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편 위정(爲政) 제24장 간상(赶上)/논어(論語)2013. 1. 14. 20:32
- 조상의 귀신이 아닌데 제사하는 것은 아첨이다 [非其鬼而祭之 諂也]
- 의로와야 함에도 멈추는 것은 용기가 없는 것이다 [見義不為 無勇也]
귀(鬼)는 육체를, 신(神)은 영혼을 의미한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귀(鬼)는 흙으로 돌아가고, 신(神)은 하늘로 돌아간다. 같은 의미로 백(魄)은 흙으로 돌아가고, 혼(魂)은 하늘로 돌아간다. 그런데 혼백(魂魄)이라고 할 때는 하늘이 앞이고, 귀신(鬼神)이라고 하면 땅이 앞이다. 혼동하기 쉽다.
공자 때문에 제사가 생겨났다는 오해도 있는데, 오히려 공자는 상고시대에 무분별한 제사를 일소해서 없앴다는 평가를 받는다. 감히 왕이 아니면 하늘에 제사지낼 수 없었다. 우리도 조선 초기에는 고급관료가 아니면 부모께만 제사지낼 수 있었다. 주자학이 힘을 얻은 후 3대 제사가 허용되어 환호했던 때가 있었는데, 요즘은 안 지내고 싶어하니 재미있는 반전이다.
한편, 유가에서 말하는 용기(勇)는 차원을 달리한다. 맹자는 "칼을 잡고 노려보며 '저 녀석이 나를 당하겠는가' 하는 것은 보통사람의 용기이므로 겨우 한 사람만 대적할 수 있다"고 얘기했다. 공자가 수신의 세 가지 덕목으로 제시한 지인용(知仁勇) 수준에서의 용(勇)은 지치(知恥) 즉, 부끄러움을 아는 수준이다. 그 뿌리는 내면에 자리하고 있다. 죄를 지으면 양심의 가책으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가슴속에 살고 있는 성(性)이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性)에 부끄럽지 않음이 쌓이고 쌓여 축적된 '호연지기'가 바탕이 되는, 생사조차 건드릴 수 없는 당당하고 굳셈이다.
사람에게는 삶보다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으며, 죽음보다 더 싫어하는 것이 있다.<맹자 고자 상 11.10>
언뜻 보면 제사와 의로움이라는 이질적인 얘기를 하는 듯하다. 그러나 《중용(中庸)》의 측면에서 보면 잘 어울리는 가르침이다. 예가 지나쳐서 과한 것을 말했고, 용기가 부족하여 모자란 것을 말했다. 그리고 이 둘의 마음이 통(通)한다. 지나치게 빌며 복을 얻으려는 사람은 이득을 얻겠다는 마음, 의로운 일에 소극적인 사람은 손해를 보지 않겠다는 마음이다. 결국, 이익을 더 우선하려는 같은 뿌리에서 과한 행동과 모자란 행동이란 가지가 뻗어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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