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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상(赶上)/주역(周易)'에 해당되는 글 64

  1. 2010.02.01 64. 未濟卦(미제괘) : 채워야 할 것은 물질이 아니라 마음이다.
  2. 2010.02.01 63. 既濟卦(기제괘) : 가진자는 교만을 경계하라.
  3. 2010.02.01 62. 小過卦(소과괘) : 지나친 것 보다는 모자란 것이 낫다.
  4. 2010.02.01 61. 中孚卦(중부괘) : 주역의 가르침은 중용(中庸)이다.
  5. 2010.02.01 60. 節卦(절괘) : 물러나야 할 때라면 즐겁게 물러나야 한다.
  6. 2010.02.01 59. 渙卦(환괘) : 정의는 반드시 승리하게 되어 있다.
  7. 2010.02.01 58. 兌卦(태괘) : 어떤 이는 성내고 어떤 이는 웃는다.
  8. 2010.02.01 57. 巽卦(손괘) : 1승 무패를 하기보다는 차라리 99패 1승을 하여라.
  9. 2010.02.01 56. 旅卦(려괘) : 누구나 방황(彷徨)을 한다.
  10. 2010.02.01 55. 豊卦(풍괘) : 은혜를 외면하는 비정함의 말로(末路)
  11. 2010.02.01 54. 歸妹卦(귀매괘) : 시집 보내는 것이 부모의 사랑이며 도리이다.
  12. 2010.02.01 53. 漸卦(점괘) : 하늘도 사랑을 막을 수는 없다.
  13. 2010.02.01 52. 艮卦(간괘) : 유종(有終)의 미(美)를 거두는 아름다운 끝맺음이란?
  14. 2010.02.01 51. 震卦(진괘) : 일찍 일어나는 벌레는 더 빨리 잡아먹힌다.
  15. 2010.02.01 50. 鼎卦(정괘) : 정당하게 세금을 적게 낼 수 있는 방법은?
  16. 2010.02.01 49. 革卦(혁괘) : 혁명과 반란의 구별은 백성들의 신임여부에 달려있다. (1)
  17. 2010.02.01 48. 井卦(정괘) : 고인 우물물은 썩기 마련이다.
  18. 2010.02.01 47. 困卦(곤괘) : 너무 맑은 물에는 고기가 살지 못한다.
  19. 2010.02.01 46. 升卦(승괘) : 차곡차곡 쌓아 올린 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는다.
  20. 2010.02.01 45. 萃卦(췌괘) : 조직을 이끌어가는 리더쉽
  21. 2010.02.01 44. 姤卦(구괘) : 팜므파탈(Femme fatale)의 힘을 가진 여인
  22. 2010.02.01 43. 夬卦(쾌괘) : 원수도 바름(正)으로 대해야 한다.
  23. 2010.02.01 42. 益卦(익괘) : 앵벌이 하는 사람을 지나쳐야 하나?
  24. 2010.02.01 41. 損卦(손괘) : 하늘은 지나치면 덜어내고 모자라면 채워준다.
  25. 2010.02.01 40. 解卦(해괘) : 사람에게 구하고 사람에게 나아가야 한다.
  26. 2010.02.01 39. 蹇卦(건괘) : 난세는 영웅을 낳는다.
  27. 2010.02.01 38. 睽卦(규괘) : 사별(死別)의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은? (2)
  28. 2010.02.01 37. 家人卦(가인괘) : 아이와 가정은 여성의 특권이다.
  29. 2010.02.01 36. 明夷卦(명이괘) : 천하가 태평하지 않으면 숨어야 한다.
  30. 2010.02.01 35. 晉卦(진괘) : 방어적이지 않은 권력은 악(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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未濟 亨 小狐 汔濟 濡其尾 无攸利
【初六】濡其尾 吝
【九二】曳其輪 貞吉
【六三】未濟 征 凶 利涉大川
【九四】貞吉 悔亡 震用伐鬼方 三年 有賞于大國
【六五】貞吉 无悔 君子之光 有孚 吉
【上九】有孚于飲酒 无咎 濡其首 有孚失是

  미제(未濟)괘는 소과(小過)괘 중에서 소(小)를 의미하니 부족한 것이다. 앞의 기제(旣濟)괘는 이미 성취한 상태를 뜻하는 것으로서 지나침(過)을 의미한 것이었다. 그래서 덜어내야 한다. 미제(未濟)괘는 반대로 부족한 것이니(小) 채워야 한다. 주역의 후4괘는 모두 중용(中庸)을 말하고 있다. 중용을 강조하며 끝을 맺고 있는 것이다.

 

未濟 亨 小狐 汔濟 濡其尾 无攸利
부족한 자(未濟)는 나아가야 하나(亨) 작은 여우(小狐)가 거의 마른 강을 건너다(汔濟) 그 꼬리를 적시게 되면(濡其尾) 유리함이 없다(无攸利).

  여우는 물을 건널 때 꼬리를 치켜들고 젖지 않도록 한다고 한다. 만일 젖을 수 밖에 없을 정도로 깊다면 건너지 않고 되돌아 온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 영리한 여유가 말라서 물이 없는 강을 건너면서 어찌 그 꼬리를 적시게 되는가? 부족한 자가 얻으려고 급히 서둘러 나아가는 까닭이니 조심하고 신중하여야 한다. 조심성이 없으면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지고 여우가 마른 강을 건너다 꼬리를 적시기도 한다.

 

濡其尾 吝
그 꼬리가 젖었으니(濡其尾) 궁색(吝)하다.
  기제(既濟)가 끄는 수레는 이미 성취한 가득찬 수레여서 그 꼬리를 적셔도 허물이 없지만, 미제(未濟)가 끄는 수레는 채운 것이 보잘 것 없는 수레인데 그 꼬리를 적셨으니 참으로 궁색하다. 기제는 이미 성취하였으니 가볍게 털 수 있어야 하고 미제는 성취하지 못했으니 무겁게 붙잡고 신중하고 조심하여야 한다. 가진자는 가진 것을 가벼이 여기고 부족한 자는 가진 것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그것이 중용의 도를 지키는 것이다.

 

曳其輪 貞吉
그 젖은 수레를 끌고가면(曳其輪) 끝이 길하다(貞吉).

  미제자(未濟者)가 그 꼬리까지 적셔진 수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끌고 가면 마침내 길하다 한다. 설상가상의 상황을 만났어도 포기하지 않으면 곧 좋은 상황을 만날 수 있다는 뜻이다. 어려움을 만나도 포기하지 않는 것이 또한 중용(中庸)이니, 상황은 변하기 마련인 까닭이다. 비가 오기도 하고 맑은 날이 이어지기도 한다.

 

未濟 征 凶 利涉大川
부족한 채로(未濟) 계속 그 상태로 나아감(征)은 흉(凶)하니 큰 내를 건너야 이롭다(利涉大川).

  꼬리까지 적신 수레를 어쩔 수 없이 체념하고 끌고가는 것을 말함이니 그것은 흉하다. 다시 채워넣고 채워서 기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기회가 생긴다면 과감하게 부딪혀야 하니, 큰 내를 건너는 과단성을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하였다. 스스로 꺾이면 하늘이 부족하다고 채워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중용』에 “잘 심어져 있는 것은 북돋워주고 기울어진 것은 엎어버린다"[중용 제17장]고 하였으니 스스로 포기하는 자는 하늘조차 외면할 것이다.

 

貞吉 悔亡 震用伐鬼方 三年 有賞于大國
그래야 마침내 길하고(貞吉) 후회가 없어지리니(悔亡) 우뢰와 같은 기상으로 귀방을 정벌하는데 일조하면(震用伐鬼方) 3년이 걸릴 것이나(三年) 대국으로부터 상이 있을 것이다(有賞于大國)

  대국으로부터 상을 받음은 은나라 고종으로부터 상을 받는 것이니, 곧 미제에서 기제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3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참고 견디고 과단하게 나아가 수레를 채운 것이다. 미제에서 기제로의 전환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니 쉬운 일이 아니다. 과단성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인내도 필요하다.

 

貞吉 无悔 君子之光 有孚 吉
마침내 길하여(貞吉) 후회가 없으리니(无悔) 군자로서 빛남(君子之光)이여! 뜻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有孚) 길(吉)하다.
  단순히 공을 세운 것이 아니라 바른 도리를 따르는 뜻을 갖고 기제를 향해 나아간 것이었으므로 군자로서 빛이 나고 길하게 된 것이다. 반란에 동참하여 공을 세우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얻는 것을 원하여 은행을 터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바르게 기제로 나아가지 않는 것은 흉할 것이니, 기제를 이루는 길은 바른 길이어야 한다.

 

有孚于飲酒 无咎 濡其首 有孚失是
먹고 마심에 신념이 있으면(有孚于飲酒) 허물은 없으나(无咎) 그 머리를 적시면(濡其首) 신념이 없어지리라(有孚失是)
  기제에서 재물을 가진 은나라가 덕이 높은 주나라에 미치지 못하다고 한 것처럼 미제에서도 물질을 경계하여 주역을 마무리 한다. 먹고 마심에 뜻이 있다면 허물은 없으니 곧 바른 뜻을 갖고 물질적 부를 추구하는 것이 나쁘지는 않다고 한다. 그러나 그 물질적 부유함이 머리를 적셔 정신을 망치면 그 신념조차 없어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먹고 마셔야 한다는 신념은 나도 그것이 좋지만 다른 사람도 그것이 좋을 것이라는 신념이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벌어 기제자가 되면 가난한 이에게 베풀려고 하는 것이 먹고 마시는 것에 신념을 두는 것이다. 그러나 물질에 취하여 머리가 적셔지면 99석도 부족하여 100석을 채우려고 할 것이니 베풀기 위해서 모으려고 하였던 그 신념은 없어지게 된다. 더 나아가 베풀지 않는 부자만 미워 보이고, 자기 자신은 항상 부족하게 생각되니 베풀려는 마음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공자님의 말씀을 전하며 주역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공자 말씀하시길 "군자는 자기에게 요구하고 소인은 다른 사람에게 요구한다" [논어 제15편 위령공 제2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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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旣濟 亨 小利貞 初吉 終亂
【初九】曳其輪 濡其尾 无咎
【六二】婦喪其茀 勿逐 七日得
【九三】高宗伐鬼方 三年克之 小人勿用
【六四】繻有衣袽 終日戒
【九五】東鄰殺牛 不如 西鄰之禴祭 實受其福
【上六】濡其首 厲

  기제(旣濟)괘는 이미 성취한 상태를 뜻하는 괘다. 앞의 소과(小過)괘에서 말한 모자람(小)과 지나침(過) 중에서 지나침(過)을 의미한다. 정상에 서면 내려가야 하고, 보름달이 차면 기우는 것은 거역할 수 없는 변화의 이치이다. 내려가는 것을 거부하면 아름답지 못하다. 공자께서도 "노년기에는 기운이 쇠퇴하므로 지키려는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논어 제16편 계씨 제7장]고 하셨다. 늙어서 오히려 탐하는게 많아져 노추(老醜)라고 욕을 먹기도 하는데 육순을 뜻하는 이순(耳順)처럼 귀가 순해져야 하니, 곧 기제는 욕심을 버려야 함을 뜻하고 그것이 중용임을 의미한다. 과(過)하면 덜어내고 모자라면(小) 채워주는 것이 천도(天道)이다.

 

旣濟 亨 小利貞 初吉 終亂
가진자(旣濟)가 더 성장(亨)하려 하면 좋은 결실을 맺고 마감을 하기가 어렵다(小利貞) 처음은 길할 수 있어도(初吉) 마침내 어지럽게 된다(終亂).
  기제자(旣濟者)는 이미 충분히 가진 자를 말함이다. 그런데 더 성장(亨)하고자 하는 것은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는 까닭이다. 중용의 도에서 보면 과(過)한 것이니 좋은 결실을 맺고 마감할 수가 없다. 곧 은나라 주왕이 만족을 모르고 욕심을 부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曳其輪 濡其尾 无咎
그 바퀴를 끌다가(曳其輪) 그 꼬리를 적셔도(濡其尾) 허물이 아니다(无咎)
  이미 이룬 것을 수레에 담아 옮기고 있다. 그 꼬리정도를 적시는 것은 허물이 없다. 이미 충분하기에 그 꼬리 정도를 적시어 조금 잃는 것은 허물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99석을 가진 부자가 없는 자의 1석을 빼앗아 100석을 채우려고 한다고 하였다. 가지면 가질수록 더 커지는 것이 욕심이니 그것은 중용을 벗어난 것이다.

 

婦喪其茀 勿逐 七日得
부인이 그 머리띠를 잃어도(婦喪其茀) 쫒지마라(勿逐) 이레면 얻는다(七日得).

  머리띠(茀)는 머리(草)를 꾸미는 장식품을 형상화한 것으로 이미 가진 본래의 미모(旣濟)가 있으니 그 장식품은 수레의 꼬리와 같은 소소한 것이니 탐하여 좆지 말라는 말이다. 7일은 음양오행이 한번 순환하는 것을 말함이니, 곧 시간이 흐르면 치장하지 않은 모습도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진다는 뜻이다.

 

高宗伐鬼方 三年克之 小人勿用
고종의 귀방 정벌이(高宗伐鬼方) 삼년이 걸렸다(三年克之) 소인은 정벌하려 하지 마라(小人勿用).
  은(상)나라를 가장 부흥시킨 성군이었던 은(殷)나라 고종(高宗)이 귀방(鬼方)을 정벌하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은(殷)나라는 이미 천하를 지배하였고 고종은 이미 천자였으나 귀방을 정벌하려 하였기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 큰 희생이 따른 것이었다. 이미 가진 기제자(旣濟者)였지만 욕심을 부린 것이니 바람직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3년이 지나 성취는 하였으니 지나쳤어도 화를 당하지 않은 것은 대인(大人)이었던 고종의 높은 덕성 때문이었다. 그러니 소인은 그러한 지나침은 따르려 하지 말아야 한다.

 

繻有衣袽 終日戒
비단옷에 헝겊으로 기워 쓴 흔적이 있다면(繻有衣袽) 종일 경계를 하라(終日戒).

  이미 성취하고 이미 가진 기제자(旣濟者)가 가장 경계해야 할 자는 비단옷에 헝겁으로 기워쓴 흔적이 있는 사람이다. 즉, 분수를 넘어 허세를 부리는 사람인데 오늘날로 비유하자면 벤츠를 살 형편은 안되지만 낡은 중고 벤츠를 구입해 타고 다니는 사람을 빗댈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마음은 욕심과 욕망이 넘치니 경계하라는 말이다. 기제자의 가진 것을 다 뺏으려 할 것이다. 가진 것이 많으면 도적을 만나기가 쉽다.

 

東鄰殺牛 不如 西鄰之禴祭 實受其福
동쪽 이웃나라의 소를 잡아 지내는 제사(東鄰殺牛)가 서쪽 이웃나라의 간소한 제사로 받는 복(西鄰之禴祭 實受其福)만 같지 못하다(不如).

  동쪽 이웃은 주나라를 말하고 서쪽 이웃은 은나라를 말한다. 동쪽 이웃은 덕을 이미 성취한 기제(旣濟)의 나라이고, 서쪽 이웃은 물질을 이미 성취한 기제(旣濟)의 나라이다. 그래서 동쪽 이웃은 물질로 제사를 지내고, 서쪽 이웃은 간소하게 제사를 지내나 주역은 서쪽이웃을 칭송하고 있는 것이다. 재물을 이루는 것보다 덕을 이루는 기제(旣濟)가 더 좋다는 말이다.

 

濡其首 厲
꼬리가 아니라 그 머리를 적시면(濡其首) 위태롭다(厲).

  수레바퀴를 끌다가 그 꼬리를 적시는 것이 아니라 그 머리를 적시는 것이다. 이미 성취하였다고 그 머리를 적시는 것은 교만하여 방탕하게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내리막길을 만나 내려가더라도 내려가는 도(道)가 있는 법이다. 내리막길을 뛰어서 내려가다가는 굴러 떨어지는 법이다. 이미 가진 기제자(旣濟者)가 더 욕심을 부리는 것은 흉하지만 그렇다고 방탕하게 구는 것도 중용을 벗어난 것이라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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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小過 亨 利 貞 可小事 不可大事 飛鳥遺之音 不宜上 宜下 大吉

【初六】飛鳥 以凶

【六二】過其祖 遇其妣 不及其君 遇其臣 无咎

【九三】弗過防之 從 或戕之 凶

【九四】无咎 弗過 遇之 往 厲 必戒 勿用永貞

【六五】密雲不雨 自我西郊 公 弋取彼在穴

【上六】弗遇過之 飛鳥離之 凶 是謂災眚

  앞의 중부(中孚)는 중용에 바로 서 있는 것이지만, 소과(小過)는 모자라고(小) 지나쳐(過) 중용의 길을 벗어난 것을 말한다. 28번째 대과(大過)는 시기를 놓쳐 지나간 것을 말하는데 소과(小過)는 문자상으로는 대과의 반대되는 개념으로 여겨지지만 전혀 다른 의미로, 소과는 모자라거나(小) 지나쳐(過) 중용을 벗어난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소과(小過)괘는 중부(中孚)괘와 정반대의 음양으로 이루어져 있다.

 

小過 亨利貞 可小事 不可大事 飛鳥遺之音 不宜上 宜下 大吉

치우침(小過)은 인식이 있는 시기(亨利貞)에 생긴다. 조금 기울어짐은 괜찮으나(可小事) 크게 기울어짐은 불가하다(不可大事) 높이 나는 새가 그 소리를 남기니(飛鳥遺之音) 올라가면 마땅하지 않고(不宜上) 내려옴이 마땅하니(宜下) 내려온다면 크게 길하리라(大吉).

  중용을 벗어나는 것은 원형리정(元亨利貞)의 시기중에 형리정(亨利貞)의 시기의 일이라고 한다. 씨앗인(元) 상태에서는 중용을 벗어날 수 없다. 인식이 생김으로써 그 지혜가 지나치거나 모라라서 중용을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께서 “본성은 가깝지만 학습으로 멀어진다”[논어 제17편 양화 제2장]고 하셨다. 중용에서 치우치는 것이 약간 기울어진 것이라면 괜찮다. 그러나 크게 기울어짐은 불가하다. 높이 나는 새가 그 소리를 남기는 것은 한계에 봉착했기에 힘이 부친 까닭이다. 한계를 알았으니 조금 기울어진 것이다. 한계를 느꼈음에도 더 올라가려 한다면 크게 기우는 것이 된다.

 

飛鳥以凶

계속 비상하려고 하니 흉하다(飛鳥以凶)

  계속 비상하려는 것은 욕심이다. 욕심이 과하기 때문이니 중용을 벗어난 것이요, 또한 계속 비상하려는 것은 제 자신의 분수를 모름이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라고 하였으니 제 자신을 모르는 것이다. 중용을 벗어나는 이유는 제 자신을 모르고 욕심이 과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過其祖 遇其妣 不及其君 遇其臣 无咎

그 할아버지를 지나쳐(過其祖) 그 할머니를 만나고(遇其妣) 그 임금께 나아가지 못하고(不及其君) 그 신하를 만남은(遇其臣) 조금 지나친 것이지만 허물은 아니다(无咎).

  할아버지를 지나친 것은 과(過)했으나 할머니를 만났으니 그 뜻이 할아버지에게 전달될 것이요, 임금께 나아가지 못한 것은 모자랐으나(小) 그 신하를 만났으니 그 뜻이 임금께 전해질 것이다. 지나치고(過) 부족한(小) 것이지만 정도가 약하기에(小事) 허물은 아니다. 주역은 말하는 것 같다. 중용의 도가 최선이기는 하지만,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도 중용은 아니라고.

 

弗過防之 從 或戕之 凶

지나치지 않았을 때(弗過) 그것을 방지해야 하지만(防之) 지나침을 따르면(從) 혹 그것이 끝장날 수도 있으니(或戕之) 흉(凶)하다.

  모자란 것(小)은 다시 채울 수 있지만 지나친 것(過)은 그것을 방지하지 않으면 끝장날 수도 있음이니 곧 “모자란 물은 채울 수 있지만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는 법”을 말함이다. 공자께서는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과 같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을 말씀하셨으나, 그 같다는 것은 중용의 도를 벗어난 것이 같다는 말씀이셨으며, 지나침과 모자람 중에서 선택을 하라고 한다면 모자란 것이 낫다고 하실 것 같다.

 

无咎 弗過 遇之 往 厲 必戒 勿用永貞

허물이 없이(无咎) 지나치지 않았는데(弗過) 점점 지나치게 되면(遇之) 그대로 나아가면(往) 위태롭다(厲) 반드시 경계해야 하니(必戒) 끝까지 계속하려고 하지 마라(勿用永貞).

  딱 한번만 더 하고 멈춘다고, 딱 한번만 더 하고 멈춘다고 하다가 그 선을 넘는 경우가 있으니 그것을 경계한 말이다. 예를 들기에 가장 적합한 것이 술 한잔인 것 같다. 딱 한번만 더, 딱 한잔만 더 하면서 끝맺음을 하지 못하니 중용을 벗어나는 위태로운 것이다.

 

密雲不雨 自我西郊 公 弋取彼在穴

구름이 일어도 비가오지 않음은(密雲不雨) 나 스스로 어두운 서방에 있기 때문인데(自我西郊) 무왕(公)이 구멍에 피해있는 새를 활로 쏘아 잡았다(弋取彼在穴) 다소 모자랐다.

  옛 성현들이 제후의 신분으로 천자의 신하였었던 무왕이 천자인 주왕을 정벌한 것을 받아들이기는 하였지만 칭송하지는 않았다. 공자께서도 마찬가지셨다. 상나라가 이미 덕을 잃어 주왕이 구멍에 피해있는 신세와 마찬가지였는데도 힘으로 상나라를 정벌하고 주왕을 참살하였기 때문이다. 중용을 벗어난 것이었다. 그러나 주역은 과(過)한 것이 아니라 조금 모자란 것(小)이라고 하고 있다. 주나라를 태동시킨 무왕을 변명하는 까닭인 듯 하기도 하다.

 

弗遇過之 飛鳥離之 凶 是謂災眚

만나지 아니하고 지나치니(弗遇過之) 새가 날아 이별하게 되니(飛鳥離之) 흉(凶)하다. 이것을 말하여 재앙(是謂災眚)이라고 한다.

  요(堯)임금이 아들에게 지위를 넘긴 것이 아니라, 덕이 있던 순(舜)임금에게 천자의 지위를 넘긴 것처럼, 상나라 주왕이 무왕을 만나 그 지위를 넘겼으면 좋았을 것인데 그것을 지나치니, 곧 한계에 다다른 새가 더 높이 날기 위해 비상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주역은 상나라의 멸망의 책임은 조금 부족했던(小) 무왕 때문이 아니라 지나치게 과했던(過) 주왕 때문이라고 탓을 하니, 무왕의 정벌을 변명하고 있는 듯 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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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中孚 豚魚 吉 利涉大川 利貞

【初九】虞 吉 有他 不燕

【九二】鶴鳴在陰 其子和之 我有好爵 吾與爾靡之

【六三】得敵 成鼓 或罷 或泣 或歌

【六四】月幾望 馬匹 亡 无咎

【九五】有孚攣如 无咎

【上九】翰音 登于天 貞 凶

  이제 주역의 남은 마지막 4괘는 주역의 가르침을 정리하는 괘이다. 결국 주역의 가르침을 정리하면 중용(中庸)이다. 사서의 하나인 『중용』을 『소(小)주역』’이라고 말하는 까닭도 그 철학이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주역은 시작하는 4괘에서 근본적인 것을 모두 말하였다. 자연스럽고 조화롭고 편안하고 그래서 아름답게 변화하여 마감하는 4가지 진리를 말하였다. 곧 때를 헤아리고(乾) 자리를 잘 잡고(坤) 함께하고(屯) 깨우치는(蒙)것을 말하였다. 첫4괘와 마지막4괘를 제외한 나머지는 첫4괘와 마지막4괘의 이치를 나누어 놓은 것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주역의 글 역시도 서론, 본론, 결론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조화를 맞추고 있으니, 중용을 가르치고 중용을 보여줌으로써 끝내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있는 것 같다.

 

中孚 豚魚 吉 利涉大川 利貞

곧은 믿음이(中孚) 돼지와 물고기에 이르니(豚魚) 길(吉)하다. 큰 내를 건너듯 과단성을 가지면 이롭고(利涉大川) 끝까지 이롭다(利貞).

  중부(中孚)는 미물인 돼지와 물고기 조차 의심할 수 없는 바른 믿음을 뜻하니 신급돈어(信及豚魚)의 줄임말이다. 신급돈어는 돼지나 물고기 등(等) 무심(無心)한 생물(生物)조차 믿어 의심(疑心)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 올바른 믿음이라면 과단하게 나아가야 하고 끝까지 이로운 것이다.

 

虞 吉 有他 不燕

깊이 헤아리는 것(虞)이 길(吉)하나 다른 것이 생긴다면(有他) 편안하지 않다(不燕)

  공자께서는 계강자가 세 번 생각하고 행동하였다는 말을 듣고 “두 번이면 충분하다”[논어 제5편 공야장 제20장]고 말씀하셨다. 계강자가 지나치게 신중하고 생각이 깊었던 까닭인데, 지나치게 헤아리는 것 자체가 중용을 벗어난 것이기 때문에 가르침을 주려 한 것이었다. 생각을 한번 더 한다고 늘 이로운 것은 아니다.

 

鶴鳴在陰 其子和之 我有好爵 吾與爾靡之

어미학이 그늘에서 부르니(鶴鳴在陰) 그 새끼가 화답한다(其子和之) 나에게 좋은 잔이 있으니(我有好爵) 나와 너 함께 더불어 나누리라(吾與爾靡之).

  배움을 새를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익힐 습(習)이란 글자도 어린새가 어미새를 보고 날개짓을 하는 것을 형상화한 글자이다. 어미학이 그늘에서 소리를 내어 그 새끼를 부르고 그 새끼가 화답하는 것처럼 중용의 바른 도리를 먼저 깨우친 자가 미숙한 이를 불러 더불어 잔을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그 모습 역시 조화로움을 꾀하는 중용이다.

 

得敵 成鼓 或罷 或泣 或歌

적을 얻으니(得敵) 두드려보고(成鼓) 멈춰서보고(或罷) 울어도보고(或泣) 노래도 해 본다(或歌).

  적(敵)이란 중용의 도에 대한 의문 즉, 의혹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주희는 대학의 원문에서 「격물치지(格物致知)」라는 부분이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인데, 후대로 전해지면서 잃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그 부분을 보완하여 채워넣었다. 천하의 이치는 깨달은 사람이라면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니 그 궁극으로 나아가라는 가르침 이었는데, 여기서 말하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옥돌을 자르고 줄로 쓸고 끌로 쪼고 가는 절차탁마(切磋琢磨)하라는 뜻이다. 그러면 보이게 된다는 뜻이다.

 

月幾望 馬匹 亡 无咎

달이 거의 차니(月幾望) 마필이(馬匹) 사라져야(亡) 허물이 없다(无咎)

  달이 거의 찬 것은 학문의 성취가 보름달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마필은 수레에 태워 나를 이끌어 주던 말들이니, 곧 스승을 뜻하는 것이다. 스승은 제자의 성취가 보름달에 이르면 하산을 시킨다. 그 이후로는 스스로 나아가야 한다. 스승의 역할이 있고 스스로 깨쳐야 할 부분이 있다.

 

有孚攣如 无咎

신념으로(有孚) 붙잡아 매니(攣如) 허물이 없다(无咎).

  공자께서는 “안회는 그 마음을 다해 3개월동안 인을 어기지 않았는데, 나머지는 하루이틀, 일이개월 그럴 뿐이구나”[논어 제6편 옹야 제7장]라고 하셨다. 배워 알았다고 끝이 아니다. 신념으로 붙들어 매어 잃어버리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이미 깨우친 공자께서도 생을 마감하실 때까지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으셨다. 운동을 쉬면 근육이 굳어지듯, 배움도 쉬면 정신이 굳어진다.

 

翰音 登于天 貞 凶

날 수 없는 닭(翰音)이 하늘로 오르려 하면(登于天) 끝내(貞) 흉(凶)하다.

  한음(翰音)은 닭의 다른 이름이다. 날 수 없는 닭이 날 수 있다고 착각을 하는 것이니 곧 제 수준을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공자께서는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리석게 되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험하게 된다”[논어 제2편 위정 제15장]고 하셨다. 곧 한음(翰音)은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는 자를 말함이니 곧 서울에 가 본 적 없으면서 서울에 가 본 사람을 이기려는 사람이다. 모르는 게 없는 사람들도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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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節 亨 苦節 不可貞

【初九】不出戶庭 无咎

【九二】不出門庭 凶

【六三】不節若 則嗟若 无咎

【六四】安節 亨

【九五】甘節 吉 往 有尚

【上六】苦節 貞 凶 悔亡

  절(節)괘는 절제를 말함이다. 멈춤을 의미하던 간(艮)괘는 그 멈춤이 혼자의 일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 조화를 맞추어 유종의 미를 거두는 멈춤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반면 절(節)은 중용의 도에 비추어 멈추어야 마땅한 적시(適時)에 멈추는 것을 말한다. 간(艮)은 여러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 애당초 시작하지 않는 멈춤, 초창기의 멈춤, 허리까지 나아갔으면 끝을 내고 멈춤, 그러나 절(節)괘에서 말하는 절제는 관계를 고려한 멈춤이 아니라 스스로의 멈춤이다. 그 때는 상대를 배려해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중용의 바른 도(道)에 맞추어 끊는 것을 말한다. 공자께서는 “노년기에는 기운이 쇠퇴하므로 지키려는 탐욕을 경계해야 한다”[논어 제16편 계씨 제7장]고 하셨다. 오래지 않아 모든 것을 내놓아야 할 시기가 기다리고 있음에도 잃는 것이 싫어 집착하는 것을 ‘노추’라고 하였으니 곤(坤)괘에서 말한 순한 암말처럼 편안히 순종하여 받아들여야 한다.

 

節 亨 苦節 不可貞

절제(節)는 성장이니(亨) 고통스런 절제(苦節)는 끝까지 이를 수 없다(不可貞)

  절제를 하는 것은 중용의 치우치지 않는 바른 도(道)를 따르는 것으로서 겉 모습은 끊는 것이지만, 내실은 성장하는(亨) 것이다. 동물들이 따뜻한 곳을 본능적으로 찾아가는 것과 같은 길이어야 한다. 고통스런 절제는 추운 곳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니 끝까지 이를 수 없다. 억지로 고통을 감내하면서 참아내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멈출 시기임을 편안히 받아들여 멈추는 것이다.

 

不出戶庭 无咎

집안마당을 나가지 않아도(不出戶庭) 허물은 없다(无咎).

  집안마당을 나가지 않는 것은 가정을 도탑게 하여 사는 것을 말한다. 가정에 충실하여 처자와 금술이 좋고 형제와 화목하며 어른을 공경하면서 그렇게 사는 삶도 허물은 없다. 군자의 사명을 받은 이가 그 명(命)을 벗어나 집 안에 머물면 흉할지는 몰라도 허물은 없을 것이다. 길흉(吉凶)은 외부적인 시각이요, 허물(咎)은 내면적인 시각이기 때문이다.

 

不出門庭 凶

집앞마당에서 나가지 않으면(不出門庭) 흉(凶)하다.

  집을 나서서 그 집 앞의 마당으로 나아갔는데 더 나아가지 않고 있으니 흉하다. 간(艮)괘에서 말하는 허리에서 멈추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집앞마당은 소인도 군자도 멈추어야 하는 곳이 아니다. 소인은 집안으로 돌아가야 하니 지나친 것이요, 군자는 나아가야 하는 곳이니 모자란 곳이다. 절제가 필요하지 않음에도 절제하고 있는 것을 말하니 흉하다.

 

不節若 則嗟若 无咎

절제를 하지 못한 고통으로(不節若) 곧 탄식이 있다면(則嗟若) 허물은 없다(无咎)

  소인이 절제하지 못하고 집 문을 나섰지만 빨리 그 잘못을 깨닫고 탄식하게 된다면 허물은 없다는 말이다. 탄식을 하는 것은 마음이 편하지 않기 때문이다. 탄식이 있음은 과했다는 깨우침이니 허물이 없을 것이다. 크게 지나치지 않았으니 집안으로 돌아가면 되기 때문이다.

 

安節 亨

편안하게 절도를 지키면(安節) 형통(亨)하다.

  과했다는 깨우침을 얻어 제자리로 다시 돌아가는 그러한 부산한 과정을 겪어서 절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편안하게 절제를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것이다.

 

甘節 吉 往 有尚

기쁘게 절제해야(甘節) 길(吉)하고 그렇게 나아가야(往) 자랑이 있다(有尚).

  달콤한 절제(甘節)는 곧 탄식하여 깨닫고 절제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즐거움으로 멈추는 것이다. 멈추어야 할 때임을 깨닫고 기쁜 마음으로 웃으며 멈추는 것이니 그런 멈춤이어야 한다.

 

苦節 貞 凶 悔亡

고통스런 절제(苦節)는 끝까지(貞) 흉(凶)하나 후회는 없다(悔亡)

  억지로 절제함은 마음으로 나아간 것이 아니기에 끝까지 흉하지만 멈춰야만 하는 곳에서 억지로라도 멈추었으니 그 결과는 나쁘지 않은 것이다. 그러하기에 후회를 남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다. 길흉(吉凶)은 외부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찡그리며 멈추는데 흉하지 않을 수는 없다. 반면 후회(悔)는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의 아쉬움이며 결과를 고려한 외면적 시각이다. 그래서 흉하지만 후회가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흉(凶)과 회(悔)에 관해서는 <여기를 참조>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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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渙 亨 王假有廟 利涉大川 利貞
【初六】用拯馬壯 吉
【九二】渙 奔其机 悔亡
【六三】渙其躬 无悔
【六四】渙其群 元吉 渙 有丘 匪夷所思
【九五】渙 汗其大號 渙 王居 无咎
【上九】渙其血 去 逖出 无咎

  환(渙)괘는 물이 거침없이 흘러감이니, 막힌 것이 풀어지는 것, 물꼬가 트임을 의미한다. 막히는 시기가 있다. 나의 잘못이 아니라 하늘이 막아놓은 것이니 곧 도리가 없어진 세상 36번째의 명이(明夷)의 세상을 만나 막혀있었던 것이다. 도가 무너진 명이(明夷)의 세상에는 은둔하여 자기수양을 하고 있으라고 하였다. 언젠가는 비가 그치는 법이니 반드시 맑은 날을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환(渙)괘는 명이의 세상이 끝나고 거침없이 바른 도가 흘러넘치는 세상을 만나게 된 것을 의미한다.

 

渙 亨 王假有廟 利涉大川 利貞
트여서(渙)는 형통하니(亨) 왕이 가서 제사 지낼 종묘가 있으면(王假有廟) 과감히 큰 강을 건너면 이로우리니(利涉大川) 끝까지 이롭다(利貞)

  꽉 막혀 있던 것이 트이는 것은 씨(元)로부터 바야흐로 싹이 트는 것이니 성장(亨)을 시작한 것이다. 왕이 제사 지낼 종묘가 있다는 말은 곧 전통이 있다는 말이니, 곧 씨(元)가 좋았다는 말이다. 좋은 씨가 비로소 싹을 틔운 것이니 좋은 결실을 얻을 것은 자명하다. 과단하게 강을 건너도 이롭다. 좋은 결실을 맺고(利) 마감(貞)할 수 있다.

 

用拯馬壯 吉
기운이 강한 말의 도움을 구하면(用拯馬壯) 길(吉)하다.
  용증마장(用拯馬壯)은 36번째 명이(明夷)괘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도가 무너진 명이의 시절에 왼쪽 허벅지에 활을 맞은 사람이 기운 센 말을 만나서 구원을 얻었다. 그 뜻은 도망가야 할 때는 센 기운으로 도망가라는 뜻도 담겨있다. 이제 술술 풀리는 환(渙)의 시기에도 기운센 말의 도움을 받아야 길하니, 도망을 가야 할 때도 나아가야 할 때도 기운이 왕성한 말처럼 힘차게 내달려야 한다는 뜻이다.

 

渙 奔其机 悔亡
트였으니(渙) 그 궤로 빨리 내달려야(奔其机) 후회가 없다(悔亡)
  말의 힘찬 기운으로 나아가야지, 시간을 지체하지 말라는 뜻이다. 궤(机)는 베틀이니 곧장 근본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물고기보다 낚시대가 중하며, 삼베보다 베틀이 중하다. 기운이 강한 말을 타고 빨리 내달려 베틀을 차지하라는 말이다. 엉뚱한 길로 빠지지 말고 근본을 향해서 나아가야 한다.

 

渙其躬 无悔
그 몸이 거침없어야(渙其躬) 후회가 없다(无悔)
  그 몸이 거침이 없는 것은 꽉 막혔을 때 풀리는 시기를 대비하여 자기관리를 잘 해 둔 것을 말한다. 군자는 은둔하더라도 몸과 정신을 잘 가꾸어 풀리는 시기를 대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몸을 망치고 정신을 망치는 사람은 때가 바뀌어 술술 풀리는 시기가 도래하였어도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渙其群 元吉 渙 有丘 匪夷所思
무리를 이루어 거침없이 나아가야(渙其群) 근원적으로 길하다(元吉) 거침없이(渙) 언덕으로 모이는 것을(有丘) 오랑캐들은 생각하지 못한다(匪夷所思)
  오랑캐(夷)는 도가 무너진 명이(明夷)의 시기였기에 힘으로 세상을 지배할 수 있었던 집단을 뜻한다. 그래서 덕보다 힘을 숭상하는 무리를 상징한다. 그러나 그 힘이 통했던 까닭은 힘이 정답이였기 때문이 아니라 시기가 명이의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그러한즉 힘을 숭상하는 오랑캐들은 힘이 전부인 줄 알 것이니 덕이 힘을 꺾을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물꼬가 트여 거침없는 때에도 혼자서는 도모할 수 없다. 무리를 이루어 나아가야 한다.

 

渙 汗其大號 渙 王居 无咎
막힌 것이 트이니(渙) 오랑캐들은 땀을 흘리며 크게 울부짖지만(汗其大號) 트였어도(渙) 왕이 자리를 지켜야(王居) 허물이 없다(无咎)
  힘만 숭상하던 오랑캐들이 전전긍긍(戰戰兢兢)하며 크게 울부짖고 후회를 하니, 때가 도래하였지만 왕이 제 자리에 위치하여 이끌어야 허물이 없다. 왕이 냉정을 잃고 선두에 서서 공격을 하는 것은 아니어야 한다는 말이다. 소위 두고보자는 식으로 가슴앓이를 하다가 트이니 냉정을 잃고 나아가는 것을 말함이다. 왕은 흔들리지 말고 흥분하지 말고 제 자리를 지켜야 한다.

 

渙其血 去 逖出 无咎
그 피가 거침없이 흐르며(渙其血) 지나가더라도(去) 멀리 멀어지면(逖出) 허물이 없다(无咎).
  오랑캐들이 죽어 그 피가 거침없이 흐르게 되니, 힘을 숭상하던 오랑캐들이라 큰 희생이 생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생명의 다침은 참으로 안타까우나 시간이 멀리 지나가 먼 옛날 이야기가 되면 허물은 없어진다고 한다. 정의가 살아있음을 알리기 위한 불가피한 희생이며 천명(天命)인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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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兌 亨利貞
【初九】和兌 吉
【九二】孚兌 吉 悔亡
【六三】來兌 凶
【九四】商兌 未寧 介疾 有喜
【九五】孚于剝 有厲
【上六】引兌

  태(兌)괘는 즐거움을 뜻하는 괘이다. 태(兌)괘는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논한 것은 아니다. 즐거움을 느끼는 유형을 제시하고 그 각 유형들에 대해서 바람직한지의 여부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兌 亨利貞
즐거움(兌)은 성장(亨), 결실(利) 마침(貞)기의 일이다.

  즐거움은 원형리정의 단계에서 원(元)의 시기를 제외한 일이니 즉, 의식이 있는 상태에의 인식이다. 즐거움을 따르는 것은 동물이 따뜻한 곳으로 찾아가는 것과 같다. 힘들어 보이고, 고통스럽게 살고 있는 듯 여겨지는 수도승(修道僧)도 결국은 고통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즐거움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천도(天道)이며 인도(人道)이다.

 

和兌 吉
조화로워 즐거우니(和兌) 길(吉)하다.

  자연(自然)처럼 조화롭기 때문에 즐거운 것을 말한다. 아름다운 강산을 바라보는 것이 즐거운 이유는 조화롭고 평화롭고 따뜻하기 때문이다. 시경에서 “처자(妻子)와 잘 화합하는 것이 금(琴)과 슬(瑟)의 연주와 같으니 형제가 화목하여 조화롭고 즐겁구나(和樂). 네 집안 제대로 다스리려면 네 처자식 즐겁게 하라”[시경 소아.상체편]고 하였다. 악마는 고통스럽고 눈물이 흐르고 피가 흐르고 파괴되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며 웃는다고 하였다. 조화롭지 않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흉하다.

 

孚兌 吉 悔亡
신념이 있어 즐거우니(孚兌) 길(吉)하고 후회가 없다(悔亡)
  유학의 최고 경전이라 말하는 『논어』는 기쁨과 즐거움이 무엇인가에 대한 공자의 말씀으로부터 시작된다. “사람의 도를 배우고 체득해가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알아주는 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원망이 생길 리 없으니 또한 군자답지 않겠는가?”[논어 제1편 학이 제1장]

  공자께서 말씀하시는 이러한 즐거움이 신념이 있어 즐거운 것이다. 공자께서는 안회를 칭찬하며 “거친 밥과 한 바가지 물로 누추한 거리를 살아도 그의 즐거움을 바꾸지 않는구나. 참으로 현명하도다 안회여!”[논어 제6편 옹야 제11장]라고도 말씀하셨다. 이러한 즐거움은 물질의 부귀나 지위의 귀천에 전혀 구애되지 않는 즐거움이다.

 

來兌 凶
오는 것이 있어 즐거우니(來兌) 흉(凶)하다.

  오는 것(來)이 있어 즐거운 것은 오직 얻어서 즐거운 것을 말한다. 잃는 것 없이 얻어서 그것을 즐거워 하는 것을 말한다. 뒤에 이어지는 상태(商兌)와 달리 제 것은 하나도 내 놓지 않고 받기만 하려는 이기적 즐거움이니, 술값 계산할 때 항상 숨어버리고 얻어 먹은 것을 즐거워 하는 그런 부류로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商兌 未寧 介疾 有喜
거래하여 즐거우나(商兌) 편안한 것은 아니니(未寧) 병이 되는 것을 막아야(介疾) 기쁨이 있다(有喜)

  상태(商兌)는 거래를 하여 즐거움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즉 주고받는 GIVE AND TAKE의 즐거움이다. 래태(來兌)는 내 것은 하나 내 놓는 것 없이 오직 이익만 실속만 차리려는 즐거움이라면, 상태(商兌)는 주고받는 즐거움이다. 그래서 래태(來兌)는 흉하다고 했지만 상태(商兌)는 병이되는 것이 아니면 괜찮다고 한다. 주역과 논어의 입장은 정당한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배척하지는 않는 까닭이다. 그러나 병이 되는 수준에 이르지는 말아야 한다고 하니, 돈이 안되는 일은 애초에 하려고 하지 않는 생각을 나무라는 것이다. 공자께서도 “먼저 일하고 뒤에 그 대가를 얻으려 하는 것이 덕을 높이는 것이다”[논어 제12편 안연 제21장]라고 하셨으니, 이미 선사후득(先事後得)은 고사성어가 되었다.

 

孚于剝 有厲
파괴에 신념을 두면(孚于剝) 위태로움이 있다(有厲)

  파괴에 신념을 두는 것은 사람의 길을 멀리하는 것을 말한다. 곧 기인(奇人)의 행세를 하는 것을 즐거워 하는 것이다. 공자께서는 “궁벽한 이치를 찾고 괴이한 일을 하는 것을 후세에 칭송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중용 제11장]고 하셨다. “도(道)는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니 사람이 도를 행하고자 하면서 사람의 길을 멀리하면 도라고 할 수 없다”[중용 제13장]고 하셨다. 화태(和兌)처럼 조화로움이 즐거움이어야 한다. 어쩌면 이러한 가르침이 중국에서 불교가 뿌리를 잘 내릴 수 없었던 이유일 지도 모른다. 머리를 깎고, 고기를 먹지 않고, 부부관계를 하지 않는 수도승을 유별나게 유난을 떠는 것으로 생각했음직도 하다. 마음으로 관통할 수 있다면 진리를 추구하는 길이 유별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성인 석가모니의 잘못이 아니라 따르는 자들이 구속하고 막아놓은 까닭일지도 모른다. 

 

引兌
이끄니 즐겁다(引兌)
  화태(和兌) 부태(孚兌) 래태(來兌) 상태(商兌)와 달리 인태(引兌)는 주역에서 길흉, 여타의 판단을 하고 있지 않다. 이끌고 오니 즐거운 것은 소위 조종하는 즐거움이다. 이끄는 즐거움에 대해서 주역이 판단하지 않은 이유는 중용을 벗어나면 흉(凶)할 것이요, 중용을 지키면 길(吉)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조종 하려고 하는 마음은 조심하고 신중해야 하는 것이다. 덕이 높은 현자가 어리석은 백성들을 이끌고 오는데 즐거움을 느낀다면 길하겠지만, 마마보이의 어머니가 자식을 이끌고 와야 즐거운 것은 흉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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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巽 小亨 利有攸往 利見大人
【初六】進退 利武人之貞
【九二】巽在床下 用史巫紛若 吉 无咎
【九三】頻巽 吝
【六四】悔亡 田獲三品
【九五】貞吉 悔亡 无不利 无初有終 先庚三日 後庚三日 吉
【上九】巽在床下 喪其資斧 貞凶

  손(巽)괘는 바람을 뜻하는 괘이니, 곧 마음이 바람처럼 흔들리는 것을 뜻한다. 우유부단하여 좀체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주역은 그 우유부단함의 원인을 마음에서 찾고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기에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라고 한다. 실패의 확률을 줄이려면 역사를 살펴보기를 권하고 그도 아니면 차라리 점을 치고서 나아가라고 말한다. 망설이고 주저하고 있다가는 앉아서 다 잃게 될 것이니 그게 제일 흉한 것이라고 한다. 지나간 일을 쉽게 떨쳐내지 못하는 것이 근원적 문제이니 후회를 남기는 마음을 없애야 길(吉)하다고 한다.

 

巽 小亨 利有攸往 利見大人
갈등(巽)은 성장 초기부터 있으나(小亨) 시간이 지나면 이로움이 있다(利有攸往) 대인을 만나보는 것이 이롭다(利見大人).
  갈등도 앞의 려(旅)괘와 마찬가지로 성장 초기부터(小亨) 있게 되는 것이다. 려(旅)괘의 방황은 쉽게 끌 낼 수 없던 것으로 본 반면에, 갈등(巽)은 시간이 지나면 이로움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식견이 높아지기 때문일 것이다. 더 빨리 끝내고 싶으면 대인(도움을 주는 사람)을 만나보는 것이 이롭다고 한다.

 

進退 利武人之貞
나아갈 줄 알고 물러날 줄 아는(進退) 무인은 끝까지 이롭다(利武人之貞)
  무인은 진퇴를 냉정하고 정확하게 결정할 수 있는 식견이 있어야 한다. 무인의 갈등은 저 혼자만 해를 입는 것이 아니라 많은 생명을 위태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巽在床下 用史巫紛若 吉 无咎
평상 아래에서 갈등 한다면(巽在床下) 역사와 무속을 사용하면(用史巫紛若)이 길(吉)하고 허물이 업다(无咎).
  평상아래에서의 갈등은 보통사람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심한 갈등을 의미하며, 너무 우유부단하여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다. 역사를 사용하라는 것은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결정을 내리라는 말이다. 공자께서는 "옛 것을 돌이켜 미래를 살필 줄 알면 스승이 될 수 있다"[논어 제2편 위정 제11장]고 하셨다. 그도 아니면 무속 곧, 점을 사용하라고 한다. 점이 맞다는 말이 아니라 갈등을 끝내고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공자께서는 세 번 생각하고 행동하라고 가르치셨지만 계문자에게는 “두 번이면 충분하다”[논어 제5편 공야장 제20장]고 하셨다.

 

頻巽 吝
찡그리고 갈등만 하고 있다면(頻巽) 어려워진다(吝)
  찡그리고 갈등만 하다가 시간을 다 보내는 것이니 정말 어려워진다. 공자께서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할까? 라고 하며 추구하지 않는다면 나도 참으로 어떻게 할 수가 없다”[논어 제15편 위령공 제16장]고 하셨다.

 

悔亡 田獲三品
후회가 없으면(悔亡) 밭에서 세가지 물건을 얻으리라(田獲三品).
  3품은 천(天)지(地)인(人)을 비유하는 것이다. 천지인의 합일은 결국 마음으로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에 상관없이 후회하고 탄식하지 않는다면 언제 나아가건(天), 어디로 나아가건(地), 누구(人)에게로 나아가건 아무 문제가 없다. 천지인의 합일을 기다리는 것은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는 것이기 때문에, 애초에 후회가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 수 있을까?

 

貞吉 悔亡 无不利 无初有終 先庚三日 後庚三日 吉
끝까지 길하구나(貞吉) 후회하지 않음이여(悔亡) 이롭지 않음이 없다(无不利) 시작은 몰라도 끝은 있으니(无初有終) 신중하게 하고(先庚三日) 잘 헤아리면(後庚三日) 길(吉)하리라.
  즉, 시작할 때 확신은 없어도 끝나면 결과는 있는 법이다. 후회가 없는 것이 중하다. 선경삼일은 십간 즉,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의 경으로부터 앞선 3일인 정(丁)이며, 후경삼일은 계(癸)를 말하는데, 신중(丁)하였고 잘 헤아렸다면(癸) 그 결과가 어떻든 그 자체로 길한 것이다.

 

巽在床下 喪其資斧 貞凶
평상 아래에서 갈등한다면(巽在床下) 재물과 도끼까지 잃을 것이니(喪其資斧) 끝까지 흉하다(貞凶)

  평상아래에서의 갈등은 보통사람에도 미치지 못하는 심한 갈등이니 우유부단하여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을 잃음은 물론이요, 재물과 권력도 잃을 것이니 끝까지 흉하다. 한번 시도해 보지도 못하고 앉아서 잃는 것이니 끝까지 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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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旅 小亨 旅貞 吉
【初六】旅瑣瑣 斯其所取災
【六二】旅即次 懷其資 得童僕 貞
【九三】旅焚其次 喪其童僕 貞 厲
【九四】旅于處 得其資斧 我心不快
【六五】射雉一矢亡 終以譽命
【上九】鳥焚其巢 旅人 先笑後號咷 喪牛于易凶

  여(旅)는 나그네를 뜻한다. 떠도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니 곧, 방황을 의미한다. 요즘은 인생 40을 제2의 방황기라고도 한다. 공자께서는 나이 40을 미혹함이 없는 불혹이라고 하셨고 “나이 40이 되어서도 미움을 받는다면 끝났다”[논어 제17편 양화 제26장]고도 하셨으니 요즘 사람들이 40에 방황하는 것은 옛사람들이 쉽게 예상할 수는 없었을 것 같기도 하다.

 

旅 小亨 旅貞 吉
방황(旅)은 성장 초기부터(小亨) 있게 되는 것이다. 방황을 끝내어야(旅貞) 길(吉)하다
.
  방황은 성장의 초창기부터(小亨) 있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길(吉)하려면 방황을 끝내어야 한다고 한다. 아마도 평생 방황을 끝내지 못하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 아닐까? 필부필부(匹夫匹婦)하는 보통의 사람들은 방황을 끝내지 못하고 그냥 그냥 살아가는 경우가 더 많을 것 같기도 하다.

 

旅瑣瑣 斯其所取災
방황은 자질구레하게 하면(旅瑣瑣) 재앙을 자초하는 것이다(斯其所取災).
  쇄쇄(瑣瑣)는 자질구레하게 계속 이어지는 것을 말한다. 시시하고 대수롭지 않은 이유로 끝맺지 못하고 계속 방황을 이어가는 것은 재앙을 자초하는 일이라고 한다. 알이 먼저 인지 닭이 먼저 인지, 아이가 먼저 인지 어른이 먼저 인지 어찌 반드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대학에서 “자식 기르는 법을 배우고 나서 시집가는 사람은 없다”[대학 제9장 제가치국]고 하였으니 지나치게 자질구레하게 방황을 계속 이어가지 않아야 한다.

 

旅即次 懷其資 得童僕 貞
방황은 묵을 곳이 있어야 하니(旅即次) 재물이 있고(懷其資) 동복(童僕)을 얻으면(得) 끝난다(貞)

  차(次)는 정착할 곳을 말하니 곧 방황을 끝내고 머무를 수 있는 곳을 말한다. 몸을 정착할 수 있으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마음이 정착 할 수 있으려면 내 마음을 받아주는 사심 없는 종이 있어야 한다. 몸이 편안하고 마음이 편안하면 더 이상 방황은 없음은 당연하다. 물질가치와 정신가치가 별개가 아니니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

 

旅焚其次 喪其童僕 貞 厲
방황하여 그 묵을 곳을 불태우고(旅焚其次) 그 동복을 잃었으니(喪其童僕) 끝까지(貞) 위태롭다(厲).
  재물(資)은 잃지 않았다. 그 동복을 잃어 결국, 쉴 곳을 잃었지만 재물은 남아있는 것이다. 이것이 곧 재앙을 자초한다고 하는 자질구레하게 이어지는 방황(旅瑣瑣)과 다르지 않다. 내 몸을 쉬게 만들 수 있는 돈도 중요하고 내 마음을 쉬게 할 수 있는 동복도 필요한 것이다. 중용을 벗어나 그 동복을 잃었으니 끝까지 위태롭다.

 

旅于處 得其資斧 我心不快
방황에서 잠시 쉬려다가(旅于處) 재물과 도끼를 얻었으나(得其資斧) 내 마음은 불쾌하다(我心不快).

  처(處)는 정착지를 뜻하는 차(次)와는 달리 잠시 쉬기 위해 머무는 곳이다. 자부(資斧)는 재물과 도끼인데, 곧 돈과 권력을 의미한다. 얻기 위해 애써서 얻은 것이 아니요, 잠시 머무를 생각이었는데 돈과 권력을 취했으니 그야말로 횡재다. 그러나 왜 마음이 불쾌할까? 돈과 권력을 얻었고, 그것도 손쉽게 얻었으나 동복(童僕)이 없기 때문이다.

 

射雉一矢亡 終以譽命
어리석은 꿩을 화살 하나를 잃고 죽이면(射雉一矢亡) 마침내 명예로운 부름을 얻으리라(終以譽命)
  꿩은 다급해지면 풀섶에 머리만 박고 몸뚱이를 돌보지 않는 어리석은 짐승이다. 즉 그 어리석음을 빨리 없애라는 말이니, 돈과 권력을 횡재로 얻고서도 마음이 불쾌한 이유가 무엇인지 빨리 깨우치라는 의미이다.

 

鳥焚其巢 旅人 先笑後號咷 喪牛于易 凶
새가 그 둥지를 불사르니(鳥焚其巢) 나그네는(旅人) 처음에는 웃지만 뒤에는 부르짖으며 슬피 울게 될 것이다(先笑後號咷) 주역의 소를 잃어버리는 것이니(喪牛于易) 흉(凶)하다.
  둥지를 불태우는 새가 쉴 곳을 불태우던 자신과 다를 바 없는 어리석을 짓을 하니, 짐승의 일로만 여겨 처음에는 어리석다고 비웃는다. 그러나 그것이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임을 알게 되어 슬피 울게 될 것이다. 소는 진리와 깨우침을 상징한다. 불교의 '심우도'에서 의미하는 소와 같은 뜻이다. 주역의 소를 읽어버리는 것은 곧 주역의 가르침을 잃어버리는 것이니 흉하다. 새를 가엽고 측은하게 여기는 인(仁)함을 잃었다. 주역이 말하고 있는 모든 변화의 법칙은 하나를 상정한 것이 아니다. 사람 인(人)은 항상 관계(關係)하여 하나가 받쳐주어야 하는 존재이며, 나와 관계없는 삼라만상은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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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豊 亨 王假之 勿憂 宜日中
【初九】遇其配主 雖旬 无咎 往 有尚
【六二】豊其蔀 日中見斗 往 得疑疾 有孚發若 吉
【九三】豊其沛 日中見沬 折其右肱 无咎
【九四】豊其蔀 日中見斗 遇其夷主 吉
【六五】來章 有慶譽 吉
【上六】豊其屋 蔀其家 闚其戶 闃其无人 三歲不覿 凶

  풍(豊)은 풍성함을 상징하는 괘다. 곧 결실(利)이 풍성한 것을 말한다. 주역은 풍성한 결실을 이루기 위한 조건을 바른 통치자에게서 찾고 있다. 고래(古來)로부터 풍흉은 왕의 책임이라고 하였고 왕이 바르면 풍년을 만나고 왕이 바르지 않으면 흉년을 만난다고 하였다. 그러나 주역은 왕이 바르게 중천에 있음에도 풍년을 만날 수 없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바른 신하들이 왕을 받쳐주어야 한다.

 

豊 亨 王假之 勿憂 宜日中
풍요(豊)는 성장기(亨)에 결정된다. 왕이 그것을 이르게 할 것이니(王假之) 근심하지 말라(勿憂) 알맞게 해가 중천에 있기 때문이다(宜日中)
  풍요는 곧 좋은 결실(利)을 맺는 것이므로 성장(亨)에 의해서 결정이 된다. 가뭄과 홍수 등의 재앙이 없기 위해서는 왕이 덕으로 세상을 잘 다스려야 한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부여전」의 기록에 의하면 그 해의 농사가 흉년이 들면 왕에게 책임을 물어 왕을 죽이거나 교체했다고 전해지는데, 왕권이 약했기 때문이었겠지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명분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풍흉은 왕의 책임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해가 중천에 있는 것은 왕이 덕으로써 정치를 잘 하고 있는 것을 뜻한다.

 

遇其配主 雖旬 无咎 往 有尚
하늘과 짝이 되는 바른 주인을 만나야 하니(遇其配主) 시간이 걸려도(雖旬) 허물이 없고(无咎) 만나러 나가면(往) 자랑이 있다(有尚)

  시경에서 “은나라가 백성들을 잃지 않았을 때엔 상제(上帝)와 짝할 수 있었도다”[시경 대아.문왕편]라고 하였으니 바른 주인이란 백성들이 저절로 모여들게 만드는 덕 있는 군주일 것이다. 10년(旬)은 주역에서 정성을 뜻하는 시간으로 여러 번 등장하였다. 간절히 원하면 만날 수 있다는 뜻이다. 수동적으로 간절히 원하는 것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 간절한 만남을 성사시키려 해도 자랑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공자께서 ‘임을 사모하지만 집이 멀어 안타깝다'는 고시(古詩)를 접하시고는 “진실로 간절히 사모하지 않는 까닭이다. 어찌 멀겠느냐?”[논어 제9편 자한 제31장]고 하셨다. 진정으로 간절하면 멀리 있는 것은 없다.

 

豊其蔀 日中見斗 往 得疑疾 有孚發若 吉
풍요의 기운이 막히니(豊其蔀) 해가 중천에 있음에도 북두칠성이 보인다(日中見斗) 나아가면(往) 의심병만 생기게 될 것이니(得疑疾) 신념을 고양한 후가 되어야(有孚發若) 길(吉)하다
.
  해가 중천에 있음에도 북두칠성이 보이는 까닭은 세상이 어둡기 때문이다. 작은 별이 보일 정도는 아니니 암흑의 상태는 아닌 수준이다. 북두칠성은 곧 바른 신하를 의미한다. 왕의 눈과 귀를 막고 세상을 어둡게 하는 간신들이 득세하고 있는 세상이나 바른 신하들도 빛을 내고 있어 다행스러운 상황이다. 그래도 여전히 어두우니 백성들의 신임을 완전히 얻을 수는 없어 의심이 있을 것이다. 백성들의 신임을 얻은 후에 나아가야 길하다고 한다.

 

豊其沛 日中見沬 折其右肱 无咎
풍요의 기운이 장막에 가려(豊其沛) 해가 중천에 있으나 작은 별이 보인다(日中見沬) 오른팔이 꺾여야(折其右肱) 허물이 없다(无咎)

  작은 별이 보일 정도이니 해는 중천에 있어도 암흑천지가 된 것이다. 작은 별, 즉 소인유(小人儒)정도만 되어도 빛나 보일 정도이니 간신들이 세상을 어둠으로 장악해 버린 것이다. 오른팔은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간신배의 수괴를 상징한다. 그 오른팔을 꺾지 않고서는 희망이 없다. 아무리 바른 왕이라도 안동 김씨의 세도기처럼 세상이 암흑으로 변한 시기에는 어떤 힘도 쓸 수 없게 되는 것이다.

 

豊其蔀 日中見斗 遇其夷主 吉
풍요의 기운이 막혀(豊其蔀) 해가 중천에 있음에도 북두칠성이 보인다(日中見斗) 가짜 군주를 만나면(遇其夷主) 길(吉)하다.
  이주(夷主)는 문자 그대로는 오랑캐의 임금이나, 여기서는 가짜 군주라는 의미이다. 나쁜 뜻이 아니라 천자의 지위를 탐내는 자가 아니고 세상을 바르게 하려는 이를 뜻한다. 군주가 되고도 능히 남을만한 인덕을 가졌으나 외곽에 있는 현자이니 예컨대, 공자 같은 분도 이 이주(夷主)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이 이주(夷主)가 힘을 쓸 수 있는 것도 북두칠성이 빛나는 세상이어야 한다. 작은 별이 빛나는 세상이라면 어렵다. 공자께서도 “만일 나를 써 주는 사람이 있더라도 일년은 지나야 어느 정도 토대를 갖추고 삼년은 지나야 충분히 이룰 수 있을 것이다”[논어 제13편 자로 제10장]고 하셨다. 수치상 3년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의미하니 한 사람의 힘으로 세상을 바로잡기란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來章 有慶譽 吉
와서 빛내면(來章) 경사와 명예가 있으리니(有慶譽) 길(吉)하다.

  임금의 지위를 탐내지 않고 그 역할을 탐내는 자가 이주(夷主)이니, 임금을 대신하여 세상을 밝게 하고 바른 도를 세워나갈 것이다. 2번째 곤(坤)괘에서 ‘왕의 일을 따르면서 공로를 탐내지 않고 바른 결과만을 원한다(或從王事 无成有終)’고 한 것과 같은 뜻이다. ‘왕이 할 일을 대신하고 그 공로를 차지하지는 못해도 그 바른 결과를 위하여 목숨을 걸고 진력하는 것'이니, 이주가 와서 빛내는 것이 곧 혹종왕사(或從王事)하여 무성유종(无成有終)하고자 하는 것이다.

 

豊其屋 蔀其家 闚其戶 闃其无人 三歲不覿 凶
그 집이 풍요롭게 되니(豊其屋) 그 집을 막아버렸다(蔀其家). 그 집을 엿보니(闚其戶) 인기척도 사람도 없다(闃其无人) 오래 돌아보지 않을 것이니(三歲不覿) 흉(凶)하다.
 
  이주(夷主)의 덕으로 풍요롭게 되었다. 그러자 나누지도 뺏기지도 않으려고 문을 닫아버린 것이니 곧 이주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을 당한 것과 같은 것이다. 그렇게 각박하고 은혜를 모르는 집이라면 사람이 남아 있을 리 없고, 또한 오랫동안 사람들이 돌아보지도 않을 것이니 흉하다. 대학에서 “백성을 얻으면 나라를 얻고 백성을 잃으면 나라를 잃는다”[대학 제10장 치국평천하]고 하였으니 일시적인 물질적 풍요는 얻었지만 오랜 시간 백성들을 잃게 되었다. 이것은 풍(豊)이 아니라 흉(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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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歸妹 征 凶 无攸利
【初九】歸妹以娣 跛能履 征 吉
【九二】眇能視 利幽人之貞
【六三】歸妹以須 反歸以娣
【九四】歸妹愆期 遲歸有時
【六五】帝乙歸妹 其君之袂 不如其娣之袂良 月幾望吉
【上六】女 承筐无實 士 刲羊无血 无攸利

  귀매(歸妹)도 여자가 시집을 가는 것이지만 앞의 점(漸)괘가 시집을 가는 여인의 입장인 것과는 달리 귀매(歸妹)는 시집을 보내는 입장이다. 매(妹)는 일반적으로는 누이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여식을 의미한다. 매(妹)는 여자(女)와 작은 나뭇가지(未)가 합쳐진 문자인데, 남자 형제의 입장에서 보면 누이가 되지만,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여식이 되기 때문이다. 혹은, 고대의 결혼풍습이 자매를 함께 시집보냈기에 귀매라고 하였다고도 한다. 하여간 시집을 보내는 것은 본성적으로 눈물을 흐르게 만들지만, 그래야만 하는 것이 부모의 도리이기도 하다.

 

歸妹 征 凶 无攸利
여식을 시집 보내야 하나(歸妹) 강제로 나아가면(征) 흉(凶)하고 유리함이 없다(无攸利).

  여식이 혼기가 차서 시집을 보내야 하지만 사랑으로 금슬이 좋은 기러기 한 쌍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시집을 보내는 것이니 흉하고 유리함이 없는 것이다. 짝을 만나고 사람을 만나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강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주역은 3번째 준(屯)괘에서 만남에 애쓰지 마라고 하였고, 5번째 수(需)괘에서 귀인은 찾아온다고 하였다. 제 인연이 있는 것이다.

 

歸妹以娣 跛能履 征 吉
시집을 보내면 여동생을 딸려 보내야 한다(歸妹以娣) 절름발이가 잘 걸을 수 있음이니(跛能履) 그렇게 나아가야(征) 길(吉)하다.

  당시의 귀족들은 딸을 시집 보내면서 흔히 그 여동생이나 몸종을 함께 보냈다고 한다. 나이 어린 질녀나 여동생이나 몸종과 함께 시집을 보냈다고 하는데 이를 잉첩(媵妾)이라고 하였다. 낯선 집안으로 시집을 가게 되는 것이니 의지할 벗이 있으면 더 좋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을까? 순임금도 요임금으로부터 두 딸을 함께 얻었고 고대 중국사회에서는 잉첩이 흔한 일이였다. 아마도 정복시대에 남녀의 성비가 불균형을 이뤘던 까닭에 생겨났던 문화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眇能視 利幽人之貞
애꾸눈이 잘 보려는 욕심이면(眇能視) 끝까지 가두어두는 것이 이롭다(利幽人之貞).
  시집을 가려는 딸이 소위 '눈이 삔 것'이라서 말려야만 하는 결혼이다. 애꾸눈임에도 완벽하게 보고 있다고 과신을 하니 차라리 가두어두어야 한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했지만,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결혼도 있는 법이다. 고독해지고 적적해지는 것이 싫어 혼사를 막는 것이 아니다. 여식의 행복을 위해서 막는 것이니, 시집을 보내는 마음과 다르지 않는 마음이다.

 

歸妹以須 反歸以娣
시집 보내고 합방을 기다리게 하면(歸妹以須) 그 손아래가 될 것이다(反歸以娣).
  시집을 보내었는데 합방을 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딸려 보낸 여동생과 위치가 바뀌어 여동생의 손아래가 되어버릴 것이니 곧 하늘이 정해준 자매간의 지위가 인간의 맺음에 의하여 역전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하늘의 도를 거스르는 잘못은 합방을 기다리게 하였기 때문이다. 시집을 갔으면 몸과 마음을 하나로 합쳐야 한다.

 

歸妹愆期 遲歸有時
혼기를 놓쳐 시집보내야 하니(歸妹愆期) 지체가 되었지만 그 때가 있으니(遲歸有時) 서둘지 마라.
  혼기를 놓쳤다고 조급하여 아무 곳에나 시집 보내려 하는 것은 잘못이다. 하늘은 늦게 맺는 열매도 일찍 맺는 열매도 있음을 알려주었다. 조급하게 서둔다고 해결될 것이 아니니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하늘의 뜻이고 사람의 힘으로 강제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帝乙歸妹 其君之袂 不如其娣之袂良 月幾望 吉
제을이 딸아이를 시집보내니(帝乙歸妹) 그 딸의 소매가(其君之袂) 그 여동생의 소매만 같지 못하다면(不如其娣之袂良) 임신이 되어야(月幾望) 길(吉)하다.

  군(君)은 여기서는 왕의 부인을 칭하는데, 역사적으로는 제을이 문왕에게 딸을 시집보낸 것을 말한다. 소매는 미색을 상징한다. 제을이 딸아이를 시집 보내는데 여동생보다 행색이 초라했다. 월기망(月幾望)은 9번째소축(小畜)괘와 마찬가지로 임신을 상징한다. 여동생과 함께 가는 시집은 때로는 절름발이가 잘 걸을 수 있는 도움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손아래가 바뀌는 위협이 되기도 한다.

 

女 承筐无實 士 刲羊无血 无攸利
여인(女)이 알맹이가 없는 바구니로 받들고(承筐无實) 총각(士)이 양을 찔렀으나 피가 없으니(刲羊无血) 유리할 것이 없다(无攸利)
  옛 중국의 귀족들은 혼인시 종묘에 제물을 바치는 예를 행하였는데, 여자는 과일이 든 대바구니를 바쳤고, 남자는 칼로 양을 찔러 그 피를 바쳤다. 모두 자식을 바라는 의식이었다. 알맹이가 없는 바구니는 난자를 생산하지 못하는 여인을 상징하고 총각이 피를 내지 못함은 정자를 생산하지 못함을 상징하는 것이다. 즉 결혼을 하였으나 자식을 볼 수 없는 그런 혼사를 말한다.

  요즘은 의술이 발달하여 예전보다 나아졌지만, 그 비용이 엄청나게 든다. 더 낳기 싫어하는 부모들에게 어떤 혜택을 주어 마음을 변하게 하려는 정책보다는, 정말 아이를 간절히 갖고 싶어하는데도 비용때문에 힘들어하는 부모들에게 도움을 주는건 어떨까? 재정이 너무 많이 들어서 힘든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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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漸 女歸 吉 利貞
【初六】鴻漸于干 小子 厲 有言 无咎
【六二】鴻漸于磐 飲食衎衎 吉
【九三】鴻漸于陸 夫征不復 婦孕不育 凶 利禦寇
【六四】鴻漸于木 或得其桷 无咎
【九五】鴻漸于陵 婦 三歲不孕 終莫之勝 吉
【上九】鴻漸于陸 其羽 可用爲儀 吉

  기러기가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이유는 사람이 질투할 만큼 금슬이 좋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남자가 장성하여 혼기가 되면 박달나무를 직접 깎아 기러기를 조각하여 그 교훈을 가슴깊이 새기도록 가르쳤다고 한다. 그리고 그 깎은 기러기 한 쌍을 들고 신부 집을 찾아가 혼인을 청하는 예를 올렸다고 전해진다. 기러기는 짝을 찾으면 죽을 때까지 다른 짝짓기를 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새끼가 있으면 새끼를 키우며 살고 새끼가 없으면 따라 죽는다고 한다. 수컷 기러기는 아무리 먼 거리라도 날아가서 먹이를 구해오므로 멀리 떨어져 부양을 하는 '기러기 아빠'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요즘 같은 이혼이 빈번하고 불륜이 무덤덤하게 받아들여지는 시대에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새이기도 하다. 주역에서 말하는 점(漸)괘는 여인의 나아감을 뜻한다.

 

漸 女歸 吉 利貞
나아감(漸)은 여인이 시집가는 것(女歸)이니 길(吉)하고 끝까지 이롭다(利貞).
  주역은 여인은 시집을 가야 길하다고 한다. 사람의 상상력은 기발하기에 '처녀귀신'이 생겼던 것 같다. 죽어서 보니 가장 원통한 여인은 시집가서 남편과 아이와 함께하는 가정생활을 경험하지 못한 여인이라는 데 공감대가 형성된 까닭일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요즘시대에는 이혼한 사람들도 많고 독신자들도 많다.

 

鴻漸于干 小子 厲 有言 无咎
기러기가 물가로 나아가니(鴻漸于干) 어린자녀(小子)가 위태로워(厲) 말들이 있겠지만(有言) 허물은 없다(无咎).
  기러기는 사랑으로 맺어진 혼사를 하러 시집가는 여인을 뜻한다. 정략결혼이 아니기에 사랑을 상징하는 기러기인 것이다. 그런데 물가로 나아가는 것은 자신도 쉽게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곳으로 나아간 것이다. 자연히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가정 일에 소홀해질 수 있어 어린자녀가 위태롭고 말들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허물은 아니다. 사랑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鴻漸于磐 飲食衎衎 吉
기러기가 반석으로 나아가니(鴻漸于磐) 마시고 먹는 것이 풍족하여(飲食衎衎) 길(吉)하다.
  시집가는 여인이 경제적인 걱정을 전혀 할 필요 없는 부유한 곳으로 시집을 간 것이니 길하다. 부유한 곳으로 시집간 것 때문에 길한 것이 아니라, 금슬 좋은 기러기 한 쌍인데 부수적으로 경제적인 근심까지 없으니 길한 것이다.

 

鴻漸于陸 夫征不復 婦孕不育 凶 利禦寇
기러기가 뭍으로 나아가니(鴻漸于陸) 남편이 멀리 나가서 돌아오지 못하고(夫征不復) 부인은 임신해도 키우기 어려워(婦孕不育) 흉(凶)하다. 궁핍해도 도적을 막아야 이롭다(利禦寇).
  여인이 사랑의 마음으로 힘들고 곤궁한 곳으로 시집을 간 것이다. 기러기는 암컷이 알을 품는 동안 수컷은 주위를 경계하여 지키는 새이다. 그러나 암컷을 지켜주고 있기에는 경제적 형편이 되지 못하고 물고기를 잡아올 곳은 멀리 있어 쉽게 돌아오지 못하니 곧, 벌이도 시원찮은 것이다. 힘들고 고생스러운 곳으로 시집을 간 것이어서 외부에서 보기에는 흉(凶)하지만 궁핍할지라도 도적을 막으면 이롭게 된다. 도적은 바른 마음을 훔쳐가는 내면에 잠재한 악마이다. 미움이 생겨 원망하여 사랑의 마음을 잃는 것을 말한다. 그런 도적을 막아 사랑의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결국은 이롭게 된다.

 

鴻漸于木 或得其桷 无咎
기러기가 나무로 나아가니(鴻漸于木) 혹 그 가지를 얻는다면(或得其桷) 허물이 없다(无咎).

  나무로 나아간 것은 함께 거주할 수 있는 주거가 완전하지 않은 상태로 시작을 한 것이다. 그러나 나무로 나아갔으니 그 가지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다. 조금만 노력하면 그 가지를 얻을 수 있는 곳으로 나아간 것이니 허물이 없다. 시작부터 지나치게 반석으로 나아간 기러기나 시작이 너무 초라한 뭍의 기러기보다는 쉽게 만날 수 있는 결합일 것 같다.

 

鴻漸于陵 婦 三歲不孕 終莫之勝 吉
기러기가 왕실로 나아갔으나(鴻漸于陵) 부인(婦)이 오랫동안 임신하지 못했다(三歲不孕) 그러나 끝내는 이기지 못할 것이니(終莫之勝) 길(吉)하다. 
  손을 보는 것이 귀한 왕실같은 엄청난 집안으로 시집갔으나 오랫동안 임신을 못하고 있다. 기러기는 강조한대로 금슬이 좋은 부부를 상징하니, 금슬이 좋기에 결국은 임신을 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금슬이 좋은 부부는 하늘이 시샘해도 소용없다는 뜻이다.

 

鴻漸于陸 其羽 可用爲儀 吉
기러기가 뭍으로 나아가나(鴻漸于陸) 그 날개짓을(其羽) 본보기로 삼을 만하니(可用爲儀) 길(吉)하다.

  위의 기러기 중에서 가장 가엾어 보이는 기러기는 뭍으로 나아간 기러기이다. 힘들고 고생스러운 곳으로 시집을 갔어도 그 어려움으로 인해 사랑의 마음을 잃지 않고(도적을 받아들이지 않고) 힘차게 날개짓을 하니 가히 그 사랑의 힘이 본보기로 삼을 만한 정도에 이르렀다. 곧 남편이 벌이가 힘들다면 오히려 적극적으로 힘찬 날개짓을 하겠다는 여인의 사랑이니 이겨내지 못할 것이 없을 것이다고 한다. 좋은 일만 함께 하겠다는 사랑이 아니라 굳은 일도 함께 하겠다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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艮其背 不獲其身 行其庭 不見其人 无咎
【初六】艮其趾 无咎 利永貞
【六二】艮其腓 不拯其隨 其心不快
【九三】艮其限 列其夤 厲 薰心
【六四】艮其身 无咎
【六五】艮其輔 言有序 悔亡
【上九】敦艮 吉

  간(艮)괘는 멈춤을 뜻하는 괘다. 멈추지 않고 쇠퇴하지 않는 것은 없다. 성장은 일정한 시기가 되면 멈추지만 간(艮)괘는 그러한 자연적인 멈춤이 아닌 사람의 멈춤을 말한다. 앞의 진(震)괘가 하늘의 도(道)를 무시하지 말라는 것이었으니, 간(艮)괘는 그 하늘의 도(道)를 본받는 사람은 언제 어떻게 멈추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너무 일찍 멈추어도 늦게 멈추지도 않아야 하며 단번에 멈추지도 말아야 한다. 성장이 언제 멈추었는지 모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완만한 경사를 타고 내려가듯이 하여야 한다. 그래서 간 괘는 31번째 함(咸)괘처럼 부부관계를 예로 들어 멈춤의 도(道)를 이야기하고 있다. 즉 멈춤이 나 혼자만의 일로서 의미를 가지는 경우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면 그 조화로움을 찾아 편안하게 유종의 미를 거두는 멈춤이어야 할 것이다.

 

艮其背 不獲其身 行其庭 不見其人 无咎
그 등에서 멈추고(艮其背) 그 몸을 붙잡지 않았기에(不獲其身) 그 뜰을 지나도(行其庭) 그 사람을 알아 볼 수 없으니(不見其人) 허물이 없다(无咎)
  등에서 멈추고 그 몸을 붙잡아 뒤돌아보게 하지도 않았으니 서로가 일면식도 없는 것이다. 그 뜰을 지나도 그 사람인지 알아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애초에 아무런 나아감이 없는 멈춤이었으니 그런 멈춤이라면 아무런 허물이 있을 수 없다. 이러한 멈춤은 근원적(元)인 멈춤이며 혼자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멈춤이다. 만남이 없으면 이별이 생길 여지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애시당초 멈출 생각이었다면 시작을 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

 

艮其趾 无咎 利永貞
그 발에서 멈추니(艮其趾) 허물이 없고(无咎) 이로움이 끝까지 지속된다(利永貞).
  함(咸)괘에서 부부관계를 통한 교감은 엄지발가락부터 시작한다고 하였다. 그러니 그 발에서 멈추는 것은 아주 초창기에 멈추는 것을 말한다. 아주 초기에 멈춘 것이므로 내적으로 허물도 없고 그 이로움이 끝까지 지속된다. 시작은 하였지만 시작하지 않는 것과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艮其腓 不拯其隨 其心不快
그 종아리에서 멈추니(艮其腓) 그 따르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여(不拯其隨) 불쾌하다(其心不快).

  그 종아리에서 멈추니 이미 반쯤 나아가다 멈춘 것이다. 내가 멈춤으로써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게 되는 단계가 되었으니 이미 멈춤이 나만의 일이 아닌 것이다. 상대방의 마음이 불쾌한 것은 당연하다. 이제는 조화로운 멈춤을 찾아야 한다. 함(咸)괘에서는 종아리에서 멈추는 것은 길하다고 했는데, 함괘에서 말하는 멈춤은 단순히 종아리의 애무를 멈추는 것을 말하고, 여기서의 멈춤은 전체적인 부부관계를 멈추는 것을 말한다.

 

艮其限 列其夤 厲 薰心
그 허리에서 멈추니(艮其限) 등살을 찢는 고통이고(列其夤) 위태롭고(厲) 애가 탄다(薰心)

  종아리에서 멈추는 것은 멈추어야 할 단계를 지나친 것이지만 그 허리에서 멈추는 것은 멈추지 말아야 할 단계까지 와서는 멈추는 것이다. 등살을 찢는 고통이며, 위태로움이며, 애태움이다. 전혀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이 없는 조화로움 없는 멈춤이다. 자연은 거칠지가 않다. 산이 갑자기 우뚝 서 있지도 않으며 대낮이 끝나도 사람들이 놀랄 만큼 거칠게 멈추어 어둠을 두렵게 하지는 않는다. 조화의 법도는 거친 것을 거부하고 상호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이다.

 

艮其身 无咎
그 몸을 붙잡고 멈추니(艮其身) 허물은 없다(无咎).
  허리까지 진행이 되었다면 관계를 끝내고 그 몸을 안아주며 멈추어야 하니 그래야 허물이 없다. 함(咸)괘에서 ‘관계가 끝난 후 등살을 애무함으로써(咸其脢) 후회가 없다(无悔)’고 하였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아예 시작을 하지 않던가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 초창기에 멈추어야지 상대방에게 해를 입히는 단계를 넘어섰다면 그 일은 마무리를 하고 멈추어야 한다. 배려심을 멈추지는 말아야 하는 까닭이다.

 

艮其輔 言有序 悔亡
그 뺨에서 멈추어(艮其輔) 입술을 조리있게 움직이니(言有序) 후회가 없다(悔亡).

  함(咸)괘에서 뺨과 혀를 애무함으로써 끝내는 부부관계의 마지막을 설명한 것과 같은 의미이다. 여성은 반복적으로도 다시 흥분을 느낄 수 있어 남성처럼 곧 몸과 마음도 허무감으로 돌아가지는 않기에 나의 기준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으로 마감을 하는 것이다. 완만한 경사로 평지와 이어지는 편안한 조화로움이다.

 

敦艮 吉
도탑게 멈추니(敦艮) 길(吉)하다.
  함(咸)괘에서 말했듯이 성(性)은 단순한 욕정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교감하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에 가벼운 입맞춤으로 도탑게 마무리를 하고 멈추어야 길(吉)한 것이다. 그래야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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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震 亨 震來虩虩 笑言啞啞 震驚百里 不喪七鬯
【初九】震來虩虩 後 笑言啞啞 吉
【六二】震來厲 億喪貝 躋于九陵 勿逐 七日得
【六三】震蘇蘇 震行 无眚
【九四】震遂泥
【六五】震往來 厲 意 无喪有事
【上六】震索索 視矍矍 征 凶 震不于其躬 于其鄰 无咎 婚媾 有言

  진(震)괘는 우레, 벼락을 말한다. 하늘이 사람에게 주는 경고이자 가르침이다.

 

震 亨 震來虩虩 笑言啞啞 震驚百里 不喪匕鬯
우레(震)는 힘차다(亨) 우레가 거침없이 오니 무섭고 두려워(震來虩虩) 웃음과 말소리도 잦아든다(笑言啞啞) 우레가 백리를 놀라게 해도(震驚百里) 숟가락과 창주그릇은 떨어뜨리지 마라(不喪匕鬯)
  숟가락(匕)과 창주그릇(鬯)은 모두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는 도구이다. 제사를 지낼 때의 엄숙함을 잃어버리는 것은 두려움 때문이다. 아무리 큰 일이 벌어져도 사람이 죽기밖에 더 하겠는가? 그러나 죽는 것은 천명이니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제사를 지내면서 죽음의 의미를 모르는 것이니 곧 중용에서 말한 '도끼자루를 잡고 도끼자루를 만들려고 나무를 자르면서 어떤 규격으로 잘라야 하는지를 멀리서 찾으려는 것'[중용 제13장]과 같은 것이다. 단순한 사상(死傷)에 대한 두려움만을 갖지 말라는 말이다.

 

震來虩虩 後 笑言啞啞 吉
우레가 와서 무섭고 두려운(震來虩虩) 후(後)에도 웃음과 말을 조신하게 해야(笑言啞啞) 길(吉)하다.
  우레가 끝난 후 아무 일도 없듯 웃고 떠들지 말고, 하늘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하늘을 우러러보라는 말이다. 단순한 사상(死傷)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하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라고 말한다. 중용에 “사람의 도리(道理)를 알고자 한다면 하늘의 이치를 알지 않을 수가 없다”[중용 제20장]고 하였다. 고래로부터 바른 길을 가지 않으면 천벌을 받고, 벼락을 맞는다고 하여 ‘벼락맞을 놈’이라는 욕설이 있다.

 

震來厲 億喪貝 躋于九陵 勿逐 七日得
우레가 와서 위태로우니(震來厲) 재물을 잃을까 걱정되어(億喪貝) 구릉으로 올라도(躋于九陵) 이미 잃은 것을 좆지는 말라(勿逐) 이레면 얻는다(七日得)
  재화는 다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7일은 음양오행의 순리에 따라 한번 순환하는 것으로 한번 순환하면 다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생명은 한번 잃으면 다시 얻을 수 없는 것이니 소탐대실 즉, 작은 것을 탐하여 큰 것을 잃지마라는 의미이다. 우레는 보통 많은 비가 동반된다. 그래서 비가 없는 ‘날벼락’이란 말이 생겼을 것이다. 우레의 강한 전기가 물을 타고 흐르기 때문에 젖고 물이 차기 쉬운 낮은 땅보다 높은 구릉으로 올라가야 안전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사실은 높은 곳이 더 위험하다고 한다.

 

震蘇蘇 震行 无眚
우레가 소소해도(震蘇蘇) 우레가 다 지나가야(震行) 재앙이 없을 것이다(无眚)
  소소(蘇蘇)하다는 말은 끝났는가 싶었는데 다시 살아나고 끝났는가 싶었는데 다시 살아나고 하는 것이다. 완전히 지나가야(行) 재앙이 끝난 것이니, 서두르지 말라는 뜻이다. 조급한 마음이 화를 부르니 인내심을 길러야 한다.

 

震遂泥
우레는 진흙을 따라 사라지는 법이다(震遂泥)
  벼락은 높은 물체를 향해 떨어지고 난 후 그 전류가 진흙을 타고 퍼진다고 한다. 그래서 젖은 땅에 누우면 더 위험하다고 알려져 있다. 비가 반드시 지금 와야 하는 지는 몰라도 비는 아래로 내리는 법칙에 어긋나지 않으며, 우레가 반드시 지금 와야 하는지는 몰라도 우레가 진흙으로 퍼져 사라지는 자연법칙을 거스르지는 않는다. 시작은 몰라도 끝은 알 수 있으니 사람의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왜 지금의 세상에 태어났는지는 알기 어렵지만 죽어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은 알 수 있다.

 

震往來 厲 意 无喪有事
우레가 지나가더라도 다시 오는 것이니(震往來) 두려워하고(厲) 헤아려보라(意) 잃지 않으려면 할 일이 있다(无喪有事)
  우레가 한번 오고 평생 다시 오지 않는 것이 아니다. 하늘을 두려워하고 헤아려 마땅히 대비해야 한다. 요즘세상에서처럼 건물에 피뢰침을 설치하는 것을 뜻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이다. 하늘이 사람을 두렵게 한 뜻은 스스로 천리를 거스르지 않고 바르게 살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해 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래서 벼락맞을 짓을 하지는 않아야겠다는 그 바른 도(道)를 잃지 말라는 뜻이다.

 

震索索 視矍矍 征 凶 震不于其躬 于其鄰 无咎 婚媾 有言
우레가 색색할 때(震索索) 눈을 두리번거리며(視矍矍) 나아가는 것은(征) 흉(凶)하다. 우레가 몸에 떨어지지 않았고(震不于其躬) 그 옆에 떨어졌으니(于其鄰) 허물은 없겠지만(无咎) 혼인을 청한다면(婚媾) 말들이 있을 것이다(有言).
  색색(索索)한 것은 완전히는 아니지만 거의 멈춘듯한 상태를 말한다. 우레가 거의 멈추었을때 눈을 두리번거리는 것은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기회를 포착해 뭔가 이득을 챙기려는 조급함을 보이는 사람이다. 곧 날랜 기회주의자를 말함이다. 이 사람에게 벼락이 직접 떨어지지 않고 옆에 떨어졌으니 사람이 다치지는 않아서 허물은 없다. 그러나 "모진놈 옆에 있다가 벼락맞는다"고 했는데 그가 혼인을 청함은 곧 모진놈 옆으로 오라는 것이므로 여러 말들이 있을 것이다. 아직 완전히 우레가 멈춘 것이 아닌 색색(索索)한 시기이며 하늘의 경고가 끝나지 않은 시기이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고 했지만 일찍 일어나는 벌레는 더 빨리 잡아 먹힌다. ‘아 좋은말이구나’ 하고서는 금방 지나쳐 잊어버리는 그러한 찰나성과 가벼움을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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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鼎 元吉亨
【初六】鼎顛趾 利出否 得妾 以其子 无咎
【九二】鼎有實 我仇 有疾 不我能 即 吉
【九三】鼎耳革 其行 塞 雉膏不食 方雨虧悔 終吉
【九四】鼎折足 覆公餗 其形渥 凶
【六五】鼎黃耳金鉉 利貞
【上九】鼎玉鉉 大吉 无不利

  고래로부터 정(鼎)은 권력을 상징하는 의미로 사용하곤 했다. 중국 후한말의 위촉오의 대립기를 삼국정립(三國鼎立)의 시대라고 하고, 원나라 무종이 어머니와 동생과 권력을 나누었던 시대를 삼궁정립(三宮鼎立)의 시대라고도 한다. 정(鼎)이라는 물건에 새왕조가 주창하는 법률을 새겨넣기도 했다.

  정(鼎)은 솥을 형상화한 글자이다. 솥은 각종의 재료를 넣어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니, 곧 세금과 역(役)등의 제도를 통해 사회전체가 이로움을 나누는 것을 말한다. 앞의 혁(革)괘가 천명을 바꾸는 혁명이었기에 혁명 이후에는 백성들과 그 권리의무관계를 새로이 해야 하는 것이다. 조세와 역(役)의 목적은 지배층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잘 요리해서 나누어 먹는 음식처럼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잘 관리되고 사용되어야 한다.

 

鼎 元吉亨
제도(鼎)는 초창기에 완비되어야 길하다(元吉亨)
  솥은 조세와 역(役)등의 의무를 위한 제도를 말하는데, 원(元)과 형(亨)사이에 있어야 길하다고 한다. 나라가 새로이 세워지면(元) 곧 세금, 노역 등의 제도를 완비하여 성장(亨)을 준비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鼎顛趾 利出否 得妾 以其子 无咎
발이 뒤집혀진 솥단지(鼎顛趾)는 나가는 것이 없어서 이롭다(利出否) 남는 돈과 힘으로 첩을 얻으면(得妾) 그 자식을 보게 될 것이니(以其子) 허물이 없다(无咎)
  거꾸로 뒤집혀 있는 솥단지는 혁명을 이루고 난 뒤의 새로운 제도가 시행되기까지의 공백기간이다. 솥단지가 거꾸로 있으니 아무것도 담을 수 없다. 세금도 노동력도 징발하지 않는 것이니 그 남는 돈과 힘으로 첩을 얻어 자식을 보면 허물이 없다고 한다. 문명이 발달하지 못했던 예전에는 남는 돈으로 얻고자 하였던 것은 첩을 두는 것이었기 때문일 지 모른다. 민초들은 당면한 현실에 민감하나 그것은 당연한 것이므로 허물은 아닐 것이다.

 

鼎有實 我仇 有疾 不我能 即 吉
재료가 풍족한 솥단지(鼎有實)를 두고 나의 원수(我仇)가 병이 있다(有疾). 능히 내가 취할 수 있어도 하지 않으니(不我能) 그래야(即) 길(吉)하다.
  제도가 정비되고 이제 그 징수관이 재료를 잘 모아 담았는데, 백성들의 입장에서 보면 거두어가는 그 징수관은 원수와도 같은 반갑지 않는 사람이다. 그 징수관이 병이 있어 내가 능히 취할 수 있다는 것은 역(役)의 의무를 적게 할 수 있고, 모아놓은 재료도 나의 이익으로 가져올 수 있는 편법을 동원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할 수만 있다면 납세의 의무와 군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려는 것은 고대로부터 변함없는 마음인 까닭이다. 그러나 할 수 있어도 하지 않아야 길하니, 세금과 역은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쓰여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역은 정당하게 세금을 적게 낼 수 있는 방법은 누구나 제대로 세금을 내고 잘 관리 집행하면 결국은 적게 거둬도 충분할 것이니 궁극적으로 세금을 적게 낼 수 있다고 본다.

 

鼎耳革 其行 塞 雉膏不食 方雨虧悔 終吉
솥단지의 귀가 뜨거워져(鼎耳革) 옮기는 것이(其行) 옹색해져(塞) 맛있는 살찐 꿩고기를 먹을 수 없게 되었으나(雉膏不食) 비가와서 후회를 없앨 것이니(方雨虧悔) 마침내 길하게 될 것이다(終吉).
  솥단지의 귀가 뜨거워져 옮길 수 없게 되었으니 모인 사람들이 살찐 꿩고기를 먹을 수가 없게 되었다. 즉 모인 세금과 모인 노동력을 적재적소에 활용하여 분배를 하지 못하는 집행의 문제를 의미한다. 그러나 하늘이 그대로 두지 않고 비를 내려서 뜨거워진 솥단지의 귀를 식혀주어 쉽게 옮겨서 함께 나누어 먹을 수 있도록 해 줄 것이니 끝이 길하다고 한다. 주역은 전체를 이롭게 하고자 하는 바른 일은 하늘이 도와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鼎折足 覆公餗 其形渥 凶
솥의 다리가 부러진다면(鼎折足) 공속이 뒤집혀 쏟아지고(覆公餗) 그 몸이 젖어버릴 것이니(其形渥) 흉(凶)하다.
  솥의 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재료를 담았으니 곧, 지나치게 세금을 거두고 지나치게 노동력을 징발한 것을 말한다. 공속(公餗)은 공공이 함께 먹어야 할 음식인데, 뒤집혀 쏟아지고 옮기던 사람의 몸이 데일 것이니 흉하다. 탐관오리의 횡포에 화가 난 민중들이 창고를 불태워버리는 것이 연상되는 효이다. 아무도 요리를 먹지 못한다.

 

鼎黃耳金鉉 利貞
솥단지는 황금손잡이와 쇠고리를 달면(鼎黃耳金鉉) 끝까지 이롭다(利貞)
  황금손잡이는 훌륭한 군주를 뜻하고 쇠고리는 잘 따르는 신하를 말한다. 즉, 훌륭한 군주가 신하를 잘 부려서 재정을 잘 관리하고 분배하면 끝까지 이롭다.

 

鼎玉鉉 大吉 无不利
솥에 옥고리를 달면(鼎玉鉉) 크게 길하니(大吉) 이롭지 않음이 없다(无不利)
  쇠고리는 군주의 명을 잘 따르는 신하를 말하지만, 군주의 지휘를 받아야만 하는 신하이다. 그러나 옥고리는 스스로 잘 관리하고 집행할 수 있는 능력있는 신하를 말한다. 바르고 재능도 있는 훌륭한 재정전문가가 더 대길하다고 하니, 우리역사로 비유하자면 육조직계제(六曹直啓制)보다는 의정부서사제(議政府署事制)를 더 선호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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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革 已日 乃孚 元亨利貞 悔亡
【初九】鞏用黃之革
【六二】已日 乃革之 征 吉 无咎
【九三】征 凶 貞厲 革言三就 有孚
【九四】悔亡 有孚 改命 吉
【九五】大人 虎變 未占 有孚
【上六】君子 豹變 小人 革面 征 凶 居貞 吉

  혁명과 반란은 구별하기 힘든 개념이며, 역사의 평가도 일정하지 못하다. 어떤 시대는 혁명이라고 말하고 어떤 시대는 반란으로 말한다. 왕건과 이성계가 만약 실패하였다면 혁명이 될 수 있을까? 그러나 실패하였지만 전봉준의 농민혁명이라고 한다. '성공'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지만 주역은 성공했기 때문에 혁명이 아니라, 혁명이기에 성공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때가 도래하고 바른 뜻이 있고 민심도 따르기 때문에 반드시 성공하는 것이라 한다.

 

革 已日 乃孚 元亨利貞 悔亡
혁명(革)은 이미 때가 도래하고(已日) 뜻이 있기에(乃孚) 처음부터 끝까지(元亨利貞) 후회가 없는 것이다(悔亡)
  차면 기우는 것이 주역이 말하는 변화의 법칙이요, 때가 도래하였음은 차서 기우는 때가 도래한 것이다. 곧 천명을 얻은 자가 불선(不善)으로 나가가 백성의 신임을 잃어 천명을 잃은 때이다. 대학에서 “위대한 천명을 지키기가 쉽지 않으니 백성의 마음을 얻어야 나라를 얻고 백성의 마음을 잃으면 나라를 잃게 된다”[대학 제10장 치국평천하]하였다.

 

鞏用黃之革
황소의 가죽으로 단단히 묶어야 한다(鞏用黃之革)
  개혁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황소의 가죽처럼 굳세어야 하고, 또한 백성들의 신임을 확고히 얻은 것을 말한다. 어려움을 만나면 곧 포기하거나 현실과 타협하려 하는 약한 마음으로는 개혁을 시작하지 않는 것만 못할 것이다.

 

已日 乃革之 征 吉 无咎
때가 도래하였다면(已日) 개혁하여(乃革之) 나아감(征)은 길(吉)하고 허물이 없다(无咎)
  가장 중요한 것이 개혁은 때가 도래하여야 하는 것이다. 잠용일때 움직이지 마라는 건(乾)괘의 뜻이다. 시기가 맞아야 한다. 일시적인 실정으로 민심이 흔들리는 상태라고 해서 곧 천명이 바뀌지는 않는다. 지나치게 서두는 것은 교만일 따름이다. 개선의 가능성이 없어진 때가 나아가야 할 때이다.

 

征 凶 貞厲 革言三就 有孚
나아감(征)은 일견 흉(凶)하고 끝까지 위태로우니(貞厲) 혁언을 세 번 성취해야만(革言三就) 비로소 신임을 얻는다(有孚)
  혁명이란 곧 백성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그러나 초기에는 난과 쉽게 구별이 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처음에는 힘과 기상으로 부딪혀 나아갈 수 밖에 없어 흉하고 끝까지 위태로움이 따르는 법이다. 45번째 췌(萃)괘에서 사람을 모을 때는 큰 희생양(大牲)과 호통(號)으로 시작하는 것이 순서라 했다. 그 이후에 신념을 펼치고 신임을 얻어야 한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개혁으로 나아가는 초기는 신념이 아니라 힘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한다. 혁언을 세 번 성취하는 것은 공언한 것을 힘과 기상으로 성취하는 것을 말한다.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어야 하늘의 뜻을 받은 것으로 여겨 비로소 신임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悔亡 有孚 改命 吉
후회가 없으리니(悔亡) 신임이 있다면(有孚) 천명을 고쳐도(改命) 길(吉)하다.
  혁언을 세 번 성취하고 신임을 얻었다면 곧 천명(天命)을 얻은 것이다. 군주의 시대에는 군주의 지위도 천명(天命)이라 여겼다. 그러나 천명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니 혁언을 세 번 성취하고 신임을 얻었다면 천명을 고쳐도 길하다고 한다. 대학에서도 “천명은 일정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선하면 얻게 되고 선하지 않으면 잃게 됨을 말한다.”[대학 제10장 치국평천하]고 하였다.

 

大人 虎變 未占 有孚
대인(大人)이 호랑이처럼 변하면(虎變) 점을 치지 아니하여도(未占) 신임을 얻을 수 있다(有孚)

  대인은 선을 추구하는 사람이며, 덕으로 존경을 받고 있던 인물이니 유순하던 그 사람이 호랑이처럼 변하여 나아가는 것이다. 아래 효의 표범과는 다른 나아감이다. 점을 칠 필요도 없다는 것은 아무런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뜻이다. 절대적으로 신임을 얻고 천명을 받을 것이다.

 

君子 豹變 小人 革面 征 凶 居貞 吉
군자(君子)가 표범처럼 변하여(豹變) 소인(小人)이 두려움에 낯을 바꾸어(革面) 나아가면(征) 흉(凶)하니 끝까지 멈추는 것(居貞)이 길(吉)하다.
  대인은 표범으로는 변할 수는 없기에 대인이며, 군자는 표범으로도 변할 수도 있기에 군자이다. 호랑이는 사람들이 저절로 받들고 따르기에 신임을 얻은 것이지만, 표범은 위협하고 두려움을 느끼게 하여 강제로 따르게 하는 것을 말한다. 덕으로 감화시키는 것과 힘으로 굽히게 만드는 것과의 차이이다. 소인들도 두려움으로 그렇게 나아가는 길은 반란을 따르는 것이니 끝까지 따르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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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kebi.textcube.com/ BlogIcon 깨비 2010.04.25 17: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을 읽다보니 차베스의 혁명이 생각나는군요. 말씀하신대로 혁명과 반란의 구별은 '백성들'의 신임여부에 있는 것같습니다. 무언가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있었는데 글쓰신걸 보고 나니 왜인지 마음이 안정되네요.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48

井改邑 不改井 无喪无得 往來井井 汔至 亦未繘井 羸其瓶 凶
【初六】井泥不食 舊井 无禽
【九二】井谷 射鮒 甕敝漏
【九三】井渫不食 爲我心惻 可用汲 王明 並受其福
【六四】井甃 无咎
【九五】井 洌寒泉食
【上六】井收勿幕 有孚 元吉

  이전의 곤(困)괘는 마음이 중용(中庸)의 도를 벗어났기 때문에 겪는 곤경이었다. 그래서 이어지는 정(井)괘는 그 마음을 중용의 도에 따르도록 하는 것을 의미하니 쉼없이 배움을 추구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물물은 아무리 사용해도 부족하지 않으니 끊임없이 샘솟는다. 그래야 좋은 우물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머리도 끊임없이 사용하고 채우면서 깨끗하고 차게 유지시켜야 한다. 그렇게 순환을 시키지 않으면 곧 고여서 썩게 되어 사용하지 못하는 우물이 되어버린다. 성인으로 추앙 받는 공자께서도 미혹되지 않게 된 40, 천명까지 알게 된 50, 귀가 순해진 60, 마음대로 행동해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게 된 70에 이르기까지 한시도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공자께서는 자랑하시기도 하셨다. “열 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에도 나처럼 충실하고 믿을 만한 사람은 반드시 있겠지만, 나처럼 이렇게 배움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논어 제5편 위령공 제28장]

 

井改邑 不改井 无喪无得
우물이 마을을 열지만(井改邑) 마을이 우물을 열수는 없다(不改井) 우물물은 줄지도 넘치지도 않아야 한다(无喪无得)

  맑고 깨끗하고 줄지도 넘치지도 않는 좋은 우물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여들어 마을이 형성되는 것처럼, 좋은 우물과 같은 사람이 사람을 모이게 한다. 그러나 고을을 만들만큼 사람이 많이 모인 곳이라고 하여 그 곳에 좋은 우물을 만들어 낼 수는 없는 것처럼, 고을을 형성할 정도로 사람이 모였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우물과 같은 사람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 순서가 뒤바뀐 것이다. 우물물은 줄지도 넘치지도 않아야 좋은 우물이니, 기존의 가르침을 완전히 무시하고 새로움만 추구하는 배움은 곤란하고 기존의 가르침만 고집하여 새로운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잘못이다. 중용을 지켜야 한다.

 

往來井井 汔至 亦未繘井 羸其瓶 凶
사람들이 반복해서 우물을 왕래하면(往來井井) 우물이 금새 다 마르고(汔至) 두레박 줄이 우물물에 미치지 못하여(亦未繘井) 두레박조차 쓸모가 없게 될 것이니(羸其瓶) 흉(凶)하다.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지 않으면 곧 그 밑천이 보이게 될 것이니, 사람들이 우물을 거듭(井井) 찾으면 우물이 말라서 퍼 갈 물이 없게 될 것이니 사람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는 우물이 되어버릴 것이다. 두레박은 사람들에게 우물물을 퍼 주었던 조력자이니, 두레박은 군주를 상징하고 우물은 인재를 상징한다. 인재가 받쳐주지 않는 군주도 쓸모가 없다. 융통성 없는 고집스러움으로 중요한 두 사람이 쓸모없게 되었고, 전체 사람들이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井泥不食 舊井 无禽
우물물이 진흙물이 되어 먹을 수 없는(井泥不食) 오래 방치된 우물이라면(舊井) 날짐승조차 없을 것이다(无禽)

  스스로 쓸모없게 되었고 그 조력자까지도 쓸모없게 만들었음에도 깨닫지 못하고 낡은 이론만 고수하고 배우려 하지 않으니 날짐승조차도 찾아오지 않는다. 사람은 물론이요 이제는 짐승조차도 외면하는 아무런 쓸모없는 생명이 되어버린 것이다.

 

井谷 射鮒 甕敝漏
우물물이 골짜기를 타고 흘러(井谷) 붕어에게 향하고(射鮒) 두레박도 깨져서 물이 샌다(甕敝漏).

  짐승조차도 먹어주지 않으니 그 진흙탕이 된 우물물이 골짜기를 타고 흘러 미물인 붕어에게만 혜택을 줄 수 있게 된 것이다. 참으로 초라한 우물이 되었다. 두레박은 이미 쓸모가 없어졌기에 사람들이 깨어버린 까닭일 것이다. 군주와 신하의 관계라면 나라의 지휘부가 함께 망하는 것이다. 절대 진리란 없다. 시대정신에 맞아야 한다. 공자께서도 “삼베 관을 쓴 것이 예(禮)인데 지금은 명주 관이 검소하니 나는 대중과 시류를 따르겠다. 대청 아래에서 읍하는 것이 예(禮)인데 지금은 대청 위에서 읍하지만 교만하니 대중과 시류에 어긋나더라도 대청 아래에서 읍하겠다”[논어 제9편 자한 제3장]고 하셨다. 변함없이 고수해야 할 원칙도 있고 시대정신에 따라 융통성을 보일 수 있는 것도 있으니 지나치게 원칙만 고집하여 미물에게만 쓸모 있을 따름인 학식이어서는 곤란하다.

 

井渫不食 爲我心惻 可用汲 王明 並受其福
우물을 깨끗이 해도 먹을 수 없으니(井渫不食) 내 마음이 측은하다(爲我心惻) 능히 물을 공급할 수 있다면(可用汲) 임금을 밝혀(王明) 더불어 그 복을 받도록 하라(並受其福).
  설(渫)은 우물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우물이 깨끗하게 되었으니, 그 인재가 이제 바른 길로 되돌아 온 것이다. 그런데 그 깨끗한 물을 공급할 수 있는 두레박이 깨어지고 없다. 이미 군주의 마음이 돌아섰기 때문일 것이며, 군주의 신임을 잃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물물과 그것을 퍼 내는 두레박 모두가 조화를 이뤄야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이제 두레박만 있으면 되니, 왕을 일깨워 두레박의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그 인재도, 군주도, 마을 사람들도 모두 그 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井甃 无咎
우물은 돌담을 쌓아 정비해야(井甃) 허물이 없다(无咎)
  우물은 돌담을 쌓는 것은 아무나 함부로 망칠 수 없도록 자존심을 지켜주는 것을 말함이니, 곧 공자께서 말씀하신 대청아래에서 읍함이며, 시대를 가리지 않는 원칙을 고수하는 그 신념은 지켜주는 것을 말한다.

 

井 洌寒泉食
우물물은(井) 차고 맑고 끊임없이 샘솟아야 먹을 수 있다(洌寒泉食)
  그러나 돌담을 지나치게 쌓아서 순환시키지 않으려 한다면 고이고 썩어 쓸모없는 우물이 되고 만다. 곧 공자께서 말씀하신 명주 관을 쓰는 것을 말함이며, 시대정신을 따르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강제로라도 차고 맑게 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井收勿幕 有孚 元吉
우물을 거두더라도 덮개를 씌우려 하지는 말아야 하니(井收勿幕) 신념이 있어야(有孚) 근원적으로 길하다(元吉).
  우물을 거두는 것은 고여서 썩는 것을 방비함이다. 그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덮개를 씌우는 것은 그 우물의 자존까지 뭉개는 것이니 지나친 것이다. 억지로라도 시대정신을 따라서 나아가게 해야 하지만 그 신념까지 무너뜨리는 것은 옳지 못하니 스스로 깨우쳐 나아갈 수 있는 기회까지 박탈하는 것이어서는 아니 된다. 그래야 근원적으로 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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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困 亨 貞 大人 吉 无咎 有言 不信
【初六】臀困于株木 入于幽谷 三歲不覿
【九二】困于酒食 朱紱方來 利用享祀 征 凶 无咎
【六三】困于石 據于蒺蔾 入于其宮 不見其妻 凶
【九四】來徐徐 困于金車 吝 有終
【九五】劓刖 困于赤紱 乃徐有說 利用祭祀
【上六】困于葛藟 于臲卼 曰動悔 有悔 征 吉

  곤(困)괘는 내적으로 부족하거나 지나쳐 중용에 곧게 서지(利) 못함을 뜻하는 괘이다. 공자께서 “도를 실천하지 않는 이유를 나는 안다. 지혜로운 사람은 너무 똑똑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모자라기 때문이다”[중용 제4장]라고 하셨다. 곤(困)은 외부적인 상황 때문에 겪게 되는 곤란이 아니라 전적으로 마음이 중용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곤경이다.


困 亨 貞 大人 吉 无咎 有言 不信
곤경(困)은 모자라거나(亨) 지나친(貞) 이유이니 대인(大人)은 길(吉)하고 허물이 없다(无咎) 여러 소리가 들리겠지만(有言) 신뢰할 수 없다(不信)
  곤경(困)은 열매를 맺지(利) 못하고 있는 것이다. 좌로 치우쳐 여물지 못했거나(亨) 우로 치우쳐 기울어(貞) 만나게 되는 것이다. 대인이 길한 이유는 대인은 중용(中庸)의 도를 알기 때문이다. 곤경에 부딪히면 여러 소리들이 들리게 마련이다. 경청할 소리도 있으나 도움의 소리가 아니라 잘난 척 스승을 자처하는 교만의 소리도 있을 것이다. 약자에게는 입을 열고 모여들고 강자에게는 귀를 열고 모여들기 때문이다.

 

臀困于株木 入于幽谷 三歲不覿
곤장을 맞아 엉덩이가 곤란을 겪으려 하면(臀困于株木) 어두운 골짜기로 들어가(入于幽谷) 삼년 동안 세상을 돌아보지 마라(三歲不覿).

  죄인으로 몰려 부당한 형벌을 받게 되는 곤경에 처하니, 세상의 도가 무너졌는데 나아가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시기에는 은둔 해야 하는 것이 중용이다.

 

困于酒食 朱紱方來 利用享祀 征 凶 无咎
먹거리로 인한 곤경에 처하면(困于酒食) 주황색가리개를 하고 찾아가(朱紱方來) 제사를 드리는 것이 이롭다(利用享祀) 내세우면(征) 흉(凶)하나 허물은 없다(无咎)

  먹거리로 곤경에 처하니 곧 궁핍한 가난이다. 주불(朱紱)은 천자의 명으로 제후나 공경의 높은 지위의 신하가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던 가리개이다. 당장 주불을 받을만한 능력이 있는 자가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무능력해서가 아니라 뜻을 지나치게 숭상하기 때문에 중용을 벗어난 것이다. 길흉(吉凶)은 외면적 시각이고, 허물(咎)은 내면적 시각이다. 자리를 달라고 내세우면 보기에 흉하지만 허물은 없다. 때를 기다리는 수(需)괘에서 말한 경제적인 기반 속에서 기다림(需于酒食)이어야 중용이기 때문이다.

 

困于石 據于蒺蔾 入于其宮 不見其妻 凶
돌 위의 곤경(困于石)으로 가시덤불 속에서 잠을 청하니(據于蒺蔾) 집에 들어가더라도(于其宮) 그 아내를 만날 수 없을 것이라(不見其妻) 흉(凶)하다.
  돌 위에서 자는 것은 부부관계를 혐오하는 지나치게 고상함을 따르려는 곤경이다. 납가새(蔾)는 가시덤불을 이루는 한해살이 풀로 그 곳에서 잠든다는 것은 성욕을 참아내는 것을 의미한다. 지나치게 고상하여 마음을 닫았으니 그 아내가 만나주지 않을 것이라 흉하다. 동물적 본성을 지나치게 혐오하지 말아야 한다. 대소변을 누는 것도 고상한 일은 아니다.

 

來徐徐 困于金車 吝 有終
서서히 오는(來徐徐) 금차에서의 곤경(困于金車)은 궁색해지면(吝) 끝낼 수 있다(有終)
  금차에서의 곤경은 부자의 곤경이다. 서서히 오는 것은 이웃들의 수근거림이며, 그 까닭은 인색하기 때문이다. 재물을 베풀어 스스로 궁색해지면 그 곤경은 마무리를 할 수 있다. 부자는 욕심을 줄이고 그 재물을 나누는 것이 중용이다.

 

劓刖 困于赤紱 乃徐有說 利用祭祀
코를 베이고 다리를 절단 당하는(劓刖) 적불에서의 곤경(困于赤紱)은 천천히 기쁘게 하여야 하니(乃徐有說) 제사를 지내는 것이 이롭다(利用祭祀)
  적불은 천자의 명으로 대부들이 제사에 사용했던 가리개이다. 주불(朱紱)을 받는 신하보다 낮은 계급의 신하이다. 코가 베이고 다리가 절단 당하는 형벌을 받은 까닭은 제 분수를 모르고 제사에 참석하라는 천자의 명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자의 명을 받들어 기쁘게 하기 위해 제사를 지내는 것이 이롭다. 공자께서는 “그 지위에 있지 않으면 그 정사에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논어 제8편 태백 제14장]고 하셨다. 본분을 넘어서는 것이기에 중용을 벗어난 것이다. 또한, 갑자기 기쁘게 하는 것은 변절자가 가지는 태도이니 서서히 고집을 꺾어 기쁘게 하는 것이 중용을 따르는 것이다.

 

困于葛藟 于臲卼 曰動悔 有悔 征 吉
칡덩굴처럼 얽히고 섥힌 곤경(困于葛藟)과 위태위태한(于臲卼) 곤경은 말하자면(曰) 후회가 움직일 것이라는 뜻이니(動悔) 뉘우치고(有悔) 극복하기 위해 나선다면(征) 길(吉)하다.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히고 섥히고 위태위태한 곤경이란 잘못을 즉시 바로잡지 않고 방치해 두었다가 그 문제가 걷잡을 수 업게 된 상황에 처한 것을 뜻한다. 그제서야 뉘우치게 될 것이니 극복하기 위해 나서면 길하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른 때이기 때문이다. 공자께서는 “태어나면서 안다면 최고요, 배워서 안다면 그 다음이요, 곤경을 만나 배우면 그 다음이요, 곤경을 처해서도 배우지 않는다면 참으로 하등이다”[논어 제16편 계씨 제9장]고 하셨다. 뉘우치고 극복하기 위해 나서는 것은 곤경에 만나 비로소 느껴서 배우려고 하는 것이니 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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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升 元亨 用見大人 勿恤 南征 吉
【初六】允升 大吉
【九二】孚乃利用禴 无咎
【九三】升虛邑
【六四】王用亨于岐山 吉 无咎
【六五】貞吉 升階
【上六】冥升 利于不息之貞

  승(升)괘는 크게 발전하여 올라가는 것을 뜻하는 괘이다. 앞의 췌(萃)괘에서 만들어진 탄탄한 조직으로 뜻을 펼치려 나아가는 것이 승(升)괘이다. 13번째 동인(同人)괘에서 모여서 도(道)를 추구해야 한다고 하였으니, 마찬가지로 세상을 도(道)로 바로 세우기 위해서 나아가는 것이다.

 

升 元亨 用見大人 勿恤 南征 吉
나아감(升)은 근원을 갖추어 성장하는 것이니(元亨) 대인을 만나서 그를 사용하고(用見大人) 근심하지 말고(勿恤) 바른길을 정복하면(南征) 길(吉)하다.
  앞의 췌(萃)괘로서 만들어진 조직이 승(升)의 근원(元)이다. 그 근원을 갖고 성장(亨)해 나가는 것이 곧 승(升)이다. 그 조직은 훌륭한 인재를 등용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문호가 개방되어 있어야 한다. 근심하지 말고 남쪽을 정벌하라는 말은 남쪽은 따뜻한 곳이므로 곧, 바른 도리(道理)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함이다. 그래야 길하다.

 

允升 大吉
속임 없이 나아가야(允升) 크게 길하리라(大吉).
  윤(允)은 진실함이며 신의를 의미한다. 더불어 잘 살자며 남쪽으로 나아갔지만 그 숨겨진 진실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것이라면 흉한 것이다. 속임없는 진실함과 신의와 의로움으로 나아가야 크게 길할 것이다.

 

孚乃利用禴 无咎
신념을 갖고 검소한 제사를 지내면 이로우리니(孚乃利用禴) 허물이 없다(无咎).

  공자께서는 “예는 사치스럽게 하기보다는 검소하게 하는 것입니다. 장례는 장중하게 치르기 보다는 진정으로 슬퍼해야 하는 것입니다”[논어 제3편 팔일 제3장]라고 하셨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며 신념이 살아있기에 검소한 제사를 지내도 이롭고 허물이 없는 까닭이다. 췌(萃)괘에서 말한 큰 희생양을 사용하는 방법이 필요한 시기는 지났으며, 조직을 갖추었으니 신념으로 나아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升虛邑
나아가는 것은 비어있는 고을과 같다(升虛邑)
  비어있는 고을이 백성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승(升)의 발전도 백성을 필요로 하는 것이어서 목적과 목표가 같다는 말이다. 민초들이 저절로 모여들도록 편안하고 따뜻한 세상을 여는 것이 곧 승(升)이 목표하는 결과이다.

 

王用亨于岐山 吉 无咎
왕은 기산에 올라 제사를 지냄으로써(王用亨于岐山) 길(吉)하고 허물이 없다(无咎).
  기산(岐山)은 주나라 문왕의 할아버지였던 고공단보(古公亶父)가 정착한 곳이다. 그 기산에 올라 제사를 지내는 것은 태왕(太王)을 공경하는 마음이며, 지나온 전통을 공경하는 마음이다. 그럼으로써 또한 정통성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래야 길하고 허물이 없다. 승(升)은 혁명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貞吉 升階
끝까지 길하구나(貞吉) 차곡차곡 성장함이여(升階).
  서두르지 않고 계단을 밟아 오르듯 차근차근 나아가는 것이다. 차곡차곡 나아가지 않는 것은 전통을 공경하지 않는 나아감이다. 일의 선후와 본말을 가려서 단계적으로 공든탑을 쌓아가듯 나아가야 한다.

 

冥升 利于不息之貞
드러나지 않는 나아감(冥升)이라도 끝까지 쉬지않아야 이롭다(利于不息之貞)
  명승(冥升)은 성과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발전을 말한다. 그러나 차곡차곡 단계를 밟아 성장을 도모하고 있는 것이니 내실을 다져 나가는 나아감이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쉬거나 멈추지 말고 끝까지 나아가야 이롭다는 말이다. 승(升)은 바른 도(道)를 따르는 남쪽을 정벌하는 나아감이니, 다른 사람에게서 구하려 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논어의 첫 장부터 시작해 계속 반복되는 공자께서 말씀하신 가르침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원망이 없으리니 또한 군자답지 아니한가?”[논어 제1편 학이 제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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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萃 亨 王假有廟 利見大人 亨利貞 用大牲 吉 利有攸往
【初六】有孚不終 乃亂乃萃 若號 一握爲笑 勿恤 往 无咎
【六二】引 吉 无咎 孚乃利用禴
【六三】萃如嗟如 无攸利 往 无咎 小吝
【九四】大吉 无咎
【九五】萃有位 无咎 匪孚 元永貞 悔亡
【上六】齎咨涕洟 无咎

  췌(萃)는 사람이 모이는 것을 상징하는 괘이며, 효사는 그 모인 사람들을 조직화하여 이끄는 리더쉽에 관한 얘기들이다. 주역은 수단을 부려서라도 사람을 모으고, 그 모인 무리를 장악하고, 작은 고통은 무시하고, 위계질서를 갖추라고 한다. 그렇게 갖춰진 조직이 다음괘 승(升)괘의 성장하는 반석이 되는 것이다.

 

萃 亨 王假有廟 利見大人 亨利貞 用大牲 吉 利有攸往
사람이 모이는 것(萃)은 성장(亨)의 동력이니 왕이라면 종묘에 나가 제사를 드리고(王假有廟) 대인을 만나보는 것이 이롭다(利見大人) 성장하여 결실을 맺고 소멸하려면(亨利貞) 제사에 큰 희생양을 사용하여야(用大牲) 길(吉)하다. 시간이 지나가면 이롭다(利有攸往)
  사람이 모이면 제사를 드리는 공익을 위해서 나아가야 한다. 또한 사람을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 제사에 큰 희생양을 사용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화려함을 뜻함이니 기술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러한 기술을 사용했더라도 시간이 지나가면 이롭다.

 

有孚不終 乃亂乃萃 若號 一握爲笑 勿恤 往 无咎
신념이 있으나(有孚) 확립되지 않았다면(不終) 모인 사람들이 우왕좌왕할 것이나(乃亂乃萃) 호통으로(若號) 한 손에 쥐고 웃을 수 있을 것이니(一握爲笑) 근심하지 말고(勿恤) 나아가면(往) 허물이 없다(无咎).

  뜻이 있어도 확고하지 않다면 모인 사람들을 이끌어감에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모인 군중들을 초기에 이끄는 힘은 확립된 바른 뜻이 아니라 강한 기운이다. 한번의 호통 즉, 굳센 기운으로 군중들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화려함과 기운으로 모임을 형성하고 장악하는 것은 일종의 지혜일 수도 있을 것이다.

 

引 吉 无咎 孚乃利用禴
군중을 제대로 이끌어 갈 수 있다면(引) 길(吉)하고 허물이 없으니(无咎) 신념을 펼치면(孚) 검소한 제사를 이용해도 이로울 것이다(孚乃利用禴)
  지혜로운 기술을 통해 사람들을 모았으니 이제는 그 모인 군중을 제대로 이끌어 가야 하는 단계가 된 것이다. 그 군중을 제대로 이끌어 갈 수 있는 힘은 신념(孚)이다. 군중들의 신임을 얻었으니 제사를 검소하게 지내도 이롭다. 화려함으로 모임을 장악해야 하는 단계에서는 화려함으로 이끌고, 모임을 이끌어야 하는 단계에서는 신념으로 이끌어야 하는 것이다.

 

萃如嗟如 无攸利 往 无咎 小吝
모인 사람들이 탄식을 하게 되면(萃如嗟如) 유리할 것이 없으나(无攸利) 탄식을 무시하고 나아가야(往) 허물이 없으니(无咎) 작은 고통은 있게 마련이다(小吝)
  모임은 당연히 소소한 불만이 표출되기 마련이다. 유리할 것은 없으나 아무 탄식도 없는 모임을 만들 수는 없으니 때로는 무시하고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기도 하다. 탄식을 다 받아주어 와해의 불씨를 남겨두기 보다는 그 불씨를 미리 꺼 버리고, 보다 탄탄한 내실을 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초창기에는 감수해야 하는 작은 고통일 뿐이다.

 

大吉 无咎
탄식은 크게 길한 것이고(大吉) 허물이 없는 것이다(无咎) 
  아무 탄식도 없는 모임이 아니라 오히려 탄식이 나오는 것이 크게 길하다고 까지 한다. 더 무서운 것은 드러나지 않아 썩어 들어가는 줄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탄식이 나오는 것이 크게 길하다고 하는 까닭이다.

 

萃有位 无咎 匪孚 元永貞 悔亡
무리는 위계질서가 있어야(萃有位) 허물이 없다(无咎) 신념이 없더라도(匪孚)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될 수 있으니(元永貞) 후회가 없다(悔亡).
  탄식을 도려내고 탄탄한 무리가 형성이 되었다면 이제는 위계질서를 갖추어야 할 때다. 위계질서를 갖추면 앞으로는 설령 신념과 가치를 일시적으로 잃더라도 끝까지 유지될 수 있으니 쉽게 무너지지 않는 기둥을 세우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齎咨涕洟 无咎
탄식과 한숨 눈물과 콧물이 있더라도(齎咨涕洟) 허물이 없다(无咎)

  탄식뿐 아니라 한숨과 눈물과 콧물이 흘러내리는 것은 불만이 더욱 심하게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조직이 커지면 커질수록 탄식과 한숨과 눈물 콧물이 늘어나게 되니, 그것은 모임이 가진 속성이다. 하지만 위계질서를 갖추었기 때문에 탄식과 한숨 눈물이 있어도 와해되지 않을 것이니 허물은 없다. 21번째 서합(噬嗑)괘에서 주역은 유가의 예(禮)보다는 법가의 법치주의(法)에 더 가까운 듯 하다고 했다. 췌(萃)괘에서도 마찬가지로 조직의 질서를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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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姤 女壯 勿用取女
【初六】繫于金柅 貞吉 有攸往 見凶 羸豕 孚蹢躅
【九二】包有魚 无咎 不利賓
【九三】臀无膚 其行次且 厲 无大咎
【九四】包无魚 起凶
【九五】以杞包瓜 含章 有隕自天
【上九】姤其角 吝 无咎

  구(姤)괘는 우연한 만남을 뜻한다. 이 만남은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 만남이다. 괘를 보면 하나의 음(陰)효를 두고 다섯의 양(陽)효가 쌓여 있으니 한명의 여인이 다섯의 남자를 감당하는 괘상이다. 많은 남자들 앞에서 여왕 노릇을 하는 모양새다. 서양으로 치면 팜므파탈(Femme fatale)의 힘을 가진 여인일 것이며, 우리나라로 치면 옹녀의 이미지에 가까운 여인일 것이다.

 

姤 女壯 勿用取女
만나서(姤) 여자의 기운이 세면(女壯) 취하려 하지 마라(勿用取女)
  여자의 기운이 지나치게 강하다면 음양의 기운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게 되어 서로 해로운 까닭이다. 양기는 음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음기는 양기가 부족하니, 지나치고 모자라 중용을 벗어나니 서로가 해롭다.

 

繫于金柅 貞吉 有攸往 見凶 羸豕 孚蹢躅
쇠로 만든 얼레에 실을 담아두듯(繫于金柅) 조화를 이뤄야 끝까지 길한 것인데(貞吉) 기운이 맞지 않으니 시간이 지날수록(有攸往) 흉함을 만나리라(見凶) 굶주린 돼지가(羸豕) 발버둥치는 듯 할 것이다(孚蹢躅)
  남녀의 만남과 교합은 얼레에 실이 잘 감겨있는 것처럼 조화로워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시간이 지나가더라도 해결책이 없다. 노력하고 애쓰는 것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니 시간이 지나면 더욱 흉해질 뿐이다. 근원적으로 소위 궁합이 맞지 않는 까닭이다.

 

包有魚 无咎 不利賓
푸주간에 고기가 있으면(包有魚) 허물은 없을 것이나(无咎) 손님이 될 것이니 이로울 것은 없으리라(不利賓)
  고기가 있는 것은 남자가 경제적인 부양의 의무는 충분히 하는 상황을 말한다. 허물은 없어 부부로서의 위치를 지킬 수는 있을 것이나, 손님처럼 금방 집 밖으로 나가야 될 것이요, 집에서 오래 머무르지 못하게 될 것이니 이롭지는 못하다. 사람에 만족하여 부부로서의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돈을 보고 참아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臀无膚 其行次且 厲 无大咎
엉덩이가 패일 것 같아(臀无膚) 나아가지 못하고 있으니(其行次且) 위태로우나(厲) 큰 허물은 없으리라(无大咎)
  엉덩이가 패이는 것은 곤장을 맞는 것과 마찬가지의 봉변을 당할까 두려워 부부관계로 쉽게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아가지 않아도 큰 허물이 아닌 까닭은, 나아가도 조화를 이룰 수 없기 때문이며 푸주간에 고기가 있도록 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包无魚 起凶
푸주간에 고기가 떨어지면(包无魚) 흉함이 일어난다(起凶)
  고기를 보고 참고 있었는데, 그 근원이 사라진 것이다. 곧 한계에 봉착할 것이니 흉함이 일어난다.

 

以杞包瓜 含章 有隕自天
그러한 여인은 혼기에(以杞包瓜) 품어주면(含章) 하늘의 복이 있을 것이다(有隕自天)
  오이(瓜)는 혼기가 찬 여인을 말한다. 과년(瓜年)한 딸을 뜻하는 것으로 대략 15세 전후의 어린여자를 지칭하던 것으로 알려지니, 아직은 기운이 왕성한 상태가 아닐 것이다. 선천적으로 강한 여인이라면 기운이 왕성하지 않은 과년한 시기라야만 감당할 수 있게 될 것이며, 그 여인도 과년할 때 느낄 수 있었던 기쁨은 그 시기가 지나면 더 이상 없을 것이니 결과적으로는 은혜를 베푼 것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하늘의 복이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姤其角 吝 无咎
뿔이선 만남(姤其角)이라서 궁색해 보이나(吝) 허물은 없다(无咎)

  과년한 여인과 관계하여 기쁨을 줄 수 있는 남자는 또래의 어린 남자일 수 없으며, 양기가 정점에 있는 남자여야만 할 것이다. 그래서 모양새가 조화롭게는 될 수 없으니 외부에서 보기에는 궁색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음양조화가 맞을 수 있으니 허물은 아닌 것이다.

  구(姤)괘는 강한 여성을 빗대어, 그 강함에 대응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참된 리더는 사람을 버리는 사람이 아니다. 백가지가 모자라더라도 한가지 쓸모를 찾아 작은 역할이라도 할 수 있도록 자리를 잡아주는 자이다. 과년할 때 품어주라는 것은 기운을 맞추어주라는 것으로, 예컨대, 화를 지나치게 내고 싸우는 사람은 고객을 응대하는 곳에 쓰지 말고 사람과 덜 접촉하는 곳에서 쓰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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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夬 揚于王庭 孚號 有厲 告自邑 不利即戎 利有攸往

【初九】壯于前趾 往 不勝 爲咎

【九二】惕號 莫夜有戎 勿恤

【九三】壯于頄 有凶 君子夬夬獨行 遇雨若濡 有慍 无咎

【九四】臀无膚 其行次且 牽羊 悔亡 聞言不信

【九五】莧陸夬夬 中行 无咎

【上六】无號 終有凶

  쾌(夬)괘는 악(惡)에 공정함(正)으로 맞서는 것을 말하며 의로움을 추구하는 결단이다. 공자께 은혜로 원수를 대하면 어떠한지 여쭈니, 공자께서는 “그러면 은인은 어떻게 대할 것인가? 공정하게 원수를 대하고 은덕으로 은인을 대해야 한다” [논어 제14편 헌문 제34장]고 하셨다. 공자께서는 동해보복(동일한 해로움으로 복수)으로 원수를 대하는 것 즉, 원수를 원수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원수를 바름(正)으로 대해야 한다고 하셨다. 바름 곧, 의(義)를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이 쾌(夬)이다.

 

夬 揚于王庭 孚號 有厲 告自邑 不利即戎 利有攸往

결단(夬)은 왕정에 알리는 것(揚于王庭)이며 신념을 부르짖는 것(孚號)이니 위태로움은 있겠지만(有厲) 고을에 숨어 외치면(告自邑) 적이 되어 맞서는 것이니 이로울 것이 없다(不利即戎) 시간이 지나가면 이롭다(利有攸往)

  악(惡)을 보고 방관하는 것은 악(惡)을 부흥시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니 마땅히 의롭게 나서야 한다. 비겁하게 숨어서 외치면 그것은 충언이 아니라 대항하는 것이 되니 결실이 없다. 위태롭더라도 왕정에 올라 외쳐야 한다. 시간이 지나가면 이로우리니 결국은 정의가 승리하기 때문이다.

 

壯于前趾 往 不勝 爲咎

크고 강한 기운이 발 앞에 모여있어(壯于前趾) 그렇게 나아가면(往) 이길 수 없고(不勝) 허물만 남는다(爲咎)

  행동하기 위해 기운이 발에 모여있으니 혈기만 가지고 서두는 것이다. 용맹이 지나쳐 과격한 것을 말하니, 의로움을 펼치는 것이 무모함이 되지 않으려면 냉철해야 하고 냉정해야 한다.

 

惕號 莫夜有戎 勿恤

두려워서 호소하면(惕號) 밤을 틈타 급습을 할 것이니(莫夜有戎) 두려워하지 말라(勿恤)

  지나친 용맹과 반대로 지나치게 두려워서 부르짖는 것이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 당하게 된다는 뜻이다. 도적이 들었는데 두려워 울부짖으면 재물만 잃고 말 것을 목숨까지 잃는 경우도 생기는 법이다. 발 앞에 모여있는 과격한 용기도 모자라는 용기도 악(惡)을 바로잡을 수 없다.

 

壯于頄 有凶 君子夬夬獨行 遇雨若濡 有慍 无咎

큰 기운이 광대뼈에 있다면(壯于頄) 흉함이 있지만(有凶) 군자라면 결연히 홀로 가다가(君子夬夬獨行) 비를 만나게 되어도(遇雨若濡) 온기를 뺏기지는 않을 것이니(有慍) 허물이 없다(无咎)

  큰 기운이 광대뼈에 있는 것은 안색을 숨길 수 없어 의욕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을 말한다. 견제를 받아 흉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군자라면 어려움이 있더라도 허물이 없을 것이다. 군자는 의로움을 따르는 자이니, 오히려 드러난 의욕을 보고 바른 사람들이 모일 것이기 때문이다. 드러난다고 해치려는 자만 모이는 것이 아니기에 온기를 완전히 잃지 않게 되는 것이다.

 

臀无膚 其行次且 牽羊 悔亡 聞言不信

엉덩이에 살이 없으니(臀无膚) 쉽게 나아가지 못한다(其行次且) 백성들을 이끌면(牽羊) 후회는 없겠지만(悔亡) 말은 들어주더라도 신뢰하지는 않을 것이다(聞言不信)

  분수에 맞지 않는 지위에 앉아있으니 자리가 편하지 않아 엉덩이에 살이 없게 된 것이다. 백성들을 이끌 지위에 위치하고는 있지만 그 지위에 걸맞는 능력은 없는 사람이다. 내적으로 후회는 없을지라도 신임을 얻지는 못할 것이다고 한다.

 

莧陸夬夬 中行 无咎

뭍에서 뛰어 노는 산양이 큰 결단을 내릴 때는(莧陸夬夬) 중용의 길을 가야(中行) 허물이 없다(无咎)

  뭍에서 뛰어 노는 산양은 민초들을 뜻한다. 위에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다. 중용의 길을 가면 혁명이 되고, 중용을 벗어나면 반란이 될 것이다.

 

无號 終有凶

부르짖지 않으면(无號) 끝내 흉함이 있다(終有凶)

  의로운 줄 알면서 의로움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공자께서는 “안으로 살펴서 부끄러움이 없다면 무엇을 근심하며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논어 제12편 안연 제4장]라고 하셨다. 생사(生死)는 천명(天命)이니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의로운 줄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나약한 마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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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益 利有攸往 利涉大川

【初九】利用爲大作 元吉 无咎

【六二】或益之 十朋之龜 弗克違 永貞吉 王用享于帝 吉

【六三】益之用凶事 无咎 有孚 中行 告公 用圭

【六四】中行 告公從 利用爲依 遷國

【九五】有孚惠心 勿問 元吉 有孚 惠我德

【上九】莫益之 或擊之 立心勿恒 凶

  보태주는 것(益)은 하늘의 일을 대신 맡은 것이니 무거운 짐을 진 것이다. 공자께서 “나는 군자는 급한 곳을 구제해 주고 부유한 곳에는 보태주지 않는다고 들었다”[논어 제6편 옹야 제4장]고 하셨으나, 제자 염유가 부유한 계씨의 재산을 늘려주자 “나의 제자가 아니다! 너희는 북을 울려 성토해도 좋다”[논어 제11편 선진 제17장]고 진노하셨다. 모자라면 보태주고 넘치면 덜어내는 것은 하늘의 도(道)이며, 그 바른 천도(天道)를 따르는 것이 군자의 사명이다.

 

益 利有攸往 利涉大川

보탬(益)은 시간이 지나야 결실이 있다(利有攸往) 큰 내를 건너듯(利涉大川) 과단성이 있어야 한다.

  보태주는 것은 단번에 끝맺는 것이 아니라 꾸준함이 필요한 일이다. 마음 또한 재물에 얹어 보태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앞의 손(損)괘에서 말한 거친 베옷을 입은 사람에게 거친 베옷을 입고(曷之用) 다가가는 것이다. 주위사람의 말에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 과단성 있게 나아가야 한다.

 

利用爲大作 元吉 无咎

크게 만들어 나가도록 사용해야 이로우니(利用爲大作) 근원적으로 길하고(元吉) 허물이 없다(无咎)

  물고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방법으로 현명하게 보태주라는 의미이다. 오직 짐승처럼 먹여주는 방법을 사용하기 보다는 기술을 가르쳐주는 방법이 좋고, 쌀을 보태주기 보다는 농사를 짓도록 해 주는 것이 더 좋다는 말이다.

 

或益之 十朋之龜 弗克違 永貞吉 王用享于帝 吉

누군가가 보태주는 것은(或益之) 십붕의 비싼 거북점으로도(十朋之龜) 어긋나게 할 수 없는 것이니(弗克違) 계속 끝까지 길할 것이다(永貞吉). 왕이 상제에게 제사를 지내도(王用享于帝) 길(吉)할 것이다.

  혹익지(或益之)는 앞의 손(損)괘에서 나온 기적과 같은 횡재를 말한다. 천명(天命)으로 얻은 것이라고 하였다. 왕이 상제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간접적인 베품이지만,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제물을 사용하는 것이기에 사사로이 쓰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益之用凶事 无咎 有孚 中行 告公 用圭

보태주는 것은(益之) 흉한 일에 사용하면(用凶事) 허물이 없다(无咎) 신념을 가지고(有孚) 중용을 따라(中行) 공익을 도모하고(告公) 임금의 뜻이 닿는 곳에 사용하라(用圭).

  모자라면 채워주고 과하면 덜어내는 중용의 도를 따라야 한다. 나에게 넘치는 재물을 흉한 일을 당한 이웃을 도와주는 것으로 사용함으로써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임금의 뜻은 빈부의 지나친 치우침이 없이 백성이 고루 부유하고 풍족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中行 告公從 利用爲依 遷國

중용을 행하고(中行) 공익을 따라(告公從) 의지해야 하는 곳에 사용하면 이로우니(利用爲依) 나라를 변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遷國).

  대학의 “한마디 말이 대사를 그르치기도 하고 한 사람이 나라를 안정시키기도 한다”[대학 제9장 제국치가]는 가르침이 연상되는 효이다. 나의 얼마되지 않는 기부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궁극적으로 나라를 변하게 할 수도 있는 일이다. 먼 길은 가까운 길부터 시작해 나아가며, 높은 산도 낮은 곳부터 올라가야 한다.

 

有孚惠心 勿問 元吉 有孚 惠我德

베푸는 마음에 신념이 있다면(有孚惠心) 묻지도 말라(勿問) 근원적으로 길하다(元吉) 신념이 있다면(有孚) 나의 덕을 보태는 것(惠我德)이다.

  마음으로 베푸는 것이 아니라 속셈을 갖고 베푸는 경우도 있다. 사건을 무마하고 여론의 질타를 피하기 위해 재산을 내 놓는 대기업 총수도 있으나, 그러한 보태줌이 아니라 마음으로 즐거워 베푸는 것은 어디에 물을 필요도 없이 길한 것이라고 한다. 내어 놓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의 덕을 보태는 것이라고 한다.

 

莫益之 或擊之 立心勿恒 凶

보태주는 것이 막히거나(莫益之) 누군가 공격하면(或擊之) 마음을 세우되 방법을 고집하려 하지마라(立心勿恒) 흉(凶)하다.

  베푸는 선한 일이 방해 받는 경우가 있다. 장애인을 내세워 뒤에서 그것을 착취하는 소위 ‘앵벌이’의 경우처럼 나의 베품이 이용당하게 되는 것을 알았다면, 마음은 변함없이 세워놓되 그 방법을 고집하려 하면 흉하다고 한다. 결국 악을 돕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보태주는 것은 크게 만들어나가도록(用爲大作) 현명하게 보태주어야 하고 이용당하지 않도록 지혜롭게 보태주어야 하니, 그래서 하늘은 그 임무를 맡길 만한 사람을 골라서 사명을 맡기는 것일 것이다. 현명한 방법을 통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보탬을 주라는 것이지 외면하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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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損 有孚 元吉 无咎 可貞 利有攸往 曷之用 二簋 可用享

【初九】已事 遄往 无咎 酌損之

【九二】利貞 征 凶 弗損益之

【六三】三人行 則損一人 一人行 則得其友

【六四】損其疾 使遄 有喜 无咎

【六五】或益之 十朋之龜 弗克違 元吉

【上九】弗損益之 无咎 貞吉 利有攸往 得臣无家

  손(損)괘와 다음에 이어지는 익(益)괘는 중용(中庸)을 뜻하는 괘이다. 손(損)괘는 과하기 때문에 덜어내고, 익(益)괘는 모자라기 때문에 보태주는 것이다. 그것이 하늘의 도(道)이다. 부족하면 채워주고 지나치면 덜어내는 것이 순리이니, 지나치게 그 손익에 집착하는 것은 해로울 뿐이다. 하늘이 덜어내기 전에 뜻 있는 곳에 스스로 덜어내는 것은 하늘의 일을 대신하는 것이니 근원적으로 길할 것이다.

 

損 有孚 元吉 无咎 可貞 利有攸往 曷之用 二簋 可用享

덜어냄(損)은 뜻이 있어야(有孚) 근원적으로 길하고(元吉) 허물이 없으니(无咎) 신념을 끝까지 유지하면(可貞) 시간이 지나가면 이롭다(利有攸往) 거친 베옷을 입어야 이롭고(曷之用) 두 그릇의 밥을 베풀어(二簋) 제사를 지내도록 도와주면 이롭다(可用享)

  부(孚)는 생각이 없는 것의 반대되는 개념으로, 생각 없이 낭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신념을 가지고 가치 있게 덜어내는 것을 말한다. 뜻 있게 사용하면 다시 돌아오게 되니 그래서 시간이 지나가면 이로운 것이다. 거친 베옷은 서민들이 입는 옷이다. 서민들에게 서민으로 다가가는 것을 뜻한다. 덜어내더라도 면 옷을 입고 교만을 부리지 말해야 하며, 생계만 유지할 수 있게 각박하게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제사까지 지낼 수 있도록 넉넉히 베풀라고 한다.

 

已事 遄往 无咎 酌損之

이미 지난일(已事)은 속히 보내버려야(遄往) 허물이 없을지니(无咎) 그 덜어냄을 생각해 보라(酌損之)

  29번째 감(坎)괘에서 구덩이에 빠지고 다시 구덩이에 빠지는 것은 흉하다고 했으니, 물리적인 구덩이에 빠졌다고 정신적인 구덩이(절망)에 빠지지는 말라는 가르침이었다. 이미 지나간 손해가 있었다고 그것을 떨쳐내지 못하는 것은 재차 구덩이에 빠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말로 덜어내야 할 것은 지나간 일에 대한 집착이다.

 

利貞 征 凶 弗損益之

그래야 끝까지 이로울 것이니(利貞) 정벌하려 하면(征) 흉(凶)하다. 덜어내었다고 보태주지는 않을 것이다(弗損益之)

  정벌(征)은 본전생각이 나서 잃은 것을 되찾으려는 것이다. 본전생각을 하면 결국 있는 것 모두를 덜어내게 되는 대표적인 것이 도박이다. 안목이 단지 물질적인 손익만 생각할 줄 아는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늘의 도(道)는 모자란 것은 채워주고 넘치는 것은 덜어주어 중용(中庸)의 도리를 지킨다. 그러나 하늘이 도박하여 덜어내는 것까지 보태주지는 않을 것이니, 오히려 물질을 더욱 덜어냄으로써 마음의 모자람을 채워주려 할 지도 모른다.

 

三人行 則損一人 一人行 則得其友

세 명이 나아가면(三人行) 한명을 잃게 되고(則損一人) 한명이 나아가면(一人行) 친구를 얻게 된다(則得其友)

  실제 만남 사람은 두 사람이다. 두 사람이 만나면서 한 사람을 더 끼워들이면 관계가 깨어질 것이니, 없는 한 사람을 더 끌여들여 비교하는 것을 3인으로 표현하고 있다. 요즘 아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완벽한 ‘엄친아(엄마 친구의 아들)’일 것이다. 한명이 나아가는 것은 있는 자신을 덜어내고(損)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보아주는 것이다. 그래야 친구가 되어 소통할 수 있다. 그것이 곧 중용의 도(道)이다.

 

損其疾 使遄 有喜 无咎

덜어내고 병을 얻으면(損其疾) 빨리 그 병통을 고쳐야(使遄) 기쁨이 있고(有喜) 허물이 없다(无咎)

  덜어내고 병을 얻는 것은, 잃은 것이 아까워 얻게 된 마음의 병이다. 물리적인 질병보다도 그러한 마음의 병이 더 무서운 것이다. 부족하면 하늘이 다시 채워주는 것이 하늘의 법도인데 이미 근심(병)으로 그 비어짐이 다 차 버렸으니 채워줄 그릇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或益之 十朋之龜 弗克違 元吉

누군가가 보태주는 것은(或益之) 십붕의 비싼 거북점으로도(十朋之龜) 조정 할 수 없는 것이니(弗克違) 근원적으로 길하다(元吉)

  붕(朋)은 옛적에 화폐로 사용하던 조개껍질이다. 물질적 손익은 우연성이 많이 개입되기도 한다. 요즘으로 치면 로또에 당첨되는 것 같은 우연히 횡재를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으니, 그러한 횡재는 아무리 비싼 거북점을 쳐도 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이 내린 복으로 근원적으로 길하다. 주역점은 거북의 등껍질을 태워 그 갈라지는 것을 통해 점을 치는 것이 시초였고, 산가지(대나무)로 점을 치는 방법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弗損益之 无咎 貞吉 利有攸往 得臣无家

덜어냄으로써 보태주는 것이 아니니(弗損益之) 허물이 없고(无咎) 끝까지 길하여(貞吉) 시간이 지나면 이로움이 있으리니(利有攸往) 가정이 없는 신하를 얻으리라(得臣无家)

  하늘이 우연히 보태주는 것은 반드시 부족하다고 보태주는 것이 아니니 숙명이다. 자하는 “죽음과 삶에는 명이 있고 부유함과 귀함은 하늘에 달려있다(死生有命 富貴在天)”고 배웠다고 하였다.[논어 제12편 안연 제5장] 하늘이 준 복이니 근원적으로 길한 것이요, 시간이 지나면 그러한 복을 하늘이 왜 주었는지 알게 될 것이니, 곁을 떠나지 않는 충복을 얻게 될 것이라고 한다. 가정이 없는 신하는 충복을 상징하며, 이 충복은 ‘깨달음'을 상징한다. 모자란 곳을 찾아 채워주는 하늘의 일을 대신하도록 사명을 맡긴 것이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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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解 利西南 无所往 其來復 吉 有攸往 夙 吉
【初六】无咎
【九二】田獲三狐 得黃矢 貞吉
【六三】負且乘 致寇至 貞 吝
【九四】解而拇 朋至 斯孚
【六五】君子 維有解 吉 有孚于小人
【上六】公用射隼于高墉之上 獲之 无不利

  해(解)괘는 술술 풀리는 것이다. 우레가 진동하고 비가 쏟아지는 괘상이니 곧 메마른 세상이 촉촉하게 적셔지고 있는 것이다. 앞의 건(蹇)괘는 시간이 주는 시련이며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는 시련이라고 했었다. 이제 시간이 도래하여 반대의 상황이 오게 된 것이니 그것이 곧 해(解)이다. 건(乾)괘에서의 용이 비상하여 하늘을 날고 있는 것(飛龍在天)과도 같다. 건(乾)괘에서 그러한 전성기가 도래하면 마땅히 도와준 사람에게로 나아가야한다(利見大人)고 하였는데, 마찬가지로 해(解)의 시기에도 사람에게로 나아가야 한다고 한다.

 

解 利西南 无所往 其來復 吉 有攸往 夙 吉
술술 풀릴 때(解)도 힘들지만 바른길이 이롭다(利西南) 갈 곳이 없다면(无所往) 되돌아와도(其來復) 길(吉)하다 시간이 지나면(有攸往) 곧(夙) 길(吉)해 진다.
  어려웠던 시기 건(蹇)의 시기와 마찬가지로 풀리는 해(解)의 시기에도 역시 힘들더라도 바른길을 가야 한다고 한다. 바른 길을 가는 것은 상황과 환경에 의해 바뀌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갈 곳이 없다면 그 이유는 어려웠던 시절부터 바른 곳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해(解)의 시기의 시작은 우레가 진동하고 비가 쏟아지는 것에서 시작을 한다. 상황이 반대로 꺾이는 것은 반드시 진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벼락이 치고 비가 쏟아지면서 시작되는 것이다. 오래지 않아 우레와 비가 그치고 세상이 촉촉해질 것이니 시간을 기다리면 곧 길하게 된다.

 

无咎
술술 풀릴 때는 허물 될 것이 없다(无咎)

  시간이 지나 우레와 비가 그치고 대지가 촉촉히 적셔진 상황을 말한다. 아무런 허물 될 것이 없다.

 

田獲三狐 得黃矢 貞吉
사냥을 하면 여우 세마리를 얻고(田獲三狐) 황금 화살촉도 얻게 될 것이니(得黃矢) 끝까지 길하다(貞吉)
  여우는 영리한 짐승이라 한 마리를 잡기도 힘드는데, 세 마리를 잡은 것만해도 큰 성취이지만 그 몸 속에 박혀있는 황금 화살촉까지 얻었으니 정말로 술술 풀리는 시기를 만난 것이다. 그러나 술술 풀리는 시기라도 가만히 기다린다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사냥을 나가야 그러한 성취를 얻을 수 있다.

 

負且乘 致寇至 貞 吝
짐지고 수레를 타면(負且乘) 도적을 불러들여(致寇至) 끝까지(貞) 어려워진다(吝).

  잡은 여우와 황금 화살촉을 빼앗길까 두려워 짐을 수레에 내려놓지 못하고 몸에 짐지고 수레를 타는 것이니, 반드시 도적을 불러들이게 된다. 독차지하려는 지나친 욕심으로 인해 만나는 도적(근심)이다. 공자께서 "없으면 얻으려고 근심하고, 얻고 나서는 잃을까 근심하니, 잃을까 근심하면 못할 짓이 없게 된다"[논어 제17편 양화 제15장]고 하셨다. 잃을까 걱정하는 근심만 늘어난 것이니 곧 도적을 만나 끝까지 어려워지게 되는 까닭이다.

 

解而拇 朋至 斯孚
풀려도(解而) 엄지발가락으로 시작해야(拇) 벗이 찾아와(朋至) 뜻을 함께 한다(斯孚).
  엄지발가락으로 시작함은 함(咸)괘에서 부부관계로 마음을 교감하려 할 때 엄지발가락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즉 매사에는 순서가 있고 원형리정의 순차적인 변화를 겪어 열매가 맺히는 법이니, 풀리기 시작했다고 조급하게 바로 열매를 맺으려고 하지 말고 차근차근히 순서를 밟아 나가라는 가르침이다. 먼 곳을 가기 위해서는 가까운 곳부터 출발해야 한다.

 

君子 維有解 吉 有孚于小人
군자(君子)는 풀릴 때를 지탱할 수 있어야(維有解) 길(吉)하니 소인에게 뜻을 두어야 한다(有孚于小人)
  군자는 소인을 위해서 그 풀리는 기운을 사용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이 군자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술술 풀린다고 자기의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소인들을 부유해지도록 도와야 한다. 공자께서 "군자는 의로움에 기뻐하고 소인은 이로움에 기뻐한다"[논어 제4편 이인 제16장]고 하셨으니 마땅히 군자는 소인을 이롭게 해 주어야 한다. 그것이 군자가 의로움을 추구하여 기쁨을 얻는 것이다.

 

公用射隼于高墉之上 獲之 无不利
공개적으로(公) 높은 성벽위의 독수리를 쏘아도(用射隼于高墉之上) 그것을 잡을지니(獲之) 이롭지 않음이 없다(无不利).

  높은 성벽위에 있는 독수리는 지위가 높은 흉수이다. 그 독수리에게 쏘겠다는 공개를 하고 쏘아도 잡을 수 있는 까닭은 군자로서 의로움을 추구하여 백성들의 신임을 얻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을 얻으면 세상을 바로 세울 수 있고, 흉수는 피할 곳이 없어진다. 술술 풀리는 시기는 사람을 향해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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蹇 利西南 不利東北 利見大人 貞吉
【初六】往蹇來譽
【六二】王臣蹇蹇 匪躬之故
【九三】往蹇來反
【六四】往蹇來連
【九五】大蹇朋來
【上六】往蹇來碩 吉 利見大人

  건(蹇)괘는 어려운 때를 말한다. 산 위에 물이 고여있는 괘상이니 물이 산 아래로 흘러 강과 바다로 내려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즉 건(蹇)괘는 시간이 주는 시련이며 시간이 해결해 줄 수 있는 시련이다. 오래지 않아 끝나게 될 어려움이다.

 

蹇 利西南 不利東北 利見大人 貞吉
어려운 때(蹇)는 힘들어도 바른길이 이롭고(利西南) 수월해도 옳지 않은 길은 이롭지 않다(不利東北) 대인을 만나봄이 이로울 것이니(利見大人) 마침내 길할 것이다(貞吉)
  동쪽은 해가 뜨는 밝은 곳이니 곧 쉽게 볼 수 있는 수월한 곳을 상징하고 서쪽은 어두우니 쉽게 볼 수 없는 힘든 곳을 상징한다. 남쪽은 따뜻하고 편안한 곳이니 곧 도리에 맞는 곳을 상징하고, 북쪽은 추워서 기피하는 곳이니 곧 도리에 맞지 않는 곳을 상징한다. 어려운 때를 만났지만 설령 힘이 들어도 바른길을 가야하고, 쉽게 현실과 타협하여 바르지 못한 길을 가는 것은 옳지 않다. 건(乾)괘에서 자리를 모르고 밭에있는 용(龍在田)은 대인을 만나야 이롭다고 했으니, 마찬가지로 어디가 바른 곳인지 알 지 못한다면 대인의 만나 도움을 받으라고 한다.

 

往蹇來譽
그래야 어려움이 지나가면(往蹇) 명예를 얻을 수 있다(來譽)

  힘이 들어도 바른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그래야 궁극적으로 명예를 얻을 수 있다. 공자께서 “추운 겨울이 된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논어 제9편 자한 제28장]고 하셨다. 힘들어도 바른 길을 가야 한다.

 

王臣蹇蹇 匪躬之故
정치가 어렵고 또 어렵다면(王臣蹇蹇)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다(匪躬之故).
  하늘이 하나요(-) 땅이 하나요(-) 사람이 하나(-) 이니 곧 삼(三)은 천지인의 합일을 말한다. 그 하늘과 땅과 사람을 곧게(I) 연결시켜주는 것이 왕이니 곧 왕은 하늘과 땅과 인간을 소통 시켜주는 자를 뜻한다. 그가 신하들과 더불어 행하는 정치가 어려운 것은 천지인이 소통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어렵고 또 어려움(蹇蹇)은 산 넘어 산이 가로막는 것으로 사람의 힘으로 방법이 없는 것을 뜻하니, 왕의 잘못이 아니라 하늘이 거절하고 있기 때문이다.

 

往蹇來反
어려움이 지나가면(往蹇) 반대의 상황이 오게 된다(來反)
  주역이 말하는 핵심적인 물극필반(物極必反)의 가르침이다. 비가 계속될 수도 없고, 맑은 날도 계속될 수가 없다. 반드시 반대의 상황이 오게 마련이니 양이 극에 이르면 음이 되고 음이 극에 이르면 양이 되는 까닭이다. 어렵고 또 어려움(蹇蹇)도 반드시 반대의 상황을 맞게 된다.

 

往蹇來連
어려움이 지나가면(往蹇) 반대의 상황은 오랫동안 계속되리라(來連)
  어렵고 또 어려웠으니(蹇蹇) 그 어려웠던 만큼 오랫동안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大蹇朋來
큰 어려움은(大蹇) 벗이 찾아와(朋來) 도와줄 것이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큰 어려움은 반드시 도와주는 벗이 찾아온다고 한다. 옛말에 '죽으라는 법은 없다'거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과 연결된다. 그것이 하늘의 법칙이다. 하늘은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을 주지는 않는다고 하였다.

 

往蹇來碩 吉 利見大人
어려움이 지나가면(往蹇) 큰 인물이 나오게(來碩)되니 길(吉)하다. 대인을 만나보아야 이롭다(利見大人)
  난세에 영웅이 나타나듯이 어려움이 지나면서 큰 인물이 나오는 법이다. 곧 하늘이 어려운 시기를 배분한 이유는 큰 인물을 세상에 내기 위한 까닭이기도 하다. 아무리 하늘이 낸 영웅이라도, 혼자의 힘으로 영웅이 될 수는 없다. 마땅히 사람과 함께 어울려야 한다. 사람의 도움으로 일어서고, 일어선 후 사람에게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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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睽 小事 吉
【初九】悔亡 喪馬勿逐 自復 見惡人 无咎
【九二】遇主于巷 无咎
【六三】見輿曳其牛掣 其人天且劓 无初有終
【九四】睽孤 遇元夫 交孚 厲 无咎
【六五】悔亡 厥宗 噬膚 往 何咎
【上九】睽孤 見豕負塗 載鬼一車 先張之弧 後說之弧 匪寇婚媾 往 遇雨則吉

  규(睽)괘는 어긋나다는 뜻이니, 단절과 헤어짐을 뜻한다. 12번째의 비(否)괘와의 차이는 비(否)괘는 수치스러워도 숙이고 복종하면 어울림을 유지할 수도 있지만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기에 헤어지는 것이며, 규(睽)괘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단절이다. 예를 들면 이혼을 하여 다른 길을 가는 결별은 비(否)괘이지만 배우자와 사별(死別)하게 되는 것은 규(睽)괘이다. 37번째 가인(家人)괘에 이어서 등장하는 이유는 부인이 지아비를 잃는 상황을 상정한 까닭이다. 과거 전쟁 등으로 사별하는 여인들이 많았기에 과부들도 많았을 것이다.

 

睽 小事 吉
헤어짐(睽)은 작은 일로 받아들여야(小事) 길(吉)하다.

  헤어짐은 하늘의 순리로 편안히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만남은 이별의 시작이며 만남이 있었기 때문에 이별이 있게 되는 것이다. 만나지 않았으면 이별이란 있을 수도 없는 것이니, 주역에서 말한 원형리정(元亨利貞)의 자연의 섭리라고 받아들여야 길하다.

 

悔亡 喪馬勿逐 自復 見惡人 无咎
후회가 없다면(悔亡) 잃어버린 말을 다시 찾으려 하지 마라(喪馬勿逐) 스스로 돌아오기 마련이다(自復) 악인을 외면하지 않아야(見惡人) 허물이 없다(无咎)
  후회가 없어야 한다(悔亡)는 것은 자책은 하지 마라는 말이다. 떠나는 것(사랑)을 막으려 하지 말고 오는 것(惡人)을 거절하지 말아야 한다. 악인(惡人)은 마음속에 살고 있는 악마이니 임을 떠나 보내고 원망이 생기는 것을 뜻한다. 그를 외면하지 말라는 말이니 역설적으로 ‘자책을 하지 말고 하늘을 원망하고 미워하라’는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원망(惡人)은 저절로 떠나갈 것이기 때문에 허물이 아니다. 옛 성현들께서 강물을 대하시며 생각하시던 ‘그 들고나는 물은 쉼 없이 바뀌지만 강물이 흐르는 것은 변함없이 일정한 모습이구나’하는 뜻과 닮아있다. 사랑은 다시 찾아온다.

 

遇主于巷 无咎
우연히(遇) 거리에서 주군을 만나니(主于巷) 허물이 없다(无咎).

  잃어버린 말은 찾으려 하지 않아도 스스로 돌아오듯 사랑은 다시 찾아온다. 나의 새로운 주인 될 낭군님도 우연히 골목에서 만나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주역은 수절하고 사는 과부를 상정하고 있지 않다.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맞아들이는 “형사취수”는 동양에서는 여성에게 선택권이 있었다고도 하니(고구려 고국천왕의 부인이었던 우씨의 산상왕 선택) 홀로된 여인을 배려하기 위한 까닭이었을 것이다.

 

見輿曳其牛掣 其人天且劓 无初有終
소가 끌어야 할 수레를 보니(見輿曳其牛掣) 그 사람이 코가 잘리고 죄수의 표식을 하고 수레를 끌고 있다(其人天且劓)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나(无初) 끝이 있는 것(有終)이다
.
  한 사람의 삶이 너무도 비참한 지경이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있어 안타깝고 가여운 마음에 저절로 눈물이 흐르고 어찌할 줄 모르게 될 것이나 그 사람의 불행한 삶도 하늘(영원한 시간)의 관점에서 보면 찰나일 뿐이다. 하늘 아래의 모든 것은 변하고 끝이 있기 때문에 영원히 불행한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은 끝이 있으며, 모든 만남은 이별이 있다. 죽음의 의미를 깨달으면 어찌할 바를 모를 정도의 큰 일은 아닌 것이다.

 

睽孤 遇元夫 交孚 厲 无咎
이별은 외로움을 낳지만(睽孤) 근원적 아버지를 만나게 되니(遇元夫) 믿음으로 교류하면(交孚) 위태로워도(厲) 허물은 없다(无咎).
  사람이 혼자 남겨지고 고독해지면 깨달음이 생긴다고 한다. 근원적 아버지(元夫)는 종교로 말하면 신이며 철학으로 말하면 깨달음일 것이다. 아프고 괴롭기 때문에 근원적 아버지를 만나고 그를 믿고 따르며 구원을 바라는 것은 냉정할 수 없는 상태에서의 믿음이라 위태로움은 있을 것이지만 의지해도 허물은 아니라고 한다.

 

悔亡 厥宗 噬膚 往 何咎
후회를 없애면(悔亡) 가족이나 종족이(厥宗) 고기를 씹도록 해 줄 것이니(噬膚) 그렇게 나아감(往)에 어찌 허물이 있겠는가(何咎)

  후회는 스스로 자책하여 자신을 망치는 것을 말한다. 자책하지 않고 이별의 순리를 인식하고 순리로 받아들여 작은일(小事)이라 여기는 것이 후회를 없애는 것이니,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다면 가족과 종족으로부터 위로해주고 보살펴주는 도움의 손길이 있을 것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기 때문이다.

 

睽孤 見豕負塗 載鬼一車 先張之弧 後說之弧 匪寇婚媾 往 遇雨則吉
이별은 외로움이 따르나(睽孤) 진흙을 바른 돼지를 만나게 될 수도 있어(見豕負塗) 한 수레의 귀신처럼 실려온다(載鬼一車) 먼저 화살로서 맞서보면(先張之弧) 후에 활을 내려놓게 될 것이니(後說之弧) 도적이 아니라 혼인을 청하러 오는 것이다(匪寇婚媾) 손잡고 나아가면(往) 비를 만나 진흙이 씻겨져 나갈 것이니 길하다(遇雨則吉)
  사별하고 난 후 그 슬픔을 극복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주역은 말한다. 팔을 벌려서 새 인연을 맞아 들이지는 못하더라도 귀신이라 여기고 ‘화살로서 맞서보라’고. 그러면 그가 귀신이 아니라 돼지임을 알게 되고, 결합하러 찾아 오는 새 인연임을 알게 된다는 말이다. 나에게 사랑을 기대하지 말라고 날을 세우면서도 서서히 마음이 열려 새로운 사랑을 찾아가는 드라마의 줄거리가 생각나는 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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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ㅇㅅㅇ 2012.02.28 13: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규가 헤어짐을 의미하나요? 처음 보는 해석인데 -_-;;;

    • Favicon of https://obbaya.com BlogIcon 오빠야닷컴 2012.03.16 22: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늦어서 죄송합니다. 주역은 '백인백서'라고도 하듯, 일반화된 해설이 있을 수 없다 생각되구요... 불은 위를 향하려고 하고, 물은 아래를 향하려고 하는 괘상에서 '어긋남'의 그림을 그려 해설하는 쪽이 더 많지 않던가요?('' )( ''). 요즘의 책들은 독서를 못하여, 현재 추세를 잘 모르겠지만, 메모해 두겠습니다. 시간이 나면 신중히 검토해 보겠습니다. 꾸벅 (__)

37

家人 利女貞
【初九】閑有家 悔亡
【六二】无攸遂 在中饋 貞吉
【九三】家人嗃嗃 悔厲 吉 婦子 嘻嘻 終吝
【六四】富家 大吉
【九五】王假有家 勿恤 吉
【上九】有孚 威如 終吉

  과거에는 여성과 남성을 나누어 태어나게 하고, 각기 다른 신체적 능력을 준 것을 하늘이 다른 역할을 맡기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한 사람마다 역할이 다르다는 것이 소위 명분론(名分論)의 근원이다. 군주는 군주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답고 남편은 남편답고 부인은 부인답게 이름으로 구분된 그 역할을 다 하여 조화를 이루는 세상을 바람직한 세상이라 여겼다. 그래서 집안일은 여성의 권리이자 의무로 생각하였다.

 

家人 利女貞
집안을 이끄는 사람(家人)은 결실기와 마감기 사이에 있는 여성이다(利女貞).
  남자는 바깥일에 힘쓰고 집안일은 여성이 힘쓰는 남녀 역할분담의 사회가 고대가 지향한 사회였으니, 서로가 맡은 역할에 있어서는 그 주도권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남편이 밖에서 벌이는 사업을 부인이 주도하려는 것도 명을 어긴 것이며, 남편이 집안일을 주도하려는 것도 명(命)을 어기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역사에서는 남편이 어디서나 제왕으로 군림하려 했던 시절도 있었다. 결실기와 마감기 사이의 여성인 까닭은 며느리와 시어머니와의 여성간 역할 분담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閑有家 悔亡
집안을 잘 단속해야(閑有家) 후회가 없다(悔亡)
  집안을 잘 단속하는 것은 살림을 잘 단속하는 것과 자녀를 잘 단속하는 것 등 집안내의 중요한 일들을 잘 단속하고 관리하여 남편이 집안일을 걱정하고 근심하지 않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여성을 차별하여 가정이라는 울타리 내로 가두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성별에 따라 역할분담을 하여 조화로움을 이루고자 한 명분론의 사회를 지향했던 까닭이다.

 

无攸遂 在中饋 貞吉
나아가 벌어오는 것이 없어도(无攸遂) 중용의 덕으로 먹여주면(在中饋) 끝까지 길하다(貞吉)
  중용은 곧 좌로도 우로도 기울지 않고 바로 서 있는 것이다. 남편이 벌어오지 않으면 먹여주지 않는 ‘GIVE AND TAKE’식의 단순한 중간이 중용이 아니다. 남편이 남편의 도리를 하는가에 맞추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도리를 저버리지 않는 것이 중용이다. 물론 반대로 여인이 집안을 잘 단속하지 못하더라도 남편이 남편의 도리를 저버려서도 아니 된다.

 

家人嗃嗃 悔厲 吉 婦子 嘻嘻 終吝
여인이 가혹하고 냉혹하게 단속하면(家人嗃嗃) 후회가 있고 염려가 있겠지만(悔厲) 길(吉)하다. 오히려 어머니와 아들이(婦子) 희희낙낙하면(嘻嘻) 마침내 궁색해진다(終吝)
  지나치게 냉혹하면 남편을 공처가로 자식을 마마보이로 만들겠지만 지나치게 너그러워도 안되니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는 중용(中庸)의 도(道)를 따르는 집안단속이 필요하다.

 

富家 大吉
집안을 부유하게 하면(富家) 끝까지 길하다(大吉)
  가인(家人)의 중요한 사명은 집안을 부유하게 하는 것이다. 단순한 물질적 부가 아니라 알뜰히 살림을 하여 낭비되는 것이 없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 많아도 늘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고, 적어도 저축을 하면서 가계를 꾸리는 사람도 있다. 구두쇠가 되어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쓰지 않으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가계를 잘 단속하여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것을 막는 것이 집을 부유하게 하는 것이며 크게 길한 것이다.

 

王假有家 勿恤 吉
왕(王)은 가정에 너그러우니(假有家)을 근심하지 말라(勿恤) 길(吉)하다.
  여인이 가정을 잘 꾸려 집안이 잘 단속되고 부유한 가정이 되었다면, 혹시 부유함으로 인해 왕의 의심을 받지 않을까? 왕이 뺏어가지 않을까? 왕의 사명은 가정을 부유하게 해 주는 것이지, 부유함을 뺏어가는 것이 아니다. 흉년이 들어 국가재정이 부족하자 애공이 유약(공자의 제자)에게 방도를 물으니 유약은 10분의 1법을 시행하라고 하였다. 애공은 10분의 2법도 부족한데 어찌 10분의 1법을 하라는가 라며 화를 낸다. 유약은 “백성이 풍족하면 임금이 어찌 풍족하지 않을 것이며, 백성이 부족하다면 임금은 누구와 더불어 풍족하겠습니까?”[논어 제9편 안연 제9장]라고 답했다. 이른바 고대의 '군민일체'의 사상이니 군주는 백성에게 부유함을 저장해 둔다는 것이다. 그러니 부유하고 바른 가정은 곧 왕의 뜻이기도 한 것이다. 왕이 바른 왕이라면 근심할 필요가 없다.

 

有孚 威如 終吉
신념이 있고(有孚) 존엄을 잃지 않아야(威如) 끝까지 길하다(終吉)

  부(孚)는 주역의 전체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 중의 하나이다. 생각이 없는 것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신념, 신의, 가치관 등등 적절히 번역이 되어야 되는 개념이다. 이 부(孚)가 무너지기 쉬운 곳이 또한 가정이다. 맹목적이고 일방적인 복종을 강요할 위험이 많은 곳이 가정이기 때문이다. 부모라고 해서 남편이라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복종을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다. 가정은 신념이 통해야 하고 개인의 존엄성이 존중되어야 끝까지 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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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明夷 利艱貞
【初九】明夷于飛 垂其翼 君子于行 三日不食 有攸往 主人有言
【六二】明夷 夷于左股 用拯馬壯 吉
【九三】明夷于南狩 得其大首 不可疾貞
【六四】入于左腹 獲明夷之心 于出門庭
【六五】箕子之明夷 利貞
【上六】不明 晦 初登于天 後入于地

  명이(明夷) 괘는 밝음이 없어진다는 뜻이다. 공자께서 한탄했던 도가 무너진 세상을 의미한다. 공자께서는 “천하에 도가 살아있으면 나와서 일해야 하고 천하가 태평하지 않으면 숨어야 한다”[논어 제8편 태백 13장]고 하셨다. 물론 산 속으로 들어가 세상과 담을 쌓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갈고 닦으며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明夷 利艱貞
세상의 도가 무너지면(明夷) 성숙기와 말년사이가 어렵다(利艱貞)
  열매를 맺고 마감을 해야 하는 짧은 시간 속에서 도가 무너졌으니 뜻을 제대로 펼칠 수가 없으니 시절을 잘못 만났기 때문이다. 명이(明夷)의 시절에 전성기가 지나가면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때를 만나지 못해 결실을 맺고 마감을 할 수 없다면 그것도 천명(天命)일 지 모른다.

 

明夷于飛 垂其翼 君子于行 三日不食 有攸往 主人有言
도가 무너지면(明夷于飛) 날아야 할 때 그 날개를 접어야 한다(垂其翼) 군자의 길을 가면(君子于行) 3일 동안 먹을 수 없게 되고(三日不食) 시간이 지나가도(有攸往) 주인의 꾸지람만 듣게 된다(主人有言)
  도가 무너진 세상에서 오히려 군자의 길을 가면 배고픔이 있다고 한다. 좋은 소리를 들을수도 없다고 한다. 경제적으로도 궁핍하게 될 것이요, 명예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니 어찌해야 하는가? 주역은 날아야 할 때 그 날개를 접어야 한다고 하였으나, 변신하여 현실과 타협하라고 한 것은 아니다. 나아가려고 애쓰지 말라는 뜻이다.

 

明夷 夷于左股 用拯馬壯 吉
도가 무너져서(明夷) 왼쪽 허벅지에 화살을 맞더라도(夷于左股) 구조에 사용할 말의 힘이 세면(用拯馬壯) 길(吉)하다.
  도가 무너졌기 때문에 왼쪽 허벅지에 화살을 맞았으니 바르지 못함에 당한 것이다. 그러나 왼쪽 허벅지는 치명적이지 않은 신체의 부분이다. 치명타를 입지는 않았고 도와주는 센 힘이 있다면 큰 걱정이 아니다. 길(吉)한 이유는 날개를 접지 못하고 있는데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날개를 억지로 접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明夷于南狩 得其大首 不可疾貞
도가 무너졌을 때 남쪽으로 사냥을 떠나서(明夷于南狩) 그 적의 수괴를 사로잡았다 하더라도(得其大首) 끝까지 서둘지 마라(不可疾貞)
  따뜻한 남쪽은 바른 도리를 상징한다. 그 곳에서 우두머리를 얻었으니 곧 세상을 밝은 도리로 이끌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는 말이다. 그러나 끝까지 서둘지 않아야 한다. 세상의 도가 무너져 있으므로 급하게 세상을 변하도록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공자께서도 "성왕이 나타나더라도 한 세대가 지나야만 세상을 어질게 만들 수 있다"[논어 제13편 자로 제12장]고 하셨다. 세상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는 법이다.

 

入于左腹 獲明夷之心 于出門庭
왼쪽 뱃속에 들어가(入于左腹) 도가 무너져있는 마음을 알았다면(獲明夷之心) 속해있던 집단에서 나와야 한다(于出門庭).

  왼쪽 뱃속이란 곧 심장이 위치한 곳을 말한다. 옛 사람들은 사람의 생각이 살고 있는 장소는 뇌가 아니라 가슴으로 여겼다 한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면 가슴이 아프다고 생각하였고, 전통적으로 사람의 사망을 심장이 정지되는 것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근래에 뇌사를 인간의 사망으로 인정하자는 주장이 강하고 아마도 곧 그렇게 바뀌게 될 것 같기는 하다. 여하튼 그 마음을 통찰하여 도가 무너져 있음을 알았다면 속히 그 집단으로부터 나와야 현명하다고 한다.

 

箕子之明夷 利貞
도가 무너졌음을 알고 있는 현자(箕子之明夷)는 끝까지 이롭다(利貞)

  도가 무너졌는지의 여부를 아는 것도 안목이 없다면 판단하기 힘든 일이다. 명이(明夷)의 세상에는 교묘한 말이 진실을 속이고, 사이비가 진짜 행세를 하기 때문이다. 도가 무너진 세상은 말재주가 좋은 사람과 화려하게 꾸밀 줄 아는 사람이 존중 받는 세상이 되는 것이니, 곧 교언영색(巧言令色)이 난무하는 세상이라면 바른 도가 무너져 있는 세상일 것이다.

 

不明 晦 初登于天 後入于地
도가 무너졌음을 알지 못하는(不明) 어두움(晦)이라면 처음에는 하늘에 올라도(初登于天) 곧 땅으로 추락함으로써(後入于地) 마감을 하게 될 것이다.
  도가 무너졌음을 알지 못하는 어두운 안목을 가졌다면 처음에는 하늘에 오르는 것으로 착각하여도 후에 그 곳이 땅으로 추락하는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바른 도(道)가 무너졌음을 왜 알지 못할까? 도(道)에 마음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이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먹어도 그 맛을 알 지 못한다”[대학 제7장 정심수신]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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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晉 康侯 用錫馬蕃庶 晝日三接
【初六】晉如 摧如 貞吉 罔孚 裕 无咎
【六二】晉如 愁如 貞吉 受茲介福于其王母
【六三】衆允 悔亡
【九四】晉如鼫鼠 貞厲
【六五】悔亡 失得勿恤 往吉 无不利
【上九】晉其角 維用伐邑 厲吉 无咎 貞吝

  중국은 천자(天子)가 각 지역의 제후들을 통솔하는 체제를 갖고 있었다. 천자가 제후를 임명하여 한 지역을 독자적으로 다스리게 하고 그 제후를 지배하는 형태의 정치체제 였는데, 그래서 조공을 받쳤던 우리나라가 중국의 제후국이었느니 하는 논란이 있기도 하였다. 여기에서 말하는 진(晉)괘는 천자의 권력이 아닌 제후의 권력을 말하며, 천자에 충성하는 권력을 의미한다.

 

晉 康侯 用錫馬蕃庶 晝日三接
권력(晉)은 강후의 지위를 받고(康侯) 마필을 상으로 받으며(用錫馬蕃庶) 하루에(晝日) 세 번 임금을 배알함을(三接) 말한다.
  천자로부터 제후로 봉해지면 천자의 신하로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데, 천자를 조현(朝見)하여 업무 보고와 인사를 하여야 하며, 조공을 받쳐야 하며, 천자를 지키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고 천자에게 불충한 다른 제후를 토벌하여야 하는 등 여러가지 신하로서의 의무를 지게 되었다. 제후로 봉해졌는데 마필을 상으로 받고 하루에 세 번이나 천자를 배알하게 되니 곧 올바른 권력이며 천자에 충성하는 권력이어야 한다는 의미한다. 반드시 하루에 세 번 만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번 청해도 천자가 만나줄 정도의 신임을 의미한다.

 

晉如 摧如 貞吉 罔孚 裕 无咎
권력으로(晉如) 정적을 굴복시켜야(摧如) 끝까지 길하다(貞吉) 굴복한 적수가 신뢰할 수는 없더라도(罔孚) 관대하게 대해야(裕) 허물은 없다(无咎)
  권력은 정적을 굴복시키지 못하면 위협이 되는 무서운 속성을 내재하고 있다. 권력으로 정적을 굴복시켜야 하는 것은 제후로서의 의무 중 하나인 ‘불충한 다른 제후를 토벌해야 할 의무’를 의미한다. 중국의 역사는 제후들의 커진 힘을 막지 못해 결국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하여 혼란기로 접어들었다. 권력은 정적을 힘으로 굴복을 시켜야 하지만 그 반면 관대하게 대해야 한다. 중용(中庸)의 도를 지키라는 것이다. 채찍과 당근이 조화되어야 하니 ‘교육’의 도(道)와 마찬가지이다.

 

晉如 愁如 貞吉 受茲介福于其王母
권력은(晉如) 근심이 있어야(愁如) 끝까지 길하니(貞吉) 왕모로부터 그 복을 받을 것이다(受茲介福于其王母)
  제후의 권력은 천자로부터 다른 지역의 제후들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견제를 받게 되는 자리이다. 권력의 근심은 그러한 권력의 견제를 말한다. 권력이 견제를 받지 못하면 액톤(Acton)의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한다’는 말처럼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오늘날 삼권분립(三權分立)이 제도로써 자리잡은 까닭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천자와 다른 제후들의 의심을 사게 되는 심한 견제를 받으면 왕모가 살펴 줄 것이라고 한다. 왕모는 역사적으로 문왕의 어머니였던 태임(太任)을 지칭한다고 한다. 천자는 혹 간신배들에게 휘둘려 분별력이 떨어질 수도 있지만, 어머니의 모성본능은 아들을 해롭게 하는 자와 이롭게 하는 자를 본능의 눈으로 더 잘 알게 되는 까닭일 지 모른다.

 

衆允 悔亡
민중의 지지가 있어야(衆允) 후회가 없다(悔亡).
  바른 권력인지 바르지 못한 권력인지의 여부는 민중으로부터 찾아야 한다. 탕왕이 걸왕을 내쫓고 무왕이 주왕을 정벌한 것을 두고 맹자는 남을 해치고 잔인하게 구는 한 명의 인간을 처형한 것일 뿐 군주를 시해한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군주가 군주답지 않으면 군주가 아니라는 뜻인데, 바른 권력이란 무조건적으로 천자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바른 도리와 민중의 마음을 따르는 것이다.

 

晉如 鼫鼠 貞厲
권력이(晉如) 들쥐와 집쥐와 함께 하면(鼫鼠) 끝까지 위태롭다(貞厲).
  들쥐는 떼를 지어서 농작물에 단번에 큰 피해를 주고, 집쥐는 집안에 기생하며 조금조금씩 피해를 주는데 그러한 성향의 간신배들을 상징한다. 공자께서는 “스며드는 참소와 애통한 무고가 통하지 않는다면 널리 밝히는 통찰력을 가졌다 할 수 있다”[논어 제12편 안연 제6장]고 하셨다. 논어 원문의 침윤지참(浸潤之譖)과 부수지소(膚受之愬)는 이미 고사성어가 된 말이다. 침윤지참(浸潤之譖)은 물이 점점 스며드는 것과 같이 쌓고 쌓이게 하여 모함하는 것이며, 부수지소(膚受之愬)는 살을 에는 듯한 간절한 하소연으로 단번에 흔들리게 모함하는 것을 말하니, 침윤지참은 집쥐와 의미가 같고 부수지소는 들쥐와 의미가 같다.

 

悔亡 失得勿恤 往吉 无不利
후회가 없다면(悔亡) 권력을 잃고 얻음에 근심하지 말라(失得勿恤) 그렇게 나아가면 길하고(往吉) 이롭지 않음이 없다(无不利)

  권력이 단지 욕망이라면 그만큼 무상한 것도 없다. 옛 속담에 ‘정승 개 문상은 가도 정승 문상은 안 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권력을 잃고 얻는 것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바름을 도모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권력은 그 바름을 도모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晉其角 維用伐邑 厲 吉 无咎 貞吝
권력의 뿔을 세우면(晉其角) 그 권력으로 이웃을 치게 되니(維用伐邑) 위태하다(厲) 결과가 좋고(吉) 허물은 없더라도(无咎) 끝내는 어려워질 것이다(貞吝)
  권력의 뿔을 세우는 것은 권력의 힘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 가진 힘을 행사하여 이웃을 치는 것은 잘못이라는 뜻이다. 힘으로 제압했기 때문이며 힘을 남용했기 때문이다. 권력이라는 강한 힘을 가졌으되 그 힘은 공격적으로 행사되어야 하는 힘이 아니라 바른 도를 지키기 위한 방어적인 행사여야 바른 까닭이다. 공자께서 소(韶)음악은 정말 아름답고 참으로 좋다고 하셨지만 무(武)음악은 아름답지만 참으로 좋지는 않다고 하셨으니[논어 제3편 팔일 제25장], 무왕은 힘으로 자신의 주군이였던 주왕을 참살하고 천하를 차지하였기 때문이었다.

Posted by 오빠야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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