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賁 亨 小利 有攸往
【初九】賁其趾 舍車而徒
【六二】賁其須
【九三】賁如 濡如 永貞吉
【六四】賁如 皤如 白馬翰如 匪寇 婚媾
【六五】賁于丘園 束帛 戔戔 吝 終吉
【上九】白賁 无咎

  외모를 꾸미고 치장하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획일적인 교복에서 벗어나 좀 더 개성적으로 꾸며 입고자 하는 아이들의 심리를 억지로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무분별한 자유를 허용하는 방종과 개인의 개성을 존중해 주는 것은 다른 일인 것 같다. 일반적인 오해와는 달리 공자께서는 외양을 꾸미는 것을 배척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비유를 하면서 "덕을 좋아하기를 아름다운 용모를 좋아하듯 하라"[대학 제6장 성의]고 하셨다. 꾸미고 치장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이 지나쳐 여우를 멸종 시키는 인간의 탐욕이 무서운 것이다.

 

賁 亨 小利 有攸往
치장하고 꾸미는 것(賁)은 성장기(亨)의 일이니 성숙기에는 효과가 적다(小利) 시간은 흐른다(有攸往)
  외모를 치장하고 꾸미고 가꾸는 것은 성장기(亨) 때의 일이라고 한다. 열매를 맺어야 하는 시기(利)에 접어들면 즉, 노화가 시작된 후라면 아무리 꾸며도 효과가 적으니(小) 젊음의 아름다움을 치장으로 이겨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시간은 지나가게 마련이고 사람은 늙기 마련이다.

 

賁其趾 舍車而徒
그 발을 꾸미게 되면(賁其趾) 수레를 버리고(舍車而) 걸으려 한다(徒).

  예쁜 신발을 신고 발을 꾸미게 되면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수레를 버리고 걸으려고 하니 그만큼의 고생이 따르는 법이다. 얻으려 하면 잃는 것이 있게 되는 이치이다. 그렇다는 것이지, 주역은 그것이 허물이라는 등의 평가를 하지는 않고 있다.

 

賁其須
남자도 그 수염을 꾸미려 한다(賁其須)
  발을 꾸미고 싶어하는 것은 여자의 치장을 빗대어 말한 것이지만, 남자도 역시 마찬가지로 꾸미고 치장하고 싶어 하는 젊음의 기운을 갖고 있는 것이요, 치장은 성별을 떠난 젊음의 본능이니 그 수염을 꾸미려고 할 것이라 한다.

 

賁如 濡如 永貞吉
꾸밀 수 있는 것은(賁如) 은혜를 입은 것(濡如)이니 끝까지 계속할 수 있어야 길하다(永貞吉).
  꾸미고 싶어도 꾸밀 수 없는 사람도 있다. 농담 삼아 '호박을 꾸민다고 수박이 되냐?'고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외모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농담이기도 할 것이다. 끝까지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신체를 끝까지 잘 간수하라는 말이다. 『효경』에서 신체는 부모님께 물려받은 것이니 손상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고 하였다. 주역이 쓰여진 주나라 시대의 봉건 사회에서는 성형을 예상하지는 못했을 것이기에, 성형을 경계한 것이 아니라, 다치고 병드는 것으로 신체를 훼손시키는 것을 뜻한 말일 것이다.

 

賁如 皤如 白馬翰如 匪寇 婚媾
멋지게 꾸민(賁如) 백발의 신사(皤如)가 백마를 타고 갈기를 날리니(白馬翰如) 도적이 아니라(匪寇) 혼인을 청하려고 하는 것(婚媾)이다.
  호감을 사려고 노력하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나는 가진 것을 뺏어가려는 도적일 것이요, 다른 하나는 마음으로 함께 어울리고 싶은 사람일 것이다.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알 것인가? 백발의 신사는 젊음은 잃었으나 오히려 내면의 중후한 멋을 가진 사람을 비유하니, 내면에서 우러나는 중우한 멋이 있는 사람이다. 내면적인 멋을 지닌 사람이라면 도적이 아니라 함께 하려고 찾아오는 사람일 것이라는 말이다. 내면의 덕은 나이를 들면 외모를 통해 드러나는 법이다. 그래서 마흔 이후의 얼굴은 자기 책임이라고 한다.

 

賁于丘園 束帛 戔戔 吝 終吉
정원을 잘 가꾸었으나(賁于丘園) 예물이 적으면(束帛) 불평이 있어(戔戔) 어려움이 있겠지만(吝) 마침내 길하다(終吉). 
  혼인은 둘만의 결합이 아니라 집안과 집안과의 결합이라고 한다. 정원을 잘 가꾼다는 것은 ‘둘이서 화목하게 가정을 잘 꾸리는 것’을 말한다. 예물이 많더라도 두 사람의 금술이 좋지 못한 것보다 예물이 적더라도 두 사람이 잘 사는 것이 부모들의 근원적인 바램일 것이다.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고 하듯 작은 것을 탐하면 오히려 큰 것을 잃어버린다.

 

白賁 无咎
순박하게 꾸미는 것(白賁)이야말로 허물이 없다(无咎).

  화려함으로 꾸미는 것이 아닌 담박하게 꾸미는 것을 뜻한다. 『중용』에서 시경을 인용하며 ‘비단옷을 입고 흩옷을 덧입는다’[중용 제33장]고 하였다. 겉은 소박한 옷으로 걸쳤지만 속의 비단무늬가 은은히 우러나오는 것처럼 입어야 담박하기 때문에 싫증을 내지 않고 은은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법이니, 비단옷만 걸치고 거리를 활보하면 곧 싫증이 나게 된다는 말이다.

Posted by 오빠야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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