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08

« 2010/08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  
  •  

앞선 글의 문제제기에 '장자'를 등장시킨 것은
장자와 공자를 비교하고자 한 뜻이 아니라,
장자처럼 우화(寓話)적 표현을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두 분이 그렇게 반응하셨을거라 예상할 수는 없으며
제가 의도적으로 지어낸 얘기입니다.

제가 의도하고 있는 답부터 말씀드리면 '⑤번 알수 없다'입니다.

 

중용의 '분별'로부터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중(中)의 사유로 분별한 후에 용(庸)의 조화를 도모합니다.

 

(1) 소녀를 소녀의 마음으로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스스로 울고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실컷 울도록, 자리를 피해주는 것이 중용일 수 있을 것입니다.

위로하지 않으면 자살을 할 사람인데,
나서지 않음은 한 사람을 죽이는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행위만 사람을 죽일 수 있는게 아니라,
불행위도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다.

장자의 말로 위로가 될 사람이면,
장자의 방법도 좋을 것입니다.

공자의 행위로 위로가 될 사람라면,
공자의 방법도 좋을 것입니다.

 

(2) 나의 능력도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말주변이 없어 위로를 해 줄 수 없는데
장자처럼 위로하려 하면 역효과가 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외모가 성추행범처럼 보이는데,
공자처럼 행동하려 하면 역효과가 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3) 의도를 갖고 반응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리저리 견주고 따져서 반응하는 것은 아닙니다.
장자께서는 자연(自然)스럽게 반응하실 것이며,
공자께서는 성(性)이 이끄는 그대로 반응하실 것입니다.
『맹자』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물에 빠질려는 아이가 있다면, 저절로 구하려 뛰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장애를 가져 구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누가 저 아이 좀 살려달라고 저절로 소리를 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계산하고 견주는 마음에서 따르는 행동이 아니라,
저절로 그리되는 것입니다.

 

(4) 중용에 대한 정리

실연당한 소녀에 대한 반응은, 소녀를 헤아리고 나를 헤아려
최선의 조화로운 방법을 찾는다는 것으로 정리하고자 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하는
이 세상에 대한 나의 반응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을 헤아리고, 나를 헤아려 최선의 조화로움을 찾는 것입니다.
찾겠다고 하면서 찾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그리 되는 것입니다.


노장의 표현으로는 무위(無爲)요, 공맹의 표현으로는 유위(有爲)입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무위(無爲)가 아니라,
가식적이고 억지스러운 인위를 버리는 것이 무위입니다.
인위적으로 조작하려는 것이 유위(有爲)가 아니라,
성(性)에 따른 진실됨을 따라 의욕하는 것이 유위입니다.

 

태종대 자살바위에 '다시 한번 생각하라'는 글이 있다고 합니다.
마음을 바꾸어 자살하지 않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고,
다시 한번 더 생각해서 오히려 자살할 수도 있습니다.

 

중용은 어느 때에나 누구에게나 통하는 정답이 아닙니다.
내가 나에게 요구하는 행위의 기준입니다.
'너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답을 찾는 기준이 아니라,
'내가 이렇게 해야 겠다'는 답을 찾는 기준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지 않습니다. 나에게 요구합니다.

 

실연당한 소녀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해야 한다는 정답은 없다는 것이 중용입니다.
보편적 진리가 없다는 것이 중용입니다.
사람은 찍어낸 기계부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직' 사람만이 똑같은 부품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하늘은 비슷한 것을 만들기는 하지만
똑같은 것을 만들어 내지는 못합니다.
그 까닭이 하늘이, 자연이, 사람보다 열등하기 때문일까요?

 

'오직' 사람만이 똑같은 것을 만들어 내려고 합니다.
외모는 누구와 똑같게 성형시켜 달라고 요구하고,
생각은 나와 똑같게 되라며 남을 따르게 하려 합니다.

고정시키지 않는 것이 중용이며,
그래서 변하는 것이 중용이며,
다양한 모습인 것이 중용이며,
생명력을 가진 것이 중용입니다.
변화하고 다양한 다른 것,

그렇지만 함께 하나로 잘 어울리는 것, 그것이 중용입니다.

 

부족하지만, 중용이야기는 이것으로 마무리를 할까 합니다. (__)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오빠야닷컴

TRACKBACK | http://obbaya.com/trackback/149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