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편 학이(學而) 제9장 간상(赶上)/논어(論語)2013. 1. 4. 16:10
마음을 다해 장례를 치르고 [慎終]
정성을 다해 제사를 지내면 [追逺]
백성들의 덕성도 후덕하게 될 것이다 [民德歸厚矣]
사람들에게 후덕하게 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행위를 잘 하는 것 만으로 저절로 사람들은 후덕해 진다고 한다. 유학의 배움은 언제나 나에게 실천을 요구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래서 나를 바르게 하는 ‘수신(修身)’이 유가(儒家)의 제1조이다.
신종[慎終]이란 분에 넘치는 장례가 아니라, 마음을 극진히 하여 장례를 치르는 것을 말하며,
추원[追逺]이란 정성을 다해 제사를 드리는 것을 말한다.
이 두가지는 논어 제3편 팔일 제3장에서 말하는 근본을 잃지 않은 예를 말한다.
예는 사치스럽게 하기보다 검소하게 하는 것이며,
장례는 형식을 잘 갖추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슬퍼하는 것이다.
즉, 예(禮)는 거절할 수 없는 내면의 마음이 외부로 표출되는 것이다. 장례와 제사는 왜 효(孝)의 연장인가?
효(孝)는 "내가 받은 것이 있음을 아는 것이며, 고마움을 아는 것"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건 살아계시건 그런 객관적 사정에 영향을 받지 않고, 내 마음이 잊을 수 없고, 변할 수 없는 고마움이기 때문이다. 고마움을 아는 것에서 인간관계가 후덕하게 된다. ‘당연하다’는 인식과 ‘고맙다’는 인식의 차이가 될 것이다.
당신은 돈을 받고 일하는 것이니 ‘당연하다’고 하는 인식은 개인적이다. 개인주의 대표격인 영어권에서 조차도 "Thank you"라고 인사하지 않는가?
한편, 조금 더 깊게 들어가보면 내가 먼저 변해야 한다는 것은 유가에서 말하는 도(道)의 움직임과 관계가 있다. 짝사랑하던 여인이 나에게 사랑을 고백해 오기를 기대하는 것, 권위적인 남편이 갑자기 변하여 다정다감해지기를 기대하는 것, 그렇게 나는 결코 변하지 않으면서 타방이 변하기를 요구하지 말고, '내가 변해야 타방이 변한다'는 것이 유가의 인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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