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7

« 2024/7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제물론'에 해당되는 글 3

  1. 2013.01.06 제2편 제물론(齊物論) - 7
  2. 2013.01.06 제2편 제물론(齊物論) - 1
  3. 2013.01.04 제1편 소요유(逍邀遊 ) - 1

제자 설결(齧缺)이 스승 왕예(王倪)에게 물었다[齧缺問乎王倪曰:].
"선생님께서는 만물이 다 하나임을 아십니까?"[子知物之所同是乎]?



말씀하시길[曰:] "내가 그것을 어떻게 알겠는가?"[吾惡乎知之]



"선생님께서는 선생님이 알지 못하는 것이 있음은 아십니까?[子知子之所不知邪]?



말씀하시길[曰:] "내가 그것을 어떻게 알겠는가?"[吾惡乎知之]



"그렇다면 물(物)은 알 수 없다는 뜻입니까?[然則物無知邪]?



말씀하시길[曰:] "내가 그것을 어떻게 알겠는가?"[吾惡乎知之]
비록 그렇지만, 한번 말은 해 봄세[雖然 嘗試言之]
내가 안다 하는 것이 모르는게 아니다는 말이겠나?[庸詎知吾所謂知之非不知邪]?
내가 모른다 하는 것이 아는게 아니다는 말이겠나?[庸詎知吾所謂不知之非知邪]?



오히려 내가 시험삼아 자네에게 불어 봄세[且吾嘗試問乎女]
사람이 습한 곳에서 자면 척추가 무뎌져 죽게 되겠지만[民濕寢則腰疾偏死]
미꾸라지는 어떠한가[鰍然乎哉]?
사람이 나무위에 있게되면 벌벌 떨게 되겠지만[木處則惴慄恂懼]
원숭이는 어떠한가[猿猴然乎哉]?
사람, 미꾸라지, 원숭이 이 셋중에 누가 바른 곳을 아는건가?[三者孰知正處]?



사람은 가축을 먹고[民食芻豢] 사슴은 풀을 먹고[麋鹿食薦]
지네는 뱀의 사체를 맛있게 먹고[蝍且甘帶] 부엉이와 까마귀는 쥐를 즐기니[鴟鴉耆鼠]
이 넷은 누가 맛을 제대로 아는건가?[四者孰知正味]



원숭이는 원숭이와 짝을 짓고[猿猵狙以為雌] 고라니는 사슴과 어울리고[麋與鹿交]
미꾸라지는 물고기와 노닐면서도[鰍與魚游]
모장과 여희는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하는데도[毛嬙麗姬 人之所美也]
물고기가 보면 물속으로 들어가 버리고[魚見之深入]
새가 보면 하늘로 날아가 버리고[鳥見之高飛]
고라니와 사슴이 보면 급하게 달아난다네[麋鹿見之決驟]
이 넷은 누가 아름다움을 제대로 아는건가?[四者孰知天下之正色哉]?



내가 볼 때에는[自我觀之]
인의를 경계짓고[仁義之端] 시비를 가르는 것은[是非之塗] 혼란하고 어지러우니[樊然殽亂]
어찌 내가 능히 따져서 알수 있겠는가[吾惡能知其辯]



설결이 물었다[齧缺曰:]
선생님이 이롭고 해로움을 알지 못하신다면, 지인도 역시 그렇습니까?[子不知利害 則至人固不知利害乎]?



왕예(王倪)가 답했다[王倪曰:]
지인은 신묘하다네![至人神矣]!
커다란 연못을 다 태워도 뜨거워 하지않고[大澤焚而不能熱]
황하와 한수를 다 얼려도 추워하지 않는다네[河漢冱而不能寒]
사나운 우뢰가 산을 다 파괴시켜도 상하지 않고[疾雷破山]
태풍이 파도가 몰아치게 해도 그는 놀라지 않는다네[飄風振海而不能驚]
그 같은 사람은[若然者] 구름의 기운을 타고[乘雲氣]
해와 달에 올라타서[騎日月] 사해의 바깥을 노닌다네[而游乎四海之外]
죽고 사는 것 조차도 자기를 변하게 할 수 없는데[死生無變於己]
이롭고 해로움의 경계를 따지려고 하겠는가[而況利害之端乎]!

'간상(赶上) > 장자(莊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2편 제물론(齊物論) - 9  (0) 2013.01.06
제2편 제물론(齊物論) - 8  (0) 2013.01.06
제2편 제물론(齊物論) - 6  (0) 2013.01.06
제2편 제물론(齊物論) - 5  (0) 2013.01.06
제2편 제물론(齊物論) - 4  (0) 2013.01.06
:
Posted by 오빠야닷컴

남곽자기(南郭子棊)가 책상에 기대앉아[南郭子綦隱机而坐] 하늘을 쳐다보며 한숨쉬니[仰天而噓]
그 멍한 모습이 마치 스스로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荅焉似喪其耦].
제자 안성자유(顔成子遊)가 그 앞에서 시중을 들다가[顏成子游立侍乎前] 여쭈었다[曰]:
"무슨 일인지요[何居乎]? 보이는 모습이 정말로 마른나무와 같고[形固可使如槁木]
느껴지는 마음이 정말로 식은 재와 같습니다[而心固可使如死灰乎].
지금 책상에 기대고 있는 사람이[今之隱机者]
이전에 그 사람과 다른 사람인지요[非昔之隱机者也]?



자기(子棊)가 말했다[子綦曰]:
"언아[偃] 너는 정말 순진하여[偃不亦善乎] 그런 것을 묻는구나[而問之也]!
지금 나는 내 자신을 잊고 있었는데[今者吾喪我] 네가 그것을 알겠느냐[汝知之乎]?
너는 사람이 내는 소리인 인뢰(人籟)는 들었을 것이나[女聞人籟而未聞地籟]
땅이 내는 소리인 지뢰(地籟)는 못 들었을 것이고[女聞地籟]
설령 들었어도, 하늘이 내는 소리인 천뢰(天籟)까지는 못 들었을 것이다[而未聞天籟夫夫].



자유가 청했다[子游曰]: "부디 그것을 말씀해 주십시오[敢問其方]."



자기가 대답했다[子綦曰]:
"대개 대지가 뿜어내는 숨을[夫大塊噫氣] 바람이라 한다[其名為風].
이것이 일지 않으면 모르겠지만[是唯無作]
일어나면 세상의 모든 구멍이 성난 듯 소리를 낸다[作則萬竅怒呺].
너 혼자 그 소리의 울림을 못 듣지는 않았겠지[而獨不聞之翏翏乎]?
산 속의 높은 봉우리에[山林之畏佳] 백 아름이 되는 큰 나무의 구멍은[大木百圍之竅穴]
코와 같이, 입과 같이, 귀와 같이, 가로보 같이, 고리와 같이, 절구와 같이[似鼻 似口 似耳 似枅 似圈 似臼]
연못과 같은 것이 되고, 웅덩이와 같은 것이 된다[似洼者 似污者].
물소리 같이, 화살소리 같이, 꾸짓는 소리 같이, 숨쉬는 소리 같이[激者 謞者 叱者 吸者]
부르는 소리 같이, 울리는 소리 같이, 찟어지는 소리 같이 되어[譹者 宎者 咬者],
앞 소리를 가볍게 시작하여 뒷소리를 무겁게 낸다[前者唱于而隨者唱喁]
작은 바람이면 작게 화답하고, 거센 바람이면 크게 화답한다[泠風則小和 飄風則大和]
그러다 바람이 잦아지면 모든 구멍들이 잠자게 되는 것인데[厲風濟則眾竅為虛]
너만이 저 나무들이 휘청휘청 흔들리다 잠잠해짐을 것을 못 보지는 않았겠지[而獨不見之調調 之刀刀乎]?"



자유가 말하기를[子游曰]:
"지뢰(地籟)는 구멍을 통해 나오게 되는 소리이며[地籟則眾竅是已],
인뢰(人籟)는 사람이 불어 나오는 피리같은 소리군요[人籟則比竹是已].
그렇다면 천뢰(天籟)는 무엇인지요[敢問天籟]?"



자기가 대답했다[子綦曰]:
"그 나오는 소리가 만가지가 다 다르지만[夫吹萬不同]
저절로 달리 만들어 지는 소리이다[而使其自已也].
저절로 그리 나오게 되는 것이니[咸其自取]
소리나게 하는 그 무었이 있어서겠느냐[怒者其誰邪]?"

'간상(赶上) > 장자(莊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2편 제물론(齊物論) - 3  (0) 2013.01.06
제2편 제물론(齊物論) - 2  (0) 2013.01.06
제1편 소요유(逍邀遊 ) - 4  (0) 2013.01.06
제1편 소요유(逍邀遊 ) - 3  (0) 2013.01.06
제1편 소요유(逍邀遊 ) - 2  (0) 2013.01.06
:
Posted by 오빠야닷컴
北冥有魚
其名為鯤
鯤之大
不知其幾千里也
化而為鳥
其名為鵬
鵬之背 不知其幾千里也
怒而飛
其翼若垂天之雲
是鳥也
海運
則將徙於南冥

南冥者 天池也

齊諧者 志怪者也
諧之言曰:
‘鵬之徙於南冥也
水擊三千里
摶扶搖 而上者九萬里
去以六月息者也’
북쪽 바다에 물고기가 있는데
그것을 곤(鯤)이라 부른다.
곤(鯤)의 크기가
몇천 리인지 알 수는 없다.
그 곤(鯤)이 변해서 새가 되는데
그 이름을 붕(鵬)이라 한다.
이 붕의 등 넓이도 몇천 리나 되는지 알 수가 없다
이 붕(鵬)이라는 새가 솟구쳐 날아오르면
그 날개가 마치 하늘을 뒤덮은 구름과 같다.
이 붕(鵬)이라는 새는
바다의 출렁임을 따라
남쪽 바다로 나아갈려고 하는데
그 남쪽 바다가 천지(天池)이다

「제해(齊諧)」라는 책은 그 뜻이 괴이하다.
적혀있는 말은 이러하다 :
'붕새가 남쪽 바다로 나아갈 때에는
물결치는 것이 3천리에 이르고
회오리를 타고 9만리를 날아올라
반년이 지나서야 쉰다.'


  존재라는 것은 저 홀로 위대할 수는 없다. 계산으로 측정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곤(鯤)이라고 해도 북명이라는 바다가 길러주어야 하며, 어마어마한 붕(鵬)이라고 해도 남명이라는 바다가 보살펴 주어야 한다. 그런데 어찌하여 곤은 붕이 된 것이며, 붕이 되면 왜 남명으로 날아가려 하는가? 

  곤이 붕으로 변한 것은 스스로의 뜻이 아니다. 남명으로 날아가야 하기에 하늘이 날개를 준 것이다. 하늘은 제 사명을 다했다. 그리고 선택권은 붕새에게 넘겨졌다. 과연 솟구쳐 날아오를 것인가? 그 길은 어마어마한 물결과 회오리를 동반하여 다시 잠잠해지지까지 6개월이 걸리는 힘든 여정이다.

  사람이 원초적 본성을 찾은 것이 붕새로 변해 날개를 가진 것과 다르지 않다. 솟구쳐 오르는 것은 수행을 의미하며 남명은 초월적인 세상을 상징한다. 곧 남명은 신선계요, 열반이다. 티베트에서는 완전히 자란 모습으로 태어나는 '가루다'라고 불리는 신비로운 새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가루다의 새끼는 알 속에 있을 때 이미 완전한 날개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알을 깨고 나오기 전에는 결코 날 수가 없다.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을 불성의 발현으로 이야기한다. 세세한 차이는 있지만, 붕새의 비유와 닮아있다.
 

野馬也 塵埃也
生物之以息相吹也
天之蒼蒼
其正色邪?
其遠而無所至極邪?
其視下也
亦若是則已矣
且夫水之積也不厚
則其負大舟也無力
覆杯水於坳堂之上
則芥為之舟;
置杯焉則膠
水淺而舟大也
風之積也不厚
則其負大翼也無力
故九萬里
則風斯在下矣
而後乃今掊風
背負青 天而莫之夭閼者
而後乃今將圖南
아지랑이와 먼지는
생물이 불어내는 입김이다.
하늘이 푸르른 것은
저 하늘 본래의 색이던가?
멀어서 끝이 없기 때문인가?
하늘에서 아래로 내려보아도
또한 마찬가지이리라
대개 물이 깊지 않으면
큰 배를 띄울 힘이 없다.
한 잔 물을 뜰의 패인 곳에 부으면
지푸라기는 띄워지겠지만
술잔을 띄우면 가라앉고 만다.
물은 얕은데 배가 큰 까닭이다.
마찬가지로 바람이 쌓인 것이 깊지 않아도
저 붕새의 큰 날개도 힘을 쓰지 못할 것이다.
그러기에 구만리는 되어야
바람이 그 밑에 있게 되고
그 후에야 바람을 타고
푸른 하늘을 등에 진채 걸림없이
남쪽으로 날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붕새가 남명으로 날아가는 여정은 깨달음의 길. 소요유(逍遙遊)! 속된 세상을 초월하여 아무런 걸림없이 참된 자유의 세계에서 노니는 지인(至人)의 경지에 이르는 길이다. 물이 깊어야 큰 배를 띄울 수 있고, 높이 솟구쳐야 바람을 탈 수 있는 법. 큰 고난과 큰 시련이 동반되는 험난한 길일게다. 불행의 깊이가 깊지 않은 사람은 행복의 깊이도 얕은 법! 구만리를 솟구쳐 깊게 쌓인 바람을 타고 대도(大道)의 세상으로 날아가야 한다.

 

蜩與學鳩笑之曰:
‘我決起而飛 槍榆枋而止
時則不至而控 於地而已矣
奚以這九萬里而南為?’

適莽蒼者
三餐而反 腹猶果然
適百里者 宿舂糧
適千里者 三月聚糧
之二蟲又何知!
매미와 비둘기가 붕을 비웃으며 말했다.
“내가 힘써 날아올라야 느릅나무와 박달나무에 이른다
때로는 그곳조차도 이르지 못하고 땅바닥에 떨어지고 마는데,
어찌 9만리를 날아올라 남쪽으로 갈 수 있다는가?”

가까운 들판에 나가는 자는
세끼를 먹지 않아도 배를 유지할 수 있지만
백 리를 가는 자는 밤새 양식을 준비해야 하고
천 리를 가는 자는 3개월분 양식을 준비해야 하는 것을
이 두 벌레 같은 것이 어찌 알겠는가?


  매미와 비둘기도 날개가 있다. 그러나 날개가 있다고 다 남명으로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낮은 식견에 붕새의 날개를 제 가진 날개인 양 생각한다. 노자도, 공자도 조롱을 받았다. 예수는 죽임을 당했다. 본래 바둑고수는 하수를 조롱하고 비웃지 않는다. 하수를 조롱하고 훈수를 두는 것은 작은 날개를 달고 있는 급수들이다. 장자가 일갈한다. 벌레같은 것들이 무엇을 안다고 까부느냐!

 

小知不及大知
小年不及大年
奚以知其然也?
朝菌不知晦朔
蟪蛄不知春秋
此小年也

楚之南有冥靈者
以五百歲為春 五百歲為秋
上古有大椿者
以八千歲為春 八千歲為秋
此大年也


而彭祖
乃今以久特聞
眾人匹之
不亦悲乎!

작은 지혜는 큰 지혜에 미치지 못하고
짧게 산 것은 오래 산 것에 미치지 못한다
어떤 것이 소년(小年)과 대년(大年)인지 아는가?
아침만 사는 버섯이 그믐과 초하루를 알지 못하고
매미는 봄과 가을을 알지 못하니
이런 것들이 소년(小年)한 것이다.


초(楚)나라 남쪽에 명령(冥靈)이라 불리는 거북이 있었는데
5백년을 봄으로 삼고 5백년을 가을로 삼고 살았다
오랜 옛날에 대춘(大椿)이라는 나무가 있었는데
8천년을 봄으로 삼고 8천년을 가을로 삼고 살았다.
이런 것들이 대년(大年)한 것이다. 


그럼에도 8백년을 살았다는 팽조(彭祖) 따위를
오늘날까지 오래 살았다며
사람들이 그와 같아지고자 하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장자는 말한다. "까불지 말거라. 적어도 3만년을 넘게 산 대춘정도는 되어야 오래 살았다고 할만하지, 고작 8백년을 산 팽조따위를 오래살았다고 하느냐!" 참고로 장자가 오래 사는 것을 높인다고 오해하여 '불로장생'사상이 도교의 바탕이 된다. 그러나 장자도 백년을 못 넘겼다. 많아야 80이라고 추정한다. 

 

湯之問棘也是已.
湯問棘曰 :
’上下四方有極乎?’
棘曰 : 
‘無極之外 復無極也
窮髮之北有冥海者
天池也
有魚焉 其廣數千里
未有知其脩者
其名為鯤
有鳥焉 其名為鵬
背若泰山
翼若垂天之雲
摶扶搖羊角而上者九萬里
絕雲氣
負青天 然後圖南
且適南冥也’

 

斥鴳笑之 曰 :
’彼且奚適也?
我騰躍而上
不過數仞而下
翱翔蓬蒿之
此亦飛之至也間
而彼且奚適也’


此小大之辯也
故夫知效一官
行比一鄉
德合一君
而徵一國者
其自視也亦若此矣 

탕왕(湯王)이 신하 극(棘)에게 물은 것도 이와 같은 것이다.
탕왕(湯王)이 극(棘)에게 물어 말하기를
”상하사방이 끝이 있는가?”
극(棘)이 말하기를
”끝없음의 바깥에 다시 끝없음은 없습니다.
궁발(窮髮)의 북쪽에 명해(溟海)라는 바다가 있는데
천지(天池)라고 합니다.
거기에 물고기가 있는데 그 크기가 수 천리나 되어
그 길이를 아는 자가 없는데
곤(鯤)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거기에 새도 있는데 붕(鵬)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등은 태산만 하고

날개는 하늘에 뒤덮은 구름과 같은데
회오리바람을 타고 구만리를 솟구쳐
구름을 벗어나
푸른 하늘을 등진 후 남쪽을 향하여
남쪽 바다로 간다고 합니다.”

 

메추리가 이것을 비웃으며 말했다.
”저것들은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내가 힘껏 뛰어올라 보았더니
몇 길 못 오르고 내려와
쑥대밭 속에서 펄떡거려야 했는데
이까지가 최고로 오를 수 있는 것이던데
저것들은 어디까지 오른다고 저 짓이냐.”


이것이 작은 것과 큰 것의 차이다.
그러기에 무릇 지혜가 한 관직 정도 맡을만하고
행실이 한 고을 사람들이 알아줄 정도이고
덕은 한 임금의 마음만 만족케 할 정도이고
능력은 한 나라에 쓸모 있을 정도임에도
스스로 뽐내는 것은 이 메추리와 같은 것이다.


  같은 얘기의 반복이다.

 

而宋榮子猶然笑之
且舉世而譽之而不加勸
舉世而非之而不加沮
定乎內外之分
辯乎榮辱之竟
斯已矣
彼其於世未數數然也
雖然 猶有未樹也

夫列子御風而行
泠然善也 旬有五日而反
彼於致福者
未數數然也
此雖免乎行
猶有所待者也

若夫乘天地之正
而御六氣之辯
以遊無窮者
彼且惡乎待哉!

송영자(宋榮子)는 이런 자들을 보고 빙그레 웃었다
그는 세상이 그를 칭찬한다고 해서 열심히 하려 하지 않았고
세상이 그를 비난한다고 해서 그만두려 하지 않았으니
안팎의 구분을 정할 수 있었고
영예와 굴욕의 경계를 구분하였으니
그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사람은 세상에 아직 흔치 않지만
비록 그렇다 해도 자라지 못한 나무와 같다.

열자(列子)는 바람을 타고 돌아다니며
시원함이 좋아서 보름이 지나서야 돌아오곤 했다.
그처럼 복을 받은 사람이
여전히 흔하지는 않다
그러나 비록 걷는 것을 면했다 하여도
여전히 의지할 바람이 있어야 한다.


만약 저 천지의 바른 기운을 타고
천지의 대기운인 육기(六氣)의 변화에 맡겨
무궁에 노니는 자라면
그는 기댈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천지의 대기운인 육기의 변화에 맡겨 무궁에 노니는 자라면 그는 기댈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故曰:
至人無己
神人無功
聖人無名
그러기에 말하였다
지인(至人)은 자기가 없고,
신인(神人)은 이룸이 없고,
성인(聖人)은 이름이 없다. 


지인은 자기가 없고, 신인은 이룸이 없고, 성인은 이름이 없다.  

 

'간상(赶上) > 장자(莊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2편 제물론(齊物論) - 2  (0) 2013.01.06
제2편 제물론(齊物論) - 1  (0) 2013.01.06
제1편 소요유(逍邀遊 ) - 4  (0) 2013.01.06
제1편 소요유(逍邀遊 ) - 3  (0) 2013.01.06
제1편 소요유(逍邀遊 ) - 2  (0) 2013.01.06
:
Posted by 오빠야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