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12

« 2024/12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jung

고전을 읽을 때 극복하지 않으면 길을 헤메는 관문이 있다.
중(中)의 관념이 서지 않으면 혼돈으로 빠져든다.
중(中)에서의 직선은 가둠을 관통하는 있는 것을 말한다.
갇힌 바깥에 있는 것도 아니고, 안에 있는 것도 아니다.
통(通)하여 있는 것이다.
공자께서는 무엇으로 그 가둠을 관통하고 있을까?

공자께서 "증삼아 내가 말하는 도는 하나로 일관하고 있다"고 하자 증삼은 "그렇습니다"고 했다. 다른 학생들이 "뭔 말이야?"라고 묻자, 증삼은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은 지극한 서(恕)야" 라고 하였다. [논어 제4편 이인 제15장]

서(恕)는 같을 여(如)와 마음 심(心)으로 이루어졌다. 마음을 동(同)하여 관통했다는 말씀이다.
말하자면, 중(中)은 가둠의 안과 밖을 마음으로 일관하여(恕) 관통하는 「진리」이다.

원효대사께서 마신 해골에 담긴 물 이야기는 유명한 이야기다.

사물은 변한 것이 없는데 (해골에 담겨있던 물은 똑 같은 물이었지만)
눈으로 보고나니 마음이 변하더라.

이 일화를 「일체유심(一切唯心)」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대학』 역시 마음(心)을 강조한다.

마음이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 [대학 제7장 정심수신]


중(中)은 마음으로 통(通)하여야 알 수 있는 「진리」이므로
노엽고, 두렵고, 좋아하고, 싫어하고, 걱정스러우면 제대로 볼 수가 없다.
공자의 말씀도, 석가의 말씀도, 예수의 말씀도 모두 머리에서 지워내어야 할 것이다.

 

용(庸)은 이러한 중(中)의 진리」에 조화롭게 맞추어 대응하는 「응답이다.
정이의 "바뀌지 않는 것이 용(庸)이다"라는 설명은 오해를 일으키기 딱 좋다. 주희의 "일상이다"라는 설명과 함께 묶어 설명하려고 하니, 진순처럼 "오곡을 먹고 옷을 입는 것은 만고의 일상이라 바뀔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하여 갈수록 이해하기만 어렵게 하였다.

 

위 속에 음식이 알맞게 차 있도록 유지시키는 것이 중용(中庸)은 아니다.
그러려면 그 중간을 맞추기 위해 하루종일 조금조금 먹고만 있어야 한다.
밥을 많이 먹고, 다시 많이 부족해지면 다시 과하게 채우는 것이 밥먹는 중용이다.
그래서 배가 부를 때를 만나고, 적당히 좋을 때를 만나고, 배가 고플 때를 만난다.
각 시기(時)에 알맞는 응답은 모두 다르다. 100년치 밥을 한꺼번에 먹고 한꺼번에 배설 할 수도 없다.
그래서 중용의 응답은 시공(時空)의 변화에 따라서 움직이게 된다.
즉, 용(庸)은 일반적 인식으로는 바뀌는 것으로 설명해야 오해가 덜하다.

사람마다 지문이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지능도 모두 다르다.
같은 사람이라도 10대, 20대, 30대가 다르다.
이러한 다름을 분별(分別)하여 가장 적합하게 맞추어 조화롭게 응답하는 것이 중용이다.
병(病)을 기준으로 똑같은 약을 쓰는게 아니라,
각 사람의 특성을 기준으로 다른 처방을 하려고 노력했던 것이 동양의학이었고,
역시 중용의 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공자께서 제자들마다 그 다른 특성을 감안하여 다르게 가르친 것도 그런 까닭일 것이다.
그래서 공자의 한 마디는 그 한마디 말과 글에만 갇혀서 이해하려면 오해가 생긴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왜, 무엇을 위해서 그러한 대화를 했는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고증의 도움을 받고, 때로는 알 수 없는 대화는 상상하면서 읽을 수 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중(中)의 사유는 안과 밖을 통(通)하는 것이며,
중용(中庸)의 사유는 분별(分別)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불가에서는 어리석은 중생아 개와 너가 다르지 않음을 왜 모르느냐고 한다.
그렇지만 개와 사람이 교감하기 위한 육체사랑을 수긍하지는 않을 것이다.
진리는 개와 사람이 다르지 않으면서 다르기도 하다는 중(中)이며,
진리에 반응하는 응답은 개와 사람이 다르다는 분별(庸-용)이다.

현상계가 만들어 내는 거짓에 갇혀있는 중생들을 어리석다고 하지만,
현상계가 만들어내는 것은 허상이라는 깨달음에 갇혀서, 사람들이 어리석어 보일 수도 있다.
무지(無知)도 생각을 가두고, 지(知)도 생각을 가둔다.
그래서 공자께서는 지(知)도 중용의 선을 지켜야 한다고 하셨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도가 행하여지지 않는 까닭을 알겠구나. 지자(知者)는 과(過)하고 우자(愚者)는 부족하구나” [중용 제4장]


결국 유가의 진리는 세속과 초월의 한 쪽이 아니라 통(通)하는 것이기에,
속세를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높고 원대한 이론으로 나아가 고원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고, 일상생활로 돌아온다.
그래서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잠이 오면 잠을 자는 것이 곧 도(道)이기도 하다.
현실 세상에서 추구하는 도(道)이기는 하여도, 중용의 도리에 맞추어야 한다고 한다.
자기와 남은 별개의 분별(分別)된 개체이면서 또한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이기 때문에
개인(個人)에게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人間)에게로 돌아온다.
그래서 인(仁), 의(義), 예(禮), 지(智)가 필요하게 된다.
그래서 옷을 벗고 싶어도 아무곳에서나 나체로 있으면 안되며 예(禮)를 지켜야 한다.
물론 인(仁), 의(義), 예(禮), 지(智)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중용에 따라 그 적합한 응답은 변한다.

그런데, 성리학이 발달하면서 이 중용의 생기발랄함과 융통성이 없어져 버렸다.

공자의 제자 자하가 말하였다 “큰 덕은 한계를 지켜야 하지만, 작은 덕은 들고 나는 것이다 [논어 제19편 미자 제11장]

송대 이후의 학자들이 이 장을 비난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 “작은 덕이 어찌 들고 날 수 있겠는가? 작은 덕이라고 해서 들쑥날쑥한다면, 곧 마음이 방종해져서 큰 덕에 누를 끼치게 될 것이다"는 등등의 실랄한 비난을 받았다. 아마도 자하의 말이었기 때문에 더 그러했을 것 같다. 그러나 자하가 어찌 틀렸다고 할 수 있을까?
송대이후의 학자들도 고원함과 깨끗함을 추구할 수록 사람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없다’고 하였으니, 지나친 고원함은 사람에게서 스스로 멀어지는 것이다. 어쩌면 송대 이후의 학자들은 소인은 멸시하여 멀리하고, 선비라는 자들끼리만 어울리는 계급과 권력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공자께서는 말씀하셨다. “도는 사람에게서 멀어질 수 없다. 사람이 도를 행한다면서 사람에게서 멀어지면 도라고 할 수 없다” [중용 제13장]

단발령이 일제의 강제라고 해서 선비들이 반발한 것이 아니었다. 나라의 명령이라고 해도 따를 수 없었던 신념이었기 때문이다. ‘정절을 유린당한 여인처럼 실성하여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돌아다니다 목을 매었다’는 것이 역사의 기록이다. 어찌 유학만 고여서 막히고 가두어 졌겠는가? 사찰과 교회도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과 예수님의 참된 가르침으로부터 벗어나, 가두고 막아버린 것은 없는지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
Posted by 오빠야닷컴

건(乾)괘가 '군자'가 되어 스스로 노력하는 주동적인 삶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면,
곤(坤)괘는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직시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인간의 한계에 대한 성찰은 죽음이 다가오는 서리가 내릴 즈음에 더 진지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래서 서리가 내리면[늙으면] 비로소 꽁꽁 얼음이 어는 시기[죽음]이 있음을 절감한다는
때 늦은 통찰을 언급하며 곤괘는 시작을 한다.
곤괘의 가르침을 짧게 정리하면 한계를 이해하는 것 즉, '정해짐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 한계와 정해짐은 자연의 뜻이 아닌, 인간이 만들어낸 자리에도 있는가?
유학에서는 인간이 만든 자리도 그 자리를 거스러지 않아야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 대신에 누르고 억압하고 부려먹기 위해서 만들어진 우월적인 자리가 아닐 것을 요구한다.

 

윗자리에 있다하여 아랫사람을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며,
아랫자리에 있다 하여 윗사람에게 매달리라는 것이 아니니
오직 나를 바르게 할 뿐, 남에게서 구하지 않는다
.[중용 제 14장]

 

유가의 신하는 군주에게 굽신거리는 이가 아니었다.
신하의 지위에 있으므로 신하의 도리를 다 하면서, 군주에게는 군주의 도리를 다 하도록 도와주려던 이였다.
폭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군주의 잘못된 이름을 가진 악한에 불과하니 엎어 버려도 되는 것이었으니,
이름에 앞서, 이름에 맞는 제 도리를 다 하는가 하는 이른바, 정명사상(正名思想)을 중요시했다.
임금에 복종하고, 남편에게 복종하고, 주인에게 복종하고, 양반에게 복종하는
무조건적 ‘복종’만을 강조하기 위해 이 명분론을 이용했던 것은 변질된 유학의 잔재였을 따름이다.

 

사람은 자유롭고 싶어한다.

때로는 아버지라는 자리, 남편이라는 자리, 자식이라는 자리, 엄마라는 자리에서 벗어남을 꿈꾼다.
그러나 자리를 벗어나 욕구가 이끄는대로 제약없이 할 수 있는 것이 자유가 아니라,
그 자리를 속박이라고 여기지 않는 편안함에 도달하는 것이 유학에서 추구하는 자유이다.
자식으로서는 자식의 도리를, 아버지로서의 아버지의 도리를, 남편이 되어서는 남편의 도리를 다 한다.
그 도리를 다 함은 의무감으로 따르는 길이 아니라 마음이 이끌기에 가고 싶은 행복한 길이다.

 

자리는 하늘이 잡아 놓기도 했고, 유학에 의하면 사람이 잡아 놓기도 했다.
사람이 잡아 놓은 그 자리 역시 명분(名分)에 맞아야 한다. 그러려면 '문화'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그래서, 군주주의 시대에는 그 문화로 정해진 자리가, 민주주의 시대에는 그 문화에 맞는 자리가 다를 것이다.

 

공자께서 새를 보시며 말씀하셨다.
"머물러야 할 곳이 숲인 줄 아니, 사람이 새보다 못해서 되겠는가?" [대학 제3장]

:
Posted by 오빠야닷컴

주역에서 첫 괘가 하늘(乾)로 시작하는 까닭은 시간과 공간의 우주이치를 말하기 위한 까닭은 아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시간을 말하고, 인간의 입장에서 바라본 시간의 도를 말하기 위해서다.
짧은 시간이라고 조급하게 쓸려고 서두르지도 말고, 더 붙잡고 있으려고 미적거리지도 말라는 의미이다.
「소주역」이라는 별칭을 가진 「중용」에서 '군자의 중용은 군자의 시중(時中)이다'고 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기다려야 할 때는 기다리고, 나아가야 할 때는 나아가고, 물러나야 할 때는 물러나야 한다.

 

소홀히 넘길 수 없는 부분은, 점이나 부적 방술과 같은 방법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하지 말하는 셋째효의 의미이다. 인간이 주도적 입장이 되어 선택해야 할 시간을 말하고 있다.
기다려야 할 때(잠용), 구해야 할 때(현룡), 나아가야 할 때(비룡), 물러나야 할 때(항룡)를 잘 판단하라는 가르침을 전하지만, 그 때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진인사대천명! 오직 사람의 일을 다할 뿐이다.

점쟁이가 가르쳐 주는 것도 아니고, 신이 가르쳐 주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주역은 점에 의지하라고, 신께 기도하라고, 부적에 의지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바른 분별력을 가진 군자가 되어 최선을 다하라고 가르친다.

 

유학에서의 군자는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분별력을 가진 사람이다.
다만, 그 옳고 그름의 잣대, 진리의 잣대는 '나에게 요구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육체 건강을 위해서 요가를 배우는 사람이 스스로를 건강하게 하려 요가를 배우듯이,
정신 건강을 위해서 학문을 배우는 사람도 '자기'를 수양하려 배움에 임해야 한다.
그래서 '수신제가치국평천하'에서 수신이 최선순위에 오며, 모든 것의 근본이 된다.
남에게 요구하기 위한 옳고 그름은 싸움을 낳고 미움을 낳게 되는 해악이 될 뿐이다.
자기의 사상과 종교가 절대적 진리라는 믿음으로 쉬지 않고 다투고 있고,
얼마나 많은 인간이 목숨을 잃게 되어야 했던가?

 

군자는 나를 바로 세우는 사람일 따름이다.
그러다 보면 감화된 사람이 저절로 벗이 되려고 찾아오기도 하는 사람이다.
논리와 말로 이겨서 사람을 끌고오려는 승리자, 내세우려는 잘난 이가 군자가 아니다.
그래서 공자의 가르침은 스스로에 대한 성찰을 부단히 강조한다.
"군자는 자기에게 요구하고, 소인은 다른 사람에게 요구한다" [논어 제15편 위령공 제21장]
화이부동(和而不同)의 가르침도 마찬가지다.
"군자는 조화를 이루려고 하지 같게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논어 제13편 자로 제23장]

 

군자가 되어 자기를 다듬는다는 이 수신이 결코 만만한 수준은 아니다.
원효대사의 해골물 이야기가 전해주는 가르침은 '물은 변한게 없었지만 내 마음이 변했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만은 아닐 것이다. 해골에 담긴 물이었음을 알고서 구토가 일어났다는 것은 지나간 것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집착하는 경지를 벗어났다고 여기고 있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는 자기자신을 깨우친 것도 깨달음의 한 이유였다고 한다. 맛있게 먹었다는 기억을 붙들고 있지 않았다면 그냥 더러운 물이네 할 것이지, 구토가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군자로서 자기를 착각하지 않고 냉정하고 철저하게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모자라서 자기를 제대로 볼 수 없는 사람도 있지만, 지혜롭다는 사람도 너무 똑똑해서 오히려 자신을 보지 못하는 경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수신(나를 닦고) 제가(집안을 바로하고) 치국(나라를 다스리고) 평천하(세상을 평화롭게 하는)하는 것이, 순서대로 완성 한 후 나아가는 선후의 단계적 의미는 아니다. 수신이 곧 제가와 다르지 않고 치국과 다르지 않고 평천하와 다르지 않음이다. 즉, 수신(修身)은 평생 수련해야 하는 것이지 완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운동을 쉬면 근육이 굳어지듯, 배움도 쉬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
Posted by 오빠야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