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편 위정(爲政) 제16장 간상(赶上)/논어(論語)2013. 1. 7. 21:15
- 이단이라며 공격하려 하면 해롭다[攻乎異端,斯害也已]
이 장은 해설이 분분한데,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① 이단이라며 공격하면 해롭다 ② 이단은 공격해서 그 위험을 없애야 한다 ③ 이단을 공부하면 해로울 뿐이다.
이단(異端)이란 극과 극이 되어 결코 통(通)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종교에서 더 자주 쓰는 용어로 보이는데, 근본 교리에 어긋날 뿐 아니라 근본을 잠식할 위험이 있는 것을 이단이라고 얘기한다. 우리가 '종북'이라 칭하는 쪽을 이단이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가치를 부정하고 북한의 모든 가치를 절대적으로 옳다고 하면 어떻게 대해야 하나? 그 답을 공자께서 해 주셨다.
그런데 공자의 답을 모두 다르게 해석해서 더 혼란스러워졌다. 종북주의자의 생각을 경청하면 안된다는 것이 3번이다. 종북주의자를 교도소에 구금하여 억압해야 한다는 것이 2번이다. 종북으로 구별하지 말라는 것이 1번이다. ㅠ.ㅠ
이단(異端)은 사악(邪惡)한 것이 아니라, 단지 끝에서 끝에 위치한 상대적 관념이다. 우리의 기준에서는 종북이 이단이지만, 북한의 기준에서 보면 종북이 정통이고 우리가 이단이다. 기독교의 기준에서 보면 타종교가 이단이지만, 타종교에서 보면 기독교가 이단이다. 이단(異端)이라는 개념은 상대적 관념이다. 그러니 진리의 입장에서 따져나가면 부정해야 할 이단(異端)이란 본래 없는 것이다.
유학의 제1조가 무엇인가? 수신(修身)이다. 남을 탓하고 남을 나무라고 남의 험을 보는 것을 가르치지 않았다. 오직 나를 바르게 세울 뿐이다. 수신(修身)! 그것을 이루면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는 저절로 따르게 된다. 즉, 이단(異端)이 보이는 것은 수신(修身)에 이르지 못했기에 생겨나는 마음 작용이다. 남을 보고 있기에, 남에게 요구하려 하기에 생겨난다. 그래서 공자는 이단(異端)으로 규정하여 공격하려는 자기 내면의 마음자리를 돌아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 장의 가르침을 이렇게 바꿀 수 있을까?
이단을 찾아내어 공격하려 하지 말고 네 일이나 잘하거라.
한편, 이단(異端)을 '진리에 비추어' 악(惡)이라 한다면 유학의 입장은 어떨까? 의(義)를 따라야 하는데, 의(義)로움의 칼은 죽이기 위한 칼이 아니라 살리기 위한(방어를 위한) 칼이다. 추후에 더 논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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