晝日三接
【初六】晉如 摧如 貞吉 罔孚 裕 无咎
【六二】晉如 愁如 貞吉 受茲介福于其王母
【六三】衆允 悔亡
【九四】晉如鼫鼠 貞厲
【六五】悔亡 失得勿恤 往吉 无不利
【上九】晉其角 維用伐邑 厲吉 无咎 貞吝

  중국은 천자(天子)가 각 지역의 제후들을 통솔하는 체제를 갖고 있었다. 천자가 제후를 임명하여 한 지역을 독자적으로 다스리게 하고 그 제후를 지배하는 형태의 정치체제 였는데, 그래서 조공을 받쳤던 우리나라가 중국의 제후국이었느니 하는 논란이 있기도 하였다. 여기에서 말하는 진(晉)괘는 천자의 권력이 아닌 제후의 권력을 말하며, 천자에 충성하는 권력을 의미한다.

 

晉 康侯 用錫馬蕃庶 晝日三接
권력(晉)은 강후의 지위를 받고(康侯) 마필을 상으로 받으며(用錫馬蕃庶) 하루에(晝日) 세 번 임금을 배알함을(三接) 말한다.
  천자로부터 제후로 봉해지면 천자의 신하로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데, 천자를 조현(朝見)하여 업무 보고와 인사를 하여야 하며, 조공을 받쳐야 하며, 천자를 지키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고 천자에게 불충한 다른 제후를 토벌하여야 하는 등 여러가지 신하로서의 의무를 지게 되었다. 제후로 봉해졌는데 마필을 상으로 받고 하루에 세 번이나 천자를 배알하게 되니 곧 올바른 권력이며 천자에 충성하는 권력이어야 한다는 의미한다. 반드시 하루에 세 번 만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번 청해도 천자가 만나줄 정도의 신임을 의미한다.

 

晉如 摧如 貞吉 罔孚 裕 无咎
권력으로(晉如) 정적을 굴복시켜야(摧如) 끝까지 길하다(貞吉) 굴복한 적수가 신뢰할 수는 없더라도(罔孚) 관대하게 대해야(裕) 허물은 없다(无咎)
  권력은 정적을 굴복시키지 못하면 위협이 되는 무서운 속성을 내재하고 있다. 권력으로 정적을 굴복시켜야 하는 것은 제후로서의 의무 중 하나인 ‘불충한 다른 제후를 토벌해야 할 의무’를 의미한다. 중국의 역사는 제후들의 커진 힘을 막지 못해 결국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하여 혼란기로 접어들었다. 권력은 정적을 힘으로 굴복을 시켜야 하지만 그 반면 관대하게 대해야 한다. 중용(中庸)의 도를 지키라는 것이다. 채찍과 당근이 조화되어야 하니 ‘교육’의 도(道)와 마찬가지이다.

 

晉如 愁如 貞吉 受茲介福于其王母
권력은(晉如) 근심이 있어야(愁如) 끝까지 길하니(貞吉) 왕모로부터 그 복을 받을 것이다(受茲介福于其王母)
  제후의 권력은 천자로부터 다른 지역의 제후들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견제를 받게 되는 자리이다. 권력의 근심은 그러한 권력의 견제를 말한다. 권력이 견제를 받지 못하면 액톤(Acton)의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한다’는 말처럼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오늘날 삼권분립(三權分立)이 제도로써 자리잡은 까닭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천자와 다른 제후들의 의심을 사게 되는 심한 견제를 받으면 왕모가 살펴 줄 것이라고 한다. 왕모는 역사적으로 문왕의 어머니였던 태임(太任)을 지칭한다고 한다. 천자는 혹 간신배들에게 휘둘려 분별력이 떨어질 수도 있지만, 어머니의 모성본능은 아들을 해롭게 하는 자와 이롭게 하는 자를 본능의 눈으로 더 잘 알게 되는 까닭일 지 모른다.

 

衆允 悔亡
민중의 지지가 있어야(衆允) 후회가 없다(悔亡).
  바른 권력인지 바르지 못한 권력인지의 여부는 민중으로부터 찾아야 한다. 탕왕이 걸왕을 내쫓고 무왕이 주왕을 정벌한 것을 두고 맹자는 남을 해치고 잔인하게 구는 한 명의 인간을 처형한 것일 뿐 군주를 시해한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군주가 군주답지 않으면 군주가 아니라는 뜻인데, 바른 권력이란 무조건적으로 천자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바른 도리와 민중의 마음을 따르는 것이다.

 

晉如 鼫鼠 貞厲
권력이(晉如) 들쥐와 집쥐와 함께 하면(鼫鼠) 끝까지 위태롭다(貞厲).
  들쥐는 떼를 지어서 농작물에 단번에 큰 피해를 주고, 집쥐는 집안에 기생하며 조금조금씩 피해를 주는데 그러한 성향의 간신배들을 상징한다. 공자께서는 “스며드는 참소와 애통한 무고가 통하지 않는다면 널리 밝히는 통찰력을 가졌다 할 수 있다”[논어 제12편 안연 제6장]고 하셨다. 논어 원문의 침윤지참(浸潤之譖)과 부수지소(膚受之愬)는 이미 고사성어가 된 말이다. 침윤지참(浸潤之譖)은 물이 점점 스며드는 것과 같이 쌓고 쌓이게 하여 모함하는 것이며, 부수지소(膚受之愬)는 살을 에는 듯한 간절한 하소연으로 단번에 흔들리게 모함하는 것을 말하니, 침윤지참은 집쥐와 의미가 같고 부수지소는 들쥐와 의미가 같다.

 

悔亡 失得勿恤 往吉 无不利
후회가 없다면(悔亡) 권력을 잃고 얻음에 근심하지 말라(失得勿恤) 그렇게 나아가면 길하고(往吉) 이롭지 않음이 없다(无不利)

  권력이 단지 욕망이라면 그만큼 무상한 것도 없다. 옛 속담에 ‘정승 개 문상은 가도 정승 문상은 안 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권력을 잃고 얻는 것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바름을 도모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권력은 그 바름을 도모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晉其角 維用伐邑 厲 吉 无咎 貞吝
권력의 뿔을 세우면(晉其角) 그 권력으로 이웃을 치게 되니(維用伐邑) 위태하다(厲) 결과가 좋고(吉) 허물은 없더라도(无咎) 끝내는 어려워질 것이다(貞吝)
  권력의 뿔을 세우는 것은 권력의 힘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 가진 힘을 행사하여 이웃을 치는 것은 잘못이라는 뜻이다. 힘으로 제압했기 때문이며 힘을 남용했기 때문이다. 권력이라는 강한 힘을 가졌으되 그 힘은 공격적으로 행사되어야 하는 힘이 아니라 바른 도를 지키기 위한 방어적인 행사여야 바른 까닭이다. 공자께서 소(韶)음악은 정말 아름답고 참으로 좋다고 하셨지만 무(武)음악은 아름답지만 참으로 좋지는 않다고 하셨으니[논어 제3편 팔일 제25장], 무왕은 힘으로 자신의 주군이였던 주왕을 참살하고 천하를 차지하였기 때문이었다.

:
Posted by 오빠야닷컴
34

大壯 利 貞
【初九】壯于趾 征 凶 有孚
【九二】貞 吉
【九三】小人用壯 君子用罔 貞 厲 羝羊觸藩 羸其角
【九四】貞 吉 悔亡 藩決不羸 壯于大輿之輹
【六五】喪羊于易 无悔
【上六】羝羊觸藩 不能退 不能遂 无攸利 艱則吉

  주역뿐 아니라 옛 성현들의 가르침이 담긴 글에 나타나는 소(小)와 대(大)는 가정과 사사로움을 도모하는 의미의 소(小)와 나라와 사회전체의 이익을 도모하는 의미의 대(大)로 나누어 구분한 것이다. 그래서 소인(小人)은 가정을 가장 중시하는 곧 필부필부(匹夫匹婦)하면서 사는 일반 백성들을 의미하고, 대인(小人)은 남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사명을 다하는 사회의 이익을 도모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대장(大壯)도 마찬가지로 그러한 대(大)에 중점을 둔 왕성한 힘이며(壯) 사회전체의 이익을 도모하는 힘이니 이어지는 진(晉)괘의 권력을 이루기 위한 힘을 의미한다.

 

大壯 利貞
왕성한 기운(大壯)은 결실을 맺고(利) 마감하기(貞) 위해 쓰이는 기운이다.
  대장(大壯)은 결실을 맺고 마감을 하기 위한 기운의 발산이니, 대축(大畜)괘에서 말한 대축리정(大畜 利貞)과 같은 의미이다. 소축(小畜)은 성장기(亨)에 의욕 해야 하는 일이며, 대축은 열매를 맺고 마감하기 위해서(利貞) 이뤄야 하는 일이라고 했었다. 마찬가지로 아이를 낳기 위한 사용해야 할 소장(小壯)의 기운이라면 성장기(亨)이겠지만 사회를 위한 기운의 발산이므로 리정(利貞)인 것이다.

 

壯于趾 征 凶 有孚
기운이 발에 모여 있을 때(壯于趾) 나아감(征)은 흉(凶)하다. 뜻이 있어야 한다(有孚)
  기운이 발에 있음은 행동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육체적 힘에 치우쳐 있는 것을 말한다. 발(육체적 힘)과 머리(정신적 힘)의 기운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강한 물리적 힘으로 나아가는 것은 흉하니 정신가치가 뒷받침되지 않는 권력찬탈에 불과한 쿠테타가 오래갈 수 없는 까닭이다.

 

貞 吉
마지막(貞)이 되어야 길(吉)하다.

  대장(大壯)괘에서 말하는 강한 기운은 열매를 맺고 마감하기 위한 리정(利貞)의 힘이니, 곧 정점에서 가장 강력하게 터트리는 힘의 발산이다. 힘을 집중하여 남김없이 발산하여야 길하다. 배수의 진을 친 군대를 이기기가 힘든 까닭은 남김없이 힘을 발산하기 때문이다.


小人用壯 君子用罔 貞 厲 羝羊觸藩 羸其角
소인은 육체적 힘만 사용하려 하고(小人用壯) 군자는 그물만 사용하려 하면(君子用罔) 끝까지(貞) 위태롭다(厲) 새끼양이(羝羊) 울타리를 들이받고(觸藩) 그 뿔이 처량하게 된다(羸其角)
  열매를 맺고 마감하는 강한 힘의 집중은 혼자서 애쓰는 힘이 아니며 함께 뭉쳐서 행사하여야 할 힘이다. 그런데, 그 힘이 음양의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소인과 대인이 따로따로 분산된 힘을 발산하고 있으니 위태로운 것이다. 양은 제사에서 희생양으로 삼는 동물인데, 힘없는 민초(백성)를 말함이다. 소인과 군자가 힘을 조화롭게 뭉치지 못하면, 애꿎은 백성들의 희생만 생기게 된다는 말이다.

 

貞 吉 悔亡 藩決不羸 壯于大輿之輹
마침내(貞) 길(吉)해지고 후회가 없게 되려면(悔亡) 울타리가 터져서(藩決) 처량함이 없어지고(不羸) 큰 수레를 타고 큰 기운이 터져나가게(壯于大輿之輹) 해야 한다.
  음과 양의 조화로움을 가로막고 방해하고 있는 벽이 곧 울타리이다. 그 울타리가 허물어지고 음양의 조화가 이뤄지면 거침없이 큰 기운이 퍼져나가게 될 것이다. 상호간에 조화를 도모하여 중용(中庸)의 도를 지켜야 한다.

 

喪羊于易 无悔
길 잃은 양은 돌아오게 해야(喪羊于易) 허물이 없다(无悔)
  큰 기운이 퍼져 나가기 위한 음양조화를 위해 우여곡절이 있었을 것이요, 뜻하지 않은 희생 역시 있었을 것이다. 길 잃은 양은 두려워 도망친 백성을 말함이니 다시 제자리로 데려와 보살펴주어야 허물이 없다. 어떻게 데려와야 하는가? 자공이 정치를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가까이 있는 백성들을 기쁘게 하면 멀리서도 저절로 모여들 것입니다”[논어 제13편 자로 제16장]라고 하셨다. 길 잃은 양을 돌아오게 하는 방법은 바른 정치로 도(道)를 밝히는 것이다.

 

羝羊觸藩 不能退 不能遂 无攸利 艱則吉
새끼양이 울타리를 들이받아(羝羊觸藩) 물러나지 못하고(不能退) 나아갈 수도 없다면(不能遂) 유리할 게 없지만(无攸利) 그 어려움이 있음으로(艱則) 길(吉)하다.
  길 잃은 양이라면 어디서 헤매고 있는지 몰라서 구해주러 찾아 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찾아올 때 까지 기다려야 하니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진퇴양난에 빠져 오도가도 못하고 있는 양이라면 길 잃은 양을 찾는 것 보다는 쉽게 구할 수가 있다. 길 잃은 양은 속박되지는 않았으나 구해주기 어려운 양이며, 오도가도 못하게 된 양은 속박되어 보다 어려움에 처한 양이지만, 큰 기운이 터져나가 성취가 된 후에는 가장 먼저 구원을 받을 것이다. 그래서 그 어려움이 있는 것이 오히려 길(吉)한 까닭이다. 그래서 인생지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하였다.

:
Posted by 오빠야닷컴
21

噬嗑 亨 利用獄
【初九】屨校 滅趾 无咎
【六二】噬膚 滅鼻 无咎
【六三】噬腊肉 遇毒 小吝 无咎
【九四】噬乾胏 得金矢 利艱貞 吉
【六五】噬乾肉 得黃金 貞厲 无咎
【上九】何校 滅耳 凶

  서합(噬嗑)은 입 속의 음식물을 강하게 씹는 것이니, 곧 ‘이권을 씹어 먹으려는 바르지 못한 힘’을 말한다. ‘악(惡)’의 하나이다. 서구 열강의 이권쟁탈로 인해 우리민족이 겪어야 했던 비참한 역사가 오래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조그만 상가에서 조차도 조폭까지 동원한 이권쟁탈전이 벌어지는 뉴스를 접하게 되니 안타까운 현실이다. 사형으로 아무리 엄격하게 다스려도 살인자가 없어지지는 않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기는 하다. 그 악이 전체로 번지고 퍼져나가지 않게 ‘최소한으로 제어’할 수 있는가가 사회의 당면한 과제일 것이다.

 

噬嗑 亨 利用獄
악(噬嗑)도 성장해 나가는 것(亨)이니, 감옥을 이용해야 이롭다(利用獄).

  이권을 탐하는 악성(惡性)도 열매를 맺으려고 성장한다. 선도 악도 모두 전파성이 있다. 감옥을 이용하는 것은 그 악(惡)을 강력하게 단속하는 것을 말한다. 그 수단이 법이건(법가) 예이건(유가)간에 강력하게 단속하지 않으면 퍼져나가게(亨) 되는 것이다. 비워진 가게에서 너도나도 물건을 훔쳐가면 죄의식을 잃고 모두가 물건을 훔치려고 할 것이다. 현재의 사회는 공권력의 통제력이 무너지면 곧 악마의 세상으로 변해버릴 수 있을 만큼 가치관이 상실되어 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법령으로 지도하고 형벌로써 규제한다면 민중은 형벌을 피하려고 할 뿐 부끄러움을 모르게 된다. 덕으로써 지도하고 예로써 규제하면 부끄러움을 느껴 마음으로 따르게 된다”[논어 제2편 위정 제3장]고 하셨다.

 

屨校 滅趾 无咎
족쇄를 채워(屨校) 발을 잘라버려도(滅趾) 허물은 없다(无咎).

  악이 퍼지는 속도를 덕(德)으로써 통제하기는 힘들지도 모른다. 감옥 같은 구속이 필요하지만 더 나아가 악의 기운이 세상을 활보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잘라버려도 허물은 아니라고 한다. 강제성과 힘으로 막아도 괜찮다는 뜻이니, 주역은 법가의 사상에 가까운 일면이 있다. 법치주의는 쉬운 방법이므로 현실적인 효과적인 방법이기는 할 것이다.

 

噬膚 滅鼻 无咎
고기를 먹으려 한다면(噬膚) 코를 베어버려도(滅鼻) 허물은 없다(无咎)

  고기는 이권, 경제력, 권력 등을 상징한다. 고기를 먹으려는 것은 악이 곧 지도부로 파고드는 것이다. 윗 물이 탁하면 순식간에 사회전체가 오염이 되어버리니 이권을 탐하는 세력이 권력과 부를 노린다면 냄새를 맡지 못하도록 코를 베어버려도 허물은 없다고 한다.

 

噬腊肉 遇毒 小吝 无咎
오래된 고기를 먹는 것(噬腊肉)은 독을 만나나(遇毒) 조금 어려워도(小吝) 허물이 없다(无咎).
  오래된 고기는 기득권층이 축적해 놓은 것을 말한다. 고기를 나누지 않고 축적해 놓은 까닭에 오래된 것이니 그 역시 이권을 축적해 놓은 것이며 악이다. 그것을 탐하여 싸우는 것은 악과 악의 다툼이니, 허물은 없다고 한다. 부패한 기존 권력층을 몰아내는 자가 바른 세력이 아니라 역시 마찬가지로 이권을 탐하여 일어선 경우이다. 그 놈이 그 놈인 것이다. 허물이 없음은 길(吉)하다는 말이 아니다. 내면적인 시각에서 괜찮다는 뜻이다.

 

噬乾胏 得金矢 利艱貞 吉
마른 밥 찌꺼기를 먹는데(噬乾胏) 쇠로된 화살촉이 나왔으니(得金矢) 끝까지 먹기 어려우니 이롭고(利艱貞) 길(吉)하다.
  마른 밥 찌꺼기는 배고픈 서민들의 양식이다. 이 곳에 악의 기운이 스며들었지만 쇠로 된 화살촉 즉, 마른 밥을 먹지 못하도록 하는 민중의 저항이 나왔다. 세상이 난세에 이르면 세상을 구하기 위해 나서는 의로운 이들은 오히려 일반 민중이다. 민중 속에서 나타난 영웅은 그 쇠로 된 화살촉(출신이 귀하지 않지만)이지만 길(吉)하다.

 

噬乾肉 得黃金 貞厲 无咎
마른 고기를 씹다가(噬乾肉) 황금을 얻게 되면(得黃金) 끝까지 어렵지만(貞厲) 허물은 없다(无咎)

  마른 고기는 가진 자, 기득권층의 재산이다. 그곳으로 스며든 악이 고기를 씹어먹으려는데 황금이 나와 제대로 씹을 수 없었으니, 곧 출신성분이 좋은 영웅을 상징한다. 주역은 기득권측에서 나온 영웅은 민중 속에서 나온 영웅에 비해 한계가 있다고 본다.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한 최영장군도 권문세족의 출신이었던 까닭에 신분적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악을 찌를 수 있는 황금화살촉이 아니고 단순한 황금일 수 밖에 없다. 허물(咎)은 외면적인 시각의 길흉(吉凶)과 달리 내면적 시각에서 본 것이다. 내부적으로 나쁜 것은 아니다는 뜻이지만 길(吉)한 것은 아니다.

 

何校 滅耳 凶
형구에 매어(何校) 귀를 잘라버리면(滅耳) 흉(凶)하다.

  악마가 세상을 어지럽히기도 하니, 심심찮게 희대의 살인마가 나타나 인간에 회의를 느끼게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주역은 감옥에 가두고, 발목에 족쇄를 채우고 발목을 잘라버릴지언정 귀는 잘라서는 안된다고 한다. 귀를 잘라버리지 않는다는 말은 개과천선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마라는 것이다. 귀로 들을 수 있어야 깨우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역은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세상의 이치를 담고 있는 책이기에 설령 악마일지라도 천사로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주역은 생명사랑의 이념을 곳곳에 기술하고 있다.

:
Posted by 오빠야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