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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에 해당되는 글 2

  1. 2013.01.06 제2편 제물론(齊物論) - 3
  2. 2013.01.04 제1편 학이(學而) 제16장

말은 불어 나오는 소리만이 아니며[夫言非吹也]
말은 뜻을 담고 있다[言者有言]
말(소리)은 특별해서 일정하지 않으니[其所言者特未定也]
과연 뜻이 (소리와) 따로 있다 할 것인가[果有言邪]?
뜻이 (소리와) 따로 없다고 할 것인가[其未嘗有言邪]?
새 새끼의 지저귀는 소리와 다른[其以為異於鷇音]
어떤 구별됨이 있는 것인가[亦有辯乎]? 없는 것인가[其無辯乎]?



도는 무엇에 숨겨져 참과 거짓이 있게 되며[道惡乎隱而有真偽]?
뜻은 무엇에 숨겨져 옳음과 그름이 있게 되는 것인가[言惡乎隱而有是非]?
도는 어디로 가서 머물수 없으며[道惡乎往而不存]
뜻은 어떤 것으로 규정할 수 없으니[言惡乎存而不可]
도는 작게 떼어내려고 하니 숨겨지고[道隱於小成]
뜻은 화려한 소리에 의해서 숨겨진다[言隱於榮華].



그러기에 유가(儒家)와 묵가(墨家)의 시비가 생기고[故有儒墨之是非]
옳다 하면 그르다 하고[以是其所非] 그르다 하면 옳다고 하였다[而非其所是]
옳은 것을 그르다고 하고싶고, 그른 것을 옳다고 하고싶은 것은[欲是其所非而非其所是]
드러나 보이는 것만 보는 것에 못하다[則莫若以明].



사물(物)에는 저것 아닌 것이 없고[物無非彼]
사물(物)에는 이것 아닌 것이 없다[物無非是].
그러나 저것으로부터는 보지 않고[自彼則不見]
자기가 아는 것으로부터 안다는 것만 본다[自知則知之].



그래서 말하기를[故曰:]
저것은 이것으로 나오고[彼出於是] 이것 또한 저것에 기인한다고 하였으니[是亦因彼]
저것과 이것은 서로 생겨나 있다는 소위 방생설(方生說)이다 [彼是方生之說也].



비록 그러하다 하더라도[雖然]
생(生)에 의해서 사(死)가 있고[方生方死],
사(死)에 의해서 생(生)이 있고[方死方生],
된다(可)에 의해서 안된다(不可)가 있고[方可方不可],
안된다(不可)에 의해서 된다(可)가 있으며[方不可方可]
옳다(是)에 의해서 틀렸다(非)가 있고[因是因非]
틀렸다(非)에 의해서 옳다(是)가 있다[ 因非因是]고 하더라도,



성인(聖人)은 그 높이에서 보지 않고[是以聖人不由]
가장 높은 경지에서 내려다 본다[而照之於天].
그렇게 보는 것도 그리 의해서 되기 때문이다[亦因是也].



이것이 또한 저것이요[是亦彼也], 저것이 또한 이것이다[彼亦是也]
저것에도 또 하나의 작은 시(是)와 비(非)가 있게되고[彼亦一是非],
이것에도 또 하나의 작은 시(是)와 비(非)가 있게된다[ 此亦一是非].
과연 저것과 이것은 있는 것인가[果且有彼是乎哉]?
과연 저것과 이것은 없는 것인가[果且無彼是乎哉]?



저것과 이것을 가르지 못하는 것을[彼是莫得其偶]
도의 요체인 도추(刀錐)라고 한다[謂之道樞]
본질에서 시작해야 핵심을 얻어[樞始得其環中]
무궁(無窮)에도 응할 수 있다[ 以應無窮].
옳다(是)는 것 그 또한 하나의 무궁이요[是亦一無窮],
틀렸다(非)도 또한 하나의 무궁이다[非亦一無窮也].
그러므로 말한 것이다[故曰:]
드러나 보이는 것을 보는 것만 못하다[莫若以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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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말씀하셨네 [ 子曰:]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근심하지 말고 [不患人之不己知]
내가 남을 제대로 알아주지 못하는 것을 근심하라 [患不知人也]

 

   비슷한 가르침이 논어 제1장부터 시작해 위령공(16), 헌문(32)편 등등 계속 반복되고 있지만, 뒷부분에 조금씩의 차이가 있다. 이 장에서 ‘내가 남을 알아주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라’는 말은 본래 내가 남을 제대로 알 수는 있는 것인지 바꾸어 생각해보라는 뜻도 담겨있다.

  속담에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속은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도 내가 남을 안다고 하는 것은 사람이 앎의 교만에 빠졌기에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일 지도 모른다. 드러나고 보여지는 것을 통해 ‘짐작’을 하는 것이지 아는(知) 것이 아닐 것이다. 경험과 정보가 많아지면 짐작이 맞을 확률이 조금 높아진다는 것일 뿐, 사람이 다른 사람을 완전히 알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 남들도 나를 제대로 알아줄 수 없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나’라는 존재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외로운 존재인가? 사실, 나를 알아주는 완전한 친구가 있다. 내 안의 나’는 나를 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도 나를 정확히 보고 있으며, 그에게는 아무것도 숨길 수 없으니 정말 완벽히 나의 진면목을 알아주고 있을 것이다. 시인 윤동주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원했던 그 하늘이 곧 ‘내 안의 나’이기도 할 것이다.

  이치상은 나도 남을 모르고 남도 나를 모르는게 당연하지만, 그래도 아무도 나를 알아주고 이해해주지 않으면 외롭고 슬픈것이 사람이다. 성인이라 칭송받는 예수께서도, 석가께서도, 공자께서도 세상이 몰라준다고 역시 아쉬워하셨다. 감정조차 없어져야 한다는 뜻, 정(情)이 없는 사람이 되라는 의미는 아니며, 그 감정에 장악당하지 말라는 뜻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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