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革 已日 乃孚 元亨利貞 悔亡
【初九】鞏用黃之革
【六二】已日 乃革之 征 吉 无咎
【九三】征 凶 貞厲 革言三就 有孚
【九四】悔亡 有孚 改命 吉
【九五】大人 虎變 未占 有孚
【上六】君子 豹變 小人 革面 征 凶 居貞 吉

  혁명과 반란은 구별하기 힘든 개념이며, 역사의 평가도 일정하지 못하다. 어떤 시대는 혁명이라고 말하고 어떤 시대는 반란으로 말한다. 왕건과 이성계가 만약 실패하였다면 혁명이 될 수 있을까? 그러나 실패하였지만 전봉준의 농민혁명이라고 한다. '성공'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지만 주역은 성공했기 때문에 혁명이 아니라, 혁명이기에 성공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때가 도래하고 바른 뜻이 있고 민심도 따르기 때문에 반드시 성공하는 것이라 한다.

 

革 已日 乃孚 元亨利貞 悔亡
혁명(革)은 이미 때가 도래하고(已日) 뜻이 있기에(乃孚) 처음부터 끝까지(元亨利貞) 후회가 없는 것이다(悔亡)
  차면 기우는 것이 주역이 말하는 변화의 법칙이요, 때가 도래하였음은 차서 기우는 때가 도래한 것이다. 곧 천명을 얻은 자가 불선(不善)으로 나가가 백성의 신임을 잃어 천명을 잃은 때이다. 대학에서 “위대한 천명을 지키기가 쉽지 않으니 백성의 마음을 얻어야 나라를 얻고 백성의 마음을 잃으면 나라를 잃게 된다”[대학 제10장 치국평천하]하였다.

 

鞏用黃之革
황소의 가죽으로 단단히 묶어야 한다(鞏用黃之革)
  개혁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황소의 가죽처럼 굳세어야 하고, 또한 백성들의 신임을 확고히 얻은 것을 말한다. 어려움을 만나면 곧 포기하거나 현실과 타협하려 하는 약한 마음으로는 개혁을 시작하지 않는 것만 못할 것이다.

 

已日 乃革之 征 吉 无咎
때가 도래하였다면(已日) 개혁하여(乃革之) 나아감(征)은 길(吉)하고 허물이 없다(无咎)
  가장 중요한 것이 개혁은 때가 도래하여야 하는 것이다. 잠용일때 움직이지 마라는 건(乾)괘의 뜻이다. 시기가 맞아야 한다. 일시적인 실정으로 민심이 흔들리는 상태라고 해서 곧 천명이 바뀌지는 않는다. 지나치게 서두는 것은 교만일 따름이다. 개선의 가능성이 없어진 때가 나아가야 할 때이다.

 

征 凶 貞厲 革言三就 有孚
나아감(征)은 일견 흉(凶)하고 끝까지 위태로우니(貞厲) 혁언을 세 번 성취해야만(革言三就) 비로소 신임을 얻는다(有孚)
  혁명이란 곧 백성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그러나 초기에는 난과 쉽게 구별이 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처음에는 힘과 기상으로 부딪혀 나아갈 수 밖에 없어 흉하고 끝까지 위태로움이 따르는 법이다. 45번째 췌(萃)괘에서 사람을 모을 때는 큰 희생양(大牲)과 호통(號)으로 시작하는 것이 순서라 했다. 그 이후에 신념을 펼치고 신임을 얻어야 한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개혁으로 나아가는 초기는 신념이 아니라 힘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한다. 혁언을 세 번 성취하는 것은 공언한 것을 힘과 기상으로 성취하는 것을 말한다.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어야 하늘의 뜻을 받은 것으로 여겨 비로소 신임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悔亡 有孚 改命 吉
후회가 없으리니(悔亡) 신임이 있다면(有孚) 천명을 고쳐도(改命) 길(吉)하다.
  혁언을 세 번 성취하고 신임을 얻었다면 곧 천명(天命)을 얻은 것이다. 군주의 시대에는 군주의 지위도 천명(天命)이라 여겼다. 그러나 천명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니 혁언을 세 번 성취하고 신임을 얻었다면 천명을 고쳐도 길하다고 한다. 대학에서도 “천명은 일정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선하면 얻게 되고 선하지 않으면 잃게 됨을 말한다.”[대학 제10장 치국평천하]고 하였다.

 

大人 虎變 未占 有孚
대인(大人)이 호랑이처럼 변하면(虎變) 점을 치지 아니하여도(未占) 신임을 얻을 수 있다(有孚)

  대인은 선을 추구하는 사람이며, 덕으로 존경을 받고 있던 인물이니 유순하던 그 사람이 호랑이처럼 변하여 나아가는 것이다. 아래 효의 표범과는 다른 나아감이다. 점을 칠 필요도 없다는 것은 아무런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뜻이다. 절대적으로 신임을 얻고 천명을 받을 것이다.

 

君子 豹變 小人 革面 征 凶 居貞 吉
군자(君子)가 표범처럼 변하여(豹變) 소인(小人)이 두려움에 낯을 바꾸어(革面) 나아가면(征) 흉(凶)하니 끝까지 멈추는 것(居貞)이 길(吉)하다.
  대인은 표범으로는 변할 수는 없기에 대인이며, 군자는 표범으로도 변할 수도 있기에 군자이다. 호랑이는 사람들이 저절로 받들고 따르기에 신임을 얻은 것이지만, 표범은 위협하고 두려움을 느끼게 하여 강제로 따르게 하는 것을 말한다. 덕으로 감화시키는 것과 힘으로 굽히게 만드는 것과의 차이이다. 소인들도 두려움으로 그렇게 나아가는 길은 반란을 따르는 것이니 끝까지 따르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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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빠야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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井改邑 不改井 无喪无得 往來井井 汔至 亦未繘井 羸其瓶 凶
【初六】井泥不食 舊井 无禽
【九二】井谷 射鮒 甕敝漏
【九三】井渫不食 爲我心惻 可用汲 王明 並受其福
【六四】井甃 无咎
【九五】井 洌寒泉食
【上六】井收勿幕 有孚 元吉

  이전의 곤(困)괘는 마음이 중용(中庸)의 도를 벗어났기 때문에 겪는 곤경이었다. 그래서 이어지는 정(井)괘는 그 마음을 중용의 도에 따르도록 하는 것을 의미하니 쉼없이 배움을 추구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물물은 아무리 사용해도 부족하지 않으니 끊임없이 샘솟는다. 그래야 좋은 우물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머리도 끊임없이 사용하고 채우면서 깨끗하고 차게 유지시켜야 한다. 그렇게 순환을 시키지 않으면 곧 고여서 썩게 되어 사용하지 못하는 우물이 되어버린다. 성인으로 추앙 받는 공자께서도 미혹되지 않게 된 40, 천명까지 알게 된 50, 귀가 순해진 60, 마음대로 행동해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게 된 70에 이르기까지 한시도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공자께서는 자랑하시기도 하셨다. “열 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에도 나처럼 충실하고 믿을 만한 사람은 반드시 있겠지만, 나처럼 이렇게 배움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논어 제5편 위령공 제28장]

 

井改邑 不改井 无喪无得
우물이 마을을 열지만(井改邑) 마을이 우물을 열수는 없다(不改井) 우물물은 줄지도 넘치지도 않아야 한다(无喪无得)

  맑고 깨끗하고 줄지도 넘치지도 않는 좋은 우물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여들어 마을이 형성되는 것처럼, 좋은 우물과 같은 사람이 사람을 모이게 한다. 그러나 고을을 만들만큼 사람이 많이 모인 곳이라고 하여 그 곳에 좋은 우물을 만들어 낼 수는 없는 것처럼, 고을을 형성할 정도로 사람이 모였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우물과 같은 사람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 순서가 뒤바뀐 것이다. 우물물은 줄지도 넘치지도 않아야 좋은 우물이니, 기존의 가르침을 완전히 무시하고 새로움만 추구하는 배움은 곤란하고 기존의 가르침만 고집하여 새로운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잘못이다. 중용을 지켜야 한다.

 

往來井井 汔至 亦未繘井 羸其瓶 凶
사람들이 반복해서 우물을 왕래하면(往來井井) 우물이 금새 다 마르고(汔至) 두레박 줄이 우물물에 미치지 못하여(亦未繘井) 두레박조차 쓸모가 없게 될 것이니(羸其瓶) 흉(凶)하다.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지 않으면 곧 그 밑천이 보이게 될 것이니, 사람들이 우물을 거듭(井井) 찾으면 우물이 말라서 퍼 갈 물이 없게 될 것이니 사람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는 우물이 되어버릴 것이다. 두레박은 사람들에게 우물물을 퍼 주었던 조력자이니, 두레박은 군주를 상징하고 우물은 인재를 상징한다. 인재가 받쳐주지 않는 군주도 쓸모가 없다. 융통성 없는 고집스러움으로 중요한 두 사람이 쓸모없게 되었고, 전체 사람들이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井泥不食 舊井 无禽
우물물이 진흙물이 되어 먹을 수 없는(井泥不食) 오래 방치된 우물이라면(舊井) 날짐승조차 없을 것이다(无禽)

  스스로 쓸모없게 되었고 그 조력자까지도 쓸모없게 만들었음에도 깨닫지 못하고 낡은 이론만 고수하고 배우려 하지 않으니 날짐승조차도 찾아오지 않는다. 사람은 물론이요 이제는 짐승조차도 외면하는 아무런 쓸모없는 생명이 되어버린 것이다.

 

井谷 射鮒 甕敝漏
우물물이 골짜기를 타고 흘러(井谷) 붕어에게 향하고(射鮒) 두레박도 깨져서 물이 샌다(甕敝漏).

  짐승조차도 먹어주지 않으니 그 진흙탕이 된 우물물이 골짜기를 타고 흘러 미물인 붕어에게만 혜택을 줄 수 있게 된 것이다. 참으로 초라한 우물이 되었다. 두레박은 이미 쓸모가 없어졌기에 사람들이 깨어버린 까닭일 것이다. 군주와 신하의 관계라면 나라의 지휘부가 함께 망하는 것이다. 절대 진리란 없다. 시대정신에 맞아야 한다. 공자께서도 “삼베 관을 쓴 것이 예(禮)인데 지금은 명주 관이 검소하니 나는 대중과 시류를 따르겠다. 대청 아래에서 읍하는 것이 예(禮)인데 지금은 대청 위에서 읍하지만 교만하니 대중과 시류에 어긋나더라도 대청 아래에서 읍하겠다”[논어 제9편 자한 제3장]고 하셨다. 변함없이 고수해야 할 원칙도 있고 시대정신에 따라 융통성을 보일 수 있는 것도 있으니 지나치게 원칙만 고집하여 미물에게만 쓸모 있을 따름인 학식이어서는 곤란하다.

 

井渫不食 爲我心惻 可用汲 王明 並受其福
우물을 깨끗이 해도 먹을 수 없으니(井渫不食) 내 마음이 측은하다(爲我心惻) 능히 물을 공급할 수 있다면(可用汲) 임금을 밝혀(王明) 더불어 그 복을 받도록 하라(並受其福).
  설(渫)은 우물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우물이 깨끗하게 되었으니, 그 인재가 이제 바른 길로 되돌아 온 것이다. 그런데 그 깨끗한 물을 공급할 수 있는 두레박이 깨어지고 없다. 이미 군주의 마음이 돌아섰기 때문일 것이며, 군주의 신임을 잃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물물과 그것을 퍼 내는 두레박 모두가 조화를 이뤄야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이제 두레박만 있으면 되니, 왕을 일깨워 두레박의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그 인재도, 군주도, 마을 사람들도 모두 그 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井甃 无咎
우물은 돌담을 쌓아 정비해야(井甃) 허물이 없다(无咎)
  우물은 돌담을 쌓는 것은 아무나 함부로 망칠 수 없도록 자존심을 지켜주는 것을 말함이니, 곧 공자께서 말씀하신 대청아래에서 읍함이며, 시대를 가리지 않는 원칙을 고수하는 그 신념은 지켜주는 것을 말한다.

 

井 洌寒泉食
우물물은(井) 차고 맑고 끊임없이 샘솟아야 먹을 수 있다(洌寒泉食)
  그러나 돌담을 지나치게 쌓아서 순환시키지 않으려 한다면 고이고 썩어 쓸모없는 우물이 되고 만다. 곧 공자께서 말씀하신 명주 관을 쓰는 것을 말함이며, 시대정신을 따르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강제로라도 차고 맑게 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井收勿幕 有孚 元吉
우물을 거두더라도 덮개를 씌우려 하지는 말아야 하니(井收勿幕) 신념이 있어야(有孚) 근원적으로 길하다(元吉).
  우물을 거두는 것은 고여서 썩는 것을 방비함이다. 그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덮개를 씌우는 것은 그 우물의 자존까지 뭉개는 것이니 지나친 것이다. 억지로라도 시대정신을 따라서 나아가게 해야 하지만 그 신념까지 무너뜨리는 것은 옳지 못하니 스스로 깨우쳐 나아갈 수 있는 기회까지 박탈하는 것이어서는 아니 된다. 그래야 근원적으로 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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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빠야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