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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3월 6일은 고종께서 태극기를 국기로 선포(1883년 3월 6일-음력 1월 27일)하신 날이기에 그 상징성(사상)에 대해서 조금 설명 해 볼까 합니다. 오른쪽에 게시한 다양한 태극기의 모습을 보면, 이승만 대통령시대에 표준을 정하기 전에는 정형화된 태극기를 사용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주역 사상에서 살펴보면 현행 태극기의 태극과 괘의 배치가 맞지 않는 듯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크게 중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해 논외로 하겠습니다. 그 당시의 사상은 ‘형식’을 중시하지 않았고 ‘실질’을 중시했던 문화라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그 실질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고 싶습니다. 참고로, 공식적인 자료에 대해서는 국기홍보중앙회의 설명을 참고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태극(太極)의 의미는 대단히 철학적이고 심오합니다. 결코 만만한 개념이 아닙니다. 쉽게 설명 할 수 없는 이유는 둘로 나눌 수 있겠지요. ①모르는 것 ②설명하기 힘든 것 그렇게 분류됩니다. 태극(太極)은 두 번째에 속합니다.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이라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복국의 맛'이 어떠한지 말과 글로서 설명하기 힘든 이유로 비유하면 될까요? 맛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어떻게 설명하기가 불가능한 영역입니다.

  잡설이 길었습니다. 관념적 사고를 해야한다는 전제를 깔고서 태극(太極)의 개념에 대해 말씀드리려는 까닭이었습니다. 일단 정의부터 하겠습니다. 태극은 "생겨나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 하나만이 아니다"라는 의미로 규정할 수 있습니다. 

  이 표현은 도(道)를 설명하기 위해서 종종 인용하는 말과 같습니다. 따지고보면 도(道)라는 것이 태극의 개념과 다르지 않기도 하구요. 죄송합니다. 머리가 아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
  아담과 이브는 잘 아실테니 비유를 해 보겠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시작은 아담과 이브가 함께 생겨났어야만 가능합니다. 후세 사람들이 이름을 붙여 놓았지만 논리적으로 남자와 여자가 동 시간대에 함께 존재했어야 인류가 시작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유학에서 애초 사람(人)이 둘(二)이었다는 인(仁)의 사상도 이 개념을 품고 있습니다. 어쨌건, 생겨나 존재하게 되는 모든 것은 그 하나만 있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남자와 여자처럼 색계의 시각으로 쉽게 구분할 수 있는 것만 함께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많은 물질계의 현상이 음양으로 구분할 수 있기에 태극을 이해하는 데 도움은 됩니다. 앞서 규정한 정의 '생겨나는 것은 함께 생겨난다'는 의미는 남화경(장자)에 나오는 '방생설'과 같은 의미입니다. 같은 뜻이지만  다른 표현으로 '관계'없이 생겨나는 것은 없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말이 어렵기 때문에 예를 들기로 하겠습니다.

  깜깜한 밤에 하늘을 보면 별이 반짝입니다. '와! 별이 있네.' 그렇게 감탄하며 별에 집중하지만, 별이 더 잘 보일 뿐 별은 어두운 공간과 '함께' 있습니다. 더 잘 드러나는 것과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을 함께 볼 수 있음을 관계론적 안목이라고 합니다. 생태계! 자연(自然)은 관계와 관계의 신비로운 조화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더 깊게 나아가면 사람의 가슴속에 생겨나는 무형도 '늘 함께 하나'로 생겨난다는 방생(方生)의 이치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사랑이라는 마음 하나만 단절되어 생겨나지 않습니다. 사랑은 미움과 함께 생겨납니다. 사랑의 크기를 키워보시면 조금 이해를 높일 수 있습니다. 숨어있던 미움이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하나님을 너무 사랑하면 다른 종교인을 죽이고자 합니다. 애인을 너무 사랑하면 애인이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고 싶어집니다. 본래 사랑과 미움은 서로를 양 극단으로 하는 다양한 마음의 '한 덩어리'였고, 생겨날 때 함께 생겨났던 녀석입니다. 단지 극단으로 이르기 전에는 함께 생겼음을 느끼기 힘들죠.

  쾌락이라는 녀석도 살펴 보겠습니다. 쾌락이라는 놈, 하나 생겨난 줄 알지만 쾌락은 고통과 함께 생겨납니다. 고통이라는 놈도 마찬가지죠. 고통은 쾌락과 함께 생겨납니다. 마찬가지로 크기를 키워보면 좀 이해가 됩니다. 고통의 크기를 키워보면 숨어있던 쾌락이 나타납니다. 반대로 쾌락의 크기를 키워보면 숨어있던 고통이 나타납니다. 고통과 쾌락도 서로를 양 극단으로 하는 다양한 느낌의 '한 덩어리'였고, 함께 생겨났던 것입니다.


  더 깊게 언급하는 것은 예(禮)에 어긋나겠지요? 이 정도에서 태극의 뜻을 정의하겠습니다. 우리 태극기의 태극이 음양으로 나눠 있습니다. 그것은 극단과 극단을 기준으로 하여 '함께 생겨나는 일체'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음양을 극단으로 하는 경계선이 물결임을 유념하시면 좋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물결때문에 예를 조금 더 들겠습니다. 더 잘 드러나는 것과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을 함께 볼 수 있는 안목을 다시 한 번 더 강조하고자 하는 뜻입니다. 
여름으로 대표되는 '더위'와 겨울로 대표되는 '추위'는 달리 떨어져 있는 별개가 아니라, 함께 생겨나 함께 있습니다. 여름에는 더위만 있다고 느끼지만, 더위를 억제하고 있는 추위가 함께 있습니다. 추위가 없다면 모두 타 죽겠지요. 겨울에는 추위만 있는 줄 알지만, 추위를 억제하고 있는 더위도 함께 있습니다. 더위가 없다면 모두 얼어 죽겠지요. 더위가 기운이 더 강하여 추위를 간과하고, 추위가 더 강하여 더위의 기운을 못 느끼기에 함께 있음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할 뿐입니다. 그래서 진실로 함께 있더라도 더 잘 드러나는 것이 있음을 '물결이 치듯 오고가는 흐름'으로 우리 태극이 표현했습니다.


형이상학적인 얘기라서 더 길게 말하면 돌을 맞을지 모르겠네요. ^^; 굳이 이렇게 복잡한 배경을 깔고 얘기했던 까닭은 아래 기술하는 이 의미를 조금 더 전달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우리 조상님들은 '함께 하나다'는 이 태극(太極)의 의미를 체득하셨습니다. 그래서 행복이 닥치거나 불행이 닥쳐도 과하게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생겨난 것은 행복 하나만이 아니기에 행복에 취하지 않았고, 생겨난 것은 불행 하나만이 아니기에 불행에 노하지도 않았습니다. 태극의 물결처럼 순환하리라는 진리를 알았고, 어떤 하나가 더 잘 드러나는 때를 만났을 뿐이라 여겼습니다. 힘들 때 돕고 좋을 때 나누며 상부상조하며 지내온 전통은 '너'가 '나'와 다르지 않다는 '행복'과 '불행'이 다르지 않다는 태극(太極)사상의 발현입니다.


이상으로 태극의 개념을 간단(?)히 설명드렸습니다. 선명하게 이해되지 않으셔도 '모든 것은 관계적이며, 함께 하나이다'는 그 느낌이 '태극'이라는 정도는 기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건곤감리의 4괘는 그림으로 설명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현행 태극기 제작도와는 다르지만, 설명을 위한 그림임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은 ‘함께 하나로 일체이다’는 태극의 사상을 바탕으로

천지창조의 주요한 4가지 요소, 즉 하늘, 땅, 불, 물을 표현한 것입니다.
작대기 하나(-)가 양을 의미하고, 작대기 두개(- -)가 음을 의미합니다.

추측건대, 순양의 기운을 받아 하늘이 만들어지고 순음의 기운을 받아 땅이 만들어지는 관계도를 채택한 것 같습니다.

주역 8괘도와 비교하면 ‘음양조화’를 지향하는 의미에서는 반대로 괘가 들어가야 더 어울려 보이는데요. 제가 모르는 깊은 뜻이 있나 봅니다. 태극기의 표준을 정할 때 많이 검토하고 연구하였겠지요. 그리고 태극이 위 그림에서 45도 더 기울게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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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빠야닷컴
2010. 3. 5. 14:42

한음등천(翰音登天) 기타(其他)/명언(名言)2010. 3. 5. 14:42

  한음등천(翰音登天)은 『주역』중부(中孚)괘의 마지막 효사에 나오는 명언입니다. 한음(翰音)의 문리적 해석을 두고 논란이 있습니다. 한음(翰音)은 ‘닭’을 일컫는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예기』에도 ‘닭을 한음이라 일컫는다[鷄曰翰音]’라고 하고 있습니다. 반면, 의리역학의 시초인 왕필의 해석을 따라 후대에도 한(翰)은 높이 날아오를려는 것으로 음(音)은 파닥거리는 소리를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닭이 하늘을 날아오르려고 한다’ 혹은 ‘날아오르려는 소리가 하늘까지 들린다’는 것은 ‘지나치고 과한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꿈깨라’는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인용합니다. 닭이 날개가 있다고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을 비꼬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는 ‘그에 맞는 능력을 갖춰라’는 당부를 담고 있기도 합니다.

 

욕심때문에 힘만 쓰는 꼴이다’는 의미로 인용하기도 합니다. 날아오를려고 파닥거리는 소리가 하늘까지 들리는 것이니, 상상을 해 보면, 불쌍하기조차 합니다. 과도한 욕망은 결코 끝에 이를 수 없습니다. 욕망은 더 높은 욕망을 낳을 뿐, 해소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앞의 의미와는 정반대로, ‘불가능한 일이 이루어졌다’는 의미로 인용하기도 합니다. 닭이 하늘로 날아올랐다는 것은 ‘기적이 이루어졌음’을 비유한 것입니다. 날아오르려고 하는 소리가 하늘까지 들리면, 즉 하늘에 도달하는 열정이라면 이르게 될 수도 있다는 의미로 인용하기도 합니다.

이것으로 주역의 명언정리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주역』이 어렵다 생각되시는 분들께서는 명언들을 먼저 한번 훝어보신 후 주역을 접하신다면 조금은 수월하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주역 64괘중에서 제 개인적으로 선택하여 딱 반(32개)만 추려냈습니다. 

고전으로 돌아가 지혜를 구하는 것은 고루한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고 했는데,
온고(溫故)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미래로 나아가는 지신(知新)을 목적하지 못하기에
생겨난 편견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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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빠야닷컴
2010. 3. 5. 14:30

무초유종(无初有終) 기타(其他)/명언(名言)2010. 3. 5. 14:30

  무초유종(无初有終)은 『주역』손(巽)에 나오는 명언입니다. 직역하면 ‘시작은 없으나 끝은 있다’는 말이지만, 시작이 없는 끝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조금 풀어 번역하면 ‘시작은 모르지만 끝은 안다’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네 삶과도 비슷합니다. 부모님께서 생일을 기록해 두지 않았다면, 나라는 존재가 언제 시작되었는지 알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본래 생겨나는 것은 그 시작을 외부에서 볼 수 있을지언정 스스로는 잘 볼 수가 없습니다. 종종 ‘그 때부터 사랑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간주해 버리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어떻게 생겨났는지 모르겠지만, 끝은 있지’ 하는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 인용합니다. 지금껏 고리타분한 얘기들만 많이 했으니, 이번에는 장난같은 가벼운 얘기를 해 볼까 합니다. 어느날 보니, 여드름이 하나 생겨있습니다. 어떻게, 언제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여드름을 짜면서 얘기합니다. ‘너 이녀석 무초유종(无初有終)이라고 했어. 언제 왔는지 모르겠지만 없애주겠어’ 생겨나는 것은 인식하지 못해도, 없어지는 것은 인식하는 것을 연상시키면 될 것입니다.

 

  종종 ‘처음에는 어렵다가 나중에 좋아진다’는 의미로 인용하기도 합니다. 역사적 사건을 비유하는 해설가들이 잘 따르는 해석입니다.

 

초심을 잃으면 끝이난다’는 의미로 인용하기도 합니다. 처음 시작할 때의 그 마음을 잃어버리는 순간 끝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바른 개혁의 힘이 곧 수구화되어서 다시 개혁을 불러오는 것이 역사의 순환과정이기도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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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빠야닷컴
2010. 3. 5. 14:28

부잉불육(婦孕不育) 기타(其他)/명언(名言)2010. 3. 5. 14:28

  부잉불육(婦孕不育)은 『주역』점(漸)괘의 셋째 효사에 나옵니다. 직역하면 ‘부인이 임신을 했지만 키울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누릴 수 없는 혜택’이 생기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인용합니다. 예컨대, 좋은 땅이 생기게 되었지만, 경작할 수 없으니 세금이 더 부담스러운 상황입니다. 좋은 카메라가 생겼지만 비싼 필름값을 감당할 수 없어 쓸모가 없는 경우, 좋은 자동차가 생겼지만 유지비를 감당할 수 없어 쓸 수 없는 경우 등등, 이와 유사한 경우도 종종 생기기도 하는 것이 인생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축하한다고 할 경우에 ‘부잉불육이라 오히려 짐이야’라는 식으로 인용하는 것입니다.

 

종종 ‘능력없는 남편을 두었다’는 뜻으로 인용하기도 합니다. 아이를 키울 수 없는 것은 남편이 경제적인 부양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임신을 해도 키우지도 못할건데’하는 조소를 담고 있기도 합니다.

 

상전의 해석을 따라서 ‘부도덕한 여인’의 의미로 인용하기도 합니다. 부인이 키울 수 없는 것은 ‘남편의 아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혹은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가 생겼다’ 라고 하는 등등의 주역해설이 모두 『상전』의 도를 잃었다[失其道也]는 해설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따르고 싶지 않은 해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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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빠야닷컴
2010. 3. 5. 14:24

불상비창(不喪匕鬯) 기타(其他)/명언(名言)2010. 3. 5. 14:24

  불상비창(不喪匕鬯)은『주역』진괘(震卦)의 괘사에 나오는 명언입니다. 비(匕)는 제사를 지낼때 쓰는 숟가락이며, 창(鬯)은 제사를 지낼때 쓰는 술잔입니다. 그래서 직역하면 제사의 ‘숟가락과 술잔을 떨어뜨리지 않는다’는 말이 됩니다. 이 상황은 천둥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상황이라고 해서 비창(匕鬯)을 떨어뜨리지 않는 것입니다.

 

보통은 어떤 상황과 변화에도 놀라지 말고 ‘침착하게 평정을 유지하라’는 뜻을 말하고자 할 때 인용합니다. 육여사께서 총을 맞고 실려나가는 상황에서 박정희 전대통령이 보여준 행동이 생각납니다. 그때의 영상이 남아있어서 우리는 종종 보게 됩니다. ‘연설을 마저 읽겠습니다’고 하는 그 아무일도 없었던 것 같은 목소리는, 눈이 휘둥그레져 있던 참석자들이 저절로 ‘만세’를 외치도록 하였습니다. 정치의 공과를 떠나서 그 배포는 정말로 놀라웠습니다.

 

종종 ‘전통을 무시하지 마라’는 의미로도 인용합니다. 시대가 지날수록 제사같은 것을 왜 지내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많이 표합니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고통만을 주고 있는 것이라면 문제가 있기는 있는 것 같습니다. 예(禮)는 내면적 정서의 발현이지, 형식적인 절차를 억지로 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순됨을 알라’라는 그런 의미를 전하기 위해서도 인용합니다. 인간이 가지는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일 것입니다. 죽은 조상을 앞에 두고 죽는 것이 두려워 비창(匕鬯)을 떨어뜨리는 것이니, 참 우스운 상황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전통적 힘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이었습니다. 죽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의미없이 죽는 것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헛되이 살지 않는 것을 추구했습니다. 혹자는 3년상을 통해 움막을 짓고 부모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에서 지니고 왔던 힘이라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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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3. 5. 14:21

군자표변(君子豹變) 기타(其他)/명언(名言)2010. 3. 5. 14:21

  『주역』의 앞 뒤로 연결되어 있는 대인호변(大人虎變)과 소인혁면(小人革面)과 함께 비교하면서 언급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같은 말임에도 그 의미를 180도 다르게 해석하곤 하는 대표적인 명언인데, 직역은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군자가 표범처럼 변한다’는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표범으로 변하는 것을 좋은 의미로 해석합니다. 상전의 ‘문채가 아름답다’는 해석을 수용한 까닭인데, 그래서 ‘군자는 표범처럼 바뀔 줄 아는 사람이다’는 의미로 인용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표범이 가을에 털갈이를 하여 그 무늬를 드러내는 것처럼, 또한 움직임이 호랑이보다 신속한 것처럼, ‘신속하고 뚜렷하게 변화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인용합니다.

 

종종 그 반대의 의미로 변신을 비난하기 위해서도 인용합니다. ‘지조없이 표범처럼 변한다’는 약삭빠른 변화를 말하기도 합니다. 이 경우에는 그래서 결코 호랑이처럼 무겁게 움직일 줄 아는 대인(大人)일 수 없다는 비교가 동반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변하는 것이 당연한데 변하지 않으려고 고집하는 것은 꽉 막혀 융통성이 없는 것입니다. 고여서 썩어가는 물입니다. 변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데 변하는 것은 배신입니다. 나뭇잎처럼 바람에 휩쓸려가는 가벼운 존재입니다.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을 지키고자 하는 힘(보수)과 변해야 하는 것을 변하도록 하려는 힘(진보)은 배타적인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함께 있습니다.

변해야 할 것과 변해서는 안 되는 것을 분별해내지 못하는 얕은 식견이 오히려 문제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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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3. 5. 14:11

구정무금(舊井无禽) 기타(其他)/명언(名言)2010. 3. 5. 14:11

  구정무금(舊井无禽)은 주역 정(井)괘에 나오는 명언입니다. 직역하면 ‘오래방치된 우물은 날짐승조차 없다’는 말입니다. 우물을 사용하지 않고 물을 고이게만 해 놓으면 썩어버립니다. 우물은 길어가야 다시 샘솟기를 반복하면서 맑고 깨끗하고 시원하게 유지가 됩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구태적 사고를 버려라’는 뜻을 표현하기 위해 자주 인용합니다. 사람은 육체만 늙고 생각은 늙지 않는다고 여기기도 합니다만, 주역은 변하지 않는 것은 없고, 변화하여 소멸되지 않는 것은 없다고 하고 있는 책이니 당연히 생각도 늙는다고 볼 것입니다.

 

생각하는 나이는, 생각을 바꾸는 것을 얼만큼 가벼이 여길 수 있는지에 달려있지 않을까요? 사고가 굳어버리면, 잔소리가 많아지고, 불평이 많아지고 화가 많아집니다. 결국은 모두 다 떠나가 버리고 새조차 찾지 않는 우물이 되어있을 것입니다. 외톨이가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래서 상전에서는 한마디로 멋지게 압축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새조차 없는 것은 시대를 저버렸기 때문이다[時舍也]

 

꾸준히 노력하고, 갈고 닦으면서, 고이지 않게 순환을 시켜라는 것이 이 구정무금의 명언이 주는 가르침입니다. 고여서 썩은내를 풍기지 말고 흘러가는 물이 되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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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3. 5. 14:06

일악위소(一握爲笑) 기타(其他)/명언(名言)2010. 3. 5. 14:06

  일악위소(一握爲笑)는 『주역』췌(萃)괘에 나오는 명언인데, 주역해설가들은 다양한 의견을 보이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악(握)은 백서를 근거로 옥(屋)자를 빌려온 것으로 보는 정도가 문리적 논란이며, 문리적인 것 보다는 그 상징성을 두고 논란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직역은 어렵지 않습니다. ① 한 손과 웃음 혹은 ② 한 집과 웃음 이라는 이미지를 통해서 그림을 그려보시면 될 것입니다.

 

한번 손잡고 웃어준다’는 의미로 인용할 수 있습니다. 일시적인 결탁을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내심은 정말 싫지만 이번 한번만 손을 잡고 웃는척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속셈을 가지고 서로 웃어야 하는 경우가 흔히 있는 것이 현대 비지니스 사회입니다. 두 회사간에 서로 윈윈하자며 CEO끼리 악수를 하는 사진을 쉽게 만날 수 있는데, 서로 잘 되자는 뜻은 드물겠죠.

손을 맞잡고 웃는다’로 인용하기도 합니다. 일(一)이 한번이라는 횟수적 의미가 아니라 '함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함께 손을 잡아야 진정으로 웃을 수 있게 된다'라는 등등의 해석도 같은 맥락입니다.

 

한 손에 움켜잡고 웃는다’는 의미로 인용하기도 합니다. 완전히 장악을 해 버렸다는 뜻을 표현하고자 할 때 사용합니다. 제깟놈이 뛰어봐야 내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가소롭다는 의미도 같은 맥락입니다.

 

일제히 웃는다’는 의미로 인용하기도 합니다. 모두가 한 집단이 되어서 웃으니 가장 좋은 웃음입니다. 좁게 해석하여 ‘한 집안 사람들만 웃는다’로 인용하기도 합니다.
모두 다 울부짖고 슬퍼하는데도, 어떤 한 집안만은 웃음소리가 있습니다. 알지 못하는 신비스런 방책이 있거나, 숨겨둔 보물이 있거나, 누군가와 결탁을 했다는 의심을 살 수도 있을 것입니다. '틀림없이 뭔가가 있는거야'의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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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3. 5. 13:44

문언불신(聞言不信) 기타(其他)/명언(名言)2010. 3. 5. 13:44

  문언불신(聞言不信)은 『주역』쾌(夬)괘에 나오는 명언입니다. 크게 두가지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1) 말을 들어도 믿지 않는다 (2) 들리는 말은 믿을 수 없다.

 

말을 들었는데 믿지 않는 까닭은 ① 말은 본래 신뢰할 수 없는 것이기 떄문입니다. 말만 잘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논어의 교언영색의 가르침이 생각나네요.

듣기좋은 말과 좋은 표정에는 진실됨이 적다

또한, ② 말하는 사람이 신용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믿지 않는 것입니다. 말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정치인들의 호소가 생각나네요. “믿어 주세요~”라고 아무리 외치는 것보다 신임을 얻는 것이 순서일 것입니다.

 

종종 ‘소문이란 믿을 수 없다’는 표현을 위해서 인용하기도 합니다. 인터넷을 통해 갖가지 소문이 확대 재생산되는 시대라 더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가치관이 확립되어 있지 않으면, 남에게만 요구하려고 합니다. 나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합니다.

한편, 들리는 이야기는 자극적으로 변화하며 흘러온 것입니다. 영웅이건, 악마건, 한 극단으로 향하여 더 자극적인 양념이 뿌려지면서 눈덩이처럼 굴러온 것입니다. 그래서 소문난 잔치에 오히려 먹을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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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3. 4. 14:46

삼인손일(三人損一) 기타(其他)/명언(名言)2010. 3. 4. 14:46

  사자성어를 선호하기 때문에 줄여표현 하곤 하는데 원문은『주역』 손(損)괘의 세번째 효사입니다. 전체 원문을 소개하면 「삼인행즉(三人行則) 손일인(損一人), 일인행즉(一人行則) 득기우(得其友)」입니다. 이것을 줄여 삼인손일(三人損一) 일인득우(一人得友)라고 합니다. 해석이 어렵지는 않습니다. ‘세명이 나아가면 한명을 잃고, 한명이 나아가면 친구를 얻는다’는 말입니다.

 

보통은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지 말라’는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서 인용합니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더 가까워지는 두 사람 때문에 한 사람은 떨어져 나가기 마련입니다. 실재의 사람이 3명이 아니라 가상의 사람이 등장해도 그러할 것 같습니다. 요즘 젊은층에서 유행하는 엄친아(엄마 친구의 아들)라는 말도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요? 엄마와 딸의 대화에 잘난 엄마친구의 아들이 끼어들면 딸아이는 엄마에게서 떨어져 나갑니다.

일인득우(一人得友)까지 언급하고 가겠습니다. 엄마와 딸의 대화에 엄마가 스스로를 잊고 딸과 한마음이 되면(1人)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털어놓은 딸이 엄마를 찾으려 옵니다. “엄마는 속상하는 일 없어?” 그래서, 엄마는 친구를 얻었습니다(得友).

 

종종, ‘작은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는 뜻으로 인용합니다. 3은 고래로부터 많음을 상징하는 숫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3인은 많은 사람이 모인 큰 조직을 상징합니다. 거대한 단체는 의견이 분분하기 마련이고, 1인(소수)의 목소리를 무시해야 할 필요가 생기기도 합니다. 모든 입장을 다 수용하고는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석할 경우에는 일인득우(一人得友)는 작은 조직은 동지를 얻어야 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즉, 큰 집단은 덜어내면서 내실을 다져야 하는 것이고, 작은 집단은 우선 규모를 키우는 것이 나아가는 순서라는 의미로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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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3. 4. 14:44

대건붕래(大蹇朋來) 기타(其他)/명언(名言)2010. 3. 4. 14:44

  대건붕래(大蹇朋來)는 『주역』 건(蹇)괘의 다섯째 효사에 나오는 명언입니다. 해석에 어려움은 없습니다. ‘큰 어려움이 닥치면 벗이 찾아온다’는 뜻입니다. 붕(朋)은 친구와 동지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보통이지만 화폐라고 보기도 합니다. 붕(朋)이 조개껍데기가 나란히 있는 형상이며, 고대에는 조개를 화폐로 사용하였습니다.

 

보편적으로 인용하는 경우는 ‘어려워도 포기하지 마라’는 얘기를 하고자 할 때입니다. ‘하늘은 견딜 수 없는 시련은 주지 않는 법이다’ 등등의 많은 속담과 격언들과 연결되는 의미입니다.

 

종종 ‘큰 어려움이 닥쳐야 친구를 알 수 있다’는 의미로도 인용합니다. 큰 어려움이 닥치면 적과 동지가 분명히 드러납니다. 얻어갈 것이 없으면 사라지는 자는 도적이었으며, 내 놓아야 할 것이 아까워 사라지는 자는 동료였을 뿐입니다. 충신(忠臣)이요, 열사(烈士)요, 의사(義士)는 나라가 위태로울 때라야 알 수 있습니다. 『논어』제9편 자한제28장의 의미와도 통할 것입니다.

날씨가 추워진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큰 어려움이 오히려 고맙다’는 그러한 의미로도 인용합니다. 큰 어려움이 오히려 친구가 찾아온 것처럼 반갑다는 말입니다. 요즘처럼 어려운 시기에 ‘위기는 기회다’라는 말이 자주 들립니다. 큰 어려움은 나쁜 듯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나를 도와주려고 찾아온 친구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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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3. 4. 13:21

우주우항(遇主于巷) 기타(其他)/명언(名言)2010. 3. 4. 13:21

  우주우항(遇主于巷)은 『주역』 규(睽)괘의 두번째 효에 나오는 명언입니다. 직역하면 ‘길거리(골목)에서 주인을 만난다’는 뜻이 됩니다.

 

일반적으로 ‘운명적인 만남’을 표현하는 경우에 인용합니다. 약속을 하고 만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생각지도 않고 있었는데 우연히 만나게 된 것입니다. 굳이 사람에 한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인생은 우연적인듯 보이는 사건의 집합인 것도 같습니다. 우연처럼 느껴지는 필연인지는 신(神)만이 아시겠죠.

 

종종 ‘몰래 벌이는 것이 있다’는 것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독립투사들께서 등장하는 드라마나 영화의 장면이 떠 오르네요. 우연히 길에서 만난 것처럼 인사를 건네고 지나가면서 뜻을 전합니다. 그러니 분명 ‘무언가가 있긴 있는데’ 하는 상황입니다.

 

주인(主)을 남편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아 ‘딱 걸렸다’는 그런 의미로 인용하기도 합니다. 잔치나 문상을 갔다온다고 나간 남편인데, 길에서 마주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날은 정말 힘든 날이 되지 않을까요? 이러한 의미를 확장하여 ‘부부간에 금슬이 좋지 못함’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남편도 바깥으로 돌고, 아내도 바깥으로 돌다보니 길거리에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해석은 효의 자리가치를 인정하는 역자들의 견해를 반영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이 효사가 나오는 둘째효가 아내의 자리이며, 첫째효(아들)에 의존하며 셋째효(남편)를 통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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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3. 4. 13:19

입우좌복(入于左腹) 기타(其他)/명언(名言)2010. 3. 4. 13:19

  입우좌복(入于左腹)『주역』 명이(明夷)괘에 나오는 명언으로 직역하면 ‘왼쪽 배에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복(腹)을 동굴, 중심 등등으로 다르게 해석하기도 하지만, 좌복(左腹)은 심장이 위치하고 있는 가슴을 뜻한다고 보는 것이 보통입니다. 『상전』에서 ‘그 마음을 얻는것이다[獲心意也]’라고 하는 해설에 기인합니다.

 

그래서, 흔히 인용하는 경우는 ‘그 속셈(마음)을 알아차렸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입니다. 예로부터 전통적으로 ‘마음이 심장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사망을 판단할 경우에 심장의 박동이 멈추는 때를 기준으로 합니다. 기쁘고 슬픈 마음의 변화에, 두근거리고 고통스런 이상반응을 보이는 곳이 심장이기 때문이었을까요? 세계적으로 뇌가 죽는 뇌사로 옮겨오고 있는 것이 추세이긴 합니다만, 심장이 뛰고 있으면 표현하지 못할 뿐 마음은 살아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여전히 많은 것 같습니다. 현대의학적으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요.

 

종종 ‘요직으로 나아가다’는 의미로도 인용합니다. 목적한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 아주 좋은 위치를 선점했다는 뜻입니다. 영업을 하는 경우라면 목 좋은 곳에 영업점을 얻은 것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들어가는 주체가 나가 아닌 것을 상정해서 ‘마음을 다쳤다’ 혹은 ‘마음을 뺐겼다’는 의미로도 인용하기도 합니다. 짝사랑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들이대는 상황에서 ‘왜 이러십니까’ 한다면, ‘주역에 입우좌복(入于左腹)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저를 나무라지 마셔요’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예! 침입한 사람이 잘못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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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3. 3. 13:08

진여석서(晉如鼫鼠) 기타(其他)/명언(名言)2010. 3. 3. 13:08

  『주역』 진(晉)괘에 나오는 명언으로 ‘석서(鼫鼠)처럼 나아간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데, 이 석서(鼫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두고 주역해설가들은 ①들쥐 ②다람쥐(만주종) ③큰 쥐 ④들쥐(鼫)+집쥐(鼠) 를 의미한다는 등으로 해석이 분분합니다. 어쨋거나 ‘’를 뜻하며, ‘부정적 상징’이라는 점에서는 일치합니다.

 

대개 ‘행실이 쥐처럼 얍삽하고 간사하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인용합니다. 쥐는 낮에는 활동하지 않고 어두운 밤에 돌아다니며 곡식을 먹어치우는 습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정적인 느낌을 조금 완화하여 ‘담이 작다’는 의미를 표현하기도 합니다.

 

종종 ‘간신배의 모함이 통한다’는 한탄을 하기 위해서도 인용합니다. 이 경우에는 진(晉)은 권력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어울립니다.

간신배의 모함을 상징하는 고사성어로 『논어』의 침윤지참(浸潤之譖)과 부수지소(膚受之愬)라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침윤지참(浸潤之譖)은 물이 점점 스며드는 것과 같이 점차점차 쌓여가게 모함하는 것이며, 부수지소(膚受之愬)는 살을 에는 듯한 간절한 하소연으로 단번에 흔들리게 모함하는 것을 말합니다. 쥐의 습성에 비유하면 침윤지참(浸潤之譖)은 집쥐에 해당하고, 부수지소(膚受之愬)는 들쥐와 의미에 해당합니다. 집쥐(鼠)는 곡식을 야금야금 먹어들어가고, 들쥐(鼫)는 떼로 들이닥쳐 한번에 곡식을 먹어치워버리기 때문입니다.

 

종종 ‘수탈하는 지배층을 비난’하기 위해서도 인용합니다.

이때의 석서(鼫鼠)는 백성들이 땀흘려 이룬 곡식을 아무런 기여도 없이 가져가는 지배층을 상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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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3. 3. 13:06

저양촉번(羝羊觸藩) 기타(其他)/명언(名言)2010. 3. 3. 13:06

  저양촉번(羝羊觸藩) 또한 널리 알려진 명언입니다. 『주역』 대장(大壯)괘의 효사에 있는 명언인데, 저양(羝羊)은 숫컷양을 의미하고 번(藩)은 울타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숫양이 울타리를 들이받고는 그 뿔이 걸려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보편적으로 인용되는 경우는 오도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한 것을 표현할 때입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저양촉번이나 진퇴양난이나 그런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나이많은 고시생이나, 집을 반쯤 지어놓고 융통할 돈이없는 건축가나, 그런 상황이라면 손해를 보기 싫다는 욕심만 내려놓으면 움직일 수 있을 것입니다.

 

종종 ‘경박하게 날뛰더니 꼴 좋다’는 비꼬는 의미로 인용하기도 합니다. 혈기가 강한 숫양이 너무 날뛰어서 뿔이 걸려버린 것입니다. 나아가려고만 하는 혈기가 곤경을 자초한 것입니다.

 

오히려 잘 되었다’는 좋은 결과를 표현하기도 합니다. 비행기를 놓쳤는데 그 비행기가 사고가 나버린 그런 경우입니다. 주역의 전체 효사와 연결성을 짖는 의미인데요. 구해주려고 하는데 도망가는 양이 있습니다. 그런 양을 쫓아가서 구해주기는 더 힘이 듭니다. 그런데 꼼작못하는 상황에 있으니 쉽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외부적으로 볼 때는 처량하게 되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더 이득을 보게 된 상황이 저양촉번(羝羊觸藩)의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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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항기덕(不恒其德) 기타(其他)/명언(名言)2010. 3. 2. 20:29

  불항기덕(不恒其德)은 『주역』에 나오지만, 『논어』에도 인용되어 있습니다. 논어 제13편 자로 제22장을 보고 시작하겠습니다.

남방인들이 말하기를 ‘한결같은 마음이 없으면 점을 치거나 의술을 행할 수 없다’고 하는데 참으로 맞는 말이다. 주역에도 불항기덕(不恒其德) 혹승지수(或承之羞)라고 했다

고대사회에서는 점을 치는 것과 의술을 중시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점술이나 의술은 지극한 인내심과 의지가 없으면 할 수 없을만큼 힘든 일이었다고 합니다. 『예기』에 ‘의술이 3대를 이어져 오지 않았으면 그 약을 먹지 않는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이 명언은 직역하면 ‘그 덕이 유지되지 않는다’는 말인데, 마음이 이랬다 저랬다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변덕스러움을 나무라는 경우’에 인용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예전부터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고 조금 비하하는 느낌으로 표현하기도 했었습니다만, 저는 유학의 가르침이 곧 갈대처럼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유연성과 융통성을 가지지만, 그 심어진 뿌리는 확고히 자리잡고 있는, 갈대의 비유가 참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물론 바람에 아무곳으로 휩쓸려가는 나뭇잎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요.

 

‘우유부단함’을 나무라는 경우에서 확장되어 ‘잘 변질되는 간사함을 비난’할 경우에 인용하기도 합니다. 세조시대의 역사가 생각나네요. 수양대군의 편에서서 제일 호사를 누린 것으로 보이는 한명회는 ‘압구정’이라는 크게 거부감없는 지역명을 남기고 있지만, 신숙주는 만고에 지워지지 않는 씁쓸한 이름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잘 쉬고 비릿한 냄새가 난다’고 해서 신숙주의 이름을 딴 ‘숙주나물’이라는 명칭이 유래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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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비기추(獲匪其醜) 기타(其他)/명언(名言)2010. 3. 2. 20:29

  획비기추(獲匪其醜)는 『주역』 리(離)괘의 마지막 효사에 나오는 명언입니다. 비(匪)가 부정의 뜻이 아니라 피(彼)자를 차용한 것이라는 해설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부정의 뜻으로 해석합니다. 이 앞에 절수(折首)와 연결되는데, 함께 해석하면 ‘우두머리를 참수하나 그 부하들은 잡지 않는다’는 의미가 됩니다.

 

가장 보편적으로 인용하는 경우는 ‘수졸들에게 관용을 베푸는 경우’입니다. ‘주역에 획비기추라고 하였으니, 내 너희들에게까지 그 책임을 묻지는 않겠다’고 말하는 상황을 설정할 수 있겠습니다.

 

소소한 일은 신경쓰지 마라’는 의미로도 사용합니다. 수괴만 처단하면 자연적으로 괴멸될 것인데, 굳이 힘을 낭비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종종, 부하에게 ‘재량권을 부여할 때’에도 사용합니다. 내 손에 피를 묻히기 싫으니 나머지는 알아서 처리하라는 것이죠. ‘내 손으로 그 졸개까지 잡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장수는 장수끼리 상대하는 것이지 장수가 졸개와 상대하는 것은 모양새가 어긋난다는 생각 때문이겠지요.

 

  제가 군대생활을 할 때에는, 만년병장이 신참병들을 나무라는 것을 참 추잡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그런사람 꼭 있지요. 병장은 선임상병에게 선임상병은 선임일병에게 순서대로 내려가는 지휘계통을 지켜야 한다는 관습이 있었는데요. 요즘 물어보면 하급병이 무서워 참고 있어야만 한다고 하는데, 정말인지 상상이 잘 안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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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우감담(入于坎窞) 기타(其他)/명언(名言)2010. 3. 1. 13:35

  입우감담(入于坎窞)은 『주역』 감(坎)괘의 효사중에 나오는 명언입니다. 감(坎)도 구덩이를 의미하며, 담(窞)도 구덩이를 의미합니다. 즉, 구덩이에 빠지고 또 그 안의 구덩이에 다시 빠지는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편적으로 설상가상(雪上加霜)의 의미로 많이 인용합니다. 즉, 눈위에 서리가 쌓이는 것처럼, 구덩이에 빠졌는데 다시 그 안의 구덩이에 빠지는 ‘어려운 일이 연거푸 생기는 것’을 표현할때 사용합니다. 좋은 일이 거듭되는 금상첨화나 나쁜일이 거듭되는 경우나 그런 일들이 드물지만은 않을 듯 생각됩니다.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계속되고 있는 위험’을 표현할 경우에도 종종 인용합니다. 영화에서는 영웅이 적을 계속 잘 물리치지만, 보통사람이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정말 힘겹지 않을까요?

 

종종 ‘마음의 함정에 빠지지는 마라’는 의미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첫번째 구덩이는 육체가 빠지는 구덩이이며, 다시 빠지는 구덩이는 마음이 빠지는 구덩이입니다. 위험이 닥치면 쉽게 체념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사업이 잘 되어 부자로 살다가 회사가 부도가 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에 부인이 조력해주지 않으면 남자는 술을 달고 살면서 인생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런 경우가 거푸 구덩이에 빠지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남자는 술부터 찾고 여자는 광주리부터 찾는다고 했는데, 오늘날에는 결별하는 경우도 많지 않을까요? 좋은 일도 궃은 일도 함께 한다는 부부관계가 먼 이야기가 되어가는 듯 느껴지는 세상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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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생화(枯楊生華) 기타(其他)/명언(名言)2010. 3. 1. 13:32

  고양생화(枯楊生華)는 『주역』대과(大過)괘의 5번째 효사에 나옵니다. 직역을 하면 ‘마른 버드나무에 꽃이 핀다’는 말인데, 보편적으로 ‘나이많은 여자가 젊은 남편을 얻는 것’을 빗대어 인용하곤 합니다.

이와 반대로 고양생제(枯楊生稊)는 ‘늙은 홀아비가 젊은 여인을 아내로 맞는 것’을 빗대어 인용합니다. 역시 『주역』대과(大過)괘의 2번째에 나오는 효사입니다. 이러한 의미로 인용되는 까닭은 효사의 내용이 그렇게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자세한 것은 대과(大過)괘를 참고해 보시길 바라겠습니다.

 

종종 강한 성(性)을 버드나무에 비유하곤 하였습니다. 옛날에 기생을 두고 영업을 하던 것을 버들 류(柳)자를 써서 화류(花柳)라고 하던 것도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버드나무는 물을 흡수하는 성질이 강하여, 물가 어디서나 잘 자라며 생명력이 아주 강한 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역은 고전에서 거의 만날 수 없는 성(性)에 대해 굉장히 자유로운 관점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성행위를 묘사하는 함괘, 간괘를 비롯, 구괘, 대과괘등등이 그렇습니다.

「상전」등의 십익이 후대에 만들어 졌을 것이라는 추측을 낳는 것이 이런 부분이 나올 경우마다 고상한 척 하는 태도를 보이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상전에서는 이 부분을 해설하기를 ‘늙은 부인이 젊은 남편을 얻었으니 어찌 오래 가겠는가[何可久也]? 또한 수치스런 일이다[亦可醜也]’라고 해설합니다. 원시유학에서는 정(情)에 비중을 두었는데, 송대를 지나면서 고루해지고 고상해졌던 까닭에, 십익은 공자의 저작이 아니라고 의심을 받았으며, 백서발굴 이후에는 십익을 공자의 저작이 아닌 것으로 보는 것이 오히려 보편화된 인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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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빠야닷컴