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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에 해당되는 글 2

  1. 2013.01.04 제2편 위정(爲政) 제4장
  2. 2010.02.01 56. 旅卦(려괘) : 누구나 방황(彷徨)을 한다.
공자 말씀하셨네 [子曰:]
나는 15살에 배움에 뜻을 두었고 [吾十有五而志于學]
30살에 자립할 수 있게 되었으며 [三十而立]
40살에 의혹이 없어졌고 [四十而不惑]
50살에 천명을 알게되었고 [五十而知天命]
60살에 귀가 순해졌고 [六十而耳順]
70살이 되어서야 마음가는대로해도 [七十而從心所欲]
도리에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 [不踰矩]


   논어에서 손꼽히는 유명한 장이다. 칼로 자르듯 그 나이에 딱 그리 되었다는 것은 아니며, 제자들에게 나이를 기준으로 성취해야 할 목표를 일러주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40살이 되어서 의혹이 없어졌으니 나는 5년정도 늦어도 만족할 수 있어' 그렇게 생각한 제자들은 없었고, 40이면 나도 선생님처럼 의혹이 없어야 겠다고 각오를 다지게 했던 게 공자학의 한 매력이었다. 공자는 신이 아니라 먼저 태어나 경험이 조금 더 많은 사람일 뿐이었으며, 우월한 사람은 아니라는 걸 이해시켰기에 제자들은 공자의 나이라면 공자와 같아질 수 있어야 하겠다며 노력했던 것이라 생각한다. 

  어른과 스승에 대한 공경은 무조건적 복종이 아니라 앞선 경험을 존중한다는 의미였으니, 오늘날처럼 '너 몇살이냐' 혹은 ‘내가 누구이냐’를 강요해 무조건 숙이라는 군대식 복종과는 달랐었다. 나이와 지위에 관계없이 개인의 인격은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다. 공경은 나이와 지위를 내세워 복종을 강제시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마음에서 우러나와 저절로 표현하는 것이 존경이며, 존경을 받으면 우월한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먼저 태어났을 뿐이라고 여기는 마음으로 화답하는 것이었다. 나이의 지칭에 대한 의미를 자세히 적으려면 상당한 분량이 될 것이고, 논어의 다른 장에서도 반드시 언급해야 하니 여기서는 간략히 정리하며 지나갈까 한다.

지학(志學)이라 하는 15살로 대표되는 청소년기에는 기술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를 깨우치는 공부를 시작할 나이라고 한다. 오늘날에는 적성과 재능을 가늠하며 사회에 어떤 일원이 될 것인가 하는 꿈을 찾기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성적에 맞추어 의대와 법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은 먼저 찾은 후 배울 곳(대학)을 찾는 것이 순서임을 다들 아는데...

이립(而立)이라 하는 30살은 자립(立)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자리를 잡은 상태, 토대가 마련된 상태이다. 본래는 학문의 근본이 세워진 상태를 말했던 것이겠지만, 전문화되고 분업화된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아마에서 프로가 될 수 있는 반석을 마련한 것으로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더 이상 부모에게 의존하려고 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불혹(不惑)이라 하는 40살은 마음이 혼란으로 흔들리지 않는 수준에 이르는 것이다. 삶이 늘 예상한대로 흘러가지도 않고, 삶이라는 그림을 원하는 대로만 그려갈 수 없는 것을 알게 되는 나이이니, 갑작스런 변화(사건)가 생겨도 갈팡질팡하지 않는 단계에 이르라고 한다. 어느날 북한이 침공했다는 뉴스가 나올 수도 있고 직장을 잃을 수도 있으며 로또에 당첨되는 횡재가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놀랍고 심란한 감정은 가지더라도, 당황하고 혼란스럽고 두려워하여 어찌해야 할 지 몰라서는 안되는 단계이다. 이 나이까지는 자기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천명(知天命)이라 하는 50살은 하늘이 명한 '인생의 뜻'을 아는 나이이다. '나' 중심에서 벗어나 세상속에서의 '나'를 이해하는 단계이며, 완전히 장악할 수 없는 우연의 연속이기도 한 인생의 숭고한 뜻을 인식하게 되어야 한다고 한다. 천명에 대한 얘기는 논어에서 종종 반복되고 있으니, 다시 자세히 얘기하기 위해 나중으로 미룰까 한다.

이순(耳順)이라 하는 60살은 '귀가 순해진 나이'이다. 들리는 소리에 크게 개의치 않는 나이이니, 누가 욕하건 누가 칭찬하건 빙그레 지나칠 수 있게 되고, 어떤 소리라도 다 이해할 수 있게 되는 단계이다.

종심(從心)이라 하는 70살은 마음가는대로 해도 도리를 벗어나지 않게 되는 나이이니 완성의 경지에 다다른 수준일 것이다. 두보의 시로부터 유래한 만나보기 드문 나이를 의미하는 고희(古稀)라는 표현이 더 익숙하게 사용되는 것 같기는 하다.

이상 정리하면, 이 장은 그 나이에는 그 나이에 맞는 사람이 되라는 목표를 정해주는 것이며, 사람이 성숙해져 가는 것도 단계적으로 이뤄지는 것이니 단번에 종심의 단계에 이를 수는 없다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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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빠야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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旅 小亨 旅貞 吉
【初六】旅瑣瑣 斯其所取災
【六二】旅即次 懷其資 得童僕 貞
【九三】旅焚其次 喪其童僕 貞 厲
【九四】旅于處 得其資斧 我心不快
【六五】射雉一矢亡 終以譽命
【上九】鳥焚其巢 旅人 先笑後號咷 喪牛于易凶

  여(旅)는 나그네를 뜻한다. 떠도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니 곧, 방황을 의미한다. 요즘은 인생 40을 제2의 방황기라고도 한다. 공자께서는 나이 40을 미혹함이 없는 불혹이라고 하셨고 “나이 40이 되어서도 미움을 받는다면 끝났다”[논어 제17편 양화 제26장]고도 하셨으니 요즘 사람들이 40에 방황하는 것은 옛사람들이 쉽게 예상할 수는 없었을 것 같기도 하다.

 

旅 小亨 旅貞 吉
방황(旅)은 성장 초기부터(小亨) 있게 되는 것이다. 방황을 끝내어야(旅貞) 길(吉)하다
.
  방황은 성장의 초창기부터(小亨) 있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길(吉)하려면 방황을 끝내어야 한다고 한다. 아마도 평생 방황을 끝내지 못하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 아닐까? 필부필부(匹夫匹婦)하는 보통의 사람들은 방황을 끝내지 못하고 그냥 그냥 살아가는 경우가 더 많을 것 같기도 하다.

 

旅瑣瑣 斯其所取災
방황은 자질구레하게 하면(旅瑣瑣) 재앙을 자초하는 것이다(斯其所取災).
  쇄쇄(瑣瑣)는 자질구레하게 계속 이어지는 것을 말한다. 시시하고 대수롭지 않은 이유로 끝맺지 못하고 계속 방황을 이어가는 것은 재앙을 자초하는 일이라고 한다. 알이 먼저 인지 닭이 먼저 인지, 아이가 먼저 인지 어른이 먼저 인지 어찌 반드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대학에서 “자식 기르는 법을 배우고 나서 시집가는 사람은 없다”[대학 제9장 제가치국]고 하였으니 지나치게 자질구레하게 방황을 계속 이어가지 않아야 한다.

 

旅即次 懷其資 得童僕 貞
방황은 묵을 곳이 있어야 하니(旅即次) 재물이 있고(懷其資) 동복(童僕)을 얻으면(得) 끝난다(貞)

  차(次)는 정착할 곳을 말하니 곧 방황을 끝내고 머무를 수 있는 곳을 말한다. 몸을 정착할 수 있으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마음이 정착 할 수 있으려면 내 마음을 받아주는 사심 없는 종이 있어야 한다. 몸이 편안하고 마음이 편안하면 더 이상 방황은 없음은 당연하다. 물질가치와 정신가치가 별개가 아니니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

 

旅焚其次 喪其童僕 貞 厲
방황하여 그 묵을 곳을 불태우고(旅焚其次) 그 동복을 잃었으니(喪其童僕) 끝까지(貞) 위태롭다(厲).
  재물(資)은 잃지 않았다. 그 동복을 잃어 결국, 쉴 곳을 잃었지만 재물은 남아있는 것이다. 이것이 곧 재앙을 자초한다고 하는 자질구레하게 이어지는 방황(旅瑣瑣)과 다르지 않다. 내 몸을 쉬게 만들 수 있는 돈도 중요하고 내 마음을 쉬게 할 수 있는 동복도 필요한 것이다. 중용을 벗어나 그 동복을 잃었으니 끝까지 위태롭다.

 

旅于處 得其資斧 我心不快
방황에서 잠시 쉬려다가(旅于處) 재물과 도끼를 얻었으나(得其資斧) 내 마음은 불쾌하다(我心不快).

  처(處)는 정착지를 뜻하는 차(次)와는 달리 잠시 쉬기 위해 머무는 곳이다. 자부(資斧)는 재물과 도끼인데, 곧 돈과 권력을 의미한다. 얻기 위해 애써서 얻은 것이 아니요, 잠시 머무를 생각이었는데 돈과 권력을 취했으니 그야말로 횡재다. 그러나 왜 마음이 불쾌할까? 돈과 권력을 얻었고, 그것도 손쉽게 얻었으나 동복(童僕)이 없기 때문이다.

 

射雉一矢亡 終以譽命
어리석은 꿩을 화살 하나를 잃고 죽이면(射雉一矢亡) 마침내 명예로운 부름을 얻으리라(終以譽命)
  꿩은 다급해지면 풀섶에 머리만 박고 몸뚱이를 돌보지 않는 어리석은 짐승이다. 즉 그 어리석음을 빨리 없애라는 말이니, 돈과 권력을 횡재로 얻고서도 마음이 불쾌한 이유가 무엇인지 빨리 깨우치라는 의미이다.

 

鳥焚其巢 旅人 先笑後號咷 喪牛于易 凶
새가 그 둥지를 불사르니(鳥焚其巢) 나그네는(旅人) 처음에는 웃지만 뒤에는 부르짖으며 슬피 울게 될 것이다(先笑後號咷) 주역의 소를 잃어버리는 것이니(喪牛于易) 흉(凶)하다.
  둥지를 불태우는 새가 쉴 곳을 불태우던 자신과 다를 바 없는 어리석을 짓을 하니, 짐승의 일로만 여겨 처음에는 어리석다고 비웃는다. 그러나 그것이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임을 알게 되어 슬피 울게 될 것이다. 소는 진리와 깨우침을 상징한다. 불교의 '심우도'에서 의미하는 소와 같은 뜻이다. 주역의 소를 읽어버리는 것은 곧 주역의 가르침을 잃어버리는 것이니 흉하다. 새를 가엽고 측은하게 여기는 인(仁)함을 잃었다. 주역이 말하고 있는 모든 변화의 법칙은 하나를 상정한 것이 아니다. 사람 인(人)은 항상 관계(關係)하여 하나가 받쳐주어야 하는 존재이며, 나와 관계없는 삼라만상은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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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빠야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