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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글'에 해당되는 글 180

  1. 2010.02.01 주역용어해설 (2) 길(吉)흉(凶) 등등
  2. 2010.02.01 군자(君子)란 어떤 사람인가?

길(吉)은 길(吉), 대길(大吉), 원길(元吉), 종길(終吉) 등등으로 주역에 상당히 많이 등장하며 ‘좋다’는 의미이다. 흉(凶)은 흉(凶), 유흉(有凶), 종흉(終凶), 흉사(凶事) 등등으로 역시 주역에 상당히 많이 등장하며 ‘나쁘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좋다는 늬앙스를 가진 것은 허물이 없다는 무구(无咎), 후회가 없다는 무회(无悔), 형통하다는 형(亨), 이롭다는 이(利) 명예롭다는 예(譽)와 같이 여러가지 다른 표현들이 있다. 흉(凶)도 마찬가지이다. 뉘우침이 있다는 회(悔), 어렵다는 린(吝), 위태롭다는 려(厲), 허물이 있다는 구(咎) 등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된다.


보통은 좋고 나쁘고의 정도의 차이로 해석하여, 길흉은 아주 좋거나 나쁘고, 나머지는 그 보다 아래단계라고 해석을 한다. 그런데, 그렇게만 바라보기에는 해석이 난해해지는 부분들이 많이 생긴다. 예컨대, 대과(大過)괘의 상육(꼭대기 효)효의 효사는 '過涉滅頂 凶 无咎(과섭멸정 흉 무구)'이다. "흉한데, 허물은 없다"고 한다.


정교하게 좋고 나쁘다는 여러 표현들을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내 생각에 따라서 그 기준을 나누어 해석을 시도했다. 첫째, 길흉(吉凶)은 외면(外面)적인 시각에서의 판단이며 내부적으로는 좋고 나쁨을 판단하지 않은 상태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허물(咎)은 내면(內面)적인 시각에서의 판단이며 외부적으로는 좋고 나쁨을 판단하지 않은 상태라고 생각한다.
예컨대, 대재벌이 되는 것은 길(吉)한 것이지만, 오히려 내심은 불편하고 그 위치에 서고 싶지 않으면 길(吉)하여도 허물이 있는 것(有咎)이고, 흥선대원군이 세도가의 바지가랭이를 기어다니는 것은 흉(凶)하지만, 그 내심은 자기를 보존하기 위해 멋지게 속이고 있는 것이니, 오히려 쾌재를 부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경우라면 흉(凶)하지만 허물이 없을(无咎) 수도 있는 것이다.

 

둘째, 후회(悔)는 원하던 결과를 염두해 둔 내면(內面)적 판단이다. 회(悔)는 결과가 좋으면 바뀔 수 있는 내면의 마음이다. 예컨대, 술잔과 물잔이 있었는데, 마음은 술을 먹고 싶었으나 어쩔 수 없이 물잔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으니 허물(咎)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술잔에는 독이 들어 있어서 술을 먹은 사람은 죽고, 물은 먹은 자신은 살았으니 회(悔)가 없게 되는 것이다.

 

셋째, 명예(譽)는 길흉과 같은 외면((外面)적인 시선이지만, 길(吉)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을 수도 있는 성취임에 비하여, 예(譽)는 사람들로 부터 존경을 받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재벌이 되는 것은 길(吉)한 것으로서 존경을 받을 수도 부러움을 받을 수도 있는 이중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능력에 따른 당연한 성취로 인정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말한다. 그러나 그만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외면(外面)적으로 판단되는 사람이 그만한 대우를 받게 되는 것이 곧 명예(譽)이다.

 

넷째, 형(亨)은 계속적으로 상승되어가는 좋음을 말하며, 리(利)는 그 양의 대소에 관계없이 얻는 것이 있게 되는 것을 말한다.

 

다섯째, 어렵다는 린(吝)은 실패의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며, 위태롭다는 려(厲)는 고생스럽고 힘들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설명한 것을 기본으로 하여 해석을 시도했다. 그러나 100% 정교하게 맞아 떨어지지는 않으며, 그럴 수도 없을 것이다. 현재의 주역은 1인이 논리를 가지고 통일되게 기술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역의 괘효사는 오랜시간을 통하여 수정, 첨가, 삭제가 되어 전해져 온 것이기에 그 과정을 거치면서 혼용되기도 했고, 다른 뜻으로 사용하기도 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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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빠야닷컴

주역에서 첫 괘가 하늘(乾)로 시작하는 까닭은 시간과 공간의 우주이치를 말하기 위한 까닭은 아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시간을 말하고, 인간의 입장에서 바라본 시간의 도를 말하기 위해서다.
짧은 시간이라고 조급하게 쓸려고 서두르지도 말고, 더 붙잡고 있으려고 미적거리지도 말라는 의미이다.
「소주역」이라는 별칭을 가진 「중용」에서 '군자의 중용은 군자의 시중(時中)이다'고 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기다려야 할 때는 기다리고, 나아가야 할 때는 나아가고, 물러나야 할 때는 물러나야 한다.

 

소홀히 넘길 수 없는 부분은, 점이나 부적 방술과 같은 방법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하지 말하는 셋째효의 의미이다. 인간이 주도적 입장이 되어 선택해야 할 시간을 말하고 있다.
기다려야 할 때(잠용), 구해야 할 때(현룡), 나아가야 할 때(비룡), 물러나야 할 때(항룡)를 잘 판단하라는 가르침을 전하지만, 그 때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진인사대천명! 오직 사람의 일을 다할 뿐이다.

점쟁이가 가르쳐 주는 것도 아니고, 신이 가르쳐 주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주역은 점에 의지하라고, 신께 기도하라고, 부적에 의지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바른 분별력을 가진 군자가 되어 최선을 다하라고 가르친다.

 

유학에서의 군자는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분별력을 가진 사람이다.
다만, 그 옳고 그름의 잣대, 진리의 잣대는 '나에게 요구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육체 건강을 위해서 요가를 배우는 사람이 스스로를 건강하게 하려 요가를 배우듯이,
정신 건강을 위해서 학문을 배우는 사람도 '자기'를 수양하려 배움에 임해야 한다.
그래서 '수신제가치국평천하'에서 수신이 최선순위에 오며, 모든 것의 근본이 된다.
남에게 요구하기 위한 옳고 그름은 싸움을 낳고 미움을 낳게 되는 해악이 될 뿐이다.
자기의 사상과 종교가 절대적 진리라는 믿음으로 쉬지 않고 다투고 있고,
얼마나 많은 인간이 목숨을 잃게 되어야 했던가?

 

군자는 나를 바로 세우는 사람일 따름이다.
그러다 보면 감화된 사람이 저절로 벗이 되려고 찾아오기도 하는 사람이다.
논리와 말로 이겨서 사람을 끌고오려는 승리자, 내세우려는 잘난 이가 군자가 아니다.
그래서 공자의 가르침은 스스로에 대한 성찰을 부단히 강조한다.
"군자는 자기에게 요구하고, 소인은 다른 사람에게 요구한다" [논어 제15편 위령공 제21장]
화이부동(和而不同)의 가르침도 마찬가지다.
"군자는 조화를 이루려고 하지 같게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논어 제13편 자로 제23장]

 

군자가 되어 자기를 다듬는다는 이 수신이 결코 만만한 수준은 아니다.
원효대사의 해골물 이야기가 전해주는 가르침은 '물은 변한게 없었지만 내 마음이 변했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만은 아닐 것이다. 해골에 담긴 물이었음을 알고서 구토가 일어났다는 것은 지나간 것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집착하는 경지를 벗어났다고 여기고 있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는 자기자신을 깨우친 것도 깨달음의 한 이유였다고 한다. 맛있게 먹었다는 기억을 붙들고 있지 않았다면 그냥 더러운 물이네 할 것이지, 구토가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군자로서 자기를 착각하지 않고 냉정하고 철저하게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모자라서 자기를 제대로 볼 수 없는 사람도 있지만, 지혜롭다는 사람도 너무 똑똑해서 오히려 자신을 보지 못하는 경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수신(나를 닦고) 제가(집안을 바로하고) 치국(나라를 다스리고) 평천하(세상을 평화롭게 하는)하는 것이, 순서대로 완성 한 후 나아가는 선후의 단계적 의미는 아니다. 수신이 곧 제가와 다르지 않고 치국과 다르지 않고 평천하와 다르지 않음이다. 즉, 수신(修身)은 평생 수련해야 하는 것이지 완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운동을 쉬면 근육이 굳어지듯, 배움도 쉬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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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빠야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