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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初九】无交害 匪咎 艱則 无咎
【九二】大車以載 有攸往 无咎
【九三】公用亨于天子 小人弗克
【九四】匪其彭 无咎
【六五】厥孚 交如 威如 吉
【上九】自天祐之 吉 无不利

  많은 것은 어쨋건 좋은 것이다. 하지만 부(富)가 행복으로 가기 위한 절대요건은 아닐 것이다. 자식이 많다고 자식복이 있는 것이 아니듯, 재산이 많다고 재복이 있는 것도 아니요, 일이 많다고 일복이 있는 것도 아니다. 자식으로 인해 근심이 없는 것, 재물로 인한 근심이 없는 것, 일로 인해 근심이 없어야 하는 것, 그것이 자식복, 재복, 일복이다. 사람들이 부러워하고 갈망하던 모든걸 가졌던 석가모니께서는 행복하지 않다는 고민에 빠져서 길을 찾아 나섰다고 한다. 결국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찾아 얽매이지 않는 것이 행복의 길임을 알게 되셨다는데, 자유주의라고 규정된 이 시대에 살고 있지만, 우리의 날개는 돈에 묶이고, 남의 눈에 묶여 자유롭게 날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大有 元亨
많이 가진 것(大有)은 태어나(元) 성장(亨)하기데 큰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이 나이 40을 기준으로 선천운과 후천운을 구별하기도 한다. 나이 40까지는 부모의 영향을 받는 다는 뜻인데, 링컨도 나이 40이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으니, 링컨이 동양사상과 교감이 있었던 것 같아 흥미롭기도 하다. 자식은 싫건 좋건 부모로부터 영향을 받게 된다. 외모와 체질을 물려받고 가진 재물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 모든 것은 변하니 그 영향력도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성장(亨)하기까지는 아주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라고 한다.


无交害 匪咎 艱則 无咎
사귐에 해로움이 없어야(无交害) 허물이 없다(匪咎). 어려운 것(艱)이지만 그래야(則) 허물이 없다(无咎).
  주역은 서두의 ‘건(乾)곤(坤)준(屯)몽(蒙)’괘를 통해, 시기를 알고, 자리를 알고, 사람을 알고, 노력해야 원형리정(元亨利貞)의 순조로운 삶을 살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결국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이다. 자기(노력)와 타인(만남)에 의해 규정된다. 그래서 맹자께서는 “하늘의 때는 땅의 이로움보다 못하고 땅의 이로움은 사람 사이의 화합보다 못하다”[맹자 공손추 하]고 하셨다. 많이 가진 대유자는 오히려 사람을 얻기가 더 어렵다. 가진 것이 많은 자 주위에는 이득을 얻으려는 자들이 모여들게 마련이다. 그래서 ‘가진 것이 많으면 도적을 만나기 쉽고, 가진 것이 없으면 친구를 만나기 쉽다’고 하였다. 마음으로 어울리는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우니 대유자는 사귐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大車以載 有攸往 无咎
큰 수레에(大車) 짐을 가득 실어두고(以載) 시간을 보내도(有攸往) 허물이 없다(无咎)
  많이 가진 것을 수레에 실어 잘 비축해 두는 것이다. 가진 것을 쓰지 않으려는 것은 없는 것과 같고, 시기(乾)와 자리(坤)에 맞지 않게 함부로 사용해서도 안되니, 때를 기다려 잘 사용할 수 있도록 대비를 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공자께서 “사람이 멀리 내다보고 고민해보지 않으면 반드시 가까운 날 근심이 생길 것이다”[논어 제15편 위령공 제12장]고 하신 것도 그러한 대비를 말씀하신 것이다.

 

公用亨于天子 小人弗克
공공의 일에 참여하여(公用) 천자를 위해 베푸는 향연(亨于天子)은 소인이라면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小人弗克)
  천자를 위해 제후들이 베푸는 향연은 천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천자를 비롯, 공곡의 복을 도모하고, 또 음식과 가무를 모인 사람들이 함께 먹고 즐기는 전체를 위한 행사였다. 그런데 이 공익적인 소비를 위해 돈을 내 놓아야 한다면 소인이라면 아까워 견디지 못한다는 뜻이다. 소인(小人)은 여러 번 언급되었지만, 사사로움을 가장 중히 추구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匪其彭 无咎
군자라도 요란하게 하지 않아야(匪其彭) 허물이 없다(无咎).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가진 것을 사용할 줄 아는 군자라도 요란하게는 하지 말라는 뜻이다. 좋은 집을 장만하고 고급 승용차를 구입하여 자기를 챙기는 것이 소인의 요란스러움이라면, 베푸는 것이기는 하지만 크게 이름을 광고하여 기부를 하는 것 같은 것이 군자의 요란스러움이다. 논어의 첫 장부터 언급되어 가장 많이 반복되고 있는 가르침이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는 것을 원망하지 말라’는 말이다. 남들이 알아주길 바라며 요란하게 내 놓지는 말아야 한다.

 

厥孚 交如 威如 吉
마음으로(厥孚) 사귀어(交如) 위엄을 세워야(威如) 길(吉)하다.
  대유자는 참된 사귐을 가지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가진 것으로 사귀려고 해서도 안 된다. 마음과 신념으로 함께 하는 사귐이 되어야 한다. 자공이 공자께 벗과의 사귐을 여쭈자 “그를 충심으로 권고하고 선으로 인도하다가 만일 들어주지 않으면 곧 그쳐서 모욕을 받지 않아야 한다”[논어 제12편 안연 제23장]고 하셨다. 허물을 말해주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고도 하지만, 지나치면 강요며 교만일 따름이다. 충분한 스스로 바로잡을 수 있는 시간을 주고 또 나의 행위를 통해 깨닫게 배려하고 도저히 스스로 고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조심스런 마음으로 충고해 주어야 한다. 위엄을 세운다는 뜻은 이러한 친구지간의 도리(道理)와 예(禮)를 지키는 사귐을 말한다.

 

自天祐之 吉 无不利
하늘이 스스로(自天) 그를 도운 것이니(祐之) 길(吉)하고 불리할 것이 없다(无不利)

  자하는 '죽음과 삶에는 명이 있고 부유함과 귀함은 하늘에 달려있다(死生有命 富貴在天)'고 배웠다고 한다.[논어 제12편 안연 제5장] 자본주의는 노력여하에 따라 성공할 수 있고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배우지만, 평생을 연구한 이름난 경제학자보다 배움에 일천한 부자들도 많다. 많이 배우고 많이 노력한다고 부가 찾아오는 것이 절대진리는 아니니, 그래서 부(富)를 인간이 완전히 장악할 수 없는 하늘의 뜻이라고 하는 것일 게다. 그러나 완전히 장악할 수는 없지만, 완전한 숙명이라고 하지도 않았다. 또한 공자께서도 부(富)를 나쁜 것으로는 보지 않으셨다. 오히려 공자는 자공을 칭찬하기까지 하셨다. "자공은 운명의 안배를 뛰어넘어 크게 재산을 불렸고 언제나 적중하였다"[논어 제11편 선진 제18장] 공자께서 염유가 주군의 재산을 불려준 것을 나무라면서도, 반대로 자공의 재산불림을 칭찬한 까닭은 무엇일까? 자공이 불린 재산을 홀로 누리는데 소비하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유학에서의 부유함은 하늘의 명을 내려 사람들을 위해 바르게 사용하라고 임무를 맡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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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빠야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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否之匪人 不利君子 貞 大往小來
【初六】拔茅茹以其彙 貞 吉 亨
【六二】包承 小人吉 大人否 亨
【六三】包羞
【九四】有命无咎 疇 離祉
【九五】休否 大人 吉 其亡其亡 繫于苞桑
【上九】傾否 先否後喜

비(否)는 ‘막히다’라는 뜻이다. 비괘의 괘상은 하늘과 땅이 서로 강건하여 교합하지 못하고 막히는 괘상이다. 어울려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것이지만, 도저히 함께 어울릴 수 없는 사람도 있다. 하늘과 땅이 서로 강건하게 자리하여 가는 길이 다르니, 어울려 소통될 수 없는 만남이다. 서정윤 시인의 싯구가 떠오르는 괘다. ‘떠나는 사람은 잡을 수 없고, 떠날 사람을 잡는 것만큼 자신이 초라할 수 없다. 떠날 사람은 보내어야 한다.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일지라도.’

 

否之匪人 不利君子 貞 大往小來
헤어짐은 사람의 할 일이 아니라며(否之匪人) 군자가 고집(貞)하는 것은 이롭지 않다(不利君子) 큰 것을 보내고 작은 것을 얻는 것(大往小來)이다
.
  앞의 태(泰)괘에서 어울림은 작은 것을 보내고 큰 것이 오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비괘에서 어울림을 고집하는 것은 큰 것을 보내고 작은 것을 얻게 되는 것이라 한다. 군자의 사명을 다 하기 위해서는 헤어져야 한다. 

 

拔茅茹以其彙 貞 吉 亨
띠풀 하나를 뽑으면 뿌리가 얽힌 여러 포기가 함께 뽑히니(拔茅茹以其彙) 그렇게 사람들과 엮여야 끝까지(貞) 길(吉)하고 형통(亨)한 것이다. 
  앞 편의 태(泰)괘에서 말한 것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엮여서 더불어 나가야 마땅하며, 진리인 것은 틀림없다.

 

包承 小人吉 大人否 亨
그렇다고 무조건 순종하여(包承) 어울리는 것은 소인에게는 길할 것(小人吉)이나, 대인은 그러한 사귐은 거부하여야(大人否) 발전이 있다
.
  어울리고 함께 하기 위하여 눈을 막고 귀를 막고 무릎을 꿇는 것을 뜻한다. 집안을 가장 중시하는 소인이라면 그렇게라도 억지로라도 어울려야 좋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익(公益)을 도모하는 대인은 그러한 어울림은 거부하여야 형통하다. 공자께서도 "가는 길이 같지 않으면 함께 도모하지 말아야 한다" [논어 제15편 위령공 제40장]고 하셨다.

 

包羞
무조건 순종하는 것(包)은 수치스러운(羞) 일이다.
  어울리기 위해서 굽히는 것은 수치스럽고 모욕적인 일이다. 그러나 소인은 그 수치스러움을 감당하고서라도 어울려 가정을 위해야 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군자와 대인은 그런 어울림이라면 거부하여야 한다. 물론 소인보다 군자와 대인이 우월한 사람인 것은 아니다. 사명과 맡은 역할이 다른 사람일 뿐이다.

 

有命无咎 疇 離祉
사귀지 못함이 운명(有命)이라면 허물이 없다(无咎). 절도를 지키며(疇) 헤어짐이(離) 복(祉)이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
  하늘은 똑 같은 생명을 주었지만, 토끼와 호랑이는 어울리지 못하게 하셨다. 천성적으로 어울릴 수 없도록 한 것이 하늘의 명(命)이라면 따라야 한다. 명(命)이 다르다면 헤어지는 것이 오히려 복이다. 떠나야만 하는 사람을 붙잡을 수는 없다. 보내 주어야 한다.

 

休否 大人 吉 其亡其亡 繫于苞桑
쉬어가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休否) 대인에게는(大人) 길(吉)하다. 죽을 듯 죽을 듯 하더라도(其亡其亡) 질긴 뽕나무뿌리에 매어놓아야 한다(繫于苞桑)
 
   대인(大人)은 본시 사사로움을 도모하지 않고 도움을 주려는 성품을 가진 사람이다. 이 사람이 이별을 해야만 하는데 어찌 가슴이 찟어질 듯 아프지 않겠는가? 시간을 쉬어가는 것이 하나의 지혜다. 마치 죽을 것처럼 아프더라도 단단하게 단도리를 잘 해야 한다. 뽕나무뿌리는 어떤 식물보다 질기고 견고한 뿌리로 알려져 있다.

 

傾否 先否後喜 
막힘이 뒤집힐 것이니(傾否) 헤어짐으로 시작해(先否) 기쁨을 찾는 것이다(後喜).
  지나가는 시간앞에서 모든 것은 변하게 된다. 20살때 죽을 것 같았던 이별이 40때가 되어 생각해 보면, 좀 더 선명히 기억나는 꿈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그래서 인생을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고도 하는 것일게다. 이별이 시간을 멈추게 할 수 없고, 변화를 멈추게 할 수는 없다. 이별은 새로운 만남의 시작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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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빠야닷컴

왕(往)이 독자적으로 쓰일 경우에는 ‘나아가다’는 뜻으로 쓰이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장소를 뜻하는 유(攸)와 결합하면, 유유왕(有攸往)은 '나아갈 곳이 있다면'으로 해석을 한다.
그러나 나는 왕(往)이 언제나 나아가는 행위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경우에 따라 "내 보낸다"는 뉘앙스를 가진다고 생각되는 곳도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역에서 왕(往)은 래(來)와 결합하여 곧 잘 사용되기도 한다.
예컨대, "大往小來(대왕소래)"는 큰 것을 내 보내고 작은 것을 받아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유유왕(有攸往)은 ‘시간을 내 보내는 것’으로 풀었다.
일반적으로 유(攸)는 장소를 뜻하지만, '시간이 오래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해석을 시도했냐고 하면,
대부분은 그렇게 해석해야 전체적으로 문맥과 더 어울려 해석이 되기 때문이다.
리유유왕(利有攸往)'갈 곳이 있으면 이롭다'해석하는 것과
'시간이 지나가면 얻는 것이 있을 것이다'로 해석하는 것은 전혀 다른 해석이 되어버린다.
그 점을 감안하면서 주역을 보시길 바란다.

 

나아감을 뜻하는 말은 정(征)과 행(行)도 있다. 왕(往)은 길을 모르고 나아가는 것이라면,
정(征)은 바르다는 내적 확신을 하고 힘차게 나아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고,
행(行)은 피동적인 뉘앙스로 ‘따라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미쁠 부(孚)에 대해서 그 의미에 큰 논란은 없다.
새가 그 다리를 바꿔가며 알을 품어주어, 그 알을 깨는 것을 형상화한 글자인데,
특히 유부(有孚)라는 결합어가 상당히 많이 등장한다. ‘신념’이요, ‘믿음’이요, ‘생각이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의미는 어렵지 않으나 문맥상 적당히 번역할 수 있는 적당한 말이 없어 곤란한 면이 있다.
생각없이 하는 것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생각을 갖고 하는 것'이란 뉘앙스로 해석했으면 한다.

 

이상, 주요한 용어에 대한 간단한 원론적인 설명을 마친다. 이러한 용어풀이가 모든 주역에 통용되는 주역 사전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랜 세월동안 많은 변화를 거쳐서 괘효사가 추가, 삭제, 수정되는 과정에서 전체를 통괄하는 완벽한 통일성을 갖추지는 못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적절하게 이러한 상식을 갖고 문맥에 가장 어울리게 해석하는 융통성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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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빠야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