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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1.04 제1편 학이(學而) 제3장
  2. 2013.01.04 제1편 학이(學而) 제2장
공자 말씀하셨네 : [子曰:]
듣기 좋은 말과 [巧言]
잘 꾸며서 보이고자 하는 것으로부터 [令色]
인(仁)을 찾기는 힘들다 [鮮矣仁]


이미 고사성어로 유명한 '교언영색'은 논어 제17편 양화 제17장에서 거듭 반복하고 있는 가르침이기도 하다.
말을 잘 꾸며서 호감을 얻으려는 사람,
외모를 잘 꾸며서 호감을 얻으려는 사람은
오직 자기를 인정받고자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뜻이다.
이런 사람에게서 남을 헤아리고 배려하는 마음을 찾기는 힘들다고 한다.

 

인(仁)은 "진실된 사랑"이 하나의 특성이다.
인(仁)은 사람(人)이 만나는(二) 마음이며,
하나(一)가 하나(一)와 더불어 두(二) 사람(人)이 합쳐지는(仁) 마음이다.

 

현대 자본주의사회는
듣기 좋은 말을 잘 하는 사람,
외양을 잘 꾸미는 사람이어야 성공으로 가기 쉽다.
언뜻보면, 현대사회의 처세의 지혜와는 맞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이 장의 가르침이,
듣기 좋은 말을 잘 하고, 잘 꾸미고 다니는 사람을
멸시하라는 뜻으로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꾸미지 말아야 겠다는 다짐을 하게 하는 것도 아니다.

 

듣기 좋은 언변, 잘 꾸미는 외양에만 신경쓰지 말고,
실질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늘 경계하라는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가르침이며, 
속았다고 원망하지 말고, 꾸밈을 감안하지 못한 스스로를 탓하라는 가르침이다.  

이 장 뿐 아니라

논어의 모든 가르침은 자기와 대화를 시도하며 읽어야 한다.

남에게 가르치려는 마음, 남을 비난하려는 마음으로 읽는다면 얻는게 별로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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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d by 오빠야닷컴
유자 말씀하셨네 : [有子曰: ]
그 사람됨이 효성과 공경이 있는데 [其為人也孝弟]
윗사람을 범(犯)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더라 [而好犯上者 鮮矣]
윗사람을 범(犯)하기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不好犯上]
난리를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而好作亂者]
아직 없었다 [未之有也]
군자는 근본에 힘써야 하며 [君子務本]
근본이 바로서야 도(道)가 생겨난다 [本立而道生]
효성과 공경이라는 것 [孝弟也者]
그것이 인(仁)을 행하는 근본이다 [其為仁之本與]


효(孝)는 부모를 공경으로 대하는 것이며,
제(弟)는 집안어른을 공경으로 대하는 것이다.
부모에 무조건 '복종'하고, 집안 어른에 무조건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는 고마운 마음을 거부할 수 없어 저절로 그리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엄마 아빠가 해 준게 뭐가 있어? 순이 엄마는 X도 해 주고 Y도 해 주는데' 흔히 들을 수 있는 소리다. 고 김수환추기경께서 생전에 '내 탓이요'라는 운동을 하셨던 적이 있다. 세상이 '원망'으로 채워져 가는 것을 그저 두고 보실 수 없으셨던 까닭이었을까?

 

이미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것을 탐하는 것이 인생의 한 단면이기도 하기에, 고마움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따져보면 세상은 한없이 감사해야 할 것으로 가득가득 채워져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 자신을 살려주고 있는 자연에 감사하는 마음부터 가지는 사람! 그런 사람이 그리운 시대이다. 

만약, 어느 순간 자연이 공기를 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연을 욕해야 할까? 
'이 XX 자연아! 당연히 니가 공기를 줘야지, 왜 안주냐?' 하고 욕해야 옳은 걸까?

현대인들이 가장 잘못 사용하는 말이 '고맙습니다'를 '당연하지'로 바꾸는 것이라 생각한다.

'부모니깐 당연히 그래야지...

 

산다는 것은, 내 의지로만 장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모가 젖을 먹여 살수 있게 도와 주었고,
자연이 햇살과 공기와 물을 주고
하늘이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도와주어
나를 살려주고도 있다.
 

사람은 일체의 도움이 없어도, 저절로 살 수 있는 독립된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사람 인(人) 이라는 한자어는 하나(I)가 하나(I)를 받쳐주는 모습이다.

효(孝)와 제(弟)를 아는 마음은,
내가 나 저절로 잘나서 내가 아니라
나의 생(生)을 도와주었고 도와주고 있음을 아는 안목을 가졌다는 것이다.

'남'을 다 죽이면 나는 살 수 있을까?
'자연'을 다 없애면 나는 살 수 있을까?

  

그래서 진정으로 효(孝)와 제(弟)를 아는 사람은
아버지의 아들에서 단절될 수 없는 '나'를 아는 사람이며,
삼촌의 조카에서 떨어질 수 없는 '나'를 아는 사람이며,
'남'으로 부터 떨어질 수 없는 '나'를 아는 사람이며,
그런 일련에 구속된 '나'가 아니라,
연결되어 있는 '나'를 아는 사람이며.
연결되어 있어 고마움을 아는 사람이다.

'더불어 하나'임을 아는 사람이
나만 보고 남을 범(犯)하려 하고,
나만 보고 난리(亂)를 피우려 하겠는가?

 

유자의 가르침은 한마디로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고마움을 참으로 아는 것이 인(仁)의 근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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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빠야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