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咸 亨利貞 取女 吉
【初六】咸其拇
【六二】咸其腓 凶 居 吉
【九三】咸其股 執其隨 往 吝
【九四】貞吉悔亡 憧憧往來 朋從爾思
【九五】咸其脢 无悔
【上六】咸其輔頰舌

  “군자의 도는 부부로부터 시작되어 그 지극함에 이르면 하늘과 땅에 밝게 드러난다”[중용 제12장]고 하였으니, 부부만큼 중요한 관계도 없을 것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신 인(仁)은 사람(人)이 둘(二)이라는 것이며, 공자께서 말씀하신 서(恕)는 마음(心)을 같게(如) 한다는 뜻이다. 나와 너가 마음으로 하나가 되는 것이기에 곧 도(道)는 부부관계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고 하였을 것이다.

 

咸 亨利貞 取女 吉
관계(咸)는 성장기부터 시작해 생의 끝까지 이어지니(亨利貞) 관계를 갖는것이(取女)이 길(吉)하다.
  불교는 성관계를 혐오한다고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불교의 교리가 부부관계를 금하는 것은 아니다. 수도승의 경우에 욕(慾)이 생겨 수행을 방해하므로 금하기도 하는데, 처자를 거느리고 수행하는 대처승도 있으며, 원효대사께서도 환속하셨다. 지나침은 모자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용을 벗어난 치우침이다. 성도 과하거나 모자라는 것이 문제이지 부부관계를 하지 않아야 바른 것이 아니다. 한편, 괘사가 생의 끝까지 성관계를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젊었을 때는 성관계가 대표적인 한 방법이겠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손을 한번 잡아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교감을 끊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咸其拇
엄지발가락을 애무함으로써 시작해야 한다(咸其拇).

  부부관계도 원형리정의 순탄한 변화의 과정을 겪어서 시작과 끝이 있어야 길하다. 단번에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니 마음이 교감하기 위한 준비와 과정이 필요하다. 중용에 "먼 곳을 가기 위해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 출발해야 하며, 높은 곳을 오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낮은 곳에서 시작해야 한다"[중용 제15장]고 하였으니, 엄지발가락부터 시작해야 한다.

 

咸其腓 凶 居 吉
그 종아리를 애무하고 있으니(咸其腓) 흉(凶)하다. 멈추는 것이(居) 길(吉)하다
.
  사람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종아리는 성감대가 아닌 까닭일 것이다. 보통은 자극에 예민하고 신경이 많이 모여있는 신체적 부분을 통해 교감을 시도하고 진도를 나아가야 한다. 멈춤의 도(道)를 뜻하는 간(艮)괘에서는 종아리에서 멈추는 것은 마음을 불괘하게 만든다고 하였으나(艮其腓 不拯其隨 其心不快) 그것은 전체적인 부부관계를 멈추는 것을 말하고, 여기서의 거(居)는 단순히 종아리의 애무를 멈추는 것을 말한다. 발가락을 애무함으로써 생긴 흥분 또한 사라질 것이니 쓸데없는 종아리의 애무는 멈추는 것이 길하다.

 

咸其股 執其隨 往 吝
그 허벅지를 애무하고 있으나(咸其股) 반응하는 대로 급하게 따라잡으려 하면(執其隨) 나아가더라도(往) 어렵다(吝).
  허벅지를 애무하는 것은 흥분이 절정에 이른 시점이다. 그러나 마음의 속도와 몸의 속도가 같지는 않다. 고통없이 관계를 가질 수 있으려면, 윤활액이 충분하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급하게 나아가는 것은 어렵다.

 

貞吉悔亡 憧憧往來 朋從爾思
마침내 길해지며 후회가 없게 되니(貞吉悔亡) 끊임없이 왕래해도(憧憧往來) 몸이 생각을 따를 것이다(朋從爾思).

  마침내 길해지는 것은 몸도 준비가 된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왕래하는 것은 반복운동을 말하며, 붕종이사(朋從爾思)는 직역하면 벗이 너의 생각을 따른다는 것이니, 몸이 생각을 따른다거나 상대와 잘 호흡을 맞춘다거나, 어떻게 해석해도 크게 무리는 없는 것 같다.

 

咸其脢 无悔
관계가 끝난 후 등살을 애무해야(咸其脢) 후회가 없다(无悔)
  관계가 끝났다고 바로 일어서는 것은 배려심이 없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는 신체와 마음이 동일하지 않은 이성(異性)이다. 남성은 오르가슴이 있은 후 일정 기간 흥분을 느끼게 되지 않는 것과는 달리, 여성은 반복적으로도 다시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남자처럼 즉시 긴장이 풀어지는 것은 아니므로 배려가 필요하다. 욕정의 해소로 끝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咸其輔頰舌
뺨과 혀를 애무함으로써(咸其輔頰舌) 마쳐야 한다.
  마지막으로 뺨과 혀를 애무함으로써 부부관계의 순탄한 원형리정(元亨利貞)의 단계를 마쳐야 한다. 주나라 시대의 주역이 이렇게 부부관계의 도(道)와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기술하고 있다는 것은 놀랍기도 하다. 성(性)은 단순한 욕정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교감하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에, 얼굴을 부비며 가벼운 입맞춤으로 도탑게 마무리를 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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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빠야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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離 利貞 亨 畜牝牛 吉
【初九】履錯然 敬之 无咎
【六二】黃離 元吉
【九三】日昃之離 不鼓缶而歌 則大耋之嗟 凶
【九四】突如其來如 焚如 死如 棄如
【六五】出涕沱若 戚嗟若 吉
【上九】王用出征 有嘉 折首 獲匪其醜 无咎

  리(離)괘는 아래 위로 해가 두 개인 괘이다. 이미 해가 있으면 다시 해를 만들지 않는 것이 하늘의 뜻이다. 리(離)괘는 해가 있음에도 하나의 해를 더 만드는 것이니, 곧 바람직하지 않은 힘의 행사이다. 새로운 해는 기존의 해가 중천에 있을 때 세상에 나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해가 저물어 없어지고 난 후에 나서야 하는 것이 순리이다. 그 시기를 지키지 못한 것이니 옳지 못한 침략을 상징한다.

 

離 利貞亨 畜牝牛 吉
침략(離)은 결실을 얻고 끝을 낸 후에(利貞) 성장시키겠다는 것이나(亨) 순한 암소를 기르듯(畜牝牛) 순응해야 길(吉)하다.
  주역이 말하는 순탄한 변화의 법칙은 씨(元)가 자라서(亨) 열매를 맺고(利) 소멸하는(貞) 원형리정(元亨利貞)의 순서를 따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침략은 엎어버린 후에(利貞) 성장(亨)을 도모하는 것을 말함이니 천도(天道)를 벗어난 것이며 섭리에 따르지 않는 조급함이다. 곧 해가 있는데 해가 나서려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어긋남을 도모하지 말고 순한 암소를 기르듯 해야만 길할 것이다. 암소는 곤(坤)괘의 암말과 마찬가지로 유순함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유순하지 못하면 전쟁이 있고 파괴가 있고 이별이 있게 된다.


履錯然 敬之 无咎
어지러운 발소리가 들리면(履錯然) 그것을 공경해야(敬之) 허물이 없다(无咎)

  이착연(履錯然)은 발소리가 어지럽다는 말이다. 어지러운 발소리는 군사들이 훈련을 하는 소리이다. 급박하게 뒤섞인 발소리를 들으면, 보지 않아도 군사의 훈련임을 안다. 비가 오기 전에는 청개구리가 울고, 제비가 낮게 나는 등등의 비의 징조가 있고, 태풍이 불기 전에는 별이 지나치게 맑거나 해륙풍이 무너지는 징조가 나타난다. 중용에도 “나라와 집안이 흥하려 하면 반드시 상서로운 조짐이 있고, 나라와 집안이 망하려 하면 반드시 요사스러운 조짐이 있다”[중용 24장]고 하였다. 어지러운 군사의 발소리는 침략의 징조이다.

 

黃離 元吉
중용의 덕으로 침략을 대하면(黃離) 근원적으로 길하다(元吉)
  문종이 김종서에게 ‘중정(中正)’에 관해서 물으니, "중(中)이라는 것은 치우치지도 않고 기울지도 않으며 지나침도 없고 미치지 못함도 없는 것을 뜻합니다. 정(正)이란 것은 지극히 공평하여 조금도 사심이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정(正) 또한 중(中)입니다" 즉, 바른 것과 바르지 않은 것의 중간이 아니라, 바른 것이 중(中)이라는 말이다. 중은 또한 하늘의 도를 따르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중(中)으로 침략을 대하는 것은 어떠한 것일까? 해가 중천에 있는데 다른 해를 만들려는 것이라면 응징해야 하고, 이미 기운 해라면 물러나는 것이 곧 중(中)을 따르는 것일 게다. 신라의 마지막 경순왕이 나라가 희망이 없음을 알고 스스로 고려에게 나라를 바쳤으니, 그 또한 중용으로 침략을 대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日昃之離 不鼓缶而歌 則大耋之嗟 凶
해가 기울면 침략을 대비해야 하는데(日昃之離) 북을 쳐서 경계하지 않고 노래를 부르니(不鼓缶而歌) 경험 많고 혜안이 있는 노인네가 탄식하게 되어(則大耋之嗟) 흉(凶)하다.
  해가 차서 기울고, 기존의 해가 지고 새로운 해가 등장하게 되는 변화가 이어지게 하는 것이 하늘의 섭리이다. 해와 완전히 사라지고 새로운 해가 떠 오르는 순조로운 순환이 이뤄지면 좋겠지만,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서부터 조급하게 그 틈을 노리는 침략의 위험이 시작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침략을 대비하지 않고 노래를 부르고 즐거워만 하고 있으니 경험 많은 노인네가 어찌 탄식이 없겠는가? 공자께서 “사람이 멀리 내다보고 고민하지 않으면 반드시 근심이 가까운 날 생긴다”[논어 제15편 위령공 제12장]고 하셨다.

 

突如其來如 焚如 死如 棄如
침략은 갑작스레 이뤄져(突如其來如) 불태워버리고(焚如) 죽여버리고(死如) 내다버리고(棄如) 한다.

  평화롭던 마을이 쑥대밭이 되는 것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서서히 받아들일 수 있는 속도와 힘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공든 탑은 오랜 시간이지만 그 무너지는 것은 일순간이다. 급작스럽게 불타고 죽고 버려지게 된다.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出涕沱若 戚嗟若 吉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고(出涕沱若) 탄식이 쏟아져 나오니(戚嗟若) 길(吉)하다
.
  눈물이 비오듯 하고  탄식소리가 끊임없는 까닭은 살아남은 사람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니 길하다. 불타고 죽고 버려져도 끝장이 난 것이 아니니, 침략자가 순리를 따르지 않은 까닭이다. 해가 지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해를 만들려고 한 침략세력의 과욕 때문이니 천명(天命)이 침략자들에게 있지 않은 까닭이다.

 

王用出征 有嘉 折首 獲匪其醜 无咎
왕이 출정하여(王用出征) 기쁨을 줄 것이다(有嘉). 우두머리는 참수(折首)해도 그 부하들은 죽이지 않아야(獲匪其醜) 허물이 없다(无咎).
  왕이 출정을 하는 것은 바른 천명(天命)을 따르는 것이다. 왕이 사람들을 모아 반격을 하여 승전할 것이나 다만 우두머리는 참수해도 그 부하들은 죽이지 않아야 한다. 주역의 이 가르침에 의하면 일본의 위정자들은 미워해도 일본 국민을 미워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 된다. 백성들은 모두 같은 힘없고 가엾은 생명일 뿐이다. 참수하고 미워해야 할 이는 그들을 이용한 우두머리 계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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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빠야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