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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過 亨 利 貞 可小事 不可大事 飛鳥遺之音 不宜上 宜下 大吉

【初六】飛鳥 以凶

【六二】過其祖 遇其妣 不及其君 遇其臣 无咎

【九三】弗過防之 從 或戕之 凶

【九四】无咎 弗過 遇之 往 厲 必戒 勿用永貞

【六五】密雲不雨 自我西郊 公 弋取彼在穴

【上六】弗遇過之 飛鳥離之 凶 是謂災眚

  앞의 중부(中孚)는 중용에 바로 서 있는 것이지만, 소과(小過)는 모자라고(小) 지나쳐(過) 중용의 길을 벗어난 것을 말한다. 28번째 대과(大過)는 시기를 놓쳐 지나간 것을 말하는데 소과(小過)는 문자상으로는 대과의 반대되는 개념으로 여겨지지만 전혀 다른 의미로, 소과는 모자라거나(小) 지나쳐(過) 중용을 벗어난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소과(小過)괘는 중부(中孚)괘와 정반대의 음양으로 이루어져 있다.

 

小過 亨利貞 可小事 不可大事 飛鳥遺之音 不宜上 宜下 大吉

치우침(小過)은 인식이 있는 시기(亨利貞)에 생긴다. 조금 기울어짐은 괜찮으나(可小事) 크게 기울어짐은 불가하다(不可大事) 높이 나는 새가 그 소리를 남기니(飛鳥遺之音) 올라가면 마땅하지 않고(不宜上) 내려옴이 마땅하니(宜下) 내려온다면 크게 길하리라(大吉).

  중용을 벗어나는 것은 원형리정(元亨利貞)의 시기중에 형리정(亨利貞)의 시기의 일이라고 한다. 씨앗인(元) 상태에서는 중용을 벗어날 수 없다. 인식이 생김으로써 그 지혜가 지나치거나 모라라서 중용을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께서 “본성은 가깝지만 학습으로 멀어진다”[논어 제17편 양화 제2장]고 하셨다. 중용에서 치우치는 것이 약간 기울어진 것이라면 괜찮다. 그러나 크게 기울어짐은 불가하다. 높이 나는 새가 그 소리를 남기는 것은 한계에 봉착했기에 힘이 부친 까닭이다. 한계를 알았으니 조금 기울어진 것이다. 한계를 느꼈음에도 더 올라가려 한다면 크게 기우는 것이 된다.

 

飛鳥以凶

계속 비상하려고 하니 흉하다(飛鳥以凶)

  계속 비상하려는 것은 욕심이다. 욕심이 과하기 때문이니 중용을 벗어난 것이요, 또한 계속 비상하려는 것은 제 자신의 분수를 모름이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라고 하였으니 제 자신을 모르는 것이다. 중용을 벗어나는 이유는 제 자신을 모르고 욕심이 과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過其祖 遇其妣 不及其君 遇其臣 无咎

그 할아버지를 지나쳐(過其祖) 그 할머니를 만나고(遇其妣) 그 임금께 나아가지 못하고(不及其君) 그 신하를 만남은(遇其臣) 조금 지나친 것이지만 허물은 아니다(无咎).

  할아버지를 지나친 것은 과(過)했으나 할머니를 만났으니 그 뜻이 할아버지에게 전달될 것이요, 임금께 나아가지 못한 것은 모자랐으나(小) 그 신하를 만났으니 그 뜻이 임금께 전해질 것이다. 지나치고(過) 부족한(小) 것이지만 정도가 약하기에(小事) 허물은 아니다. 주역은 말하는 것 같다. 중용의 도가 최선이기는 하지만,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도 중용은 아니라고.

 

弗過防之 從 或戕之 凶

지나치지 않았을 때(弗過) 그것을 방지해야 하지만(防之) 지나침을 따르면(從) 혹 그것이 끝장날 수도 있으니(或戕之) 흉(凶)하다.

  모자란 것(小)은 다시 채울 수 있지만 지나친 것(過)은 그것을 방지하지 않으면 끝장날 수도 있음이니 곧 “모자란 물은 채울 수 있지만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는 법”을 말함이다. 공자께서는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과 같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을 말씀하셨으나, 그 같다는 것은 중용의 도를 벗어난 것이 같다는 말씀이셨으며, 지나침과 모자람 중에서 선택을 하라고 한다면 모자란 것이 낫다고 하실 것 같다.

 

无咎 弗過 遇之 往 厲 必戒 勿用永貞

허물이 없이(无咎) 지나치지 않았는데(弗過) 점점 지나치게 되면(遇之) 그대로 나아가면(往) 위태롭다(厲) 반드시 경계해야 하니(必戒) 끝까지 계속하려고 하지 마라(勿用永貞).

  딱 한번만 더 하고 멈춘다고, 딱 한번만 더 하고 멈춘다고 하다가 그 선을 넘는 경우가 있으니 그것을 경계한 말이다. 예를 들기에 가장 적합한 것이 술 한잔인 것 같다. 딱 한번만 더, 딱 한잔만 더 하면서 끝맺음을 하지 못하니 중용을 벗어나는 위태로운 것이다.

 

密雲不雨 自我西郊 公 弋取彼在穴

구름이 일어도 비가오지 않음은(密雲不雨) 나 스스로 어두운 서방에 있기 때문인데(自我西郊) 무왕(公)이 구멍에 피해있는 새를 활로 쏘아 잡았다(弋取彼在穴) 다소 모자랐다.

  옛 성현들이 제후의 신분으로 천자의 신하였었던 무왕이 천자인 주왕을 정벌한 것을 받아들이기는 하였지만 칭송하지는 않았다. 공자께서도 마찬가지셨다. 상나라가 이미 덕을 잃어 주왕이 구멍에 피해있는 신세와 마찬가지였는데도 힘으로 상나라를 정벌하고 주왕을 참살하였기 때문이다. 중용을 벗어난 것이었다. 그러나 주역은 과(過)한 것이 아니라 조금 모자란 것(小)이라고 하고 있다. 주나라를 태동시킨 무왕을 변명하는 까닭인 듯 하기도 하다.

 

弗遇過之 飛鳥離之 凶 是謂災眚

만나지 아니하고 지나치니(弗遇過之) 새가 날아 이별하게 되니(飛鳥離之) 흉(凶)하다. 이것을 말하여 재앙(是謂災眚)이라고 한다.

  요(堯)임금이 아들에게 지위를 넘긴 것이 아니라, 덕이 있던 순(舜)임금에게 천자의 지위를 넘긴 것처럼, 상나라 주왕이 무왕을 만나 그 지위를 넘겼으면 좋았을 것인데 그것을 지나치니, 곧 한계에 다다른 새가 더 높이 날기 위해 비상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주역은 상나라의 멸망의 책임은 조금 부족했던(小) 무왕 때문이 아니라 지나치게 과했던(過) 주왕 때문이라고 탓을 하니, 무왕의 정벌을 변명하고 있는 듯 하기도 하다.

Posted by 오빠야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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