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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eguk

『중용』시작부의 도(道)의 정의를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도(道)는 잠시도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니 [道也者 不可須臾離也] 떨어질수 있다는 것은 도(道)가 아니다 [可離非道也]

간단히 생각하면 쉬우면서도, 어려운 얘기입니다.

유학경전에서 A = B로 완전하게 정의를 시도한 부분은

이 「도(道)」의 정의가 유일하지 않나 싶습니다.

 

도(道)는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이며,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이 도(道)입니다.

조금 쉽게 다가올까 싶어 ‘아담과 이브’를 등장시킵니다. 태초이래로 생겨난 인간은 한 명일 수 없었습니다. 반드시 남자와 여자가 함께 있어야 했을 것입니다. 실체가 느껴지는 것 뿐 아니라, 무형도 그러합니다.

사람이 만들어낸 마음조차도 그러합니다.

「사랑」과 「미움」이 별개요, 「고통」과 「쾌락」이 별개일까요?

사랑의 마음 하나만 생겨난 듯 하지만, 실제로는 미움과 함께 생겨나 있습니다. 사랑의 마음을 크게 키우면 미움이 보다 선명히 나타납니다. 고통이라는 마음 하나만 생겨난 듯 하지만, 실제로는 쾌락과 함께 생겨나 있습니다. 고통의 크기를 크게 키우면 함께 있었던 쾌락이 더 선명히 나타납니다.

 

떨어질 수 없다’는 것, ‘관계가 없는 그것 뿐인 것은 없다’는 이 관념이 정립되면, 모든 것은 떼어낼 수 없는 관계적인 것이라는 사유로 연결되어 갑니다. 이러한 사유는, 중국의 음양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무극에서 생겨난 ‘태극’의 개념과 연결되며, 유가, 도가, 불가의 가르침도 역시 이 개념으로 함께 통(通)합니다. 삶과 죽음도 함께 있고, 깨달음과 무지도 함께 있고, 나와 너도 함께 있고, 선과 악도 함께 있고, 유와 무도 함께 있고, 현재와 비현재도 함께 있습니다.

 

다른 경전에서는 도(道)를 어떻게 설명할까요? ‘『도덕경』의 첫장입니다.

도(道)라는 도(道)는 참된 도가 아니며, [道可道非常道]
이름으로 정해진 것은 진정한 그것만이 아닙니다. [名可名非常名]
천지로부터 생겨난 모든 것은 본래 이름이 없었는데 [無名 天地之始],
이름으로 가두어버림으로써 떨어질 수 없게 되었습니다. [有名 萬物之母]

그러기에 가두지 않음으로 그 신비함을 보아야하고 [故常無欲以觀其妙]
가두어져 막혀 있는 것도 보아야 합니다. [常有欲以觀其]

‘갇히지 않음(무욕)’과 ‘갇힘(유욕)’도 떨어질 수 없고,

함께 생긴 것이지만 이름이 다릅니다 [此兩者 同出而異名]
이 둘도 떨어질 수 없고 함께 있으니 혼란합니다 [同謂之玄]
아득하고 또 아득합니다. 모든 신비의 문이 여기서 시작됩니다 [玄之又玄 衆妙之門]

『중용』에서 말하는 도(道)와 다른가요? ‘떨어질 수 없는 것이 도(道)’라는 중용의 설명에 덧붙여,

도(道)라는 그 개념도 역시 마찬가지로 그것만 떨어질 수 없다는 해설을 덧붙인 것입니다.

진정한 그것과 갇혀진 그것, 역시도 떨어질 수 없는 것이라는 해설을 덧붙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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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빠야닷컴
나무01

교과서『중용』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하늘이 명한 것을 성(性)이라 하고 [天命之謂性]
성(性)을 따르는 것을 도(道)라고 한다 [率性之謂道]
-
도(道)는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니 [道也者 不可須臾離也] 떨어질수 있다는 것은 도(道)가 아니다 [可離非道也]

도(道)를 행한다는 것은 어떤 것이며,
도(道)라는 것은 어떠한 것임을 명쾌하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우선 「도(道)를 행한다는 것」의 개념을 보기로 하겠습니다.

 

따라야 할 것은 오직 그대로의 성(性)입니다.
스승도, 부모도, 남편도, 조상도 아닙니다.
책도, 좋은 말도, 인격자도, 지식도 아닙니다.
머리도 아니고, 육체도 아닙니다.
오직 성(性)입니다.

 

순자의 말이 그런 의미입니다.

도(道)를 따르지, 군주를 따르는 것이 아니며,
의(義)를 따르지, 아버지를 따르는 것이 아니다

유가는 공자를 칭송하고 존경하지만, 공자를 따르지는 않습니다.
'성(性)'을 따릅니다. 곧 도(道)를 행합니다.

 

오직 성(性)만을 따른다는 것은
잘못된 분별을 일으키는 마음에서도 벗어남을 말합니다.

모든 것을 텅 비워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치우침을 일으키는 것을 비워버리고
성(性)을 진실하게 따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가(儒家)와 도가(道家)가 정반대에 있는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새로워지라는 유가의 일신(日新)이나,
날마다 벗어내라는 도가의 일손(日損)이나
가두고 있던 것을 떨쳐내는 유가의 유위(有爲)와
가두고 있던 것을 비워내는 도가의 무위(無爲)는
같은 말, 다른 표현입니다.

 

알아도 말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아는 것 모두를 말로 완벽하게 할 수 있습니까?

들어도 모든 것을 들을 수도 없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입니다. 
그렇게 말이라는 녀석과 귀라는 녀석은

또한, 눈이라는 녀석과 머리라는 녀석도 마찬가지로

제가 가진 성(性)에 따라 한계가 있습니다.

 

머리로만 만나려는 사람은
그대로의 성(性)도 머리만을 통해서 알아낼 수 있다는 맹신에 갇힌 것일지 모릅니다.

 

똑똑한 자공이 말(言)에 갇혀가고 있자 공자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말하지 않으려 한다. (중략)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더냐?
네 계절이 운행되고 만물이 생장하나
하늘은 아무 말이 없지 않느냐?" [논어 제17편 양화 제1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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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빠야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