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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의 그늘인 망량(罔兩)이 그림자에게 물어 말했다[罔兩問景曰:]
”좀전에 자네가 걷더니 이제는 멈춰있고[曩子行 今子止]
좀전에 자네가 앉아있더니 이제는 서 있네 그려[曩子坐 今子起]
어찌하면 그리 지조가 없을 수 있는가?[何其無特操與]?”



그림자가 말하기를[景曰:]
내가 의지하는게 있어 그러하지 않겠나[吾有待而然者邪]?
그렇지만, 내가 의지하는 것 역시도 의지하는 것이 있어 그러하지 않겠나[吾所待又有待而然者邪]?
내가 의지하는 것은 뱀의 비늘이나 매미의 날개같은 것일까?[吾待蛇蚹蜩翼邪]?
어찌 그 까닭을 알고[惡識所以然] 어찌 그렇지 않은 까닭을 알겠는가?[惡識所以不然]?


 


어느날 장주는 꿈속에서 나비가 되었다[昔者莊周夢為胡蝶]
훌훌 날고 있는 것이 분명 나비였다[栩栩然胡蝶也]
마냥 즐거이 마음가는대로 날아다니며[自喻適志與]
장주임을 알지 못했다[不知周也]
문득 잠에서 깨어나보니 틀림없이 장주였다[俄然覺 則蘧蘧然周也]
장주가 꿈에의해 나비가 되었던 것인가[不知周之夢為胡蝶與]?
나비의 꿈속에서 그가 장주로 되어 있는 것인가[胡蝶之夢為周與]?
장주와 나비사이에는 반드시 차이가 있을 것이니[周與胡蝶則必有分矣]
이를 말하여 있는 것이 변화하는 물화(物化)라고 한다[此之謂物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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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에 따라) 변하게 되는 (말)소리는 상대적이라[化聲之相待]
상대시킬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네[若其不相待]
자연의 조화인 천예(天倪)로 조화를 이루고[和之以天倪]
무궁한 변화인 만연(曼衍)에 맡겨두게 되면[因之以曼衍]
영원히 살게되는 것이라네[所以窮年也]



자연의 조화로움인 천예(天倪)로 조화를 이룸은 무슨 의미일까?[何謂和之以天倪]?
말해보겠네[曰:]
옳다, 옳지 않다, 그렇다, 그렇지 않다는 (상대적 소리가 나네) [是不是 然不然]
만약 참으로 옳은 것이라면[是若果是也] 
옳은 것이 옳지 않은 것과 다르다고[則是之異乎不是也]
구태여 따질 필요가 없네[亦無辯]
만약 참으로 그렇다는 것이라면[然若果然也] 
그렇다는 것이 그렇지 않다는 것과 다르다고[則然之異乎不然也]
구태여 따지려 할 필요가 없네[亦無辯]



(상대에 따라) 변하게 되는 (말)소리는 상대적이라[化聲之相待]
상대시킬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네[若其不相待]
자연의 조화인 천예(天倪)로 조화를 이루고[和之以天倪]
무궁한 변화인 만연(曼衍)에 맡겨두게 되면[因之以曼衍]
영원히 살게되는 것이라네[所以窮年也]
세월도 잊고 시비(是非)도 잊어[忘年忘義]
무궁한 경지에서 노니는 것이라네[振於無竟]



그러기에 모든 것을 무궁한 경지에다 그냥 놓아두는 것일세[故寓諸無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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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구작자(瞿鵲子)가 스승 장오자(長梧子)에게 물었다[瞿鵲子問乎長梧子曰:]
”제가 공자로부터 들었는데[吾聞諸夫子]
성인은 일을 좇아 일처럼 여기지 않고[聖人不從事於務]
이로움을 취하려 하지 않고[不就利] 해를 피하려고 하지 않고[不違害]
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不喜求] 도에 따르려 하지 않고[不緣道]
말을 하지 않고서 말함이 있고[無謂有謂] 말을 해도 말함이 없고[ 有謂無謂]
멀리 속세 밖에서 노닌다고 하였습니다[而遊乎塵垢之外]
공자는 허무맹랑한 말이라고 하였으나,[夫子以為孟浪之言]
저는 신묘한 도를 행하고 있는 것이라 여겨집니다[而我以為妙道之行也]
선생님께서는 어찌 생각하십니까?[吾子以為奚若]”



장오자가 말했다[長梧子曰:]
그 말은 전설속의 삼황오제(黃帝)가 들어도 혼란할 것인데[是黃帝之所聽熒也]
공구(공자) 따위가 어찌 그것을 알겠는가[而丘也何足以知之]
그리고 자네도 너무 속단을 하고 있는걸세[且女亦大早計]
계란을 보고 새벽 닭이 울었다고 하는 것이나[見卵而求時夜]
탄피를 보고 새를 구워 먹었다는 것과 같네[見彈而求鴞炙]
내 자네를 위해 망령되이 말하는 것이니[予嘗為女妄言之]
자네도 망령이다 하며 들어주길 바라네[女以妄聽之]



그 성인은 해와 달과 짝하고[奚旁日月] 우주를 끼고서[挾宇宙]
만물과 하나되어 혼돈 속에 몸을 맡겨[為其吻合 置其滑涽]
천하고 귀한 것을 나눌 줄 모르네[以隸相尊]
세상 사람들은 헐떡거리지만[眾人役役] 성인은 멍청하듯 하며[聖人愚芚]
변치않고 순수한 하나로 합해가네[參萬歲而一成純]
만물도 다 그러해서[萬物盡然] 그렇게 합해간다네[而以是相蘊].



삶이 즐거움이, 내 어찌 미혹함이 아닌 줄 알겠는가[予惡乎知說生之非惑邪]?
죽음이 싫은 것이, 내 어찌 어려서 떠난 고향으로 돌아갈 줄 모르는 것이 아닌 줄 알겠는가?
[予惡乎知惡死之非弱喪而不知歸者邪]



여희는 애(艾)의 국경을 수비하는 관리의 딸이었네[麗之姬 艾封人之子也].
처음 진(晉)나라로 데려갔을 때에는[晉國之始得之也]
하염없는 눈물로 옷깃을 적시었지만[涕泣沾襟] 
진왕의 처소로 들어 잠자리를 같이 하고[及其至於王所 與王同筐床] 좋은 음식을 맛보고 나서[食芻豢]
그 후에는 지난날 울었던 것을 후회했다고 하네[而後悔其泣也].
그러니 죽은 이가 죽기 전에 살기를 바랐던 것을, 죽어서 후회하지 않을 것인지 내가 어찌 알겠는가?
[予惡乎知夫死者不悔其始之蘄生乎]?



꿈속에서 술 마시며 즐겨웠던 사람이[夢飲酒者] 아침에는 곡을 하며 울고[旦而哭泣]
꿈속에서 곡을 하고 울던 사람이[夢哭泣者] 아침에는 사냥을 나가 즐거워한다네[旦而田獵].
한참 꿈속에 있을 때는 꿈인 줄 알지 못하고[方其夢也 不知其夢也] 
꿈속에서 그 꿈을 차지하려 애쓰다가 깬 후에야 그것이 꿈이었음을 아네[夢之中又占其夢焉 覺而後知其夢也]
또한 완전히 깨어난 뒤에라야 그것이 진정 꿈이었음을 아네[且有大覺而後知此其大夢也]
그러나 어리석은 자들은 스스로 깨어있다 여기면서[而愚者自以為覺] 다 아는 체하며[竊竊然知之]
임금이네! 관리네! 하고 있으니 참으로 딱하네 그려[君乎 牧乎 固哉]!



공구(공자)도 자네도 모두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네[丘也與女 皆夢也]
자네보고 꿈을 꾼다고 하는 나도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네[予謂女夢 亦夢也]
나의 이런 말을 비상식적인 조궤(弔詭)라고 하네만[是其言也 其名為吊詭]
만세 후라도 이 뜻을 풀어주는 한 성인을 만날 수 있다면[萬世之後而一遇大聖] 
아침에 만났다가 저녁에 다시 만난 것처럼 정말 일찍 만난 것이라 할 수 있네[知其解者 是旦暮遇之也]



내가 자네와 논쟁을 한다고 해 보세[既使我與若辯矣]
자네가 나를 이기고 내가 자네에게 졌다고 하면[若勝我 我不若勝]
과연 자네가 옳고 내가 그른 것인가?[若果是也 我果非也邪]? 
내가 자네를 이기고 자네가 나에게 졌다고 하면[我勝若 若不吾勝]
과연 내가 옳고 자네가 그른 것인가?[我果是也?而果非也邪]?
어느정도 옳으면, 진쪽은 어느정도 그른 것인가?[其或是也 其或非也邪]
완전히 옳으면, 진쪽은 완전히 그른 것인가?[其俱是也 其俱非也邪]
나나 자네나 이것도 능히 모르는데[我與若不能相知也]
남이 또 어찌 판단하게 맡길 수 있겠는가[則人固受其黮闇]



우리는 누구에게 결정하게 할 수 있겠나?[吾誰使正之]
자네에게 수긍하는 이가 결정한다면[使同乎若者正之] 
이미 그와 자네가 같은 생각이니 어찌 바르다 하겠는가[既與若同矣 惡能正之]?
나에게 수긍하는 이가 결정한다면[使同乎我者正之]
이미 그는 나와 같은 생각이니 어찌 바르다 하겠는가[既同乎我矣 惡能正之]?
나와 자네와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결정하라고 하면[使異乎我與若者正之]
이미 그는 나와 자네와 생각이 다르니[既異乎我與若矣] 그도 어찌 바르다 하겠는가[惡能正之]? 
나와도 자네와도 생각이 같은 사람에게 결정하라고 하면[使同乎我與若者正之]
이미 그는 나와도 자네와도 같으니[既同乎我與若矣] 어찌 바르다 하겠는가[惡能正之]
그러니 나나 자네나 제삼자나 마찬가지로 알 수가 없네[然則我與若與人俱不能相知也]
그러니 그 누구를 기다릴 것인가[而待彼也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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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설결(齧缺)이 스승 왕예(王倪)에게 물었다[齧缺問乎王倪曰:].
"선생님께서는 만물이 다 하나임을 아십니까?"[子知物之所同是乎]?



말씀하시길[曰:] "내가 그것을 어떻게 알겠는가?"[吾惡乎知之]



"선생님께서는 선생님이 알지 못하는 것이 있음은 아십니까?[子知子之所不知邪]?



말씀하시길[曰:] "내가 그것을 어떻게 알겠는가?"[吾惡乎知之]



"그렇다면 물(物)은 알 수 없다는 뜻입니까?[然則物無知邪]?



말씀하시길[曰:] "내가 그것을 어떻게 알겠는가?"[吾惡乎知之]
비록 그렇지만, 한번 말은 해 봄세[雖然 嘗試言之]
내가 안다 하는 것이 모르는게 아니다는 말이겠나?[庸詎知吾所謂知之非不知邪]?
내가 모른다 하는 것이 아는게 아니다는 말이겠나?[庸詎知吾所謂不知之非知邪]?



오히려 내가 시험삼아 자네에게 불어 봄세[且吾嘗試問乎女]
사람이 습한 곳에서 자면 척추가 무뎌져 죽게 되겠지만[民濕寢則腰疾偏死]
미꾸라지는 어떠한가[鰍然乎哉]?
사람이 나무위에 있게되면 벌벌 떨게 되겠지만[木處則惴慄恂懼]
원숭이는 어떠한가[猿猴然乎哉]?
사람, 미꾸라지, 원숭이 이 셋중에 누가 바른 곳을 아는건가?[三者孰知正處]?



사람은 가축을 먹고[民食芻豢] 사슴은 풀을 먹고[麋鹿食薦]
지네는 뱀의 사체를 맛있게 먹고[蝍且甘帶] 부엉이와 까마귀는 쥐를 즐기니[鴟鴉耆鼠]
이 넷은 누가 맛을 제대로 아는건가?[四者孰知正味]



원숭이는 원숭이와 짝을 짓고[猿猵狙以為雌] 고라니는 사슴과 어울리고[麋與鹿交]
미꾸라지는 물고기와 노닐면서도[鰍與魚游]
모장과 여희는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하는데도[毛嬙麗姬 人之所美也]
물고기가 보면 물속으로 들어가 버리고[魚見之深入]
새가 보면 하늘로 날아가 버리고[鳥見之高飛]
고라니와 사슴이 보면 급하게 달아난다네[麋鹿見之決驟]
이 넷은 누가 아름다움을 제대로 아는건가?[四者孰知天下之正色哉]?



내가 볼 때에는[自我觀之]
인의를 경계짓고[仁義之端] 시비를 가르는 것은[是非之塗] 혼란하고 어지러우니[樊然殽亂]
어찌 내가 능히 따져서 알수 있겠는가[吾惡能知其辯]



설결이 물었다[齧缺曰:]
선생님이 이롭고 해로움을 알지 못하신다면, 지인도 역시 그렇습니까?[子不知利害 則至人固不知利害乎]?



왕예(王倪)가 답했다[王倪曰:]
지인은 신묘하다네![至人神矣]!
커다란 연못을 다 태워도 뜨거워 하지않고[大澤焚而不能熱]
황하와 한수를 다 얼려도 추워하지 않는다네[河漢冱而不能寒]
사나운 우뢰가 산을 다 파괴시켜도 상하지 않고[疾雷破山]
태풍이 파도가 몰아치게 해도 그는 놀라지 않는다네[飄風振海而不能驚]
그 같은 사람은[若然者] 구름의 기운을 타고[乘雲氣]
해와 달에 올라타서[騎日月] 사해의 바깥을 노닌다네[而游乎四海之外]
죽고 사는 것 조차도 자기를 변하게 할 수 없는데[死生無變於己]
이롭고 해로움의 경계를 따지려고 하겠는가[而況利害之端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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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것[此]에 관해 말을 해 보기로 하자[今且有言於此]
같은 종류와 함께 놓으면 알 수 없나?[不知其與是類乎]
다른 종류와 함께 놓으면 어떠한가?[其與是不類乎]?
같은 종류와 함께 놓으나 다른 종류와 함께 놓으나[類與不類]
서로 합하여 같은 한 묶음으로 하면[相與為類] 다른 것과 차이가 없다[則與彼無以異矣]
(한 남자를 남자속에서 ‘남자’로 함께 묶거나, 한 남자를 여자속에 넣어 ‘인간’으로 묶거나)



이처럼 비록 한단계 위에서 보면 나눠지는게 없다고 하더라도[雖然]
한번 말을 해 보기로 한다[請嘗言之]
처음이 있다는 것[有始也者]
처음이 있음은 처음이 아님도 있다는 것[有未始有始也者]
[처음이 있음과 처음이 아님이 있음]을 하나로 통틀어
그것도 아님이 있다는것[有未始有夫未始有始也者]
있다는 것이 있는 것[有有也者], 없다는 것도 있는 것[有無也者]
[있고 없음의 시작됨]이 없음도 있는 것[有未始有無也者]
[있고 없음의 시작됨이 없음이 있는 것]도 없는 것[有未始有夫未始有無也者]
그런데 어느덧 있음과 없음이 생겨있다[俄而有無矣]
있다고 하고 없다고 하는데 무엇이 있고 무엇이 없는지 알지 못하겠다[而未知有無之果孰有孰無也]
지금 나는 이미 말을 하였지만[今我則已有謂矣]
과연 내가 말한 것이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를 알지 못하겠다
[而未知吾所謂之其果有謂乎 其果無謂乎]



세상에 가을의 짐승 털끝보다 더 큰 것이 없다하면[夫天下莫大於秋豪之末]
태산도 작은 것이 된다[而大山為小]
일찍 죽은 갓난아이보다 장수하는 이는 없다고 하면[莫壽於殤子]
8백년을 살았다는 팽조가 단명한 것이 된다[而彭祖為夭]
천지가 나와 더불어 함께 생겨있다 하면[天地與我並生]
만물도 나와 함께 하나가 되는 것이다[而萬物與我為一]
이미 하나가 되었다 했는데[既已為一矣]
그 하나된 것에 덪붙일 말이 있겠는가?[且得有言乎]?
이미 하나라고 말을 했는데[既已謂之一矣]
또한 덪붙인 말이 없었다 하겠는가[且得無言乎]?



하나인데 하나라 하는 순간 [하나]에 [하나라는 관념]이 더불어 둘이되고[一與言為二]
[둘]은 또 [둘 아닌 것]과 더불면 셋이되고[二與一為三]
이런식으로 계속 나아가면[自此以往]
아무리 훌륭한 계산으로도 끝을 헤아릴 수 없는데[巧歷不能得]
어찌 보통 사람이 셈할 수 있다 하겠는가[而況其凡乎]!



그러기에 [무]와 [유]는 [무에서 유로 변하는 진행]에 의해 셋에 이르는데[故自無適有以至於三]
[유]에서 [유]로 [멈추는 진행]이라고 해서 끝이 있겠는가[而況自有適有乎]
나아가는 진행없이[無適焉] 그대로 놓아둘 밖에[因是已]



본래 도라는 것이 잡을 수 없는 것이요[夫道未始有封]
말도 전부를 규정할 수 없는 것인데[言未始有常]
규정하려 하기에 다툼이 생긴다[爲是而有畛也] 그런 시비에 대한 말해보자[請言其畛]
왼편이다 하니 오른편이 있어야 하고, 윤리다하니 의로움이 있어야 하고[有左有右有倫有義]
구분된다 하니 따지는 것이 있어야 하고, 겨룬다 하니 경쟁이 있어야 한다[有分有辯有競有爭]
이를 다툼을 만드는 8덕(八德)이라고 말한다[此之謂八德]



4방향과 함께 위와 아래인 6합(六合)의 바깥은 [六合之外]
성인은 놓아두고 논하려 하지 않는다[聖人存而不論]
6합의 안에 있어서도[六合之內]
성인은 논하더라도 헤아리지는 않는다[聖人論而不議]



역사서적 『춘추』는 세상을 다스린 선왕의 뜻으로[春秋經世先王之志]
성인은 헤아려보았더라도 말로 따져내지는 않았다[聖人議而不辯]
그러니 나누는 것이란게 [故分也者] 나누지 않는 것이었고[有不分也]
따져보는 것은 [辯也者] 따져보지 않는 것이었다[有不辯也]
어째서 그렇다 말하나? [曰何也]
성인은 품어서 보듬지만 [聖人懷之]
세상사람들은 따져서 드러내고자 하기 때문이다[衆人辯之以相示也]
따라서 따져본다고 말은 하지만 [故曰辯也者]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有不見也]



무릇 참된 도는 헤아릴 수 없고[夫大道不稱]
참된 변론은 말이 없고[大辯不言]
참된 인에는 어짊이 없고[大仁不仁]
참된 청렴에는 겸손이 없고[大廉不嗛]
참된 용기에는 해치는 것이 없다[大勇不忮]



도를 드러내려 한다면 도가 아니게 되고[道昭而不道]
말로 따져내려 한다면 도달할 수가 없게 되고[言辯而不及] 
인을 늘 그러하게 한다면 인이 아니게 되고[仁常而不成] 
맑게 하려고 하는 청렴은 믿을 수 없게 되고[廉清而不信]
용기로 해치려 한다면 용기일 수 없게 된다[勇忮而不成]
이 다섯가지는 원만했으나 기울어져 모나게 된 것이다[五者圓而幾向方矣]
그러므로 알지 못함에서 멈출줄 알아야[故知止其所不知]
이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至矣]



누가 말이 없어야 말로 따지는 것인지 알 수 있겠는가[孰知不言之辯]?
누가 도가 없어야 도인 것을 알 수 있겠는가[不道之道]?
만일 능히 알 수 있다하면[若有能知] 
이를 일러 자연이 생겨나는 ‘천부’라 할 것이다[此之謂天府]



아무리 들어부어도 다 차지 않고[注焉而不滿]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는데[酌焉而不竭] 
어째서 그러한지 알 수가 없으니[而不知其所由來]
이를 일러 빛을 감춘 ‘보광’이라고 할 것이다[此之謂葆光]



옛날에 요가 순에게 물어 말하길[故昔者堯問於舜曰:]
“나는 종, 회, 서호를 정벌하고 싶네 [我欲伐宗膾胥敖]
임금이 되어 남면하고 있는데도 떨떠름하니[南面而不釋然]
어째서 그러할까[其故何也]?”
(이 세나라 때문이겠지?) 



순이 말하길[舜曰:]
“그 세나라의 임금이라는 자들은[夫三子者]
오히려 쑥대밭 사이에 있는 것처럼 미천한데[猶存乎蓬艾之間]
폐하께서 떨떠름하다고 하시니 어째서겠습니까[若不釋然何哉]?
옛날에 열 개의 태양이 한꺼번에 나타나[昔者十日並出]
만물을 다 비추어 버린 적이 있습니다[萬物皆照]
지금 폐하의 덕이 그 태양들처럼 되고자 하는 것인가요[而況德之進乎日者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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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은 그 지혜가 지극하였다[古之人 其知有所至矣]
어디까지 이르렀던가?[惡乎至]?
시원은 만물이 없는 무(無)였는데[有以為未始有物者] 
지극하고 극진하기에 더 보탤 수가 없다[至矣 盡矣 不可以加矣]
그 후 만물이 있게 되었는데 구분은 없었고[其次以為有物矣 而未始有封也]
그 후 구분이 있게 되었으데[其次以為有封焉]
옳고 그르다고 논할 수는 없었다[而未始有是非也]
그런데 (사람으로부터) 시비가 생겨나자[是非之彰也]
도가 가려져 버렸고[道之所以虧也]
도가 가려지자 편애(偏愛)가 생겨났다[道之所以虧 愛之所以成]
그렇다면 도(道)도 이와같이 흥망성쇠를 하는 것인가[果且有成與虧乎哉]?
아니면 도(道)는 흥망성쇠를 하지 않는 것인가[果且無成與虧乎哉]?



성하고 쇠하게 되는 것은 소씨가 거문고를 타는 것이요[有成與虧 故昭氏之鼓琴也]
성하고 쇠하지 않는 것은 소씨가 거문고를 놓는 것이다[無成與虧 故昭氏之不鼓琴也]
소문(昭文)이 거문고를 뜯고[昭文之鼓琴也]
사광(師曠)이 지팡이로 박자를 맞추며[師曠之枝策也]
혜자가 책상에 기대어 노래를 하였는데[惠子之據梧也]
이 세 사람의 기술만은 성인의 경지에 다가갔고[三子之知幾乎 皆其盛者也]
그랬기에 말년까지 칭송을 유지할 수 있었다[故載之末年]



다만 그 좋아한 것이 성인과는 다른 것이었으니[唯其好之也 以異於彼]
그 좋아한 것을 욕심내어 드러내고자 한 것이었다[其好之也 欲以明之]
(혜자는) 밝힐 수 없는 것인데도 밝히고자 하였기에[彼非所明而明之]
견백(堅白)의 궤변(詭辯)으로 끝나게 된 것이요[故以堅白之昧終]
소문은 자식으로 이어 전하려는 욕심이 있었기에[而其子又以文之綸終]
끝내 스스로는 완성의 경지에 이를 수는 없었던 것이다[終身無成]



만약 이런 것도 이루는 것이라고 하면[若是而可謂成乎]
나 또한 이루었다고 못하겠나[雖我亦成也]
만약 이런 것은 이루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若是而不可謂成乎],
만물이나 나 역시도 이룬 것이 없는 것 아니겠나[物與我無成也]



이처럼, 밝은 것이지, 밝게 하는 것이 아니어야 하므로[是故滑疑之耀]
성인이 도모하는 바와 같아야 한다[聖人之所鄙也]
쓰려고 하지 않고 저절로 그리되도록 놓아두어야 하니[為是不用而寓諸庸]
이를 자연의 저절로 드러남인 명(明)이라고 한다[此之謂 以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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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손가락의 의미로 비교하여,
저 사람의 (여섯번째) 손가락은 손가락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以指喩指之非指]
일반적 손가락이 아닌 특이한 손가락으로 비교하여,
저 손가락은 손가락이 아니라고 하는 것에도 못 미친다[不若以非指喩指之非指也]
일반적인 말(馬)의 의미로 비교하여
저 (양처럼 생긴) 말은 말(馬)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以馬喩馬之非馬]
일반적인 말이 아닌 특이한 말(馬)로서 비교하여,
저 말(馬)이 말(馬)이 아니라고 하는 것에도 못 미친다[不若以非馬喩馬之非馬也]
천지도 이와 같은 하나의 다른 손가락이며[天地一指也]
만물도 이와 같은 하나의 다른 말(馬)에 불과하다[萬物一馬也]



옳다고 하면 옳은 것이요[可乎可]
틀렸다고 하면 틀린 것이다[不可乎不可]
도의 움직임에 의해 그 자체로 이미 완성된 것이며[道行之而成]
만물은 그렇다고 하면 그런것이다[物謂之而然]
어째서 맞는가[惡乎可]?
맞다에 의해 맞는 것이다[可於可]
어째서 틀리는가[惡乎不可]
틀렸다에 의해서 틀린 것이다[不可於不可]
만물은 그대로이면 그대로이고[物固有所然]
만물은 옳다면 옳은 것이다[物固有所可]
만물이 그대로가 아닌 것이 없고[無物不然]
만물이 옳지 않은 것이 없다[無物不可]



때문에 말하자면[故爲是],
지탱하는 대들보와 받치는 나무기둥[擧莛與楹],
문둥이와 서시라는 미녀[厲與西施]
허풍쟁이와 사기꾼이나 말쟁이와 괴상한 사람[恢恑憰怪]
모두 도(道)의 관념으로 통하면 마찬가지로 같은 것이다[道通爲一]



나누는 것이 이루는 것이며[其分也成也]
이루는 것은 부서지는 것이다[其成也毁也]
만물은 이루고 부서짐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凡物無成與毁]
돌고 돌아 통하여 하나로 있다[復通爲一]



오직 도달한 사람만이 그 하나라는 이치를 알아[唯達者知通爲一]
쓸려고 하지 않고 그대로 쓰여지게 놓아둔다[爲是不用而寓諸庸]
저절로 쓰여지는 것이야 말로[庸也者] 쓰는 것이며[用也]
그리 쓰는 것이야 말로[用也者] 그대로 통(通)하게 하는 것이다[通也].
그리 통(通)하는 것이야 말로 제대로 얻는 것이어서[得也]
가장 적합하게 되니[適得而幾矣] 이에 그렇게 놓아두는 것이다[是因是已]
그렇게 하면서도 그렇게 하는 줄을 모르는 것을[已而不知其然]
도(道)라고 부른다[謂之道]



애를 써서 하나로 만들려고 하면[努神明爲一]
결코 하나됨에 이르지 '못한다[而不知其同也]
이를 조삼이라고 말한다[謂之朝三]
조삼이 무엇인가?[何謂朝三]?
이러하다 [曰:]
원숭이 사육사가 도토리를 주며 말했다[狙公賦芧曰]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를 줄 것이다"[朝三而暮四]
원숭이들이 모두 화를 내었다[衆狙皆怒]
다시 말하기를 [曰:]
"그렇다면,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를 줄 것이다"[然則朝四而暮三]
원숭이들이 모두 기뻐했다[衆狙皆悅]
말한 것과 실제가 달라진게 없었으나[名實未虧]
기쁘게도 화나게도 하였다[而喜怒爲用]
역시 (준다는 말 없이) 그냥 주면 되었을 뿐이었다[亦因是也]



따라서 성인은 시비가 조화되도록[是以聖人和之以是非]
자연의 섭리에 맡기고 쉬는데[而休乎天釣]
이것을 어긋나지 않고 함께 가는 양행(兩行)이라고 말한다.[是之謂兩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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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불어 나오는 소리만이 아니며[夫言非吹也]
말은 뜻을 담고 있다[言者有言]
말(소리)은 특별해서 일정하지 않으니[其所言者特未定也]
과연 뜻이 (소리와) 따로 있다 할 것인가[果有言邪]?
뜻이 (소리와) 따로 없다고 할 것인가[其未嘗有言邪]?
새 새끼의 지저귀는 소리와 다른[其以為異於鷇音]
어떤 구별됨이 있는 것인가[亦有辯乎]? 없는 것인가[其無辯乎]?



도는 무엇에 숨겨져 참과 거짓이 있게 되며[道惡乎隱而有真偽]?
뜻은 무엇에 숨겨져 옳음과 그름이 있게 되는 것인가[言惡乎隱而有是非]?
도는 어디로 가서 머물수 없으며[道惡乎往而不存]
뜻은 어떤 것으로 규정할 수 없으니[言惡乎存而不可]
도는 작게 떼어내려고 하니 숨겨지고[道隱於小成]
뜻은 화려한 소리에 의해서 숨겨진다[言隱於榮華].



그러기에 유가(儒家)와 묵가(墨家)의 시비가 생기고[故有儒墨之是非]
옳다 하면 그르다 하고[以是其所非] 그르다 하면 옳다고 하였다[而非其所是]
옳은 것을 그르다고 하고싶고, 그른 것을 옳다고 하고싶은 것은[欲是其所非而非其所是]
드러나 보이는 것만 보는 것에 못하다[則莫若以明].



사물(物)에는 저것 아닌 것이 없고[物無非彼]
사물(物)에는 이것 아닌 것이 없다[物無非是].
그러나 저것으로부터는 보지 않고[自彼則不見]
자기가 아는 것으로부터 안다는 것만 본다[自知則知之].



그래서 말하기를[故曰:]
저것은 이것으로 나오고[彼出於是] 이것 또한 저것에 기인한다고 하였으니[是亦因彼]
저것과 이것은 서로 생겨나 있다는 소위 방생설(方生說)이다 [彼是方生之說也].



비록 그러하다 하더라도[雖然]
생(生)에 의해서 사(死)가 있고[方生方死],
사(死)에 의해서 생(生)이 있고[方死方生],
된다(可)에 의해서 안된다(不可)가 있고[方可方不可],
안된다(不可)에 의해서 된다(可)가 있으며[方不可方可]
옳다(是)에 의해서 틀렸다(非)가 있고[因是因非]
틀렸다(非)에 의해서 옳다(是)가 있다[ 因非因是]고 하더라도,



성인(聖人)은 그 높이에서 보지 않고[是以聖人不由]
가장 높은 경지에서 내려다 본다[而照之於天].
그렇게 보는 것도 그리 의해서 되기 때문이다[亦因是也].



이것이 또한 저것이요[是亦彼也], 저것이 또한 이것이다[彼亦是也]
저것에도 또 하나의 작은 시(是)와 비(非)가 있게되고[彼亦一是非],
이것에도 또 하나의 작은 시(是)와 비(非)가 있게된다[ 此亦一是非].
과연 저것과 이것은 있는 것인가[果且有彼是乎哉]?
과연 저것과 이것은 없는 것인가[果且無彼是乎哉]?



저것과 이것을 가르지 못하는 것을[彼是莫得其偶]
도의 요체인 도추(刀錐)라고 한다[謂之道樞]
본질에서 시작해야 핵심을 얻어[樞始得其環中]
무궁(無窮)에도 응할 수 있다[ 以應無窮].
옳다(是)는 것 그 또한 하나의 무궁이요[是亦一無窮],
틀렸다(非)도 또한 하나의 무궁이다[非亦一無窮也].
그러므로 말한 것이다[故曰:]
드러나 보이는 것을 보는 것만 못하다[莫若以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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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지혜는 한가롭고 느긋하게 해 주고[大知閑閑]
작은 지혜는 바쁘고 초조하게 만든다[小知間間]
큰 말은 담담하게 들리고[大言炎炎]
작은 말은 수다스럽고 시끄럽다[小言詹詹]



잠잘 때는 혼백이 분주하고[其寐也魂交]
깨어 있을 때는 형상과 접촉하여[其覺也形開]
쉬지않고 쫒아다니기만 하니[與接為構] 언제나 마음이 싸울려고만 하는 것이다[日以心鬪]
우유부단한 사람[縵者] 속셈이 있는 사람[窖者]  감추는 사람[密者]이 되고,
조그만 두려움에도 벌벌떨면서[小恐惴惴] 큰 두려움임에는 태연한듯 하는 것이다[大恐縵縵]
활을 쏘듯이 쏘아붙여[其發若機栝] 시비를 가려내려 하고[其司是非之謂也]
딱 잡아떼고 맹세하여[其留如詛盟] 고집스레 이기려 하는 것이다[其守勝之謂也]
죽여버리려는 마음이 가을겨울의 추위처럼 매서워[其殺若秋冬]
오히려 나날이 제 기력을 잃어가게 되는데[以言其日消也]
이미 잠겨버렸기에[其溺之所為之]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이다[不可使復之也]
욕망으로 조여가고 묶어가는 것이[其厭也如緘] 늙을수록 더 심해지니[以言其老洫也]
죽은 마음에 다가간 것이어서[近死之心] 되살릴 수가 없다[莫使復陽也]



기뻐하고 화내고 슬퍼하고 즐거워하기도 하고[喜怒哀樂]
걱정하고 한탄하고 변덕을 부리기도 하고 고집하기도 하고[慮歎變慹]
까불기도 하고 방탕하기도 하고 들춰내려하고 꾸미려고도 하는 것이[姚佚啟態]
소리가 빈 구멍에서 생겨나고[樂出虛]
습한 기운이 곰팡이를 만들듯[蒸成菌]
밤낮으로 반복되며 눈앞에 나타나지만[日夜相代乎前]
어째서 그런지를 알지 못한다[而莫知其所萌]
못난 사람 얘기는 여기까지만 할란다[已乎] 여기까지만 할란다[已乎]



아침 저녁으로 이렇게 마음이 변화는 것은[旦暮得此]
어떤 까닭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겠는가[其所由以生乎]?
그것이 없다면 내가 없고[非彼無我] 내가 없다면 그것도 의미가 없으니[非我無所取]
저것과 나는 그처럼 가깝지만[是亦近矣] 무엇이 그리하는지 알 수는 없다[而不知其所為使]
참된 주재자가 있는 것 같은데[若有真宰]
애를 쓴다고 그 조짐을 알 수는 없고[而特不得其眹]
그 작용은 믿을 수 있는 것이지만[可行己信]
그 형체를 볼 수는 없다[而不見其形]
참된것은 있으되 형상이 없을 뿐이다[有情而無形]



몸은 백 개의 뼈마디[百骸] 아홉개의 구멍[九竅] 여섯의 장기가[六藏]
모두 갖춰져야 하는데[賅而存焉] 내가 어느것과 더 친해야 하나[吾誰與為親]?
그 모두를 사랑해야 할까[汝皆說之乎]? 특별히 하나를 사랑해야 할까[其有私焉]?
이것들은 주인은 없이 신하와 첩으로만 있는 것인가[如是皆有為臣妾乎]?
신하와 첩이라면 어찌 서로서로가 다스릴 수 있겠는가?[其臣妾不足以相治乎]?
번갈아가면서 군신관계가 된다는 말인가[其遞相為君臣乎]?
진정한 주재자가 있음이다[其有真君存焉].
그 참됨이 있음을 알아주건 몰라주건[如求得其情與不得]
그 참됨의 작용은 아무 변화가 없을 것이다[無益損乎其真].
몸의 요소는 사람의 형체안에 하나가 되어[一受其成形]
없어지지 못하고 역할을 다하면서 기다려야 할 뿐이다[不亡以待盡]



사람은 만물과 서로 다투기만 하고[與物相刃相靡]
말달리듯 지나가면서도[其行盡如馳] 멈추고자 하지 않으니[而莫之能止]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不亦悲乎]!
종신토록 허덕인다고 성공을 볼 수는 없고[終身役役而不見其成功]
고달파 쓰러지면서도 되돌아가야 할 바를 알 지 못하니[苶然疲役而不知其所歸]
참으로 애처럽지 않겠는가[可不哀邪]!



사람들이 죽지 않는다고 하게되면[人謂之不死] 이로움이 있겠는가[奚益]?
모습은 마음과 더불어 늙고 변하게 될 터인데[其形化其心與之然]
(죽지 않는것이) 더 큰 슬픔이라 말하지 않는건가[可不謂大哀乎]?
사람들이 사는 것이 이처럼 어리석은 것인가[人之生也 固若是芒乎]?
나 혼자 어리석고 남들이 어리석지 않은 것인가[其我獨芒 而人亦有不芒者]?



본래 지닌 참된  마음을 스승으로 삼을 수 있으니[夫隨其成心而師之]
그 누가 스승이 없었다고 할 수 있겠는가[誰獨且無師乎]?
자기 마음을 얻은 사람에게만 스승이 있었다 하겠는가[奚必知代而心自取者有之]
어리석은 사람에게도 역시 있는 것이다[愚者與有焉]
여전히 이르지 못하고 시비가 남아있다면[未成乎心而有是非]
오늘 월(越)나라를 떠나면서 어제 도착했다는 것이요[是今日適越而昔至也]
아무것도 없는 것을 있다고 하려는 것이다[是以無有為有]
없는데도 있다고 하는 것은[無有為有]
성인인 우(禹)라도[雖有神禹] 알 수 없을 것인데[且不能知].
하물며 내가 어찌 알아줄 수 있겠는가[吾獨且奈何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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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곽자기(南郭子棊)가 책상에 기대앉아[南郭子綦隱机而坐] 하늘을 쳐다보며 한숨쉬니[仰天而噓]
그 멍한 모습이 마치 스스로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荅焉似喪其耦].
제자 안성자유(顔成子遊)가 그 앞에서 시중을 들다가[顏成子游立侍乎前] 여쭈었다[曰]:
"무슨 일인지요[何居乎]? 보이는 모습이 정말로 마른나무와 같고[形固可使如槁木]
느껴지는 마음이 정말로 식은 재와 같습니다[而心固可使如死灰乎].
지금 책상에 기대고 있는 사람이[今之隱机者]
이전에 그 사람과 다른 사람인지요[非昔之隱机者也]?



자기(子棊)가 말했다[子綦曰]:
"언아[偃] 너는 정말 순진하여[偃不亦善乎] 그런 것을 묻는구나[而問之也]!
지금 나는 내 자신을 잊고 있었는데[今者吾喪我] 네가 그것을 알겠느냐[汝知之乎]?
너는 사람이 내는 소리인 인뢰(人籟)는 들었을 것이나[女聞人籟而未聞地籟]
땅이 내는 소리인 지뢰(地籟)는 못 들었을 것이고[女聞地籟]
설령 들었어도, 하늘이 내는 소리인 천뢰(天籟)까지는 못 들었을 것이다[而未聞天籟夫夫].



자유가 청했다[子游曰]: "부디 그것을 말씀해 주십시오[敢問其方]."



자기가 대답했다[子綦曰]:
"대개 대지가 뿜어내는 숨을[夫大塊噫氣] 바람이라 한다[其名為風].
이것이 일지 않으면 모르겠지만[是唯無作]
일어나면 세상의 모든 구멍이 성난 듯 소리를 낸다[作則萬竅怒呺].
너 혼자 그 소리의 울림을 못 듣지는 않았겠지[而獨不聞之翏翏乎]?
산 속의 높은 봉우리에[山林之畏佳] 백 아름이 되는 큰 나무의 구멍은[大木百圍之竅穴]
코와 같이, 입과 같이, 귀와 같이, 가로보 같이, 고리와 같이, 절구와 같이[似鼻 似口 似耳 似枅 似圈 似臼]
연못과 같은 것이 되고, 웅덩이와 같은 것이 된다[似洼者 似污者].
물소리 같이, 화살소리 같이, 꾸짓는 소리 같이, 숨쉬는 소리 같이[激者 謞者 叱者 吸者]
부르는 소리 같이, 울리는 소리 같이, 찟어지는 소리 같이 되어[譹者 宎者 咬者],
앞 소리를 가볍게 시작하여 뒷소리를 무겁게 낸다[前者唱于而隨者唱喁]
작은 바람이면 작게 화답하고, 거센 바람이면 크게 화답한다[泠風則小和 飄風則大和]
그러다 바람이 잦아지면 모든 구멍들이 잠자게 되는 것인데[厲風濟則眾竅為虛]
너만이 저 나무들이 휘청휘청 흔들리다 잠잠해짐을 것을 못 보지는 않았겠지[而獨不見之調調 之刀刀乎]?"



자유가 말하기를[子游曰]:
"지뢰(地籟)는 구멍을 통해 나오게 되는 소리이며[地籟則眾竅是已],
인뢰(人籟)는 사람이 불어 나오는 피리같은 소리군요[人籟則比竹是已].
그렇다면 천뢰(天籟)는 무엇인지요[敢問天籟]?"



자기가 대답했다[子綦曰]:
"그 나오는 소리가 만가지가 다 다르지만[夫吹萬不同]
저절로 달리 만들어 지는 소리이다[而使其自已也].
저절로 그리 나오게 되는 것이니[咸其自取]
소리나게 하는 그 무었이 있어서겠느냐[怒者其誰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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惠子謂莊子曰:
魏王貽我大瓠之種
我樹之成而實五石
以盛水漿 其堅不能
剖之以為瓢 瓠落無所容
非不呺然大也
吾為其無用而掊之


莊子曰:
夫子固拙於用大矣
宋人有善為不龜手之藥者
世世以洴澼絖為事
客聞之
請買其方百金
聚族而謀曰:
我世世為洴澼絖 不過數金
今一朝而鬻技百金 請與之
客得之 以說吳王
越有難 吳王使之將
冬 與越人水戰 大敗越人
裂地而封之
能不龜手 一也
或以封 或不免於洴澼絖
則所用之異也


今子有五石之瓠
何不慮以為大樽而浮乎江湖
而憂其瓠落無所容
則夫子猶有蓬之心也夫


惠子謂莊子曰
吾有大樹 人謂之樗
其大本臃腫而不中繩墨
其小枝卷曲而不中規矩
立之塗 匠者不顧
今子之言 大而無用
眾所同去也


莊子曰:
子獨不見狸狌乎
卑身而伏 以候敖者
東西跳梁 不避高下
中於機辟 死於罔罟
今夫斄牛 其大若垂天之雲
此能為大矣 而不能執鼠


今子 今子有大樹
患其無用
何不樹之於無何有之鄉
彷徨乎無為其側
逍遙乎寢臥其下
不夭斤斧
物無害者
無所可用 安所困苦哉

혜자(惠子)가 장자에게 말했다.
"위(魏)나라 왕이 저에게 큰 박씨를 주길래
그것을 심었더니 다섯섬 들이 큰 박이 열리더군요
물을 담는 그릇으로 쓰려했더니 무거워 들 수가 없어서
쪼개어 바가지를 만들었는데 그것도 너무 넓어 쓸 수가 없었지요
괜시리 크기만 커서
제게 소용이 없었으니 깨뜨려 버렸지요"


장자가 대답했다.
“자네는 큰 것을 쓰는 법을 모르나 보네
송나라 사람 중에 손 트는데 좋은 약을 만드는 자가 있었지
그는 대대로 세탁업을 이어오고 있었다네
한 나그네가 소문을 듣고서는
그 약 처방을 백금(白金)값으로 사고자 하였다네.
세탁업을 하던 그 사람이 가족을 모아놓고 말하였지
‘우리가 대대로 세탁업을 해왔지만 겨우 몇금(數金) 벌이였다
약 처방을 팔면 단번에 백금(白金)을 얻게 되니 팔기로하자’
처방을 얻게 된 나그네는 오나라 왕에게 약을 설명했다네.
마침 월나라가 침략해오자 오왕(吳王)은 그를 장수로 삼아
겨울에 수전으로 이끌어 월나라를 대패시키고
그 나그네에게 땅을 주고 영주로 삼았지
손을 트지 않게 하는 같은 약으로
어떤 이는 땅을 받고 어떤 이는 세탁업을 면하는데 그쳤으니
그것은 쓰는 법이 달랐기 때문일세.


지금의 자네는 닷 섬들이 바가지가 있었는데도
큰 배로 사용해 강과 호수에 띄울 것을 어찌 생각지도 못하고
너무 넓어 쓸 데가 없다고만 근심하였던가?
그러니 오히려 자네의 마음이 좁쌀이었던 것이지.”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
”내 집에 큰 나무가 있는데 사람들이 가죽나무라 하더군요
큰 줄기는 울퉁불퉁해서 먹줄을 놓을 수가 없고
작은 가지들도 꼬불꼬불해서 자로 쓸 수가 없군요.
길가에 서 있는데 목수조차 쳐다보지 않더군요
지금의 당신의 말은 크기는 하여도 쓸모는 없으니
사람들에게 외면받는 것이지요.”


장자가 말했다
“자네는 삵괭이를 보지 못했는가
납작 엎드려서 지나는 잔짐승을 노리는 놈이지만
동서로 분주하고 높낮이를 가리지 못하여
덫에 잡히거나 그물에 걸려 죽는다네.
그에 비하면 검정소는 하늘에 드리운 구름 같아서
능히 더 큰 일을 하지만 쥐를 잡지는 못한다네.


지금의 자네는 큰 나무가 있는데도
쓸모가 없다는 근심만 있네
자유로운 고을의 광활한 들에 어째서 심어놓지 못하는가?
그 곁을 무위(無爲)하며 지나고
노닐며 그 밑에 드러눕곤 할 것이니
도끼에 찍히지도 않고
해를 끼치는 일도 없을텐데
쓸 데가 없다며 어찌 괴롭다고만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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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편 소요유(逍邀遊 ) - 1  (0) 2013.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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肩吾問於連叔曰
吾聞言於接輿
大而無當
往而不返
吾驚怖其言
猶河漢而無極也
大有徑庭 不近人情焉


連叔曰
其言謂何哉

曰:
藐姑射之山 有神人居焉
肌膚若冰雪 淖約若處子
不食五穀 吸風飲露
乘雲氣 御飛龍
而遊乎四海之外
其神凝
使物不疵癘 而年穀熟
吾以是狂而不信也


連叔曰

瞽者無以與乎文章之觀
聾者無以與乎鐘鼓之聲
豈唯形骸有聾盲哉
夫知亦有之
是其言也 猶時女也


之人也 之德也
將旁礡萬物以為一
世蘄乎亂
孰弊弊焉 以天下為事
之人也 物莫之傷
大浸稽天而不溺
大旱金石流土山焦而熱
是其塵 垢秕糠
將猶陶鑄堯舜者也
孰肯以物為事


宋人資章甫而適越
越人斷髮文身 無所用之
堯治天下之民 平海內之政
往見四子藐姑射之山
汾水之陽
窅然喪其天下焉

견오(肩吾)가 연숙(連叔)에게 말했다
“내가 접여(接輿)의 말을 들었는데
너무 허황되어 믿을 수 없어서
헤어지고 다시보지 않았네
나는 그 말이 놀라워 두렵더군.
마치 은하수처럼 끝이 없었으니
너무 경지가 높아 사람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었어.”


연숙이 말했다.
“도데체 무슨 말이길래 그러는가?”


견오가 답하기를
“막고야(妙姑射)란 산에 신인(神人)이 사는데
살결이 얼음과 눈처럼 희고 처녀처럼 부드러우며
오곡을 먹지 않고 바람과 이슬을 마시며
구름을 타고서 나는 용을 몰고다니며
사해(四海) 밖을 노닌다고 하네
자기 정신을 맑게하는 것으로
만물을 병들지 않고 풍년이 들게 한다고 하네
나는 그 말이 허황된 것 같아 믿을수가 없네.”


연숙이 말했다.
“그럴 것이네.
봉사는 아름다운 무늬를 보지 못하고
귀머거리는 음악소리를 들을수 없다는 말이 있네.
어찌 신체적인 봉사와 귀머거리만 있겠는가?
안다는 것도 또한 그렇다네
봉사와 귀머거리라는 말이 자네를 두고 하는 말이겠군.


그 신인(神人)과 그의 덕은
만물을 하나로 합해가는 것이네
세상사람들이 다스려달라고 해도
무엇때문에 천하의 일에 관심을 두겠는가
그 사람은 사물이 해롭게 할 수가 없네.
큰 홍수로 물이 하늘까지 닿아도 그는 빠지지 않고
큰 가뭄으로 쇠와 돌이 녹고 흙과 산이 타더라도 더워하지 않을 것이네
그는 먼지와 티끌과 쭉정이와 겨만 가지고도
요(堯)임금, 순(舜)임금 같은 자를 마음대로 만들수 있겠지만
어찌 세속의 일에 관여하고자 하겠는가!


송나라 사람들이 모자를 팔려고 월나라로 갔는데
월나라 사람들은 머리를 깎고 문신을 하였기에 모자가 필요없었네
요(堯)는 천하의 백성을 다스려 나라 안의 정치를 고르게 한 다음
천하를 물려주려 '막고야'란 산으로 가서 네 신인(神人)을 만나보고는
분수(汾水)강 북쪽 도읍으로 돌아와서
얼이빠진채 천하를 잊어버렸다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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堯讓天下於許由 曰:
日月出矣 而爝火不息
其於光也 不亦難乎
時雨降矣 而猶浸灌
其於澤也 不亦勞乎
夫子立而天下治
而我猶尸之 吾自視缺然
請致天下


許由 曰:
子治天下 天下既已治也
而我猶代子 吾將為名乎
名者 實之賓也
鷦鷯巢於深林]不過一枝
偃鼠飲河 不過滿腹
歸休乎君 予無所用天下為
庖人雖不治庖
尸祝不越樽俎
而代之矣

요(堯)임금이 천하를 허유(許由)에게 넘겨준다며 말했다.
“해와 달이 떠 있는데 횃불을 끄지 않는다면
그 밝힘이 어찌 괜한 일이 아니겠소
때에 맞게 비가 내렸는데 여전히 물을 댄다면
그 적시는 것이 어찌 헛수고가 아니겠소
그대가 있어 천하가 저절로 다스려지고 있는데
내가 자리만 맡고 있으니 나는 참으로 부끄럽소
청하건대, 천하를 맡아주시오.”


허유가 대답했다.
“그대가 천하를 다스렸기에 천하가 잘 다스려지고 있는 것이오.
그런데 나보고 당신을 대신해 나의 이름을 알리라는 것이오?
이름이라는 것은 실질의 손님에 불과하지 않소?
뱁새가 깊은 숲에 둥지를 틀어도 나뭇가지 하나면 충분하오
두더지가 강물을 마셔도 그 배만 채울양이면 충분하오
그러니 그대는 돌아가 주시오. 나에게 천하는 쓸모없는 것이라오.
제사음식을 잘 만들지 못한다고
귀신대신 않은 어린아이(시동)가 제사상을 벗어나
대신 음식을 만들러 갈 수는 없지 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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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冥有魚
其名為鯤
鯤之大
不知其幾千里也
化而為鳥
其名為鵬
鵬之背 不知其幾千里也
怒而飛
其翼若垂天之雲
是鳥也
海運
則將徙於南冥

南冥者 天池也

齊諧者 志怪者也
諧之言曰:
‘鵬之徙於南冥也
水擊三千里
摶扶搖 而上者九萬里
去以六月息者也’
북쪽 바다에 물고기가 있는데
그것을 곤(鯤)이라 부른다.
곤(鯤)의 크기가
몇천 리인지 알 수는 없다.
그 곤(鯤)이 변해서 새가 되는데
그 이름을 붕(鵬)이라 한다.
이 붕의 등 넓이도 몇천 리나 되는지 알 수가 없다
이 붕(鵬)이라는 새가 솟구쳐 날아오르면
그 날개가 마치 하늘을 뒤덮은 구름과 같다.
이 붕(鵬)이라는 새는
바다의 출렁임을 따라
남쪽 바다로 나아갈려고 하는데
그 남쪽 바다가 천지(天池)이다

「제해(齊諧)」라는 책은 그 뜻이 괴이하다.
적혀있는 말은 이러하다 :
'붕새가 남쪽 바다로 나아갈 때에는
물결치는 것이 3천리에 이르고
회오리를 타고 9만리를 날아올라
반년이 지나서야 쉰다.'


  존재라는 것은 저 홀로 위대할 수는 없다. 계산으로 측정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곤(鯤)이라고 해도 북명이라는 바다가 길러주어야 하며, 어마어마한 붕(鵬)이라고 해도 남명이라는 바다가 보살펴 주어야 한다. 그런데 어찌하여 곤은 붕이 된 것이며, 붕이 되면 왜 남명으로 날아가려 하는가? 

  곤이 붕으로 변한 것은 스스로의 뜻이 아니다. 남명으로 날아가야 하기에 하늘이 날개를 준 것이다. 하늘은 제 사명을 다했다. 그리고 선택권은 붕새에게 넘겨졌다. 과연 솟구쳐 날아오를 것인가? 그 길은 어마어마한 물결과 회오리를 동반하여 다시 잠잠해지지까지 6개월이 걸리는 힘든 여정이다.

  사람이 원초적 본성을 찾은 것이 붕새로 변해 날개를 가진 것과 다르지 않다. 솟구쳐 오르는 것은 수행을 의미하며 남명은 초월적인 세상을 상징한다. 곧 남명은 신선계요, 열반이다. 티베트에서는 완전히 자란 모습으로 태어나는 '가루다'라고 불리는 신비로운 새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가루다의 새끼는 알 속에 있을 때 이미 완전한 날개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알을 깨고 나오기 전에는 결코 날 수가 없다.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을 불성의 발현으로 이야기한다. 세세한 차이는 있지만, 붕새의 비유와 닮아있다.
 

野馬也 塵埃也
生物之以息相吹也
天之蒼蒼
其正色邪?
其遠而無所至極邪?
其視下也
亦若是則已矣
且夫水之積也不厚
則其負大舟也無力
覆杯水於坳堂之上
則芥為之舟;
置杯焉則膠
水淺而舟大也
風之積也不厚
則其負大翼也無力
故九萬里
則風斯在下矣
而後乃今掊風
背負青 天而莫之夭閼者
而後乃今將圖南
아지랑이와 먼지는
생물이 불어내는 입김이다.
하늘이 푸르른 것은
저 하늘 본래의 색이던가?
멀어서 끝이 없기 때문인가?
하늘에서 아래로 내려보아도
또한 마찬가지이리라
대개 물이 깊지 않으면
큰 배를 띄울 힘이 없다.
한 잔 물을 뜰의 패인 곳에 부으면
지푸라기는 띄워지겠지만
술잔을 띄우면 가라앉고 만다.
물은 얕은데 배가 큰 까닭이다.
마찬가지로 바람이 쌓인 것이 깊지 않아도
저 붕새의 큰 날개도 힘을 쓰지 못할 것이다.
그러기에 구만리는 되어야
바람이 그 밑에 있게 되고
그 후에야 바람을 타고
푸른 하늘을 등에 진채 걸림없이
남쪽으로 날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붕새가 남명으로 날아가는 여정은 깨달음의 길. 소요유(逍遙遊)! 속된 세상을 초월하여 아무런 걸림없이 참된 자유의 세계에서 노니는 지인(至人)의 경지에 이르는 길이다. 물이 깊어야 큰 배를 띄울 수 있고, 높이 솟구쳐야 바람을 탈 수 있는 법. 큰 고난과 큰 시련이 동반되는 험난한 길일게다. 불행의 깊이가 깊지 않은 사람은 행복의 깊이도 얕은 법! 구만리를 솟구쳐 깊게 쌓인 바람을 타고 대도(大道)의 세상으로 날아가야 한다.

 

蜩與學鳩笑之曰:
‘我決起而飛 槍榆枋而止
時則不至而控 於地而已矣
奚以這九萬里而南為?’

適莽蒼者
三餐而反 腹猶果然
適百里者 宿舂糧
適千里者 三月聚糧
之二蟲又何知!
매미와 비둘기가 붕을 비웃으며 말했다.
“내가 힘써 날아올라야 느릅나무와 박달나무에 이른다
때로는 그곳조차도 이르지 못하고 땅바닥에 떨어지고 마는데,
어찌 9만리를 날아올라 남쪽으로 갈 수 있다는가?”

가까운 들판에 나가는 자는
세끼를 먹지 않아도 배를 유지할 수 있지만
백 리를 가는 자는 밤새 양식을 준비해야 하고
천 리를 가는 자는 3개월분 양식을 준비해야 하는 것을
이 두 벌레 같은 것이 어찌 알겠는가?


  매미와 비둘기도 날개가 있다. 그러나 날개가 있다고 다 남명으로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낮은 식견에 붕새의 날개를 제 가진 날개인 양 생각한다. 노자도, 공자도 조롱을 받았다. 예수는 죽임을 당했다. 본래 바둑고수는 하수를 조롱하고 비웃지 않는다. 하수를 조롱하고 훈수를 두는 것은 작은 날개를 달고 있는 급수들이다. 장자가 일갈한다. 벌레같은 것들이 무엇을 안다고 까부느냐!

 

小知不及大知
小年不及大年
奚以知其然也?
朝菌不知晦朔
蟪蛄不知春秋
此小年也

楚之南有冥靈者
以五百歲為春 五百歲為秋
上古有大椿者
以八千歲為春 八千歲為秋
此大年也


而彭祖
乃今以久特聞
眾人匹之
不亦悲乎!

작은 지혜는 큰 지혜에 미치지 못하고
짧게 산 것은 오래 산 것에 미치지 못한다
어떤 것이 소년(小年)과 대년(大年)인지 아는가?
아침만 사는 버섯이 그믐과 초하루를 알지 못하고
매미는 봄과 가을을 알지 못하니
이런 것들이 소년(小年)한 것이다.


초(楚)나라 남쪽에 명령(冥靈)이라 불리는 거북이 있었는데
5백년을 봄으로 삼고 5백년을 가을로 삼고 살았다
오랜 옛날에 대춘(大椿)이라는 나무가 있었는데
8천년을 봄으로 삼고 8천년을 가을로 삼고 살았다.
이런 것들이 대년(大年)한 것이다. 


그럼에도 8백년을 살았다는 팽조(彭祖) 따위를
오늘날까지 오래 살았다며
사람들이 그와 같아지고자 하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장자는 말한다. "까불지 말거라. 적어도 3만년을 넘게 산 대춘정도는 되어야 오래 살았다고 할만하지, 고작 8백년을 산 팽조따위를 오래살았다고 하느냐!" 참고로 장자가 오래 사는 것을 높인다고 오해하여 '불로장생'사상이 도교의 바탕이 된다. 그러나 장자도 백년을 못 넘겼다. 많아야 80이라고 추정한다. 

 

湯之問棘也是已.
湯問棘曰 :
’上下四方有極乎?’
棘曰 : 
‘無極之外 復無極也
窮髮之北有冥海者
天池也
有魚焉 其廣數千里
未有知其脩者
其名為鯤
有鳥焉 其名為鵬
背若泰山
翼若垂天之雲
摶扶搖羊角而上者九萬里
絕雲氣
負青天 然後圖南
且適南冥也’

 

斥鴳笑之 曰 :
’彼且奚適也?
我騰躍而上
不過數仞而下
翱翔蓬蒿之
此亦飛之至也間
而彼且奚適也’


此小大之辯也
故夫知效一官
行比一鄉
德合一君
而徵一國者
其自視也亦若此矣 

탕왕(湯王)이 신하 극(棘)에게 물은 것도 이와 같은 것이다.
탕왕(湯王)이 극(棘)에게 물어 말하기를
”상하사방이 끝이 있는가?”
극(棘)이 말하기를
”끝없음의 바깥에 다시 끝없음은 없습니다.
궁발(窮髮)의 북쪽에 명해(溟海)라는 바다가 있는데
천지(天池)라고 합니다.
거기에 물고기가 있는데 그 크기가 수 천리나 되어
그 길이를 아는 자가 없는데
곤(鯤)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거기에 새도 있는데 붕(鵬)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등은 태산만 하고

날개는 하늘에 뒤덮은 구름과 같은데
회오리바람을 타고 구만리를 솟구쳐
구름을 벗어나
푸른 하늘을 등진 후 남쪽을 향하여
남쪽 바다로 간다고 합니다.”

 

메추리가 이것을 비웃으며 말했다.
”저것들은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내가 힘껏 뛰어올라 보았더니
몇 길 못 오르고 내려와
쑥대밭 속에서 펄떡거려야 했는데
이까지가 최고로 오를 수 있는 것이던데
저것들은 어디까지 오른다고 저 짓이냐.”


이것이 작은 것과 큰 것의 차이다.
그러기에 무릇 지혜가 한 관직 정도 맡을만하고
행실이 한 고을 사람들이 알아줄 정도이고
덕은 한 임금의 마음만 만족케 할 정도이고
능력은 한 나라에 쓸모 있을 정도임에도
스스로 뽐내는 것은 이 메추리와 같은 것이다.


  같은 얘기의 반복이다.

 

而宋榮子猶然笑之
且舉世而譽之而不加勸
舉世而非之而不加沮
定乎內外之分
辯乎榮辱之竟
斯已矣
彼其於世未數數然也
雖然 猶有未樹也

夫列子御風而行
泠然善也 旬有五日而反
彼於致福者
未數數然也
此雖免乎行
猶有所待者也

若夫乘天地之正
而御六氣之辯
以遊無窮者
彼且惡乎待哉!

송영자(宋榮子)는 이런 자들을 보고 빙그레 웃었다
그는 세상이 그를 칭찬한다고 해서 열심히 하려 하지 않았고
세상이 그를 비난한다고 해서 그만두려 하지 않았으니
안팎의 구분을 정할 수 있었고
영예와 굴욕의 경계를 구분하였으니
그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사람은 세상에 아직 흔치 않지만
비록 그렇다 해도 자라지 못한 나무와 같다.

열자(列子)는 바람을 타고 돌아다니며
시원함이 좋아서 보름이 지나서야 돌아오곤 했다.
그처럼 복을 받은 사람이
여전히 흔하지는 않다
그러나 비록 걷는 것을 면했다 하여도
여전히 의지할 바람이 있어야 한다.


만약 저 천지의 바른 기운을 타고
천지의 대기운인 육기(六氣)의 변화에 맡겨
무궁에 노니는 자라면
그는 기댈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천지의 대기운인 육기의 변화에 맡겨 무궁에 노니는 자라면 그는 기댈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故曰:
至人無己
神人無功
聖人無名
그러기에 말하였다
지인(至人)은 자기가 없고,
신인(神人)은 이룸이 없고,
성인(聖人)은 이름이 없다. 


지인은 자기가 없고, 신인은 이룸이 없고, 성인은 이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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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말씀하셨다 [子曰:]
- 『시경』의 3백수의 시를 한마디로 묶을 수 있다[詩三百 一言以蔽之]
그러면서 말씀하셨다[曰:]
- 속이는 뜻이 없다 [思無邪]

 

지금은 다 표현하지 않고 비워두는 시(詩)의 ‘절제미’를 보다 강조하는 것 같지만, 예전 학문의 교과서였던 시경은 ‘진솔함’을 보다 강조했던 것 같다. 충신, 효자, 홀아비, 과부등을 비롯해 다양한 사람의 지극한 감정이 실려있는 것이 옛날의 시(詩)였다. 돈으로 변할 수 있어야 생산을 하려는 지금 시대에, 심금을 울리는 진솔함과 교감하기는 참 어려워진 것 같기도 하다. 문득 황진이의 시를 남겨두고 싶어진다.

동짓달 기나 긴 밤, 한 허리를 베어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님 오신 날 밤이되면 굽이굽이 펴리라

그날 밤이 한 허리만 떼 내어도 족할 정도로 그리도 길었을까?
님과 함께 하는 밤이 얼마나 짧았기에, 그 시간에다 보태고 싶었을까?

사람들이 고시(古時)를 좋아하는 이유는 절제미와 더불어 ‘속임 없는 마음’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원시유학은 본시 인간감정을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지나치지 않게 조화를 도모했다.
천박하다고 주입시킨 것은 주희의 성리학이었다고 생각되며,
부모님께서 돌아가시면 엉엉 울어도 되는 것이 원시유학이었기에,
부인이 죽었을 때 덩실덩실 춤추었다는 장자가 보통사람들과 가장 멀리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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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9. 28. 23:41

하늘의 시간 건(乾) 간상(赶上)/보충(補充)2010. 9. 28. 23:41

맹자가 제나라에 전해오는 말을 소개하였다 [맹자 공손추 상 3.1]

출중한 지혜를 갖는 것보다 유리한 기회를 잡는 것이 낫고,
좋은 농기구를 갖는 것보다 적절한 농사철을 기다리는 것이 낫다.

시간에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 결과가 다른 경우가 많다.
겨울에 씨를 뿌리면 소용이 없는 법이다.
그래서, ‘미숙할 때 움직이려 하지 말라’는 잠룡물용(潛龍勿用)과
‘물러나야 할 항룡일 때 물러나지 않으면 후회할 일이 생긴다’는
항룡유회(亢龍有悔)는 오늘날에도 자주 인용하는 고사성어가 되었다.

오늘날 사람들이 참 많이 쓰는 말이 있다. “바빠서 말이지…”
옛날 사람들도 이렇게 바쁘게 느끼며 살아갔을까? 옛날의 노래, 옛날의 춤과 같은 문화적 산물로 유추해보면 일견 오늘날보다는 여유로운 듯도 한데, 옛 글들을 보면 역시 바쁘다는 글이 많다. 장자가 말했다.[장자 제물론]

사람은 만물과 서로 다투기만 하고
말달리듯 지나가면서도 멈추고자 하지 않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종신토록 허덕여도 성공을 볼 수 없고
고달파 쓰러지면서도 되돌아가야 할 바를 알 지 못하니
참으로 애처롭지 않겠는가!

과거에 군대를 다녀온 사람은 오늘날 군대는 천국일거라 여기기도 하지만, 더 좋은 환경 같은데도 여전히 힘들어 하고 자살을 하기도 한다. 옛날의 군대나 오늘날 군대나 옛날의 시간이나 오늘날의 시간이나 힘들고 바쁘기는 마찬가지란 말일까? 조선시대에도 행복하게 살았던 여인들이 있고, 풍족한 오늘날에도 불만 속에 사는 여인들이 있다.

‘결혼을 반대하는 부모와의 갈등’은 드라마나 소설의 소재로 자주 사용되던 얘깃거리였다.
돈 많지, 잘 생겼지, 마음씨 좋지, 어디 하나 빠질 것 없는 A를 마다하고, B가 좋다는 아이 때문에 부모는 경악한다. 단 하나만 B보다 A가 못한 것을 말해보라며 애원하기도 한다. “완벽한데도 정이 안 가!”     
공자가 말했다.

삼군대장의 권력을 빼앗을 수는 있겠지만, 일개 보통사람의 그 의지를 빼앗을 수는 없다 [논어 9.26]


사람은 합리적 사고로만 결정하고 느끼는 로봇이 아닌 까닭에,
하늘의 시간이 흐르는 속도는 일정하지만, 사람이 만나는 시간의 속도는 일정할 수 없다.
결국 변화(易)의 핵심은 어디에 있을까?

봄, 여름, 가을, 겨울 같은 자연의 변화는 저절로 변하는 것이며,
시간이 흘러가는 속도 같은 ‘느끼는 변화’는 바깥이 아니라 자기 마음 내부에서 변화하는 것이다.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는 유명한 광고문구가 있다.
더러운 세상을, 배려심이 없는 남편을, 말 안 듣는 아이에게 변화하라고 요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변화(易)를 원한다면 자기에게서부터 변화를 찾아가야 한다.
이 더러운 세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을 행복하다고 하며 감동하는 사람도 있으니,
과연 이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같은 세상을 두고,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달리 느끼고 있는 것이다.
 
바꿀 수 없는 자연의 변화(易)와 바꿀 수 있는 느끼는 변화(易)를 분별하고,
바꿀 수 있는 변화라면, 나로부터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 주역이 말하는 변화(易)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주역은 미숙한 잠룡일 때는 성급히 움직이려 하지 말아야 하고,
물러나야 할 항룔일 때 물러나지 않으면 후회를 남긴다고 가르치는데,
과연 잠룡인지, 항룡인지는 어떻게 안다는 것일까?

본래, 스스로 잠룡인지, 항룡인지를 알면서도 서둘거나 고집하는 경우만을 주역이 상정한 것은 아니다.
남들과 세상은 모두 다 잠룡인 줄 알고, 항룡인 줄 아는데,
자기 스스로는 잠룡이 아니라고 여기고, 항룡이 아니라고 여기는 경우도 있다.
역시 마음이 붙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적당한 시간이 되었다는 것, 밥을 먹어야 할 때인지, 잠을 자야 할 때인지는 본래 스스로 가장 잘 안다.
그러나, 먹지 않고 사는 ‘독립영양인간’이 있다는 뉴스를 본 후 안 먹다가 죽었다는 사람도 있더라.
신이 부르시니 가야 할 때가 되었다며 자살했던 신도들도 있더라.

결국, 주역의 판단은 중용(中庸)의 철학을 향해서 흘러간다.
나를 돌아보지만, 나만 보는 것이 아니다.
너로부터 돌이켜도 보지만 너의 시선에 전적으로 구속되는 것은 아니다.
치우치지 않고 기울지 않는 중용(中庸)이라는 균형의 기준을 잃지 않아야 하는 것이니,
적당한 때를 판단해야 하는 것은, 주관(나)에서 시작하여 객관(너)으로 판단하며 내가 감수한다(나)는
[나 → 너 → 나]의 3단 구조를 갖는다.

참고로 이 3단 구조는 유가철학의 큰 근본이다. 논어의 제1편 학이 제1장을 예로 들어본다.

배워서 때때로 익혀보면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먼 곳일지라도 찾아주는 벗 생기면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원망하지 않으리니 어찌 군자이지 않겠는가?

[나의 기쁨→너와 더불어 함께하는 즐거움→자존을 잃지 않는 나]
유가철학의 개념들은 모두 이 [나 → 너 → 나]의 구조로 얘기할 수도 있다.

왜 효도를 하나요? [내가 기쁘기 때문입니다 → 부모님께서 알아주시면 함께 즐겁구요 → 부모님께서 몰라주셔도 여전히 기쁘며 원망이 생길 리 없습니다] 부모님께서 알아주기를 바라고 효도하겠다는 것이 아니니까요... 

【爻辭】


元亨利貞
(시간이 맞아야)
씨앗에서 성장하고 열매를 맺고 죽게 된다

【初九】

潛龍勿用 잠룡일 때 움직이려 하지 말라
【九二】 見龍在田 利見大人 나타난 용이 밭에 있으니 대인을 만나야 이롭다
【九三】 君子 終日乾乾
夕惕若 厲 无咎
군자가 되어 종일 최선을 다하고
어두움을 경계한다면 위태로울지라도 허물이 없다
【九四】 或躍在淵 无咎 도약을 신중히 헤아리며 연못 속에 있어야 허물이 없다
【九五】 飛龍在天 利見大人 하늘을 나는 용이 하늘에 있으니 대인을 만나야 이롭다
【上九】 亢龍有悔 오르려고만 하는 용은 후회가 있다
【用九】 見群龍无首 吉 용의 무리에 우두머리가 없으니 길하다
Posted by 오빠야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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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명한 것을 성(性)이라 하고 [天命之謂性]
성(性)을 따르는 것을 도(道)라고 한다 [率性之謂道]

성(性)을 따르는 것으로 관점을 돌려보겠습니다.
성(性)을 따르는 것은 단순히 생각하면 쉽습니다.
하늘이 명하여 준 것을 거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럼, 하늘이 준 것을 한번 따져 보겠습니다.
내가 원해서 가지게 된 것이 아닌 게 무엇입니까?
생명, 사람, 이세상, 남자, 부모님 등은 쉽게 보입니다.
도(道)의 '떨어질 수 없음'을 접목하여 안목을 넓히면,
생명만 준 것이 아니라 죽음이 함께 붙어 있었음을, 남성만 준 것이 아니라 여성도 함께 붙어 있었음을,

나중에는 사람만 아니라 자연도, 다른 생명도, 다른 사람도 함께 붙여준 것으로 의미를 넓혀가야 합니다만,

지금은 제한적으로 단순하게 생각하도록 하겠습니다.


내면으로 들어와서 생각해 봅니다.
감정도 욕구도 지혜도 모두 하늘이 준 것입니다.

먹기 싫다고 먹지 않을 수 없고,
자기 싫다고 자지 않을 수 없고,
생각하기 싫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감정도 일어나고 사라집니다.

사람은, 먹어야 하고, 자야 하고, 생각해야 하고, 감정이 있어야 합니다.
도(道)는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이고, 떨어질 수 없는 것이 도(道)입니다. 
 

가장 쉽게 정의하면 ‘태생적 한계’가 성(性)에 가깝습니다.

이쯤에서 장자의 설명을 빌려오겠습니다.
나를 엮고 있는 백개의 뼈마디와 아홉개의 구멍 오장육부들 중에서
더 소중하고 덜 소중한게 있습니까?
하늘은 우위와 열위로 나누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다르게 만들어 역할을 달리하게 해 조화로움을 도모했습니다.

 

태생적 한계가 성(性)이지만,
태생적 한계가 슬플 것도, 아쉬울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기쁨입니다. 
눈과 귀가 똑같이 소중한데,
눈이 들을 수 없다고 속상해 하고,
귀가 볼 수 없다고 속상해 하는 것은
인간이 머리가 중용을 벗어나 만들어낸 것입니다.

 

성(性)을 따르는 욕구, 곧 도(道)와
성(性)을 따르지 않는 욕구, 도(道)가 아닌 욕구가 있습니다.

‘자기 특별함’에 대한 지나친 인식이 그렇게 만듭니다.
나는 특별합니다.

나는 특별해서 다 알 수 있습니다.
나는 특별해서 부자가 되어야 합니다.
나는 특별해서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나는 특별해서 신의 은총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나는 특별해서 예뻐야 합니다.

나는 특별해서 로또에 당첨될 수 있습니다.

… 
나는 특별해서 새처럼 날 수 있습니다 ?

 

그러나, 특별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와 너는 다를 뿐입니다.
나은 것도 있고, 모자란 것도 있고, 그렇게 다를 뿐입니다.
결국 함께 있습니다. ‘떨어질 수 없는 것’이 도(道)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도를 행한다면서 사람에게 멀어지면 도라고 할 수 없다. [중용 제13장]

성(性)을 따르는 것은 천명(天命)을 따르는 것입니다.
단순하게 예시한 몇 가지가 아니라, 안목을 넓혀 더 많이 알고 따라가야 합니다.
어떤 방법이 있겠습니까? 중용에서는 거짓과 위선을 걷어낸 순결한 마음이라고 합니다.
중용 제22장에서 말합니다.

오직 세상에서 가장 지극한 진실함(誠)으로서
그 성(性)을 다하게 할 수 있다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남들이 사람답게 살았다고 하는 평가에 의의가 있지 않습니다.

스스로 다르게 부여받은 천명을 알고, 그 성(性)에 따라 내 역할을 다 하는 것입니다.

이 길은 고통스런 의무의 길이 아니라, 기쁨으로 충만한 길입니다.

Posted by 오빠야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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