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3

« 2024/3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30

離 利貞 亨 畜牝牛 吉
【初九】履錯然 敬之 无咎
【六二】黃離 元吉
【九三】日昃之離 不鼓缶而歌 則大耋之嗟 凶
【九四】突如其來如 焚如 死如 棄如
【六五】出涕沱若 戚嗟若 吉
【上九】王用出征 有嘉 折首 獲匪其醜 无咎

  리(離)괘는 아래 위로 해가 두 개인 괘이다. 이미 해가 있으면 다시 해를 만들지 않는 것이 하늘의 뜻이다. 리(離)괘는 해가 있음에도 하나의 해를 더 만드는 것이니, 곧 바람직하지 않은 힘의 행사이다. 새로운 해는 기존의 해가 중천에 있을 때 세상에 나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해가 저물어 없어지고 난 후에 나서야 하는 것이 순리이다. 그 시기를 지키지 못한 것이니 옳지 못한 침략을 상징한다.

 

離 利貞亨 畜牝牛 吉
침략(離)은 결실을 얻고 끝을 낸 후에(利貞) 성장시키겠다는 것이나(亨) 순한 암소를 기르듯(畜牝牛) 순응해야 길(吉)하다.
  주역이 말하는 순탄한 변화의 법칙은 씨(元)가 자라서(亨) 열매를 맺고(利) 소멸하는(貞) 원형리정(元亨利貞)의 순서를 따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침략은 엎어버린 후에(利貞) 성장(亨)을 도모하는 것을 말함이니 천도(天道)를 벗어난 것이며 섭리에 따르지 않는 조급함이다. 곧 해가 있는데 해가 나서려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어긋남을 도모하지 말고 순한 암소를 기르듯 해야만 길할 것이다. 암소는 곤(坤)괘의 암말과 마찬가지로 유순함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유순하지 못하면 전쟁이 있고 파괴가 있고 이별이 있게 된다.


履錯然 敬之 无咎
어지러운 발소리가 들리면(履錯然) 그것을 공경해야(敬之) 허물이 없다(无咎)

  이착연(履錯然)은 발소리가 어지럽다는 말이다. 어지러운 발소리는 군사들이 훈련을 하는 소리이다. 급박하게 뒤섞인 발소리를 들으면, 보지 않아도 군사의 훈련임을 안다. 비가 오기 전에는 청개구리가 울고, 제비가 낮게 나는 등등의 비의 징조가 있고, 태풍이 불기 전에는 별이 지나치게 맑거나 해륙풍이 무너지는 징조가 나타난다. 중용에도 “나라와 집안이 흥하려 하면 반드시 상서로운 조짐이 있고, 나라와 집안이 망하려 하면 반드시 요사스러운 조짐이 있다”[중용 24장]고 하였다. 어지러운 군사의 발소리는 침략의 징조이다.

 

黃離 元吉
중용의 덕으로 침략을 대하면(黃離) 근원적으로 길하다(元吉)
  문종이 김종서에게 ‘중정(中正)’에 관해서 물으니, "중(中)이라는 것은 치우치지도 않고 기울지도 않으며 지나침도 없고 미치지 못함도 없는 것을 뜻합니다. 정(正)이란 것은 지극히 공평하여 조금도 사심이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정(正) 또한 중(中)입니다" 즉, 바른 것과 바르지 않은 것의 중간이 아니라, 바른 것이 중(中)이라는 말이다. 중은 또한 하늘의 도를 따르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중(中)으로 침략을 대하는 것은 어떠한 것일까? 해가 중천에 있는데 다른 해를 만들려는 것이라면 응징해야 하고, 이미 기운 해라면 물러나는 것이 곧 중(中)을 따르는 것일 게다. 신라의 마지막 경순왕이 나라가 희망이 없음을 알고 스스로 고려에게 나라를 바쳤으니, 그 또한 중용으로 침략을 대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日昃之離 不鼓缶而歌 則大耋之嗟 凶
해가 기울면 침략을 대비해야 하는데(日昃之離) 북을 쳐서 경계하지 않고 노래를 부르니(不鼓缶而歌) 경험 많고 혜안이 있는 노인네가 탄식하게 되어(則大耋之嗟) 흉(凶)하다.
  해가 차서 기울고, 기존의 해가 지고 새로운 해가 등장하게 되는 변화가 이어지게 하는 것이 하늘의 섭리이다. 해와 완전히 사라지고 새로운 해가 떠 오르는 순조로운 순환이 이뤄지면 좋겠지만,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서부터 조급하게 그 틈을 노리는 침략의 위험이 시작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침략을 대비하지 않고 노래를 부르고 즐거워만 하고 있으니 경험 많은 노인네가 어찌 탄식이 없겠는가? 공자께서 “사람이 멀리 내다보고 고민하지 않으면 반드시 근심이 가까운 날 생긴다”[논어 제15편 위령공 제12장]고 하셨다.

 

突如其來如 焚如 死如 棄如
침략은 갑작스레 이뤄져(突如其來如) 불태워버리고(焚如) 죽여버리고(死如) 내다버리고(棄如) 한다.

  평화롭던 마을이 쑥대밭이 되는 것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서서히 받아들일 수 있는 속도와 힘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공든 탑은 오랜 시간이지만 그 무너지는 것은 일순간이다. 급작스럽게 불타고 죽고 버려지게 된다.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出涕沱若 戚嗟若 吉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고(出涕沱若) 탄식이 쏟아져 나오니(戚嗟若) 길(吉)하다
.
  눈물이 비오듯 하고  탄식소리가 끊임없는 까닭은 살아남은 사람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니 길하다. 불타고 죽고 버려져도 끝장이 난 것이 아니니, 침략자가 순리를 따르지 않은 까닭이다. 해가 지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해를 만들려고 한 침략세력의 과욕 때문이니 천명(天命)이 침략자들에게 있지 않은 까닭이다.

 

王用出征 有嘉 折首 獲匪其醜 无咎
왕이 출정하여(王用出征) 기쁨을 줄 것이다(有嘉). 우두머리는 참수(折首)해도 그 부하들은 죽이지 않아야(獲匪其醜) 허물이 없다(无咎).
  왕이 출정을 하는 것은 바른 천명(天命)을 따르는 것이다. 왕이 사람들을 모아 반격을 하여 승전할 것이나 다만 우두머리는 참수해도 그 부하들은 죽이지 않아야 한다. 주역의 이 가르침에 의하면 일본의 위정자들은 미워해도 일본 국민을 미워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 된다. 백성들은 모두 같은 힘없고 가엾은 생명일 뿐이다. 참수하고 미워해야 할 이는 그들을 이용한 우두머리 계층이다.

:
Posted by 오빠야닷컴
29

習坎 有孚 維心亨 行 有尚

【初六】習坎 入于坎窞 凶

【九二】坎 有險 求 小得

【六三】來之坎坎 險 且枕 入于坎窞 勿用

【六四】樽酒 簋貳 用缶 納約自牖 終 无咎

【九五】坎不盈 祗既平 无咎

【上六】係用黴纆 寘于叢棘 三歲不得 凶

  인생은 함정의 연속이기도 하다. 사람의 교활함은 짐승을 잡기 위해서만 그물을 펼치고 함정을 만들지는 않는다. 사람이 사람에게 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이 인생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간이 가장 경계해야 할 위험한 적은 인간이라고 하였다. 공자께서는 "사람마다 모두 자신이 지혜롭다고 과신하지만 그물과 덫이나 함정으로 몰아넣어도 피할 줄을 모른다"[중용 제7장]고 안타까워 하셨다. 습감(習坎)괘는 함정에 빠짐을 의미하는 괘이다. 습(習)은 잘못 들어간 글자로 보아, 감(坎)괘라고 하기도 한다.

 

習坎 有孚 維心亨 行 有尚

함정에 빠져도(習坎) 신념을 잃지 말고(有孚) 마음을 붙들어야(維心) 발전(亨)이 있다. 그렇게 나아가야(行) 복이 생긴다(有尚)

  영특한 제자였던 제아가 공자에게 "어진 사람이 있는데 우물에 사람이 떨어졌다고 하면 그는 구하려 내려갈까요?"라고 여쭈었다. 말하자면 어진 자를 속이고 이용해 먹기는 쉽지 않겠느냐는 뜻이었다. 공자께서는 "어진 사람을 속일 수는 있겠지만 그를 우롱할 수는 없을 것이다"[논어 제6편 옹야 제26장]고 답을 하셨다. 인자(仁者)를 속일 수도 있으니 그를 함정에 빠뜨릴 수는 있다. 하지만 속임을 당했다고 속인자를 미워하거나 어질었기에 당했음을 한탄하여 어질지 않은 길을 가도록 변하게 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말씀이셨다. 그 뜻은 유학에서 말하는 ‘신독’이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곳, 즉 자신만이 아는 자기 마음의 움직임을 두려워하고 조심하는 것이 중요하니, 물리적 함정보다 더 위험한 것은 정신적 함정이다.

 

習坎 入于坎窞 凶

구덩이에 빠지고(習坎) 다시 구덩이에 빠지면(入于坎窞) 흉(凶)하다.

  처음의 구덩이는 물리적인 함정이지만, 또 다시 빠지게 되는 구덩이는 자기 내면의 구덩이에 빠지게 되는 것을 말함이니, 곧 마음의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함정에 빠졌다고 뜻을 저버리는 것은 재차 함정에 빠지는 것이니, 공자께서 "군자는 어쩔 수 없는 때에도 원칙을 벗어나지 않지만, 소인은 어쩔 수 없게 되면 곧 함부로 한다"[논어 제15편 위령공 제2장]고 하신 말씀이 연상되는 효사이다.

 

坎 有險 求 小得

구덩이에(坎) 위험이 있을지라도(有險) 절망하지 않고 방도를 구하면(求) 적게라도 얻음이 있을 것이다(小得)

  외적인 함정은 벗어날 수도 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였고,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하였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였다. 벗어날 수 없는 함정은 마음의 함정이며 절망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來之坎 坎 險 且枕 入于坎窞 勿用

구덩이로 와서(來之坎) 빠지지는 않았으나 구덩이(坎)가 위험하다고(險) 잠자듯 나아가지 못한다면(且枕) 그 역시 구덩이에 빠지는 것과 같으니(入于坎窞) 그렇게 잠자듯 하지 말아야 한다(勿用)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재물이 아까워 쓰지 못하고 묻어두는 부자는 재물이 하나도 없는 가난한 자와 다를 것이 없다. 구덩이에 빠질까 두려워 나아가지 못함은 구덩이에 빠져서 나아가지 못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樽酒 簋貳 用缶 納約自牖 終 无咎

술을 정성스레 마련하고(樽酒) 두 그릇의 기장밥을 준비하는 마음으로(簋貳) 소박하게 하여(用缶) 창을 통해 들이고 받으며(納約自牖) 제사를 지내면 마침내(終) 허물이 없을 것이다(无咎).

  제사를 지내고 기도를 하는 까닭은 바른길을 가게 해 주십사, 세상을 바르게 해 주십사 비는 것이다. 혜택을 비는 것이 아니라 정의로움을 비는 것이며, 나를 위해 비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위해서 비는 것이다. 공자께서 병이 들었을 때 자로가 병을 낫게 해 달라고 기도하러 가려고 하였다. 공자께서 그런 선례가 있는지를 물으니 자로는 자신 있게 '너를 위해서 천지신령께 기도한다'는 고대의 문헌을 근거로 내 세웠다. 그러자 공자께서는 그 문헌에서 말하는 기도는 기적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뉘우치고 바른 길을 가게 해 주십사 하는 기도이니, “그런 기도라면 내가 행한지 오래되었다”고 하셨다.[논어 제7편 술이 제35장] 함점에 빠졌어도 내가 아닌 전체를 둘러봐야 허물이 없다.

 

坎不盈 祗既平 无咎

구덩이가 아직 차지 않았을 때(坎不盈) 세상이 바른 기운으로 돌아온다면(祗既平) 허물이 없다(无咎).

  함정은 악을 가두기 위해 마련한 감옥이 아니라, 바르지 못한 자가 바른 자를 해치기 위하여 준비한 함정이다. 세상이 바르게 돌아온다면 바르지 못한 자가 힘을 쓰지 못하게 되는 것이니, 구덩이가 차지 않았다면 곧 빠져나올 수 있게 될 것이니 허물이 없을 것이다. 또한, 함정에 빠진 바른이가 그 곳에서 빠져나오는 것 보다 세상이 바로잡히는 것이 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 허물이 없다고 하였을 지도 모른다.

 

係用黴纆 寘于叢棘 三歲不得 凶

팔다리가 단단히 묶여서(係用黴纆) 빽빽하게 심겨진 가시나무속에 갇히게 되었다면(寘于叢棘) 삼년이 지나도 풀려날 수 없음이니(三歲不得) 흉(凶)하다.

  팔다리를 단단히 묶여야 하는 까닭은 그가 강자이기 때문이다. 강자의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함정을 헤어나기 어렵게 된다. 강자가 함정에 빠진 이유는 강한 힘을 드러내지 말아야 할 때 드러냈기 때문이다. “뛰어난 재주를 어리석음으로 감추고, 지혜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명철함을 지키고, 청렴함을 혼탁 속에 가려두고, 굽힘으로써 몸을 펴는 것, 이런 처세가 험난한 세상을 건너는 배를 타는 것이며, 몸을 보호하는 방편이다”[채근담 제116장]

:
Posted by 오빠야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