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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14. 20:32

제2편 위정(爲政) 제24장 간상(赶上)/논어(論語)2013. 1. 14. 20:32

공자 말씀하셨네[子曰: ]
- 조상의 귀신이 아닌데 제사하는 것은 아첨이다 [非其鬼而祭之 諂也]
- 의로와야 함에도 멈추는 것은 용기가 없는 것이다 [見義不為 無勇也]

 

  귀(鬼)는 육체를, 신(神)은 영혼을 의미한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귀(鬼)는 흙으로 돌아가고, 신(神)은 하늘로 돌아간다. 같은 의미로 백(魄)은 흙으로 돌아가고, 혼(魂)은 하늘로 돌아간다. 그런데 혼백(魂魄)이라고 할 때는 하늘이 앞이고, 귀신(鬼神)이라고 하면 땅이 앞이다. 혼동하기 쉽다.

 

  공자 때문에 제사가 생겨났다는 오해도 있는데, 오히려 공자는 상고시대에 무분별한 제사를 일소해서 없앴다는 평가를 받는다. 감히 왕이 아니면 하늘에 제사지낼 수 없었다. 우리도 조선 초기에는 고급관료가 아니면 부모께만 제사지낼 수 있었다. 주자학이 힘을 얻은 후 3대 제사가 허용되어 환호했던 때가 있었는데, 요즘은 안 지내고 싶어하니 재미있는 반전이다.

 

  한편, 유가에서 말하는 용기(勇)는 차원을 달리한다. 맹자는 "칼을 잡고 노려보며 '저 녀석이 나를 당하겠는가' 하는 것은 보통사람의 용기이므로 겨우 한 사람만 대적할 수 있다"고 얘기했다. 공자가 수신의 세 가지 덕목으로 제시한 지인용(知仁勇) 수준에서의 용(勇)은 지치(知恥) 즉, 부끄러움을 아는 수준이다. 그 뿌리는 내면에 자리하고 있다. 죄를 지으면 양심의 가책으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가슴속에 살고 있는 성(性)이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性)에 부끄럽지 않음이 쌓이고 쌓여 축적된 '호연지기'가 바탕이 되는, 생사조차 건드릴 수 없는 당당하고 굳셈이다.

사람에게는 삶보다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으며, 죽음보다 더 싫어하는 것이 있다.<맹자 고자 상 11.10>

 

  언뜻 보면 제사와 의로움이라는 이질적인 얘기를 하는 듯하다. 그러나 《중용(中庸)》의 측면에서 보면 잘 어울리는 가르침이다. 예가 지나쳐서 과한 것을 말했고, 용기가 부족하여 모자란 것을 말했다. 그리고 이 둘의 마음이 통(通)한다. 지나치게 빌며 복을 얻으려는 사람은 이득을 얻겠다는 마음, 의로운 일에 소극적인 사람은 손해를 보지 않겠다는 마음이다. 결국, 이익을 더 우선하려는 같은 뿌리에서 과한 행동과 모자란 행동이란 가지가 뻗어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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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14. 20:24

제2편 위정(爲政) 제23장 간상(赶上)/논어(論語)2013. 1. 14. 20:24

자장이 여쭈기를 [子張問: ]
 - 십 대 뒤를 알 수 있습니까? [十丗可知也]
공자 말씀하셨네 [子曰: ]
 - 은나라는 하나라의 예를 이었으니 그 손익을 알 수 있다[殷因於夏禮 所損益 可知也]
 - 주나라는 은나라의 예를 이었으니 그 손익을 알 수 있다[周因於殷禮 所損益 可知也]
 - 어떤 나라가 주나라를 계승하면 백세 뒤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其或繼周者 雖百丗 可知也]

 

  공자는 중국의 통일왕조를 얘기하고 있다. 하나라 - 은나라 - 주나라로 이어졌으나, 공자시대는 전국시대로 자웅을 겨루고 있었다. 그리고 훗날 CHINA의 연원이 되는 진나라로 이어진다. 과연 공자는 진나라의 문화를 미리 알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분서갱유'로 대표되는 유학 탄압과 유생들의 생매장을 미리 방비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공자의 답은 십 대 뒤를 완전히 장악해서 다 안다고 했던 말은 아니다.

 

  자장은 거침없는 언행으로 유명했고, 내적으로 수신(修身)하는 실질적 군자(君子)가 아니라, 외적인 정치인 군자(君子)를 지향했다. 그의 질문도 미래의 드러난 사회의 모습인데, 공자의 답은 내적으로 뿌리가 되는 정신문화 세계다.

 

  공자의 미래 예측은 현실적이다. 직관이나 통찰과 다르다. 점을 쳐서 묻거나 신비에 기대어 판단하지 않는다. 은나라로 이어지면서 발전된 것과 없어진 것을 분석해보고, 주나라로 이어지면서 발전된 것과 없어진 것을 분석해보면 그림이 그려진다는 뜻이다. 생겨나는 어떤 것도 계승하고 연속하기 마련이며, 아무런 기초가 없이 단번에 높은 건물이 세워질 수 없다는 이치를 말하고 있다.

 

  미래의 중국 역시 우리가 알 수 있다. 유/불/선에 바탕을 둔 사상과 문화는 미래에 어떤 정치체제가 들어서더라도 이어질 것이다. 덜어내고 붙여지는 조정을 받게 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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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14. 20:15

제2편 위정(爲政) 제22장 간상(赶上)/논어(論語)2013. 1. 14. 20:15

공자 말씀하셨네 [子曰:]
사람이 믿음이 없다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人而無信 不知其可也]
큰 수레에 예(輗)가 없고 작은 수레에 월(軏)이 없다면 [大車無輗 小車無軏]
어찌 움직일 수 있겠는가 [其何以行之哉]

 

  믿을 신(信)은 하나와 하나를 연결(人)시키는 말(言)이라는 의미다. 악당들조차 믿음이 없다면 그 무리는 해체된다. 좋은 연결이건 나쁜 연결이건, 연결되려면 믿음(信)이라는 연결끈이 있어야 한다. 예(輗)는 소가 끄는 우차에 소를 연결하고, 월(軏)은 마차에 말을 연결하는 기구이다.


  유가에서의 인간의 본성을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으로 분별한다. 분별은 언제나 조화를 지향하는 것. 결국은 성(性)으로 한 덩어리이다. 가슴속(心)에 살아있는(生) 것이 성(性)인데, 유가의 지향점은 이 성(性)을 찾는 것이다.

학문의 도(道)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뿐이다. [맹자 고자 상 11.11]


  공자는 체득의 영역인 인(仁)은 그저 인(仁)이라며 설명하지 않았지만, 맹자가 보완하고자 설명하면서 부작용이 생겼다. 소위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의 비유 때문에 "측은지심 = 인(仁)"이라는 공식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래서 후학들이 안과 밖에 있는 것을 가린다고 논쟁했다. 이렇게 다시 설명해보려고 한다.

"가녀린 아이가 불량배에 피가 터지도록 맞고 있다"

  맞고 있는 어린아이가 가여운 마음이 인(仁)이고, 이 폭력을 저지하고자 하는 마음이 의(義)며, 북량배를 죽여버리지 않으려는 절제가 예(禮)이며, 나서는 것이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지 따져봄이 지(知)며, 이 사건이 꿈이 아니라 현실임을 직시하는 것이 신(信)이다.


  끼워맞춰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만, 이 마음은 분리된 실체가 아니라 한 덩어리로 함께다. 의(義)를 강조했던 맹자 역시 의(義)는 독립되고 붙잡을 수 있는 관념이 아니라 '자연스러움'이라고 설명했다.

의(義)를 행하되 결과에 집착하지 말고, 의를 행하고자 하는 것을 마음에서 잊어서도 안 되지만, 억지로 조장해서도 안 된다. [맹자 공손추 상3.2]


  얘기가 길어진 것 같다. 신(信)은 성(性)의 일면이라는 것. 신(信)이 없음은 한 덩어리로 융화하려는 도(道)에 역행함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마무리 해야겠다. 예수를 믿지 못하면 예수와 이어질 수 없고, 붓다를 믿지 못하면 붓다와 이어질 수 없다. 마나님을 믿지 못하면 차려준 음식을 고맙게 먹을 수 없다. 멀어지고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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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편 위정(爲政) 제21장 간상(赶上)/논어(論語)2013. 1. 13. 12:19

어떤 이가 공자께 말했다.[或謂孔子曰:]
선생께선 왜 정치에 종사하지 않는가요? [子奚不為政]
공자 말씀하셨네 [子曰:]
서경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書云:]
효(孝)다. 오직 효다. 형제간 우애있으면 정치에 이르는 것이다 [孝乎惟孝, 友于兄弟, 施於有政]
이것이 정치인데 어찌 정치를 따로 하겠습니까? [是亦為政, 奚其為為政]

 

  하지 않는 것을 물으면 피곤한 법이다. "육식을 왜 하지 않지? 주식을 왜 하지 않지?" 취향에 속하는 이런 질문은 그나마 괜찮다. 하지만 "결혼을 왜 하지 않지? 치마를 왜 입지 않지?" 같은 질문은 신중해야 한다. "누군 안 하고 싶어서 안 하느냐고" 하면서 부글부글할 수 있으니. 주유천하로 유명한 공자였다. 14년을 천하를 돌며 도덕정치를 구현할 군주를 찾았다. 그러니 어찌 정치에 종사하고 싶지 않았겠는가?


  이 글은 어떤 이(或)가 아픈 곳을 찔러도 무시하지 않았다는 예(禮)를 전하고자 함일까? 아니면 만사에 단절이 없다는 도(道)를 설명한 수준 높은 가르침일까? 《서경》까지 인용하는 걸로 보면 후자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오늘날에도 유명인의 말이나 글을 빌려 와 수식을 하곤 한다. 조선조는 유교경전과 공자 왈 맹자 왈을 할 수 있어야 지성인이었는데, 요즘은 서구인을 언급해야 더 있어 보인다고 한다. 상표와 간판도 서구어로 넘쳐나니 문화적 경향으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어쨌건, 공자께서도 말에 더 신뢰를 얻기 위해 《시경》과 《서경》을 종종 언급 하셨다. 잡설을 이리 늘어놓는 이유는 이어지는 글이 무겁기 때문이다...

  유가의 도(道)는 '분별'에서 출발하기에 난해하다. 그 이론에 곧고 강직했던 선비 이미지가 오버랩되면 엄격하게 맺고 끊는다는 오해를 받기 쉽다. 그러니 이 장처럼 효가 곧 정치요, 우애가 정치라고 하면 어렵다. 나를 바르게 하는 수신(修身)이 곧 제가(齊家)요 치국(治國)이요 평천하(平天下)라고 하면 더욱 혼란스럽다. 본래 유가의 철학 중용(中庸)은 분별해서 가르지 않는다. '분별 후 조화'를 도모한다. 가르기 위한 분별이 아니라 붙이기 위한 분별임을 이해해야 한다. 유학은 도(道)를 가장 간명하고 자신있게 설명하는 학문이다.

천지의 도는 한마디로 다 할 수 있다. 본질이 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天地之道 可一言而盡也 其爲物不貳 [중용 제26장]


  남녀로 나누고, 형제와 4촌을 나누고, 군주와 신하를 나누어 둘이 되게 하지 않는다. 언제나 하나로 합쳐짐을 지향한다. 분리의 이미지가 없다. 태극기의 태극처럼 떨어진 둘이 아니라 꼭 붙어있는 둘, 그래서 결국은 하나이다. 조금 더 자세히는 <이곳> 설명을 참조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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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12. 13:44

제2편 위정(爲政) 제20장 간상(赶上)/논어(論語)2013. 1. 12. 13:44

계강자가 묻기를 [季康子問:]
백성이 공경하고 충성하고 이를 권면하게 하려면 어찌해야 합니까? [使民敬, 忠以勸, 如之何]
공자 말씀하셨네 [子曰:]
엄숙히 임하면 백성이 공경하게 되고[臨之以莊, 則敬]
효도하고 자애하면 백성이 충성하게 됩니다[孝慈, 則忠]
선한 이를 등용하여 그렇지 않은 이를 교화하면 권면하게 됩니다[舉善而敎不能, 則勸]


  앞 장의 애공의 질문과 다를 것이 없는 질문이다. 답도 마찬가지다. "너나 잘하세요."


  왜 《논어》에서 연속으로 실어놓았을까? 시대와 문화가 바뀌어도 계속되는 중요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가 말 잘 듣고 공부 잘하게 하려면 어찌해야 합니까? 내 마누라가 남편을 무시하지 않게 하려면 어찌해야죠? 내 학생이 선생의 말을 잘 따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런 식의 질문으로 변해서 이어진다. 수백 년이 지나도 비슷한 상담을 받으려 줄을 서지 않을까? "당신 탓이요" 라는 마음이 이런 질문의 본질이기에 그리 예상한다.

  너만 바꾸면 다 좋아질 것이라는 계산. 그러나 나를 떠나서 답을 찾지 말라는 것이 유가(儒家)의 확고한 가르침이다. 문제의 해결은 언제나 '나'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유학은 말한다.

  군자는 자기에게 요구하고, 소인은 남에게 요구한다[제15편 위령공 제20장]


  가정불화를 겪는 두 남녀가 공자를 찾았다고 하자. 남편이 물으면 남편 도리부터 잘해라, 부인이 물으면 부인 도리부터 잘해라가 답이다. 그렇다면 백성이 계강자를 바르게 하는 방법을 물어도 마찬가지일까? 역시 효도하고 우애하고 공경하라는 답이 예상된다. 하지만 "그것은 가신들에게 맡겨두고"라는 전제를 깔 것이다. 말하자면, 유학의 명분론이다. 백성이라는 이름이 아닌 가신이 되어야 그런 마음을 품을 수 있음이다.

  그 지위에 있지 않으면 그 정무에 간섭하려 하지 마라[제8편 태백 제14장]


  유학의 이 명분론(名分論)이 오해와 비난을 많이 받곤 한다. 이것은 권위주의인가? 아래에서 편향적으로 보면 그러하다. 그러나 남편 역시 부인의 살림살이를 간섭하지 않아야 한다. 맡은 본분에 충실하고 그 밖의 일은 믿고 맡긴다는 것이 핵심이다. 결코, 권위가 주(主)가 아니다. 공자 역시 향당(부형과 종족이 사는 고을)에 있을 때는 마치 말을 못하는 벙어리처럼 있었다.

공자께서 향당에 계실 때는 신실하셔서 마치 말을 못하는 사람과 같으셨고, 종묘와 조정에서는 분명히 말씀하시되 삼가서 하셨다. [제10편 향당 제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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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11. 20:24

제2편 위정(爲政) 제19장 간상(赶上)/논어(論語)2013. 1. 11. 20:24

애공이 묻기를 [哀公問曰:]
 - "어찌하면 백성을 복종시킬 수 있습니까?" [何為則民服]
공자 말씀하셨네 [孔子對曰:]
 - 곧고 바른 사람을 등용해서 굽은 사람 위에 두십시오 [舉直錯諸枉]
 - 그러면 백성이 복종할 것입니다 [則民服]
 - 굽은 사람을 등용해서 곧은 사람 위에 두신다면 [舉枉錯諸直]
 - 백성이 복종하지 않을 것입니다 [則民不服]

 

  애공(哀公)은 공자의 출신지인 노(魯)나라의 군주였다. 애공은 이 문제가 백성들 탓이라 여겼으리라. 그래서 강력한 형벌로 다스릴지 혹은 교육을 시킬지 갈등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공자의 답은 '당신이 인사(人事)를 잘하세요'다. 《논어》에는 이런 뜻의 가르침이 많다. 계강자의 정치 질문에 대한 답도 마찬가지다.

그대가 솔선해서 스스로 바로 하면 누가 감히 바르지 않겠는가? [제12편 안연 제17장]

 

  관심 있게 지켜볼 점은 '없애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음이다. 굽은 사람이라고 결코 제거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곧은 사람을 윗 자리에 두면 그에게 감화될 것이라는 처방을 내린다. 이는 논어의 그 유명한 '바람과 풀의 비유'와도 통한다. 

(계강자가 무도한 사람들을 죽여버릴 것을 묻자 공자 말씀하시길)
그대는 정치를 한다면서-정치는 사람을 살리고자 하는 일인데-  어찌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가? 그대가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면 백성도 저절로 좋아질 것이다. 군자의 덕은 바람이요 백성의 덕은 풀이라서, 풀은 바람을 따라 눕는 법이다. [제12편 안연 제19장]

 

  그리고 과거에 굽었더라도 고치면 문제 삼을 필요가 없다. 이미 지난 잘못은 허물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였으니, 용서에 인색한 사람 역시 소인 아닐까?

잘못을 하고서 고치지 않는 것을 잘못이라고 한다. [제15편 위령공 제30장]
이미 지나간 일이라면 더는 탓하지 않는다. [제3편 팔일 제2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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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10. 20:44

제2편 위정(爲政) 제18장 간상(赶上)/논어(論語)2013. 1. 10. 20:44

자장이 간록을 배우려 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子張學干禄. 子曰:]
 - 많이 들어 의문을 없애고, 의문없는 바를 신중히 말하라 [多聞闕疑 慎言其餘]
 - 그러면 허물이 적을 것이다 [則寡尤]
 - 많이 보아 위험을 없애고, 위험없는 바를 신중히 행하라 [多見闕殆 慎行其餘]
 - 그러면 후회가 적을 것이다 [則寡悔]
 - 말을 조심해 허물을 줄이고 행동을 조심해 후회를 줄이면[言寡尤 行寡悔]
 - 그 속에 녹(禄)이 있을 것이다 [禄在其中矣]


  간록(干禄)은 벼슬자리라는 견해가 있고, 《시경》편의 간록(복을 구한다는 의미)이라는 견해가 있다. 어쨌거나 군자가 되는 게 아닌 현실적 질문이다.


  하지만 공자의 대답은 다를 바 없다. 수신(修身)하라. 군자(君子)가 되라고 하신다.

 

  전쟁이 끊이지 않던 춘추전국시대. 공자는 그런 세상에 도덕을 설하여 군자를 꿈꾸게 하였다. 교주가 연상되는 그 능력을 이해할 수 없다면 공자의 답은 짜증 날 수준이다. 반대로 자장 역시 신기한 인물이다. 단순하고 과격한 자로였다면 엎어버렸을지 모르는데... ^^

 

  이 장은 대학(大學)의 '삼강령'을 빌려 오는 게 좋겠다.

사물에는 근본과 말단이 있고
일에는 마침과 시작이 있다
먼저 해야 할 것과 뒤에 해야 할 것을 알면
도에 가까울 것이다.

  공자학은 근본(根本)을 지향한다. 조상을 돌아보는 제사 또한 뿌리와 근본(根本)을 돌이키는 의식이다. 나라의 역사를 배우기에 앞서, 내 집안의 역사부터 아는 것이 순서라 했다. 세종대왕이 좋아했던 음식이 무엇이었을까? 그보다 내 부모님께서 좋아하는 음식을 아는 것이 먼저라 했다.

 

  자장에 대한 공자의 대답을 이렇게 줄여볼까?

'자장아! 먼저 해야 할 근본에 더 힘쓰려무나'

 

  한편, 공자는 '자하는 부족하지만 자장은 지나치다'는 평가를 내렸다. 그는 거침없는 언행을 보였다고 알려졌다. 남의 말을 잘 들어주지 못하고 남의 행동을 지켜봐 주지 못했던 듯하다. 인(仁)이란 사람(人)이 둘(二)이라는 뜻이다. 소통이고 어울림이며 조화라고 할 수 있다. 자장에게는 인(仁)이 부족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개선을 했을까? 《자장》편을 보면 고치지 못했다는 의심이 들 수 있다.

 

자유가 말하길 : 자장은 능히 어려운 일을 해내지만 아직 어질지는 못하구나. [15장]

증자가 말하길 : 당당하다 자장이여. 그러나 함께 인을 행하기는 어렵구나. [1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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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말씀하셨네 [子曰:] 
- 유야, 내가 안다는 게 무엇인지 가르쳐주겠다 [由, 誨女知之乎]
- 아는 것을 아는 것으로 알고 [知之為知之]
- 모르는 것을 모르는 것으로 아는 것 [不知為不知]
- 그것이 진실로 아는 것이다 [是知也]


  유(由)는 자로이다. 힘을 숭상하고 다혈질에 직설적이며 참을성이 부족한 캐릭터다. 공자의 직계제자 중에 가장 소인다운 모습으로 등장하고 여러 차례 공자에 맞서곤 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공자를 너무 존경한 것이 아니었을까? 장수가 더 어울리는 그였지만, 공자의 가르침에 따라 '선비'로서 의연하게 죽음을 맞았고, 공자는 통곡하며 절인 고기를 더 이상 먹지 않았다는 게 기록이다.


  어쨌건, 이 장에서 공자는 절제력이 부족했던 유(由)에게 지(知)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인(仁) 의(義) 예(禮) 지(知) 신(信)으로 구분하곤 하는 공자학의 핵심 주제 중 하나이다. '자로가 모르면서 아는 척 까불거리다가 혼난 것'으로 보기도 하는데...


  공자학은 스스로를 갈고 닦는 수신(修身)과 스스로를 이겨내는 극기(克己)에서 출발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뿌리가 신독(愼獨)과 무자기(毋自欺)다. 자신을 아무도 볼 수 없고, 아무도 들을 수 없는 자리로 옮겨놓으라 한다. 그 지점에서 울려나오는 참된 소리를 두려워하고 삼가는 것이 신독(愼獨)이다. 그 소리를 듣고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것이 무자기(毋自欺)다. 


  논어에는 공자가 하늘을 날아다녔다는 기록이 없다. 오히려 모른다는 고백, 안회에 미치지 못한다는 고백을 담고 있다. 심지어 부족해서 배운다는 걸 자랑하기까지 한다. '나보다 배움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라고. 모자라고 모르고 배워야 했던 공자를 성인이라 칭하며 존경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자로가 공자에게 죽음에 대해서 물었다. [제11편 선진 제11장]

삶도 아직 모르는데 죽음을 어찌 알겠느냐? [未知生 焉知死]


  모르는 것을 안다고 하면 크게 두 가지 병폐에 빠진다. 첫째,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으려 하고 스스로도 배우려 하지 않기에 성장이 멈춘다. 둘째, 가르치려고만 하게 된다. 맹자의 표현을 빌리면 '내 밭은 버려두고 남의 밭만 김매려고 애쓴다'는 그 늪에 빠지게 된다.  


  유학만 그런가? 노장도 지(知)에 대해 마찬가지로 가르치고 있다. [도덕경 제71장]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것이 최고의 지혜다[知不知上]
알지 못하면서 안다고 하는 것은 병이다[不知知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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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말씀하셨네 [子曰:] 
- 이단이라며 공격하려 하면 해롭다[攻乎異端,斯害也已]



  이 장은 해설이 분분한데,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① 이단이라며 공격하면 해롭다 ② 이단은 공격해서 그 위험을 없애야 한다 ③ 이단을 공부하면 해로울 뿐이다.

  이단(異端)이란 극과 극이 되어 결코 통(通)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종교에서 더 자주 쓰는 용어로 보이는데, 근본 교리에 어긋날 뿐 아니라 근본을 잠식할 위험이 있는 것을 이단이라고 얘기한다. 우리가 '종북'이라 칭하는 쪽을 이단이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가치를 부정하고 북한의 모든 가치를 절대적으로 옳다고 하면 어떻게 대해야 하나? 그 답을 공자께서 해 주셨다.


  그런데 공자의 답을 모두 다르게 해석해서 더 혼란스러워졌다. 종북주의자의 생각을 경청하면 안된다는 것이 3번이다. 종북주의자를 교도소에 구금하여 억압해야 한다는 것이 2번이다. 종북으로 구별하지 말라는 것이 1번이다. ㅠ.ㅠ


  이단(異端)은 사악(邪惡)한 것이 아니라, 단지 끝에서 끝에 위치한 상대적 관념이다. 우리의 기준에서는 종북이 이단이지만, 북한의 기준에서 보면 종북이 정통이고 우리가 이단이다. 기독교의 기준에서 보면 타종교가 이단이지만, 타종교에서 보면 기독교가 이단이다. 이단(異端)이라는 개념은 상대적 관념이다. 그러니 진리의 입장에서 따져나가면 부정해야 할 이단(異端)이란 본래 없는 것이다.


  유학의 제1조가 무엇인가? 수신(修身)이다. 남을 탓하고 남을 나무라고 남의 험을 보는 것을 가르치지 않았다. 오직 나를 바르게 세울 뿐이다. 수신(修身)! 그것을 이루면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는 저절로 따르게 된다. 즉, 이단(異端)이 보이는 것은 수신(修身)에 이르지 못했기에 생겨나는 마음 작용이다. 남을 보고 있기에, 남에게 요구하려 하기에 생겨난다. 그래서 공자는 이단(異端)으로 규정하여 공격하려는 자기 내면의 마음자리를 돌아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 장의 가르침을 이렇게 바꿀 수 있을까?

이단을 찾아내어 공격하려 하지 말고 네 일이나 잘하거라.

 

  한편, 이단(異端)을 '진리에 비추어' 악(惡)이라 한다면 유학의 입장은 어떨까? 의(義)를 따라야 하는데, 의(義)로움의 칼은 죽이기 위한 칼이 아니라 살리기 위한(방어를 위한) 칼이다. 추후에 더 논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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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네임 2014.02.14 13: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부 깨나 하신분으로 상당히 호감을 가졌었는데...
    위정 14장을 생각하게 하는군요.
    군자 주이불비 소인 비이불주

    님은 그냥 지식이 좀 있는분이군요. 지혜로운 분인줄 알았네요.

    • Favicon of https://obbaya.com BlogIcon 오빠야닷컴 2014.02.23 20: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본의 아니게 실망을 드려 죄송합니다.
      너무 부족하여 제게 어떤 가르침을 주시고자 하시는지...
      손가락만 보이고 가리키시는 달이 지금의 제 안목으로 보이지가 않네요.
      노력하고 공부하겠습니다. 그럼 좋은 시간 되십시오. (--)(__)

  2. 춘당 2015.04.07 12: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종북을 비유했다고 그러시나? 화이부동 동이불화

그림자의 그늘인 망량(罔兩)이 그림자에게 물어 말했다[罔兩問景曰:]
”좀전에 자네가 걷더니 이제는 멈춰있고[曩子行 今子止]
좀전에 자네가 앉아있더니 이제는 서 있네 그려[曩子坐 今子起]
어찌하면 그리 지조가 없을 수 있는가?[何其無特操與]?”



그림자가 말하기를[景曰:]
내가 의지하는게 있어 그러하지 않겠나[吾有待而然者邪]?
그렇지만, 내가 의지하는 것 역시도 의지하는 것이 있어 그러하지 않겠나[吾所待又有待而然者邪]?
내가 의지하는 것은 뱀의 비늘이나 매미의 날개같은 것일까?[吾待蛇蚹蜩翼邪]?
어찌 그 까닭을 알고[惡識所以然] 어찌 그렇지 않은 까닭을 알겠는가?[惡識所以不然]?


 


어느날 장주는 꿈속에서 나비가 되었다[昔者莊周夢為胡蝶]
훌훌 날고 있는 것이 분명 나비였다[栩栩然胡蝶也]
마냥 즐거이 마음가는대로 날아다니며[自喻適志與]
장주임을 알지 못했다[不知周也]
문득 잠에서 깨어나보니 틀림없이 장주였다[俄然覺 則蘧蘧然周也]
장주가 꿈에의해 나비가 되었던 것인가[不知周之夢為胡蝶與]?
나비의 꿈속에서 그가 장주로 되어 있는 것인가[胡蝶之夢為周與]?
장주와 나비사이에는 반드시 차이가 있을 것이니[周與胡蝶則必有分矣]
이를 말하여 있는 것이 변화하는 물화(物化)라고 한다[此之謂物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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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에 따라) 변하게 되는 (말)소리는 상대적이라[化聲之相待]
상대시킬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네[若其不相待]
자연의 조화인 천예(天倪)로 조화를 이루고[和之以天倪]
무궁한 변화인 만연(曼衍)에 맡겨두게 되면[因之以曼衍]
영원히 살게되는 것이라네[所以窮年也]



자연의 조화로움인 천예(天倪)로 조화를 이룸은 무슨 의미일까?[何謂和之以天倪]?
말해보겠네[曰:]
옳다, 옳지 않다, 그렇다, 그렇지 않다는 (상대적 소리가 나네) [是不是 然不然]
만약 참으로 옳은 것이라면[是若果是也] 
옳은 것이 옳지 않은 것과 다르다고[則是之異乎不是也]
구태여 따질 필요가 없네[亦無辯]
만약 참으로 그렇다는 것이라면[然若果然也] 
그렇다는 것이 그렇지 않다는 것과 다르다고[則然之異乎不然也]
구태여 따지려 할 필요가 없네[亦無辯]



(상대에 따라) 변하게 되는 (말)소리는 상대적이라[化聲之相待]
상대시킬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네[若其不相待]
자연의 조화인 천예(天倪)로 조화를 이루고[和之以天倪]
무궁한 변화인 만연(曼衍)에 맡겨두게 되면[因之以曼衍]
영원히 살게되는 것이라네[所以窮年也]
세월도 잊고 시비(是非)도 잊어[忘年忘義]
무궁한 경지에서 노니는 것이라네[振於無竟]



그러기에 모든 것을 무궁한 경지에다 그냥 놓아두는 것일세[故寓諸無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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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구작자(瞿鵲子)가 스승 장오자(長梧子)에게 물었다[瞿鵲子問乎長梧子曰:]
”제가 공자로부터 들었는데[吾聞諸夫子]
성인은 일을 좇아 일처럼 여기지 않고[聖人不從事於務]
이로움을 취하려 하지 않고[不就利] 해를 피하려고 하지 않고[不違害]
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不喜求] 도에 따르려 하지 않고[不緣道]
말을 하지 않고서 말함이 있고[無謂有謂] 말을 해도 말함이 없고[ 有謂無謂]
멀리 속세 밖에서 노닌다고 하였습니다[而遊乎塵垢之外]
공자는 허무맹랑한 말이라고 하였으나,[夫子以為孟浪之言]
저는 신묘한 도를 행하고 있는 것이라 여겨집니다[而我以為妙道之行也]
선생님께서는 어찌 생각하십니까?[吾子以為奚若]”



장오자가 말했다[長梧子曰:]
그 말은 전설속의 삼황오제(黃帝)가 들어도 혼란할 것인데[是黃帝之所聽熒也]
공구(공자) 따위가 어찌 그것을 알겠는가[而丘也何足以知之]
그리고 자네도 너무 속단을 하고 있는걸세[且女亦大早計]
계란을 보고 새벽 닭이 울었다고 하는 것이나[見卵而求時夜]
탄피를 보고 새를 구워 먹었다는 것과 같네[見彈而求鴞炙]
내 자네를 위해 망령되이 말하는 것이니[予嘗為女妄言之]
자네도 망령이다 하며 들어주길 바라네[女以妄聽之]



그 성인은 해와 달과 짝하고[奚旁日月] 우주를 끼고서[挾宇宙]
만물과 하나되어 혼돈 속에 몸을 맡겨[為其吻合 置其滑涽]
천하고 귀한 것을 나눌 줄 모르네[以隸相尊]
세상 사람들은 헐떡거리지만[眾人役役] 성인은 멍청하듯 하며[聖人愚芚]
변치않고 순수한 하나로 합해가네[參萬歲而一成純]
만물도 다 그러해서[萬物盡然] 그렇게 합해간다네[而以是相蘊].



삶이 즐거움이, 내 어찌 미혹함이 아닌 줄 알겠는가[予惡乎知說生之非惑邪]?
죽음이 싫은 것이, 내 어찌 어려서 떠난 고향으로 돌아갈 줄 모르는 것이 아닌 줄 알겠는가?
[予惡乎知惡死之非弱喪而不知歸者邪]



여희는 애(艾)의 국경을 수비하는 관리의 딸이었네[麗之姬 艾封人之子也].
처음 진(晉)나라로 데려갔을 때에는[晉國之始得之也]
하염없는 눈물로 옷깃을 적시었지만[涕泣沾襟] 
진왕의 처소로 들어 잠자리를 같이 하고[及其至於王所 與王同筐床] 좋은 음식을 맛보고 나서[食芻豢]
그 후에는 지난날 울었던 것을 후회했다고 하네[而後悔其泣也].
그러니 죽은 이가 죽기 전에 살기를 바랐던 것을, 죽어서 후회하지 않을 것인지 내가 어찌 알겠는가?
[予惡乎知夫死者不悔其始之蘄生乎]?



꿈속에서 술 마시며 즐겨웠던 사람이[夢飲酒者] 아침에는 곡을 하며 울고[旦而哭泣]
꿈속에서 곡을 하고 울던 사람이[夢哭泣者] 아침에는 사냥을 나가 즐거워한다네[旦而田獵].
한참 꿈속에 있을 때는 꿈인 줄 알지 못하고[方其夢也 不知其夢也] 
꿈속에서 그 꿈을 차지하려 애쓰다가 깬 후에야 그것이 꿈이었음을 아네[夢之中又占其夢焉 覺而後知其夢也]
또한 완전히 깨어난 뒤에라야 그것이 진정 꿈이었음을 아네[且有大覺而後知此其大夢也]
그러나 어리석은 자들은 스스로 깨어있다 여기면서[而愚者自以為覺] 다 아는 체하며[竊竊然知之]
임금이네! 관리네! 하고 있으니 참으로 딱하네 그려[君乎 牧乎 固哉]!



공구(공자)도 자네도 모두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네[丘也與女 皆夢也]
자네보고 꿈을 꾼다고 하는 나도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네[予謂女夢 亦夢也]
나의 이런 말을 비상식적인 조궤(弔詭)라고 하네만[是其言也 其名為吊詭]
만세 후라도 이 뜻을 풀어주는 한 성인을 만날 수 있다면[萬世之後而一遇大聖] 
아침에 만났다가 저녁에 다시 만난 것처럼 정말 일찍 만난 것이라 할 수 있네[知其解者 是旦暮遇之也]



내가 자네와 논쟁을 한다고 해 보세[既使我與若辯矣]
자네가 나를 이기고 내가 자네에게 졌다고 하면[若勝我 我不若勝]
과연 자네가 옳고 내가 그른 것인가?[若果是也 我果非也邪]? 
내가 자네를 이기고 자네가 나에게 졌다고 하면[我勝若 若不吾勝]
과연 내가 옳고 자네가 그른 것인가?[我果是也?而果非也邪]?
어느정도 옳으면, 진쪽은 어느정도 그른 것인가?[其或是也 其或非也邪]
완전히 옳으면, 진쪽은 완전히 그른 것인가?[其俱是也 其俱非也邪]
나나 자네나 이것도 능히 모르는데[我與若不能相知也]
남이 또 어찌 판단하게 맡길 수 있겠는가[則人固受其黮闇]



우리는 누구에게 결정하게 할 수 있겠나?[吾誰使正之]
자네에게 수긍하는 이가 결정한다면[使同乎若者正之] 
이미 그와 자네가 같은 생각이니 어찌 바르다 하겠는가[既與若同矣 惡能正之]?
나에게 수긍하는 이가 결정한다면[使同乎我者正之]
이미 그는 나와 같은 생각이니 어찌 바르다 하겠는가[既同乎我矣 惡能正之]?
나와 자네와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결정하라고 하면[使異乎我與若者正之]
이미 그는 나와 자네와 생각이 다르니[既異乎我與若矣] 그도 어찌 바르다 하겠는가[惡能正之]? 
나와도 자네와도 생각이 같은 사람에게 결정하라고 하면[使同乎我與若者正之]
이미 그는 나와도 자네와도 같으니[既同乎我與若矣] 어찌 바르다 하겠는가[惡能正之]
그러니 나나 자네나 제삼자나 마찬가지로 알 수가 없네[然則我與若與人俱不能相知也]
그러니 그 누구를 기다릴 것인가[而待彼也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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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설결(齧缺)이 스승 왕예(王倪)에게 물었다[齧缺問乎王倪曰:].
"선생님께서는 만물이 다 하나임을 아십니까?"[子知物之所同是乎]?



말씀하시길[曰:] "내가 그것을 어떻게 알겠는가?"[吾惡乎知之]



"선생님께서는 선생님이 알지 못하는 것이 있음은 아십니까?[子知子之所不知邪]?



말씀하시길[曰:] "내가 그것을 어떻게 알겠는가?"[吾惡乎知之]



"그렇다면 물(物)은 알 수 없다는 뜻입니까?[然則物無知邪]?



말씀하시길[曰:] "내가 그것을 어떻게 알겠는가?"[吾惡乎知之]
비록 그렇지만, 한번 말은 해 봄세[雖然 嘗試言之]
내가 안다 하는 것이 모르는게 아니다는 말이겠나?[庸詎知吾所謂知之非不知邪]?
내가 모른다 하는 것이 아는게 아니다는 말이겠나?[庸詎知吾所謂不知之非知邪]?



오히려 내가 시험삼아 자네에게 불어 봄세[且吾嘗試問乎女]
사람이 습한 곳에서 자면 척추가 무뎌져 죽게 되겠지만[民濕寢則腰疾偏死]
미꾸라지는 어떠한가[鰍然乎哉]?
사람이 나무위에 있게되면 벌벌 떨게 되겠지만[木處則惴慄恂懼]
원숭이는 어떠한가[猿猴然乎哉]?
사람, 미꾸라지, 원숭이 이 셋중에 누가 바른 곳을 아는건가?[三者孰知正處]?



사람은 가축을 먹고[民食芻豢] 사슴은 풀을 먹고[麋鹿食薦]
지네는 뱀의 사체를 맛있게 먹고[蝍且甘帶] 부엉이와 까마귀는 쥐를 즐기니[鴟鴉耆鼠]
이 넷은 누가 맛을 제대로 아는건가?[四者孰知正味]



원숭이는 원숭이와 짝을 짓고[猿猵狙以為雌] 고라니는 사슴과 어울리고[麋與鹿交]
미꾸라지는 물고기와 노닐면서도[鰍與魚游]
모장과 여희는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하는데도[毛嬙麗姬 人之所美也]
물고기가 보면 물속으로 들어가 버리고[魚見之深入]
새가 보면 하늘로 날아가 버리고[鳥見之高飛]
고라니와 사슴이 보면 급하게 달아난다네[麋鹿見之決驟]
이 넷은 누가 아름다움을 제대로 아는건가?[四者孰知天下之正色哉]?



내가 볼 때에는[自我觀之]
인의를 경계짓고[仁義之端] 시비를 가르는 것은[是非之塗] 혼란하고 어지러우니[樊然殽亂]
어찌 내가 능히 따져서 알수 있겠는가[吾惡能知其辯]



설결이 물었다[齧缺曰:]
선생님이 이롭고 해로움을 알지 못하신다면, 지인도 역시 그렇습니까?[子不知利害 則至人固不知利害乎]?



왕예(王倪)가 답했다[王倪曰:]
지인은 신묘하다네![至人神矣]!
커다란 연못을 다 태워도 뜨거워 하지않고[大澤焚而不能熱]
황하와 한수를 다 얼려도 추워하지 않는다네[河漢冱而不能寒]
사나운 우뢰가 산을 다 파괴시켜도 상하지 않고[疾雷破山]
태풍이 파도가 몰아치게 해도 그는 놀라지 않는다네[飄風振海而不能驚]
그 같은 사람은[若然者] 구름의 기운을 타고[乘雲氣]
해와 달에 올라타서[騎日月] 사해의 바깥을 노닌다네[而游乎四海之外]
죽고 사는 것 조차도 자기를 변하게 할 수 없는데[死生無變於己]
이롭고 해로움의 경계를 따지려고 하겠는가[而況利害之端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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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것[此]에 관해 말을 해 보기로 하자[今且有言於此]
같은 종류와 함께 놓으면 알 수 없나?[不知其與是類乎]
다른 종류와 함께 놓으면 어떠한가?[其與是不類乎]?
같은 종류와 함께 놓으나 다른 종류와 함께 놓으나[類與不類]
서로 합하여 같은 한 묶음으로 하면[相與為類] 다른 것과 차이가 없다[則與彼無以異矣]
(한 남자를 남자속에서 ‘남자’로 함께 묶거나, 한 남자를 여자속에 넣어 ‘인간’으로 묶거나)



이처럼 비록 한단계 위에서 보면 나눠지는게 없다고 하더라도[雖然]
한번 말을 해 보기로 한다[請嘗言之]
처음이 있다는 것[有始也者]
처음이 있음은 처음이 아님도 있다는 것[有未始有始也者]
[처음이 있음과 처음이 아님이 있음]을 하나로 통틀어
그것도 아님이 있다는것[有未始有夫未始有始也者]
있다는 것이 있는 것[有有也者], 없다는 것도 있는 것[有無也者]
[있고 없음의 시작됨]이 없음도 있는 것[有未始有無也者]
[있고 없음의 시작됨이 없음이 있는 것]도 없는 것[有未始有夫未始有無也者]
그런데 어느덧 있음과 없음이 생겨있다[俄而有無矣]
있다고 하고 없다고 하는데 무엇이 있고 무엇이 없는지 알지 못하겠다[而未知有無之果孰有孰無也]
지금 나는 이미 말을 하였지만[今我則已有謂矣]
과연 내가 말한 것이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를 알지 못하겠다
[而未知吾所謂之其果有謂乎 其果無謂乎]



세상에 가을의 짐승 털끝보다 더 큰 것이 없다하면[夫天下莫大於秋豪之末]
태산도 작은 것이 된다[而大山為小]
일찍 죽은 갓난아이보다 장수하는 이는 없다고 하면[莫壽於殤子]
8백년을 살았다는 팽조가 단명한 것이 된다[而彭祖為夭]
천지가 나와 더불어 함께 생겨있다 하면[天地與我並生]
만물도 나와 함께 하나가 되는 것이다[而萬物與我為一]
이미 하나가 되었다 했는데[既已為一矣]
그 하나된 것에 덪붙일 말이 있겠는가?[且得有言乎]?
이미 하나라고 말을 했는데[既已謂之一矣]
또한 덪붙인 말이 없었다 하겠는가[且得無言乎]?



하나인데 하나라 하는 순간 [하나]에 [하나라는 관념]이 더불어 둘이되고[一與言為二]
[둘]은 또 [둘 아닌 것]과 더불면 셋이되고[二與一為三]
이런식으로 계속 나아가면[自此以往]
아무리 훌륭한 계산으로도 끝을 헤아릴 수 없는데[巧歷不能得]
어찌 보통 사람이 셈할 수 있다 하겠는가[而況其凡乎]!



그러기에 [무]와 [유]는 [무에서 유로 변하는 진행]에 의해 셋에 이르는데[故自無適有以至於三]
[유]에서 [유]로 [멈추는 진행]이라고 해서 끝이 있겠는가[而況自有適有乎]
나아가는 진행없이[無適焉] 그대로 놓아둘 밖에[因是已]



본래 도라는 것이 잡을 수 없는 것이요[夫道未始有封]
말도 전부를 규정할 수 없는 것인데[言未始有常]
규정하려 하기에 다툼이 생긴다[爲是而有畛也] 그런 시비에 대한 말해보자[請言其畛]
왼편이다 하니 오른편이 있어야 하고, 윤리다하니 의로움이 있어야 하고[有左有右有倫有義]
구분된다 하니 따지는 것이 있어야 하고, 겨룬다 하니 경쟁이 있어야 한다[有分有辯有競有爭]
이를 다툼을 만드는 8덕(八德)이라고 말한다[此之謂八德]



4방향과 함께 위와 아래인 6합(六合)의 바깥은 [六合之外]
성인은 놓아두고 논하려 하지 않는다[聖人存而不論]
6합의 안에 있어서도[六合之內]
성인은 논하더라도 헤아리지는 않는다[聖人論而不議]



역사서적 『춘추』는 세상을 다스린 선왕의 뜻으로[春秋經世先王之志]
성인은 헤아려보았더라도 말로 따져내지는 않았다[聖人議而不辯]
그러니 나누는 것이란게 [故分也者] 나누지 않는 것이었고[有不分也]
따져보는 것은 [辯也者] 따져보지 않는 것이었다[有不辯也]
어째서 그렇다 말하나? [曰何也]
성인은 품어서 보듬지만 [聖人懷之]
세상사람들은 따져서 드러내고자 하기 때문이다[衆人辯之以相示也]
따라서 따져본다고 말은 하지만 [故曰辯也者]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有不見也]



무릇 참된 도는 헤아릴 수 없고[夫大道不稱]
참된 변론은 말이 없고[大辯不言]
참된 인에는 어짊이 없고[大仁不仁]
참된 청렴에는 겸손이 없고[大廉不嗛]
참된 용기에는 해치는 것이 없다[大勇不忮]



도를 드러내려 한다면 도가 아니게 되고[道昭而不道]
말로 따져내려 한다면 도달할 수가 없게 되고[言辯而不及] 
인을 늘 그러하게 한다면 인이 아니게 되고[仁常而不成] 
맑게 하려고 하는 청렴은 믿을 수 없게 되고[廉清而不信]
용기로 해치려 한다면 용기일 수 없게 된다[勇忮而不成]
이 다섯가지는 원만했으나 기울어져 모나게 된 것이다[五者圓而幾向方矣]
그러므로 알지 못함에서 멈출줄 알아야[故知止其所不知]
이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至矣]



누가 말이 없어야 말로 따지는 것인지 알 수 있겠는가[孰知不言之辯]?
누가 도가 없어야 도인 것을 알 수 있겠는가[不道之道]?
만일 능히 알 수 있다하면[若有能知] 
이를 일러 자연이 생겨나는 ‘천부’라 할 것이다[此之謂天府]



아무리 들어부어도 다 차지 않고[注焉而不滿]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는데[酌焉而不竭] 
어째서 그러한지 알 수가 없으니[而不知其所由來]
이를 일러 빛을 감춘 ‘보광’이라고 할 것이다[此之謂葆光]



옛날에 요가 순에게 물어 말하길[故昔者堯問於舜曰:]
“나는 종, 회, 서호를 정벌하고 싶네 [我欲伐宗膾胥敖]
임금이 되어 남면하고 있는데도 떨떠름하니[南面而不釋然]
어째서 그러할까[其故何也]?”
(이 세나라 때문이겠지?) 



순이 말하길[舜曰:]
“그 세나라의 임금이라는 자들은[夫三子者]
오히려 쑥대밭 사이에 있는 것처럼 미천한데[猶存乎蓬艾之間]
폐하께서 떨떠름하다고 하시니 어째서겠습니까[若不釋然何哉]?
옛날에 열 개의 태양이 한꺼번에 나타나[昔者十日並出]
만물을 다 비추어 버린 적이 있습니다[萬物皆照]
지금 폐하의 덕이 그 태양들처럼 되고자 하는 것인가요[而況德之進乎日者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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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은 그 지혜가 지극하였다[古之人 其知有所至矣]
어디까지 이르렀던가?[惡乎至]?
시원은 만물이 없는 무(無)였는데[有以為未始有物者] 
지극하고 극진하기에 더 보탤 수가 없다[至矣 盡矣 不可以加矣]
그 후 만물이 있게 되었는데 구분은 없었고[其次以為有物矣 而未始有封也]
그 후 구분이 있게 되었으데[其次以為有封焉]
옳고 그르다고 논할 수는 없었다[而未始有是非也]
그런데 (사람으로부터) 시비가 생겨나자[是非之彰也]
도가 가려져 버렸고[道之所以虧也]
도가 가려지자 편애(偏愛)가 생겨났다[道之所以虧 愛之所以成]
그렇다면 도(道)도 이와같이 흥망성쇠를 하는 것인가[果且有成與虧乎哉]?
아니면 도(道)는 흥망성쇠를 하지 않는 것인가[果且無成與虧乎哉]?



성하고 쇠하게 되는 것은 소씨가 거문고를 타는 것이요[有成與虧 故昭氏之鼓琴也]
성하고 쇠하지 않는 것은 소씨가 거문고를 놓는 것이다[無成與虧 故昭氏之不鼓琴也]
소문(昭文)이 거문고를 뜯고[昭文之鼓琴也]
사광(師曠)이 지팡이로 박자를 맞추며[師曠之枝策也]
혜자가 책상에 기대어 노래를 하였는데[惠子之據梧也]
이 세 사람의 기술만은 성인의 경지에 다가갔고[三子之知幾乎 皆其盛者也]
그랬기에 말년까지 칭송을 유지할 수 있었다[故載之末年]



다만 그 좋아한 것이 성인과는 다른 것이었으니[唯其好之也 以異於彼]
그 좋아한 것을 욕심내어 드러내고자 한 것이었다[其好之也 欲以明之]
(혜자는) 밝힐 수 없는 것인데도 밝히고자 하였기에[彼非所明而明之]
견백(堅白)의 궤변(詭辯)으로 끝나게 된 것이요[故以堅白之昧終]
소문은 자식으로 이어 전하려는 욕심이 있었기에[而其子又以文之綸終]
끝내 스스로는 완성의 경지에 이를 수는 없었던 것이다[終身無成]



만약 이런 것도 이루는 것이라고 하면[若是而可謂成乎]
나 또한 이루었다고 못하겠나[雖我亦成也]
만약 이런 것은 이루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若是而不可謂成乎],
만물이나 나 역시도 이룬 것이 없는 것 아니겠나[物與我無成也]



이처럼, 밝은 것이지, 밝게 하는 것이 아니어야 하므로[是故滑疑之耀]
성인이 도모하는 바와 같아야 한다[聖人之所鄙也]
쓰려고 하지 않고 저절로 그리되도록 놓아두어야 하니[為是不用而寓諸庸]
이를 자연의 저절로 드러남인 명(明)이라고 한다[此之謂 以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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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손가락의 의미로 비교하여,
저 사람의 (여섯번째) 손가락은 손가락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以指喩指之非指]
일반적 손가락이 아닌 특이한 손가락으로 비교하여,
저 손가락은 손가락이 아니라고 하는 것에도 못 미친다[不若以非指喩指之非指也]
일반적인 말(馬)의 의미로 비교하여
저 (양처럼 생긴) 말은 말(馬)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以馬喩馬之非馬]
일반적인 말이 아닌 특이한 말(馬)로서 비교하여,
저 말(馬)이 말(馬)이 아니라고 하는 것에도 못 미친다[不若以非馬喩馬之非馬也]
천지도 이와 같은 하나의 다른 손가락이며[天地一指也]
만물도 이와 같은 하나의 다른 말(馬)에 불과하다[萬物一馬也]



옳다고 하면 옳은 것이요[可乎可]
틀렸다고 하면 틀린 것이다[不可乎不可]
도의 움직임에 의해 그 자체로 이미 완성된 것이며[道行之而成]
만물은 그렇다고 하면 그런것이다[物謂之而然]
어째서 맞는가[惡乎可]?
맞다에 의해 맞는 것이다[可於可]
어째서 틀리는가[惡乎不可]
틀렸다에 의해서 틀린 것이다[不可於不可]
만물은 그대로이면 그대로이고[物固有所然]
만물은 옳다면 옳은 것이다[物固有所可]
만물이 그대로가 아닌 것이 없고[無物不然]
만물이 옳지 않은 것이 없다[無物不可]



때문에 말하자면[故爲是],
지탱하는 대들보와 받치는 나무기둥[擧莛與楹],
문둥이와 서시라는 미녀[厲與西施]
허풍쟁이와 사기꾼이나 말쟁이와 괴상한 사람[恢恑憰怪]
모두 도(道)의 관념으로 통하면 마찬가지로 같은 것이다[道通爲一]



나누는 것이 이루는 것이며[其分也成也]
이루는 것은 부서지는 것이다[其成也毁也]
만물은 이루고 부서짐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凡物無成與毁]
돌고 돌아 통하여 하나로 있다[復通爲一]



오직 도달한 사람만이 그 하나라는 이치를 알아[唯達者知通爲一]
쓸려고 하지 않고 그대로 쓰여지게 놓아둔다[爲是不用而寓諸庸]
저절로 쓰여지는 것이야 말로[庸也者] 쓰는 것이며[用也]
그리 쓰는 것이야 말로[用也者] 그대로 통(通)하게 하는 것이다[通也].
그리 통(通)하는 것이야 말로 제대로 얻는 것이어서[得也]
가장 적합하게 되니[適得而幾矣] 이에 그렇게 놓아두는 것이다[是因是已]
그렇게 하면서도 그렇게 하는 줄을 모르는 것을[已而不知其然]
도(道)라고 부른다[謂之道]



애를 써서 하나로 만들려고 하면[努神明爲一]
결코 하나됨에 이르지 '못한다[而不知其同也]
이를 조삼이라고 말한다[謂之朝三]
조삼이 무엇인가?[何謂朝三]?
이러하다 [曰:]
원숭이 사육사가 도토리를 주며 말했다[狙公賦芧曰]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를 줄 것이다"[朝三而暮四]
원숭이들이 모두 화를 내었다[衆狙皆怒]
다시 말하기를 [曰:]
"그렇다면,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를 줄 것이다"[然則朝四而暮三]
원숭이들이 모두 기뻐했다[衆狙皆悅]
말한 것과 실제가 달라진게 없었으나[名實未虧]
기쁘게도 화나게도 하였다[而喜怒爲用]
역시 (준다는 말 없이) 그냥 주면 되었을 뿐이었다[亦因是也]



따라서 성인은 시비가 조화되도록[是以聖人和之以是非]
자연의 섭리에 맡기고 쉬는데[而休乎天釣]
이것을 어긋나지 않고 함께 가는 양행(兩行)이라고 말한다.[是之謂兩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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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불어 나오는 소리만이 아니며[夫言非吹也]
말은 뜻을 담고 있다[言者有言]
말(소리)은 특별해서 일정하지 않으니[其所言者特未定也]
과연 뜻이 (소리와) 따로 있다 할 것인가[果有言邪]?
뜻이 (소리와) 따로 없다고 할 것인가[其未嘗有言邪]?
새 새끼의 지저귀는 소리와 다른[其以為異於鷇音]
어떤 구별됨이 있는 것인가[亦有辯乎]? 없는 것인가[其無辯乎]?



도는 무엇에 숨겨져 참과 거짓이 있게 되며[道惡乎隱而有真偽]?
뜻은 무엇에 숨겨져 옳음과 그름이 있게 되는 것인가[言惡乎隱而有是非]?
도는 어디로 가서 머물수 없으며[道惡乎往而不存]
뜻은 어떤 것으로 규정할 수 없으니[言惡乎存而不可]
도는 작게 떼어내려고 하니 숨겨지고[道隱於小成]
뜻은 화려한 소리에 의해서 숨겨진다[言隱於榮華].



그러기에 유가(儒家)와 묵가(墨家)의 시비가 생기고[故有儒墨之是非]
옳다 하면 그르다 하고[以是其所非] 그르다 하면 옳다고 하였다[而非其所是]
옳은 것을 그르다고 하고싶고, 그른 것을 옳다고 하고싶은 것은[欲是其所非而非其所是]
드러나 보이는 것만 보는 것에 못하다[則莫若以明].



사물(物)에는 저것 아닌 것이 없고[物無非彼]
사물(物)에는 이것 아닌 것이 없다[物無非是].
그러나 저것으로부터는 보지 않고[自彼則不見]
자기가 아는 것으로부터 안다는 것만 본다[自知則知之].



그래서 말하기를[故曰:]
저것은 이것으로 나오고[彼出於是] 이것 또한 저것에 기인한다고 하였으니[是亦因彼]
저것과 이것은 서로 생겨나 있다는 소위 방생설(方生說)이다 [彼是方生之說也].



비록 그러하다 하더라도[雖然]
생(生)에 의해서 사(死)가 있고[方生方死],
사(死)에 의해서 생(生)이 있고[方死方生],
된다(可)에 의해서 안된다(不可)가 있고[方可方不可],
안된다(不可)에 의해서 된다(可)가 있으며[方不可方可]
옳다(是)에 의해서 틀렸다(非)가 있고[因是因非]
틀렸다(非)에 의해서 옳다(是)가 있다[ 因非因是]고 하더라도,



성인(聖人)은 그 높이에서 보지 않고[是以聖人不由]
가장 높은 경지에서 내려다 본다[而照之於天].
그렇게 보는 것도 그리 의해서 되기 때문이다[亦因是也].



이것이 또한 저것이요[是亦彼也], 저것이 또한 이것이다[彼亦是也]
저것에도 또 하나의 작은 시(是)와 비(非)가 있게되고[彼亦一是非],
이것에도 또 하나의 작은 시(是)와 비(非)가 있게된다[ 此亦一是非].
과연 저것과 이것은 있는 것인가[果且有彼是乎哉]?
과연 저것과 이것은 없는 것인가[果且無彼是乎哉]?



저것과 이것을 가르지 못하는 것을[彼是莫得其偶]
도의 요체인 도추(刀錐)라고 한다[謂之道樞]
본질에서 시작해야 핵심을 얻어[樞始得其環中]
무궁(無窮)에도 응할 수 있다[ 以應無窮].
옳다(是)는 것 그 또한 하나의 무궁이요[是亦一無窮],
틀렸다(非)도 또한 하나의 무궁이다[非亦一無窮也].
그러므로 말한 것이다[故曰:]
드러나 보이는 것을 보는 것만 못하다[莫若以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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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지혜는 한가롭고 느긋하게 해 주고[大知閑閑]
작은 지혜는 바쁘고 초조하게 만든다[小知間間]
큰 말은 담담하게 들리고[大言炎炎]
작은 말은 수다스럽고 시끄럽다[小言詹詹]



잠잘 때는 혼백이 분주하고[其寐也魂交]
깨어 있을 때는 형상과 접촉하여[其覺也形開]
쉬지않고 쫒아다니기만 하니[與接為構] 언제나 마음이 싸울려고만 하는 것이다[日以心鬪]
우유부단한 사람[縵者] 속셈이 있는 사람[窖者]  감추는 사람[密者]이 되고,
조그만 두려움에도 벌벌떨면서[小恐惴惴] 큰 두려움임에는 태연한듯 하는 것이다[大恐縵縵]
활을 쏘듯이 쏘아붙여[其發若機栝] 시비를 가려내려 하고[其司是非之謂也]
딱 잡아떼고 맹세하여[其留如詛盟] 고집스레 이기려 하는 것이다[其守勝之謂也]
죽여버리려는 마음이 가을겨울의 추위처럼 매서워[其殺若秋冬]
오히려 나날이 제 기력을 잃어가게 되는데[以言其日消也]
이미 잠겨버렸기에[其溺之所為之]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이다[不可使復之也]
욕망으로 조여가고 묶어가는 것이[其厭也如緘] 늙을수록 더 심해지니[以言其老洫也]
죽은 마음에 다가간 것이어서[近死之心] 되살릴 수가 없다[莫使復陽也]



기뻐하고 화내고 슬퍼하고 즐거워하기도 하고[喜怒哀樂]
걱정하고 한탄하고 변덕을 부리기도 하고 고집하기도 하고[慮歎變慹]
까불기도 하고 방탕하기도 하고 들춰내려하고 꾸미려고도 하는 것이[姚佚啟態]
소리가 빈 구멍에서 생겨나고[樂出虛]
습한 기운이 곰팡이를 만들듯[蒸成菌]
밤낮으로 반복되며 눈앞에 나타나지만[日夜相代乎前]
어째서 그런지를 알지 못한다[而莫知其所萌]
못난 사람 얘기는 여기까지만 할란다[已乎] 여기까지만 할란다[已乎]



아침 저녁으로 이렇게 마음이 변화는 것은[旦暮得此]
어떤 까닭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겠는가[其所由以生乎]?
그것이 없다면 내가 없고[非彼無我] 내가 없다면 그것도 의미가 없으니[非我無所取]
저것과 나는 그처럼 가깝지만[是亦近矣] 무엇이 그리하는지 알 수는 없다[而不知其所為使]
참된 주재자가 있는 것 같은데[若有真宰]
애를 쓴다고 그 조짐을 알 수는 없고[而特不得其眹]
그 작용은 믿을 수 있는 것이지만[可行己信]
그 형체를 볼 수는 없다[而不見其形]
참된것은 있으되 형상이 없을 뿐이다[有情而無形]



몸은 백 개의 뼈마디[百骸] 아홉개의 구멍[九竅] 여섯의 장기가[六藏]
모두 갖춰져야 하는데[賅而存焉] 내가 어느것과 더 친해야 하나[吾誰與為親]?
그 모두를 사랑해야 할까[汝皆說之乎]? 특별히 하나를 사랑해야 할까[其有私焉]?
이것들은 주인은 없이 신하와 첩으로만 있는 것인가[如是皆有為臣妾乎]?
신하와 첩이라면 어찌 서로서로가 다스릴 수 있겠는가?[其臣妾不足以相治乎]?
번갈아가면서 군신관계가 된다는 말인가[其遞相為君臣乎]?
진정한 주재자가 있음이다[其有真君存焉].
그 참됨이 있음을 알아주건 몰라주건[如求得其情與不得]
그 참됨의 작용은 아무 변화가 없을 것이다[無益損乎其真].
몸의 요소는 사람의 형체안에 하나가 되어[一受其成形]
없어지지 못하고 역할을 다하면서 기다려야 할 뿐이다[不亡以待盡]



사람은 만물과 서로 다투기만 하고[與物相刃相靡]
말달리듯 지나가면서도[其行盡如馳] 멈추고자 하지 않으니[而莫之能止]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不亦悲乎]!
종신토록 허덕인다고 성공을 볼 수는 없고[終身役役而不見其成功]
고달파 쓰러지면서도 되돌아가야 할 바를 알 지 못하니[苶然疲役而不知其所歸]
참으로 애처럽지 않겠는가[可不哀邪]!



사람들이 죽지 않는다고 하게되면[人謂之不死] 이로움이 있겠는가[奚益]?
모습은 마음과 더불어 늙고 변하게 될 터인데[其形化其心與之然]
(죽지 않는것이) 더 큰 슬픔이라 말하지 않는건가[可不謂大哀乎]?
사람들이 사는 것이 이처럼 어리석은 것인가[人之生也 固若是芒乎]?
나 혼자 어리석고 남들이 어리석지 않은 것인가[其我獨芒 而人亦有不芒者]?



본래 지닌 참된  마음을 스승으로 삼을 수 있으니[夫隨其成心而師之]
그 누가 스승이 없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誰獨且無師乎]?
자기 마음을 얻은 사람에게만 스승이 있었다 하겠는가[奚必知代而心自取者有之]
어리석은 사람에게도 역시 있는 것이다[愚者與有焉]
여전히 이르지 못하고 시비가 남아있다면[未成乎心而有是非]
오늘 월(越)나라를 떠나면서 어제 도착했다는 것이요[是今日適越而昔至也]
아무것도 없는 것을 있다고 하려는 것이다[是以無有為有]
없는데도 있다고 하는 것은[無有為有]
성인인 우(禹)라도[雖有神禹] 알 수 없을 것인데[且不能知].
하물며 내가 어찌 알아줄 수 있겠는가[吾獨且奈何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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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곽자기(南郭子棊)가 책상에 기대앉아[南郭子綦隱机而坐] 하늘을 쳐다보며 한숨쉬니[仰天而噓]
그 멍한 모습이 마치 스스로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荅焉似喪其耦].
제자 안성자유(顔成子遊)가 그 앞에서 시중을 들다가[顏成子游立侍乎前] 여쭈었다[曰]:
"무슨 일인지요[何居乎]? 보이는 모습이 정말로 마른나무와 같고[形固可使如槁木]
느껴지는 마음이 정말로 식은 재와 같습니다[而心固可使如死灰乎].
지금 책상에 기대고 있는 사람이[今之隱机者]
이전에 그 사람과 다른 사람인지요[非昔之隱机者也]?



자기(子棊)가 말했다[子綦曰]:
"언아[偃] 너는 정말 순진하여[偃不亦善乎] 그런 것을 묻는구나[而問之也]!
지금 나는 내 자신을 잊고 있었는데[今者吾喪我] 네가 그것을 알겠느냐[汝知之乎]?
너는 사람이 내는 소리인 인뢰(人籟)는 들었을 것이나[女聞人籟而未聞地籟]
땅이 내는 소리인 지뢰(地籟)는 못 들었을 것이고[女聞地籟]
설령 들었어도, 하늘이 내는 소리인 천뢰(天籟)까지는 못 들었을 것이다[而未聞天籟夫夫].



자유가 청했다[子游曰]: "부디 그것을 말씀해 주십시오[敢問其方]."



자기가 대답했다[子綦曰]:
"대개 대지가 뿜어내는 숨을[夫大塊噫氣] 바람이라 한다[其名為風].
이것이 일지 않으면 모르겠지만[是唯無作]
일어나면 세상의 모든 구멍이 성난 듯 소리를 낸다[作則萬竅怒呺].
너 혼자 그 소리의 울림을 못 듣지는 않았겠지[而獨不聞之翏翏乎]?
산 속의 높은 봉우리에[山林之畏佳] 백 아름이 되는 큰 나무의 구멍은[大木百圍之竅穴]
코와 같이, 입과 같이, 귀와 같이, 가로보 같이, 고리와 같이, 절구와 같이[似鼻 似口 似耳 似枅 似圈 似臼]
연못과 같은 것이 되고, 웅덩이와 같은 것이 된다[似洼者 似污者].
물소리 같이, 화살소리 같이, 꾸짓는 소리 같이, 숨쉬는 소리 같이[激者 謞者 叱者 吸者]
부르는 소리 같이, 울리는 소리 같이, 찟어지는 소리 같이 되어[譹者 宎者 咬者],
앞 소리를 가볍게 시작하여 뒷소리를 무겁게 낸다[前者唱于而隨者唱喁]
작은 바람이면 작게 화답하고, 거센 바람이면 크게 화답한다[泠風則小和 飄風則大和]
그러다 바람이 잦아지면 모든 구멍들이 잠자게 되는 것인데[厲風濟則眾竅為虛]
너만이 저 나무들이 휘청휘청 흔들리다 잠잠해짐을 것을 못 보지는 않았겠지[而獨不見之調調 之刀刀乎]?"



자유가 말하기를[子游曰]:
"지뢰(地籟)는 구멍을 통해 나오게 되는 소리이며[地籟則眾竅是已],
인뢰(人籟)는 사람이 불어 나오는 피리같은 소리군요[人籟則比竹是已].
그렇다면 천뢰(天籟)는 무엇인지요[敢問天籟]?"



자기가 대답했다[子綦曰]:
"그 나오는 소리가 만가지가 다 다르지만[夫吹萬不同]
저절로 달리 만들어 지는 소리이다[而使其自已也].
저절로 그리 나오게 되는 것이니[咸其自取]
소리나게 하는 그 무었이 있어서겠느냐[怒者其誰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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惠子謂莊子曰:
魏王貽我大瓠之種
我樹之成而實五石
以盛水漿 其堅不能
剖之以為瓢 瓠落無所容
非不呺然大也
吾為其無用而掊之


莊子曰:
夫子固拙於用大矣
宋人有善為不龜手之藥者
世世以洴澼絖為事
客聞之
請買其方百金
聚族而謀曰:
我世世為洴澼絖 不過數金
今一朝而鬻技百金 請與之
客得之 以說吳王
越有難 吳王使之將
冬 與越人水戰 大敗越人
裂地而封之
能不龜手 一也
或以封 或不免於洴澼絖
則所用之異也


今子有五石之瓠
何不慮以為大樽而浮乎江湖
而憂其瓠落無所容
則夫子猶有蓬之心也夫


惠子謂莊子曰
吾有大樹 人謂之樗
其大本臃腫而不中繩墨
其小枝卷曲而不中規矩
立之塗 匠者不顧
今子之言 大而無用
眾所同去也


莊子曰:
子獨不見狸狌乎
卑身而伏 以候敖者
東西跳梁 不避高下
中於機辟 死於罔罟
今夫斄牛 其大若垂天之雲
此能為大矣 而不能執鼠


今子 今子有大樹
患其無用
何不樹之於無何有之鄉
彷徨乎無為其側
逍遙乎寢臥其下
不夭斤斧
物無害者
無所可用 安所困苦哉

혜자(惠子)가 장자에게 말했다.
"위(魏)나라 왕이 저에게 큰 박씨를 주길래
그것을 심었더니 다섯섬 들이 큰 박이 열리더군요
물을 담는 그릇으로 쓰려했더니 무거워 들 수가 없어서
쪼개어 바가지를 만들었는데 그것도 너무 넓어 쓸 수가 없었지요
괜시리 크기만 커서
제게 소용이 없었으니 깨뜨려 버렸지요"


장자가 대답했다.
“자네는 큰 것을 쓰는 법을 모르나 보네
송나라 사람 중에 손 트는데 좋은 약을 만드는 자가 있었지
그는 대대로 세탁업을 이어오고 있었다네
한 나그네가 소문을 듣고서는
그 약 처방을 백금(白金)값으로 사고자 하였다네.
세탁업을 하던 그 사람이 가족을 모아놓고 말하였지
‘우리가 대대로 세탁업을 해왔지만 겨우 몇금(數金) 벌이였다
약 처방을 팔면 단번에 백금(白金)을 얻게 되니 팔기로하자’
처방을 얻게 된 나그네는 오나라 왕에게 약을 설명했다네.
마침 월나라가 침략해오자 오왕(吳王)은 그를 장수로 삼아
겨울에 수전으로 이끌어 월나라를 대패시키고
그 나그네에게 땅을 주고 영주로 삼았지
손을 트지 않게 하는 같은 약으로
어떤 이는 땅을 받고 어떤 이는 세탁업을 면하는데 그쳤으니
그것은 쓰는 법이 달랐기 때문일세.


지금의 자네는 닷 섬들이 바가지가 있었는데도
큰 배로 사용해 강과 호수에 띄울 것을 어찌 생각지도 못하고
너무 넓어 쓸 데가 없다고만 근심하였던가?
그러니 오히려 자네의 마음이 좁쌀이었던 것이지.”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
”내 집에 큰 나무가 있는데 사람들이 가죽나무라 하더군요
큰 줄기는 울퉁불퉁해서 먹줄을 놓을 수가 없고
작은 가지들도 꼬불꼬불해서 자로 쓸 수가 없군요.
길가에 서 있는데 목수조차 쳐다보지 않더군요
지금의 당신의 말은 크기는 하여도 쓸모는 없으니
사람들에게 외면받는 것이지요.”


장자가 말했다
“자네는 삵괭이를 보지 못했는가
납작 엎드려서 지나는 잔짐승을 노리는 놈이지만
동서로 분주하고 높낮이를 가리지 못하여
덫에 잡히거나 그물에 걸려 죽는다네.
그에 비하면 검정소는 하늘에 드리운 구름 같아서
능히 더 큰 일을 하지만 쥐를 잡지는 못한다네.


지금의 자네는 큰 나무가 있는데도
쓸모가 없다는 근심만 있네
자유로운 고을의 광활한 들에 어째서 심어놓지 못하는가?
그 곁을 무위(無爲)하며 지나고
노닐며 그 밑에 드러눕곤 할 것이니
도끼에 찍히지도 않고
해를 끼치는 일도 없을텐데
쓸 데가 없다며 어찌 괴롭다고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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肩吾問於連叔曰
吾聞言於接輿
大而無當
往而不返
吾驚怖其言
猶河漢而無極也
大有徑庭 不近人情焉


連叔曰
其言謂何哉

曰:
藐姑射之山 有神人居焉
肌膚若冰雪 淖約若處子
不食五穀 吸風飲露
乘雲氣 御飛龍
而遊乎四海之外
其神凝
使物不疵癘 而年穀熟
吾以是狂而不信也


連叔曰

瞽者無以與乎文章之觀
聾者無以與乎鐘鼓之聲
豈唯形骸有聾盲哉
夫知亦有之
是其言也 猶時女也


之人也 之德也
將旁礡萬物以為一
世蘄乎亂
孰弊弊焉 以天下為事
之人也 物莫之傷
大浸稽天而不溺
大旱金石流土山焦而熱
是其塵 垢秕糠
將猶陶鑄堯舜者也
孰肯以物為事


宋人資章甫而適越
越人斷髮文身 無所用之
堯治天下之民 平海內之政
往見四子藐姑射之山
汾水之陽
窅然喪其天下焉

견오(肩吾)가 연숙(連叔)에게 말했다
“내가 접여(接輿)의 말을 들었는데
너무 허황되어 믿을 수 없어서
헤어지고 다시보지 않았네
나는 그 말이 놀라워 두렵더군.
마치 은하수처럼 끝이 없었으니
너무 경지가 높아 사람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었어.”


연숙이 말했다.
“도데체 무슨 말이길래 그러는가?”


견오가 답하기를
“막고야(妙姑射)란 산에 신인(神人)이 사는데
살결이 얼음과 눈처럼 희고 처녀처럼 부드러우며
오곡을 먹지 않고 바람과 이슬을 마시며
구름을 타고서 나는 용을 몰고다니며
사해(四海) 밖을 노닌다고 하네
자기 정신을 맑게하는 것으로
만물을 병들지 않고 풍년이 들게 한다고 하네
나는 그 말이 허황된 것 같아 믿을수가 없네.”


연숙이 말했다.
“그럴 것이네.
봉사는 아름다운 무늬를 보지 못하고
귀머거리는 음악소리를 들을수 없다는 말이 있네.
어찌 신체적인 봉사와 귀머거리만 있겠는가?
안다는 것도 또한 그렇다네
봉사와 귀머거리라는 말이 자네를 두고 하는 말이겠군.


그 신인(神人)과 그의 덕은
만물을 하나로 합해가는 것이네
세상사람들이 다스려달라고 해도
무엇때문에 천하의 일에 관심을 두겠는가
그 사람은 사물이 해롭게 할 수가 없네.
큰 홍수로 물이 하늘까지 닿아도 그는 빠지지 않고
큰 가뭄으로 쇠와 돌이 녹고 흙과 산이 타더라도 더워하지 않을 것이네
그는 먼지와 티끌과 쭉정이와 겨만 가지고도
요(堯)임금, 순(舜)임금 같은 자를 마음대로 만들수 있겠지만
어찌 세속의 일에 관여하고자 하겠는가!


송나라 사람들이 모자를 팔려고 월나라로 갔는데
월나라 사람들은 머리를 깎고 문신을 하였기에 모자가 필요없었네
요(堯)는 천하의 백성을 다스려 나라 안의 정치를 고르게 한 다음
천하를 물려주려 '막고야'란 산으로 가서 네 신인(神人)을 만나보고는
분수(汾水)강 북쪽 도읍으로 돌아와서
얼이빠진채 천하를 잊어버렸다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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堯讓天下於許由 曰:
日月出矣 而爝火不息
其於光也 不亦難乎
時雨降矣 而猶浸灌
其於澤也 不亦勞乎
夫子立而天下治
而我猶尸之 吾自視缺然
請致天下


許由 曰:
子治天下 天下既已治也
而我猶代子 吾將為名乎
名者 實之賓也
鷦鷯巢於深林]不過一枝
偃鼠飲河 不過滿腹
歸休乎君 予無所用天下為
庖人雖不治庖
尸祝不越樽俎
而代之矣

요(堯)임금이 천하를 허유(許由)에게 넘겨준다며 말했다.
“해와 달이 떠 있는데 횃불을 끄지 않는다면
그 밝힘이 어찌 괜한 일이 아니겠소
때에 맞게 비가 내렸는데 여전히 물을 댄다면
그 적시는 것이 어찌 헛수고가 아니겠소
그대가 있어 천하가 저절로 다스려지고 있는데
내가 자리만 맡고 있으니 나는 참으로 부끄럽소
청하건대, 천하를 맡아주시오.”


허유가 대답했다.
“그대가 천하를 다스렸기에 천하가 잘 다스려지고 있는 것이오.
그런데 나보고 당신을 대신해 나의 이름을 알리라는 것이오?
이름이라는 것은 실질의 손님에 불과하지 않소?
뱁새가 깊은 숲에 둥지를 틀어도 나뭇가지 하나면 충분하오
두더지가 강물을 마셔도 그 배만 채울양이면 충분하오
그러니 그대는 돌아가 주시오. 나에게 천하는 쓸모없는 것이라오.
제사음식을 잘 만들지 못한다고
귀신대신 않은 어린아이(시동)가 제사상을 벗어나
대신 음식을 만들러 갈 수는 없지 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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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위의 눈처럼 머리 세어도
구름 사이 달처럼 맑자 하였죠.

들으니 그대! 두 마음이시기에
마지막 정(情)을 정리하려
이 술자리로 모십니다.

날 밝으면
개울가로 나가
물길을 따라
동과 서로 걸어가야겠네요.

처량하고 또 처량하겠지만
시집왔던 것이니 울지는 않겠어요.

한마음의 사람을 만나
백발이 되도록 헤어지지 않을 줄 알았는데!

어째서 낚싯대는 저리 하늘하늘하고,
어째서 물고기 꼬리는 저리 간들거릴까요?

사나이는 의기가 중한데,
어찌 재물에 휘둘리려 하나요?

白頭吟  -卓文君-

皚如山上雪  皎若雲間月
聞君有兩意  故來相決絕
今日斗酒會  明旦溝水頭
躞蹀御溝上  溝水東西流
淒淒復淒淒  嫁娶不須啼
願得一心人  白頭不相離
竹竿何嫋嫋  魚尾何簁簁
男兒重意氣  何用錢刀為


재벌 탁왕손의 무남독녀로 열일곱에 청상과부가 되었던 탁문군!

 
어느 날 사마상여라는 가난한 문인에 반해 (아버지의 반대를 피해) 도망을 쳤고, 이 절절한 사랑의 도피에 반한 중국 역사는 사분(私奔)이라는 단어가 유래토록 허락하였다.


소소한 물품을 팔아 조그만 주점을 운영하며, 곤궁해도 님과 함께라 행복했던 탁문군!


그 님이 장인의 재물을 물려받고
한무제의 신임으로 명성을 얻게 되니, 무릉의 한 젊은 첩을 얻으려 한다. 첩과 더불어 사랑을 나눌 것인가?


탁문군은 이별주로 정을 끝내자는 씩씩한 모습으로 울음을 숨기고 있다.

사내놈 마음이 낚싯대처럼 휘청거리고, 물고기 꼬랑지처럼 간들거린다고 비꼬면서도
......
재물에 팔려가는 것이라고 해야만 한다.


나만을 사랑함에도

재물에 눈이 멀어진 것이라 해야만 
님을 떠나 보낼 수 있겠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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做天難做四月天 (주천난주사월천)

蠶要溫和麥要寒 (잠요온화맥요한)

出門望晴農望雨 (출문망청농망우)

採桑娘子望陰天 (채상낭자망음천)

하늘 노릇 해 먹기도 어려운 사월이어라

누에는 온기를, 보리는 냉기를 바라고

길손은 맑기를, 농부는 비 오기를 바라며

뽕잎 따는 아가씨는 흐리길 바라도다

 

출처 : 금강경강의 <남회근 저/신원봉 옮김> 17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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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익명 2013.01.11 11: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Favicon of https://obbaya.com BlogIcon 오빠야닷컴 2013.01.11 13: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십니까?
      아! 반가운 소식입니다.
      요즘 읽을만한 책이 없었는데...
      <<노자타설>>이라는 책이 나왔군요.
      <<역경잡설>>도 정말 기대됩니다.
      좋은 정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키 같은 출판사는 정말 성공해야 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큰 지혜로 마음을 피안으로 보내버리자는 경전

  마하(摩訶)는 초월적으로 크다는 뜻이며, 반야(般若)는 지혜라는 의미입니다. 바라밀다는 수행입니다. 반야심경은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라는 주문을 숙지하고 외자는 경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주문은 나를 주체로 삼으면 저 언덕(세계)으로 가자는 것이며, 나를 객체로 하면 저 언덕(세계)로 보내 버리자는 것입니다. 완전히 보내버리자는 것입니다. 무엇을 보내라는 것일까요? 망령된 마음입니다. '없앤다', '비운다', '내려놓는다', '벗는다' 같은 많은 표현이 있지만, 그 의미가 다르지 않습니다.
  갇힌 마음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이 바라밀다 수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적극적 표현으로는 잃어버린 본성을 찾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密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관세음보살께서는 깊이 반야바라밀다를 행하시고
5온이 모두 공(空)한 것을 꿰뚫게 되시어 일체의 고액에서 벗어나시었다.

  5온(五蘊)은 거듭 반복되므로 외워두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5온(五蘊)은 ①색(色)수(受) ③상(想) ④행(行) ⑤식(識)을 말합니다. 

색(色)은 나타나는 것입니다.
수(受)는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상(想)은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행(行)은 움직이는 것입니다.
식(識)은 고정관념을 갖는 것입니다.

 

레몬이 있습니다. 그것은 색(色)입니다.
노란 빛깔과 상큼한 향기를 받아들입니다. 그것은 수(受)입니다.
먹고 싶다 맛있겠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상(相)입니다.
그리고 먹거나 숨겨 놓습니다. 그 반응이 행(行)입니다.
레몬 맛이 남습니다. 레몬을 보면 침부터 고입니다. 이것이 식(識)입니다.

  관자재보살께서 하신 방법을 배워보겠습니다. ① 깊이 반야바라밀다를 행합니다. ② 그러면 이 5온이 모두 공(空)함을 꿰뚫게 됩니다. ③ 그러면 일체의 고액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사리자야!
색은 공과 다름이 없고 공은 색과 다름이 없으니, 색은 곧 공이요 공은 곧 색이다.
(5온의 나머지 4가지인) 수상행식도 역시 마찬가지니라.

   사리자는 처음에는 회의파 철학자의 제자였습니다. 그래서 논리적인 면이 강했다고 알려졌습니다. 그래서 석가께서 사리자의 논리성을 고려하여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공(空)이라는 관념을 논리적으로 판단하지 말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컵에 물을 채운 후 무엇이 있느냐고 하면 대개는 물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그것은 '지금'이라는 기준으로 했을 때 맞는 답입니다. '지금'이라는 기준을 놓아버리면 그 답은 어떻게 됩니까? 논리는 다른 한쪽을 받치는 상대성에 의존합니다.


  노자가 말했습니다.[도덕경 제2장]

사람들이 아름답다 하면서 아름답다는 인식만 생겨난 줄 알지만, 추하다는 인식이 받쳐주고 있는 것이고, 착하다 하면서 착하다는 인식만 생겨난 줄 알지만, 못되다는 인식이 받쳐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있음과 없음은 서로를 낳아주며 쉬움과 어려움은 서로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구분하여 하나의 관념으로 여기는 것은 상대적입니다. 승찬스님이 말했습니다.

도(道)에 이르기가 어렵지 않으니, (나누어 한쪽을) 택하려는 마음만 버리면 됩니다[至道無難 唯嫌揀擇] 미워하고 사랑하는 (나누는) 마음만 없어지면 환하게 밝아질 것입니다 [但莫憎愛 洞然明白]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사리자야! 이 세상의 모든 있다는 것의 실체가 공(空)이니,
생겨나는 것도 없고 소멸하는 것도 없고, 더러운 것도 없고 깨끗한 것도 없고,
늘어나는 것도 없고 줄어드는 것도 없느니라.

  살아간다는 관념은 뒤에서부터 기준으로 삼으면(관점을 바꾸면) 죽어가는 것입니다. 살아가는 것과 죽어가는 것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장자가 말했습니다.

이것은 또한 저것이 되며, 저것은 또한 이것이 된다. 그렇다면 과연 저것과 이것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저것과 이것이란 상대적 개념이 없는 것, 그것을 일러 도(道)의 지도리라 한다. 중추가 되어야만 비로소 둥근 고리의 중심을 차지하게 되어 무궁한 변화에 응할 수 있게 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실체는 모두 공(空)으로 되돌아갑니다. 죽음이 어떠한지 모르면서 죽음을 괴롭게 여기고 두려워할 까닭이 있겠습니까? 단지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100년 전으로 되돌아가는 것과 다를 것이 없는데요.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그런 까닭에 공(空)의 입장에서는 색이 없으니, 수상행식도 없고,
눈귀코혀몸뜻도 없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 향기, 맛, 촉감, 옳음 역시 없느니라.
보이는 것에서부터 생각하는 것까지 아무것도 없느니라.

  색-수-상-행-식은 앞서 관세음보살이 공(空)한 것임을 꿰뚫어 보셨다던 5온입니다. 장미가 붉습니다. 완벽하게 보고 있는 것일까요? 강아지의 눈에도, 나비의 눈에도 그리 보이겠습니까? 절대의 색깔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육체의 한계 내에서 보이는 색깔입니다. 

 

  장자가 말했습니다.

사람은 초식동물의 고기를 먹고, 순록은 풀을 먹고, 지네는 뱀을 먹고, 올빼미는 쥐를 즐기네. 넷 가운데서 누가 '참으로 올바른 맛'을 아는 건가?

 

  사람이 완전하다고 인식하는 것은 '나를 가지기에' 오류를 갖습니다. 눈을 감고 눈의 간섭을 없애면 듣지 못했던 소리가 들릴 수 있습니다. 느끼지 못했던 맛을 느낄 수 있는 법입니다. 우리는 누적된 식(識)으로 인해 맛있게 '번데기'를 먹지만, 외국인들은 혐오스럽게 생겼다는 (識)에 의해 번데기를 보고서는 번데기를 쉽게 먹지 못합니다. 그런데 눈을 감기고 모른 채로 맛보게 하면 잘 먹기도 합니다. 

 

  노자가 말했습니다. [도덕경 제13장]

큰 근심이 있는 까닭은 나에게 몸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자기 자신이 없는데까지 이를 수 있다면 무슨 근심·걱정이 있을 수 있겠는가!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무고집멸도
무지 역무득 이무소득고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無苦集滅道
無智 亦無得 以無所得故

어리석음도 없으며 또한 어리석음이 없는 것도 없으며
결국 늙는 것도 죽는 것도 없고 또한 늙음과 죽음이 없는 것도 없느니라.

괴로움이 없으니 그 원인도 없으며 없앨 수도 없고 따를 수도 없느니라.
깨달음이 없으니 또한 얻을 것도 없으며 얻지 말아야 할 것도 없느니라.

  어리석다는 것, 지혜롭다는 것, 늙어간다는 것, 괴롭다는 것, 깨달았다는 것, 그런 것들은 생각을 하므로 생겨납니다. 사람이라는 한계를 가졌기에 생겨납니다. 호랑이는 배가 부르면 더는 생명을 죽이지 않습니다. 내일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노자가 말했습니다. [도덕경 제20장]

배웠던 것을 끊어버리면 근심 걱정이 사라진다

 

  어떤 이가 얘기합니다. '차라리 몰랐다면 더 좋았을 것을.' 내일 먹을 걱정이 없었으면 하는 지혜로운 생각이 오늘의 걱정을 만듭니다. 늙음을 모르고 죽음이 다가옴도 모른다면, 늙음이 안타깝고 죽음에 대한 걱정이 생길 리 없겠지요. 그렇다면, 공(空)을 말하는 석가, 무위(無爲)를 말하는 노자는 생각을 다 없애서 바보가 되라고 한 것일까요? 결국, 죽음을 찬미하고 있는 것일까요?
   
  석가는 중생구제에 나섰고, 노자는 도덕경을 남겼고, 장자 역시 남화경을 남겼습니다. 비운다는 공(空)과 의욕 하지 않는 무위(無爲)는 허무의 관념을 그린 것이 아닙니다어차피 죽으니 애써 살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공(空)에서 끝남이 아니고 무(無)에서 멈춰지는 것이 아닙니다. 비워지면 채워지기 시작하는 법이고 무(無)에서 다시 유(有)로 흐르는 법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의욕적이고 밝게 삶을 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천변만화(千變萬化)에 결코 마음이 요동치지 않고 길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菩提薩陀 依般若波羅密多故
心無罣碍 無罣碍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그런 까닭에 보살께서는 반야바라밀다에 의존하시어
마음에 걸림이 없게 되시었고 마음에 걸림이 없게 된 까닭에 두려움이 없게 되시었고
잃어버린 잘못된 생각을 바꾸어 보게 됨으로써 열반에 이르게 되시었다.

  관세음보살께서는 반야바라밀다를 통해 마음을 붙잡는 것이 없게 되셨으니, 마음을 잡아두고 있는 것이 없게 되셨다고 합니다. '생각이 한번 바뀌는 것'으로서 열반에 이르게 되셨다고 합니다.

 

 맹자가 말했습니다. [맹자 고자 상 11.11]

배우는 도(道)가 다른 데 있겠는가? 자기의 잃어버린 마음을 되찾는 것일 뿐이다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고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三世諸佛 依般若波羅密多故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께서도 반야바라밀다에 의존함으로써
아뇩다라 삼막 삼보리(완전한 해탈)에 이르시는 것이니라.

  관세음보살만 그런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깨달은 분들께서도 반야바라밀다를 통해 궁극의 해탈에 이르게 되셨고, 이르게 된다고 하십니다.
  이것을 믿습니까? 진리의 문은 완전한 믿음과 동행해야 열립니다. 사람은 자기가 언제 태어났는지 자신의 지혜로만 알 수 있습니까? 어머니를 믿지 못하면 자기 스스로는 알아낼 수 없습니다. '주 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구원을 위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구원은 결과로 따르는 것이겠지요. 요체는 참되게 믿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은 미움과 친하지 않습니다. 참된 믿음이 살기(殺氣)를 키우지 않습니다. 어떤 종교를 믿으시건, 완전하게 나를 맡기고 믿으십시오. 그리고 사랑하고 또 사랑하십시오...

         

고지 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故知 般若波羅密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能除一切苦 眞實不虛
그러니 반야바라밀다를 알아야 한다.
이는 큰 신(神)이 되는 주문이며, 훤히 밝아지는 주문이며, 더 클 수 없는 주문이며,
이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주문이니,
능히 일체의 고통을 없애주며, 참으로 진실하여 거짓됨이 없느니라.

  이 반야바라밀다가 법(法)은 아니어야 합니다. 좇아야 할 것이 아닙니다. 하고자 함도 욕(欲)이요, 하지 않고자 함도 욕(欲)입니다. 내려놓음, 비움, 피안으로 감도 자연(自然)이 아니라면 욕(欲)입니다. 

 

 승찬스님이 말했습니다[신심명]

있음을 버리려 하면 있음에 빠지고 공(空)함을 따르려 하면 공(空)함을 등지게 됩니다. 

 


고설 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故說 般若波羅密多呪卽說呪曰
그러기에 반야바라밀다의 주문을 말씀하셨던 것이었으니, 이제 그 말씀하신 주문을 전해주려 한다.

  지금까지 반야바라밀다의 의미를 석가께서 설명했습니다. 사족을 달자면, 글이 아니라 그 뜻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손가락 끝(글)을 보지 말고 가리키는 달(뜻)을 보라' 했습니다. 노자 역시 도덕경에서 '말이 없는 가르침'을 얘기합니다. 말이라는 표현수단을 보지 말고, 그 뜻(본질)을 보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은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이 아주 작습니다'라며 아쉬워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네가 안다고 생각하는 내가 나의 전부가 아니야'라고 분노하기도 했습니다. 드러난 것과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아주 작습니다. 글 역시 하나의 색(色)입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보내어라. 보내어라. 피안으로 보내버려라. 피안으로 완전히 보내버려라.
그리하면 깨닫게 될 것이다.

보내어라. 보내어라. 피안으로 보내버려라. 피안으로 완전히 보내버려라.
그리하면 깨닫게 될 것이다.

보내어라. 보내어라. 피안으로 보내버려라. 피안으로 완전히 보내버려라.
그리하면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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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冥有魚
其名為鯤
鯤之大
不知其幾千里也
化而為鳥
其名為鵬
鵬之背 不知其幾千里也
怒而飛
其翼若垂天之雲
是鳥也
海運
則將徙於南冥

南冥者 天池也

齊諧者 志怪者也
諧之言曰:
‘鵬之徙於南冥也
水擊三千里
摶扶搖 而上者九萬里
去以六月息者也’
북쪽 바다에 물고기가 있는데
그것을 곤(鯤)이라 부른다.
곤(鯤)의 크기가
몇천 리인지 알 수는 없다.
그 곤(鯤)이 변해서 새가 되는데
그 이름을 붕(鵬)이라 한다.
이 붕의 등 넓이도 몇천 리나 되는지 알 수가 없다
이 붕(鵬)이라는 새가 솟구쳐 날아오르면
그 날개가 마치 하늘을 뒤덮은 구름과 같다.
이 붕(鵬)이라는 새는
바다의 출렁임을 따라
남쪽 바다로 나아갈려고 하는데
그 남쪽 바다가 천지(天池)이다

「제해(齊諧)」라는 책은 그 뜻이 괴이하다.
적혀있는 말은 이러하다 :
'붕새가 남쪽 바다로 나아갈 때에는
물결치는 것이 3천리에 이르고
회오리를 타고 9만리를 날아올라
반년이 지나서야 쉰다.'


  존재라는 것은 저 홀로 위대할 수는 없다. 계산으로 측정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곤(鯤)이라고 해도 북명이라는 바다가 길러주어야 하며, 어마어마한 붕(鵬)이라고 해도 남명이라는 바다가 보살펴 주어야 한다. 그런데 어찌하여 곤은 붕이 된 것이며, 붕이 되면 왜 남명으로 날아가려 하는가? 

  곤이 붕으로 변한 것은 스스로의 뜻이 아니다. 남명으로 날아가야 하기에 하늘이 날개를 준 것이다. 하늘은 제 사명을 다했다. 그리고 선택권은 붕새에게 넘겨졌다. 과연 솟구쳐 날아오를 것인가? 그 길은 어마어마한 물결과 회오리를 동반하여 다시 잠잠해지지까지 6개월이 걸리는 힘든 여정이다.

  사람이 원초적 본성을 찾은 것이 붕새로 변해 날개를 가진 것과 다르지 않다. 솟구쳐 오르는 것은 수행을 의미하며 남명은 초월적인 세상을 상징한다. 곧 남명은 신선계요, 열반이다. 티베트에서는 완전히 자란 모습으로 태어나는 '가루다'라고 불리는 신비로운 새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가루다의 새끼는 알 속에 있을 때 이미 완전한 날개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알을 깨고 나오기 전에는 결코 날 수가 없다.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을 불성의 발현으로 이야기한다. 세세한 차이는 있지만, 붕새의 비유와 닮아있다.
 

野馬也 塵埃也
生物之以息相吹也
天之蒼蒼
其正色邪?
其遠而無所至極邪?
其視下也
亦若是則已矣
且夫水之積也不厚
則其負大舟也無力
覆杯水於坳堂之上
則芥為之舟;
置杯焉則膠
水淺而舟大也
風之積也不厚
則其負大翼也無力
故九萬里
則風斯在下矣
而後乃今掊風
背負青 天而莫之夭閼者
而後乃今將圖南
아지랑이와 먼지는
생물이 불어내는 입김이다.
하늘이 푸르른 것은
저 하늘 본래의 색이던가?
멀어서 끝이 없기 때문인가?
하늘에서 아래로 내려보아도
또한 마찬가지이리라
대개 물이 깊지 않으면
큰 배를 띄울 힘이 없다.
한 잔 물을 뜰의 패인 곳에 부으면
지푸라기는 띄워지겠지만
술잔을 띄우면 가라앉고 만다.
물은 얕은데 배가 큰 까닭이다.
마찬가지로 바람이 쌓인 것이 깊지 않아도
저 붕새의 큰 날개도 힘을 쓰지 못할 것이다.
그러기에 구만리는 되어야
바람이 그 밑에 있게 되고
그 후에야 바람을 타고
푸른 하늘을 등에 진채 걸림없이
남쪽으로 날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붕새가 남명으로 날아가는 여정은 깨달음의 길. 소요유(逍遙遊)! 속된 세상을 초월하여 아무런 걸림없이 참된 자유의 세계에서 노니는 지인(至人)의 경지에 이르는 길이다. 물이 깊어야 큰 배를 띄울 수 있고, 높이 솟구쳐야 바람을 탈 수 있는 법. 큰 고난과 큰 시련이 동반되는 험난한 길일게다. 불행의 깊이가 깊지 않은 사람은 행복의 깊이도 얕은 법! 구만리를 솟구쳐 깊게 쌓인 바람을 타고 대도(大道)의 세상으로 날아가야 한다.

 

蜩與學鳩笑之曰:
‘我決起而飛 槍榆枋而止
時則不至而控 於地而已矣
奚以這九萬里而南為?’

適莽蒼者
三餐而反 腹猶果然
適百里者 宿舂糧
適千里者 三月聚糧
之二蟲又何知!
매미와 비둘기가 붕을 비웃으며 말했다.
“내가 힘써 날아올라야 느릅나무와 박달나무에 이른다
때로는 그곳조차도 이르지 못하고 땅바닥에 떨어지고 마는데,
어찌 9만리를 날아올라 남쪽으로 갈 수 있다는가?”

가까운 들판에 나가는 자는
세끼를 먹지 않아도 배를 유지할 수 있지만
백 리를 가는 자는 밤새 양식을 준비해야 하고
천 리를 가는 자는 3개월분 양식을 준비해야 하는 것을
이 두 벌레 같은 것이 어찌 알겠는가?


  매미와 비둘기도 날개가 있다. 그러나 날개가 있다고 다 남명으로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낮은 식견에 붕새의 날개를 제 가진 날개인 양 생각한다. 노자도, 공자도 조롱을 받았다. 예수는 죽임을 당했다. 본래 바둑고수는 하수를 조롱하고 비웃지 않는다. 하수를 조롱하고 훈수를 두는 것은 작은 날개를 달고 있는 급수들이다. 장자가 일갈한다. 벌레같은 것들이 무엇을 안다고 까부느냐!

 

小知不及大知
小年不及大年
奚以知其然也?
朝菌不知晦朔
蟪蛄不知春秋
此小年也

楚之南有冥靈者
以五百歲為春 五百歲為秋
上古有大椿者
以八千歲為春 八千歲為秋
此大年也


而彭祖
乃今以久特聞
眾人匹之
不亦悲乎!

작은 지혜는 큰 지혜에 미치지 못하고
짧게 산 것은 오래 산 것에 미치지 못한다
어떤 것이 소년(小年)과 대년(大年)인지 아는가?
아침만 사는 버섯이 그믐과 초하루를 알지 못하고
매미는 봄과 가을을 알지 못하니
이런 것들이 소년(小年)한 것이다.


초(楚)나라 남쪽에 명령(冥靈)이라 불리는 거북이 있었는데
5백년을 봄으로 삼고 5백년을 가을로 삼고 살았다
오랜 옛날에 대춘(大椿)이라는 나무가 있었는데
8천년을 봄으로 삼고 8천년을 가을로 삼고 살았다.
이런 것들이 대년(大年)한 것이다. 


그럼에도 8백년을 살았다는 팽조(彭祖) 따위를
오늘날까지 오래 살았다며
사람들이 그와 같아지고자 하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장자는 말한다. "까불지 말거라. 적어도 3만년을 넘게 산 대춘정도는 되어야 오래 살았다고 할만하지, 고작 8백년을 산 팽조따위를 오래살았다고 하느냐!" 참고로 장자가 오래 사는 것을 높인다고 오해하여 '불로장생'사상이 도교의 바탕이 된다. 그러나 장자도 백년을 못 넘겼다. 많아야 80이라고 추정한다. 

 

湯之問棘也是已.
湯問棘曰 :
’上下四方有極乎?’
棘曰 : 
‘無極之外 復無極也
窮髮之北有冥海者
天池也
有魚焉 其廣數千里
未有知其脩者
其名為鯤
有鳥焉 其名為鵬
背若泰山
翼若垂天之雲
摶扶搖羊角而上者九萬里
絕雲氣
負青天 然後圖南
且適南冥也’

 

斥鴳笑之 曰 :
’彼且奚適也?
我騰躍而上
不過數仞而下
翱翔蓬蒿之
此亦飛之至也間
而彼且奚適也’


此小大之辯也
故夫知效一官
行比一鄉
德合一君
而徵一國者
其自視也亦若此矣 

탕왕(湯王)이 신하 극(棘)에게 물은 것도 이와 같은 것이다.
탕왕(湯王)이 극(棘)에게 물어 말하기를
”상하사방이 끝이 있는가?”
극(棘)이 말하기를
”끝없음의 바깥에 다시 끝없음은 없습니다.
궁발(窮髮)의 북쪽에 명해(溟海)라는 바다가 있는데
천지(天池)라고 합니다.
거기에 물고기가 있는데 그 크기가 수 천리나 되어
그 길이를 아는 자가 없는데
곤(鯤)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거기에 새도 있는데 붕(鵬)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등은 태산만 하고

날개는 하늘에 뒤덮은 구름과 같은데
회오리바람을 타고 구만리를 솟구쳐
구름을 벗어나
푸른 하늘을 등진 후 남쪽을 향하여
남쪽 바다로 간다고 합니다.”

 

메추리가 이것을 비웃으며 말했다.
”저것들은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내가 힘껏 뛰어올라 보았더니
몇 길 못 오르고 내려와
쑥대밭 속에서 펄떡거려야 했는데
이까지가 최고로 오를 수 있는 것이던데
저것들은 어디까지 오른다고 저 짓이냐.”


이것이 작은 것과 큰 것의 차이다.
그러기에 무릇 지혜가 한 관직 정도 맡을만하고
행실이 한 고을 사람들이 알아줄 정도이고
덕은 한 임금의 마음만 만족케 할 정도이고
능력은 한 나라에 쓸모 있을 정도임에도
스스로 뽐내는 것은 이 메추리와 같은 것이다.


  같은 얘기의 반복이다.

 

而宋榮子猶然笑之
且舉世而譽之而不加勸
舉世而非之而不加沮
定乎內外之分
辯乎榮辱之竟
斯已矣
彼其於世未數數然也
雖然 猶有未樹也

夫列子御風而行
泠然善也 旬有五日而反
彼於致福者
未數數然也
此雖免乎行
猶有所待者也

若夫乘天地之正
而御六氣之辯
以遊無窮者
彼且惡乎待哉!

송영자(宋榮子)는 이런 자들을 보고 빙그레 웃었다
그는 세상이 그를 칭찬한다고 해서 열심히 하려 하지 않았고
세상이 그를 비난한다고 해서 그만두려 하지 않았으니
안팎의 구분을 정할 수 있었고
영예와 굴욕의 경계를 구분하였으니
그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사람은 세상에 아직 흔치 않지만
비록 그렇다 해도 자라지 못한 나무와 같다.

열자(列子)는 바람을 타고 돌아다니며
시원함이 좋아서 보름이 지나서야 돌아오곤 했다.
그처럼 복을 받은 사람이
여전히 흔하지는 않다
그러나 비록 걷는 것을 면했다 하여도
여전히 의지할 바람이 있어야 한다.


만약 저 천지의 바른 기운을 타고
천지의 대기운인 육기(六氣)의 변화에 맡겨
무궁에 노니는 자라면
그는 기댈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천지의 대기운인 육기의 변화에 맡겨 무궁에 노니는 자라면 그는 기댈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故曰:
至人無己
神人無功
聖人無名
그러기에 말하였다
지인(至人)은 자기가 없고,
신인(神人)은 이룸이 없고,
성인(聖人)은 이름이 없다. 


지인은 자기가 없고, 신인은 이룸이 없고, 성인은 이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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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4. 16:37

도덕경(道德經) 제1장 간상(赶上)/노자(老子)2013. 1. 4. 16:37

道可道 非常道 (도가도 비상도)
名可名 非常名 (명가명 비상명)

無名 天地之始 (무명 천지지시)
有名 萬物之母 (유명 만물지모)

故 常無 欲以觀其妙 (고 상무 욕이관기묘)
常有 欲以觀其徼 (상유 욕이관기요)

此兩者 同出而異名 (차량자 동출이이명)
同謂之玄 (동위지현)
玄之又玄 衆妙之門 (현지우현 중묘지문)

▣ 常(상) ≒ 영원한. 불변의.


▣ 常無欲 以觀其妙 常有欲 以觀其徼로 끊어 해석하면, '무욕으로서 묘(妙)를 보고 유욕으로 요(徼)를 본다'

▣ 觀(관) ≒ 꿰뚫어 봄.
▣ 妙(묘) ≒ 말하기 어려운 오묘함.
▣ 徼(요) ≒ 현상으로 나타남

▣ 玄(현) ≒ 아득한 심오함 

도(道)를 도(道)라 할 수는 있겠지만 진정한 도(道)일 수 없고,
무엇을 이름으로 부를 수는 있겠지만 완전한 이름일 수 없습니다.

이름없음에서 천지가 시작 되고,
이름있음에서 만물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참된 무(無)로서 그 신묘함을 보고자 하며,
참된 유(有)로서 그 나타남을 보고자 합니다.

이 무(無)와 유(有)도 함께 생겨나 이름이 다른 것입니다.
함께라고 하니 아득합니다.
아득하고 아득함이 모든 신묘함의 문입니다.

 

  영원불변의 도(道)가 도(道)라는 이름을 갖는 순간 그것은 진정한 도(道)가 아니게 됩니다. 진정한 도(道)는 명칭과 형상이 끊어져 말로는 도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첫 시작은 이렇게 받아들이면 될 것 같습니다. "내(노자)가 도(道)에 대해 말하려고 하는데 그것은 완전한 도(道)일 수 없음을 참작하고 들으세요."

  귀로 듣지 말고 머리로 계산하지 말고 통(通)하라는 당부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이 말은 금강경의 상(相)에 관한 개념으로 대체하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도(道)라는 상(相)에 사로잡히면 진리를 만날 수 없다는 것이죠.

무릇 모든 상(相)은 다 허망하니 만약 모든 상(相)이 상(相)이 아님을 본다면 여래(如來)를 보리라

  노자는 무(無)로부터 세상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무(無)라고 이름 한 것일 뿐, 불교의 공(空)이나 다른 종교의 신(神)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모두 가리키고 있는 곳은 마찬가지니까요. 가리키는 손가락만 다를 뿐.

 

  무(無)로부터 나온 천지라는 이름이 하나를 낳고 둘을 낳고 만물을 낳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입니다. 도덕경 제42장에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

  슬픈 현실이지만 어머니는 언제나 함께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언젠가 헤어져야 하는 이름입니다. 나타나는 것은 다 그러합니다. 만나고 헤어집니다. 생겨나서 소멸합니다. 드러나는 현상의 측면은 다 그렇습니다. 이러한 존재의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것을 노자는 무(無)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노자는 말합니다. 무(無)와 유(有)를 함께 일통하여 하나임을 보자고 합니다.
  무(無)에서 유(有)가 생겨나지만, 그 무(無)는 유(有)가 있어야만 무(無)로 드러나는 것이므로, 서로가 서로를 이루고 있음을 보자는 말입니다. 무(無)와 유(有)가 서로서로 이루고 있음을 보는 것이 모든 신묘함을 풀어줄 열쇠라고 합니다.

  앞에 언급한 금강경 사구계와 다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상(相)을 유(有)로 바꾸어 볼까요? '유(有)가 유(有)가 아님을 본다면 여래(如來)를 보리라.' 여래(如來)는 진리, 도(道), 불(佛) 무엇으로 바꾸어도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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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말씀하셨네 [子曰:]
-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리석게 되고 [學而不思則罔]
-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험하게 된다 [思而不學則殆]


  계속 반복하며 이어지는 한 쪽으로 모나게 치우지지 말라는 중용(中庸)의 가르침을 전하는 장이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무조건 받아들이기만 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렇게 되면 판단력이 없어질 것이다. 유가의 후학들은 공자를 존경해도 신(神)으로 여겨 무조건 숭배하지는 않았다. ‘공자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바른 도리를 따른다’는 것이었다. 논어는 이렇게 가르쳤기에 왕양명은 ‘마음에 비추어 옳지 않다면 그 말이 공자로부터 나왔어도 옳다 할 수 없다’고 하기도 했다.

  그런데 성리학의 시대에는 유학 경전을 해석한 주희가 신(神)이 되기도 했다. 조선중기 이후는 주희의 해석에 따르지 않았다고 윤휴가 사문난적으로 죽는 것이 당연했던 시대였다. 본래 유학은 무조건 따르라는 것이 아니었는데...

  반면, 배우지 않고 생각으로만 다 통하려고 하는 것도 치우침이다. 옛말에 ‘한양에 한번도 가본 적 없는 사람이 한양에 가본 사람을 이긴다’고 하는 말과도 통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지식이 쌓이고 경험이 쌓이면서 강해지는 욕구라고 한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고맙습니다’와 ‘미안합니다’와 마찬가지로 ‘모르겠습니다’를 말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했다.

  정자의 잊지 말아야할 배움의 다섯가지가 떠오르는 장이다.

①널리 배우고 ②깊이 묻고 ③신중하게 생각하고 ④분명하게 판단하고 ⑤독실하게 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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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말씀하셨네 [子曰:]
군자는 널리 어울려 편애하지 않고 [君子周而不比]
소인은 편애하여 널리 어울리지 못한다 [小人比而不周] 

   본래 유학의 시각에서는 군자와 소인은 우월의 관계는 아니다. 군자와 소인은 서로 잘난 점도 있고 못난 점도 있다. 유가의 중용(中庸)철학은 좋고 나쁘다는 우열의 관계로 떼어놓는 사상이 아니라 ‘다르다는 분별후 조화’를 도모한다. 서로가 조금 낫고 조금 못난 점이 있으며, 때에 따라 가진 특성이 장점이 되기도 하고 단점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두루 어울릴 수 있는 것’도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다. 중용(中庸)의 사상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이다. 두루 어울릴려고 고집하는 것도 ‘좋은사람 컴플렉스’에 걸리는 일이다. 그래서 공자는 ‘가는 길이 다르면 함께 도모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고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서도 안된다’고 했다.

  반면 편애하는 것도 나쁘다고만 보지 않는다. 어머니가 자식을 우선 챙기는 것은 성(性)의 발현으로 당연하다고 본다. 자기-가족-사회로 확장되는 유가철학은 편애도 무조건 나쁜것으로 보지 않기에, 묵가의 후학들로부터 차별적 사랑이라며 집중공격을 받기도 하였다.


  문제는 편애가 아니라 편애가 지나쳐 갈라서고자 하는 것에 있다는 것이 유가의 사고이다. 그래서 나와 공감하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즐겁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라, 나와 생각이 다르고 다른 것을 좋아한다고 해서 미워하고 배척하지 말라는 의미로 나아간다. 옛 시대에는 사서를 읽어보지 않은 사람과는 상대하지 말라고도 했다. 그러나 말과 문자도 하나의 표현방법에 불과할 것이다. 그림과 사진과 영화와 음악은 어찌 철학을 표현할 수 없다고 하겠는가? 소재를 열심히 관찰하여 헤아리려고 노력하는 미술가의 마음, 곡식의 특성을 열심히 헤아리는 농부의 마음도 역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헤아린다’는 인(仁)의 마음으로 통해 갈 것이다. 

  물론, 공자의 제자들이 군자(정치인, 공무원, 지성인)가 되기를 원하던 까닭에 본래 이 장의 무게감은 군자에게 두고 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널리 어울리려 하면서 그 지나침도 경계하지 않으면 소인이 된다고 하는 뜻으로 해석하면 충분하다. 소인을 멸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자들을 자극하여 분발하도록 만들기 위해 선택한, 제자들을 헤아리는 학습법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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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공이 군자를 묻자 공자 말씀하셨다 [子貢問君子 子曰:]
- 말에 앞서 행하려 하고, 행하려는 바를 좇아서 말해야 한다 [先行其言而後從之] 

 

   자공의 (실천보다) 말을 잘 하는 단점을 일깨워 준 것이라고 한다. 논어는 제자의 특성을 헤아린 맞춤식 답변이 대부분이다. 자공은 말 잘하고, 영민하며, 명랑함이 잘 드러나는 제자였다. 

  유학은 ‘실천행위’에 의의를 두는 학문이다. 그래서 ‘삶이 무엇이냐, 나는 누구인가’의 존재의 고민이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한다. 누구나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보편원리를 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이렇게 살아야지’하는 자기의 길을 구하기 위해 나아간다.

 
  그래서 이 장의 가르침도 말만 번지르한 사람을 미워하고 무시하는데 응용하면 안되며, 스스로에게 요구하는데 사용해야 할 것 같다. 유학의 제1조를 자기를 닦는다는 수신(修身)이라고도 했기에.

  유학이 중시하는 행위는 완성되고 갖추어진 행위는 아니다. 본래 완성이란 있을 수 없다고 보았다. 운동을 쉬면 근육이 굳는다. 운동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는 운동의 완성이 있을까? 배움을 쉬면 안된다고 하는 이유도 완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유학에서 의미하는 행위는 ‘완성을 향해 의욕하고 노력하며 나아가는 행위’이다. 그래서 이 장은 ‘하지 못하는 것을 말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라, ‘스스로는 하려고 애쓰지도 않는 것을 말하여 가르치려 하지 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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