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遯 亨 小利貞
【初六】遯尾 厲 勿用有攸往
【六二】執之用黃牛之革 莫之勝說
【九三】係遯 有疾 厲 畜臣妾 吉
【九四】好遯 君子吉 小人否
【九五】嘉遯 貞吉
【上九】肥遯 无不利

  나아가야 할 때 나아가고, 물러나야 할 때 물러나야 하는 것이 바른 도(道)이다. 둔(遯)괘는 숨는다는 뜻이나 비겁하게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용기있게 물러나는 것이다. 둔(遯)은 집에서 기르던 돼지(豚)가 우리밖으로 뛰쳐나가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공자께서 “함부로 위험한 나라에 들어가지 말고 어지러운 나라에 거처하지 않아야 한다. 천하에 도가 살아있으면 나와 일해야 하고 천하가 어지러우면 숨어야 한다”[논어 제8편 태백 제13장]고 하셨으니, 외형은 물러남이지만 결과는 바른 곳으로 나아가는 것과 다름없다. 그것이 둔(遯)괘이다.

 

遯 亨 小利貞
물러나야(遯) 할 때는 성장기(亨)여야 하고 결실기와 마감기(利貞)에는 득이 적다(小)
  물러나는 것도 때를 놓치면 어렵게 된다. 일을 시작하여 성장하는 단계에서 물러나는 것이어야지 이미 결실기와 마감기로 접어드는 때 물러나는 것은 발을 너무 깊게 담근 상태에서 물러나는 것이다. 초창기에 과단하게 발을 빼야 한다. 시기가 늦으면 다른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배신이 될 수도 있는 까닭이다.

 

遯尾 厲 勿用有攸往
미련을 남겨두면(遯尾) 위태로우니(厲) 시간이 지나가도록 기다리지 말라(勿用有攸往)
  많은 경우 시간이 저절로 해결해 주기도 한다. 그러나 미련이 남아 물러나야 할 때 물러나지 못하고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고 기다리는 것은 좋지 못하다. 물러나야 할 때라면 미련을 두어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과단하게 물러나야 한다.

 

執之用黃牛之革 莫之勝說
황소의 가죽처럼 굳세고 질기게 물러나야 하니(執之用黃牛之革) 어떠한 일이 있어도 그 물러나겠다는 말을 막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莫之勝說)
  미련을 남기지 말고 황소의 가죽처럼 단호하게 물러나야 한다. 주위의 말에 귀를 기울여 혼란에 빠지지 말아야 할 것이니 『맹자』의 ‘부유하고 귀한 것이 흔들 수 없고 가난하고 비천한 것이 바꾸게 할 수 없고 위협과 무력이 굽히게 할 수 없다’는 말처럼 흔들리지 않는 굳센 마음으로, 물러나야 할 때라면 과단성 있게 물러나야 한다.

 

係遯 有疾 厲 畜臣妾 吉
물러남이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복잡하게 얽혀 있다면(係遯) 병통이 있고(有疾) 위태로울 수도 있다(厲) 대비하여 신첩을 길러야(畜臣妾) 길(吉)할 것이다
.
  물러나는 것이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어서 복잡하게 얽혀 있으면 물러나기가 어렵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은 다섯번째 괘 수(需)괘에서 말한 발을 빼기 쉬운 모래밭에 있는 것(需于沙)이 아닌 발을 빼기 힘든 진흙밭에 있는 것(需于泥)이다. 진흙밭에 거주해야 한다면, 만약을 대비하여 빠져 나올 수 있도록 준비를 해 두어야 한다. 신첩의 신(臣)은 남자종 첩(妾)은 여자종을 의미한다.

 

好遯 君子吉 小人否
즐겁게 물러나는(好遯) 군자는 길하나(君子吉) 소인은 즐거울 수 없을 것이다(小人否)
  즐거운 마음으로 물러날 수 있는 이유는 밀려나는 것이 아니요, 미련이 남은 것도 아니요, 물러나야 하기 때문에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니 곧, 바른 길(道)을 따르는 것이기에 즐겁고 그 결과도 길(吉)할 것이다. 중용에 “군자가 중용을 행하는 것은 군자로서 때와 상황을 헤아려 적절하게 행동하는 것이다”[중용 제2장]라고 하였다. 그러나 소인이라면 오직 ‘물러난다’는 사실만 아프게 직시하여 즐거울 수 없을 지 모른다.

 

嘉遯 貞吉
칭찬속에 물러나니(嘉遯) 끝까지 길하다(貞吉)
  물러나는데 많은 사람들이 칭송하고 아름답게 여기니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물러나는 마음을 알아주기 때문이다. 공자께서 “맹지반은 자랑하지 않는구나. 달아날 때 홀로 뒤쳐져 있다가 성문을 들어올 때 말을 채찍으로 때리며 뒤를 지킨 것이 아니라 말이 빨리 달리지 않았다고 하는구나”[논어 제6편 옹야 제15장]라고 칭찬하셨다.

 

肥遯 无不利
물러나더라도 풍족하다면(肥遯) 이롭지 않음이 없다(无不利)
  풍족은 단지 물질적 풍족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니 산 속으로 들어가 은둔하던 은자(隱者)들처럼 탐심을 없애니 오히려 더 커진 마음의 풍족함이다. 퇴계 이황 선생께서 지으신 ‘도산잡영(陶山雜詠)’이라는 시집에 나오는 ‘돌우물이 맛있고 시원하니 진실로 풍족하게 물러날 수 있는 장소를 베풀어 주셨도다(石井甘冽 允宣肥遯之所)’라는 표현에서 이 비둔(肥遯)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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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빠야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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恒 亨 无咎 利貞 利有攸往

【初六】浚恒 貞 凶 无攸利

【九二】悔亡

【九三】不恒其德 或承之羞 貞 吝

【九四】田无禽

【六五】恒其德 貞 婦人吉 夫子凶

【上六】振恒 凶

  항(恒)괘는 변하지 않으려는 것이니 곧 신념을 뜻한다. 지나치게 강한 신념은 외롭고 고독하게 만들지만, 신념이 없으면 자기 생과 삶을 개척해 나가지 못하고 이목에 이끌려 피동적으로 따라다니는 삶을 살게 만든다. 신념은 맹목과 맹신이 아니다. 귀를 닫고 눈을 감는 것이 아니라 귀를 더 열고 눈을 더 크게 떠야 하는 것이다. 공자께서는 '무의무필무고무아(毋意毋必毋固毋我)'하셨다고 하니, "맘대로 짐작하는 것, 반드시 하려는 것, 절대로 하지 않으려는 것, 자신만 옳다고 하는 것" 이 네 가지 병통을 결코 가까이 하지 않으셨다고 한다.[논어 제9편 자한 제4장]

 

恒 亨 无咎 利貞 利有攸往

신념(恒)을 세우는 것은 성장기여야(亨) 허물이 없고(无咎) 성숙기와 마감기로(利貞) 시간이 지나가면 결실을 맺게 된다(利有攸往)

  말을 잘 듣고 순종하는 모범의 틀에 갇혀있으면 1등을 할 수는 있겠지만 수동적인 틀에 박힌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공자께서는 "함께 배운다고 반드시 같은 길을 가지는 않으며, 같은 길을 간다고 반드시 같은 성취가 있는 것이 아니며, 같은 성취가 있다고 반드시 같은 융통성을 보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논어 제9편 자한 제30장]고 하셨다. 사람은 기계부품처럼 같을 수 없으니 젊을 때 자아를 확립하고 신념을 갖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 젊을 때의 확립된 자아와 신념은 식견이 부족하여 냉정하고 정확할 수는 없을 것이나 허물은 아니다. 성숙기 마감기를 향해 시간이 지나가면, 식견이 높아지고 그 신념이 바르게 확립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浚恒 貞 凶 无攸利

지나치게 고집하면(浚恒) 끝(貞)이 흉(凶)하니 유리할 것이 없다(无攸利)

  준항(浚恒)은 조금의 융통성도 용납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고수하는 고집스러움을 뜻한다. 논어에 “큰 절개는 엄격해야 하지만, 작은 절개는 때론 들고 날 수가 있다”[논어 제19편 자장 제11장]고 하였다. 제자 안회가 죽자 공자께서도 지나치게 슬퍼하면서 “내가 지나치게 상심하였느냐? 그러나 이런 사람을 위해서 지나치게 상심하지 않는다면 누구를 위해서 지나치게 하겠느냐?”[논어 제11장 선진 제9장]고 하셨다. 조선조의 유학은 작은 절개가 들쑥날쑥하면 마음이 방종해져 큰 절개를 해친다고 주장하며 엄격한 원칙론을 고수하였으니, 주역에서 말하는 준항(浚恒)이 아니었는가 싶다.

 

悔亡

그러나 후회는 없을 것이다(悔亡).

  지나친 원리원칙주의자는 외적으로는 흉하나 내적으로 후회는 없을 것이다. 자신은 맞다고 여기기 때문이며 옳다고 믿기 때문에 고수하는 것이기 때문인 까닭이다.

 

不恒其德 或承之羞 貞 吝

신념 없이 순종하는(不恒其德) 것이 오히려 수치를 당하게 하고(或承之羞) 끝내(貞) 어려움을 당하게 한다(吝)

  신념이 있는 것은 그것의 옳고 그름의 판단을 떠나 자아가 확립되고, 가치관이 정립이 되어 있음을 뜻한다. 그러한 신념 없이 순종하는 사람은 수치를 당하고 끝내 어려움을 당하니, 생각이 없어 갈대처럼 휘둘리는 사람보다는 지나쳐 융통성이 없을지라도 신념이 있는 편이 나을 것이다.

 

田无禽

사냥을 해도(田) 잡은 짐승이 없을 수는 있다(无禽)

  신념으로 인해 먹는 문제 즉, 경제생활에 문제가 생길 수는 있다. 순종하는 사람과 지나치게 고집하는 사람 모두 중용을 벗어난 것이다. 신념 없이 순종하면 수치스럽게 되니 곧 정신적인 아픔을 당하고, 지나치게 신념을 고집하면 고고함은 지킬 수 있으나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런 심리적 연관관계가 있기 때문에 공자께서는 “신장은 욕심이 많은데 어떻게 굳셀 수 있겠는가?”[논어 제5편 공야장 제11장]라고 하셨다.

 

恒其德 貞 婦人吉 夫子凶

그 덕이 한결같아(恒其德) 끝까지(貞) 변치 않으면 부인은 길하겠지만(婦人吉) 남편은 흉하다(夫子凶).

  그래서 부인의 뜻을 꺾기가 더 어려울 지도 모른다. 남편은 집안과 가정을 위해서 그 뜻을 쉽게 꺾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양의 의무감은 남자의 본능이기도 하다. 그래서 주역의 손(損)괘에서는 가정이 없는 충복(得臣无家)을 얻는다는 효사가 등장한다. 가정이 있으면 완전한 충복이 되기가 어렵다. 가정의 생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부인의 덕은 가정을 단속하는 것이기에 변치 않아야 길하고, 남편의 덕은 소축기(가정), 대축기(사회)를 거쳐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는 변신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한결같으면 흉하다라는 해석도 좋은 것 같다.  

 

振恒 凶

신념을 흔드는 것(振恒)은 흉(凶)하다.

  신념은 내면적인 자존이다. 외부에서 영향을 주어 신념을 가지도록 하거나 신념을 굽히도록 강제하는 것은 흉할 뿐이다. 내면에서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공자께서도 “삼군대장의 권력을 빼앗을 수는 있겠지만 일개 보통사람이라도 그 의지를 빼앗을 수는 없다”[논어 제9편 자한 제26장]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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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빠야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