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11

« 2024/11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57

巽 小亨 利有攸往 利見大人
【初六】進退 利武人之貞
【九二】巽在床下 用史巫紛若 吉 无咎
【九三】頻巽 吝
【六四】悔亡 田獲三品
【九五】貞吉 悔亡 无不利 无初有終 先庚三日 後庚三日 吉
【上九】巽在床下 喪其資斧 貞凶

  손(巽)괘는 바람을 뜻하는 괘이니, 곧 마음이 바람처럼 흔들리는 것을 뜻한다. 우유부단하여 좀체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주역은 그 우유부단함의 원인을 마음에서 찾고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기에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라고 한다. 실패의 확률을 줄이려면 역사를 살펴보기를 권하고 그도 아니면 차라리 점을 치고서 나아가라고 말한다. 망설이고 주저하고 있다가는 앉아서 다 잃게 될 것이니 그게 제일 흉한 것이라고 한다. 지나간 일을 쉽게 떨쳐내지 못하는 것이 근원적 문제이니 후회를 남기는 마음을 없애야 길(吉)하다고 한다.

 

巽 小亨 利有攸往 利見大人
갈등(巽)은 성장 초기부터 있으나(小亨) 시간이 지나면 이로움이 있다(利有攸往) 대인을 만나보는 것이 이롭다(利見大人).
  갈등도 앞의 려(旅)괘와 마찬가지로 성장 초기부터(小亨) 있게 되는 것이다. 려(旅)괘의 방황은 쉽게 끌 낼 수 없던 것으로 본 반면에, 갈등(巽)은 시간이 지나면 이로움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식견이 높아지기 때문일 것이다. 더 빨리 끝내고 싶으면 대인(도움을 주는 사람)을 만나보는 것이 이롭다고 한다.

 

進退 利武人之貞
나아갈 줄 알고 물러날 줄 아는(進退) 무인은 끝까지 이롭다(利武人之貞)
  무인은 진퇴를 냉정하고 정확하게 결정할 수 있는 식견이 있어야 한다. 무인의 갈등은 저 혼자만 해를 입는 것이 아니라 많은 생명을 위태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巽在床下 用史巫紛若 吉 无咎
평상 아래에서 갈등 한다면(巽在床下) 역사와 무속을 사용하면(用史巫紛若)이 길(吉)하고 허물이 업다(无咎).
  평상아래에서의 갈등은 보통사람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심한 갈등을 의미하며, 너무 우유부단하여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다. 역사를 사용하라는 것은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결정을 내리라는 말이다. 공자께서는 "옛 것을 돌이켜 미래를 살필 줄 알면 스승이 될 수 있다"[논어 제2편 위정 제11장]고 하셨다. 그도 아니면 무속 곧, 점을 사용하라고 한다. 점이 맞다는 말이 아니라 갈등을 끝내고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공자께서는 세 번 생각하고 행동하라고 가르치셨지만 계문자에게는 “두 번이면 충분하다”[논어 제5편 공야장 제20장]고 하셨다.

 

頻巽 吝
찡그리고 갈등만 하고 있다면(頻巽) 어려워진다(吝)
  찡그리고 갈등만 하다가 시간을 다 보내는 것이니 정말 어려워진다. 공자께서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할까? 라고 하며 추구하지 않는다면 나도 참으로 어떻게 할 수가 없다”[논어 제15편 위령공 제16장]고 하셨다.

 

悔亡 田獲三品
후회가 없으면(悔亡) 밭에서 세가지 물건을 얻으리라(田獲三品).
  3품은 천(天)지(地)인(人)을 비유하는 것이다. 천지인의 합일은 결국 마음으로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에 상관없이 후회하고 탄식하지 않는다면 언제 나아가건(天), 어디로 나아가건(地), 누구(人)에게로 나아가건 아무 문제가 없다. 천지인의 합일을 기다리는 것은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는 것이기 때문에, 애초에 후회가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 수 있을까?

 

貞吉 悔亡 无不利 无初有終 先庚三日 後庚三日 吉
끝까지 길하구나(貞吉) 후회하지 않음이여(悔亡) 이롭지 않음이 없다(无不利) 시작은 몰라도 끝은 있으니(无初有終) 신중하게 하고(先庚三日) 잘 헤아리면(後庚三日) 길(吉)하리라.
  즉, 시작할 때 확신은 없어도 끝나면 결과는 있는 법이다. 후회가 없는 것이 중하다. 선경삼일은 십간 즉,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의 경으로부터 앞선 3일인 정(丁)이며, 후경삼일은 계(癸)를 말하는데, 신중(丁)하였고 잘 헤아렸다면(癸) 그 결과가 어떻든 그 자체로 길한 것이다.

 

巽在床下 喪其資斧 貞凶
평상 아래에서 갈등한다면(巽在床下) 재물과 도끼까지 잃을 것이니(喪其資斧) 끝까지 흉하다(貞凶)

  평상아래에서의 갈등은 보통사람에도 미치지 못하는 심한 갈등이니 우유부단하여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을 잃음은 물론이요, 재물과 권력도 잃을 것이니 끝까지 흉하다. 한번 시도해 보지도 못하고 앉아서 잃는 것이니 끝까지 흉한 것이다.

:
Posted by 오빠야닷컴
56

旅 小亨 旅貞 吉
【初六】旅瑣瑣 斯其所取災
【六二】旅即次 懷其資 得童僕 貞
【九三】旅焚其次 喪其童僕 貞 厲
【九四】旅于處 得其資斧 我心不快
【六五】射雉一矢亡 終以譽命
【上九】鳥焚其巢 旅人 先笑後號咷 喪牛于易凶

  여(旅)는 나그네를 뜻한다. 떠도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니 곧, 방황을 의미한다. 요즘은 인생 40을 제2의 방황기라고도 한다. 공자께서는 나이 40을 미혹함이 없는 불혹이라고 하셨고 “나이 40이 되어서도 미움을 받는다면 끝났다”[논어 제17편 양화 제26장]고도 하셨으니 요즘 사람들이 40에 방황하는 것은 옛사람들이 쉽게 예상할 수는 없었을 것 같기도 하다.

 

旅 小亨 旅貞 吉
방황(旅)은 성장 초기부터(小亨) 있게 되는 것이다. 방황을 끝내어야(旅貞) 길(吉)하다
.
  방황은 성장의 초창기부터(小亨) 있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길(吉)하려면 방황을 끝내어야 한다고 한다. 아마도 평생 방황을 끝내지 못하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 아닐까? 필부필부(匹夫匹婦)하는 보통의 사람들은 방황을 끝내지 못하고 그냥 그냥 살아가는 경우가 더 많을 것 같기도 하다.

 

旅瑣瑣 斯其所取災
방황은 자질구레하게 하면(旅瑣瑣) 재앙을 자초하는 것이다(斯其所取災).
  쇄쇄(瑣瑣)는 자질구레하게 계속 이어지는 것을 말한다. 시시하고 대수롭지 않은 이유로 끝맺지 못하고 계속 방황을 이어가는 것은 재앙을 자초하는 일이라고 한다. 알이 먼저 인지 닭이 먼저 인지, 아이가 먼저 인지 어른이 먼저 인지 어찌 반드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대학에서 “자식 기르는 법을 배우고 나서 시집가는 사람은 없다”[대학 제9장 제가치국]고 하였으니 지나치게 자질구레하게 방황을 계속 이어가지 않아야 한다.

 

旅即次 懷其資 得童僕 貞
방황은 묵을 곳이 있어야 하니(旅即次) 재물이 있고(懷其資) 동복(童僕)을 얻으면(得) 끝난다(貞)

  차(次)는 정착할 곳을 말하니 곧 방황을 끝내고 머무를 수 있는 곳을 말한다. 몸을 정착할 수 있으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마음이 정착 할 수 있으려면 내 마음을 받아주는 사심 없는 종이 있어야 한다. 몸이 편안하고 마음이 편안하면 더 이상 방황은 없음은 당연하다. 물질가치와 정신가치가 별개가 아니니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

 

旅焚其次 喪其童僕 貞 厲
방황하여 그 묵을 곳을 불태우고(旅焚其次) 그 동복을 잃었으니(喪其童僕) 끝까지(貞) 위태롭다(厲).
  재물(資)은 잃지 않았다. 그 동복을 잃어 결국, 쉴 곳을 잃었지만 재물은 남아있는 것이다. 이것이 곧 재앙을 자초한다고 하는 자질구레하게 이어지는 방황(旅瑣瑣)과 다르지 않다. 내 몸을 쉬게 만들 수 있는 돈도 중요하고 내 마음을 쉬게 할 수 있는 동복도 필요한 것이다. 중용을 벗어나 그 동복을 잃었으니 끝까지 위태롭다.

 

旅于處 得其資斧 我心不快
방황에서 잠시 쉬려다가(旅于處) 재물과 도끼를 얻었으나(得其資斧) 내 마음은 불쾌하다(我心不快).

  처(處)는 정착지를 뜻하는 차(次)와는 달리 잠시 쉬기 위해 머무는 곳이다. 자부(資斧)는 재물과 도끼인데, 곧 돈과 권력을 의미한다. 얻기 위해 애써서 얻은 것이 아니요, 잠시 머무를 생각이었는데 돈과 권력을 취했으니 그야말로 횡재다. 그러나 왜 마음이 불쾌할까? 돈과 권력을 얻었고, 그것도 손쉽게 얻었으나 동복(童僕)이 없기 때문이다.

 

射雉一矢亡 終以譽命
어리석은 꿩을 화살 하나를 잃고 죽이면(射雉一矢亡) 마침내 명예로운 부름을 얻으리라(終以譽命)
  꿩은 다급해지면 풀섶에 머리만 박고 몸뚱이를 돌보지 않는 어리석은 짐승이다. 즉 그 어리석음을 빨리 없애라는 말이니, 돈과 권력을 횡재로 얻고서도 마음이 불쾌한 이유가 무엇인지 빨리 깨우치라는 의미이다.

 

鳥焚其巢 旅人 先笑後號咷 喪牛于易 凶
새가 그 둥지를 불사르니(鳥焚其巢) 나그네는(旅人) 처음에는 웃지만 뒤에는 부르짖으며 슬피 울게 될 것이다(先笑後號咷) 주역의 소를 잃어버리는 것이니(喪牛于易) 흉(凶)하다.
  둥지를 불태우는 새가 쉴 곳을 불태우던 자신과 다를 바 없는 어리석을 짓을 하니, 짐승의 일로만 여겨 처음에는 어리석다고 비웃는다. 그러나 그것이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임을 알게 되어 슬피 울게 될 것이다. 소는 진리와 깨우침을 상징한다. 불교의 '심우도'에서 의미하는 소와 같은 뜻이다. 주역의 소를 읽어버리는 것은 곧 주역의 가르침을 잃어버리는 것이니 흉하다. 새를 가엽고 측은하게 여기는 인(仁)함을 잃었다. 주역이 말하고 있는 모든 변화의 법칙은 하나를 상정한 것이 아니다. 사람 인(人)은 항상 관계(關係)하여 하나가 받쳐주어야 하는 존재이며, 나와 관계없는 삼라만상은 아무것도 없다.

:
Posted by 오빠야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