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편 학이(學而) 제7장 간상(赶上)/논어(論語)2013. 1. 4. 16:07
미모를 좋아하는 것처럼 덕을 좋아하고 [賢賢易色]
부모를 섬김에 힘을 다 하고 [事父母能竭其力]
임금을 모심에 몸을 아끼지 않으며 [事君能致其身]
벗과 사귀며 나누는 말에 신의를 다한다면 [與朋友交言而有信]
그가 배우지 못한 자라 말해도 [雖曰未學]
나는 그가 배운사람이라고 분명히 말하리라 [吾必謂之學矣]
자하(子夏)는 공자보다 44살 적은 제자로, 문학에 뛰어났다고 알려져 있다. 옛날 중국에서 ‘글을 배웠다’는 것, ‘글을 읽을 줄 알았다는 것’은 큰 자랑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보면, 우리 조상들에게서도 부의 욕구보다 배움의 욕구가 더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배우는데 소비하는 재물을 아까워 하지 않으셨다.
그렇지만 논밭을 팔아 공부시킨 집안보다는, 배움에 열의가 없어 논밭을 팔지 않았던 집안이 더 거부가 되어 부러움을 사고 있기도 하다. 그렇게 돌고 도는 세상이라 더 재미도 있고...
이 장 또한 마지막 구절에 무게감이 있다. ‘나는 배운 것 없는 무지랭이래요’라고 하는 사람에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당신은 정말로 많이 배운 훌륭한 사람입니다’라고 하는 의미이다. 실천하고 행동할 수 없는 지식이라면 죽은 지식이며, 이미 행하고 있다면 배울 필요조차도 없는 까닭이다. 책상에 앉아서 공자왈 맹자왈 하는 샌님이 군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 색(色)을 좋아하는 만큼(易=如) 어짊을 좋아하라는 뜻도 주목해야 한다. 유학이 경계한 것은 언제나 ‘치우침’이다. 물질이 정신보다 덜 가치있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치우친 생각이다.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것이란 본래 없다. 그런 분별은 인간만이 하는 것이다.
『장자』에 나오는 말이지만, 인체를 이루는 백개의 뼈마디, 아홉개의 구멍, 여섯개의 장기 등등을 분리해내어 무엇이 더 중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없는 법이다. “물질을 비롯한 쉽게 보이는 색(色)”을 전부인양 지나치게 높이는 것이 문제이지, 그것이 덜 가치롭다는 사고는 아니다. 유학이 경계한 것은 언제나 한 쪽으로 ‘치우쳐 모난 것’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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