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7

« 2022/7 »

  •  
  •  
  •  
  •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  
  •  
  •  
  •  
문어

눈이 소리를 낼 수 없습니다.
목이 색을 구별할 수 없습니다.
귀는 냄새를 맡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 물 속에서 살 수 없습니다.
남자는 아이를 포태할 수 없습니다.
말은 완전하게 전달할 수 없습니다.
귀도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머리도 모든 것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한가지 !
상상만은 한계가 없습니다.


상상으로 만들지 못하는 것은 없고
상상으로 되지 못하는 것은 없고
상상으로 알지 못하는 것은 없습니다.

 

공자께서 도가 행해지지 않는 이유로
중용 제4장에서 앎과 모름을 지적하신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지나치고 [知者過之]
어리석은 사람은 미치지 못하구나 [愚者不及也]

그럼, 지나치지도 모자람도 없는 앎이란 무엇입니까?

아는 것을 아는 것으로 알고,
모르는 것을 모르는 것으로 아는 것이
진정으로 아는 것이다. [논어 제2편 위정 제17장]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구는 재물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고 드러나는 것은 뭐가 무섭습니까?

‘앎의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구가 사실은 더 무섭습니다.

재물은 있는 척 하더라도 금방 들통나지만,

아는 척 하는 것은 금방 들통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정말 안다고 착각에 빠져버리는 것이 더 무섭습니다.

이것이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싸움을 일으킵니다.

 

정치인 MB의 속맘을 알 수 있는 것입니까?

정치인 KH의 속맘을 알 수 있는 것입니까?

자기속도 모르는데, 다른 사람속에 있는 속마음을 어떻게 압니까?

그런데도 아는척을 합니다. 그리고 타방을 미워합니다.

아는 것을 아는 것으로 알고,
모르는 것을 모르는 것으로 아는 것이
진정으로 아는 것이다. [논어 제2편 위정 제17장]

말 잘하는 사람의 말재주에 걸려들어 냉정한 판단력을 잃습니다.

그리고, '나는 너보다 특별하다'는 상상과 결부시킵니다.

나는 특별하고 너는 바보입니다.

나는 특별하기에 시비를 정확히 가립니다.

나는 특별하기에 의도를 간파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너는 한심하고 무지합니다.

나는 잘났고 너는 못났습니다.

 

공자의 제자 자공이 미워하는 첫번째도 ‘짐작으로 다 안다는 사람’입니다.

자공아 너도 미워하는 것이 있느냐?

“추측하여 다 안다는 사람,

불손함을 용기라 하는 사람,

들추어내는 것만 정직이라 하는 사람을 미워합니다” [논어 제17편 양화 제24장]

 

물 속에서 좀 더 오래 잠수할 수는 있어도
물 속에서 물고기처럼 계속 살 수는 없습니다.
사람으로서의 성(性)이 가진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받은 성(性)에 의해
물 속에서 더 오래 잠수할 수 있는 차이가 있는 것인지,
나는 물속에서도 물고기처럼 살 수 있는 것인지
그 선을 분명하게 감지해 가는 것이 중용입니다.

Posted by 오빠야닷컴

댓글을 달아 주세요

61

中孚 豚魚 吉 利涉大川 利貞

【初九】虞 吉 有他 不燕

【九二】鶴鳴在陰 其子和之 我有好爵 吾與爾靡之

【六三】得敵 成鼓 或罷 或泣 或歌

【六四】月幾望 馬匹 亡 无咎

【九五】有孚攣如 无咎

【上九】翰音 登于天 貞 凶

  이제 주역의 남은 마지막 4괘는 주역의 가르침을 정리하는 괘이다. 결국 주역의 가르침을 정리하면 중용(中庸)이다. 사서의 하나인 『중용』을 『소(小)주역』’이라고 말하는 까닭도 그 철학이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주역은 시작하는 4괘에서 근본적인 것을 모두 말하였다. 자연스럽고 조화롭고 편안하고 그래서 아름답게 변화하여 마감하는 4가지 진리를 말하였다. 곧 때를 헤아리고(乾) 자리를 잘 잡고(坤) 함께하고(屯) 깨우치는(蒙)것을 말하였다. 첫4괘와 마지막4괘를 제외한 나머지는 첫4괘와 마지막4괘의 이치를 나누어 놓은 것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주역의 글 역시도 서론, 본론, 결론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조화를 맞추고 있으니, 중용을 가르치고 중용을 보여줌으로써 끝내는 유종의 미를 거두고 있는 것 같다.

 

中孚 豚魚 吉 利涉大川 利貞

곧은 믿음이(中孚) 돼지와 물고기에 이르니(豚魚) 길(吉)하다. 큰 내를 건너듯 과단성을 가지면 이롭고(利涉大川) 끝까지 이롭다(利貞).

  중부(中孚)는 미물인 돼지와 물고기 조차 의심할 수 없는 바른 믿음을 뜻하니 신급돈어(信及豚魚)의 줄임말이다. 신급돈어는 돼지나 물고기 등(等) 무심(無心)한 생물(生物)조차 믿어 의심(疑心)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 올바른 믿음이라면 과단하게 나아가야 하고 끝까지 이로운 것이다.

 

虞 吉 有他 不燕

깊이 헤아리는 것(虞)이 길(吉)하나 다른 것이 생긴다면(有他) 편안하지 않다(不燕)

  공자께서는 계강자가 세 번 생각하고 행동하였다는 말을 듣고 “두 번이면 충분하다”[논어 제5편 공야장 제20장]고 말씀하셨다. 계강자가 지나치게 신중하고 생각이 깊었던 까닭인데, 지나치게 헤아리는 것 자체가 중용을 벗어난 것이기 때문에 가르침을 주려 한 것이었다. 생각을 한번 더 한다고 늘 이로운 것은 아니다.

 

鶴鳴在陰 其子和之 我有好爵 吾與爾靡之

어미학이 그늘에서 부르니(鶴鳴在陰) 그 새끼가 화답한다(其子和之) 나에게 좋은 잔이 있으니(我有好爵) 나와 너 함께 더불어 나누리라(吾與爾靡之).

  배움을 새를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익힐 습(習)이란 글자도 어린새가 어미새를 보고 날개짓을 하는 것을 형상화한 글자이다. 어미학이 그늘에서 소리를 내어 그 새끼를 부르고 그 새끼가 화답하는 것처럼 중용의 바른 도리를 먼저 깨우친 자가 미숙한 이를 불러 더불어 잔을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그 모습 역시 조화로움을 꾀하는 중용이다.

 

得敵 成鼓 或罷 或泣 或歌

적을 얻으니(得敵) 두드려보고(成鼓) 멈춰서보고(或罷) 울어도보고(或泣) 노래도 해 본다(或歌).

  적(敵)이란 중용의 도에 대한 의문 즉, 의혹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주희는 대학의 원문에서 「격물치지(格物致知)」라는 부분이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인데, 후대로 전해지면서 잃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그 부분을 보완하여 채워넣었다. 천하의 이치는 깨달은 사람이라면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니 그 궁극으로 나아가라는 가르침 이었는데, 여기서 말하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옥돌을 자르고 줄로 쓸고 끌로 쪼고 가는 절차탁마(切磋琢磨)하라는 뜻이다. 그러면 보이게 된다는 뜻이다.

 

月幾望 馬匹 亡 无咎

달이 거의 차니(月幾望) 마필이(馬匹) 사라져야(亡) 허물이 없다(无咎)

  달이 거의 찬 것은 학문의 성취가 보름달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마필은 수레에 태워 나를 이끌어 주던 말들이니, 곧 스승을 뜻하는 것이다. 스승은 제자의 성취가 보름달에 이르면 하산을 시킨다. 그 이후로는 스스로 나아가야 한다. 스승의 역할이 있고 스스로 깨쳐야 할 부분이 있다.

 

有孚攣如 无咎

신념으로(有孚) 붙잡아 매니(攣如) 허물이 없다(无咎).

  공자께서는 “안회는 그 마음을 다해 3개월동안 인을 어기지 않았는데, 나머지는 하루이틀, 일이개월 그럴 뿐이구나”[논어 제6편 옹야 제7장]라고 하셨다. 배워 알았다고 끝이 아니다. 신념으로 붙들어 매어 잃어버리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이미 깨우친 공자께서도 생을 마감하실 때까지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으셨다. 운동을 쉬면 근육이 굳어지듯, 배움도 쉬면 정신이 굳어진다.

 

翰音 登于天 貞 凶

날 수 없는 닭(翰音)이 하늘로 오르려 하면(登于天) 끝내(貞) 흉(凶)하다.

  한음(翰音)은 닭의 다른 이름이다. 날 수 없는 닭이 날 수 있다고 착각을 하는 것이니 곧 제 수준을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공자께서는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리석게 되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험하게 된다”[논어 제2편 위정 제15장]고 하셨다. 곧 한음(翰音)은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는 자를 말함이니 곧 서울에 가 본 적 없으면서 서울에 가 본 사람을 이기려는 사람이다. 모르는 게 없는 사람들도 참 많다.

Posted by 오빠야닷컴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