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편 학이(學而) 제16장 간상(赶上)/논어(論語)2013. 1. 4. 16:18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근심하지 말고 [不患人之不己知]
내가 남을 제대로 알아주지 못하는 것을 근심하라 [患不知人也]
비슷한 가르침이 논어 제1장부터 시작해 위령공(16), 헌문(32)편 등등 계속 반복되고 있지만, 뒷부분에 조금씩의 차이가 있다. 이 장에서 ‘내가 남을 알아주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라’는 말은 본래 내가 남을 제대로 알 수는 있는 것인지 바꾸어 생각해보라는 뜻도 담겨있다.
속담에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도 내가 남을 안다고 하는 것은 사람이 앎의 교만에 빠졌기에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일 지도 모른다. 드러나고 보여지는 것을 통해 ‘짐작’을 하는 것이지 아는(知) 것이 아닐 것이다. 경험과 정보가 많아지면 짐작이 맞을 확률이 조금 높아진다는 것일 뿐, 사람이 다른 사람을 완전히 알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 남들도 나를 제대로 알아줄 수 없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나’라는 존재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외로운 존재인가? 사실, 나를 알아주는 완전한 친구가 있다. ‘내 안의 나’는 나를 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도 나를 정확히 보고 있으며, 그에게는 아무것도 숨길 수 없으니 정말 완벽히 나의 진면목을 알아주고 있을 것이다. 시인 윤동주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원했던 그 하늘이 곧 ‘내 안의 나’이기도 할 것이다.
이치상은 나도 남을 모르고 남도 나를 모르는게 당연하지만, 그래도 아무도 나를 알아주고 이해해주지 않으면 외롭고 슬픈것이 사람이다. 성인이라 칭송받는 예수께서도, 석가께서도, 공자께서도 세상이 몰라준다고 역시 아쉬워하셨다. 감정조차 없어져야 한다는 뜻, 정(情)이 없는 사람이 되라는 의미는 아니며, 그 감정에 장악당하지 말라는 뜻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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