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4

« 2024/4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자유'에 해당되는 글 3

  1. 2013.01.10 제2편 위정(爲政) 제18장
  2. 2013.01.06 제2편 제물론(齊物論) - 1
  3. 2010.02.20 성(性)의 한계 - 그 기쁨
2013. 1. 10. 20:44

제2편 위정(爲政) 제18장 간상(赶上)/논어(論語)2013. 1. 10. 20:44

자장이 간록을 배우려 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子張學干禄. 子曰:]
 - 많이 들어 의문을 없애고, 의문없는 바를 신중히 말하라 [多聞闕疑 慎言其餘]
 - 그러면 허물이 적을 것이다 [則寡尤]
 - 많이 보아 위험을 없애고, 위험없는 바를 신중히 행하라 [多見闕殆 慎行其餘]
 - 그러면 후회가 적을 것이다 [則寡悔]
 - 말을 조심해 허물을 줄이고 행동을 조심해 후회를 줄이면[言寡尤 行寡悔]
 - 그 속에 녹(禄)이 있을 것이다 [禄在其中矣]


  간록(干禄)은 벼슬자리라는 견해가 있고, 《시경》편의 간록(복을 구한다는 의미)이라는 견해가 있다. 어쨌거나 군자가 되는 게 아닌 현실적 질문이다.


  하지만 공자의 대답은 다를 바 없다. 수신(修身)하라. 군자(君子)가 되라고 하신다.

 

  전쟁이 끊이지 않던 춘추전국시대. 공자는 그런 세상에 도덕을 설하여 군자를 꿈꾸게 하였다. 교주가 연상되는 그 능력을 이해할 수 없다면 공자의 답은 짜증 날 수준이다. 반대로 자장 역시 신기한 인물이다. 단순하고 과격한 자로였다면 엎어버렸을지 모르는데... ^^

 

  이 장은 대학(大學)의 '삼강령'을 빌려 오는 게 좋겠다.

사물에는 근본과 말단이 있고
일에는 마침과 시작이 있다
먼저 해야 할 것과 뒤에 해야 할 것을 알면
도에 가까울 것이다.

  공자학은 근본(根本)을 지향한다. 조상을 돌아보는 제사 또한 뿌리와 근본(根本)을 돌이키는 의식이다. 나라의 역사를 배우기에 앞서, 내 집안의 역사부터 아는 것이 순서라 했다. 세종대왕이 좋아했던 음식이 무엇이었을까? 그보다 내 부모님께서 좋아하는 음식을 아는 것이 먼저라 했다.

 

  자장에 대한 공자의 대답을 이렇게 줄여볼까?

'자장아! 먼저 해야 할 근본에 더 힘쓰려무나'

 

  한편, 공자는 '자하는 부족하지만 자장은 지나치다'는 평가를 내렸다. 그는 거침없는 언행을 보였다고 알려졌다. 남의 말을 잘 들어주지 못하고 남의 행동을 지켜봐 주지 못했던 듯하다. 인(仁)이란 사람(人)이 둘(二)이라는 뜻이다. 소통이고 어울림이며 조화라고 할 수 있다. 자장에게는 인(仁)이 부족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개선을 했을까? 《자장》편을 보면 고치지 못했다는 의심이 들 수 있다.

 

자유가 말하길 : 자장은 능히 어려운 일을 해내지만 아직 어질지는 못하구나. [15장]

증자가 말하길 : 당당하다 자장이여. 그러나 함께 인을 행하기는 어렵구나. [16장]

 

'간상(赶上) > 논어(論語)'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2편 위정(爲政) 제20장  (0) 2013.01.12
제2편 위정(爲政) 제19장  (0) 2013.01.11
제2편 위정(爲政) 제17장  (0) 2013.01.09
제2편 위정(爲政) 제16장  (4) 2013.01.07
제2편 위정(爲政) 제15장  (0) 2013.01.04
:
Posted by 오빠야닷컴

남곽자기(南郭子棊)가 책상에 기대앉아[南郭子綦隱机而坐] 하늘을 쳐다보며 한숨쉬니[仰天而噓]
그 멍한 모습이 마치 스스로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荅焉似喪其耦].
제자 안성자유(顔成子遊)가 그 앞에서 시중을 들다가[顏成子游立侍乎前] 여쭈었다[曰]:
"무슨 일인지요[何居乎]? 보이는 모습이 정말로 마른나무와 같고[形固可使如槁木]
느껴지는 마음이 정말로 식은 재와 같습니다[而心固可使如死灰乎].
지금 책상에 기대고 있는 사람이[今之隱机者]
이전에 그 사람과 다른 사람인지요[非昔之隱机者也]?



자기(子棊)가 말했다[子綦曰]:
"언아[偃] 너는 정말 순진하여[偃不亦善乎] 그런 것을 묻는구나[而問之也]!
지금 나는 내 자신을 잊고 있었는데[今者吾喪我] 네가 그것을 알겠느냐[汝知之乎]?
너는 사람이 내는 소리인 인뢰(人籟)는 들었을 것이나[女聞人籟而未聞地籟]
땅이 내는 소리인 지뢰(地籟)는 못 들었을 것이고[女聞地籟]
설령 들었어도, 하늘이 내는 소리인 천뢰(天籟)까지는 못 들었을 것이다[而未聞天籟夫夫].



자유가 청했다[子游曰]: "부디 그것을 말씀해 주십시오[敢問其方]."



자기가 대답했다[子綦曰]:
"대개 대지가 뿜어내는 숨을[夫大塊噫氣] 바람이라 한다[其名為風].
이것이 일지 않으면 모르겠지만[是唯無作]
일어나면 세상의 모든 구멍이 성난 듯 소리를 낸다[作則萬竅怒呺].
너 혼자 그 소리의 울림을 못 듣지는 않았겠지[而獨不聞之翏翏乎]?
산 속의 높은 봉우리에[山林之畏佳] 백 아름이 되는 큰 나무의 구멍은[大木百圍之竅穴]
코와 같이, 입과 같이, 귀와 같이, 가로보 같이, 고리와 같이, 절구와 같이[似鼻 似口 似耳 似枅 似圈 似臼]
연못과 같은 것이 되고, 웅덩이와 같은 것이 된다[似洼者 似污者].
물소리 같이, 화살소리 같이, 꾸짓는 소리 같이, 숨쉬는 소리 같이[激者 謞者 叱者 吸者]
부르는 소리 같이, 울리는 소리 같이, 찟어지는 소리 같이 되어[譹者 宎者 咬者],
앞 소리를 가볍게 시작하여 뒷소리를 무겁게 낸다[前者唱于而隨者唱喁]
작은 바람이면 작게 화답하고, 거센 바람이면 크게 화답한다[泠風則小和 飄風則大和]
그러다 바람이 잦아지면 모든 구멍들이 잠자게 되는 것인데[厲風濟則眾竅為虛]
너만이 저 나무들이 휘청휘청 흔들리다 잠잠해짐을 것을 못 보지는 않았겠지[而獨不見之調調 之刀刀乎]?"



자유가 말하기를[子游曰]:
"지뢰(地籟)는 구멍을 통해 나오게 되는 소리이며[地籟則眾竅是已],
인뢰(人籟)는 사람이 불어 나오는 피리같은 소리군요[人籟則比竹是已].
그렇다면 천뢰(天籟)는 무엇인지요[敢問天籟]?"



자기가 대답했다[子綦曰]:
"그 나오는 소리가 만가지가 다 다르지만[夫吹萬不同]
저절로 달리 만들어 지는 소리이다[而使其自已也].
저절로 그리 나오게 되는 것이니[咸其自取]
소리나게 하는 그 무었이 있어서겠느냐[怒者其誰邪]?"

'간상(赶上) > 장자(莊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2편 제물론(齊物論) - 3  (0) 2013.01.06
제2편 제물론(齊物論) - 2  (0) 2013.01.06
제1편 소요유(逍邀遊 ) - 4  (0) 2013.01.06
제1편 소요유(逍邀遊 ) - 3  (0) 2013.01.06
제1편 소요유(逍邀遊 ) - 2  (0) 2013.01.06
:
Posted by 오빠야닷컴
2010. 2. 20. 20:01

성(性)의 한계 - 그 기쁨 간상(赶上)/보충(補充)2010. 2. 20. 20:01

발자국

한계란 명칭은 대개 싫어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반대로 시작할까 합니다.
즉, ‘자유’를 말해보고자 합니다.
자유란 조금 쉬운 느낌이죠. 새처럼 훨훨~ 나는 것 같습니다.
갇혀있는 새장을 없애버리면 어디든 갈 수 있겠지요?

자유를 찾음은 갇힌 것을 없애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디로든 날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갇힌 것을 떨쳐버리는 예를 하나 들기로 하겠습니다.

 

담배로부터 자유를 한번 찾아볼까요?
먼저 담배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을 관찰해 보겠습니다.
누가 자유롭나요? 담배를 피운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아마도 그 사람은 담배를 끊기가 힘들다는 마음을 짐작정도만 할 것 같습니다.
그 보다 더 자유로운 사람도 있습니다.
담배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담배가 뭔지 모르는 두세살된 아이나, 담배를 접해보지 못한 비문명국의 어른이나,

모두 완벽하게 담배로부터는 자유롭습니다.

 

번뇌로부터는 어떻게 자유를 찾겠습니까?
담배로부터의 자유가 힌트가 될 것입니다.
번뇌를 인식하지 못하면, 완전한 자유를 찾을 수 있겠습니다.
비슷한 이름이 있습니다. 백치하고 비슷합니다.
백치가 되어 인식이 없어지는 경지에 이르는 것입니다.
백치하고 붓다는 같은 뜻, 다른 표현에 불과합니다.
앎을 통해서도 백치가 될 수 있습니다.
안다는 것과 모른다는 것은 본래 함께 있었습니다.
'도(道)는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기억나시는지요?

 

미쳤다는 의미가 싫어지는 것은
말과 문자의 좋고 나쁨에 갇혀서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유학이 추구하는 미침을 보겠습니다.
정상인에게서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사랑에 미치기도 합니다. 배움에 미치기도 합니다.
공자께서 '석달동안 고기맛을 잊었다'는 비유와도 연관됩니다.
순간을 집중하게 마음을 붙드는 것이 생기면(미치게 만들면),
다른 것에는 아무 생각도 미치지 않습니다.

 

유가의 선비들이 치열하게 삶을 살았던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현재 이 순간을 지극히 열심히, 집중하여 사는 것,
즉, 현재의 삶을 미치도록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참된 자유로움을 찾아갑니다.
이것이 중용을 실천하고 사는 자유인의 모습입니다.

 

억지로 가는 길일까요?
대학에 가기 위해 시험문제에 몰두하는 것과 같을까요?

욕구를 계산하는 마음에서 생긴 집중이 아닙니다.

그런 것이라면 결코 오래 지속할 수는 없습니다.


성(性)을 따르는 기쁨에 미쳐,

현재의 순간을 열심히 사는 것을, 너무너무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가의 도(道)는 꽉 움켜쥐고 소유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순간을 사랑하면서 평생 나아가는 행위와 함께 있습니다.
그래서 도(道)라는 한자가 우리말의 '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
Posted by 오빠야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