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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13. 12:19

제2편 위정(爲政) 제21장 간상(赶上)/논어(論語)2013. 1. 13. 12:19

어떤 이가 공자께 말했다.[或謂孔子曰:]
선생께선 왜 정치에 종사하지 않는가요? [子奚不為政]
공자 말씀하셨네 [子曰:]
서경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書云:]
효(孝)다. 오직 효다. 형제간 우애있으면 정치에 이르는 것이다 [孝乎惟孝, 友于兄弟, 施於有政]
이것이 정치인데 어찌 정치를 따로 하겠습니까? [是亦為政, 奚其為為政]

 

  하지 않는 것을 물으면 피곤한 법이다. "육식을 왜 하지 않지? 주식을 왜 하지 않지?" 취향에 속하는 이런 질문은 그나마 괜찮다. 하지만 "결혼을 왜 하지 않지? 치마를 왜 입지 않지?" 같은 질문은 신중해야 한다. "누군 안 하고 싶어서 안 하느냐고" 하면서 부글부글할 수 있으니. 주유천하로 유명한 공자였다. 14년을 천하를 돌며 도덕정치를 구현할 군주를 찾았다. 그러니 어찌 정치에 종사하고 싶지 않았겠는가?


  이 글은 어떤 이(或)가 아픈 곳을 찔러도 무시하지 않았다는 예(禮)를 전하고자 함일까? 아니면 만사에 단절이 없다는 도(道)를 설명한 수준 높은 가르침일까? 《서경》까지 인용하는 걸로 보면 후자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오늘날에도 유명인의 말이나 글을 빌려 와 수식을 하곤 한다. 조선조는 유교경전과 공자 왈 맹자 왈을 할 수 있어야 지성인이었는데, 요즘은 서구인을 언급해야 더 있어 보인다고 한다. 상표와 간판도 서구어로 넘쳐나니 문화적 경향으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어쨌건, 공자께서도 말에 더 신뢰를 얻기 위해 《시경》과 《서경》을 종종 언급 하셨다. 잡설을 이리 늘어놓는 이유는 이어지는 글이 무겁기 때문이다...

  유가의 도(道)는 '분별'에서 출발하기에 난해하다. 그 이론에 곧고 강직했던 선비 이미지가 오버랩되면 엄격하게 맺고 끊는다는 오해를 받기 쉽다. 그러니 이 장처럼 효가 곧 정치요, 우애가 정치라고 하면 어렵다. 나를 바르게 하는 수신(修身)이 곧 제가(齊家)요 치국(治國)이요 평천하(平天下)라고 하면 더욱 혼란스럽다. 본래 유가의 철학 중용(中庸)은 분별해서 가르지 않는다. '분별 후 조화'를 도모한다. 가르기 위한 분별이 아니라 붙이기 위한 분별임을 이해해야 한다. 유학은 도(道)를 가장 간명하고 자신있게 설명하는 학문이다.

천지의 도는 한마디로 다 할 수 있다. 본질이 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天地之道 可一言而盡也 其爲物不貳 [중용 제26장]


  남녀로 나누고, 형제와 4촌을 나누고, 군주와 신하를 나누어 둘이 되게 하지 않는다. 언제나 하나로 합쳐짐을 지향한다. 분리의 이미지가 없다. 태극기의 태극처럼 떨어진 둘이 아니라 꼭 붙어있는 둘, 그래서 결국은 하나이다. 조금 더 자세히는 <이곳> 설명을 참조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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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빠야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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謙 亨 君子 有終

【初六】謙謙 君子 用涉大川 吉

【六二】鳴謙貞吉

【九三】勞謙 君子有終 吉

【六四】无不利 撝謙

【六五】不富以其鄰 利用侵伐 无不利

【上六】鳴謙 利用行師 征邑國

  고전은 용어에 대한 의미를 단번에 받아들이기가 어려워 독서를 힘들게 하기도 한다. 논어에서 겸손을 인의예지신(仁義禮知信)과 같은 단계에서 언급한 곳은, 공자께서 “군자는 의로움을 바탕으로 삼고, 예로써 행하고, 겸손으로 표현하며 신의로써 완성한다(義以爲質,禮以行之,孫以出之,信以成之)”[논어 제15편 위령공 제17장]고 하신 부분이다. 마땅히 낮추어야 할 때 즉, 어른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것은 예(禮)이지 겸(謙)이 아니다. 겸손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임에도 자신을 낮추는 것을 뜻하는 반면, 오히려 자기에게는 더 엄격함을 요구하는 것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자기를 나무람을 엄격히 하고 남을 나무람을 가볍게 하면 자연히 원망이 멀어질 것이다”[논어 제15편 위령공 제15장]고 하셨다. 자기에게 더 엄격하기 때문에 자신을 낮추게 되고 남에게 더 관대하게 된다. 자랑하지 않아야 겠다고 낮추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낮추게 되는 것이다. 주역은 자신을 낮추는 소극적인 측면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남을 높여주는데 애쓰는 적극적인 겸손까지 강조하고 있다.

 

謙 亨 君子 有終

겸손(謙)의 덕을 성장기(亨)에 익히면 군자로서(君子) 마침이 있다(有終)

  주역에서 언급하는 변화의 순리 원(元) 형(亨) 리(利) 정(貞)에서 유독, 형(亨)의 시기에 대해서 많은 언급이 되고 있는 이유는 근본(元)을 바꾸기는 힘들지만, 성장(亨)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어떤 결실(利)을 맺고 죽는지(貞)가 다르게 되기 때문이다. 키를 더 키우기 위해서 애쓸 수 있는 시간은 성장기이다. 겸손은 사람이 성장기(亨)에 잘 익혀야 쉬이 변치 않으므로 군자로써 생을 마칠 수 있게 된다. 성장기에 얻은 품성이 평생을 가는 것이다.

 

謙謙 君子 用涉大川 吉

겸손의 덕이 넘치는(謙謙) 군자는(君子) 큰 내를 건너는(用涉大川) 과단성을 갖추기만 하면 길하다(吉)

  겸손의 덕이 넘치는 군자는 겸손이 지나침을 말한다. 겸손하여 자기를 낮추는 것이 지나치게 되면 과단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지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중용의 길로 나가가려면 과단성이 필요하다고 한다.

 

鳴謙貞吉

사람들의 명성을 얻은 겸손은(鳴謙) 끝까지 길하다(貞吉).

  명겸(鳴謙)은 세상이 널리 알아주는 겸손을 말한다. 겸손한 척하는 사람이라면 명성을 탐하겠지만, 진실로 겸손한 사람이라면 명성을 탐하지 않을 것이니, 그런 사람이 얻은 명성이라면 비단 위에 꽃을 더한 금상첨화(錦上添花)일 것이다.

 

勞謙 君子有終 吉

노력하여 겸손을 이루어도(勞謙) 군자로서 마침이 있을 것(君子有終)이니 길(吉)하다.

  성장기(亨)에 겸손의 덕성은 쌓아야 함은 끝까지 바뀌지 않아 군자로서 마침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시기를 지나 거만하고 타인을 업신여기던 사람이 늦은 나이에 개과천선하면 어떻게 되는가? 마찬가지로 군자로서 마침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공자께서 “사람이 개과천선하여 진보하고자 하면 마땅히 현재의 깨끗함을 용납해야 하니, 이것은 과거를 감싸주자는 것이 아니다”[논어 제7편 술이 제29장]고 하셨다. 고치면 그것으로 좋고 과거를 허물 삼을 필요가 없다.

 

无不利 撝謙

이롭지 않음이 없구나(无不利) 나보다 남을 높이는 겸손(撝謙)이여!

  휘겸(撝謙)이란 자신을 낮추는 수준을 넘어서 힘써서 다른 사람을 높여주는 겸손을 말한다. 공자께서는 ‘자기가 서고자 하는 곳에 다른 사람을 도와 서게 하고, 자기가 도달하고 싶은 곳에 다른 사람을 도와주어 도달하게 만드는 것’은 인(仁)의 한 모습이라고까지 말씀하셨다.[논어 제6편 옹야 30장] 그래서 공숙문자가 자신의 가신이었던 선을 천거하여 자기와 동일한 관직으로 오르게 애쓴 것을 두고 “참으로 문이라는 칭호를 받을 만하다”[논어 제14편 헌문 제18장]라고 감탄하시며 칭송하셨다.

 

不富以其鄰 利用侵伐 无不利

부유함으로 이웃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니기에(不富以其鄰) 침략하여 응징해도(利用侵伐) 이롭지 않음이 없다(无不利)

  부유함이 아니라 겸손의 덕으로써 이웃과 함께 하는 것이므로, 해를 끼치는 잘못된 자를 응징하여도 이롭지 않음이 없다. 침략하여 응징함은 남을 위해 애쓰는 휘겸(撝謙)의 뜻을 실천하는 자기 희생이요, 자기 낮춤이기 때문이다.

 

鳴謙 利用行師征邑國

명성을 얻은 겸손(鳴謙)은 군사를 일으켜 이웃나라를 정벌해도 이롭다(利用行師征邑國)

  휘겸(撝謙)의 군자가 명성까지 얻었다면 이웃나라를 정벌해도 이롭다고 한다. 『맹자: 양혜왕 하편』에서 맹자께서는 ‘천하사람들이 모두 그를 믿었으므로 동쪽으로 향하면 서쪽에서 원망하고 남쪽으로 향하면 북쪽에서 원망하며 어찌 우리나라의 정벌을 뒤로 미루시는가?’하였다며 『서경』을 인용하여 해방전쟁을 말씀하셨다. 남을 높여주기 위해 애쓰는 휘겸(撝謙)의 군자가 이웃나라를 정벌하는 것은 정복전쟁이 아니라, 이웃 백성들을 삶을 높여주기 위해서 해방전쟁으로 나가는 것이니 이롭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Posted by 오빠야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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