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離 利貞 亨 畜牝牛 吉
【初九】履錯然 敬之 无咎
【六二】黃離 元吉
【九三】日昃之離 不鼓缶而歌 則大耋之嗟 凶
【九四】突如其來如 焚如 死如 棄如
【六五】出涕沱若 戚嗟若 吉
【上九】王用出征 有嘉 折首 獲匪其醜 无咎

  리(離)괘는 아래 위로 해가 두 개인 괘이다. 이미 해가 있으면 다시 해를 만들지 않는 것이 하늘의 뜻이다. 리(離)괘는 해가 있음에도 하나의 해를 더 만드는 것이니, 곧 바람직하지 않은 힘의 행사이다. 새로운 해는 기존의 해가 중천에 있을 때 세상에 나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해가 저물어 없어지고 난 후에 나서야 하는 것이 순리이다. 그 시기를 지키지 못한 것이니 옳지 못한 침략을 상징한다.

 

離 利貞亨 畜牝牛 吉
침략(離)은 결실을 얻고 끝을 낸 후에(利貞) 성장시키겠다는 것이나(亨) 순한 암소를 기르듯(畜牝牛) 순응해야 길(吉)하다.
  주역이 말하는 순탄한 변화의 법칙은 씨(元)가 자라서(亨) 열매를 맺고(利) 소멸하는(貞) 원형리정(元亨利貞)의 순서를 따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침략은 엎어버린 후에(利貞) 성장(亨)을 도모하는 것을 말함이니 천도(天道)를 벗어난 것이며 섭리에 따르지 않는 조급함이다. 곧 해가 있는데 해가 나서려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어긋남을 도모하지 말고 순한 암소를 기르듯 해야만 길할 것이다. 암소는 곤(坤)괘의 암말과 마찬가지로 유순함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유순하지 못하면 전쟁이 있고 파괴가 있고 이별이 있게 된다.


履錯然 敬之 无咎
어지러운 발소리가 들리면(履錯然) 그것을 공경해야(敬之) 허물이 없다(无咎)

  이착연(履錯然)은 발소리가 어지럽다는 말이다. 어지러운 발소리는 군사들이 훈련을 하는 소리이다. 급박하게 뒤섞인 발소리를 들으면, 보지 않아도 군사의 훈련임을 안다. 비가 오기 전에는 청개구리가 울고, 제비가 낮게 나는 등등의 비의 징조가 있고, 태풍이 불기 전에는 별이 지나치게 맑거나 해륙풍이 무너지는 징조가 나타난다. 중용에도 “나라와 집안이 흥하려 하면 반드시 상서로운 조짐이 있고, 나라와 집안이 망하려 하면 반드시 요사스러운 조짐이 있다”[중용 24장]고 하였다. 어지러운 군사의 발소리는 침략의 징조이다.

 

黃離 元吉
중용의 덕으로 침략을 대하면(黃離) 근원적으로 길하다(元吉)
  문종이 김종서에게 ‘중정(中正)’에 관해서 물으니, "중(中)이라는 것은 치우치지도 않고 기울지도 않으며 지나침도 없고 미치지 못함도 없는 것을 뜻합니다. 정(正)이란 것은 지극히 공평하여 조금도 사심이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정(正) 또한 중(中)입니다" 즉, 바른 것과 바르지 않은 것의 중간이 아니라, 바른 것이 중(中)이라는 말이다. 중은 또한 하늘의 도를 따르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중(中)으로 침략을 대하는 것은 어떠한 것일까? 해가 중천에 있는데 다른 해를 만들려는 것이라면 응징해야 하고, 이미 기운 해라면 물러나는 것이 곧 중(中)을 따르는 것일 게다. 신라의 마지막 경순왕이 나라가 희망이 없음을 알고 스스로 고려에게 나라를 바쳤으니, 그 또한 중용으로 침략을 대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日昃之離 不鼓缶而歌 則大耋之嗟 凶
해가 기울면 침략을 대비해야 하는데(日昃之離) 북을 쳐서 경계하지 않고 노래를 부르니(不鼓缶而歌) 경험 많고 혜안이 있는 노인네가 탄식하게 되어(則大耋之嗟) 흉(凶)하다.
  해가 차서 기울고, 기존의 해가 지고 새로운 해가 등장하게 되는 변화가 이어지게 하는 것이 하늘의 섭리이다. 해와 완전히 사라지고 새로운 해가 떠 오르는 순조로운 순환이 이뤄지면 좋겠지만,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서부터 조급하게 그 틈을 노리는 침략의 위험이 시작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침략을 대비하지 않고 노래를 부르고 즐거워만 하고 있으니 경험 많은 노인네가 어찌 탄식이 없겠는가? 공자께서 “사람이 멀리 내다보고 고민하지 않으면 반드시 근심이 가까운 날 생긴다”[논어 제15편 위령공 제12장]고 하셨다.

 

突如其來如 焚如 死如 棄如
침략은 갑작스레 이뤄져(突如其來如) 불태워버리고(焚如) 죽여버리고(死如) 내다버리고(棄如) 한다.

  평화롭던 마을이 쑥대밭이 되는 것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서서히 받아들일 수 있는 속도와 힘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공든 탑은 오랜 시간이지만 그 무너지는 것은 일순간이다. 급작스럽게 불타고 죽고 버려지게 된다.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出涕沱若 戚嗟若 吉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고(出涕沱若) 탄식이 쏟아져 나오니(戚嗟若) 길(吉)하다
.
  눈물이 비오듯 하고  탄식소리가 끊임없는 까닭은 살아남은 사람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니 길하다. 불타고 죽고 버려져도 끝장이 난 것이 아니니, 침략자가 순리를 따르지 않은 까닭이다. 해가 지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해를 만들려고 한 침략세력의 과욕 때문이니 천명(天命)이 침략자들에게 있지 않은 까닭이다.

 

王用出征 有嘉 折首 獲匪其醜 无咎
왕이 출정하여(王用出征) 기쁨을 줄 것이다(有嘉). 우두머리는 참수(折首)해도 그 부하들은 죽이지 않아야(獲匪其醜) 허물이 없다(无咎).
  왕이 출정을 하는 것은 바른 천명(天命)을 따르는 것이다. 왕이 사람들을 모아 반격을 하여 승전할 것이나 다만 우두머리는 참수해도 그 부하들은 죽이지 않아야 한다. 주역의 이 가르침에 의하면 일본의 위정자들은 미워해도 일본 국민을 미워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 된다. 백성들은 모두 같은 힘없고 가엾은 생명일 뿐이다. 참수하고 미워해야 할 이는 그들을 이용한 우두머리 계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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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빠야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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剝 不利有攸往
【初六】剝床以足 蔑 貞 凶
【六二】剝床以辨 蔑 貞 凶
【六三】剝之 无咎
【六四】剝床以膚 凶
【六五】貫魚 以宮人寵 无不利
【上九】碩果不食 君子得輿 小人剝廬

  박(剝)은 떨어져 나가고 무너지고 파괴되고 박살 나는 것을 뜻한다. 괘를 보면 하나의 양(陽)이 다섯의 음(陰)에 밀려 위에 서 있는 형상이다. 떼를 지어 덮치는 데 당해낼 힘이 없어 쓰러지는 것이 박(剝)괘이다. 대표적으로 중세의 참혹한 ‘마녀사냥’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군중심리를 자극하여 약한 여성을 마녀로 몰아 화형을 시키는 것이 일도 아닌 시대가 있었다. 요즘에 인터넷의 폐단의 하나인 악의적인 글로써 공격하여 여론을 악의적으로 몰아가 떼를 지어 공격을 감행하는 것을 떠올리게 하는 괘이다. 올바름에 의해서가 아니라 약자이기 때문에 힘이 없어 당하게 되는 것이 박(剝)이다. 또한 박(剝)의 파괴는 시간이 지나면 곧 새살이 돋아 지난 일이 되어버리는 수준의 시련정도가 아니다. 팔다리가 잘려나가는 정도의 회복할 수 없는 무너짐이다.

 

剝 不利有攸往
박살이나면(剝) 시간이 지나도(有攸往) 이로울 게 없다(不利)
  ‘시간은 지나가기 마련이다’는 시간의 섭리로 회복할 수 없는 것이 박(剝)괘가 담고 있는 강력한 파괴성이다. 지독한 가난은 상황이 변하면 추억이 될 뿐이다. 그러나 팔다리가 잘려나가면 시간이 지난다고 새로 팔다리가 생겨 회복되지는 않는다.

 

剝床以足 蔑 貞 凶
침상다리만 부서져도(剝床以足) 전체가 궤멸된 것이니(蔑) 끝까지(貞) 흉(凶)하다.
  이렇게 어려운 박(剝)의 시절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가? 침상다리를 내어주고 침상의 상판을 보전하려고 하는 것이 길(吉)할까? 박(剝)괘는 시간이 해결해 주지 못하는 파괴를 뜻하고 힘이 약하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예를 들면, 강력한 급류에 가족이 휩쓸렸고 한 명만 구할 미약한 힘만 가지고 있는 남편이 부인만 구하고 아이들을 포기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리만 부서진 침상이 제 역할을 못하듯, 아이가 그런 사고를 당한 가정이 본래대로 회복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일체이기 때문이다.

 

剝床以辨 蔑 貞 凶
침상의 상판만 부서져도(剝床以辨) 전체가 궤멸된 것이니(蔑) 끝까지(貞) 흉(凶)하다.
  침상의 다리만 부서지는 것과 반대의 상황이다. 아이를 살리고 아내를 포기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으니 그 역시도 흉하다. 삶이 힘들어 자살을 하는 어머니가 어린 아이와 함께 생을 마감하는 뉴스를 어렵게 않게 만날 수 있다. 저 혼자 죽을 것이지 왜 죄없는 아이들까지 함께 데려가느냐고 욕을 하기도 하지만, 전혀 이해 할 수 없는 행동은 아닌 것 같다.

 

剝之 无咎
차라리 모두 부서져야(剝之) 허물이 없다(无咎).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 것,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 하는 것, 그것이 강력한 파괴의 기운인 박(剝)의 시기에 처신하는 조화로운 방법이라고 한다. 처자식이 급류에 휩쓸렸는데 단지 한 명만 구할 힘이 있다면 부인을 구할 것인가? 아이를 구할 것인가? 주역은 부인과 아이를 함께 구하기 위해 애쓰다가 힘이 부족하여 어쩔 수 없다면 함께 죽는 것이 남편의 바른 처신이라고 보는 듯 하다.

 

剝床以膚 凶
침상의 껍데기가 부서졌으니(剝床以膚) 흉(凶)하다
.
  완전히 부서진(剝) 것이 아니라, 침상의 껍데기(膚)를 제외하고는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급류에 휩쓸린 가족의 예를 계속해서 든다면 모두 온전하게 살아 남기는 했으나, 팔을 잃거나 다리를 잃거나 시간이 해결해 주지 못하는 해를 당한 상태로 살아남은 것을 뜻한다.

 

貫魚 以宮人寵 无不利
물고기를 쭉 꿰어놓은 것처럼(貫魚) 궁녀들을 사랑하면(以宮人寵) 이롭지 않음이 없다(无不利)

  박(剝)이라는 시간이 해결해 주지 못하는 파괴를 당하는 이유는 힘이 약하여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하나의 양(陽)이 다섯의 음(陰)을 당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군주는 혼자서도 능히 수십 수백의 궁녀들과 함께 지낼 수 있다. 한 번에 그 많은 궁녀들과 잠자리를 같이 하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를 쭉 꿰어놓은 것처럼 한 번에 한 명씩 상대하기 때문이다. 힘을 분산시킬 수 있으면 나누어 상대하면 이롭지 않음이 없다.

 

碩果不食 君子得輿 小人剝廬
종자를 먹지 않고 남겨둔(碩果不食) 군자는 수레를 얻겠지만(君子得輿) 소인은 오두막마저 깨뜨리게 된다(小人剝廬)
  석과불식(碩果不食)은 이미 고사성어가 된 말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종자는 먹지 않고 남겨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박(剝)의 어려움은 단순한 시련 수준은 아니다. 배고픔은 상황이 바뀌면 지난 일이 되어 버리지만 박(剝)은 끝까지 안고가야 할 상처를 입은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큰 해를 입는 박(剝)의 파괴를 만났어도 종자(씨과실)를 먹어버리면 안 된다고 한다. 박(剝)의 시간도 영원히 계속될 수 없으니 결국은 변하기 마련인 까닭이다. 종자를 남겨두어야 훗날 수레를 가득 채울 수 있는 수확을 기약할 수 있다. 소인은 상황을 절망하여 남겨진 오두막마저 다 부수어 버리고 말 것이니 어찌 안타깝지 않겠는가? ‘모든 것은 극에 이르면 반드시 뒤집힌다’는 물극필반(物極必反)의 가르침을 전하는 효사는 주역에 참으로 많이 등장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고,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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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빠야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