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7

« 2022/7 »

  •  
  •  
  •  
  •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  
  •  
  •  
  •  
59

渙 亨 王假有廟 利涉大川 利貞
【初六】用拯馬壯 吉
【九二】渙 奔其机 悔亡
【六三】渙其躬 无悔
【六四】渙其群 元吉 渙 有丘 匪夷所思
【九五】渙 汗其大號 渙 王居 无咎
【上九】渙其血 去 逖出 无咎

  환(渙)괘는 물이 거침없이 흘러감이니, 막힌 것이 풀어지는 것, 물꼬가 트임을 의미한다. 막히는 시기가 있다. 나의 잘못이 아니라 하늘이 막아놓은 것이니 곧 도리가 없어진 세상 36번째의 명이(明夷)의 세상을 만나 막혀있었던 것이다. 도가 무너진 명이(明夷)의 세상에는 은둔하여 자기수양을 하고 있으라고 하였다. 언젠가는 비가 그치는 법이니 반드시 맑은 날을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환(渙)괘는 명이의 세상이 끝나고 거침없이 바른 도가 흘러넘치는 세상을 만나게 된 것을 의미한다.

 

渙 亨 王假有廟 利涉大川 利貞
트여서(渙)는 형통하니(亨) 왕이 가서 제사 지낼 종묘가 있으면(王假有廟) 과감히 큰 강을 건너면 이로우리니(利涉大川) 끝까지 이롭다(利貞)

  꽉 막혀 있던 것이 트이는 것은 씨(元)로부터 바야흐로 싹이 트는 것이니 성장(亨)을 시작한 것이다. 왕이 제사 지낼 종묘가 있다는 말은 곧 전통이 있다는 말이니, 곧 씨(元)가 좋았다는 말이다. 좋은 씨가 비로소 싹을 틔운 것이니 좋은 결실을 얻을 것은 자명하다. 과단하게 강을 건너도 이롭다. 좋은 결실을 맺고(利) 마감(貞)할 수 있다.

 

用拯馬壯 吉
기운이 강한 말의 도움을 구하면(用拯馬壯) 길(吉)하다.
  용증마장(用拯馬壯)은 36번째 명이(明夷)괘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도가 무너진 명이의 시절에 왼쪽 허벅지에 활을 맞은 사람이 기운 센 말을 만나서 구원을 얻었다. 그 뜻은 도망가야 할 때는 센 기운으로 도망가라는 뜻도 담겨있다. 이제 술술 풀리는 환(渙)의 시기에도 기운센 말의 도움을 받아야 길하니, 도망을 가야 할 때도 나아가야 할 때도 기운이 왕성한 말처럼 힘차게 내달려야 한다는 뜻이다.

 

渙 奔其机 悔亡
트였으니(渙) 그 궤로 빨리 내달려야(奔其机) 후회가 없다(悔亡)
  말의 힘찬 기운으로 나아가야지, 시간을 지체하지 말라는 뜻이다. 궤(机)는 베틀이니 곧장 근본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물고기보다 낚시대가 중하며, 삼베보다 베틀이 중하다. 기운이 강한 말을 타고 빨리 내달려 베틀을 차지하라는 말이다. 엉뚱한 길로 빠지지 말고 근본을 향해서 나아가야 한다.

 

渙其躬 无悔
그 몸이 거침없어야(渙其躬) 후회가 없다(无悔)
  그 몸이 거침이 없는 것은 꽉 막혔을 때 풀리는 시기를 대비하여 자기관리를 잘 해 둔 것을 말한다. 군자는 은둔하더라도 몸과 정신을 잘 가꾸어 풀리는 시기를 대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몸을 망치고 정신을 망치는 사람은 때가 바뀌어 술술 풀리는 시기가 도래하였어도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渙其群 元吉 渙 有丘 匪夷所思
무리를 이루어 거침없이 나아가야(渙其群) 근원적으로 길하다(元吉) 거침없이(渙) 언덕으로 모이는 것을(有丘) 오랑캐들은 생각하지 못한다(匪夷所思)
  오랑캐(夷)는 도가 무너진 명이(明夷)의 시기였기에 힘으로 세상을 지배할 수 있었던 집단을 뜻한다. 그래서 덕보다 힘을 숭상하는 무리를 상징한다. 그러나 그 힘이 통했던 까닭은 힘이 정답이였기 때문이 아니라 시기가 명이의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그러한즉 힘을 숭상하는 오랑캐들은 힘이 전부인 줄 알 것이니 덕이 힘을 꺾을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물꼬가 트여 거침없는 때에도 혼자서는 도모할 수 없다. 무리를 이루어 나아가야 한다.

 

渙 汗其大號 渙 王居 无咎
막힌 것이 트이니(渙) 오랑캐들은 땀을 흘리며 크게 울부짖지만(汗其大號) 트였어도(渙) 왕이 자리를 지켜야(王居) 허물이 없다(无咎)
  힘만 숭상하던 오랑캐들이 전전긍긍(戰戰兢兢)하며 크게 울부짖고 후회를 하니, 때가 도래하였지만 왕이 제 자리에 위치하여 이끌어야 허물이 없다. 왕이 냉정을 잃고 선두에 서서 공격을 하는 것은 아니어야 한다는 말이다. 소위 두고보자는 식으로 가슴앓이를 하다가 트이니 냉정을 잃고 나아가는 것을 말함이다. 왕은 흔들리지 말고 흥분하지 말고 제 자리를 지켜야 한다.

 

渙其血 去 逖出 无咎
그 피가 거침없이 흐르며(渙其血) 지나가더라도(去) 멀리 멀어지면(逖出) 허물이 없다(无咎).
  오랑캐들이 죽어 그 피가 거침없이 흐르게 되니, 힘을 숭상하던 오랑캐들이라 큰 희생이 생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생명의 다침은 참으로 안타까우나 시간이 멀리 지나가 먼 옛날 이야기가 되면 허물은 없어진다고 한다. 정의가 살아있음을 알리기 위한 불가피한 희생이며 천명(天命)인 까닭이다.

Posted by 오빠야닷컴

댓글을 달아 주세요

주역에서 첫 괘가 하늘(乾)로 시작하는 까닭은 시간과 공간의 우주이치를 말하기 위한 까닭은 아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시간을 말하고, 인간의 입장에서 바라본 시간의 도를 말하기 위해서다.
짧은 시간이라고 조급하게 쓸려고 서두르지도 말고, 더 붙잡고 있으려고 미적거리지도 말라는 의미이다.
「소주역」이라는 별칭을 가진 「중용」에서 '군자의 중용은 군자의 시중(時中)이다'고 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기다려야 할 때는 기다리고, 나아가야 할 때는 나아가고, 물러나야 할 때는 물러나야 한다.

 

소홀히 넘길 수 없는 부분은, 점이나 부적 방술과 같은 방법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하지 말하는 셋째효의 의미이다. 인간이 주도적 입장이 되어 선택해야 할 시간을 말하고 있다.
기다려야 할 때(잠용), 구해야 할 때(현룡), 나아가야 할 때(비룡), 물러나야 할 때(항룡)를 잘 판단하라는 가르침을 전하지만, 그 때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진인사대천명! 오직 사람의 일을 다할 뿐이다.

점쟁이가 가르쳐 주는 것도 아니고, 신이 가르쳐 주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주역은 점에 의지하라고, 신께 기도하라고, 부적에 의지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바른 분별력을 가진 군자가 되어 최선을 다하라고 가르친다.

 

유학에서의 군자는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분별력을 가진 사람이다.
다만, 그 옳고 그름의 잣대, 진리의 잣대는 '나에게 요구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육체 건강을 위해서 요가를 배우는 사람이 스스로를 건강하게 하려 요가를 배우듯이,
정신 건강을 위해서 학문을 배우는 사람도 '자기'를 수양하려 배움에 임해야 한다.
그래서 '수신제가치국평천하'에서 수신이 최선순위에 오며, 모든 것의 근본이 된다.
남에게 요구하기 위한 옳고 그름은 싸움을 낳고 미움을 낳게 되는 해악이 될 뿐이다.
자기의 사상과 종교가 절대적 진리라는 믿음으로 쉬지 않고 다투고 있고,
얼마나 많은 인간이 목숨을 잃게 되어야 했던가?

 

군자는 나를 바로 세우는 사람일 따름이다.
그러다 보면 감화된 사람이 저절로 벗이 되려고 찾아오기도 하는 사람이다.
논리와 말로 이겨서 사람을 끌고오려는 승리자, 내세우려는 잘난 이가 군자가 아니다.
그래서 공자의 가르침은 스스로에 대한 성찰을 부단히 강조한다.
"군자는 자기에게 요구하고, 소인은 다른 사람에게 요구한다" [논어 제15편 위령공 제21장]
화이부동(和而不同)의 가르침도 마찬가지다.
"군자는 조화를 이루려고 하지 같게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논어 제13편 자로 제23장]

 

군자가 되어 자기를 다듬는다는 이 수신이 결코 만만한 수준은 아니다.
원효대사의 해골물 이야기가 전해주는 가르침은 '물은 변한게 없었지만 내 마음이 변했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만은 아닐 것이다. 해골에 담긴 물이었음을 알고서 구토가 일어났다는 것은 지나간 것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집착하는 경지를 벗어났다고 여기고 있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는 자기자신을 깨우친 것도 깨달음의 한 이유였다고 한다. 맛있게 먹었다는 기억을 붙들고 있지 않았다면 그냥 더러운 물이네 할 것이지, 구토가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군자로서 자기를 착각하지 않고 냉정하고 철저하게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모자라서 자기를 제대로 볼 수 없는 사람도 있지만, 지혜롭다는 사람도 너무 똑똑해서 오히려 자신을 보지 못하는 경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수신(나를 닦고) 제가(집안을 바로하고) 치국(나라를 다스리고) 평천하(세상을 평화롭게 하는)하는 것이, 순서대로 완성 한 후 나아가는 선후의 단계적 의미는 아니다. 수신이 곧 제가와 다르지 않고 치국과 다르지 않고 평천하와 다르지 않음이다. 즉, 수신(修身)은 평생 수련해야 하는 것이지 완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운동을 쉬면 근육이 굳어지듯, 배움도 쉬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Posted by 오빠야닷컴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