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困 亨 貞 大人 吉 无咎 有言 不信
【初六】臀困于株木 入于幽谷 三歲不覿
【九二】困于酒食 朱紱方來 利用享祀 征 凶 无咎
【六三】困于石 據于蒺蔾 入于其宮 不見其妻 凶
【九四】來徐徐 困于金車 吝 有終
【九五】劓刖 困于赤紱 乃徐有說 利用祭祀
【上六】困于葛藟 于臲卼 曰動悔 有悔 征 吉

  곤(困)괘는 내적으로 부족하거나 지나쳐 중용에 곧게 서지(利) 못함을 뜻하는 괘이다. 공자께서 “도를 실천하지 않는 이유를 나는 안다. 지혜로운 사람은 너무 똑똑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모자라기 때문이다”[중용 제4장]라고 하셨다. 곤(困)은 외부적인 상황 때문에 겪게 되는 곤란이 아니라 전적으로 마음이 중용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곤경이다.


困 亨 貞 大人 吉 无咎 有言 不信
곤경(困)은 모자라거나(亨) 지나친(貞) 이유이니 대인(大人)은 길(吉)하고 허물이 없다(无咎) 여러 소리가 들리겠지만(有言) 신뢰할 수 없다(不信)
  곤경(困)은 열매를 맺지(利) 못하고 있는 것이다. 좌로 치우쳐 여물지 못했거나(亨) 우로 치우쳐 기울어(貞) 만나게 되는 것이다. 대인이 길한 이유는 대인은 중용(中庸)의 도를 알기 때문이다. 곤경에 부딪히면 여러 소리들이 들리게 마련이다. 경청할 소리도 있으나 도움의 소리가 아니라 잘난 척 스승을 자처하는 교만의 소리도 있을 것이다. 약자에게는 입을 열고 모여들고 강자에게는 귀를 열고 모여들기 때문이다.

 

臀困于株木 入于幽谷 三歲不覿
곤장을 맞아 엉덩이가 곤란을 겪으려 하면(臀困于株木) 어두운 골짜기로 들어가(入于幽谷) 삼년 동안 세상을 돌아보지 마라(三歲不覿).

  죄인으로 몰려 부당한 형벌을 받게 되는 곤경에 처하니, 세상의 도가 무너졌는데 나아가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 시기에는 은둔 해야 하는 것이 중용이다.

 

困于酒食 朱紱方來 利用享祀 征 凶 无咎
먹거리로 인한 곤경에 처하면(困于酒食) 주황색가리개를 하고 찾아가(朱紱方來) 제사를 드리는 것이 이롭다(利用享祀) 내세우면(征) 흉(凶)하나 허물은 없다(无咎)

  먹거리로 곤경에 처하니 곧 궁핍한 가난이다. 주불(朱紱)은 천자의 명으로 제후나 공경의 높은 지위의 신하가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하던 가리개이다. 당장 주불을 받을만한 능력이 있는 자가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무능력해서가 아니라 뜻을 지나치게 숭상하기 때문에 중용을 벗어난 것이다. 길흉(吉凶)은 외면적 시각이고, 허물(咎)은 내면적 시각이다. 자리를 달라고 내세우면 보기에 흉하지만 허물은 없다. 때를 기다리는 수(需)괘에서 말한 경제적인 기반 속에서 기다림(需于酒食)이어야 중용이기 때문이다.

 

困于石 據于蒺蔾 入于其宮 不見其妻 凶
돌 위의 곤경(困于石)으로 가시덤불 속에서 잠을 청하니(據于蒺蔾) 집에 들어가더라도(于其宮) 그 아내를 만날 수 없을 것이라(不見其妻) 흉(凶)하다.
  돌 위에서 자는 것은 부부관계를 혐오하는 지나치게 고상함을 따르려는 곤경이다. 납가새(蔾)는 가시덤불을 이루는 한해살이 풀로 그 곳에서 잠든다는 것은 성욕을 참아내는 것을 의미한다. 지나치게 고상하여 마음을 닫았으니 그 아내가 만나주지 않을 것이라 흉하다. 동물적 본성을 지나치게 혐오하지 말아야 한다. 대소변을 누는 것도 고상한 일은 아니다.

 

來徐徐 困于金車 吝 有終
서서히 오는(來徐徐) 금차에서의 곤경(困于金車)은 궁색해지면(吝) 끝낼 수 있다(有終)
  금차에서의 곤경은 부자의 곤경이다. 서서히 오는 것은 이웃들의 수근거림이며, 그 까닭은 인색하기 때문이다. 재물을 베풀어 스스로 궁색해지면 그 곤경은 마무리를 할 수 있다. 부자는 욕심을 줄이고 그 재물을 나누는 것이 중용이다.

 

劓刖 困于赤紱 乃徐有說 利用祭祀
코를 베이고 다리를 절단 당하는(劓刖) 적불에서의 곤경(困于赤紱)은 천천히 기쁘게 하여야 하니(乃徐有說) 제사를 지내는 것이 이롭다(利用祭祀)
  적불은 천자의 명으로 대부들이 제사에 사용했던 가리개이다. 주불(朱紱)을 받는 신하보다 낮은 계급의 신하이다. 코가 베이고 다리가 절단 당하는 형벌을 받은 까닭은 제 분수를 모르고 제사에 참석하라는 천자의 명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자의 명을 받들어 기쁘게 하기 위해 제사를 지내는 것이 이롭다. 공자께서는 “그 지위에 있지 않으면 그 정사에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논어 제8편 태백 제14장]고 하셨다. 본분을 넘어서는 것이기에 중용을 벗어난 것이다. 또한, 갑자기 기쁘게 하는 것은 변절자가 가지는 태도이니 서서히 고집을 꺾어 기쁘게 하는 것이 중용을 따르는 것이다.

 

困于葛藟 于臲卼 曰動悔 有悔 征 吉
칡덩굴처럼 얽히고 섥힌 곤경(困于葛藟)과 위태위태한(于臲卼) 곤경은 말하자면(曰) 후회가 움직일 것이라는 뜻이니(動悔) 뉘우치고(有悔) 극복하기 위해 나선다면(征) 길(吉)하다.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히고 섥히고 위태위태한 곤경이란 잘못을 즉시 바로잡지 않고 방치해 두었다가 그 문제가 걷잡을 수 업게 된 상황에 처한 것을 뜻한다. 그제서야 뉘우치게 될 것이니 극복하기 위해 나서면 길하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른 때이기 때문이다. 공자께서는 “태어나면서 안다면 최고요, 배워서 안다면 그 다음이요, 곤경을 만나 배우면 그 다음이요, 곤경을 처해서도 배우지 않는다면 참으로 하등이다”[논어 제16편 계씨 제9장]고 하셨다. 뉘우치고 극복하기 위해 나서는 것은 곤경에 만나 비로소 느껴서 배우려고 하는 것이니 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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晉 康侯 用錫馬蕃庶 晝日三接
【初六】晉如 摧如 貞吉 罔孚 裕 无咎
【六二】晉如 愁如 貞吉 受茲介福于其王母
【六三】衆允 悔亡
【九四】晉如鼫鼠 貞厲
【六五】悔亡 失得勿恤 往吉 无不利
【上九】晉其角 維用伐邑 厲吉 无咎 貞吝

  중국은 천자(天子)가 각 지역의 제후들을 통솔하는 체제를 갖고 있었다. 천자가 제후를 임명하여 한 지역을 독자적으로 다스리게 하고 그 제후를 지배하는 형태의 정치체제 였는데, 그래서 조공을 받쳤던 우리나라가 중국의 제후국이었느니 하는 논란이 있기도 하였다. 여기에서 말하는 진(晉)괘는 천자의 권력이 아닌 제후의 권력을 말하며, 천자에 충성하는 권력을 의미한다.

 

晉 康侯 用錫馬蕃庶 晝日三接
권력(晉)은 강후의 지위를 받고(康侯) 마필을 상으로 받으며(用錫馬蕃庶) 하루에(晝日) 세 번 임금을 배알함을(三接) 말한다.
  천자로부터 제후로 봉해지면 천자의 신하로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데, 천자를 조현(朝見)하여 업무 보고와 인사를 하여야 하며, 조공을 받쳐야 하며, 천자를 지키기 위해 군대를 파견하고 천자에게 불충한 다른 제후를 토벌하여야 하는 등 여러가지 신하로서의 의무를 지게 되었다. 제후로 봉해졌는데 마필을 상으로 받고 하루에 세 번이나 천자를 배알하게 되니 곧 올바른 권력이며 천자에 충성하는 권력이어야 한다는 의미한다. 반드시 하루에 세 번 만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번 청해도 천자가 만나줄 정도의 신임을 의미한다.

 

晉如 摧如 貞吉 罔孚 裕 无咎
권력으로(晉如) 정적을 굴복시켜야(摧如) 끝까지 길하다(貞吉) 굴복한 적수가 신뢰할 수는 없더라도(罔孚) 관대하게 대해야(裕) 허물은 없다(无咎)
  권력은 정적을 굴복시키지 못하면 위협이 되는 무서운 속성을 내재하고 있다. 권력으로 정적을 굴복시켜야 하는 것은 제후로서의 의무 중 하나인 ‘불충한 다른 제후를 토벌해야 할 의무’를 의미한다. 중국의 역사는 제후들의 커진 힘을 막지 못해 결국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하여 혼란기로 접어들었다. 권력은 정적을 힘으로 굴복을 시켜야 하지만 그 반면 관대하게 대해야 한다. 중용(中庸)의 도를 지키라는 것이다. 채찍과 당근이 조화되어야 하니 ‘교육’의 도(道)와 마찬가지이다.

 

晉如 愁如 貞吉 受茲介福于其王母
권력은(晉如) 근심이 있어야(愁如) 끝까지 길하니(貞吉) 왕모로부터 그 복을 받을 것이다(受茲介福于其王母)
  제후의 권력은 천자로부터 다른 지역의 제후들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견제를 받게 되는 자리이다. 권력의 근심은 그러한 권력의 견제를 말한다. 권력이 견제를 받지 못하면 액톤(Acton)의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한다’는 말처럼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오늘날 삼권분립(三權分立)이 제도로써 자리잡은 까닭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천자와 다른 제후들의 의심을 사게 되는 심한 견제를 받으면 왕모가 살펴 줄 것이라고 한다. 왕모는 역사적으로 문왕의 어머니였던 태임(太任)을 지칭한다고 한다. 천자는 혹 간신배들에게 휘둘려 분별력이 떨어질 수도 있지만, 어머니의 모성본능은 아들을 해롭게 하는 자와 이롭게 하는 자를 본능의 눈으로 더 잘 알게 되는 까닭일 지 모른다.

 

衆允 悔亡
민중의 지지가 있어야(衆允) 후회가 없다(悔亡).
  바른 권력인지 바르지 못한 권력인지의 여부는 민중으로부터 찾아야 한다. 탕왕이 걸왕을 내쫓고 무왕이 주왕을 정벌한 것을 두고 맹자는 남을 해치고 잔인하게 구는 한 명의 인간을 처형한 것일 뿐 군주를 시해한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군주가 군주답지 않으면 군주가 아니라는 뜻인데, 바른 권력이란 무조건적으로 천자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바른 도리와 민중의 마음을 따르는 것이다.

 

晉如 鼫鼠 貞厲
권력이(晉如) 들쥐와 집쥐와 함께 하면(鼫鼠) 끝까지 위태롭다(貞厲).
  들쥐는 떼를 지어서 농작물에 단번에 큰 피해를 주고, 집쥐는 집안에 기생하며 조금조금씩 피해를 주는데 그러한 성향의 간신배들을 상징한다. 공자께서는 “스며드는 참소와 애통한 무고가 통하지 않는다면 널리 밝히는 통찰력을 가졌다 할 수 있다”[논어 제12편 안연 제6장]고 하셨다. 논어 원문의 침윤지참(浸潤之譖)과 부수지소(膚受之愬)는 이미 고사성어가 된 말이다. 침윤지참(浸潤之譖)은 물이 점점 스며드는 것과 같이 쌓고 쌓이게 하여 모함하는 것이며, 부수지소(膚受之愬)는 살을 에는 듯한 간절한 하소연으로 단번에 흔들리게 모함하는 것을 말하니, 침윤지참은 집쥐와 의미가 같고 부수지소는 들쥐와 의미가 같다.

 

悔亡 失得勿恤 往吉 无不利
후회가 없다면(悔亡) 권력을 잃고 얻음에 근심하지 말라(失得勿恤) 그렇게 나아가면 길하고(往吉) 이롭지 않음이 없다(无不利)

  권력이 단지 욕망이라면 그만큼 무상한 것도 없다. 옛 속담에 ‘정승 개 문상은 가도 정승 문상은 안 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권력을 잃고 얻는 것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바름을 도모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권력은 그 바름을 도모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晉其角 維用伐邑 厲 吉 无咎 貞吝
권력의 뿔을 세우면(晉其角) 그 권력으로 이웃을 치게 되니(維用伐邑) 위태하다(厲) 결과가 좋고(吉) 허물은 없더라도(无咎) 끝내는 어려워질 것이다(貞吝)
  권력의 뿔을 세우는 것은 권력의 힘을 행사하는 것이다. 그 가진 힘을 행사하여 이웃을 치는 것은 잘못이라는 뜻이다. 힘으로 제압했기 때문이며 힘을 남용했기 때문이다. 권력이라는 강한 힘을 가졌으되 그 힘은 공격적으로 행사되어야 하는 힘이 아니라 바른 도를 지키기 위한 방어적인 행사여야 바른 까닭이다. 공자께서 소(韶)음악은 정말 아름답고 참으로 좋다고 하셨지만 무(武)음악은 아름답지만 참으로 좋지는 않다고 하셨으니[논어 제3편 팔일 제25장], 무왕은 힘으로 자신의 주군이였던 주왕을 참살하고 천하를 차지하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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豫 利 建侯行師
【初六】鳴豫 凶
【六二】介于石 不終日 貞吉
【六三】盱豫 悔 遲 有悔
【九四】由豫 大有得 勿疑朋盍簪
【六五】貞疾 恒 不死
【上六】冥豫 成 有渝 无咎

  예(豫)는 코끼리(象)가 자신이 죽을 때를 알고 무덤을 찾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형성문자이다. 일반적으로 미래를 미리 아는 것을 뜻하지만, 주역에서의 예(豫)괘는 ‘죽을 때와 자리를 아는 것’을 의미하니, 곧 하늘이 생명을 세상으로 보내어 맡긴 임무를 뜻한다. 필부필부(匹夫匹婦)하는 소인의 사명은 만나서 아이 낳고 평범하게 먹고 살다가 생을 마감하는 것이고, 대인의 사명은 전체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하늘이 보통사람보다 뛰어난 재능을 부여한 이유를 그 재능을 사용해 공공을 위해 봉사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였으나 현대에는 뛰어난 재능과 노력으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라고 한다.


豫 利 建侯行師
사명(豫)은 결실(利)을 맺는 것이니 제후를 세우거나 군사를 일으키는(建侯行師) 것처럼 큰 일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
  주나라는 천자가 큰 영토를 각 지역별로 제후를 세워 실질적 통치를 맡기고 조근, 군대파견 등의 구속을 통해 충성을 맹세 받는 형태의 통치체제였는데, 훗날 제후들의 세력이 너무 커져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하게 되었다. 여하튼 제후를 세우거나 군사를 일으켜 응징하는 일은 천자만이 할 수 있는 큰 일이다. 예(豫)는 제후를 세우는 것처럼 큰 뜻을 이루어 결실(利)을 맺고자 하는 것을 말한다.

 

鳴豫 凶
사명을 떠벌리면(鳴豫) 흉(凶)하다
.
  삼국지를 보면 유비, 관우, 장비가 어지러운 세상을 구하기 위해 '도원결의'를 한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뜻을 펼치며, 같은 날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같은 날 죽자는 의로운 맹세였다. 그러나 농사꾼 행세를 하기도 하면서 품은 뜻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았다. 유자께서는 “신의는 정의로움에 비추어 이행하는 것이다”[논어 제1편 학이 제13장]고 하셨으니, 곧 정의롭지 않으면 약속을 저버려도 된다는 말씀이셨다.

  유학에서는 꽉 막힌 원칙을 배격했다. 독립투쟁을 하던 의사들께서 동지들을 팔지 않고 “모른다”고 했던 것이 거짓말이라서 부끄러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사명을 숨기는 것도 잘못이 아니다. 잠용일 때 움직이려 해서는 안되니(潛龍勿用) 때가 도래하기 까지 숨죽이고 숨길 수도 있어야 한다.

 

介于石 不終日 貞吉
돌에 새긴 듯(介于石) 굳고 단단하게 맹세를 하고 종일(終日) 멈추지 않으면(不) 마침내 길하다(貞吉)
  때론 숨기고 때론 어려움을 겪더라도 사명을 돌에 새긴 듯 굳고 단단하게 유지를 하면 끝내 좋은 결실을 얻게 된다. 현실이 어려워도 타협하지 않아야 한다. 종일 멈추지 않는다는 것은 건(乾)괘의 ‘종일(終日)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어두움을 경계하는 것(終日乾乾 夕惕若)’과 마찬가지의 의미이다.

 

盱豫 悔 遲 有悔
턱을 치켜 들어야 할 만큼의 분에 넘치는 사명은(盱豫) 뉘우침이 있으리니(悔) 시간만 낭비하며(遲) 후회만 남길 것이다(有悔)
  토끼가 호랑이를 잡아먹으려 해서는 안되니, 하늘이 토끼로 세상에 보내었을 때는 토끼로 살면서 생태계를 유지하고 자연의 조화에 따르라는 것이었다. 하늘이 사람을 분별하여 세상에 보낸 이유도 같은 뜻일 것이니 천명이 다르므로 턱을 치켜들어 분수를 지나치면 후회만 남기게 될 것이라고 한다. 옛 시대는 ‘군주주의’의 시대였고, 그래서 공자께서도 세상을 바로잡고자 하였으나 천자의 지위를 탐내지는 않으셨다.

 

由豫 大有得 勿疑朋盍簪
사명을 다하려 한 까닭에(由豫) 크게 얻는 것이 있었다면(大有得) 도와준 친구를 의심하지 않아야 비녀를 꽂을 수 있다(勿疑朋盍簪).

  여인의 치장은 비녀를 꽂음으로써 완성이 되는 것이니, 도와준 친구를 의심하지 않아야 비로소 정점에 이를 수 있다는 말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신 “얻으려 근심하고 잃을까 근심한다”[논어 제17편 양화 제15장]는 의미이니, 얻고 나서 잃을까 근심하여 도와준 친구까지도 의심하는 것을 경계하는 뜻이다. 건(乾)괘에서 용이 비상하는 전성기가 되었다고 은혜를 잊어버리지 말고 마땅히 은인과 함께 그 전성기를 누리라고 하는 것에 연결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貞疾 恒 不死
마지막에 친구를 의심하게 되는 병이 생기면(貞疾) 계속되어(恒) 그 병통을 죽여 없애지 못하게 된다(不死).
  적과 동지가 하루 아침에 뒤바뀌는 경우를 역사에서 많이 목격하게 된다. 믿음이 사라지면, 부리던 자는 자신도 당하지 않을까 두려워하게 되고, 따르던 자는 토끼를 잡고 나면 사냥개는 주인에게 삶아 먹힌다는 '토사구팽'을 염려하여 두려움에 떨기 마련이니, 그 병통을 없애기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정(貞)은 죽음을 뜻하고 곧음을 뜻하고 완성을 뜻하고 끝을 뜻하기도 하니, 모두 죽음처럼 더 이상 변화의 여지가 없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비녀를 꽂는 마지막(貞)에 생기는 친구에 대한 의심의 본질은 두려움일 것이다. 그렇게 정점에 이르러 생겨난 두려움은 없던 상태로 되돌아 가지 않는 이상 절대로 없앨 수 없는 “잃을까 근심하는 두려움"일 것이다. 

 

冥豫 成 有渝 无咎
어두운 사명(冥豫)이 성공할 수도 있으나(成) 변신을 해야(有渝) 허물이 없다(无咎).

  쿠테타도 때로는 성공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사로운 이익과 영화를 위해 추구한 쿠테타(권력찬탈)라면 성공하여도 잠시일 뿐일 것이다. 공자께서 “사람이라면 마땅히 곧아야 할 것인데, 곧지 않은 사람은 요행히 재난을 면하고 있을 따름이다”[논어 제6편 옹야 제19장]고 하셨다. 바르지 못한 것이 오래 지속될 수는 없는 법이니, 정의가 결국은 승리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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