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剝 不利有攸往
【初六】剝床以足 蔑 貞 凶
【六二】剝床以辨 蔑 貞 凶
【六三】剝之 无咎
【六四】剝床以膚 凶
【六五】貫魚 以宮人寵 无不利
【上九】碩果不食 君子得輿 小人剝廬

  박(剝)은 떨어져 나가고 무너지고 파괴되고 박살 나는 것을 뜻한다. 괘를 보면 하나의 양(陽)이 다섯의 음(陰)에 밀려 위에 서 있는 형상이다. 떼를 지어 덮치는 데 당해낼 힘이 없어 쓰러지는 것이 박(剝)괘이다. 대표적으로 중세의 참혹한 ‘마녀사냥’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군중심리를 자극하여 약한 여성을 마녀로 몰아 화형을 시키는 것이 일도 아닌 시대가 있었다. 요즘에 인터넷의 폐단의 하나인 악의적인 글로써 공격하여 여론을 악의적으로 몰아가 떼를 지어 공격을 감행하는 것을 떠올리게 하는 괘이다. 올바름에 의해서가 아니라 약자이기 때문에 힘이 없어 당하게 되는 것이 박(剝)이다. 또한 박(剝)의 파괴는 시간이 지나면 곧 새살이 돋아 지난 일이 되어버리는 수준의 시련정도가 아니다. 팔다리가 잘려나가는 정도의 회복할 수 없는 무너짐이다.

 

剝 不利有攸往
박살이나면(剝) 시간이 지나도(有攸往) 이로울 게 없다(不利)
  ‘시간은 지나가기 마련이다’는 시간의 섭리로 회복할 수 없는 것이 박(剝)괘가 담고 있는 강력한 파괴성이다. 지독한 가난은 상황이 변하면 추억이 될 뿐이다. 그러나 팔다리가 잘려나가면 시간이 지난다고 새로 팔다리가 생겨 회복되지는 않는다.

 

剝床以足 蔑 貞 凶
침상다리만 부서져도(剝床以足) 전체가 궤멸된 것이니(蔑) 끝까지(貞) 흉(凶)하다.
  이렇게 어려운 박(剝)의 시절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가? 침상다리를 내어주고 침상의 상판을 보전하려고 하는 것이 길(吉)할까? 박(剝)괘는 시간이 해결해 주지 못하는 파괴를 뜻하고 힘이 약하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예를 들면, 강력한 급류에 가족이 휩쓸렸고 한 명만 구할 미약한 힘만 가지고 있는 남편이 부인만 구하고 아이들을 포기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리만 부서진 침상이 제 역할을 못하듯, 아이가 그런 사고를 당한 가정이 본래대로 회복될 수는 없을 것이다. 일체이기 때문이다.

 

剝床以辨 蔑 貞 凶
침상의 상판만 부서져도(剝床以辨) 전체가 궤멸된 것이니(蔑) 끝까지(貞) 흉(凶)하다.
  침상의 다리만 부서지는 것과 반대의 상황이다. 아이를 살리고 아내를 포기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으니 그 역시도 흉하다. 삶이 힘들어 자살을 하는 어머니가 어린 아이와 함께 생을 마감하는 뉴스를 어렵게 않게 만날 수 있다. 저 혼자 죽을 것이지 왜 죄없는 아이들까지 함께 데려가느냐고 욕을 하기도 하지만, 전혀 이해 할 수 없는 행동은 아닌 것 같다.

 

剝之 无咎
차라리 모두 부서져야(剝之) 허물이 없다(无咎).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 것,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 하는 것, 그것이 강력한 파괴의 기운인 박(剝)의 시기에 처신하는 조화로운 방법이라고 한다. 처자식이 급류에 휩쓸렸는데 단지 한 명만 구할 힘이 있다면 부인을 구할 것인가? 아이를 구할 것인가? 주역은 부인과 아이를 함께 구하기 위해 애쓰다가 힘이 부족하여 어쩔 수 없다면 함께 죽는 것이 남편의 바른 처신이라고 보는 듯 하다.

 

剝床以膚 凶
침상의 껍데기가 부서졌으니(剝床以膚) 흉(凶)하다
.
  완전히 부서진(剝) 것이 아니라, 침상의 껍데기(膚)를 제외하고는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급류에 휩쓸린 가족의 예를 계속해서 든다면 모두 온전하게 살아 남기는 했으나, 팔을 잃거나 다리를 잃거나 시간이 해결해 주지 못하는 해를 당한 상태로 살아남은 것을 뜻한다.

 

貫魚 以宮人寵 无不利
물고기를 쭉 꿰어놓은 것처럼(貫魚) 궁녀들을 사랑하면(以宮人寵) 이롭지 않음이 없다(无不利)

  박(剝)이라는 시간이 해결해 주지 못하는 파괴를 당하는 이유는 힘이 약하여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하나의 양(陽)이 다섯의 음(陰)을 당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군주는 혼자서도 능히 수십 수백의 궁녀들과 함께 지낼 수 있다. 한 번에 그 많은 궁녀들과 잠자리를 같이 하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를 쭉 꿰어놓은 것처럼 한 번에 한 명씩 상대하기 때문이다. 힘을 분산시킬 수 있으면 나누어 상대하면 이롭지 않음이 없다.

 

碩果不食 君子得輿 小人剝廬
종자를 먹지 않고 남겨둔(碩果不食) 군자는 수레를 얻겠지만(君子得輿) 소인은 오두막마저 깨뜨리게 된다(小人剝廬)
  석과불식(碩果不食)은 이미 고사성어가 된 말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종자는 먹지 않고 남겨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박(剝)의 어려움은 단순한 시련 수준은 아니다. 배고픔은 상황이 바뀌면 지난 일이 되어 버리지만 박(剝)은 끝까지 안고가야 할 상처를 입은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큰 해를 입는 박(剝)의 파괴를 만났어도 종자(씨과실)를 먹어버리면 안 된다고 한다. 박(剝)의 시간도 영원히 계속될 수 없으니 결국은 변하기 마련인 까닭이다. 종자를 남겨두어야 훗날 수레를 가득 채울 수 있는 수확을 기약할 수 있다. 소인은 상황을 절망하여 남겨진 오두막마저 다 부수어 버리고 말 것이니 어찌 안타깝지 않겠는가? ‘모든 것은 극에 이르면 반드시 뒤집힌다’는 물극필반(物極必反)의 가르침을 전하는 효사는 주역에 참으로 많이 등장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고,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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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빠야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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賁 亨 小利 有攸往
【初九】賁其趾 舍車而徒
【六二】賁其須
【九三】賁如 濡如 永貞吉
【六四】賁如 皤如 白馬翰如 匪寇 婚媾
【六五】賁于丘園 束帛 戔戔 吝 終吉
【上九】白賁 无咎

  외모를 꾸미고 치장하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획일적인 교복에서 벗어나 좀 더 개성적으로 꾸며 입고자 하는 아이들의 심리를 억지로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무분별한 자유를 허용하는 방종과 개인의 개성을 존중해 주는 것은 다른 일인 것 같다. 일반적인 오해와는 달리 공자께서는 외양을 꾸미는 것을 배척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비유를 하면서 "덕을 좋아하기를 아름다운 용모를 좋아하듯 하라"[대학 제6장 성의]고 하셨다. 꾸미고 치장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이 지나쳐 여우를 멸종 시키는 인간의 탐욕이 무서운 것이다.

 

賁 亨 小利 有攸往
치장하고 꾸미는 것(賁)은 성장기(亨)의 일이니 성숙기에는 효과가 적다(小利) 시간은 흐른다(有攸往)
  외모를 치장하고 꾸미고 가꾸는 것은 성장기(亨) 때의 일이라고 한다. 열매를 맺어야 하는 시기(利)에 접어들면 즉, 노화가 시작된 후라면 아무리 꾸며도 효과가 적으니(小) 젊음의 아름다움을 치장으로 이겨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시간은 지나가게 마련이고 사람은 늙기 마련이다.

 

賁其趾 舍車而徒
그 발을 꾸미게 되면(賁其趾) 수레를 버리고(舍車而) 걸으려 한다(徒).

  예쁜 신발을 신고 발을 꾸미게 되면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수레를 버리고 걸으려고 하니 그만큼의 고생이 따르는 법이다. 얻으려 하면 잃는 것이 있게 되는 이치이다. 그렇다는 것이지, 주역은 그것이 허물이라는 등의 평가를 하지는 않고 있다.

 

賁其須
남자도 그 수염을 꾸미려 한다(賁其須)
  발을 꾸미고 싶어하는 것은 여자의 치장을 빗대어 말한 것이지만, 남자도 역시 마찬가지로 꾸미고 치장하고 싶어 하는 젊음의 기운을 갖고 있는 것이요, 치장은 성별을 떠난 젊음의 본능이니 그 수염을 꾸미려고 할 것이라 한다.

 

賁如 濡如 永貞吉
꾸밀 수 있는 것은(賁如) 은혜를 입은 것(濡如)이니 끝까지 계속할 수 있어야 길하다(永貞吉).
  꾸미고 싶어도 꾸밀 수 없는 사람도 있다. 농담 삼아 '호박을 꾸민다고 수박이 되냐?'고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외모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농담이기도 할 것이다. 끝까지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신체를 끝까지 잘 간수하라는 말이다. 『효경』에서 신체는 부모님께 물려받은 것이니 손상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고 하였다. 주역이 쓰여진 주나라 시대의 봉건 사회에서는 성형을 예상하지는 못했을 것이기에, 성형을 경계한 것이 아니라, 다치고 병드는 것으로 신체를 훼손시키는 것을 뜻한 말일 것이다.

 

賁如 皤如 白馬翰如 匪寇 婚媾
멋지게 꾸민(賁如) 백발의 신사(皤如)가 백마를 타고 갈기를 날리니(白馬翰如) 도적이 아니라(匪寇) 혼인을 청하려고 하는 것(婚媾)이다.
  호감을 사려고 노력하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나는 가진 것을 뺏어가려는 도적일 것이요, 다른 하나는 마음으로 함께 어울리고 싶은 사람일 것이다.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알 것인가? 백발의 신사는 젊음은 잃었으나 오히려 내면의 중후한 멋을 가진 사람을 비유하니, 내면에서 우러나는 중우한 멋이 있는 사람이다. 내면적인 멋을 지닌 사람이라면 도적이 아니라 함께 하려고 찾아오는 사람일 것이라는 말이다. 내면의 덕은 나이를 들면 외모를 통해 드러나는 법이다. 그래서 마흔 이후의 얼굴은 자기 책임이라고 한다.

 

賁于丘園 束帛 戔戔 吝 終吉
정원을 잘 가꾸었으나(賁于丘園) 예물이 적으면(束帛) 불평이 있어(戔戔) 어려움이 있겠지만(吝) 마침내 길하다(終吉). 
  혼인은 둘만의 결합이 아니라 집안과 집안과의 결합이라고 한다. 정원을 잘 가꾼다는 것은 ‘둘이서 화목하게 가정을 잘 꾸리는 것’을 말한다. 예물이 많더라도 두 사람의 금술이 좋지 못한 것보다 예물이 적더라도 두 사람이 잘 사는 것이 부모들의 근원적인 바램일 것이다.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고 하듯 작은 것을 탐하면 오히려 큰 것을 잃어버린다.

 

白賁 无咎
순박하게 꾸미는 것(白賁)이야말로 허물이 없다(无咎).

  화려함으로 꾸미는 것이 아닌 담박하게 꾸미는 것을 뜻한다. 『중용』에서 시경을 인용하며 ‘비단옷을 입고 흩옷을 덧입는다’[중용 제33장]고 하였다. 겉은 소박한 옷으로 걸쳤지만 속의 비단무늬가 은은히 우러나오는 것처럼 입어야 담박하기 때문에 싫증을 내지 않고 은은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법이니, 비단옷만 걸치고 거리를 활보하면 곧 싫증이 나게 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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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빠야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