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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1.04 제1편 학이(學而) 제15장
  2. 2013.01.04 제1편 학이(學而) 제14장
자공이 여쭈었다 [子貢曰:]
-  가난하다고 아첨하지 않고 [貧而無諂]
-  부유하다고 교만하지 않으면 어떤가요? [富而無驕 何如?]
공자께서 대답하시길 [子曰:]
-  좋구나 [可也] 그렇지만 가난함을 즐기고 [未若貧而樂]
-  부유해도 예를 좋아하는 것보다는 못한 것 같구나 [富而好禮者也]
자공이 말하길 [子貢曰:]
-  시경의 절차탁마(切磋琢磨)가 이같은 뜻입니까? [詩云, 如切如磋如琢如磨 其斯之謂與?]
공자 말씀하시길 [子曰:]
-  자공아! 이제 너와 시를 논할 수 있겠구나! [賜也 始可與言詩已矣!]
-  지난 것을 돌이켜 미래로 나아갈 줄을 아는구나 [告諸往而知來者] 

 

   뜻을 음미해 보면 대단히 재미있는 대화이며 자공의 영민함을 느낄 수도 있다. 자공은 하지 않는 것을 말하고 있다. 즉 ‘억제하는 단속으로 도달하였다’고 여기고 여쭤보았는데, 공자께서는 ‘즐길 수 있는 경지’로 나아가야 한다고 가르쳐 준 것이다.

  그 말에 자공이 ‘내가 모자라구나’하고 침울하지 않고, 시경의 시를 인용하여 즐겁게 받아들이며 화답을 한다. 이것은 ‘가난한 성취(배움)를 즐기는 태도’ 이니, 곧바로 가르침에 화답하여 실행에 착수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또한, 단순히 즐기는 것이 아니라, 시(詩)를 통해서 즐기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직설적으로 표현한다면 ‘제가 경솔하게 아는 것으로 여겼군요’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절차탁마’를 인용할 수 있는 상황인지를 질문하여, 우회적인 시적인 ‘숨김의 미학’을 또한 보여주고 있다. 

  즐거움의 경지에 이르라는 가르침, 계속적인 발전을 해야 한다는 가르침도 좋지만, 스승과 제자간의 정다운 대화라서 또한 더 좋다. 공자의 감탄은 당연한 것 같은데, 공자께서도 지지않고(?) 돌려서 칭찬을 하고 있다. ‘하나(과거)를 알려주면 둘(과거+미래)를 안다’는 것인데, 자공이 기억하고 있다가 다시 써 먹는다. ^^

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지만, 저는 하나를 들으면 둘을 알 뿐입니다[논어 제5편 제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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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빠야닷컴
공자 말씀하셨네 [子曰:]
군자는 배부르게 먹기를 추구하지 않으며 [君子食無求飽]
편안하게 거주하기를 추구하지 않는다 [居無求安]
일을 부지런히 하고 말을 신중하게 하고 [敏於事而慎於言]
도를 향하여 바르게 행한다면 [就有道而正焉]
배우기를 좋아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可謂好學也已]

 

   이 장도 스스로의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유가(儒家)에서 ‘배우기를 좋아한다’는 호학(好學)은 책읽기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요,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제1장에서부터 강조하였듯이, 아기새가 어미새를 따라서 날개짓을 하는 그 행위에 의의가 있음이니, 실천하지 못하는 지식은 아무 쓸모가 없다고 한다. 

  한편, 군자라고 해서 맛있게 먹지 않아야 하는 것도 아니요, 편안히 잠자지 않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을 추구하지(욕심내지) 말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배부름과 편안한 주거를 추구한다면 ‘소인’이라는 하찮은 사람이 된다는 것일까? 그런 뜻도 아니다. 군자는 소인에 우월한 사람이 아니라 ‘사회전체를 위해 봉사’해야하는 다른 사명을 가진 사람이다. 그런데도 배불리 먹고 편안한 주거를 추구한다면 제 본분을 망각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군자(정치를 하려는 자)가 물욕에 빠지면 큰 도적이 되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무겁게 새기도록 경계시킨 것이었다. 

  공자의 가르침에 따르면, 군자는 불쌍한 사람처럼 보인다. 부지런히 일해야 하고, 말을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해야 하며, 배불리 먹고자 해서도 안되고, 편안히 거주하고자 해서도 안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것이 고달픈 삶이 아니라 가치있고 의미있는 삶이라는 것을 인식하여 행복해지는 것에 공자학의 의의가 있다. 

  공자가 쇠뇌시킨 걸까? 종교일까? 도(道)의 안경을 쓰고 보지 않는다면 당장 이해하기는 어려울 지도 모른다. 아프리카의 오지로 가서 열악한 아이들을 치료하고 있는 의사들의 삶은, 보편적 시각에서는 희생으로만 보인다. 그러나 진심으로 행하는 그 얼굴이 불행한 표정인지를 관찰해보면 뭔가 이상스럽기는 할 것이다. 짐작을 통해 ‘그 길이 행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가져봄직 하지 않을까? 
  
  도(道)는 ‘길’로 잘 비유한다. 선명한 길은 사람이 많이 다녀서 잘 드러나는 것 뿐이며, 정해진 도(道)라는 것은 없다. 자기가 ‘이 길이다’고 인식하며 걸어가는 그대로의 삶이 곧 도(道)다. 남들처럼 사는 것도, 특이하게 사는 것도 각자 나름의 길이다. 도를 바르게 한다는 것[道而正]은 가고자 하는 길을 자기 자신에게 요구하라는 뜻이다. 그 길로 가라고 남에게 요구하려는 것도, 그 길로 가지말라고 남에게 요구하려는 것도 아니어야 한다. 

  오직 인간만이 나와 똑같게 만들고 싶어하고, 나의 우상을 똑같이 숭배하도록 만들고 싶어하는 욕심이 있다.  하늘은 비슷하게 만들고서 멈춘다. 결코 똑같은 것을 만들겠다고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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