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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

念身不求無病
身無病則 貪欲乃生
是故大聖化人
以病苦爲良藥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나니
그래서 성인께서 말씀하시되
「병고를 양약으로 삼으라」하셨느니라.

二.
處世不求無難
世無難則 驕奢必起
是故大聖化人
以患難爲解脫
세상살이에 어려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세상살이에 어려움이 없으면 교만하고 사치스러워지나니
그래서 성인께서 말씀하시되
「근심과 곤경을 해탈로 삼으라」하셨느니라.

三.
究心不求無障
心無障則 所學躐等
是故大聖化人
以障碍爲逍遙
배움에 있어 마음에 장애 없기를 바라지 말라.
마음에 장애가 없으면 배움이 얕아지나니,
그래서 성인께서 말씀하시되
「장애를 걸림없이 노닐어라」하셨느니라.

四.
立行不求無魔
行無魔則 誓願不堅
是故大聖化人
以群魔爲法侶
수행하는데 마귀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수행하는데 마귀가 없으면 서원이 굳건해지지 못하나니,
그래서 성인께서 말씀하시되
「모든 마귀를 도와주는 벗으로 삼으라」하셨느니라.

五.
謀事不求易成
事易成則 志成輕慢
是故大聖化人
以事難爲安樂
일을 도모함에 쉽게 이뤄지기를 바라지 말라.
일이 쉽게 이루어지면 뜻이 가벼워지고 오만해지나니,
그래서 성인께서 말씀하시되
「어려움을 안락으로 삼으라」하셨느니라.

六.
交情不求益我
情益我則 虧失道義
是故大聖化人
以幣交爲資糧
남과 사귐에 있어 내가 이롭기를 바라지 말라.
내가 이롭고자 하면 도의를 저버리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께서 말씀하시되
「손해보는 사귐을 재산으로 삼으라」하셨느니라.

七.
於人不求順適
人順適則 內心自矜
是故大聖化人
以逆人爲園林
남이 내 뜻대로 복종하기를 바라지 말라.
남이 내 뜻대로 복종한다면 마음이 저절로 거만해지나니,
그래서 성인께서 말씀하시되
「거스르는 사람으로 동산의 숲을 삼으라」하셨느니라.

八.
施德不求望報
德望報則 意有所圖
是故大聖化人
以市德爲棄屣
덕을 베풀면서 보답을 바라지 말라.
덕이 보답을 바라면 계산하는 바가 생기나니,
그래서 성인께서 말씀하시되
「베푼 덕을 헌신짝으로 삼으라」하셨느니라. 

九.
見利不求霑分
利霑分則 癡心必動
是故大聖化人
以踈利爲富貴
이익을 분에 넘치게 바라지 말라.
이익이 분에 넘치면 마음이 반드시 어리석어 지나니,
그래서 성인께서 말씀하시되
「적은 이익으로도 부귀해지라」하셨느니라.

十.
被抑不求申明
抑申明則 人我未忘
是故大聖化人
以受抑爲行門
억울함을 당했다고 밝히려 하지 말라.
억울함을 밝히려하면 원망하는 마음을 돕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께서 말씀하시되
「억울함을 감내하여 수행의 문으로 삼으라」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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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빠야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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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3월 6일은 고종께서 태극기를 국기로 선포(1883년 3월 6일-음력 1월 27일)하신 날이기에 그 상징성(사상)에 대해서 조금 설명 해 볼까 합니다. 오른쪽에 게시한 다양한 태극기의 모습을 보면, 이승만 대통령시대에 표준을 정하기 전에는 정형화된 태극기를 사용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주역 사상에서 살펴보면 현행 태극기의 태극과 괘의 배치가 맞지 않는 듯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크게 중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해 논외로 하겠습니다. 그 당시의 사상은 ‘형식’을 중시하지 않았고 ‘실질’을 중시했던 문화라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그 실질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고 싶습니다. 참고로, 공식적인 자료에 대해서는 국기홍보중앙회의 설명을 참고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태극(太極)의 의미는 대단히 철학적이고 심오합니다. 결코 만만한 개념이 아닙니다. 쉽게 설명 할 수 없는 이유는 둘로 나눌 수 있겠지요. ①모르는 것 ②설명하기 힘든 것 그렇게 분류됩니다. 태극(太極)은 두 번째에 속합니다.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이라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복국의 맛'이 어떠한지 말과 글로서 설명하기 힘든 이유로 비유하면 될까요? 맛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어떻게 설명하기가 불가능한 영역입니다.

  잡설이 길었습니다. 관념적 사고를 해야한다는 전제를 깔고서 태극(太極)의 개념에 대해 말씀드리려는 까닭이었습니다. 일단 정의부터 하겠습니다. 태극은 "생겨나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 하나만이 아니다"라는 의미로 규정할 수 있습니다. 

  이 표현은 도(道)를 설명하기 위해서 종종 인용하는 말과 같습니다. 따지고보면 도(道)라는 것이 태극의 개념과 다르지 않기도 하구요. 죄송합니다. 머리가 아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
  아담과 이브는 잘 아실테니 비유를 해 보겠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시작은 아담과 이브가 함께 생겨났어야만 가능합니다. 후세 사람들이 이름을 붙여 놓았지만 논리적으로 남자와 여자가 동 시간대에 함께 존재했어야 인류가 시작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유학에서 애초 사람(人)이 둘(二)이었다는 인(仁)의 사상도 이 개념을 품고 있습니다. 어쨌건, 생겨나 존재하게 되는 모든 것은 그 하나만 있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남자와 여자처럼 색계의 시각으로 쉽게 구분할 수 있는 것만 함께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많은 물질계의 현상이 음양으로 구분할 수 있기에 태극을 이해하는 데 도움은 됩니다. 앞서 규정한 정의 '생겨나는 것은 함께 생겨난다'는 의미는 남화경(장자)에 나오는 '방생설'과 같은 의미입니다. 같은 뜻이지만  다른 표현으로 '관계'없이 생겨나는 것은 없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말이 어렵기 때문에 예를 들기로 하겠습니다.

  깜깜한 밤에 하늘을 보면 별이 반짝입니다. '와! 별이 있네.' 그렇게 감탄하며 별에 집중하지만, 별이 더 잘 보일 뿐 별은 어두운 공간과 '함께' 있습니다. 더 잘 드러나는 것과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을 함께 볼 수 있음을 관계론적 안목이라고 합니다. 생태계! 자연(自然)은 관계와 관계의 신비로운 조화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더 깊게 나아가면 사람의 가슴속에 생겨나는 무형도 '늘 함께 하나'로 생겨난다는 방생(方生)의 이치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사랑이라는 마음 하나만 단절되어 생겨나지 않습니다. 사랑은 미움과 함께 생겨납니다. 사랑의 크기를 키워보시면 조금 이해를 높일 수 있습니다. 숨어있던 미움이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하나님을 너무 사랑하면 다른 종교인을 죽이고자 합니다. 애인을 너무 사랑하면 애인이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고 싶어집니다. 본래 사랑과 미움은 서로를 양 극단으로 하는 다양한 마음의 '한 덩어리'였고, 생겨날 때 함께 생겨났던 녀석입니다. 단지 극단으로 이르기 전에는 함께 생겼음을 느끼기 힘들죠.

  쾌락이라는 녀석도 살펴 보겠습니다. 쾌락이라는 놈, 하나 생겨난 줄 알지만 쾌락은 고통과 함께 생겨납니다. 고통이라는 놈도 마찬가지죠. 고통은 쾌락과 함께 생겨납니다. 마찬가지로 크기를 키워보면 좀 이해가 됩니다. 고통의 크기를 키워보면 숨어있던 쾌락이 나타납니다. 반대로 쾌락의 크기를 키워보면 숨어있던 고통이 나타납니다. 고통과 쾌락도 서로를 양 극단으로 하는 다양한 느낌의 '한 덩어리'였고, 함께 생겨났던 것입니다.


  더 깊게 언급하는 것은 예(禮)에 어긋나겠지요? 이 정도에서 태극의 뜻을 정의하겠습니다. 우리 태극기의 태극이 음양으로 나눠 있습니다. 그것은 극단과 극단을 기준으로 하여 '함께 생겨나는 일체'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음양을 극단으로 하는 경계선이 물결임을 유념하시면 좋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물결때문에 예를 조금 더 들겠습니다. 더 잘 드러나는 것과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을 함께 볼 수 있는 안목을 다시 한 번 더 강조하고자 하는 뜻입니다. 
여름으로 대표되는 '더위'와 겨울로 대표되는 '추위'는 달리 떨어져 있는 별개가 아니라, 함께 생겨나 함께 있습니다. 여름에는 더위만 있다고 느끼지만, 더위를 억제하고 있는 추위가 함께 있습니다. 추위가 없다면 모두 타 죽겠지요. 겨울에는 추위만 있는 줄 알지만, 추위를 억제하고 있는 더위도 함께 있습니다. 더위가 없다면 모두 얼어 죽겠지요. 더위가 기운이 더 강하여 추위를 간과하고, 추위가 더 강하여 더위의 기운을 못 느끼기에 함께 있음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할 뿐입니다. 그래서 진실로 함께 있더라도 더 잘 드러나는 것이 있음을 '물결이 치듯 오고가는 흐름'으로 우리 태극이 표현했습니다.


형이상학적인 얘기라서 더 길게 말하면 돌을 맞을지 모르겠네요. ^^; 굳이 이렇게 복잡한 배경을 깔고 얘기했던 까닭은 아래 기술하는 이 의미를 조금 더 전달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우리 조상님들은 '함께 하나다'는 이 태극(太極)의 의미를 체득하셨습니다. 그래서 행복이 닥치거나 불행이 닥쳐도 과하게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생겨난 것은 행복 하나만이 아니기에 행복에 취하지 않았고, 생겨난 것은 불행 하나만이 아니기에 불행에 노하지도 않았습니다. 태극의 물결처럼 순환하리라는 진리를 알았고, 어떤 하나가 더 잘 드러나는 때를 만났을 뿐이라 여겼습니다. 힘들 때 돕고 좋을 때 나누며 상부상조하며 지내온 전통은 '너'가 '나'와 다르지 않다는 '행복'과 '불행'이 다르지 않다는 태극(太極)사상의 발현입니다.


이상으로 태극의 개념을 간단(?)히 설명드렸습니다. 선명하게 이해되지 않으셔도 '모든 것은 관계적이며, 함께 하나이다'는 그 느낌이 '태극'이라는 정도는 기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건곤감리의 4괘는 그림으로 설명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현행 태극기 제작도와는 다르지만, 설명을 위한 그림임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은 ‘함께 하나로 일체이다’는 태극의 사상을 바탕으로

천지창조의 주요한 4가지 요소, 즉 하늘, 땅, 불, 물을 표현한 것입니다.
작대기 하나(-)가 양을 의미하고, 작대기 두개(- -)가 음을 의미합니다.

추측건대, 순양의 기운을 받아 하늘이 만들어지고 순음의 기운을 받아 땅이 만들어지는 관계도를 채택한 것 같습니다.

주역 8괘도와 비교하면 ‘음양조화’를 지향하는 의미에서는 반대로 괘가 들어가야 더 어울려 보이는데요. 제가 모르는 깊은 뜻이 있나 봅니다. 태극기의 표준을 정할 때 많이 검토하고 연구하였겠지요. 그리고 태극이 위 그림에서 45도 더 기울게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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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빠야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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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kkboribab.tistory.com/ BlogIcon 꽁보리밥 2010.03.07 21: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참 전에 배웠던 기억이 떠오르는군요.
    덕분에 한번 더 태극기의 상징과 의미를 되새겨봅니다.

 우리나라의 국기인 태극기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의견이 분분합니다만, 가장 단순하게 얘기하면 태극은 무극에서 음양의 기운이 조화를 이뤄 상대성을 가지게 되는 움직임이며, 그 기운에 의해 하늘(건)과 땅(곤) 물(감)과 불(리)이 생겨나기 시작하는 천지창조를 얘기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주역64괘 상하괘 도해.pdf

주역64괘 상하괘 도해.zip


어쨌건, 태극을 감싸는 혹은, 태극에서 생겨난 4괘는 주역의 8괘에 속하는데,

8괘 혹은 64괘 중에서 어디에 위치하는지 정도만이라도 알면 좋지 않을까요?

기존에 그려둔 것이 있었지만 주역 64괘를 다시 한번 그려보았습니다.

 

제가 학교에 다닐때, 한문선생님께서 태극의 상징성에 대해서 설명해 주시던 기억이 납니다.

한반도라는 교량적 위치에 정착한 것 역시 조화를 도모하는 태극의 성향때문이라고 하셨는데요.

태극의 정신을 근본부터 가지고 있기에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일 수 밖에 없다고 하셨지만,

요즘 세상을 보면 의심스럽기도 합니다. 생각이 나서 한 번 그려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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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2. 21. 20:19

신심명(信心銘) 방담(放談)/자료(資料)2010. 2. 21. 20:19

01> 至道無難 唯嫌揀擇 但莫憎愛 洞然明白
도(道)에 이르기가 어렵지 않으니, (나누어 한 쪽을) 택하려는 마음만 버리면 됩니다.
미워하고 사랑하는 (나누는) 마음만 없어지면 환하게 밝아질 것입니다.


 

02> 毫釐有差 天地懸隔 欲得現前 莫存順逆
털끝만치 나누어도 하늘과 땅 만큼 어긋나는 것이니
도가 앞에 나타나길 원한다면 따름과 거스럼을 두지 마십시오.


 

03> 違順相爭 是爲心病 不識玄旨 徒勞念靜  
떨쳐내고 따라가는 것이 서로 다투어, 이것이 마음에 병이 되는데,
현묘한 (도의) 뜻을 알지 못하니 애써 생각만 고요히 하려고 합니다.

 

 

04> 圓同太虛 無欠無餘 良由取捨 所以不如
(도는) 원만함이 큰 허공과 같아서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는데,
취하고 버리는 그 나눔으로 말미암아 같아질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05> 莫逐有緣 勿住空忍 一種平懷 泯然自盡
세간의 인연에도 따라가지 마시고 빈 곳에 살려고도 마십시오. 
한 가지로 바로 지니면 사라져 저절로 (도를) 다하게 됩니다.

有緣(유연) : 존재하는 것은 인연 따라 이루어지기 때문에 유연이라고 한다.
空忍(공인) : 공은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공인이라고 한다.

 

06> 止動歸止 止更彌動 唯滯兩邊 寧知一種
(마음) 움직임을 그쳐 멈춤으로 돌아가면 멈춤이 또한 큰 움직임이 됩니다.
그렇게 양변에 매달리면 어떻게 하나임을 알겠습니까!

 

 

07> 一種 不通 兩處失功 遺有沒有 從空背空
하나로 통하지 못하면 양쪽 모두 그 공덕을 잃습니다.
있음을 버리려면 있음에 빠지고, 공함을 따르려면 공함을 등집니다.


 

08> 多言多慮 轉不相應 絶言絶慮 無處不通
말이 많고 생각이 많으면 점점 더 상응하지 못하니,
말을 끊고 생각을 끊으면 통하지 않는 곳 없습니다.

 

 

09> 歸根得旨 隨照失宗 須臾返照 勝脚前空
근본으로 돌아가 그 뜻을 얻고 비춤을 따라 종지를 잃으니 
잠깐 돌이켜 비춰봄이 공함을 앞세우는 것보다 나을 것입니다. 

 

 

10> 前空轉變 皆由妄見 不用求眞 唯須息見
공을 앞세워 바꿔 변하려는 것은 다 망령된 생각 때문이니 
진리를 구하려 하지 말고 오직 망령된 생각을 쉬십시오.

 

 

11> 二見不住 愼莫追尋 才有是非 紛然失心
나뉘는 생각에 머물지도 말며 삼가하여 쫓아가 찾지 마십시오. 
잠깐의 시비가 일어나도 어지러워 본 마음을 잃습니다.

 

 

12> 二由一有 一亦莫守 一心不生 萬法無咎
둘은 하나가 있는 까닭이니 그 하나마저도 지키지 마십시오. 
하나라는 마음도 생겨나지 않아야 만법이 허물이 없습니다.

 

 

13> 無咎無法 不生不心 能隨境滅 境逐能沈
허물이 없으면 법도 없고 생기나지 않으면 마음도 없음이니 
주관은 객관과 함께 소멸하고, 객관도 주관과 함께 잠깁니다. 

 

 

14> 境由能境 能由境能 欲知兩段 元是一空
객관은 주관이 있어 객관이며, 주관은 객관이 있어 주관이니 
양단을 알고자 해봐도 본래 하나의 空입니다. 

 

 

15> 一空同兩 齊含萬象 不見精麤 寧有偏黨
하나의 공은 양단을 함께하여 삼라만상을 모두 포함합니다.
세밀하고 거칠음을 볼 수 없으니 어찌 치우침이 있겠습니까.

 

 

16> 大道體寬 無易無難 小見狐疑 轉急轉遲
대도는 본체가 넓어 쉬움도 없고 어려움도 없으니 
좁은 생각으로 여우처럼 의심하니 서둘수록 더디어 집니다. 

 

 

17> 執之失度 必入邪路 放之自然 體無去住
집착하면 법도를 잃어버려 반드시 삿된 길로 들어가고
놓아 버리면 자연에 따라 본체가 가거나 머무름이 없습니다. 

 

 

18> 任性合道 逍遙絶惱 繫念乖眞 昏沈不好
성에 맡기면 도와 합해지고 한가이 거닐면 번뇌가 끊어지니 
생각에 매이면 진리를 벗어나 어둠속에 빠져 좋을 것이 없습니다. 

 

 

19> 不好勞神 何用疎親 欲趣一乘 勿惡六塵  
정신이 힘든게 좋지 않은데 어찌 가까이 하거나 멀리하고자 하겠습니까?
일승(궁극깨달음)으로 나아가고자 하거든 육진(인식대상)을 미워하지 마십시오. 

 

 

20> 六塵不惡 還同正覺 智者無爲 愚人自縛 
육진을 미워하지 않으면 바른 깨달음과 함께 합니다. 
지혜로운 이는 하려함이 없는데 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를 묶어둡니다. 

 

 

21> 法無異法 妄自愛着 將心用心 豈非大錯
법은 다른 법이 없는데 망령되이 스스로 애착을 가져 
마음을 써서 마음을 가지려니 어찌 큰 그릇됨이 아니겠습니까. 

 

 

22> 迷生寂亂 悟無好惡 一切二邊 良由斟酌
미혹하면 고요함과 어지러움이 나뉘고 깨치면 좋고 나쁘고가 없으니 
모든 둘로 나뉨은 실로 생각하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23> 夢幻空華 何勞把捉 得失是非 一時放却
꿈속의 허깨비와 헛꽃을 어찌 애써 잡으려 하십니까? 
얻고 잃음과 옳고 그름을 일시에 놓아 버리십시오. 

 

 

24> 眼若不睡 諸夢自除 心若不異 萬法一如
눈에 만약 잠들지 않으면 모든 꿈 저절로 없어지고 
마음이 만약 다르지 않으면 만법이 한결 같습니다. 

 

 

25> 一如體玄 兀爾忘緣 萬法齊觀 歸復自然
한결 같음은 그 본체가 현묘하여 홀로 인연을 잊으니 
만법을 모두 같게 보면 그 되돌아감이 자연스럽습니다. 

 

 

26> 泯其所以 不可方比 止動無動 動止無止
모든 까닭을 없애버리면 견주어 비교할 바가 없어지니 
그치면서 움직이니 움직임이 없고, 움직이면서 그치니 그침이 없습니다. 

 

 

27> 兩旣不成 一何有爾 一亦沒處 窮極自知
둘이 이미 이루어지지 못하는데 어찌 하나가 있겠습니까. 
하나마저 없애버리면 궁극을 저절로 알게 됩니다

 

 

28> 究竟窮極 不存軌則 契心平等 所作俱息
궁극으로 이르는 정한 법칙이 있지 않으니 
마음을 묶어 평등케 하고 짓는 바를 함께 쉴 것입니다. 

 

 

29> 狐疑淨盡 正信調直 一切不留 無可記憶
여우같은 의심이 다하여 맑아지면 바른 믿음이 곧게 어울리니 
일체에 머물지 아니하면 기억할 아무것도 없습니다. 

 

 

30> 虛明自照 不勞心力 非思量處 識情難測
텅비어 밝아 스스로 비추니 애쓰고 마음 쓸 일이 아닙니다. 
생각으로 헤아릴 곳 아님이라 의식과 감정으론 측정하기 어렵습니다. 

 

 

31> 眞如法界 無他無自 要急相應 唯言不二
진실하고 변함없는 법계에는 남도 없고 나도 없으니 
급히 상응하고자 하거든 오직 둘 아님을 말하겠습니다. 

 

 

32> 不二皆同 無不包容 十方智者 皆入此宗
둘 아님은 모두가 함께하니 포용하지 않음이 없고 
온 세상의 지혜로운 사람들은 모두 이 근원으로 들어옵니다. 

 

 

33> 宗非促廷 一念萬年 無在不在 十方目前
근본은 빠르지도 늦지도 않으니 한 생각이 만년이고,
있거나 있지 않음이 없으니 온 세상이 바로 눈 앞에 있습니다

 

 

34> 極小同大 忘絶境界 極大同小 不見邊表
지극히 작은 것이 큰 것과 같아서 상대적인 경계 모두 끊어지고 
지극히 큰 것이 작은 것과 같아서 그 끝과 겉을 볼 수 없습니다. 

 

 

35> 有卽是無 無卽是有 若不如此 不心須守
있음이 곧 없음이요 없음이 곧 있음이니 
만약 이 같지 않다면 결코 지킬 필요가 없습니다.

 

 

36> 一卽一切 一切卽一 但能如是 何慮不畢
하나가 곧 일체요 일체가 곧 하나이니 
다만 능히 이와 같다면 마치지 못할까 무슨 걱정이겠습니까. 

 

 

37> 信心不二 不二信心 言語道斷 非去來今
믿는 마음도 둘 아니요 둘 아님이 믿는 마음이니 
언어의 길이 끊기면 떠나고 오고 멈춤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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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절 생각에 우울증, 피로, 위장장애, 어지러움 같은 스트레스로 인한 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주로 주부들이 겪는 문제로 생각했으나, 최근에는 남편, 미취업자, 미혼자, 시어머니 등 그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고 한다. 산업화 이후 전통적 가족 문화에서 개인주의 문화로 변화화면서 생겨난 문화 갈등이 이유일 것이다.

 주부들에게 명절이 반갑지 않는 까닭은 시댁에 가서 차례상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 아닐까? 요즘에는 차례 음식을 주문하여 사용한다고도 하고, 제사와 차례 때문에 기독교 신자가 된다고도 하는데, 나는 시대적 생명이 다한 예법(禮法)은 바뀌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차례상
차례상 by queenck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조선초기까지는 일반적으로 부모께만 제사를 지냈다.

  『경국대전』「예전(禮典)」「봉사조(奉祀條)」에는 문무관 6품 이상은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의 3대를 제사하고, 7품 이하는 부모, 조부모의 2대를 제사하고, 서인은 돌아가신 부모만을 제사한다고 되어 있다.

  이것은 『예기』「제의(祭義)」에 강조한 것처럼, 절차로 인해 실질인 '공경'을 잃게 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祭不欲數(제불욕삭) 數則煩(삭즉번) 煩則不敬(번칙불경)

제사는 많지 않아야 한다. 많으면 번잡해지고, 번잡해지면 공경함이 없어진다.

예는 마음이 근본이다. 그래서 공자께서도 말씀하셨다.

예는 사치스럽게 하기보다는 검소하게 하는 것입니다. 장례는 장중하게 치르기 보다는 진정으로 슬퍼해야 하는 것입니다 『논어 제3편 팔일』「제3장」

 

  공자께서는 왜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하셨을까?

  효(孝)는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변할 수 없는 내면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살아계시건, 부모님이 돌아가시건 그 사실에 영향을 받지 않고,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효(孝)의 마음이 변하지 않음을 표현하는 의식인 것이다. 그래서 제사는 효의 연장이라고 하셨다.

돌아가신 조상을 살아 계신 듯 섬기는 것효에 이르는 것이다 -『중용(中庸)』「제19장」

제사는 봉양하는 것을 좇아서 효도를 계속하는 것이다-『예기』「제통(祭統)」

  즉, 부모님의 고마움을 잊지 않도록 제사라는 행위를 통해 기억하라는 뜻이 담겨있다.

 

  우리는 조선중기를 기점으로 신분제의 동요가 심했고, 10% 정도에 불과하던 사족(士族)이 편법으로 계속 늘어만 갔다. 공명첩, 납속책, 족보위조 등을 통해서 사족으로 둔갑하여 현재는 대부분이 모두 사족의 혈통이 되었다.

  새로이 사족이 된 계층이 사족처럼 제사를 지내려 하면서 제사가 혼란스러워 졌고, 권위를 지키려고 한 사족 계층이 또 방어를 하면서 형식적으로 치우치고 혼란스러워졌다.

 

  그래서 이이 선생께서는 각 가정마다 다른 제사의식을 문제 삼으셨다.

지금 세속의 대다수가 예를 알지 못하여 제사 지내는 의식이 집집마다 같이 않으니 심히 웃을 만하다(今俗 多不識禮 其行祭之儀 家家不同 甚可笑也) [격몽요결 제7장 제례]

  그러나 이이 선생께서 제사의식을 문제삼은 것은 '형식에 치우친 예'를 강조하신 것이 아니라, 기득권자(사족)의 입장에서 방어하고자 한 까닭이 아닐까 의심해 본다. 널리 알려진 속담처럼 “남의 집 제사에 감놔라 대추놔라” 하는 것은 무례한 일이다.

 

  그러니 '조율이시'니 '홍동백서'니 하는 것이 중요한 바가 아니다. 『예기』「제의(祭義)」에서 말하는 다섯 가지를 잊지 않으면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제사를 지내면서 ①부모님께서 거처하셨던 곳을 생각해보고 ②부모님이 웃음소리와 말소리를 생각해보고 ③부모님께서 뜻하셨던 바를 생각해보고 ④부모님이 즐거워 하는 바를 생각해보고 ⑤부모님께서 좋아하실 음식을 생각해 본다.

 

  예(禮)를 행한다고 하면서 지나치게 형식에 치우쳐 실질을 잃어버리고 있는 듯 하다.

공자께서는 서(恕)로 일관하셨다고 하셨으니, 마땅히 조상님께서 살아계셨다면 무엇을 좋아하셨을 지, 마음으로 통(通)해야 할 것이다. 마치 살아계신 것처럼 하라는 ‘사망여사존(事亡如事存)’도 그러한 뜻이리라.

 

  손주가 좋아하는 '피자'를 상에 놓으면 좋아하실 수 있으며, 간소하게 차림으로써 며느리와 아들이 화목하다면 더 좋아하실 수 있을 것이다.

 

  부모님께서 생전에 드시지 않던 술을 올리는 것이 과연 예(禮)일까? 경조사에 축하와 위로의 마음 없이 주고받는 돈으로 셈하고자 함이 과연 예(禮)일까? 오늘날 예(禮)는 지나치게 형식에 치우쳐 있는 듯 보인다. 마땅히 변해야 할 것은 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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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이트가 주장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남자아이가 3세에서 5세 정도에 이르면 어머니에 대한 연정 때문에 아버지에 대해 질투심, 경쟁심, 적의심을 일으키게 된다는 이론이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차지했다'는 결과만을 가져와 이름을 붙였기에, 「오이디푸스」가 어머니를 차지하기 위해 아버지를 죽였다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신화 속 「오이디푸스」는 전혀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패륜아가 되어버린, 잔인한 숙명의 희생양일 뿐이었다. 

  신화 속 「오이디푸스」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오이디푸스」는 코린트의 왕 「폴리부스」와 왕비 「페리보이아」의 아들로 행복한 왕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사건이 터졌다. 연회석상에서 술에 취한 오이디푸스의 친구가 말했다.

오이디푸스! 너는 주워온 자식이야

  아버지 「폴리부스」가 정색을 하고 친부자간이라고 나무랐지만, 과한 반응에 「오이디푸스」는 의심이 더해졌다. 그래서 델포이 신전으로 찾아가 「아폴론」에게 신탁을 청했다. 그런데「아폴론」은 친자여부가 아닌 엉뚱한 답을 내놓는다.

 
Gustave Moreau: Oedipus and the Sphinx (1864)
Gustave Moreau: Oedipus and the Sphinx (1864) by euthman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너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간음을 하게 될 것이다. 

 「오이디푸스」는 상심했다. 아버지(양친)와 어머니를 떠나면 운명도 어쩔 수 없으리라 판단한 「오이디푸스」는 눈물을 흘리며 코린트로 돌아가지 않고 방랑의 길을 나서게 되었다. 이것을 기억하자. 「오이디푸스」는 패륜의 운명을 용납할 수 없어 이별을 선택했음을...


  길을 가던 「오이디푸스」는 마차를 몰던 한 노인을 만난다. 길을 비키라는 언쟁 끝에 격분한 「오이디푸스」는 그 노인을 살해해 버린다. 그런데 이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죽은 노인이 테베의 왕 「라이오스」였던 때문만이 아니었다. 죽은 그가 바로「오이디푸스」의 친아버지였던 까닭이다. 오래전 「라이오스」는 아들에게 죽는다는 예언을 들었다. 그래서 갓난아이 「오이디푸스」를 외국으로 보내 인연을 끊었다. 그러니 이 둘이 서로서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생사결을 했던게 어찌 패륜일 수 있겠는가? 


 「오이디푸스」가 발걸음을 재촉하여 도착한 곳은 「라이오스」가 다스렸던 테베! 그곳은 공포와 혼란으로 어수선했다. 질투의 여신 「헤라」가 보낸 「스핑크스」라는 괴물로 인해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죽어나가던 지옥이었다. 당연히 왕「라이오스」가 한 젊은이에게 살해당했다는 사실도 사람들의 관심사 밖에 있었다. 


 「라이오스」왕이 죽은 후 임시 섭정을 하던 「크레온」 역시 스핑크스를 물리칠 방도를 전혀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스핑크스를 처치하는 사람을 테베의 왕으로 삼겠노라 공언을 했다. 그러자 우리「오이디푸스」가 나선다.

  스핑크스는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는 자를 잡아먹는 괴물이었다. 하지만 「오이디푸스」는 수수께끼를 간단히 풀어버렸다. 그리고 스핑크스는 수치심에 자살을 선택했다. 이렇게... 「오이디푸스」는 테베에 평온을 찾아주었고, 왕으로 등극한다.

네 발로 걷기도 하고, 두 발로 걷기도 하고, 세 발로 걷기도 하는데, 네 발로 걸을 때가 가장 느린 것은 무엇이냐?

  어릴 때는 네 발로 걷고, 성장해서는 두 발로 걷고, 노인이 되어서는 지팡이를 가지고 세 발로 걷는 「인간」을 뜻하는 수수께끼였다. 


  「오이디푸스」는 공석이던 테베의 왕으로 즉위했고 「라이오스」왕의 왕비였던 「이오카스테」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아내가 된 「라이오스」왕의 왕비는 누구일까? 「라이오스」가 친부였다는 사실을 알면 쉽게 추론할 수 있다. 그렇다. 「이오카스테」는 「오이디푸스」의 친어머니였던 것이다. 


  이렇게해서「오이디푸스」는 결과적으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차지’하게 되었는데... 


  우리는 이미 진실을 알고 있지만, 이야기속의 「오이디푸스」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임을 기억하자.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왕이 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그리고 아내 「이오카스테」와 금슬 역시 좋았었다. 슬하에 아들 두 명, 딸 두 명을 두게 되었고, 나날이 평온 속에 번영하던 테베! 그런데 어느 날부터 무서운 전염병이 창궐하고 한발이 들어서 인심이 흉흉해졌다. 그래서 테베의 왕「오이디푸스」는 델포이 신전으로 사람을 보내어 「아폴론」에게 신탁을 청하였다.

지금의 테베의 사태는 부정한 자가 있기 때문이다.

  부정한 자를 찾던 「오이디푸스」는 전왕 「라이오스」왕의 의문사가 떠올랐다. 그 사건을 조사하던 오이디푸스는 자기가 죽인 노인이 「라이오스」임을 알았다. 그리고 결국 모든 전말을 다 알게 되었다...
  친아버지 「라이오스」를 살해하였고, 친어머니 「이오카스테」와 결혼하여 자녀까지 두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결국 친어머니이자 아내였던 「이오카스테」는 목을 매 자살을 하고, 「오이디푸스」는 스스로 눈을 찔러 장님이 된다... 


  「오이디푸스」와 「이오카스테」사이에는 「안티고네」가 있었다. 「오이디푸스」의 딸이였지만 어머니 「이오카스테」와의 관계를 따지면 누이동생이기도 했다. 「오이디푸스」는 「안티고네」와 세상을 유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테세우스」에게 가서 여생을 마쳤다.


  「오이디푸스」의 패륜이 알려진 후 모든 사람들이 그를 증오했다. 신화 속 인물이지만 프로이트가 못을 박아버린 까닭에 그는 오랫동안 패륜의 이미지로 남게 될 것이다. 따지고보면「오이디푸스」는 패륜을 저지르지 않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코린트를 떠났던 것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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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점은 대나무 50개를 산(算)가지로 사용해서 점치는 것이 정통입니다.

그러나 재료를 구하기 힘들고, 덜고 옮기는 계산이 번잡하여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그래서 요즘은 동전이나 주사위 혹은 윷 같은 대체품을 많이 이용합니다.

다른 방법은 인터넷 등을 통해 많이 알려졌으니,

1개 주사위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주사위 한 개는 1,2,3,4,5,6 이라는 여섯의 수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홀수를 뜻하는 1,3,5는 양(陽)이며, 짝수를 뜻하는 2,4,6은 음(陰)입니다.

주사위를 여섯 번 던져 나오는 짝홀수에 따라 음(-)(-)과 양(-)을 아래로부터 쌓아나갑니다.

그러면 괘를 얻을 수 있습니다. 간단히 치는 점은 음/양만 찾으면 충분합니다.

혹 고급점을 치고자 하시면 나왔던 수를 꼭 기록해 두시기 바랍니다.

주사위를 던져 차례로 3, 3, 2, 1, 6, 4 가 나왔다고 가정하겠습니다.

그러면 귀매(歸妹)괘를 얻게 된 것입니다. <주역 도해는 여기를 클릭!>

 

귀매괘를 얻었으니, 주사위를 한 번 더 던져 6개의 효중에 어디에 해당하는지 물어봅니다.

그래서 묻고자 하는 것에 대한 대답은

귀매괘의 '괘사'와 마지막 던진 주사위로 선택한 '효사'를 해석하여 찾으면 되겠습니다.

 

각 괘마다 효가 6개이면

괘를 잡기 위하여 주사위를 6번, 효를 잡기 위하여 주사위를 1번 던지면 된다

이렇게 정의해도 되겠지만,

첫번째 건(乾)괘와 두번째 곤(坤)괘는 전체 6개의 효를 아우르는 효,

즉 용효(用爻)를 하나씩 더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사위를 6번만 던지는 예외적인 경우가 두가지가 있습니다.

여섯번 모두 3(순양)이 나오면, 용효를 잡은 것으로 합니다.

여섯번 모두 4(순음)이 나오면, 용효를 잡은 것으로 합니다.

일반적으로는 이렇게 점을 치시면 되겠습니다.

 

지금부터, 조금 더 고급단계로 나아가겠습니다.

귀매괘를 얻은 음양에 대해서 그 기운을 살펴봅니다.
주사위의 홀수 1,3,5가 같은 양(陽)이긴 하지만
그 기운이 똑같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짝수 2,4,6이 모두 음(陰)이긴 하지만
그 기운이 똑같지는 않습니다.

3은 중정(中正)한 양이지만,
1은 양기가 모자라고, 5는 양기가 넘칩니다.
4는 중정(中正)한 음이지만,
2는 음기가 모자라고, 6은 음기가 넘칩니다.

 

그래서 ‘중용’의 치우치지 않은 행위로 나아가면 선택한 괘와 효가 변화가 없지만,

‘중용’의 기준에서 모자란 행위로 나아가면 약했던 기운이 반대로 바뀌어 버립니다.

‘중용’의 기준에서 과한 행위로 나아가면 강했던 기운이 반대로 바뀌어 버립니다.

변효(變爻)의 이론을 접목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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