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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小畜 亨 密雲不雨 自我西郊.
【初九】復自道 何其咎 吉
【九二】牽復 吉
【九三】輿說輻 夫妻反目
【六四】有孚 血去惕出 无咎
【九五】有孚 攣如 富以其鄰
【上九】既雨既處 尚德 載 婦貞厲 月幾望 君子 征 凶

  여러 번 언급했지만 소(小)는 가정(家)을 의미한다. 그래서 소인(小人)은 한 가정 꾸리기에 온 힘을 다하는 필부필부(匹夫匹婦)하는 보통의 백성을 가리키는 의미라고 했었다. 소축(小畜)의 괘는 가정에서의 중요한 이룸이니 곧 임신을 뜻한다. 『효경』에서 '신체를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고 하였으니, 그 뜻은 선조의 생명을 건강한 상태로 연속시켜야 한다는 의미였다. 『맹자』에서 '대를 잇지 못하는 것은 가장 큰 불효'라고 하는 것도 역시 비슷한 의미이다. 과거에 소인유(小人儒)들이 불임의 책임을 여성에게로 떠넘겨 부인을 핍박하고 축첩의 명분으로 삼았던 창피했던 역사가 있었다. 임신은 가족의 축복임과 동시에 또한 사회와 국가에 대한 축복이기도 하다. 주역이 9번째 순서로 소축(小畜)을 언급한 것은 그만큼 과거 사람들에게 중요한 의미였기 때문일 것이다.

 

小畜 亨 密雲不雨 自我西郊
임신(小畜)은 성장기(亨) 때의 일이다. 구름이 빽빽하나 비가오지 않는 까닭은(密雲不雨) 스스로(自) 서쪽교외에서 주저하고 있기 때문이다(我西郊).
  무슨 일이건 때에 맞아야 한다는 것이 주역의 첫번째 가르침이었다. 자식을 보는 소축(小畜)은 젊었을 때 이뤄야 할 일이다. 반면에 33번째의 사회적 성취를 뜻하는 대축(大畜)은 결실기(利)와 마감기(貞)의 일이다. 삶을 마감할 시점에 자식을 보려고 하는 것은 시간의 도(道)를 어긴 것이니, 마땅히 때에 맞게 힘써야 할 일이 달리 있다. 서쪽은 해가 지는 곳으로 곧 어두움, 어려움을 상징하는 방향이다. 구름이 빽빽한데도 비가 오지 않는 이유는 어떻게 하면 비가 오는지 어두워 모르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성교육을 하고 접할 수 있는 정보량이 많지만, 옛날에는 그러하지 못했던 까닭이었을까?

 

復自道 何其咎 吉
스스로 그 도를 깨닫고 돌아오면(復自道) 어찌 허물이 있겠는가(何其咎)? 길할 것이다(吉)
  본능적으로 음양조화 도(道)를 따라 알게 된 것이다. 즉 어떻게 하면 부부관계를 잘 할 수 있는 지를 스스로 깨닫고 밝은 동쪽으로 돌아왔으니 길하다.

 

牽復 吉
스스로 돌아오지 못하고 이끌려 돌아와도(牽復) 길하다(吉).
  타인의 손에 이끌려 제자리(동쪽)으로 돌아오는 것도 길하다. 묻지도 않고 혼자 끙끙 앓는 것이 가장 좋지 못한 것이니, 부끄러워 하지 말고 타인의 조언과 도움을 구해도 좋으니, 곧 리견대인(利見大人)하라는 뜻이다.

 

輿說輻 夫妻反目
수레바퀴가 틀어지면(輿說輻) 부부가 반목하기 마련이다(夫妻反目).
  수레바퀴가 틀어지는 것은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함이다. 스스로 제 자리로 오건, 도움으로 제 자리로 오건 돌아와야 한다. 수레바퀴가 틀어져 있으면 결국 부부가 반목하게 된다.

 

有孚 血去惕出 无咎
마음이 있고(有孚) 피가 흘러(血去) 부부관계의 두려움이 사라져야(惕出) 허물이 없다(无咎)
  첫 경험이 지난 후라는 의미이거나, 월경을 지나 가임기가 되었을 때라는 의미이거나 모두 해석이 가능하나 어떻게 해석해도 주역의 뜻을 심각하게 해치지는 않을 것 같다. 소축(小畜)을 이루는 것도 때가 있는 법이다. 거시적으로는 젊을 때(亨)여야 하고 미시적으로는 가임기여야 한다.

 

有孚 攣如 富以其鄰
마음으로(有孚) 단단히 묶어두면(攣如) 그 이웃과 더불어 그 부를 나누게 될 것이다(富以其鄰).
  마음 즉, 돈독한 사랑으로 단단히 묶여져 있다면 축복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씨족, 부족단위의 공동체로 이루어졌던 과거에는 임신은 더욱 동네의 경사로 여겨 이웃이 함께 기뻐하고 축복해주었을 것 같다.

 

既雨既處 尚德 載 婦貞厲 月幾望 君子 征 凶
이미 비가 오고 그치기가(既雨既處) 계속되니 자랑할 덕(尚德)이 생긴다. 부인을 업고 기뻐하지만(載) 부인은 아이의 출생까지 염려가 계속된다(婦貞厲) 배가 불러 보름달이 되었는데(月幾望) 군자(君子)가 부부관계로 계속 나아가면(征) 흉하다(凶)
  비가 오고 그치는 것은 부부관계가 계속적으로 원활히 이뤄지고 있음을 말함이다. 당연히 오래지 않아 임신이 될 것이고, 남편은 부인을 업고 기뻐하게 되는데, 오히려 부인은 염려가 계속된다. 아이가 무탈하게 태어날 때까지 근심이 계속되는 것을 말하는 것일게다. 월기망(月幾望)은 보름을 넘긴 것을 말함이니, 곧 배가 불러온 것을 상징한다. 그런데도 군자가 계속 나아가니 흉하다. 현대 의학에서도 태아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져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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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빠야닷컴
08

比 吉 原筮元 永貞无咎 不寧方來 後夫 凶
【初六】有孚 比之无咎 有孚盈缶 終來有它 吉
【六二】比之自內 貞 吉
【六三】比之匪人
【六四】外比之 貞 吉
【九五】顯比 王用三驅 失前禽 邑人不誡 吉
【上六】比之无首 凶

경쟁은 사람이 모이면 이뤄질 수 밖에 없는 것이고, 경쟁은 다툼(訟)과는 달리 상대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므로 긍정적인 것이다. 그래서 비(比)는 두 사람이 나란히 같은 방향으로 서 있는 모습이다. 공자께서도 “군자는 겨루지 않지만 활쏘기는 예외이니 서로 읍하여 예를 갖추고 당에 올라 시합한 후 벌주를 마시는 것이다. 이런 것이 군자의 경쟁인 것이다”[논어 제3편 팔일 제7장]라고 하셨다. 명중하지 못하는 이유를 남에게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 구하는 것이니, 공자께서 말씀하셨던 ‘남에게 요구하지 않고 나에게 요구한다’는 취지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比 吉 原筮 元永貞 无咎 不寧方來 後夫 凶
경쟁(比)은 길하니(吉) 처음 점을 친(原筮) 마음으로 처음부터(元) 끝까지(貞) 계속되면 허물이 없을 것이나(无咎) 편안하지 않아(不寧) 다시 점을 치려는 마음이면(方來) 그 후에는 장부라도(後夫) 흉할 것(凶)이다.
  주역의 네 번째 몽(蒙)괘에서 말한 처음 점을 치는 마음과 재차 점을 치는 더렵혀진 마음을 빗대어 경쟁의 길흉을 논하고 있다. 처음에 순수한 경쟁으로 시작한 마음이 끝까지 계속되어야지 길하고 허물이 없지만, 그 마음이 바뀌어 승부욕이 생긴 이후라면 흉하다고 한다. 성리학이 리(理)와 기(氣)의 관계를 두고 오랫동안 논쟁을 벌였던 것과 같이 ‘행동이 마음을 이끌 수 있는가’는 쉽게 답하기 힘든 논제일 것이다. 일례로, ‘착한 행동을 의식 없이 하다 보면 착한 마음이 생기는가’의 문제인데, 어쨋건 주역은 행위가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처음에는 훈육하는 마음으로 뺨을 한대 때렸다가 자기도 모르게 동물적 폭력성이 발동하여 아이들을 무참히 폭행하는 한 교사의 동영상이 유포되어 문제가 되기도 했다. 경쟁이란 행위를 시작하여도 그 행위에 내재한 승부욕에 굴복하지 말고 처음의 순수성을 끝까지 지켜야 길하다고 한다.

 

有孚 比之无咎 有孚盈缶 終來有它 吉
신념을 가진(有孚) 경쟁이어야 허물이 없다(比之无咎) 신념을 질그릇을 넘치게 할 정도로(有孚盈缶) 돈독히 하면 경쟁이 끝나도 상대가 남아있게 될 것이니(終來有它) 길하다(吉).
  신념이 있는 경쟁이란 승부욕이 배제된 예컨대, 함께 지혜를 모아 찾아가는 그러한 경쟁이다. 질그릇을 넘치게 할 정도로 넉넉한 마음이 아니라면, 모르는 것도 아는 것으로 둔갑시키고 한양을 못 가본 이가 한양을 가 본 이를 이기려 하니 곧, 경쟁이 아니라 다툼(訟)이 되어버린다. 점을 재차 치는 더럽혀진 마음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공자께서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정으로 아는 것이다”[논어 제2편 위정 제17장]라고 하셨다.

 

比之自內 貞 吉
경쟁이라는 것은(比之) 자기 내면(自內)과의 승부라면 끝까지(貞) 길하다(吉).
  경쟁의 본질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어야 한다. 자기 자신에게 찾지 않고 그 탓을 남에게 돌리면 원망하고 미워하게 된다. 이미 여러번 언급하였지만, 공자께서 “군자는 자기에게 요구하고 소인은 다른 사람에게 요구한다”[논어 제15편 위령공 제21장]고 하신 말씀과 같은 맥락이다.

 

比之匪人
경쟁이라는 것은(比之) 사람이 우열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匪人).

  실력이 절대적으로 이기는 것이라면 아마도 스포츠 경기는 재미가 없어서 존재하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브라질이 늘 월드컵에서 우승하지는 못하는 이유는 반드시 전력으로만 우열이 가려지지는 않고 "승운"이라는 알 수 없는 힘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전적으로 사람이 장악할 수 없는 것이 또한 경쟁의 결과이다.

 

顯比 王用三驅 失前禽 邑人不誡 吉
사냥 같은 큰 경쟁에 있어서도(顯比) 임금은 세 방향만 막고(王用三驅) 한 곳은 남겨두는 법이다. 설령 사냥감을 놓쳐도(失前禽) 백성들이 두려워하지 않게 하는 배려이니(邑人不誡) 이런 경쟁이 길하다(吉)
  세 방향을 막고 한 곳을 남겨두는 것은 그 책임을 자기에게서 찾으려는 것이지 다른 곳에서 찾으려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사냥감을 놓친 백성탓이 아니라 한방향을 막지 않도록 한 임금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고자 한 까닭이다. 경쟁에서 뒤쳐진 자가 두려워해서는 안 되는 것이 길하다는 의미이다. 오늘날 학생들의 시험은 싸움이 아니라 경쟁이다. 그런데, 경쟁에서 뒤쳐지면 두려워 해야 한다. 승자독식의 세상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比之无首 凶
그러나 경쟁에서 우열을 정하지 않는 것(比之无首)은 흉하다(凶)

  우열을 정해주지 않으면 경쟁이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역은 시작이 있고 끝이 있고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순조로운 변화를 말한다. 그러나 경쟁이 시작되어 우열을 정하지 않는다면 끝맺음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니 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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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빠야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