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의 상징과 그 의미 방담(放談)/훈수(訓手)2010. 3. 6. 23:37
오늘 3월 6일은 고종께서 태극기를 국기로 선포(1883년 3월 6일-음력 1월 27일)하신 날이기에 그 상징성(사상)에 대해서 조금 설명 해 볼까 합니다. 오른쪽에 게시한 다양한 태극기의 모습을 보면, 이승만 대통령시대에 표준을 정하기 전에는 정형화된 태극기를 사용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주역 사상에서 살펴보면 현행 태극기의 태극과 괘의 배치가 맞지 않는 듯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크게 중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해 논외로 하겠습니다. 그 당시의 사상은 ‘형식’을 중시하지 않았고 ‘실질’을 중시했던 문화라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그 실질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고 싶습니다. 참고로, 공식적인 자료에 대해서는 국기홍보중앙회의 설명을 참고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태극(太極)의 의미는 대단히 철학적이고 심오합니다. 결코 만만한 개념이 아닙니다. 쉽게 설명 할 수 없는 이유는 둘로 나눌 수 있겠지요. ①모르는 것 ②설명하기 힘든 것 그렇게 분류됩니다. 태극(太極)은 두 번째에 속합니다.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이라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복국의 맛'이 어떠한지 말과 글로서 설명하기 힘든 이유로 비유하면 될까요? 맛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어떻게 설명하기가 불가능한 영역입니다.
잡설이 길었습니다. 관념적 사고를 해야한다는 전제를 깔고서 태극(太極)의 개념에 대해 말씀드리려는 까닭이었습니다. 일단 정의부터 하겠습니다. 태극은 "생겨나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 하나만이 아니다"라는 의미로 규정할 수 있습니다.
이 표현은 도(道)를 설명하기 위해서 종종 인용하는 말과 같습니다. 따지고보면 도(道)라는 것이 태극의 개념과 다르지 않기도 하구요. 죄송합니다. 머리가 아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
아담과 이브는 잘 아실테니 비유를 해 보겠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시작은 아담과 이브가 함께 생겨났어야만 가능합니다. 후세 사람들이 이름을 붙여 놓았지만 논리적으로 남자와 여자가 동 시간대에 함께 존재했어야 인류가 시작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유학에서 애초 사람(人)이 둘(二)이었다는 인(仁)의 사상도 이 개념을 품고 있습니다. 어쨌건, 생겨나 존재하게 되는 모든 것은 그 하나만 있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남자와 여자처럼 색계의 시각으로 쉽게 구분할 수 있는 것만 함께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많은 물질계의 현상이 음양으로 구분할 수 있기에 태극을 이해하는 데 도움은 됩니다. 앞서 규정한 정의 '생겨나는 것은 함께 생겨난다'는 의미는 남화경(장자)에 나오는 '방생설'과 같은 의미입니다. 같은 뜻이지만 다른 표현으로 '관계'없이 생겨나는 것은 없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말이 어렵기 때문에 예를 들기로 하겠습니다.
깜깜한 밤에 하늘을 보면 별이 반짝입니다. '와! 별이 있네.' 그렇게 감탄하며 별에 집중하지만, 별이 더 잘 보일 뿐 별은 어두운 공간과 '함께' 있습니다. 더 잘 드러나는 것과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을 함께 볼 수 있음을 관계론적 안목이라고 합니다. 생태계! 자연(自然)은 관계와 관계의 신비로운 조화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더 깊게 나아가면 사람의 가슴속에 생겨나는 무형도 '늘 함께 하나'로 생겨난다는 방생(方生)의 이치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사랑이라는 마음 하나만 단절되어 생겨나지 않습니다. 사랑은 미움과 함께 생겨납니다. 사랑의 크기를 키워보시면 조금 이해를 높일 수 있습니다. 숨어있던 미움이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하나님을 너무 사랑하면 다른 종교인을 죽이고자 합니다. 애인을 너무 사랑하면 애인이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고 싶어집니다. 본래 사랑과 미움은 서로를 양 극단으로 하는 다양한 마음의 '한 덩어리'였고, 생겨날 때 함께 생겨났던 녀석입니다. 단지 극단으로 이르기 전에는 함께 생겼음을 느끼기 힘들죠.
쾌락이라는 녀석도 살펴 보겠습니다. 쾌락이라는 놈, 하나 생겨난 줄 알지만 쾌락은 고통과 함께 생겨납니다. 고통이라는 놈도 마찬가지죠. 고통은 쾌락과 함께 생겨납니다. 마찬가지로 크기를 키워보면 좀 이해가 됩니다. 고통의 크기를 키워보면 숨어있던 쾌락이 나타납니다. 반대로 쾌락의 크기를 키워보면 숨어있던 고통이 나타납니다. 고통과 쾌락도 서로를 양 극단으로 하는 다양한 느낌의 '한 덩어리'였고, 함께 생겨났던 것입니다.
더 깊게 언급하는 것은 예(禮)에 어긋나겠지요? 이 정도에서 태극의 뜻을 정의하겠습니다. 우리 태극기의 태극이 음양으로 나눠 있습니다. 그것은 극단과 극단을 기준으로 하여 '함께 생겨나는 일체'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음양을 극단으로 하는 경계선이 물결임을 유념하시면 좋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물결때문에 예를 조금 더 들겠습니다. 더 잘 드러나는 것과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을 함께 볼 수 있는 안목을 다시 한 번 더 강조하고자 하는 뜻입니다.
여름으로 대표되는 '더위'와 겨울로 대표되는 '추위'는 달리 떨어져 있는 별개가 아니라, 함께 생겨나 함께 있습니다. 여름에는 더위만 있다고 느끼지만, 더위를 억제하고 있는 추위가 함께 있습니다. 추위가 없다면 모두 타 죽겠지요. 겨울에는 추위만 있는 줄 알지만, 추위를 억제하고 있는 더위도 함께 있습니다. 더위가 없다면 모두 얼어 죽겠지요. 더위가 기운이 더 강하여 추위를 간과하고, 추위가 더 강하여 더위의 기운을 못 느끼기에 함께 있음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할 뿐입니다. 그래서 진실로 함께 있더라도 더 잘 드러나는 것이 있음을 '물결이 치듯 오고가는 흐름'으로 우리 태극이 표현했습니다.
형이상학적인 얘기라서 더 길게 말하면 돌을 맞을지 모르겠네요. ^^; 굳이 이렇게 복잡한 배경을 깔고 얘기했던 까닭은 아래 기술하는 이 의미를 조금 더 전달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우리 조상님들은 '함께 하나다'는 이 태극(太極)의 의미를 체득하셨습니다. 그래서 행복이 닥치거나 불행이 닥쳐도 과하게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생겨난 것은 행복 하나만이 아니기에 행복에 취하지 않았고, 생겨난 것은 불행 하나만이 아니기에 불행에 노하지도 않았습니다. 태극의 물결처럼 순환하리라는 진리를 알았고, 어떤 하나가 더 잘 드러나는 때를 만났을 뿐이라 여겼습니다. 힘들 때 돕고 좋을 때 나누며 상부상조하며 지내온 전통은 '너'가 '나'와 다르지 않다는 '행복'과 '불행'이 다르지 않다는 태극(太極)사상의 발현입니다.
이상으로 태극의 개념을 간단(?)히 설명드렸습니다. 선명하게 이해되지 않으셔도 '모든 것은 관계적이며, 함께 하나이다'는 그 느낌이 '태극'이라는 정도는 기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건곤감리의 4괘는 그림으로 설명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현행 태극기 제작도와는 다르지만, 설명을 위한 그림임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은 ‘함께 하나로 일체이다’는 태극의 사상을 바탕으로
천지창조의 주요한 4가지 요소, 즉 하늘, 땅, 불, 물을 표현한 것입니다.
작대기 하나(-)가 양을 의미하고, 작대기 두개(- -)가 음을 의미합니다.
추측건대, 순양의 기운을 받아 하늘이 만들어지고 순음의 기운을 받아 땅이 만들어지는 관계도를 채택한 것 같습니다.
주역 8괘도와 비교하면 ‘음양조화’를 지향하는 의미에서는 반대로 괘가 들어가야 더 어울려 보이는데요. 제가 모르는 깊은 뜻이 있나 봅니다. 태극기의 표준을 정할 때 많이 검토하고 연구하였겠지요. 그리고 태극이 위 그림에서 45도 더 기울게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