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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12. 13:44

제2편 위정(爲政) 제20장 간상(赶上)/논어(論語)2013. 1. 12. 13:44

계강자가 묻기를 [季康子問:]
백성이 공경하고 충성하고 이를 권면하게 하려면 어찌해야 합니까? [使民敬, 忠以勸, 如之何]
공자 말씀하셨네 [子曰:]
엄숙히 임하면 백성이 공경하게 되고[臨之以莊, 則敬]
효도하고 자애하면 백성이 충성하게 됩니다[孝慈, 則忠]
선한 이를 등용하여 그렇지 않은 이를 교화하면 권면하게 됩니다[舉善而敎不能, 則勸]


  앞 장의 애공의 질문과 다를 것이 없는 질문이다. 답도 마찬가지다. "너나 잘하세요."


  왜 《논어》에서 연속으로 실어놓았을까? 시대와 문화가 바뀌어도 계속되는 중요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가 말 잘 듣고 공부 잘하게 하려면 어찌해야 합니까? 내 마누라가 남편을 무시하지 않게 하려면 어찌해야죠? 내 학생이 선생의 말을 잘 따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런 식의 질문으로 변해서 이어진다. 수백 년이 지나도 비슷한 상담을 받으려 줄을 서지 않을까? "당신 탓이요" 라는 마음이 이런 질문의 본질이기에 그리 예상한다.

  너만 바꾸면 다 좋아질 것이라는 계산. 그러나 나를 떠나서 답을 찾지 말라는 것이 유가(儒家)의 확고한 가르침이다. 문제의 해결은 언제나 '나'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유학은 말한다.

  군자는 자기에게 요구하고, 소인은 남에게 요구한다[제15편 위령공 제20장]


  가정불화를 겪는 두 남녀가 공자를 찾았다고 하자. 남편이 물으면 남편 도리부터 잘해라, 부인이 물으면 부인 도리부터 잘해라가 답이다. 그렇다면 백성이 계강자를 바르게 하는 방법을 물어도 마찬가지일까? 역시 효도하고 우애하고 공경하라는 답이 예상된다. 하지만 "그것은 가신들에게 맡겨두고"라는 전제를 깔 것이다. 말하자면, 유학의 명분론이다. 백성이라는 이름이 아닌 가신이 되어야 그런 마음을 품을 수 있음이다.

  그 지위에 있지 않으면 그 정무에 간섭하려 하지 마라[제8편 태백 제14장]


  유학의 이 명분론(名分論)이 오해와 비난을 많이 받곤 한다. 이것은 권위주의인가? 아래에서 편향적으로 보면 그러하다. 그러나 남편 역시 부인의 살림살이를 간섭하지 않아야 한다. 맡은 본분에 충실하고 그 밖의 일은 믿고 맡긴다는 것이 핵심이다. 결코, 권위가 주(主)가 아니다. 공자 역시 향당(부형과 종족이 사는 고을)에 있을 때는 마치 말을 못하는 벙어리처럼 있었다.

공자께서 향당에 계실 때는 신실하셔서 마치 말을 못하는 사람과 같으셨고, 종묘와 조정에서는 분명히 말씀하시되 삼가서 하셨다. [제10편 향당 제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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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말씀하셨네 [子曰:]
-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 [君子不器]

 

   이 장은 '공야장'편의 자공과의 문답이 연상되어 웃음짓게 한다.

자공이 여쭈었다 - 저는 어떤가요?
공자 말씀하셨다 – 너는 그릇이지
자공(상한 기분으로)이 여쭈었다 – 어떤 그릇인데요?
공자 말씀하셨다 – 너는 제사에 쓰는 옥그릇이지

  자공을 골려주려고 농담을 한 것인데, 자공이 그릇이라면 어떤 그릇인지 따지듯 되묻는 까닭이 이 장에서 처럼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고 했었기 때문이다. 

  유학이 추구하는 사회는 역할을 분담하여 조화를 이루는 사회였다. 과거에 남자는 돈을 벌고 여자는 살림을 하는 것은 일을 분담하여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이름으로 나누어 할 일이 다르다고 하였으니 곧, 유학에서 말하는 명분론(名分論)이었다. 남편은 남편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학생은 학생답게 그 이름값을 다 하라고 했다. 군자 역시도 군자다워야 한다.

  그런데 이 이름으로 나뉜 역할 분담을 조화를 도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의무를 이행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나는 돈을 벌어오는 기계야?’ ‘나는 살림을 하는 기계야?’라고 불만이 생기게 된다. 그러니 조금 풀어서 ‘군자라는 이름은 도구(부품)가 되라는 것이 아니다’는 말로 바꾸어도 될 것 같다.

  유학은 ‘쉬는 것’과 ‘일하는 것’도 중용(中庸)의 길을 찾아간다. 할 일이 없는 것, 더 이상 누구를 위해 필요없는 존재가 되는 것도 한 쪽으로 치우친 것으로 본다. ‘이제 당신이 필요없어. 당신 마음대로 살아도 괜찮아’라고 하면 완전한 해방감을 느껴 새처럼 자유로울까?

  이 장을 다시 말하면 ‘해야 할 (군자)의 도리에 즐거운 사명감을 느껴라’로 바꾸고 싶다. 유학의 실천행위는 남편의 도리를, 부모의 도리를, 자식의 도리를 의무감으로 억지로 이행하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당신의 남편일 수 있어서 고맙고, 내가 너의 부모일 수 있어서 고맙고, 내가 부모님의 자식일 수 있기에 고맙다는 마음으로 즐겁게 가는 길이었다. 맹목적으로 믿게 만들어 공자가 의무를 이행하도록 주입시키려 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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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빠야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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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乾)괘가 '군자'가 되어 스스로 노력하는 주동적인 삶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면,
곤(坤)괘는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직시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인간의 한계에 대한 성찰은 죽음이 다가오는 서리가 내릴 즈음에 더 진지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래서 서리가 내리면[늙으면] 비로소 꽁꽁 얼음이 어는 시기[죽음]이 있음을 절감한다는
때 늦은 통찰을 언급하며 곤괘는 시작을 한다.
곤괘의 가르침을 짧게 정리하면 한계를 이해하는 것 즉, '정해짐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 한계와 정해짐은 자연의 뜻이 아닌, 인간이 만들어낸 자리에도 있는가?
유학에서는 인간이 만든 자리도 그 자리를 거스러지 않아야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 대신에 누르고 억압하고 부려먹기 위해서 만들어진 우월적인 자리가 아닐 것을 요구한다.

 

윗자리에 있다하여 아랫사람을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며,
아랫자리에 있다 하여 윗사람에게 매달리라는 것이 아니니
오직 나를 바르게 할 뿐, 남에게서 구하지 않는다
.[중용 제 14장]

 

유가의 신하는 군주에게 굽신거리는 이가 아니었다.
신하의 지위에 있으므로 신하의 도리를 다 하면서, 군주에게는 군주의 도리를 다 하도록 도와주려던 이였다.
폭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군주의 잘못된 이름을 가진 악한에 불과하니 엎어 버려도 되는 것이었으니,
이름에 앞서, 이름에 맞는 제 도리를 다 하는가 하는 이른바, 정명사상(正名思想)을 중요시했다.
임금에 복종하고, 남편에게 복종하고, 주인에게 복종하고, 양반에게 복종하는
무조건적 ‘복종’만을 강조하기 위해 이 명분론을 이용했던 것은 변질된 유학의 잔재였을 따름이다.

 

사람은 자유롭고 싶어한다.

때로는 아버지라는 자리, 남편이라는 자리, 자식이라는 자리, 엄마라는 자리에서 벗어남을 꿈꾼다.
그러나 자리를 벗어나 욕구가 이끄는대로 제약없이 할 수 있는 것이 자유가 아니라,
그 자리를 속박이라고 여기지 않는 편안함에 도달하는 것이 유학에서 추구하는 자유이다.
자식으로서는 자식의 도리를, 아버지로서의 아버지의 도리를, 남편이 되어서는 남편의 도리를 다 한다.
그 도리를 다 함은 의무감으로 따르는 길이 아니라 마음이 이끌기에 가고 싶은 행복한 길이다.

 

자리는 하늘이 잡아 놓기도 했고, 유학에 의하면 사람이 잡아 놓기도 했다.
사람이 잡아 놓은 그 자리 역시 명분(名分)에 맞아야 한다. 그러려면 '문화'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그래서, 군주주의 시대에는 그 문화로 정해진 자리가, 민주주의 시대에는 그 문화에 맞는 자리가 다를 것이다.

 

공자께서 새를 보시며 말씀하셨다.
"머물러야 할 곳이 숲인 줄 아니, 사람이 새보다 못해서 되겠는가?" [대학 제3장]

Posted by 오빠야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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