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習坎卦(습감괘) : 함정은 잴 수 있지만, 절망의 깊이는 잴 수 없다. 간상(赶上)/주역(周易)2010. 2. 1. 14:14
習坎 有孚 維心亨 行 有尚
【初六】習坎 入于坎窞 凶
【九二】坎 有險 求 小得
【六三】來之坎坎 險 且枕 入于坎窞 勿用
【六四】樽酒 簋貳 用缶 納約自牖 終 无咎
【九五】坎不盈 祗既平 无咎
【上六】係用黴纆 寘于叢棘 三歲不得 凶
인생은 함정의 연속이기도 하다. 사람의 교활함은 짐승을 잡기 위해서만 그물을 펼치고 함정을 만들지는 않는다. 사람이 사람에게 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이 인생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간이 가장 경계해야 할 위험한 적은 인간이라고 하였다. 공자께서는 "사람마다 모두 자신이 지혜롭다고 과신하지만 그물과 덫이나 함정으로 몰아넣어도 피할 줄을 모른다"[중용 제7장]고 안타까워 하셨다. 습감(習坎)괘는 함정에 빠짐을 의미하는 괘이다. 습(習)은 잘못 들어간 글자로 보아, 감(坎)괘라고 하기도 한다.
習坎 有孚 維心亨 行 有尚
함정에 빠져도(習坎) 신념을 잃지 말고(有孚) 마음을 붙들어야(維心) 발전(亨)이 있다. 그렇게 나아가야(行) 복이 생긴다(有尚)
영특한 제자였던 제아가 공자에게 "어진 사람이 있는데 우물에 사람이 떨어졌다고 하면 그는 구하려 내려갈까요?"라고 여쭈었다. 말하자면 어진 자를 속이고 이용해 먹기는 쉽지 않겠느냐는 뜻이었다. 공자께서는 "어진 사람을 속일 수는 있겠지만 그를 우롱할 수는 없을 것이다"[논어 제6편 옹야 제26장]고 답을 하셨다. 인자(仁者)를 속일 수도 있으니 그를 함정에 빠뜨릴 수는 있다. 하지만 속임을 당했다고 속인자를 미워하거나 어질었기에 당했음을 한탄하여 어질지 않은 길을 가도록 변하게 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말씀이셨다. 그 뜻은 유학에서 말하는 ‘신독’이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곳, 즉 자신만이 아는 자기 마음의 움직임을 두려워하고 조심하는 것이 중요하니, 물리적 함정보다 더 위험한 것은 정신적 함정이다.
習坎 入于坎窞 凶
구덩이에 빠지고(習坎) 다시 구덩이에 빠지면(入于坎窞) 흉(凶)하다.
처음의 구덩이는 물리적인 함정이지만, 또 다시 빠지게 되는 구덩이는 자기 내면의 구덩이에 빠지게 되는 것을 말함이니, 곧 마음의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함정에 빠졌다고 뜻을 저버리는 것은 재차 함정에 빠지는 것이니, 공자께서 "군자는 어쩔 수 없는 때에도 원칙을 벗어나지 않지만, 소인은 어쩔 수 없게 되면 곧 함부로 한다"[논어 제15편 위령공 제2장]고 하신 말씀이 연상되는 효사이다.
坎 有險 求 小得
구덩이에(坎) 위험이 있을지라도(有險) 절망하지 않고 방도를 구하면(求) 적게라도 얻음이 있을 것이다(小得)
외적인 함정은 벗어날 수도 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였고,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하였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였다. 벗어날 수 없는 함정은 마음의 함정이며 절망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來之坎 坎 險 且枕 入于坎窞 勿用
구덩이로 와서(來之坎) 빠지지는 않았으나 구덩이(坎)가 위험하다고(險) 잠자듯 나아가지 못한다면(且枕) 그 역시 구덩이에 빠지는 것과 같으니(入于坎窞) 그렇게 잠자듯 하지 말아야 한다(勿用)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재물이 아까워 쓰지 못하고 묻어두는 부자는 재물이 하나도 없는 가난한 자와 다를 것이 없다. 구덩이에 빠질까 두려워 나아가지 못함은 구덩이에 빠져서 나아가지 못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樽酒 簋貳 用缶 納約自牖 終 无咎
술을 정성스레 마련하고(樽酒) 두 그릇의 기장밥을 준비하는 마음으로(簋貳) 소박하게 하여(用缶) 창을 통해 들이고 받으며(納約自牖) 제사를 지내면 마침내(終) 허물이 없을 것이다(无咎).
제사를 지내고 기도를 하는 까닭은 바른길을 가게 해 주십사, 세상을 바르게 해 주십사 비는 것이다. 혜택을 비는 것이 아니라 정의로움을 비는 것이며, 나를 위해 비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위해서 비는 것이다. 공자께서 병이 들었을 때 자로가 병을 낫게 해 달라고 기도하러 가려고 하였다. 공자께서 그런 선례가 있는지를 물으니 자로는 자신 있게 '너를 위해서 천지신령께 기도한다'는 고대의 문헌을 근거로 내 세웠다. 그러자 공자께서는 그 문헌에서 말하는 기도는 기적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뉘우치고 바른 길을 가게 해 주십사 하는 기도이니, “그런 기도라면 내가 행한지 오래되었다”고 하셨다.[논어 제7편 술이 제35장] 함점에 빠졌어도 내가 아닌 전체를 둘러봐야 허물이 없다.
坎不盈 祗既平 无咎
구덩이가 아직 차지 않았을 때(坎不盈) 세상이 바른 기운으로 돌아온다면(祗既平) 허물이 없다(无咎).
함정은 악을 가두기 위해 마련한 감옥이 아니라, 바르지 못한 자가 바른 자를 해치기 위하여 준비한 함정이다. 세상이 바르게 돌아온다면 바르지 못한 자가 힘을 쓰지 못하게 되는 것이니, 구덩이가 차지 않았다면 곧 빠져나올 수 있게 될 것이니 허물이 없을 것이다. 또한, 함정에 빠진 바른이가 그 곳에서 빠져나오는 것 보다 세상이 바로잡히는 것이 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 허물이 없다고 하였을 지도 모른다.
係用黴纆 寘于叢棘 三歲不得 凶
팔다리가 단단히 묶여서(係用黴纆) 빽빽하게 심겨진 가시나무속에 갇히게 되었다면(寘于叢棘) 삼년이 지나도 풀려날 수 없음이니(三歲不得) 흉(凶)하다.
팔다리를 단단히 묶여야 하는 까닭은 그가 강자이기 때문이다. 강자의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함정을 헤어나기 어렵게 된다. 강자가 함정에 빠진 이유는 강한 힘을 드러내지 말아야 할 때 드러냈기 때문이다. “뛰어난 재주를 어리석음으로 감추고, 지혜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명철함을 지키고, 청렴함을 혼탁 속에 가려두고, 굽힘으로써 몸을 펴는 것, 이런 처세가 험난한 세상을 건너는 배를 타는 것이며, 몸을 보호하는 방편이다”[채근담 제11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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