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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屯 元亨利貞 勿用 有攸往 利建侯
【初九】磐桓 利居貞 利建侯
【六二】屯如邅如 乘馬班如 匪寇婚媾 女子貞不字 十年乃字
【六三】即鹿无虞 惟入于林中 君子 幾 不如舍 往 吝
【六四】乘馬班如 求婚媾 往 吉 无不利
【九五】屯其膏 小貞吉 大貞凶
【上六】乘馬班如 泣血漣如

  준(屯)괘는 만남을 뜻하는 것으로, 건(乾)괘에서 말한 순조로운 원형리정(元亨利貞)을 위해 대인을 만나는 것(利見大人)에 대한 이야기로 연결시켜도 무방할 것 같다. 屯을 '둔'으로 읽기도 한다. 주역은 첫 괘에서 시간(하늘)의 이야기를, 두 번째 괘에서 자리(땅)의 이야기를 세 번째 괘에서 만남(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람은 태어나서는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고, 커서는 가정과 사회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불완전한 존재이다. 한자로 풀면 사람(人)은 하나가 하나를 받쳐주어야만 하는 존재이다. 그 받쳐주는 근원이 되는 만남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사람은 때가 되면 저절로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오직 사람의 일을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릴 뿐이다. 만남의 성질이 음과 양의 만남이기에, 준괘의 효사는 남자가 여자를 만나는 것을 예로 들고 있을 것이다. 양과 음은 만나서 조화를 이루어야 하지만, 억지로 이룰려고 해서도, 서둘러서도 안된다. 

 

屯 元亨利貞 勿用 有攸往 利建侯
만남(屯)이 있어야 씨앗(元)으로부터 성장하고(亨) 열매를 맺고(利) 죽게(貞) 된다. 그러나 애쓰지 마라(勿用) 시간이 흐르면(有攸往) 자연스레 이뤄지는 것이니, 그보다 제후를 세우는 큰 뜻(建侯)을 펼치는 것이 이롭다(利)
  부모의 만남도 연인의 만남도 자식의 만남도 친구의 만남도 모두 사람의 뜻이 아니라 하늘의 뜻, 곧 인연(因緣)이 있어서 만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애쓰지 말라고 한다. 엄밀히 구분하면 혈연적인 만남은 한계지어진 곤(坤)괘의 뜻이며, 연인과 친구와의 만남이 준괘과 의미하는 만남일 것이다.

  고대 중국은 천자가 모든 천하를 지배하여 다스릴 수 없기에 각 지역에 제후를 세워 정치를 맡겨 관리하던 봉건체제로 운영되었다. 제후는 그 지역의 왕이었지만 천자에게는 신하였다. 과거 조공을 받치던 우리나라를 중국의 제후국이었냐 아니냐 하는 논란도 이러한 중국의 전통적 지배체제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어쨌건 제후를 세운다는 것은 천자가 천하를 다스리기 위해 제후를 세우듯, 큰 뜻을 펼치는 것을 말한다. 만남에 애쓰지 말고 큰 뜻을 펼치는데 애쓰라는 말이다.

 

磐桓 利居貞 利建侯
큰 돌을 놓아(磐桓) 멈추어야 이롭고(利居貞) 제후를 세우는 큰 뜻을 펼치는 것이 이롭다(利建侯)
  반환(磐桓)은 큰 돌을 상징하니, 고인돌을 반환이라고도 했다. 꼼작할 수 없게 큰 돌로 막아 멈추라는 말은 사랑에 방황하고 흔들리지 말라는 말이다. 과거에도 사랑의 방황은 고인돌만큼 크고 무거운 돌을 쌓지 않으면 막기 힘든 것이었나 보다. 큰 뜻을 펼치는데 진력하라는 가르침을 첫 효사부터 다시 강조하고 있다.

 

屯如邅如 乘馬班如 匪寇 婚媾 女子貞不字 十年乃字
사랑(屯如)에 혼란하여(邅如) 말을 타고 따라가면(乘馬班如) 도둑이 아닌데도(匪寇) 혼인을 청하는데(婚媾) 여자가 끝까지 허락하지 않는다(女子貞不字). 10년은 지나야 허락을 하게 된다(十年乃字)
  말을 타고 따라가는(班) 것은 지나치게 빨리 서두는 것을 말한다. 도둑이 아님은 나쁜 사람이 아님을 말한다. 사람이 좋지 않아서가 아니라 급하게 서두는 까닭과 억지로 이루려는 까닭에 여자의 허락을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10년은 오랜 시간을 참고 기다리는 것을 말하니, 정성을 다하는 마음을 의미하는 시간이다. 주역은 지나치게 서둘러 나아갔어도 또한 억지로 이루려고 나아갔어도 10년이란 세월을 인내할 수 있다면 허락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공자께서는 “어질지 않은 사람이라면 궁핍한 가난을 오래 견딜 수 없고, 풍요를 오래 누릴 수도 없다[논어 제4편 이인 제2장]”고 하셨으니, 10년으로 상징되는 긴 시간을 견딜 수 있었음은 이미 성취를 이룬(제후를 세운)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即鹿无虞 惟入于林中 君子 幾 不如舍 往 吝
사슴을 잡으러(即鹿) 몰이꾼이 없이(无虞) 숲으로 들어가면(惟入于林中) 군자라도(君子) 한번 그러면(幾) 숲을 나오지 못하는 법이니(不如舍) 가면(往) 어렵게 된다(吝)
  우(虞)는 사냥할 때 새와 짐승을 좇는 몰이꾼 역할을 하던 관리를 말한다. 사슴이란 여인을 상징한다. 10년을 기다리는 것이 정석이 아니라, 준비를 충분히 하고 사슴(여인)을 만나러 가는 것이 정석이라는 의미이다. 또한 사람(사슴)을 얻기 위해서도 사람(몰이꾼)의 도움을 얻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기도 하다. 만남을 두 사람의 의지로만 유지시킬 수도 없는 까닭이다. 대표적인 예가 집안 내의 갈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乘馬班如 求婚媾 往 吉 无不利
말을 타고 따라가면서(乘馬班如) 사랑을 얻으려 했더라도 혼인을 허락 받으면(求婚媾) 나아감이(往) 길하고(吉) 이롭지 않음이 없다(无不利)
  여인을 얻으려고 말을 타고 서둘렀지만 10년을 기다렸으니(十年乃字) 혼인을 허락 받게 된 것이다. 시간을 서둘렀지만 곧 시간을 기다릴 줄 알았으니 길하고 이롭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공자께서 "잘못을 하고서도 고치지 않는 것을 잘못이라고 한다"[논어 제15편 위령공 제30장]고 하셨으니, 고치면 그것으로 좋다.

 

屯其膏 小貞吉 大貞凶 
이득을 만나는 것(屯其膏)은 과하지 않다면 괜찮을 것이나(小貞吉) 지나치다면 흉할 것이다(大貞凶)
  고(膏)는 살찌고 기름진 고기를 뜻한다. 만남은 고통도 즐거움도 함께 나누며 동고동락(同苦同樂)하는 조력자를 만나는 것이지, 독고동락(즐거움은 나눌 수 있어도 고통은 너 혼자해라)의 만남이 아니어야 한다. 심지어 독고독락(고통은 너 혼자, 즐거움은 나 혼자)의 만남을 꿈꾸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득(고기)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그래서 함께 고통을 나누는 정도의 작은 이득을 꾀하는 것은 무방하지만, 지나치게 큰 고기를 만나려고 한다면 끝내 흉할 것이다.


乘馬班如 泣血漣如
말을 타고 따라가는 것(乘馬班如)은 피눈물을 줄줄 흘리게 될 것이다
  말을 타고 급하고 격정적으로 따라간 것이 사랑이었고, 인연이었다면 10년을 기다릴 수 있을 것이기에 혼인을 허락 받을 수 있어 길할 것이다. 그러나 피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그 실체가 사랑이 아닌 이득(고기)를 만나러 한 것이기에 10년을 기다릴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마음으로 만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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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빠야닷컴
02

坤 元亨利 牝馬之貞 君子 有攸往 先迷後得主 利西南得朋 東北喪朋 安貞吉
【初六】履霜 堅冰至
【六二】直方大 不習 无不利
【六三】含章可貞 或從王事 无成有終
【六四】括囊 无咎 无譽
【六五】黃裳 元吉
【上六】龍戰于野 其血玄黃
【用六】利永貞

  곤(坤)괘는 자리를 말하며 한계를 말한다. 건(乾)괘의 시간을 대하는 사람은 그 시간속에서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있다. 기다릴 때, 나아갈 때, 물러날 때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곤(坤)괘의 자리는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다. 부자의 자식으로 태어나고, 선진국에 태어나고, 남자로 태어나고, 장애를 갖고 태어나고, 지금 시대에 태어나고 등등, 이미 선택되고 정해진 것도 있는 법이다. 남자로 살기 싫어서 여자로 살려고 하는 것은 주역의 시각에서 보면, 자리의 도를 거스르는 잘못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가장 대표적인 인간의 한계는 피할 수 없는 죽음일 것이다. 그럼 이러한 유한성을 인간은 어찌 대해야 하는가? 한탄해야 하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의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의 고민은 곧 하늘이 나에게 맡긴 사명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왜 그런 한계를 주었는지에 대한 자리의 도(道)을 헤아리는 것이다. 해야 할 일을 찾았을 때, 즉 제 자리에 앉았을 때 비로소 삶을 가치 있게 이끌 수 있을 것이다.

 

坤 元亨利 牝馬之貞 
제 자리(坤)라야 씨앗(元)으로부터 성장하고(亨) 열매를 맺고(利) 순한암말처럼 죽게(牝馬之貞)된다 
  시간(하늘)만이 원형리정의 순탄한 변화로 이끄는 것이 아니다. 비옥한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씨는 변화의 순리에 따르지 못하고 싹이 트지도 못하고 죽어버린다. 장소(坤) 역시 생성, 성장, 성숙(元亨利)의 변화의 법칙과 관계하게 되지만, 순한 암말처럼 마감 하는 것(牝馬之貞)이 특징적이다. 암말을 뜻하는 빈마(牝馬)는 유순함을 상징한다. 소리를 내거나 과시하지 않는 유순한 성질 때문에 마차를 끄는 말은 어미말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순한 암말처럼 죽는 것은, 이어지는 효사에서 용의 전쟁으로 세상을 피바다로 만들고 죽는 것이 아니라, 천수(天壽)를 다하고 편안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君子 有攸往 先迷後得主 利
군자(君子)로써 시간이 지나면(有攸往) 처음에는 미혹하였어도 후에 주인을 얻게 될 것이니(先迷後得主) 이롭다(利)
  주인을 얻는 것(得主)은 곧 있어야 할 자리를 깨닫는 것을 말함이니, 군자(君子)가 되어 시간이 흐르면(有攸往) 처음에는 미혹하였어도(先迷) 곧 자리(사명)을 깨닫게 될 것(後得主)라는 뜻이다.

  『순자』「대략」에 다음과 같은 자공과 공자의 문답에 대한 기록이 있다. 자공은 ‘할 일이 많아 힘드니, 군주를 섬기는 것 만이라도 쉬면 안 되는지, 어버이를 섬기는 것 만이라도 쉬면 안 되는지, 처자를 부양하는 것만이라도 쉬면 안 되는지, 친구와 관계하는 것만이라도 쉬면 안 되는지, 논밭을 경작하는 것만이라도 쉬면 안 되는지’ 차례로 공자께 여쭈었다. 공자께서는 쉬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자공이 한탄하며 "그렇다면 저는 조금도 쉴 수 없는 것입니까?"하고 공자께 하소연을 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저 들을 보아라. 흰 듯, 찬 듯, 막힌 듯하지 않느냐? 저 곳이 네가 쉴 곳이다" 자공이 감탄하며 말했다. "위대하구나 죽음이여! 군자도 쉬고 소인도 쉴 수 있도록 해 주는구나!" 하늘이 시간을 주어 세상에 보낸 이유는 할 일을 시키려 보낸 것이다. 쉬도록 해 주려 하였다면 죽음의 공간 속에 남겨두었을 것이다.

  유유왕(有攸往)은 일반적인 해석과 달리 풀었다. <여기를 참조>하시길 바란다.

 

西南得朋 東北喪朋 安貞吉 
서남이면 벗을 얻을 것이요(利西南得朋) 동북이면 벗을 잃으니(東北喪朋) 편안한 마감이어야(安貞) 길(吉)하다.
  동쪽은 해가 뜨는 곳으로 밝은 곳을 상징하니 쉽게 갈 수 있는 곳이다. 반대로 서쪽은 해가 지는 어두운 곳이니 쉽게 갈 수 없는 힘든 곳이다. 남쪽은 따뜻한 곳으로 올바른 곳을 상징하며, 북쪽은 추운 곳으로 도리에 맞지 않는 곳을 상징한다. 그래서 힘들어도 옳은 곳(西南)으로 움직이면 친구를 얻고(得朋), 쉽지만 바르지 못한 곳(東北)으로 움직이면 친구를 잃을 것(喪朋)이라고 하니, 힘들어도 옳은 곳을 향해 나아가라는 뜻이다. 친구는 자리를 찾아 사명을 다하고 편안하게 죽는 것, 순한 암말처럼 죽음(貞)에 임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履霜 堅冰至
서리를 밟게 되어서야(履霜) 단단한 얼음에 도달할 것을 안다(堅冰至)
  늙음을 빗대어 머리에 서리가 내렸다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 흰 머리가 나고 흰 수염이 나는 까닭은 이제 마감을 할 얼음(죽음)으로 다가가고 있다는 하늘의 신호이다. 얼음이 어는 겨울이 올 것임을 방관하고 살다가, 서리를 밟게 되어서야 비로소 생의 무상함에 안타까워 하는 것이 바쁜 오늘을 살고 있는 현대인들의 모습일지 모른다. 노랫말처럼 ‘내가 이 세상을 다녀가야 할 그 이유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을 좀 더 일찍 해 보면 좋지 않을까?

 

直方大 不習 无不利
대지(直方大)의 도는 의욕하지 않으니(不習) 이롭지 않음이 없다(无不利)
  직방대(直方大)는 광활한 대지의 덕성을 묘사하고 있다. 땅은 모든 것을 차별없이 포용한다. 대추씨가 들어오건 사과씨가 들어오건 차별하지 않고 양분을 주고 키워준다. 사람의 자리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주어진 한계를 의욕(習)하여 바꾸려고 하지 않아야 하니, 남자가 여자됨을 의욕하지는 않아야 한다. 배우고 힘써 의욕해야 하는 것은 자리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것에 두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대지처럼 이롭게 해 주는 역할[사명]을 다 하는 것에 두어야 할 것이다.

  유학의 명분론에 대한 의미와도 연결되는데, 명분론(名分論)이 불평등하고 차별적인 계급을 의미하는 것으로 오해되기도 하기에 조금 보충하고자 한다. <여기를 참조> 하시기 바란다. 

 

含章可貞 或從王事 无成有終
한계를 아는 현자(含章可貞)는 왕의 일을 따르게 되면(或從王事) 완성없이(无成) 마치려 한다(有終)
  함장(含章)은 바름을 머금은 것이며 가정(可貞)은 정해진 한계를 수용하는 것이니, 곧 자리를 알고 사명을 아는 바른 현자를 말한다. 왕의 일이란 만백성을 교화하고 다스려 바른 세상을 구현하는 것이다. 완성이 없다는 것(无成)은 그 공로가 자신에게 돌아오도록 하지 않는다는 말이며, 마침이 있다(有終)는 뜻은 올바른 결과만을 얻고자 한다는 의미이다.

  『세종실록』에 충녕대군을 잘 단속하라는 원경왕후의 말에 충녕대군 부인이었던 소헌왕후가 주역의 이 효사를 인용하여 대답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곧 충녕대군이 애쓰는 일은 혹종왕사(或從王事)하여 무성유종(无成有終)하기 위함이라는 뜻이었으니, 공로를 탐내고자 하는 일이 아니라 바른 결과만을 원하다는 뜻이었다. 

 

括囊 无咎 无譽
돈주머니를 묶어놓는 것은(括囊) 허물은 아닐 것(无咎)이나 명예롭지도 않을 것이다(无譽)

  돈주머니를 묶는 것은 혹종왕사(或從王事)하지 않고 재능을 쓰지 않는 것을 뜻한다. 혹종왕사하여 유성(有成)하려고 하면 제 자리를 모르는 지나친 것이며, 혹종왕사조차 하지 않는 것은 모자라는 것이니, 모두 중용을 벗어난 것이다. 자공이 아름다운 옥이 있다면 상자에 잘 보관하겠는지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 팔 것인지를 여쭈니 공자께서 "팔아야지, 팔아야지! 나도 살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논어 제9편 자한 제13장]고 하셨다. 쓰지 않는 것은 없는 것과 같다. 주역에서 말하는 허물은 내(內)적인 시각이며 길흉(吉凶)과 명예(譽)는 외(外)적인 시각이라고 했었다<여기를 참조>. 돈 주머니를 풀지 않는 것은 안으로, 자기 내적으로 허물은 아니어도 외적으로 명예롭지는 않을 것이다고 한다.

 

黃裳 元吉
황색치마(黃裳)가 근원적으로는 길하다(元吉)
  황색치마(黃裳)는 황제가 입는 치마를 말하는 것이니, 곧 현자가 왕의 일을 대신맡아 세상을 바르게 이끄는 것 보다는 왕이 왕으로서의 일을 해야 근원적으로 길하다는 말이다. 비유하자면 충녕대군이 혹종왕사(或從王事)하기보다 양녕대군이 왕사(王事)하는 것이 근원적으로 길하다는 뜻이다. 양녕대군이 자리의 도리(坤)를 잊고 역할을 하고 있지 않았으니, 충녕대군이 자리를 옮겨 조화를 맞추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양녕대군이 제 자리에 앉고 충녕대군도 제 자리에 있는 것이 근원적으로 길한 것이다.

 

龍戰于野 其血玄黃
용들이 들판에서 싸우면(龍戰于野) 그 피가 검고 누르게 된다(其血玄黃)
  검고 누른 것(玄黃)은 천자문에도 나오는 하늘과 땅(天地)이 검고 누른것(玄黃)이니 곧, 온 세상을 말한다. 들판에 있는 용 또한 건(乾)괘의 현룡처럼 제자리를 잡지 못한 용이니, 그들이 잘못된 자리에서 다투면 온 세상이 피로 물든다는 말이다. 제 자리[사명]를 모르는 용들이 세상을 혼란으로 이끄는 것이 오늘날의 모습과 닮아있는 것 같기도 하다. 장래희망, 꿈, 사명에 대한 생각을 접고, 오로지 돈을 많이 벌고 부러워하는 곳으로 가고자 하는 물질만능주의가 심각한 듯 하다. 천지에는 풀도 있고 토끼도 있고 호랑이도 있고 곰도 있어 셀수 없는 다른 생명체가 다른 역할을 하며 생태계의 조화를 이룬다. 사람도 모두 공평하고 소중한 생명이지만, 인간 세상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사람마다 맡은 역할은 다르다고 하였으니, 각기 다른 사명이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공자께서도 세상을 바른 도리로 세우고자 하였어도 천자의 지위를 얻고자 하지는 않으셨다.

 

利永貞
열매를 맺으려는 것(利)은 끝까지 계속(永貞)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기가 맡은 사명을 알고 자기 자리를 찾아 역할분담을 하여 열매를 맺어야 세상이 조화롭게 된다. 열매를 맺으려는 것은 천성(天性)이라 끝까지 지속되는 것인데, 어긋난 자리에서 열매를 맺으려고 하기에 세상의 조화가 파괴되어 피로 물들게 되는 것이다. 즉, 용들이 제 자리를 잡지 못하면 세상이 피로 물드는 근본적인 이유는, 잘못된 자리를 잡고서 그 곳에서 열매를 맺으려 하는 천성 때문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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