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10

« 2024/10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방담(放談)/잡담(雜談)'에 해당되는 글 2

  1. 2009.10.01 명절이 반갑지 않은 사람들과 참된 예법(禮法)
  2. 2009.09.28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신화 속 오이디푸스

 명절 생각에 우울증, 피로, 위장장애, 어지러움 같은 스트레스로 인한 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주로 주부들이 겪는 문제로 생각했으나, 최근에는 남편, 미취업자, 미혼자, 시어머니 등 그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고 한다. 산업화 이후 전통적 가족 문화에서 개인주의 문화로 변화화면서 생겨난 문화 갈등이 이유일 것이다.

 주부들에게 명절이 반갑지 않는 까닭은 시댁에 가서 차례상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 아닐까? 요즘에는 차례 음식을 주문하여 사용한다고도 하고, 제사와 차례 때문에 기독교 신자가 된다고도 하는데, 나는 시대적 생명이 다한 예법(禮法)은 바뀌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차례상
차례상 by queenck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조선초기까지는 일반적으로 부모께만 제사를 지냈다.

  『경국대전』「예전(禮典)」「봉사조(奉祀條)」에는 문무관 6품 이상은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의 3대를 제사하고, 7품 이하는 부모, 조부모의 2대를 제사하고, 서인은 돌아가신 부모만을 제사한다고 되어 있다.

  이것은 『예기』「제의(祭義)」에 강조한 것처럼, 절차로 인해 실질인 '공경'을 잃게 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祭不欲數(제불욕삭) 數則煩(삭즉번) 煩則不敬(번칙불경)

제사는 많지 않아야 한다. 많으면 번잡해지고, 번잡해지면 공경함이 없어진다.

예는 마음이 근본이다. 그래서 공자께서도 말씀하셨다.

예는 사치스럽게 하기보다는 검소하게 하는 것입니다. 장례는 장중하게 치르기 보다는 진정으로 슬퍼해야 하는 것입니다 『논어 제3편 팔일』「제3장」

 

  공자께서는 왜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하셨을까?

  효(孝)는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변할 수 없는 내면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살아계시건, 부모님이 돌아가시건 그 사실에 영향을 받지 않고,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효(孝)의 마음이 변하지 않음을 표현하는 의식인 것이다. 그래서 제사는 효의 연장이라고 하셨다.

돌아가신 조상을 살아 계신 듯 섬기는 것효에 이르는 것이다 -『중용(中庸)』「제19장」

제사는 봉양하는 것을 좇아서 효도를 계속하는 것이다-『예기』「제통(祭統)」

  즉, 부모님의 고마움을 잊지 않도록 제사라는 행위를 통해 기억하라는 뜻이 담겨있다.

 

  우리는 조선중기를 기점으로 신분제의 동요가 심했고, 10% 정도에 불과하던 사족(士族)이 편법으로 계속 늘어만 갔다. 공명첩, 납속책, 족보위조 등을 통해서 사족으로 둔갑하여 현재는 대부분이 모두 사족의 혈통이 되었다.

  새로이 사족이 된 계층이 사족처럼 제사를 지내려 하면서 제사가 혼란스러워 졌고, 권위를 지키려고 한 사족 계층이 또 방어를 하면서 형식적으로 치우치고 혼란스러워졌다.

 

  그래서 이이 선생께서는 각 가정마다 다른 제사의식을 문제 삼으셨다.

지금 세속의 대다수가 예를 알지 못하여 제사 지내는 의식이 집집마다 같이 않으니 심히 웃을 만하다(今俗 多不識禮 其行祭之儀 家家不同 甚可笑也) [격몽요결 제7장 제례]

  그러나 이이 선생께서 제사의식을 문제삼은 것은 '형식에 치우친 예'를 강조하신 것이 아니라, 기득권자(사족)의 입장에서 방어하고자 한 까닭이 아닐까 의심해 본다. 널리 알려진 속담처럼 “남의 집 제사에 감놔라 대추놔라” 하는 것은 무례한 일이다.

 

  그러니 '조율이시'니 '홍동백서'니 하는 것이 중요한 바가 아니다. 『예기』「제의(祭義)」에서 말하는 다섯 가지를 잊지 않으면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제사를 지내면서 ①부모님께서 거처하셨던 곳을 생각해보고 ②부모님이 웃음소리와 말소리를 생각해보고 ③부모님께서 뜻하셨던 바를 생각해보고 ④부모님이 즐거워 하는 바를 생각해보고 ⑤부모님께서 좋아하실 음식을 생각해 본다.

 

  예(禮)를 행한다고 하면서 지나치게 형식에 치우쳐 실질을 잃어버리고 있는 듯 하다.

공자께서는 서(恕)로 일관하셨다고 하셨으니, 마땅히 조상님께서 살아계셨다면 무엇을 좋아하셨을 지, 마음으로 통(通)해야 할 것이다. 마치 살아계신 것처럼 하라는 ‘사망여사존(事亡如事存)’도 그러한 뜻이리라.

 

  손주가 좋아하는 '피자'를 상에 놓으면 좋아하실 수 있으며, 간소하게 차림으로써 며느리와 아들이 화목하다면 더 좋아하실 수 있을 것이다.

 

  부모님께서 생전에 드시지 않던 술을 올리는 것이 과연 예(禮)일까? 경조사에 축하와 위로의 마음 없이 주고받는 돈으로 셈하고자 함이 과연 예(禮)일까? 오늘날 예(禮)는 지나치게 형식에 치우쳐 있는 듯 보인다. 마땅히 변해야 할 것은 변해야 한다.


:
Posted by 오빠야닷컴

   프로이트가 주장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남자아이가 3세에서 5세 정도에 이르면 어머니에 대한 연정 때문에 아버지에 대해 질투심, 경쟁심, 적의심을 일으키게 된다는 이론이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차지했다'는 결과만을 가져와 이름을 붙였기에, 「오이디푸스」가 어머니를 차지하기 위해 아버지를 죽였다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신화 속 「오이디푸스」는 전혀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패륜아가 되어버린, 잔인한 숙명의 희생양일 뿐이었다. 

  신화 속 「오이디푸스」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오이디푸스」는 코린트의 왕 「폴리부스」와 왕비 「페리보이아」의 아들로 행복한 왕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사건이 터졌다. 연회석상에서 술에 취한 오이디푸스의 친구가 말했다.

오이디푸스! 너는 주워온 자식이야

  아버지 「폴리부스」가 정색을 하고 친부자간이라고 나무랐지만, 과한 반응에 「오이디푸스」는 의심이 더해졌다. 그래서 델포이 신전으로 찾아가 「아폴론」에게 신탁을 청했다. 그런데「아폴론」은 친자여부가 아닌 엉뚱한 답을 내놓는다.

 
Gustave Moreau: Oedipus and the Sphinx (1864)
Gustave Moreau: Oedipus and the Sphinx (1864) by euthman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너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간음을 하게 될 것이다. 

 「오이디푸스」는 상심했다. 아버지(양친)와 어머니를 떠나면 운명도 어쩔 수 없으리라 판단한 「오이디푸스」는 눈물을 흘리며 코린트로 돌아가지 않고 방랑의 길을 나서게 되었다. 이것을 기억하자. 「오이디푸스」는 패륜의 운명을 용납할 수 없어 이별을 선택했음을...


  길을 가던 「오이디푸스」는 마차를 몰던 한 노인을 만난다. 길을 비키라는 언쟁 끝에 격분한 「오이디푸스」는 그 노인을 살해해 버린다. 그런데 이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죽은 노인이 테베의 왕 「라이오스」였던 때문만이 아니었다. 죽은 그가 바로「오이디푸스」의 친아버지였던 까닭이다. 오래전 「라이오스」는 아들에게 죽는다는 예언을 들었다. 그래서 갓난아이 「오이디푸스」를 외국으로 보내 인연을 끊었다. 그러니 이 둘이 서로서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생사결을 했던게 어찌 패륜일 수 있겠는가? 


 「오이디푸스」가 발걸음을 재촉하여 도착한 곳은 「라이오스」가 다스렸던 테베! 그곳은 공포와 혼란으로 어수선했다. 질투의 여신 「헤라」가 보낸 「스핑크스」라는 괴물로 인해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죽어나가던 지옥이었다. 당연히 왕「라이오스」가 한 젊은이에게 살해당했다는 사실도 사람들의 관심사 밖에 있었다. 


 「라이오스」왕이 죽은 후 임시 섭정을 하던 「크레온」 역시 스핑크스를 물리칠 방도를 전혀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스핑크스를 처치하는 사람을 테베의 왕으로 삼겠노라 공언을 했다. 그러자 우리「오이디푸스」가 나선다.

  스핑크스는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는 자를 잡아먹는 괴물이었다. 하지만 「오이디푸스」는 수수께끼를 간단히 풀어버렸다. 그리고 스핑크스는 수치심에 자살을 선택했다. 이렇게... 「오이디푸스」는 테베에 평온을 찾아주었고, 왕으로 등극한다.

네 발로 걷기도 하고, 두 발로 걷기도 하고, 세 발로 걷기도 하는데, 네 발로 걸을 때가 가장 느린 것은 무엇이냐?

  어릴 때는 네 발로 걷고, 성장해서는 두 발로 걷고, 노인이 되어서는 지팡이를 가지고 세 발로 걷는 「인간」을 뜻하는 수수께끼였다. 


  「오이디푸스」는 공석이던 테베의 왕으로 즉위했고 「라이오스」왕의 왕비였던 「이오카스테」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아내가 된 「라이오스」왕의 왕비는 누구일까? 「라이오스」가 친부였다는 사실을 알면 쉽게 추론할 수 있다. 그렇다. 「이오카스테」는 「오이디푸스」의 친어머니였던 것이다. 


  이렇게해서「오이디푸스」는 결과적으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차지’하게 되었는데... 


  우리는 이미 진실을 알고 있지만, 이야기속의 「오이디푸스」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임을 기억하자.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왕이 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그리고 아내 「이오카스테」와 금슬 역시 좋았었다. 슬하에 아들 두 명, 딸 두 명을 두게 되었고, 나날이 평온 속에 번영하던 테베! 그런데 어느 날부터 무서운 전염병이 창궐하고 한발이 들어서 인심이 흉흉해졌다. 그래서 테베의 왕「오이디푸스」는 델포이 신전으로 사람을 보내어 「아폴론」에게 신탁을 청하였다.

지금의 테베의 사태는 부정한 자가 있기 때문이다.

  부정한 자를 찾던 「오이디푸스」는 전왕 「라이오스」왕의 의문사가 떠올랐다. 그 사건을 조사하던 오이디푸스는 자기가 죽인 노인이 「라이오스」임을 알았다. 그리고 결국 모든 전말을 다 알게 되었다...
  친아버지 「라이오스」를 살해하였고, 친어머니 「이오카스테」와 결혼하여 자녀까지 두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결국 친어머니이자 아내였던 「이오카스테」는 목을 매 자살을 하고, 「오이디푸스」는 스스로 눈을 찔러 장님이 된다... 


  「오이디푸스」와 「이오카스테」사이에는 「안티고네」가 있었다. 「오이디푸스」의 딸이였지만 어머니 「이오카스테」와의 관계를 따지면 누이동생이기도 했다. 「오이디푸스」는 「안티고네」와 세상을 유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테세우스」에게 가서 여생을 마쳤다.


  「오이디푸스」의 패륜이 알려진 후 모든 사람들이 그를 증오했다. 신화 속 인물이지만 프로이트가 못을 박아버린 까닭에 그는 오랫동안 패륜의 이미지로 남게 될 것이다. 따지고보면「오이디푸스」는 패륜을 저지르지 않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코린트를 떠났던 것이었는데...





:
Posted by 오빠야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