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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革 已日 乃孚 元亨利貞 悔亡
【初九】鞏用黃之革
【六二】已日 乃革之 征 吉 无咎
【九三】征 凶 貞厲 革言三就 有孚
【九四】悔亡 有孚 改命 吉
【九五】大人 虎變 未占 有孚
【上六】君子 豹變 小人 革面 征 凶 居貞 吉

  혁명과 반란은 구별하기 힘든 개념이며, 역사의 평가도 일정하지 못하다. 어떤 시대는 혁명이라고 말하고 어떤 시대는 반란으로 말한다. 왕건과 이성계가 만약 실패하였다면 혁명이 될 수 있을까? 그러나 실패하였지만 전봉준의 농민혁명이라고 한다. '성공'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지만 주역은 성공했기 때문에 혁명이 아니라, 혁명이기에 성공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때가 도래하고 바른 뜻이 있고 민심도 따르기 때문에 반드시 성공하는 것이라 한다.

 

革 已日 乃孚 元亨利貞 悔亡
혁명(革)은 이미 때가 도래하고(已日) 뜻이 있기에(乃孚) 처음부터 끝까지(元亨利貞) 후회가 없는 것이다(悔亡)
  차면 기우는 것이 주역이 말하는 변화의 법칙이요, 때가 도래하였음은 차서 기우는 때가 도래한 것이다. 곧 천명을 얻은 자가 불선(不善)으로 나가가 백성의 신임을 잃어 천명을 잃은 때이다. 대학에서 “위대한 천명을 지키기가 쉽지 않으니 백성의 마음을 얻어야 나라를 얻고 백성의 마음을 잃으면 나라를 잃게 된다”[대학 제10장 치국평천하]하였다.

 

鞏用黃之革
황소의 가죽으로 단단히 묶어야 한다(鞏用黃之革)
  개혁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황소의 가죽처럼 굳세어야 하고, 또한 백성들의 신임을 확고히 얻은 것을 말한다. 어려움을 만나면 곧 포기하거나 현실과 타협하려 하는 약한 마음으로는 개혁을 시작하지 않는 것만 못할 것이다.

 

已日 乃革之 征 吉 无咎
때가 도래하였다면(已日) 개혁하여(乃革之) 나아감(征)은 길(吉)하고 허물이 없다(无咎)
  가장 중요한 것이 개혁은 때가 도래하여야 하는 것이다. 잠용일때 움직이지 마라는 건(乾)괘의 뜻이다. 시기가 맞아야 한다. 일시적인 실정으로 민심이 흔들리는 상태라고 해서 곧 천명이 바뀌지는 않는다. 지나치게 서두는 것은 교만일 따름이다. 개선의 가능성이 없어진 때가 나아가야 할 때이다.

 

征 凶 貞厲 革言三就 有孚
나아감(征)은 일견 흉(凶)하고 끝까지 위태로우니(貞厲) 혁언을 세 번 성취해야만(革言三就) 비로소 신임을 얻는다(有孚)
  혁명이란 곧 백성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그러나 초기에는 난과 쉽게 구별이 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처음에는 힘과 기상으로 부딪혀 나아갈 수 밖에 없어 흉하고 끝까지 위태로움이 따르는 법이다. 45번째 췌(萃)괘에서 사람을 모을 때는 큰 희생양(大牲)과 호통(號)으로 시작하는 것이 순서라 했다. 그 이후에 신념을 펼치고 신임을 얻어야 한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개혁으로 나아가는 초기는 신념이 아니라 힘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한다. 혁언을 세 번 성취하는 것은 공언한 것을 힘과 기상으로 성취하는 것을 말한다.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어야 하늘의 뜻을 받은 것으로 여겨 비로소 신임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悔亡 有孚 改命 吉
후회가 없으리니(悔亡) 신임이 있다면(有孚) 천명을 고쳐도(改命) 길(吉)하다.
  혁언을 세 번 성취하고 신임을 얻었다면 곧 천명(天命)을 얻은 것이다. 군주의 시대에는 군주의 지위도 천명(天命)이라 여겼다. 그러나 천명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니 혁언을 세 번 성취하고 신임을 얻었다면 천명을 고쳐도 길하다고 한다. 대학에서도 “천명은 일정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선하면 얻게 되고 선하지 않으면 잃게 됨을 말한다.”[대학 제10장 치국평천하]고 하였다.

 

大人 虎變 未占 有孚
대인(大人)이 호랑이처럼 변하면(虎變) 점을 치지 아니하여도(未占) 신임을 얻을 수 있다(有孚)

  대인은 선을 추구하는 사람이며, 덕으로 존경을 받고 있던 인물이니 유순하던 그 사람이 호랑이처럼 변하여 나아가는 것이다. 아래 효의 표범과는 다른 나아감이다. 점을 칠 필요도 없다는 것은 아무런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뜻이다. 절대적으로 신임을 얻고 천명을 받을 것이다.

 

君子 豹變 小人 革面 征 凶 居貞 吉
군자(君子)가 표범처럼 변하여(豹變) 소인(小人)이 두려움에 낯을 바꾸어(革面) 나아가면(征) 흉(凶)하니 끝까지 멈추는 것(居貞)이 길(吉)하다.
  대인은 표범으로는 변할 수는 없기에 대인이며, 군자는 표범으로도 변할 수도 있기에 군자이다. 호랑이는 사람들이 저절로 받들고 따르기에 신임을 얻은 것이지만, 표범은 위협하고 두려움을 느끼게 하여 강제로 따르게 하는 것을 말한다. 덕으로 감화시키는 것과 힘으로 굽히게 만드는 것과의 차이이다. 소인들도 두려움으로 그렇게 나아가는 길은 반란을 따르는 것이니 끝까지 따르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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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離 利貞 亨 畜牝牛 吉
【初九】履錯然 敬之 无咎
【六二】黃離 元吉
【九三】日昃之離 不鼓缶而歌 則大耋之嗟 凶
【九四】突如其來如 焚如 死如 棄如
【六五】出涕沱若 戚嗟若 吉
【上九】王用出征 有嘉 折首 獲匪其醜 无咎

  리(離)괘는 아래 위로 해가 두 개인 괘이다. 이미 해가 있으면 다시 해를 만들지 않는 것이 하늘의 뜻이다. 리(離)괘는 해가 있음에도 하나의 해를 더 만드는 것이니, 곧 바람직하지 않은 힘의 행사이다. 새로운 해는 기존의 해가 중천에 있을 때 세상에 나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해가 저물어 없어지고 난 후에 나서야 하는 것이 순리이다. 그 시기를 지키지 못한 것이니 옳지 못한 침략을 상징한다.

 

離 利貞亨 畜牝牛 吉
침략(離)은 결실을 얻고 끝을 낸 후에(利貞) 성장시키겠다는 것이나(亨) 순한 암소를 기르듯(畜牝牛) 순응해야 길(吉)하다.
  주역이 말하는 순탄한 변화의 법칙은 씨(元)가 자라서(亨) 열매를 맺고(利) 소멸하는(貞) 원형리정(元亨利貞)의 순서를 따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침략은 엎어버린 후에(利貞) 성장(亨)을 도모하는 것을 말함이니 천도(天道)를 벗어난 것이며 섭리에 따르지 않는 조급함이다. 곧 해가 있는데 해가 나서려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어긋남을 도모하지 말고 순한 암소를 기르듯 해야만 길할 것이다. 암소는 곤(坤)괘의 암말과 마찬가지로 유순함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유순하지 못하면 전쟁이 있고 파괴가 있고 이별이 있게 된다.


履錯然 敬之 无咎
어지러운 발소리가 들리면(履錯然) 그것을 공경해야(敬之) 허물이 없다(无咎)

  이착연(履錯然)은 발소리가 어지럽다는 말이다. 어지러운 발소리는 군사들이 훈련을 하는 소리이다. 급박하게 뒤섞인 발소리를 들으면, 보지 않아도 군사의 훈련임을 안다. 비가 오기 전에는 청개구리가 울고, 제비가 낮게 나는 등등의 비의 징조가 있고, 태풍이 불기 전에는 별이 지나치게 맑거나 해륙풍이 무너지는 징조가 나타난다. 중용에도 “나라와 집안이 흥하려 하면 반드시 상서로운 조짐이 있고, 나라와 집안이 망하려 하면 반드시 요사스러운 조짐이 있다”[중용 24장]고 하였다. 어지러운 군사의 발소리는 침략의 징조이다.

 

黃離 元吉
중용의 덕으로 침략을 대하면(黃離) 근원적으로 길하다(元吉)
  문종이 김종서에게 ‘중정(中正)’에 관해서 물으니, "중(中)이라는 것은 치우치지도 않고 기울지도 않으며 지나침도 없고 미치지 못함도 없는 것을 뜻합니다. 정(正)이란 것은 지극히 공평하여 조금도 사심이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정(正) 또한 중(中)입니다" 즉, 바른 것과 바르지 않은 것의 중간이 아니라, 바른 것이 중(中)이라는 말이다. 중은 또한 하늘의 도를 따르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중(中)으로 침략을 대하는 것은 어떠한 것일까? 해가 중천에 있는데 다른 해를 만들려는 것이라면 응징해야 하고, 이미 기운 해라면 물러나는 것이 곧 중(中)을 따르는 것일 게다. 신라의 마지막 경순왕이 나라가 희망이 없음을 알고 스스로 고려에게 나라를 바쳤으니, 그 또한 중용으로 침략을 대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日昃之離 不鼓缶而歌 則大耋之嗟 凶
해가 기울면 침략을 대비해야 하는데(日昃之離) 북을 쳐서 경계하지 않고 노래를 부르니(不鼓缶而歌) 경험 많고 혜안이 있는 노인네가 탄식하게 되어(則大耋之嗟) 흉(凶)하다.
  해가 차서 기울고, 기존의 해가 지고 새로운 해가 등장하게 되는 변화가 이어지게 하는 것이 하늘의 섭리이다. 해와 완전히 사라지고 새로운 해가 떠 오르는 순조로운 순환이 이뤄지면 좋겠지만,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서부터 조급하게 그 틈을 노리는 침략의 위험이 시작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침략을 대비하지 않고 노래를 부르고 즐거워만 하고 있으니 경험 많은 노인네가 어찌 탄식이 없겠는가? 공자께서 “사람이 멀리 내다보고 고민하지 않으면 반드시 근심이 가까운 날 생긴다”[논어 제15편 위령공 제12장]고 하셨다.

 

突如其來如 焚如 死如 棄如
침략은 갑작스레 이뤄져(突如其來如) 불태워버리고(焚如) 죽여버리고(死如) 내다버리고(棄如) 한다.

  평화롭던 마을이 쑥대밭이 되는 것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서서히 받아들일 수 있는 속도와 힘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공든 탑은 오랜 시간이지만 그 무너지는 것은 일순간이다. 급작스럽게 불타고 죽고 버려지게 된다.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出涕沱若 戚嗟若 吉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고(出涕沱若) 탄식이 쏟아져 나오니(戚嗟若) 길(吉)하다
.
  눈물이 비오듯 하고  탄식소리가 끊임없는 까닭은 살아남은 사람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니 길하다. 불타고 죽고 버려져도 끝장이 난 것이 아니니, 침략자가 순리를 따르지 않은 까닭이다. 해가 지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해를 만들려고 한 침략세력의 과욕 때문이니 천명(天命)이 침략자들에게 있지 않은 까닭이다.

 

王用出征 有嘉 折首 獲匪其醜 无咎
왕이 출정하여(王用出征) 기쁨을 줄 것이다(有嘉). 우두머리는 참수(折首)해도 그 부하들은 죽이지 않아야(獲匪其醜) 허물이 없다(无咎).
  왕이 출정을 하는 것은 바른 천명(天命)을 따르는 것이다. 왕이 사람들을 모아 반격을 하여 승전할 것이나 다만 우두머리는 참수해도 그 부하들은 죽이지 않아야 한다. 주역의 이 가르침에 의하면 일본의 위정자들은 미워해도 일본 국민을 미워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 된다. 백성들은 모두 같은 힘없고 가엾은 생명일 뿐이다. 참수하고 미워해야 할 이는 그들을 이용한 우두머리 계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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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臨 元亨利貞 至于八月 有凶
【初九】咸臨 貞吉
【九二】咸臨 吉 无不利
【六三】甘臨 无攸利 既憂之 无咎
【六四】至臨 无咎
【六五】知臨 大君之宜 吉
【上六】敦臨 吉 无咎

  임(臨)괘는 다스림을 뜻하는 말이지만, 원형리정(元亨利貞)과 관계하는 ‘하늘의 다스림’을 말하니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어쩔 수 없는 숙명(宿命)이다. 순탄하게 원형리정의 변화의 과정을 겪으려면 때가 맞아야 하고(乾) 자리가 맞아야 하고(坤) 사람을 만나야 하고(屯) 노력해야 하지만(蒙) 그것만으로 순탄한 원형리정의 변화를 겪을 수는 없다.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기도 하고, 교통사고를 만나기도 하여 원형리정의 순탄한 변화를 겪을 수 없게 되기도 하니, 이러한 인간이 장악할 수 없는 우연성에 의해 지배되는 것을 숙명이라고 한다. 『중용』의 ‘비록 성인이라 하더라도 알지 못하는 부분이 있으며, 하늘과 땅처럼 위대한 존재에게도 사람들이 서운해 할 일이 있다’[중용 제12장]는 것이다.

 

臨 元亨利貞 至于八月 有凶
숙명(臨) 역시 변화의 순리(元亨利貞)를 좌우한다 그러나 8월에 이르면(至于八月) 흉함이 있다(有凶)
  씨로부터 시작해(元) 성장하고(亨) 열매를 맺고(利) 사라지게 되는(貞) 순탄한 변화의 과정을 겪으려면 하늘의 뜻이 맞아야 한다. 8월은 더위의 정점(양기의 최고점)을 지나는 시간이다. 즉, 숙명에 대해 극단으로 치우쳐 받아들이면 흉하다. 양의 극단은 분노로 폭발하는 것이며, 음의 극단은 체념하고 삶을 포기하는 것이다. 하늘을 원망하지 않아야 한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봉황이 날아오지 않고 황하에 상서로운 그림이 나오지 않으니 나로서는 어쩔 수가 없구나”[논어 제9편 자한 제9장]라고 아쉬워 하셨고, 은자(隱者)들로부터 ‘불가능한 것을 하려고 하는 자’라고 비웃음을 샀지만, 최선을 다해서 사명을 다 하셨다.

 

咸臨 貞吉
마음으로 교감하여 숙명(咸臨)을 맞음은 끝까지 길하다(貞吉).
  유전적으로 장애를 갖고 태어나기도 하고, 고아가 되기도 하고, 강도를 만나기도 하고, 교통사고가 나기도 하지만 그 어쩔 수 없는 숙명을 바라보는 마음은 원망하는 마음이 아니라 교감하는 마음이어야 길하다. 하늘의 뜻을 알 수는 없지만 마음을 다하여 숙명이라는 손님을 거부하지 않으니 곧 어렵고 힘들어도 주어진 삶을 사랑하는 자세를 견지하라는 말이다.

 

咸臨 吉 无不利
마음을 다하여 숙명(咸臨)을 따름은 길(吉)할 뿐 아니라, 이롭지 않음이 없다(无不利).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는 사람도 있고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는 사람도 있고, 아프리카에서 태어나는 사람도 있고 미국에서 태어나는 사람도 있고, 조선시대에 태어나는 사람이 있고 현세에 태어나는 사람도 있어 사람마다 어찌할 수 없는 정해진 숙명적인 삶을 맞이하게 된다. 아무리 싫어도 나의 부모가 아니라고 할 수 없으며, 남자가 아니라고 할 수 없으며, 흑인이 백인이 될 수는 없다.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을 한탄하고 원망하여 벗어나고 싶어 몸부림을 치는 것이 아니라, 그 정해진 숙명 속에서의 '나'를 사랑하고 나의 주위를 보듬어야 한다는 주역의 가르침이다. 공자께서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탓하지 않으며 아래로 인간사를 배워 위로 천리를 깨달았다”[논어 제14편 헌문 제35장]고 하셨다.

 

甘臨 无攸利 既憂之 无咎
달콤한 숙명(甘臨)을 꿈꾸면 유리할 것이 없으나(无攸利) 뉘우치고 근심함이 있다면(既憂之) 허물이 없다(无咎)
  나의 부모가 재벌이라면 나에게 로또가 당첨된다면 하는 달콤한 상상은 현재의 부모님을 원망하게 하고, 하늘을 원망하게 한다. 그러한 달콤한 숙명을 꿈꾸면 유리할 것이 없다. 하지만, 과거에 그러했더라도 깨달음이 있어 뉘우치고 반성을 하였다면 허물이 없다. 주역에서 ‘고치면 그것으로 좋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효사가 참으로 많다. 공자 말씀하시길 "잘못을 하고서도 고치지 않으려는 것을 잘못이라고 한다"[논어 위령공 제15편 제30장]고 하셨으니, 고치지 않고 궁색한 변명을 찾고 잘못을 합리화 시키려는 것이 문제이다.

 

至臨 无咎
최선을 다해서 숙명(至臨)에 순응함은 허물이 없다(无咎).
  인생 일체가 ‘하늘의 뜻'이라고 ‘숙명'이라고 핑계를 삼고 수동적으로 살려고 하는 나약함을 가져서는 안되며, 반대로 좋은 숙명에 처한 이도 거만하고 교만해서는 안된다. 하늘이 그렇게 다스린(臨) 이유를 공경하는 마음으로 다가가는(至) 것이 지림이니, 원망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편안히 받아들이는 것이 허물이 없다. 가난이 싫다고 가족과 단절하여 뛰쳐 나가고, 병든 부모를 부양하지 않고 버리는 사람이 문제이다.

 

知臨 大君之宜 吉
숙명을 아는 것은(知臨) 임금의 뜻(大君之宜)이므로 길(吉)하다.

  숙명의 진의를 깨달으면 사명(하늘이 맡긴 임무)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주어진 숙명적인 상황을 한탄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하늘의 뜻을 헤아려 사명을 다하여 조화를 이루는 세상은 임금이 바라는 세상의 모습이니 길하다.

 

敦臨 吉 无咎
절도 있게 숙명을 따르니(敦臨) 길(吉)하고 허물이 없다(无咎).
  세상만사가 모두 숙명으로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태어난 신체와 태어난 고향은 바꿀 수 없는 것이지만, 대부분의 삶은 사람의 노력으로 개척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다. 『중용』에 “남이 한 번에 그리하면 나는 백 번 할 것이며 남이 열 번에 그리하면 나는 천 번을 하면 된다”[중용 제20장]고 하였으니, 숙명은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 발전적인 미래를 도모하는 것이 곧 숙명에 대해서 절도를 지키는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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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豫 利 建侯行師
【初六】鳴豫 凶
【六二】介于石 不終日 貞吉
【六三】盱豫 悔 遲 有悔
【九四】由豫 大有得 勿疑朋盍簪
【六五】貞疾 恒 不死
【上六】冥豫 成 有渝 无咎

  예(豫)는 코끼리(象)가 자신이 죽을 때를 알고 무덤을 찾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형성문자이다. 일반적으로 미래를 미리 아는 것을 뜻하지만, 주역에서의 예(豫)괘는 ‘죽을 때와 자리를 아는 것’을 의미하니, 곧 하늘이 생명을 세상으로 보내어 맡긴 임무를 뜻한다. 필부필부(匹夫匹婦)하는 소인의 사명은 만나서 아이 낳고 평범하게 먹고 살다가 생을 마감하는 것이고, 대인의 사명은 전체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하늘이 보통사람보다 뛰어난 재능을 부여한 이유를 그 재능을 사용해 공공을 위해 봉사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였으나 현대에는 뛰어난 재능과 노력으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라고 한다.


豫 利 建侯行師
사명(豫)은 결실(利)을 맺는 것이니 제후를 세우거나 군사를 일으키는(建侯行師) 것처럼 큰 일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
  주나라는 천자가 큰 영토를 각 지역별로 제후를 세워 실질적 통치를 맡기고 조근, 군대파견 등의 구속을 통해 충성을 맹세 받는 형태의 통치체제였는데, 훗날 제후들의 세력이 너무 커져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하게 되었다. 여하튼 제후를 세우거나 군사를 일으켜 응징하는 일은 천자만이 할 수 있는 큰 일이다. 예(豫)는 제후를 세우는 것처럼 큰 뜻을 이루어 결실(利)을 맺고자 하는 것을 말한다.

 

鳴豫 凶
사명을 떠벌리면(鳴豫) 흉(凶)하다
.
  삼국지를 보면 유비, 관우, 장비가 어지러운 세상을 구하기 위해 '도원결의'를 한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뜻을 펼치며, 같은 날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같은 날 죽자는 의로운 맹세였다. 그러나 농사꾼 행세를 하기도 하면서 품은 뜻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았다. 유자께서는 “신의는 정의로움에 비추어 이행하는 것이다”[논어 제1편 학이 제13장]고 하셨으니, 곧 정의롭지 않으면 약속을 저버려도 된다는 말씀이셨다.

  유학에서는 꽉 막힌 원칙을 배격했다. 독립투쟁을 하던 의사들께서 동지들을 팔지 않고 “모른다”고 했던 것이 거짓말이라서 부끄러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사명을 숨기는 것도 잘못이 아니다. 잠용일 때 움직이려 해서는 안되니(潛龍勿用) 때가 도래하기 까지 숨죽이고 숨길 수도 있어야 한다.

 

介于石 不終日 貞吉
돌에 새긴 듯(介于石) 굳고 단단하게 맹세를 하고 종일(終日) 멈추지 않으면(不) 마침내 길하다(貞吉)
  때론 숨기고 때론 어려움을 겪더라도 사명을 돌에 새긴 듯 굳고 단단하게 유지를 하면 끝내 좋은 결실을 얻게 된다. 현실이 어려워도 타협하지 않아야 한다. 종일 멈추지 않는다는 것은 건(乾)괘의 ‘종일(終日)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어두움을 경계하는 것(終日乾乾 夕惕若)’과 마찬가지의 의미이다.

 

盱豫 悔 遲 有悔
턱을 치켜 들어야 할 만큼의 분에 넘치는 사명은(盱豫) 뉘우침이 있으리니(悔) 시간만 낭비하며(遲) 후회만 남길 것이다(有悔)
  토끼가 호랑이를 잡아먹으려 해서는 안되니, 하늘이 토끼로 세상에 보내었을 때는 토끼로 살면서 생태계를 유지하고 자연의 조화에 따르라는 것이었다. 하늘이 사람을 분별하여 세상에 보낸 이유도 같은 뜻일 것이니 천명이 다르므로 턱을 치켜들어 분수를 지나치면 후회만 남기게 될 것이라고 한다. 옛 시대는 ‘군주주의’의 시대였고, 그래서 공자께서도 세상을 바로잡고자 하였으나 천자의 지위를 탐내지는 않으셨다.

 

由豫 大有得 勿疑朋盍簪
사명을 다하려 한 까닭에(由豫) 크게 얻는 것이 있었다면(大有得) 도와준 친구를 의심하지 않아야 비녀를 꽂을 수 있다(勿疑朋盍簪).

  여인의 치장은 비녀를 꽂음으로써 완성이 되는 것이니, 도와준 친구를 의심하지 않아야 비로소 정점에 이를 수 있다는 말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신 “얻으려 근심하고 잃을까 근심한다”[논어 제17편 양화 제15장]는 의미이니, 얻고 나서 잃을까 근심하여 도와준 친구까지도 의심하는 것을 경계하는 뜻이다. 건(乾)괘에서 용이 비상하는 전성기가 되었다고 은혜를 잊어버리지 말고 마땅히 은인과 함께 그 전성기를 누리라고 하는 것에 연결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貞疾 恒 不死
마지막에 친구를 의심하게 되는 병이 생기면(貞疾) 계속되어(恒) 그 병통을 죽여 없애지 못하게 된다(不死).
  적과 동지가 하루 아침에 뒤바뀌는 경우를 역사에서 많이 목격하게 된다. 믿음이 사라지면, 부리던 자는 자신도 당하지 않을까 두려워하게 되고, 따르던 자는 토끼를 잡고 나면 사냥개는 주인에게 삶아 먹힌다는 '토사구팽'을 염려하여 두려움에 떨기 마련이니, 그 병통을 없애기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정(貞)은 죽음을 뜻하고 곧음을 뜻하고 완성을 뜻하고 끝을 뜻하기도 하니, 모두 죽음처럼 더 이상 변화의 여지가 없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비녀를 꽂는 마지막(貞)에 생기는 친구에 대한 의심의 본질은 두려움일 것이다. 그렇게 정점에 이르러 생겨난 두려움은 없던 상태로 되돌아 가지 않는 이상 절대로 없앨 수 없는 “잃을까 근심하는 두려움"일 것이다. 

 

冥豫 成 有渝 无咎
어두운 사명(冥豫)이 성공할 수도 있으나(成) 변신을 해야(有渝) 허물이 없다(无咎).

  쿠테타도 때로는 성공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사로운 이익과 영화를 위해 추구한 쿠테타(권력찬탈)라면 성공하여도 잠시일 뿐일 것이다. 공자께서 “사람이라면 마땅히 곧아야 할 것인데, 곧지 않은 사람은 요행히 재난을 면하고 있을 따름이다”[논어 제6편 옹야 제19장]고 하셨다. 바르지 못한 것이 오래 지속될 수는 없는 법이니, 정의가 결국은 승리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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