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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말씀하셨네 [子曰:]
그 행위(현재)를 보고 [視其所以] 
동기(과거)를 살펴보고 [觀其所由] 
바램(미래)을 통찰해라 [察其所安] 
어찌 사람을 헤아리지 못하겠는가 [人焉廋哉]
어찌 사람을 헤아리지 못하겠는가 [人焉廋哉]

 

  인(仁)은 다양하게 정의하며 그 개념 논쟁도 많지만, 정서를 중시하는 측면에서 ‘참된 사랑’이라고 쉽게 정의하기도 한다. 그 뜻을 조금 더 풀어서 ‘남의 마음을 나의 마음으로 헤아려 관계함’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본래 자신의 속마음도 정확히 몰라서, 왜 내가 이러는지 이상하게 여기기도 하는데, 어찌 남의 속마음을 헤아린다는 말일까? 그것에 대한 답이 되는 장이기도 하다.

  ‘다름의 분별후 조화’를 핵심으로 하는 중용철학은 한계와 가능 역시 마찬가지로 분별한 후 조화를 도모한다. 사람은 날 수 없다(한계). 사람은 도구를 만들 수 있다(가능). 그래서 스스로는 날 수 없지만 비행기를 만들면 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불가능을 가능과 조화를 이루려는 것이 인위(人爲)라는 측면인데, 이러한 관념은 무위(無爲)를 주장하는 노장사상의 후학들에게 집중공격을 받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유학에서 판단하는 사람이 사람의 속마음까지 안다는 것은 불가능한 한계이다. 사람에게 가능한 것은 짐작이다. 그래서 조화를 도모하여, 최대한 짐작하는 것으로 나아가는 것이 이 장에서 말하는 ‘헤아림’이다. 최대한의 짐작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상대방의 과거부터 열심히 살펴주려는 노력이다.

  과거(동기)는 현재와 미래를 이끄는 힘이 있다. 담배를 처음 피우고 난 후, 나쁜일을 하고 난 후, 손찌검을 하고 난 후, 그 이후에 그 행위가 보다 수월하게 행해질 가능성이 있는 것은 과거의 경험은 현재와 미래로 연결시키는 힘을 가지기 때문이다. 물론 좋지 못한 일 뿐 아니라 좋은 일도 그러하다. 그래서 처음이 가장 어렵다고 한다. 두번부터는 쉬워진다. 이 과거(동기)를 헤아린다는 것은, 그렇게 습관화되어 나와 경험이 다른 까닭에 나와 생각과 취향이 다를 수도 있겠다는 것을 이해하려는 것이다.

  미국인이기에 마늘냄새가 역겨울 수 있고, 먹기 싫어 하겠다는 짐작을 우선 하는 것은 내가 그의 마음을 완전히 알아서가 아니라, 그가 지내온 과거(동기)를 추측하여 나와 다를 수도 있겠다는 배려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스테이크를 권해야 하나? 대화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자란 미국인일 수도 있고, 마늘을 경험하기 위해 한국에 왔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의사를 확인해서 마늘을 먹고 싶다고 하면 그 말을 완전히 믿을 수 있나? 권하는 여인이 미인이라 먹고 싶은 척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유학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완전히 알아내는 것’이 아니다. 그건 불가능하다고 본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에 무게를 둔다. 이 세상이 모두 착한 사람만 살 수 있을까? 그건 불가능하다는 것이 유학의 사유이다. 다만 최선을 다하여 노력한다는 것이다. 논어 후반부 18편에 많이 나오는 공자에게 ‘불가능임을 알면서도 하려는 자’라는 은자들의 조롱을 제자들이 논어에 꺼리낌없이 실어놓은 것도 그 때문이다.

  유학은 나타난 결과가 아니라 최선을 다하려는 ‘실천행위’에 의의를 둔다. 사람은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할 줄 아는 전지전능한 신이 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공자는 인간이 할 수 없는 신비로운 것을 보여준 것이 아니었다. 그가 지동설을 알았던 것도 자동차를 발명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는 그의 시대를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았던 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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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빠야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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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고 먹지 않는 사람이 없는데 [人莫不飮食也]
맛을 아는 사람이 드물구나 [鮮能知味也]

중용 제4장에 나오는 공자 말씀입니다.

그래서 밥먹는 중용을 한번 생각해 볼까 합니다.


  왜 밥을 먹어야만 하나요? 그건 내가 정한 것이 아닙니다. 하늘이 그렇게 하도록 해 놓았습니다. 그 순리를 따르지 않으면 배가 고픈 고통을 주어 결국은 먹도록 합니다. 짜증나고 화나고 미칠것 같을 수 있습니다. 하늘이 나를 구속하니까요. 울면서 그 구속에 따를 수 밖에 없겠지만, 남는 것은 고통입니까? 기쁨입니까? 천도를 따르는 것, 곧 정해준 성(性)을 따르는 것은 기쁨입니다.

  왜 변을 누어야만 하나요? 그건 내가 정한 것이 아닙니다. 하늘이 그렇게 하도록 해 놓았습니다. 그 순리를 따르지 않으면 고통을 주어 결국 화장실로 향하도록 합니다. 짜증나고 화나고 미칠 것 같을 수 있습니다. 하늘이 나를 구속하니까요. 울면서 그 구속을 따를 수 밖에 없겠지만, 남는 것은 고통입니까? 기쁨입니까? 천도를 따르는 것, 곧 정해준 성(性)을 따르는 것은 기쁨입니다.

 

  성(性)을 따르는 것이 기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밥을 먹어 기쁨을 찾기 위해 훔쳐옵니다. 변을 누어 기쁨을 찾기 위해 화장실에 있는 놈을 끌어냅니다. 왜요? 천도를 따르는 것은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천도를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성(性)을 따름을 고집함으로써 성(性)을 따르지 못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나와 너는 다른가요? 도(道)의 정의를 연결시켜보겠습니다. 나와 너는 ‘떨어 뜨릴 수 없는 것’입니다.
태초이래로 '너'가 없는 '나'만 존재할 수 있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내가 천도를 따라 기쁘고, 너도 천도를 따라 기쁘고, 그럼으로써 함께 즐거움을 추구해야 합니다.
논어 첫장의 가르침’을 통해 연결해보시면서 그림을 그려보시기 바랍니다.

 

이제 '맛을 안다는 것'으로 넘어오겠습니다.

맛이란 것은 주관입니까? 객관입니까?
사람마다 달리 느끼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똑같을 수 없습니다.
살던 지역, 문화, 먹어왔던 음식 등등에 따라서 모두가 다릅니다. 
나에게도 언제나 같지 않습니다. 배가 고플 때, 배가 부를 때, 기분 좋을 때, 오랫만에 먹을 때, 언제나 틀립니다.

 

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사람의 갇힌 머리는 맛을 일반화시키려 하고 객관화 시키려 합니다.
내가 맛있다고 느낀 음식을 상대가 맛있다고 하지 않으면 화를 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른 것이 당연한 것인데도, 반드시 같아야 한다고 고집하는 경우가 사실은 너무 많습니다.

‘안다는 것’도 그렇습니다. 사람이 똑같이 알 수가 없습니다. 모든 것을 알 수도 없습니다.

더 많이 아는 것도 있고 적게 아는 것도 있고, 사람마다 모두 틀린게 정상입니다.

엄친아(엄마친구의아들) 보다 못한 아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못나게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나와 똑같을 수 있는 사람은 인류가 태어난 이래로 아무도 없었습니다.

잘나고 못난게 아니라 다른 것입니다.

 

맛을 안다는 것은 사람마다, 때마다 ‘다르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다르다는 분별 이후에는 공자께서 말씀하신 '화이부동(和而不同)'의 가르침으로 옮겨와야 합니다.
“다르다는 것을 분별하여 조화를 이룰려고 하는 것이지, 같게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군주의 도(道)가 우월하고, 남편의 도(道)가 우월하고, 군자의 도(道)가 우월한 것이 아닙니다.

하늘이 만든 것은 우위가 아니라 다름입니다.
우위는 사람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논어 제11편 선진 제15장을 통해서, 유학의 공경을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공자께서 "유(由)는 어찌하여 내 집에서 비파를 타느냐?"
이 말에 다른 제자들이 자로를 공경하지 않았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유(由)의 성취는 대청에 올랐고, 방안에 들어오지 못했을 뿐이니라”

자로는 공자에 9살 적은 나이 많은 맏형입니다.
그런데도, 한소리 들었다고 까마득한 학생들이 우습게 대하기도 합니다.
보다 못한 공자께서 조정에 나섭니다.
형편 없어서가 아니라, 대청에서 방안으로 들어오게 하려했던 것이니, 너무 그러지들 말라고 합니다.

 

자로가 나이를 내세우며 호통을 치고 복종시켜야 정상이지 않을까요?

공자께서 다른 제자들을 혼내줘야 정상이지 않을까요? 
유학에서의 분별은 '복종' 시키려는 것이 아닙니다.
나이, 성별, 지위 등등의 분별은 언제나 '조화'를 향해 지향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오빠야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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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2. 20. 19:11

유학의 상호관계성 간상(赶上)/보충(補充)2010. 2. 20. 19:11

논어 첫장을 한번 보겠습니다.

"(사람의 도리를) 배워서 수시로 따라해보면 어찌 기쁨이 없겠는가? (알아주는 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도 찾아주는 벗 있으면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원망이 생길리 없으니 또한 군자이지않겠는가?"

 

① 나의 기쁨

② 더불어 나누는 즐거움

③ 자존을 잃지 않는 나

 

인(仁)으로 대입해 보겠습니다. 인(仁)을 행하는 것은 나의 기쁨입니다. 더불어 함께 즐거우면 좋지만, 설령 그렇지 못해도 나의 기쁨이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의(義)로써 대입해 보겠습니다. 의로움을 행하는 것은 나의 기쁨입니다. 알아주면 즐거움을 나누지만, 알아주지 못해도 아무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예(禮)로써 대입해 보겠습니다. 예를 행하는 것은 나의 기쁨입니다. 호응해 주면 함께 즐겁지만, 알아주지 않는다고 고개를 더 숙이지도 미워하지도 않습니다.

 

효도, 공경, 남편의 도리, 아내의 도리, 자식의 도리모두모두 같은 구조로 대입하시면 될 것입니다.

 

자식의 도리는 스스로의 기쁨입니다. 신하의 도리도 스스로의 기쁨입니다. 장자의 비유가 부분적으는 참 적절한 것 같습니다.

 

신체의 백개의 뼈마디와 오장육부를 통틀어 소중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우열은 없습니다. 다만, 다를 뿐입니다. 다르기에 각자 다른 역할을 합니다.

위가 잘 움직이면 대장이 잘 이어받아 순조롭게 이어주지만, 위가 잘 소화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로 대장은 맡은 역할에 따라 최선으로 움직입니다.

 

그림그리기가 더 어렵네요. ㅠ.ㅠ

회색사람, 검은색 사람, 노란색 사람 세 종류가 있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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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人 利女貞
【初九】閑有家 悔亡
【六二】无攸遂 在中饋 貞吉
【九三】家人嗃嗃 悔厲 吉 婦子 嘻嘻 終吝
【六四】富家 大吉
【九五】王假有家 勿恤 吉
【上九】有孚 威如 終吉

  과거에는 여성과 남성을 나누어 태어나게 하고, 각기 다른 신체적 능력을 준 것을 하늘이 다른 역할을 맡기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한 사람마다 역할이 다르다는 것이 소위 명분론(名分論)의 근원이다. 군주는 군주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답고 남편은 남편답고 부인은 부인답게 이름으로 구분된 그 역할을 다 하여 조화를 이루는 세상을 바람직한 세상이라 여겼다. 그래서 집안일은 여성의 권리이자 의무로 생각하였다.

 

家人 利女貞
집안을 이끄는 사람(家人)은 결실기와 마감기 사이에 있는 여성이다(利女貞).
  남자는 바깥일에 힘쓰고 집안일은 여성이 힘쓰는 남녀 역할분담의 사회가 고대가 지향한 사회였으니, 서로가 맡은 역할에 있어서는 그 주도권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남편이 밖에서 벌이는 사업을 부인이 주도하려는 것도 명을 어긴 것이며, 남편이 집안일을 주도하려는 것도 명(命)을 어기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역사에서는 남편이 어디서나 제왕으로 군림하려 했던 시절도 있었다. 결실기와 마감기 사이의 여성인 까닭은 며느리와 시어머니와의 여성간 역할 분담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閑有家 悔亡
집안을 잘 단속해야(閑有家) 후회가 없다(悔亡)
  집안을 잘 단속하는 것은 살림을 잘 단속하는 것과 자녀를 잘 단속하는 것 등 집안내의 중요한 일들을 잘 단속하고 관리하여 남편이 집안일을 걱정하고 근심하지 않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여성을 차별하여 가정이라는 울타리 내로 가두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성별에 따라 역할분담을 하여 조화로움을 이루고자 한 명분론의 사회를 지향했던 까닭이다.

 

无攸遂 在中饋 貞吉
나아가 벌어오는 것이 없어도(无攸遂) 중용의 덕으로 먹여주면(在中饋) 끝까지 길하다(貞吉)
  중용은 곧 좌로도 우로도 기울지 않고 바로 서 있는 것이다. 남편이 벌어오지 않으면 먹여주지 않는 ‘GIVE AND TAKE’식의 단순한 중간이 중용이 아니다. 남편이 남편의 도리를 하는가에 맞추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도리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 중용이다. 물론 반대로 여인이 집안을 잘 단속하지 못하더라도 남편이 남편의 도리를 저버려서도 아니 된다.

 

家人嗃嗃 悔厲 吉 婦子 嘻嘻 終吝
여인이 가혹하고 냉혹하게 단속하면(家人嗃嗃) 후회가 있고 염려가 있겠지만(悔厲) 길(吉)하다. 오히려 어머니와 아들이(婦子) 희희낙낙하면(嘻嘻) 마침내 궁색해진다(終吝)
  지나치게 냉혹하면 남편을 공처가로 자식을 마마보이로 만들겠지만 지나치게 너그러워도 안되니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는 중용(中庸)의 도(道)를 따르는 집안단속이 필요하다.

 

富家 大吉
집안을 부유하게 하면(富家) 끝까지 길하다(大吉)
  가인(家人)의 중요한 사명은 집안을 부유하게 하는 것이다. 단순한 물질적 부가 아니라 알뜰히 살림을 하여 낭비되는 것이 없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 많아도 늘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고, 적어도 저축을 하면서 가계를 꾸리는 사람도 있다. 구두쇠가 되어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쓰지 않으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가계를 잘 단속하여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것을 막는 것이 집을 부유하게 하는 것이며 크게 길한 것이다.

 

王假有家 勿恤 吉
왕(王)은 가정에 너그러우니(假有家)을 근심하지 말라(勿恤) 길(吉)하다.
  여인이 가정을 잘 꾸려 집안이 잘 단속되고 부유한 가정이 되었다면, 혹시 부유함으로 인해 왕의 의심을 받지 않을까? 왕이 뺏어가지 않을까? 왕의 사명은 가정을 부유하게 해 주는 것이지, 부유함을 뺏어가는 것이 아니다. 흉년이 들어 국가재정이 부족하자 애공이 유약(공자의 제자)에게 방도를 물으니 유약은 10분의 1법을 시행하라고 하였다. 애공은 10분의 2법도 부족한데 어찌 10분의 1법을 하라는가 라며 화를 낸다. 유약은 “백성이 풍족하면 임금이 어찌 풍족하지 않을 것이며, 백성이 부족하다면 임금은 누구와 더불어 풍족하겠습니까?”[논어 제9편 안연 제9장]라고 답했다. 이른바 고대의 '군민일체'의 사상이니 군주는 백성에게 부유함을 저장해 둔다는 것이다. 그러니 부유하고 바른 가정은 곧 왕의 뜻이기도 한 것이다. 왕이 바른 왕이라면 근심할 필요가 없다.

 

有孚 威如 終吉
신념이 있고(有孚) 존엄을 잃지 않아야(威如) 끝까지 길하다(終吉)

  부(孚)는 주역의 전체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 중의 하나이다. 생각이 없는 것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신념, 신의, 가치관 등등 적절히 번역이 되어야 되는 개념이다. 이 부(孚)가 무너지기 쉬운 곳이 또한 가정이다. 맹목적이고 일방적인 복종을 강요할 위험이 많은 곳이 가정이기 때문이다. 부모라고 해서 남편이라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복종을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다. 가정은 신념이 통해야 하고 개인의 존엄성이 존중되어야 끝까지 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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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g

고전을 읽을 때 극복하지 않으면 길을 헤메는 관문이 있다.
중(中)의 관념이 서지 않으면 혼돈으로 빠져든다.
중(中)에서의 직선은 가둠을 관통하는 있는 것을 말한다.
갇힌 바깥에 있는 것도 아니고, 안에 있는 것도 아니다.
통(通)하여 있는 것이다.
공자께서는 무엇으로 그 가둠을 관통하고 있을까?

공자께서 "증삼아 내가 말하는 도는 하나로 일관하고 있다"고 하자 증삼은 "그렇습니다"고 했다. 다른 학생들이 "뭔 말이야?"라고 묻자, 증삼은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은 지극한 서(恕)야" 라고 하였다. [논어 제4편 이인 제15장]

서(恕)는 같을 여(如)와 마음 심(心)으로 이루어졌다. 마음을 동(同)하여 관통했다는 말씀이다.
말하자면, 중(中)은 가둠의 안과 밖을 마음으로 일관하여(恕) 관통하는 「진리」이다.

원효대사께서 마신 해골에 담긴 물 이야기는 유명한 이야기다.

사물은 변한 것이 없는데 (해골에 담겨있던 물은 똑 같은 물이었지만)
눈으로 보고나니 마음이 변하더라.

이 일화를 「일체유심(一切唯心)」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대학』 역시 마음(心)을 강조한다.

마음이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 [대학 제7장 정심수신]


중(中)은 마음으로 통(通)하여야 알 수 있는 「진리」이므로
노엽고, 두렵고, 좋아하고, 싫어하고, 걱정스러우면 제대로 볼 수가 없다.
공자의 말씀도, 석가의 말씀도, 예수의 말씀도 모두 머리에서 지워내어야 할 것이다.

 

용(庸)은 이러한 중(中)의 진리」에 조화롭게 맞추어 대응하는 「응답이다.
정이의 "바뀌지 않는 것이 용(庸)이다"라는 설명은 오해를 일으키기 딱 좋다. 주희의 "일상이다"라는 설명과 함께 묶어 설명하려고 하니, 진순처럼 "오곡을 먹고 옷을 입는 것은 만고의 일상이라 바뀔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하여 갈수록 이해하기만 어렵게 하였다.

 

위 속에 음식이 알맞게 차 있도록 유지시키는 것이 중용(中庸)은 아니다.
그러려면 그 중간을 맞추기 위해 하루종일 조금조금 먹고만 있어야 한다.
밥을 많이 먹고, 다시 많이 부족해지면 다시 과하게 채우는 것이 밥먹는 중용이다.
그래서 배가 부를 때를 만나고, 적당히 좋을 때를 만나고, 배가 고플 때를 만난다.
각 시기(時)에 알맞는 응답은 모두 다르다. 100년치 밥을 한꺼번에 먹고 한꺼번에 배설 할 수도 없다.
그래서 중용의 응답은 시공(時空)의 변화에 따라서 움직이게 된다.
즉, 용(庸)은 일반적 인식으로는 바뀌는 것으로 설명해야 오해가 덜하다.

사람마다 지문이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지능도 모두 다르다.
같은 사람이라도 10대, 20대, 30대가 다르다.
이러한 다름을 분별(分別)하여 가장 적합하게 맞추어 조화롭게 응답하는 것이 중용이다.
병(病)을 기준으로 똑같은 약을 쓰는게 아니라,
각 사람의 특성을 기준으로 다른 처방을 하려고 노력했던 것이 동양의학이었고,
역시 중용의 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공자께서 제자들마다 그 다른 특성을 감안하여 다르게 가르친 것도 그런 까닭일 것이다.
그래서 공자의 한 마디는 그 한마디 말과 글에만 갇혀서 이해하려면 오해가 생긴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왜, 무엇을 위해서 그러한 대화를 했는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고증의 도움을 받고, 때로는 알 수 없는 대화는 상상하면서 읽을 수 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중(中)의 사유는 안과 밖을 통(通)하는 것이며,
중용(中庸)의 사유는 분별(分別)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불가에서는 어리석은 중생아 개와 너가 다르지 않음을 왜 모르느냐고 한다.
그렇지만 개와 사람이 교감하기 위한 육체사랑을 수긍하지는 않을 것이다.
진리는 개와 사람이 다르지 않으면서 다르기도 하다는 중(中)이며,
진리에 반응하는 응답은 개와 사람이 다르다는 분별(庸-용)이다.

현상계가 만들어 내는 거짓에 갇혀있는 중생들을 어리석다고 하지만,
현상계가 만들어내는 것은 허상이라는 깨달음에 갇혀서, 사람들이 어리석어 보일 수도 있다.
무지(無知)도 생각을 가두고, 지(知)도 생각을 가둔다.
그래서 공자께서는 지(知)도 중용의 선을 지켜야 한다고 하셨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도가 행하여지지 않는 까닭을 알겠구나. 지자(知者)는 과(過)하고 우자(愚者)는 부족하구나” [중용 제4장]


결국 유가의 진리는 세속과 초월의 한 쪽이 아니라 통(通)하는 것이기에,
속세를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높고 원대한 이론으로 나아가 고원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고, 일상생활로 돌아온다.
그래서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잠이 오면 잠을 자는 것이 곧 도(道)이기도 하다.
현실 세상에서 추구하는 도(道)이기는 하여도, 중용의 도리에 맞추어야 한다고 한다.
자기와 남은 별개의 분별(分別)된 개체이면서 또한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이기 때문에
개인(個人)에게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人間)에게로 돌아온다.
그래서 인(仁), 의(義), 예(禮), 지(智)가 필요하게 된다.
그래서 옷을 벗고 싶어도 아무곳에서나 나체로 있으면 안되며 예(禮)를 지켜야 한다.
물론 인(仁), 의(義), 예(禮), 지(智)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중용에 따라 그 적합한 응답은 변한다.

그런데, 성리학이 발달하면서 이 중용의 생기발랄함과 융통성이 없어져 버렸다.

공자의 제자 자하가 말하였다 “큰 덕은 한계를 지켜야 하지만, 작은 덕은 들고 나는 것이다 [논어 제19편 미자 제11장]

송대 이후의 학자들이 이 장을 비난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 “작은 덕이 어찌 들고 날 수 있겠는가? 작은 덕이라고 해서 들쑥날쑥한다면, 곧 마음이 방종해져서 큰 덕에 누를 끼치게 될 것이다"는 등등의 실랄한 비난을 받았다. 아마도 자하의 말이었기 때문에 더 그러했을 것 같다. 그러나 자하가 어찌 틀렸다고 할 수 있을까?
송대이후의 학자들도 고원함과 깨끗함을 추구할 수록 사람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없다’고 하였으니, 지나친 고원함은 사람에게서 스스로 멀어지는 것이다. 어쩌면 송대 이후의 학자들은 소인은 멸시하여 멀리하고, 선비라는 자들끼리만 어울리는 계급과 권력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공자께서는 말씀하셨다. “도는 사람에게서 멀어질 수 없다. 사람이 도를 행한다면서 사람에게서 멀어지면 도라고 할 수 없다” [중용 제13장]

단발령이 일제의 강제라고 해서 선비들이 반발한 것이 아니었다. 나라의 명령이라고 해도 따를 수 없었던 신념이었기 때문이다. ‘정절을 유린당한 여인처럼 실성하여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돌아다니다 목을 매었다’는 것이 역사의 기록이다. 어찌 유학만 고여서 막히고 가두어 졌겠는가? 사찰과 교회도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과 예수님의 참된 가르침으로부터 벗어나, 가두고 막아버린 것은 없는지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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