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반갑지 않은 사람들과 참된 예법(禮法) 방담(放談)/잡담(雜談)2009. 10. 1. 10:57
명절 생각에 우울증, 피로, 위장장애, 어지러움 같은 스트레스로 인한 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주로 주부들이 겪는 문제로 생각했으나, 최근에는 남편, 미취업자, 미혼자, 시어머니 등 그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고 한다. 산업화 이후 전통적 가족 문화에서 개인주의 문화로 변화화면서 생겨난 문화 갈등이 이유일 것이다. 주부들에게 명절이 반갑지 않는 까닭은 시댁에 가서 차례상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 아닐까? 요즘에는 차례 음식을 주문하여 사용한다고도 하고, 제사와 차례 때문에 기독교 신자가 된다고도 하는데, 나는 시대적 생명이 다한 예법(禮法)은 바뀌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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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초기까지는 일반적으로 부모께만 제사를 지냈다.
『경국대전』「예전(禮典)」「봉사조(奉祀條)」에는 문무관 6품 이상은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의 3대를 제사하고, 7품 이하는 부모, 조부모의 2대를 제사하고, 서인은 돌아가신 부모만을 제사한다고 되어 있다.
이것은 『예기』「제의(祭義)」에 강조한 것처럼, 절차로 인해 실질인 '공경'을 잃게 하지 않기 위함이었다.
祭不欲數(제불욕삭) 數則煩(삭즉번) 煩則不敬(번칙불경)
제사는 많지 않아야 한다. 많으면 번잡해지고, 번잡해지면 공경함이 없어진다.
예는 마음이 근본이다. 그래서 공자께서도 말씀하셨다.
예는 사치스럽게 하기보다는 검소하게 하는 것입니다. 장례는 장중하게 치르기 보다는 진정으로 슬퍼해야 하는 것입니다 『논어 제3편 팔일』「제3장」
공자께서는 왜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하셨을까?
효(孝)는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변할 수 없는 내면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살아계시건, 부모님이 돌아가시건 그 사실에 영향을 받지 않고,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효(孝)의 마음이 변하지 않음을 표현하는 의식인 것이다. 그래서 제사는 효의 연장이라고 하셨다.
돌아가신 조상을 살아 계신 듯 섬기는 것은 효에 이르는 것이다 -『중용(中庸)』「제19장」
제사는 봉양하는 것을 좇아서 효도를 계속하는 것이다-『예기』「제통(祭統)」
즉, 부모님의 고마움을 잊지 않도록 제사라는 행위를 통해 기억하라는 뜻이 담겨있다.
우리는 조선중기를 기점으로 신분제의 동요가 심했고, 10% 정도에 불과하던 사족(士族)이 편법으로 계속 늘어만 갔다. 공명첩, 납속책, 족보위조 등을 통해서 사족으로 둔갑하여 현재는 대부분이 모두 사족의 혈통이 되었다.
새로이 사족이 된 계층이 사족처럼 제사를 지내려 하면서 제사가 혼란스러워 졌고, 권위를 지키려고 한 사족 계층이 또 방어를 하면서 형식적으로 치우치고 혼란스러워졌다.
그래서 이이 선생께서는 각 가정마다 다른 제사의식을 문제 삼으셨다.
지금 세속의 대다수가 예를 알지 못하여 제사 지내는 의식이 집집마다 같이 않으니 심히 웃을 만하다(今俗 多不識禮 其行祭之儀 家家不同 甚可笑也) [격몽요결 제7장 제례]
그러나 이이 선생께서 제사의식을 문제삼은 것은 '형식에 치우친 예'를 강조하신 것이 아니라, 기득권자(사족)의 입장에서 방어하고자 한 까닭이 아닐까 의심해 본다. 널리 알려진 속담처럼 “남의 집 제사에 감놔라 대추놔라” 하는 것은 무례한 일이다.
그러니 '조율이시'니 '홍동백서'니 하는 것이 중요한 바가 아니다. 『예기』「제의(祭義)」에서 말하는 다섯 가지를 잊지 않으면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제사를 지내면서 ①부모님께서 거처하셨던 곳을 생각해보고 ②부모님이 웃음소리와 말소리를 생각해보고 ③부모님께서 뜻하셨던 바를 생각해보고 ④부모님이 즐거워 하는 바를 생각해보고 ⑤부모님께서 좋아하실 음식을 생각해 본다.
예(禮)를 행한다고 하면서 지나치게 형식에 치우쳐 실질을 잃어버리고 있는 듯 하다.
공자께서는 서(恕)로 일관하셨다고 하셨으니, 마땅히 조상님께서 살아계셨다면 무엇을 좋아하셨을 지, 마음으로 통(通)해야 할 것이다. 마치 살아계신 것처럼 하라는 ‘사망여사존(事亡如事存)’도 그러한 뜻이리라.
손주가 좋아하는 '피자'를 상에 놓으면 좋아하실 수 있으며, 간소하게 차림으로써 며느리와 아들이 화목하다면 더 좋아하실 수 있을 것이다.
부모님께서 생전에 드시지 않던 술을 올리는 것이 과연 예(禮)일까? 경조사에 축하와 위로의 마음 없이 주고받는 돈으로 셈하고자 함이 과연 예(禮)일까? 오늘날 예(禮)는 지나치게 형식에 치우쳐 있는 듯 보인다. 마땅히 변해야 할 것은 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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