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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해당되는 글 3

  1. 2010.09.28 하늘의 시간 건(乾) 2
  2. 2010.03.01 입우감담(入于坎窞)
  3. 2010.02.20 욕구도 성(性) - 자연인성론(自然人性論)
2010. 9. 28. 23:41

하늘의 시간 건(乾) 간상(赶上)/보충(補充)2010. 9. 28. 23:41

맹자가 제나라에 전해오는 말을 소개하였다 [맹자 공손추 상 3.1]

출중한 지혜를 갖는 것보다 유리한 기회를 잡는 것이 낫고,
좋은 농기구를 갖는 것보다 적절한 농사철을 기다리는 것이 낫다.

시간에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따라 결과가 다른 경우가 많다.
겨울에 씨를 뿌리면 소용이 없는 법이다.
그래서, ‘미숙할 때 움직이려 하지 말라’는 잠룡물용(潛龍勿用)과
‘물러나야 할 항룡일 때 물러나지 않으면 후회할 일이 생긴다’는
항룡유회(亢龍有悔)는 오늘날에도 자주 인용하는 고사성어가 되었다.

오늘날 사람들이 참 많이 쓰는 말이 있다. “바빠서 말이지…”
옛날 사람들도 이렇게 바쁘게 느끼며 살아갔을까? 옛날의 노래, 옛날의 춤과 같은 문화적 산물로 유추해보면 일견 오늘날보다는 여유로운 듯도 한데, 옛 글들을 보면 역시 바쁘다는 글이 많다. 장자가 말했다.[장자 제물론]

사람은 만물과 서로 다투기만 하고
말달리듯 지나가면서도 멈추고자 하지 않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종신토록 허덕여도 성공을 볼 수 없고
고달파 쓰러지면서도 되돌아가야 할 바를 알 지 못하니
참으로 애처롭지 않겠는가!

과거에 군대를 다녀온 사람은 오늘날 군대는 천국일거라 여기기도 하지만, 더 좋은 환경 같은데도 여전히 힘들어 하고 자살을 하기도 한다. 옛날의 군대나 오늘날 군대나 옛날의 시간이나 오늘날의 시간이나 힘들고 바쁘기는 마찬가지란 말일까? 조선시대에도 행복하게 살았던 여인들이 있고, 풍족한 오늘날에도 불만 속에 사는 여인들이 있다.

‘결혼을 반대하는 부모와의 갈등’은 드라마나 소설의 소재로 자주 사용되던 얘깃거리였다.
돈 많지, 잘 생겼지, 마음씨 좋지, 어디 하나 빠질 것 없는 A를 마다하고, B가 좋다는 아이 때문에 부모는 경악한다. 단 하나만 B보다 A가 못한 것을 말해보라며 애원하기도 한다. “완벽한데도 정이 안 가!”     
공자가 말했다.

삼군대장의 권력을 빼앗을 수는 있겠지만, 일개 보통사람의 그 의지를 빼앗을 수는 없다 [논어 9.26]


사람은 합리적 사고로만 결정하고 느끼는 로봇이 아닌 까닭에,
하늘의 시간이 흐르는 속도는 일정하지만, 사람이 만나는 시간의 속도는 일정할 수 없다.
결국 변화(易)의 핵심은 어디에 있을까?

봄, 여름, 가을, 겨울 같은 자연의 변화는 저절로 변하는 것이며,
시간이 흘러가는 속도 같은 ‘느끼는 변화’는 바깥이 아니라 자기 마음 내부에서 변화하는 것이다.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라는 유명한 광고문구가 있다.
더러운 세상을, 배려심이 없는 남편을, 말 안 듣는 아이에게 변화하라고 요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변화(易)를 원한다면 자기에게서부터 변화를 찾아가야 한다.
이 더러운 세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을 행복하다고 하며 감동하는 사람도 있으니,
과연 이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같은 세상을 두고,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달리 느끼고 있는 것이다.
 
바꿀 수 없는 자연의 변화(易)와 바꿀 수 있는 느끼는 변화(易)를 분별하고,
바꿀 수 있는 변화라면, 나로부터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 주역이 말하는 변화(易)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주역은 미숙한 잠룡일 때는 성급히 움직이려 하지 말아야 하고,
물러나야 할 항룔일 때 물러나지 않으면 후회를 남긴다고 가르치는데,
과연 잠룡인지, 항룡인지는 어떻게 안다는 것일까?

본래, 스스로 잠룡인지, 항룡인지를 알면서도 서둘거나 고집하는 경우만을 주역이 상정한 것은 아니다.
남들과 세상은 모두 다 잠룡인 줄 알고, 항룡인 줄 아는데,
자기 스스로는 잠룡이 아니라고 여기고, 항룡이 아니라고 여기는 경우도 있다.
역시 마음이 붙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적당한 시간이 되었다는 것, 밥을 먹어야 할 때인지, 잠을 자야 할 때인지는 본래 스스로 가장 잘 안다.
그러나, 먹지 않고 사는 ‘독립영양인간’이 있다는 뉴스를 본 후 안 먹다가 죽었다는 사람도 있더라.
신이 부르시니 가야 할 때가 되었다며 자살했던 신도들도 있더라.

결국, 주역의 판단은 중용(中庸)의 철학을 향해서 흘러간다.
나를 돌아보지만, 나만 보는 것이 아니다.
너로부터 돌이켜도 보지만 너의 시선에 전적으로 구속되는 것은 아니다.
치우치지 않고 기울지 않는 중용(中庸)이라는 균형의 기준을 잃지 않아야 하는 것이니,
적당한 때를 판단해야 하는 것은, 주관(나)에서 시작하여 객관(너)으로 판단하며 내가 감수한다(나)는
[나 → 너 → 나]의 3단 구조를 갖는다.

참고로 이 3단 구조는 유가철학의 큰 근본이다. 논어의 제1편 학이 제1장을 예로 들어본다.

배워서 때때로 익혀보면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먼 곳일지라도 찾아주는 벗 생기면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원망하지 않으리니 어찌 군자이지 않겠는가?

[나의 기쁨→너와 더불어 함께하는 즐거움→자존을 잃지 않는 나]
유가철학의 개념들은 모두 이 [나 → 너 → 나]의 구조로 얘기할 수도 있다.

왜 효도를 하나요? [내가 기쁘기 때문입니다 → 부모님께서 알아주시면 함께 즐겁구요 → 부모님께서 몰라주셔도 여전히 기쁘며 원망이 생길 리 없습니다] 부모님께서 알아주기를 바라고 효도하겠다는 것이 아니니까요... 

【爻辭】


元亨利貞
(시간이 맞아야)
씨앗에서 성장하고 열매를 맺고 죽게 된다

【初九】

潛龍勿用 잠룡일 때 움직이려 하지 말라
【九二】 見龍在田 利見大人 나타난 용이 밭에 있으니 대인을 만나야 이롭다
【九三】 君子 終日乾乾
夕惕若 厲 无咎
군자가 되어 종일 최선을 다하고
어두움을 경계한다면 위태로울지라도 허물이 없다
【九四】 或躍在淵 无咎 도약을 신중히 헤아리며 연못 속에 있어야 허물이 없다
【九五】 飛龍在天 利見大人 하늘을 나는 용이 하늘에 있으니 대인을 만나야 이롭다
【上九】 亢龍有悔 오르려고만 하는 용은 후회가 있다
【用九】 見群龍无首 吉 용의 무리에 우두머리가 없으니 길하다
:
Posted by 오빠야닷컴
2010. 3. 1. 13:35

입우감담(入于坎窞) 기타(其他)/명언(名言)2010. 3. 1. 13:35

  입우감담(入于坎窞)은 『주역』 감(坎)괘의 효사중에 나오는 명언입니다. 감(坎)도 구덩이를 의미하며, 담(窞)도 구덩이를 의미합니다. 즉, 구덩이에 빠지고 또 그 안의 구덩이에 다시 빠지는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편적으로 설상가상(雪上加霜)의 의미로 많이 인용합니다. 즉, 눈위에 서리가 쌓이는 것처럼, 구덩이에 빠졌는데 다시 그 안의 구덩이에 빠지는 ‘어려운 일이 연거푸 생기는 것’을 표현할때 사용합니다. 좋은 일이 거듭되는 금상첨화나 나쁜일이 거듭되는 경우나 그런 일들이 드물지만은 않을 듯 생각됩니다.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계속되고 있는 위험’을 표현할 경우에도 종종 인용합니다. 영화에서는 영웅이 적을 계속 잘 물리치지만, 보통사람이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정말 힘겹지 않을까요?

 

종종 ‘마음의 함정에 빠지지는 마라’는 의미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첫번째 구덩이는 육체가 빠지는 구덩이이며, 다시 빠지는 구덩이는 마음이 빠지는 구덩이입니다. 위험이 닥치면 쉽게 체념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사업이 잘 되어 부자로 살다가 회사가 부도가 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에 부인이 조력해주지 않으면 남자는 술을 달고 살면서 인생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런 경우가 거푸 구덩이에 빠지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남자는 술부터 찾고 여자는 광주리부터 찾는다고 했는데, 오늘날에는 결별하는 경우도 많지 않을까요? 좋은 일도 궃은 일도 함께 한다는 부부관계가 먼 이야기가 되어가는 듯 느껴지는 세상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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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빠야닷컴

살고자 하는 뜻은 풀이나 사람이나 똑같습니다.
살고자 하는 뜻은 물고기나 사람이나 똑같습니다.
모두 하늘이 준 귀한 생명입니다.
그러나, 공자께서는 고기를 잡으셨습니다.

공자께서 낚시는 하셨으나 그물로 잡지는 않으셨다. 새를 잡았으나 둥지의 잠자는 새를 쏘지는 않으셨다. [논어 제7편 술이 제27장]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 토끼를 보면 연민의 마음이 생깁니다.
그러나 호랑이가 토끼보다 나쁜 생명일까요?
호랑이는 제 성(性)을 따르는 것 뿐입니다.

 

성(性)을 따른다는 것은,
하늘이 준 그대로의 자연(自然)스러움에 따르는 것입니다.

성(性)의 자연스러움을 따르는데 있어서
'고도의 지능'이 개입하여 '중용(中庸)'을 이탈하게 합니다.


고상함과 고원함을 추구하여,
인간을 채식동물로 만들려고 하고,
야성을 극도로 추구하여
다른 생명들의 씨를 말려버리려고도 합니다.

 

욕구도 성(性)입니다.
욕구를 아예 없애는 것은 성(性)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중용의 사유는 모자람도 경계하고, 지나침도 경계합니다.

욕구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모자라거나 지나쳐서 문제를 일으킵니다.

 

유학은 차별적 사랑도 긍정합니다.
하늘이 준 감정(情)을 혐오하지 않습니다.
어미가 제 새끼를 우선 돌보는 것은 자연(自然)스러움입니다.
문제는 '고도의 지능'이 개입하여
다른 새끼를 우선 돌보라고 하거나,
나를 위해 자기 새끼를 죽여도 괜찮다는,
그런, 치우침이 생겨나는 것을 경계합니다.

 

혹시 오해가 생길까 싶어 부연하고 가야겠습니다.

‘중용’의 정신은 보편적 타당성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낙태가 틀렸다’는 일반론으로 향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공을 초월한 진리, 나를 떠나 있는 진리를 찾아가지 않습니다.

 

스스로 지극히 진실된 마음으로 자기의 성(性)을 밝혀

모자라지도 치우치지도 않게 행하는 것입니다.

모든 제반 사정을 감안하여 가장 마땅한 행동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가 출발점이며,

너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가 출발점이 아닙니다.

 

그 기준을 세우는데 있어서 지극히 진실한 마음으로 접근하라는 뜻입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남들의 이목, 선입견 등등의 모든 속박을 걷어내고,

나만이 알 수 있는 내면의 울림으로, 진실한 성(性)을 따르는 마음으로,

현재의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마땅한가로 접근하는 것이 중용입니다.

 

중용 제1장입니다.

그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곳을 삼가고 두려워해야하니 [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

드러나지 않는 그 곳보다 더 잘 드러나는 곳은 없고 [莫見乎隱]

나타나지 않는 그 곳보다 더 잘 나타나는 곳은 없다 [莫顯乎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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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빠야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